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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특정 이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글들은 대체로 피하는 편이다.
여기 이 시집이 시인의 끝이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이 발문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었다.
시들을 읽기 전에 차례에서 시들의 제목을 먼저 훑었다. 제목들만 봐도 대충은 어떤 내용의 시들이 담겨 있을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옥, 엥겔스, 항소이유서, 아우슈비츠, 고무신, 노란 넥타이, 동백꽃, 추모, 유배지, 국가기밀 등이 눈에 띄었다.
이 시집의 첫 시는 「지옥의 묵시록」. 첫 시에서는 발터 벤야민과 니체를 호명한다. 그들은 울고 있다. 시인은 그들을 호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저렇게 표면이 심연인 듯 울어본 적이 없었다. 시집의 첫 시가 서시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이 시집의 성격은 이렇게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이문재 시인의 발문을 이해할 수 있었고,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한나 아렌트가 사용했던 '악의 평범성'이란 이 용어는 조금 과장하자면 이젠 삼척동자들도 다 알만큼 너무 흔한 말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사실 한나 아렌트는 독일인들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비난을 받고 욕을 먹었다. 그것도 아주 엄청. 시달릴 정도로.
그런 부분에 대한 냉철한 인식, 한나 아렌트가 그랬던 것처럼 학자와 같은 냉정한 이성과 객관성으로 눈앞의 사건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요즘 진보연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 역시 그런 부분이다.
그러나 시들을 읽다 보면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어 진다. 이산하라는 시인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이라도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다 보면 그의 전 생애를 알 수 있게 되는데, 20대에 쓴 시로 옥고를 치른 시인은(그 때 쓴 그의 시들이 워낙 과격(?)해서 진보쪽 문인들도 구명할 엄두를 못 냈단다. 그때 그를 구명하기 위해 애쓴 인물이 바로 수전 손택이라고.) 평생 '극좌'로 세상에서 유배되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많은 생각들이 부유한 채 이 시집을 읽었다. 우리가 통과한 한 시대에 조문하는 마음이기도 했던 것 같다. 시인은 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데, 그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그러했다는 의미였으리라.
시인이여, 건필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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