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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혁명을 꿈꿉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옳은 신념을 주장하며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칩니다. 그러나 혁명의 열정이 식은 뒤에는 일상이 찾아옵니다. 신념에 찬 영웅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그 신념 자체가 사라집니다. 혁명의 추종자들은 일단 지배층이 되고 나면 아주 쉽게 자리를 탐하는 속물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실망한 국민들에게 심판을 받고 쓸쓸히 정치판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역사 속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허탈한 풍경입니다. 이렇게 정치란 순수한 신념과 열정만 가지고는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은 정치와 정치가의 의미 그리고 정치가가 갖추어야 하는 자질 등을 밝힌 20세기 정치학의 최고 명저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Politik als Beruf입니다. 그런데 Beruf는 직업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소명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국내 번역서를 보면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읽은 박상훈 선생이 옮기시고 최장집 교수님이 해제를 단 번역서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라고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책이 본래 "직업 정치가가 된다는 것이 갖는 실재적 의미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번역이 더 적합하다는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막스베버는 1864년 독일 튀링겐의 에르부르트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는데, 이후에는 역사학 법학 경제학 정치학을 포함하는 사회과학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친 위대한 학자로 이름을 날립니다. 특히 현대 사회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1919년 1월에는 바이마르 공화국 최초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지만, 낙선합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부인 마리안네 베버는 함께 출마하여 바덴주 의원으로 당선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학문적으로 가장 정점에 있던 1920년, 베버는 그의 나이 56세에 유행성 독감에 걸려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그가 죽기 전 1년 전인 1919년 뮌헨 대학의 강의를 책으로 편 것입니다.이 강의는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국왕의 망명, 혁명과 소요와 반란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와중에,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열정을 가진 진보적 학생운동 단체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된 짧은 책입니다. 제1부는 국가와 정치, 그리고 정치인이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국가는 그것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정의될 수는 없으며, 그것이 활용하는 독특한 수단을 기준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조직과는 달리 국가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물리적 폭력에 기반한 권력, 줄여서 강권력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타인을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움직이기에 다치게 하거나 죽이겠다는 폭력의 위협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과거에는 어떠한 집단이나 개인도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는 국가 이외의 다른 모든 조직체나 개인은 오로지 국가가 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강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국가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국가란 특정한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한 유일한 인간 공동체라는 개념정의입니다. 물론 날것 그대로의 폭력만 가지고는 부족하며, 국민이 내키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게 만드는 정당성이 필요합니다. 폭력이 정당성과 합쳐지면 이것을 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는 권력행사에 관여하고 배분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노력을 뜻합니다. 제2장은 정당에 대하여 다룹니다. 막스베버는 국민 대다수가 선거권을 갖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데마고그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데마고그는 우리말 번역으로 선동가이지만, 언제나 부정적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 개개인이 처음부터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대표자들이 대변만 하면 된다는 식의 전통적 대의제 이론은 사실 현실과 다릅니다. 누군가가 정치적 의견을 만들고 국민들은 그것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이렇게 국민이 선택할 정치적 의견을 만드는 사람을 데마고그라고 할 수 있고, 이들은 민주주의에서 나름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데마고그로서 정치적 지도자는 자신이 가진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지지자를 모으고, 그들에게 정치에 참여할 명분과 심리적 만족감을 주며, 나아가 그들에게 물질적 보상을 줍니다. 특히 자신을 추종할 직업적 정치인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보상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결국 일자리 그러니까 관직을 나누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확고한 지지자 집단이 있어야 선거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지도자와 지지자가 정치를 하는 공간이 바로 정당입니다. 특히 미국식 정당 시스템이 적합할 것이라는 베버의 선호가 여기저기 드러납니다. 미국의 정당은 별볼일 없지만 수완이 뛰어난 보스가 대체로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카리스마적 능력을 발휘하여 표를 모으고 후보자를 물색하는 시스템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당을 머신, 그러니까 선거를 승리하기 위한 기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3장의 제목은 정치가입니다. 