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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보통은 그 내용을 되새겨 보기 위해서 목차를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의 목차는 매우 간단한 편이다. 서론-본론-요약-결론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용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여기선 별 의미가 없다. 제목에서 나타난 것처럼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적혀 있는 글이며 페이지가 90쪽도 되지 않고 요약하는 장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저자가 다 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질 것이다. 바로 예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을 파괴한다는 의미로써 말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 위에 임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말 그대로 이곳을 뒤엎어 버릴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교리에 의한 학습된 결과인가 아니면 마땅하고 타당한 형태의 이해일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바울신학 혹은 요한신학에 의해서 만들어진 혹은 교회의 생활을 도와줄 교리에 의해서 알게 되고 배우게 된 것을 통해(렌즈처럼 활용하여) 성경을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일부분만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처럼 읽고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찰스 쉘던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책 제목처럼 어떻게(how) 하실 것인지를 떠올려야겠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부를 탐하고 있다. 맘몬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이 자본(물질 혹은 부)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음을 알고 갈구한다. 그것도 필요한 만큼의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말이다. 분명, 오늘 주신 은혜에 족하며 살아야 할 텐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보다. 이와 반대로 경건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청부가 아닌 청빈을 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갖게 만들었다. 특별히 현대인의 삶에서 추구하기 어려운 청빈을 말이다.
거꾸로 매달려도 이곳이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과연 나는 주님의 다시 오심, 파루시아를 기대하는 자인가 아니면 염세적이고 물질주의인 욕망덩어리인가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작지만 알찬 이 ‘수와진’ 출판사의 고전을 읽으며 신앙의 고전이 무엇인지를 깨달아보는 것은 어떨까 권하여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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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바이스의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 리뷰입니다. 요한네스 바이스는 리츨의 윤리적인 하나님나라를 거부하고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여 알베르트 슈바이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이죠 이런 중요한 책을 한국어로 읽을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감사드립니다 :) 하나님 나라 관련 책을 찾다가 한국어로 번역해놓으신 책이 있는걸 보고 얼마나 감동이었는지요 내용이 그렇게 길지 않으니 읽어보실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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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어떻게 읽는 대상을 이해하면, 주체로서 책을 수용하고 이해 할 것인가, 특히나 그것이 성경, 즉 진리와 관련되어 하나님의 구속사의 절정을 대면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모습이나 자세로 성경을 바라고 익히고 받아드릴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성경을 읽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경험하게 된다.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성경을 읽는 이들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구원에 이르는 진리라 믿으며 읽지만, 성경을 바라보는 현 시대의 독자들과 성경을 처음 받아들었을 독자들의 시선이 다르기에,
특히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각 저자들의 서술 방식에서 오는 차이들 덕분에 우리는 성경을 읽고 알되, 성경의 내용을 저자에 따라 다른 내용과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 혹은, 필요한 것은 성경을 통일되고 동일한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타인의 생각과 관점들을 참고 할 수 있는 자료들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이 제공하고 있는 관점들은 일단 두껍지 않은 두께 덕분에 사람을 흡족하게 하고, 다음으로는 가볍지 않은 내용과 관점 덕에 독자에게 큰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시절과 시대를 버틴 고전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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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해서 신학 출판 업계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불법의 편리하고 죄책감 없는 범람으로 인하여, 출판 업계는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는데, 몇몇 출판사들의 등장과 동시에,
지식에 목말랐던 그리고 소장신학의 기수들을 필두로, 좋은 책들을 찍어내고, 좋은 책들을 소비하는 문화가 아이러니 하게도 더 자리를 잡아가고, 이에 따라 출판사도 팔리는 신앙서적, 예수무당의 책들 보다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상고하는 양질의 도서들을 출판하는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든다.
토양이 바껴감에 따라, 더 본질에 충실해지는 느낌?
그런 점에서 이런 고전들을 살펴보는 것은 신학 출판의 토양의 바꼈음을 반증하는 것이자, 바뀐 토양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본질적인 외침을 듣는 것에 애를 쓴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책은 넓은 의미로 복음주의 바운더리 안에서 고전적인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전달하고 있다. 신학적 결에 따라 이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이 정의가 틀렸다고만 할 수 없는 고전적이고, 명료한 예수님에 대한 정의를 전달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진규선씨가 번역한 감은사의 창세기 설화를 읽으면서, 궁켈의 번역된 도서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갈증이 해갈되었던 것을 떠올리면, 왜 이 분이 그렇게 명료하게 독자들에게 번역의 결과물을 전달했는지, 얼추 이해가 되는 책이다.
벨하우젠과 요하네스 바이스의 얇은 책 두권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신학의 토양을 가꿔가는 출판사와 번역자의 수고를 만난다.
좋은 책이다. 이런 류의 만나고 싶지만 쉽게 만나지 못하던 책들도 수고하여 번역해주시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