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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약을 위해 청년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한국 경제는 도약을 했습니다. 물론 일본만큼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태국의 소녀들은 매춘굴로 던져졌죠. 전쟁에 던져진 청년들이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짓을 했는지 아직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하긴 해방후 민간인을 거의 70만명을 학살한 친일파가 아직 이 사회의 기득권에 포진하고 있으니 그걸 기대하긴 힘든걸까요? 해방후 민간인을 학살하는 과정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을 일단 적으로 몰고, 적이니까 사람 취급 안해도 된다는 심리적인 면죄부를 얻고, 죽여도 된다 심지어는 죽여야 한다라는 단계로 나가는 세뇌 과정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에 이 책은 반드시 모든 이들이 보고 배우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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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를 흔히 ‘한(恨)의 역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만년의 기간 동안 수많은 외침을 겪으며 고통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강성할 때 우리는 쥐죽은 듯 지내야 했고, 중국이 약해지면 이민족들이 괴롭혔다. 그래서 우리 역사의 초점은 외침과 극복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침략의 기억은 희미하다. 광개토 대왕의 정복사업을 제외한다면, 국지전 수준에 그치지 않나 싶다. 조선 초기의 대마도 정벌이나, 4군 6진의 개척 정도가 우리가 진행한 마지막 침략(?)이 아닌가 싶은데, 방어적 차원의 선제공격으로 볼 수 있다. 지역의 전략거점을 장악하거나, 본거지를 공격해서 이민족의 준동을 막는 차원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특이하게도, 순수하게 타국을 침략한 기억이 있다면 바로 ‘베트남 전쟁’이 아닐까 한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파병장병들의 희생은 차곡차곡 대한민국과 국군의 현대화 자금이 되었다. 그들의 희생은 먼 나라에서 일어났기에 우리는 간접경험에 의존했고, 눈앞에 주어진 경제적 이익에 주목했다. 덕분에 민족중흥의 사명은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무관심했다.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이득의 기반에는 파병군인의 피와 땀이 배어있다. 여기에 더해 베트남 민간인의 피와 땀도 배어있다. <베트남 전쟁 1968년 2월 12일>은 우리나라 국군이 베트남 퐁니, 퐁녓에서 벌인 전쟁범죄,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다.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파병된 8년 동안 베트남 민간인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p.56)”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에 분노하고 일본의 사죄를 주장하지만, 우리 역시 가해자임을 직시하지 못한다. “제국주의 통치의 가해자로서 일본을 비판하기 전에 반드시 들어보아야 하는, 아프지만 직시해야 하는 하나의 역사적 거울이(p.732)” 바로 베트남에서의 민간인 학살 문제다.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행위는 일본과 닮아 있다. 50년이 “지났는데 한국 정부는 우리한테 안부를 묻거나 인사를 하지 않았(p.327)”다면, 우리가 그토록 성토하는 일본과 다를 게 무언가. 학살 피해자에게 우리는 일본과 다름없는 셈이다. 물론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이 승리한 전쟁이다. 그렇기에 사과를 원하지 않는 다고도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다르다. 그 유족들은 다르다. 그들이 겪었을 고통은 저자가 한 인터뷰에 절절히 흐른다. 우리 역시 수많은 외침을 당해온 ‘한’을 잘 안다면, 그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게 국가 위신의 문제보다 중요할 수 있다. 그래서 학살 피해자에게 사죄를 할 수 없다면,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역시 같은 이유로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분들께서 자랑스럽고 명예스럽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조국과 가족을 위한 목숨을 걸고 숭고한 희생을 감당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이면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명령에 불복하기는 불가능했을 테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실수나 오인은 빈발했을 테다. 게릴라전이라는 특성과 동료를 잃었다는 분노와 압박감은 이성적인 행동을 막았을 것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쟁범죄와 일탈을 정당화 하지 않는다. 죄는 단죄되어야 한다. 다만, 그 잘못을 개인이 오로지 질 수 없고, 참전용사들을 가해자로 매도하고자 함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은 “‘해본적 없는 촌놈들의 제국주의’(p.758)”에 대한 열망과 표출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했다. 피해자였던 기억이 가해자가 되기 위한 원동력이 되었다. 가해의 기억은 다시 광주에서 국민을 향해 표출되었다. 그리고 끝일까? 아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자 휴전국가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은 허구다. 생존에 대한 본능, 해본 적 없는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열망과 기억은 아직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지역주의, 비백인 외국인에 대한 선택적 차별,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혐오에는 당하고 사느니 차라리 가해자가 되겠다는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진실을 놓친 사이 계속해서 전쟁의 상처는 벌어지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베트남 전쟁은 분명히 끝났다. 하지만, 역사 속 기억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고통의 기억, 한의 역사를 종결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사실과 마주해야 한다. “전쟁을 끝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입장에서 그 사실들을 해석해주는 것이다.