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5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6.0
리뷰 총점 종이책
여성의 신비와 본질에 대한 상세도
"여성의 신비와 본질에 대한 상세도" 내용보기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남은 것은, 여성과 달의 주기와, 여성의 생리 기간 및 임신에 대한 금기들에 대한 분석이었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은 여신들의 연인이자 아들들의 희생(제의)를 통해 모자 사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분신 중 하나인 멧돼지에 의해 살해당한 아도니스의 경우 같은 신화 속 미소년들의 희생을 통해, 현대 여성들과 아들(더 넓게는 모든
"여성의 신비와 본질에 대한 상세도" 내용보기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남은 것은, 여성과 달의 주기와, 여성의 생리 기간 및 임신에 대한 금기들에 대한 분석이었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은 여신들의 연인이자 아들들의 희생(제의)를 통해 모자 사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분신 중 하나인 멧돼지에 의해 살해당한 아도니스의 경우 같은 신화 속 미소년들의 희생을 통해, 현대 여성들과 아들(더 넓게는 모든 어머니의 모든 자녀들)의 관계에 대해 흥미롭게 풀어놓고 있다. 이 책에서 누차 강조된 대로 여성 자신이 본질에 잠재된 에로스적인 부분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것을 그대로 자식에게 투사할 때, 그것이 아들(자녀)을 왜소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자신을 왜소하게 만든다는 분석은, 어머니가 될 사람이라면,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반드시 귀 기울여봐야할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작 연대는 1930년대이다. 어쩌면 그 연대가 이 책이 말하는 것들이 낡았다는 느낌을 섣불리 가지게 할지도 모르지만, 여성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과, 그 본질을 받아들이고 뛰어넘어 여성 자신의 신비를 직접 보게 하는 분석은 아직도 가치가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인상깊은구절]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이 표면적인 애타심이 사실은 우회된 형태의 자기중심주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안 돼'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안 돼'라고 말할 능력이 없거나, 또는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의 무기력함과 이기주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다...........
4***e 2001.08.2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신비로운 존재로서의 여성
"신비로운 존재로서의 여성" 내용보기
역자가 밝히고 있다시피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여성의 신비'다. 달 신화와 여성의 신비,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사랑의 이해'라는 제목은 그다지 적절해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달 신화'를 통해 여성의 존재와 여성의 내면을 파고들어간다. 여성의 정체성 회복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여성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있는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
"신비로운 존재로서의 여성" 내용보기
역자가 밝히고 있다시피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여성의 신비'다. 달 신화와 여성의 신비,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사랑의 이해'라는 제목은 그다지 적절해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달 신화'를 통해 여성의 존재와 여성의 내면을 파고들어간다. 여성의 정체성 회복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여성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있는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달 신화'는 여성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길을 더듬어가는 지도가 된다. 이때 여성들이 발견해내는 여성성은 여성들만의 것이 아니다. 남성 안에도 여성 안에도 존재해온 고대적, 신화적 '원형', 그것이 바로 여성성이라는 것이다. 이 여성성은 창조와 생산과 생명을 상징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에 맞서, 원형의 삶에서 살림의 여성성을 복원해내는 것, 이것이 저자와 역자의 의도이다. 그들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여성해방이며, 남녀평등이라는 '협소한' 개념과 차이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와 역자의 의도와는 다소 동떨어진 목적으로 읽어서인지 그들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힘들었다. 남녀 불평등의 해소나 여성해방, 인간해방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각성이나 자기발견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조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믿기에. 게다가 융의 '원형' 개념에서 빌려왔을 저자의 논리가 다소 거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것이 선험적으로 느껴졌다. 그 방면에 문외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성과 생산성을 품고 있는 여성성, 남자인 내 몸에도 도사리고 있을 그 여성성에 대한 '궁금증'은 새로운 문제의식이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또 이슈타르, 이시스와 오시리스 등 신화이야기들도 그 자체로 흥미롭다. 사족을 달자면, 사실 이 책은 에스터 하딩의 본문보다는 칼 융의 서문과 김정란의 역자 후기가 더 돋보인다. 특히 그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느냐와 무관하게 의미심장한 한 대목. "지혜를 구하는 자는 누구나 다 여성이 아니었던가. 말씀의 옴來을, 그것이 와서 깃들임을 기다리는 존재. 그것을 영혼의 씨방에 넣고 싹틔우는 존재. 그렇게 진정으로 신비를 구하는 자는 누구나 다 여성이 아니던가."
j*****n 2002.03.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