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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저와 같이 고해성사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고해소 안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하느님이고, 그분께 죄를 용서받으며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 소중한 자리입니다.' 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고, 주위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과 조언을 들어도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저만 그럴지도 모르지만요) 저는 느려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하느님 앞에서 모두 어린 아이, 어린 양인걸요. 그분께서는 저희를 언제나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린 아이가 무엇인가를 한 번에 배우고 습득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를 나무라지 않고 여러 번의 기회를 주며, 옆에서 도와줍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완벽하지 않아도, 실수 투성이어도 하느님께서는 더욱 더 잘 하게 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는 분이시죠.
저 또한 아직은 고해가 미숙하고, 어디까지 성찰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어떠한 방법으로 고해를 하면 더더욱 나를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그 분 보시기에 좋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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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고 처음 했던 고해성사가 떠오른다. 신부님의 가르침과 함께 교리수업을 들었던 신자분들과 다함께 떨리는 첫 고해성사를 했다. 그동안의 모든 죄를 고한뒤, 용서를 빌고 무의 상태로서 세례명과 함께 또다른 삶을 다시 시작하는 첫 행위의 출발선이었다. 그때의 나는 거짓말에 관한 고해와 나에게 죄를 지었던 모든 이들을 더이상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던 것 같다. 더불어 나역시 다른이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힘들게 한 부분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그 순간의 떨리는 마음과 마음의 무언가 일렁임같은 기분을 잊을수가 없다. 나에겐 첫 고해성사였으니까.. 그렇다고해서 모든 신자들이 어떠한 죄를 지어놓고 고해성사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죄가 없어지고 그런다는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되고, 이전과는 다르게 그러한 나의 행동에 대해 반성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례를 받기 이전과는 굉장히 달라진 삶의 한 일부분이 되었다. 우리 신자들에게는 고해성사를 꼭 해야하는 시기가 있고, 평소에도 자주 고해성사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보고, 타인을 돌아보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아직 속속들이 깊숙한 종교생활이 익숙지 않은 덕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가 생기면, 꼭 관련된 글들을 찾아 읽는다.
내 삶의 연장선상속에 큰 일부분이기 때문에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고해성사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 책은 교황청 내사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기획된 책이다. 죄의 고백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무한한 용서를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 등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한다. 1, 2장의 내용은 고해성사 전 양심 성찰을 위한 보조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으며, 통회의 기도를 비롯한 2가지 양심 성찰도 담았다.
따라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다. 고해성사 안팎의 여러 죄에 대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는 일을 맡고 있는 교황청 내사원은 서론에서 “잘잘못의 중대함을 따지기보다는 선한 양심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고해성사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지 알려 주는 말이다. 누누이 고해성사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통해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받고 영적으로 많은 지침을 선사하고 있다.
종교를 갖는 이유는 저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난 종교 안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결의 삶의 위안을 얻곤 한다. 이를테면,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더이상 나는 그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우직하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간다. 심란할 땐 내 모니터 앞에 놓인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주님께 성호경을 긋고 기도를 드린다. 그저 성호경을 긋는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평정심을 찾는다.
이전같았다면 싫으면 그냥 그 꼴을 안보고 말지라는 생각과 함께 퇴사를 해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있어 '남'으로 인한 퇴사는 그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구태여 나의 일을 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 세상일이 다 내 맘 같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들을 이제는 그저 툴툴 털어버릴 수 있다.
고해성사를 하기 전, 나를 용서해달라고 하기전에 '나'는 과연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했는가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의 용서를 빌기 전, 내가 먼저 남을 용서하는 마음. 이건 굉장히 큰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섣불리 네, 그렇습니다! 라고 답을 할 순 없지만, 이것 역시 내 삶의 고행이라 생각한다. 미움 없이 남을 용서할 수 있는 큰마음. 그 마음을 위해 나의 오늘을 열심히 살고, 내일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온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의 삶, 내 하나뿐인 인생, 주님이 주신 너무도 큰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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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시기가 시작됐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이다. 이때 가장 강조하는 것은 “깨어 있어라!”라는 말씀이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복음도, 깨어 있으라고 강조하신다. 대림 시기 기간에, 깨어 있기 위한 노력으로, 고해 성사를 본다. 이 시기의 고해 성사는 의무다.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와 함께, 일 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고해 성사를 봐야 한다. 이 두 번의 고해 성사를 ‘판공성사’라고 부른다. 한국 교회에만 있는 제도라고 하는데, 최소한 일 년에 두 번은 고해 성사의 은총을 받으라는 의미라 생각된다. 자주 고해 성사를 보면서 깨어 있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안 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거의 가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크다. 혼을 내는 사람 은 없지만, 혼나러 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이 드는 이유는, 고해 성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강력함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안다고는 하지만, 진정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월 1회는 꼭 고해 성사를 보자고 다짐하지만, 2~3달을 넘긴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고해 성사를 통해 잘 깨어 준비하려고 한다.