(p.751)” 그렇기에 퐁니, 퐁녓의 1968년 2월 12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놓친 역사의 이면과 마주해야만 전쟁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박성원 <하루> p.40 하미를 떠올리면서 대한민국의 상황이 ‘웃프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0년 10월 베를린 미테구 등 제3국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위해 로비를 한 일본 정부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위령비 비문 사건은 주민들 입장에서 하미의 정신마저 말살하려는 ‘3차 학살’이었다. p.52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파병된 8년 동안 베트남 민간인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통계를,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문장을 인용해 이렇게 말해본다. “1만 명이 죽었다는 걸 ‘1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1만 건 일어났다.’가 맞다.” p.56(“5,000명이 죽었다는 걸 ‘5,000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000건 일어났다’가 맞다.” <죽기 위해 사는 법>, 기타노 다케시, 씨네21북스, 2009 p.62) 절대적인 남성성의 세계, 전쟁 미화의 세계, 무적 해병의 짜빈동 신화는 꽝탄 언덕을 수놓았을 수많은 비명들과 함께 다시 기록돼야 한다. 싸움 실력을 자랑하기 앞서 싸움의 의미부터 묻는 보편적 이성의 눈으로. p.204 “그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실제로는 50년) 지났는데 한국 정부는 우리한테 안부를 묻거나 인사를 하지 않았어.” -찐티티엣 p.327 정부 대 정부의 사과 표명은 논외로 치더라도,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도의적 위로의 인사를 전하라는 이야기다. 할머니는 열사(국가유공자) 가족들만 챙기는 베트남 정부에 관해서도 따끔하게 비판했다. p.328 제국주의 통치의 가해자로서 일본을 비판하기 전에 반드시 들어보아야 하는, 아프지만 직시해야 하는 하나의 역사적 거울이 되었다. p.732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스탈린 p.740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취재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나요?”라는 피해자의 냉소적인 물음에 저스트 윈틀이 “보다 많은 사람이 빈호아를 알게 되면 누군가는 빈호아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p.744 전쟁을 끝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입장에서 그 사실들을 해석해주는 것이다. p.751 비스마르크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어쩌면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잡아당기는 비상 브레이크일 것이다. -발터 벤야민 p.756 한국 남성의 한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침략당하거나 보호당하거나 저항하거나, 언제나 이런 상태였다. 한번도 남을 침략해본 적이 없다. 한국인들 중 일부는 이를 치욕으로 여긴다. 침략하지 않으면, 침략당한다고 생각한다. 박정희는 <국가와 혁명과 나>(1963)에서 이렇게 썼다.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는 이런 민족사는 불태워 없애버려야 한다.” 베트남전 참가는 말할 것도 없고,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사회적 무관심과 합의(사과)가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해본적 없는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열망을 이해하지 않고는 이 망탈리테는 남들이 보기엔 망상이지만 당사자들에겐 꿈(p.758)이다. 휴머니즘이나 보편적 인권 개념만으로는 베트남에서 일어난 일들을 해석할 수 없다. 사유의 수원이 얕은 것이다. p.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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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2월 9일 울진, 삼척에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아홉 살 이승복 군의 입을 찢어 죽였다.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을 지닌 기억이다. 1968년 2월 12일 퐁니, 퐁녓에 '진입'한 한국군 해병대원들이 다섯 살 응우옌득쯔엉 군의 입에 총을 쏘아 죽였다. 한국인들은 잘 모른다. 배제된 기억이다." 책의 앞부분에 서술된 위 내용을 서점에서 보고 아, 이 책은 무조건 사야 돼 해서 구입했다. 기존에 출간되었었다가 내용을 증강해서 개정증보판으로 나왔다는 소식에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냥 그렇게 묻혀 절판이라도 되었으면 너무 아까울 책이라서. 인용한 위 내용에서 진입이라는 단어에는 내가 작은 따옴표를 붙였다. 저 진입이라는 단어 역시 사실은 북한군의 그것과 같이 '침투'라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다른 내용이지만 나는 어렸을 적부터 역사에서 배우는 단어 선택에 고개가 갸우뚱 해질 때가 더러 있었다. 이를테면 일본놈들이 우리 땅 쳐들어온 곳은 '침략'인데 왜 광개토대왕이 만주벌판 달리는 건 '정벌'인가 하는. 이런 말 하면 소위 토착왜구를 비롯해 온갖 돌팔매질이 말팔매질로 날아 들어오겠지만 그런 관점에 지금도 변함은 없다. 다시 책과 관련된 내용으로 돌아와서 나는 그래서도 아무튼 한국인이라면 베트남인들에게 일종의 부채 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건 일본인들이 우리 한국인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하는 마음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고, 하여 같은 논리로 나는 오늘날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가 특히 국제적으로 보다 떳떳할 수 있으려면 베트남에 저질렀던 같은 만행에 대해 그들에게 진정어린 사과 및 배상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책에서도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다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0년 10월 베를린 미테구 등 제 3국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위해 로비를 한 일본 정부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위령비 비문 사건은 주민들 입장에서 하미의 정신마저 말살하려는 '3차 학살'이었다" 언급된 위령비 비문 사건이 무언지까지 쓰다 보면 길어질 것이고 굳이 이 리뷰에서 그렇게까지 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치겠지만, 한 마디로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로 정리하자면 우리는 소위 상속은 받되 부채는 지지 않으련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상속을 받겠다면 마땅히 부채까지 떠안아야 할진대 우리는 우리에게 만행을 저지른 저 나쁜 놈들에게 받아야 할 것들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손으로 저질렀던 나쁜 일들에 대해서도 응당 물어줄 것들이 적지도 또 작지도 않다. 아무쪼록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가 풀어야 할 실타래들을 그 생각들로 매만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