여기에서는 오늘날의 여건에서 정치가가 갖추어야 하는 자질을 이야기합니다. 일단 정치는 순수한 윤리와 도덕의 영역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될 영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물리적 폭력을 다루는 것이 정치이므로, 정치가 순수한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막스 베버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각종 종교에서도 부분적으로 전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에 관한 이야기가 말미를 장식합니다. 신념윤리는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위해 항의하는 대의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의미합니다. 신념윤리는 실현 가능성이 없어도 끝없이 추구하는 것이며, 때로는 목적 달성을 위해 일정한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보는 태도입니다. 책임윤리는 선의를 내세워 변명하지 않고 목표한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입니다.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험한 수단을 택해야 할 때도 있음을 인정하고,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평균적 결함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대충 합목적성 또는 융통성과 비슷한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치가는 책임윤리가 있어야 합니다. 정치 자체가 폭력이며 지고지순한 선이 아니기 때문에 신념윤리만 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념과 열정이 없는 것도 문제이며, 이것은 결국 맹목적인 권력정치가만을 만드는 길이 됩니다. 어렵지만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는 동시에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균형적 현실감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론에서 막스 베버는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현실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으리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고 합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책을 마무리 합니다. 어떠셨습니까? 국가와 정치와 정당과 정치가에 대하여 어떠한 미사여구도, 거리낌도 없이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 리얼리스트 막스 베버의 면모가 느껴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100년전 책이지만 우리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시대를 불문하고 현실정치인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책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정치적 주제를 이야기할 때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는 식의 근거가 박약한 이상론만 주고 받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의 문제는 음침한 구석으로 미뤄둡니다. 그 사이 음침한 구석에는 곰팡이와 세균이 더더욱 득시글거리게 됩니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또 정치인들에게 고등학교 교과서 속의 정치가 아니라 현실의 정치를 똑바로 바라보고, 완벽하지는 않아도 현실의 여건에 맞는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으라고 조언하는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 언제고 꼭 한 번 읽으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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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으로서의 정치 서론 무엇에 대해 말하려 하나 1장. 국가 2. 권위: 지배의 정당화 3. 행정: 지배의 조직화 ▶관료 - 정치인이 자신의 신념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면, 관료는 책임 그자체를 신념으로 삼아, 자신을 절제하며 주어진 과업을 성실히 수행해나갈 줄 알아야 한다. ▶언론인(저널리스트) - 숱한 유혹과 압력 안에 있어야 하는 직업이다. 언론인으로서 소명을 다하려면 강인한 내적 균형감각을 가진 인물이어야만 한다.
2. 지도자와 머신이 주도하는 정당 체제 3. 영국의 정당 체제: 코커스 시스템 → 보스가 중심이 된 머신을 통해 운영되는 정당 체제가 코커스 시스템인듯? 의원들은 봉급을 받는 보스의 추종자. "대중의 정서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에 기초한 독재"
5. 독일의 정당 체제: 관료 지배 - 그들에겐 영혼이 없다.
"만약에 무언가 비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이 옳기' 위한 수단으로 '윤리의 문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 어떤 윤리론이 있기에 애정, 사업, 가족, 배우자, 경쟁자, 친구 등등의 모두애게 적용할 수 있는 동인한 내용의 계율을 확립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윤리는 현실 속에서 결과가 어떠하던 상관하지 않는다. 윤리는 신념을 이야기할 뿐 책임을 지진 않는다. 3.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함께할 수 있다. 책임이 없는 신념은 무자비하고, 신념이 없는 책임은 어리석다. 결론. 비관적 인간 현실 속의 정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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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고 하기엔 쪼끔 그럴 수도 있지만 또 아니라고 하기에도 더 그럴 거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해 새해에는 역시 또 고전을 읽어주는 그런 미풍양속을 이어가야지 않나 싶어 다시금 들춰본 책. 그렇게 다시금 읽어 보면서 한줄소감에도 밝혔듯 번역에 대해서도 새삼 느끼는 바가 있었다. 이를테면 제목이기도 한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그렇다. 정치야 그렇다 하더라도 '소명'이라는 단어가 낯설 수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독일어 Beruf는 직업(profession)과 소명(vocation)이라는 의미를 같이 갖고 있다. 그간 한국어 번역본은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제목을 채택해 왔는데 이에 반해 영어권에서는 Politics as a Vocation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 이 책도 그렇게 했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미국만 하더라도 자신의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 책 덕분이라고 하기엔 지나침이 있겠으나 분명 영향은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올 한해는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서로 그만 으르렁대고 정치인으로서 본인의 소명이 무엇일지 새삼스럽게라도 인식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