고해 성사를 보기 주저한다면, 이 책 <고해 성사>가 좋겠다. 교황청 내사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기획된 책이다. 고해 성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의구심이 든다면, 꼭 펼쳐보길 바란다. 크게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통해 고해 성사의 은총과 이유에 관해 설명되어 있다. 그 중, 마음에 와닿은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한다. 2장에서는 고해 성사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성찰을 잘 소개해놓았다.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본인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혹시 오랜 시간 고해 성사와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나?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이 책을 통해 고해 성사의 은총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 은총은 죄보다 더 강합니다. 은총은 어떠한 난관도 극복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1코린 13,7 참조) (교서 <자비와 비참>, 8항) p18
우리는 주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과 다른 형제들과 화해를 이룰 때 전정 평화로워집니다. 누구나 고해 성사를 할 때 양심의 가책과 슬픔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용서를 받게 되면 비로소 평화로워지지요.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영혼의 평화는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일반 알현, 2014.2.19.) p25
많은 이들이 고해소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합니다. 아마도 고해소 안에서 엄격한 재판관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을 잊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고해소에 들어갈 때 부끄러울 수도 있지요.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부끄러움이 항상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임을 말입니다. (삼종기도 후 행한 연설, 2015. 8. 2.) p29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준 기도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베풀어 주시는 용서”가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 줄 용서”를 요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한다면” 분명히 “하느님께서 열어 주신 용서의 문을 닫는 것”과 같습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25. 3. 11.) p35
사제 앞에 무릎을 꿇는 행위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릎을 꿇는 그 순간, 사제가 나를 치유하는 은총의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38~39쪽)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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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시기가 시작된다. 늘 고해성사로 새로 태어날 준비를 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그때의 기억을 ‘고해사제에게 건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읽고 떠올려본다. 그동안 나는 상처받았다는 변명으로 하느님께 나의 죄를 고백하지않으며 늘 졸고 있었다. ‘늘 깨어있어라’고 하신 주님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나 자신의 영혼 문제에 대해 곰곰이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p.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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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제가 병원에서 겪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다가 제 뒤를 따르시던 노부부께서 몇 걸음 차이로 발길이 엉켰습니다. 제가 한 발걸음 양보를 하는 과정에서, 어느 자매님과 제가 몸이 살짝 부딪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매님은 제게 싫다 하시는 눈빛으로 쳐다보셨는데요. 이렇게 부딪힘의 이유를 금세 알아차린 자매님께서 "앗! 내가 오해했구나! 고해성사 해야지!"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저보다 앞서가시던 자매님이 머뭇거렸기 때문에 부딪힌 일이었는데요. 차가운 눈길은 물론 작은 욕 소리를 말씀하셨던 나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기억을 가지고 이 도서 32 페이지를 읽은 후에 비로소 자매님께 바랐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정리되었습니다. 바로 "사과"였습니다. 저는 부딪히며 "죄송합니다." 하고 먼저 사과드렸지만, 자매님의 반응은 "고해성사 해야지."였습니다. 그 말씀을 하신 동기는 자매님께서도 자신의 잘못도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까지도 그 일을 가지고 섭섭해하는 것을 "용서"로 깨우쳐야 합니다.
페이지 20에서 "나 스스로 '나의 죄를 용서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의 죄를 성찰하면서, 통회의 마음을 가지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죄에 수치심을 억누르기 위해서, 제가 지은 죄를 스스로 인정하면서, 죄를 고백하기도 전에 용서해버립니다. 물론 고해소에서 예수님의 대리자인 신부님께서 저의 '죄명'을 말씀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다만 제가 지은 죄의 보속과, 용서의 기도를 주님께로 곧 바쳐주십니다. 제 마음이 가벼워야 할 때는 제가 받은 보속을 반드시 풀었을 때입니다. 보속을 정리하지 않는 젊은 친구들이 제 생각보다 많고요. 보통 전대사로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사람이 미워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활 속에서 "주님의 기도"를 매일 바치는 신자는 타인의 죄를 보다 빠르게 용서하고, 죽도록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내면에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기도를 바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의 용서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죄는 아주 가벼운 보속으로 용서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안하다, 감사하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습관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인생에서 제가 저지른 죄가 많습니다. 때마다 자신의 죄를 찾아내지 못한 죄로 제게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분명히 반듯한 자세로 온 마음을 다해서 스스로의 죄를 성찰하고, 사과의 말씀을 전해 받길 바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과할 일을 찾아내지 못하고, 두 번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는 미련한 약속조차도 말씀드리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을 죄짓지 않겠다는 믿음과 신뢰도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저 역시 제가 만난 여러 가지 상처 가운데 대인관계에서 비롯된 것은 가볍게 생각을 하고 말아버립니다.
병원에서 만난 자매님의 마음을 제가 몰라서 상처받은 것은 아닙니다. 대신하여 주님께 고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씀 자체가 제게 사과를 전한 것을 제가 몰랐습니다. 저는 이 도서를 통해서 회개로 이끄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주님의 끝없는 사랑에 대한 생각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부터 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자연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지속하게 합니다. 사랑은 타인에게 저절로 우러나오는 자비로움을 깨닫게 해줍니다.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랑이지요. 미움을 용서할 적에 느껴지는 이 감정을 통해 저는 주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을 헤아려나 봅니다.
제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모든 용서보다 으뜸인 은총이 아닐는지요? 제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날에도 "용서하시겠지."라며 체념하는 우울감에서 해방시켜주시는 주님께 매번 제가 바랍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고해성사를 통해서 얻은 은총으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우며 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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