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이 되어 내가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배울 것들이 남아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 오랜 세월, 숱한 경험 뒤에도 여전히 변할 수 있는, 놀랄 수 있는, 그리고 삶이 나를 뜻밖의 곳으로 인도할 여지를 남겨둬야 하다니. 말하자면 석 달 동안 걸을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신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상황에 대처해나가는지, 그리고 그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쓸모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나가는지. 이미 그들이 충분히 쓸모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p.175)
인간의 기대수명을 80으로 본다면 마흔은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나이가 된다. 그래서인지 마흔이란 나이는 누구에게나 제법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40대의 나이가 된 자신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구상했던 삶의 목표를 이루었으나 그 헛헛함에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 육아와 집안일에 치여 나이도 잊은 채 하루하루를 분주히 살아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마흔은 삶의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일 수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마흔의 나이에 바라보는 자신의 꿈, 가족, 우정, 사랑, 자아, 일, 결혼, 아름다움, 시간의 흐름 등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는 책을 읽는 독자에 따라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현재일 수도 있고, '그래, 그랬었지.' 하면서 추억할 수 있는 자신의 과거일 수도 있겠다.
"삶의 이 시점은 마치 긴 날숨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너무 지치고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 삶에 그 어느 때보다도 할 일이 많은 것 같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십 대에 접어든 지금,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여전히 걱정이고 절대 다시 오지 않을 날들에 슬픔을 느낄지라도 우리는 지금 이대로를 감사하게 여길 거라 생각한다." (p.16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인생의 반환점인 사십 대를 어떻게 겪고 있는지, 그들의 인생관은 어떻게 달라졌으며, 사랑과 우정, 가족을 바라보는 생각이나 관점은 어떤 변화를 보여왔는지, 시간의 대가로 얻은 지혜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상실과 죽음을 조금씩 체감하면서 다가올 미래는 또 어떻게 준비하고 맞을 것인지 등 각양각색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각각의 여성 작가들이 내세운 소제목만 보아도 재미있다. '사는 건 똑같은데 집세만 올랐지'를 쓴 메건 디움, '우리가 외모를 논할 때 나누는 이야기들'을 쓴 슬론 크로슬리, '나는 서른아홉에 배우가 됐다'를 쓴 질 카그맨,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람들'의 줄리 클램,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의 수진 림 등 각자가 하고픈 말은 다 다르지만 길다면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그들이 깨우쳤던 많은 이야기들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뭉클하게 만든다.
"이만큼 살아보니 알겠다. 사람들이 어른으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하는 이유는 진짜 힘이 들기 때문이다. 나이를 몇 살 먹었건 간에 정말 엄청난 일을 당하면 누군가가 달려와 나를 도와주길 바라게 된다." (p.204)
오늘 오전에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치매 검사를 받을 엄마를 대학병원으로 모셔 가기 위해 휴가를 내고 시골에 와 있다는 전화였다. 코로나로 인해 일체의 외부 활동이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요즘 들어 부쩍 이상한 말을 한다는 거였다. 오전에 통화를 했었는데 그 사실을 깜빡하고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거는 등 심상치 않다는 게 친구의 설명이었다. 나 역시 요양병원에 모신 엄마의 전화를 시도 때도 없이 받고 있는지라 자식 된 자의 불안감을 잘 알고 있었다. 동병상련의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의 전화에 괜스레 목이 메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불쌍해지는 거지." 했더니 친구 왈, "사는 게 고통이지." 하였다. 하루 종일 하늘이 어둡다. 비가 오려나보다. |
|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 가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라는 제목으로 예쁜 분홍색을 커버로 한 책. 서서히 거리가 봄꽃으로 가득차는 지금 읽기 딱 좋은 책이었어요.
나 역시 마흔을 지나 다른 나이대로- 믿어지지 않지만, 그렇다.-가는 시작에서, 나의 십년전을 겹쳐보며 읽었다. 다른 나라에 사는,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였지만, 한국에 사는 나와 교집합인 부분이 다분히 많았다. 그래서, 읽으며 마음에 드는 페이지마다 붙이는 포스트잇이 꽤 많아졌다.
지나가는 시간인 줄 알았던 이십 대, 사십이 넘어가면서, 그때 좀더 젋음, 그 나이를 즐기지 못함이 종종 아쉬웠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나 보다 하는 동질감이 느껴졌고, 마흔쯤 나도 주변 지인들을 나보다 어린 사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으로 구분하는, 정확한 나이보다 두리뭉술 넘어가는 내가 여기 있네 하며 공감이 생겼다.
삶을 내가 가고 싶은 파티처럼 대하고, 즐긴다! 이 발상, 너무 좋다! 내가 가고 싶은 파티같은 삶, 앞으로 이 말, 나의 모토로 삼겠다.
'나의 인생 적응기/케이트 볼릭' 편은 읽다가, 저자가 궁금해서 구글에 검색을 했다. 2011년, 당시의 변화하는 결혼 세태를 취재한 기획기사가 잡지 <애틀랜틱> 의 커버스토리가 되면서, '나 자신을 노출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는 저자, 그러면서도 '나는 지금도 타인들과 소통하길, 간절히 원한다.' 라며 글을 맺은 그녀, 그에 비해, 찾아본 잡지 커버는 너무나 멋있다!
자신이 마흔때 어땠더라, 현재의 삶속에서 돌아보며 친구와, 남편과, 자녀와, 부모와, 사회적 관계속에 놓인 스스로를 돌아보며 느낀바를 담담히 쓴 글들이,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시간의 흔적은 비슷하게 우리를 관통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 제목 그대로의 글은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글 없는 카툰을 보면서 이야기를 느끼게 했다. 영어권에 사는 마흔의 이야기, 그렇다면, 한국에 사는 그 다음 쉰의 이야기를 기획해보면 어떨까? 여기 15인의 여성 작가들과 비슷한 직업을 가진 우리의 이야기가 문득 읽고 싶다. 내가, 앞으로 갈 시간이라 안내받고 싶은 마음이라 그런듯하다.
<<소담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
총 열 다섯명의 저자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글을 엮었다. 그들은 모두 사십 언저리 나이 대의 여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글 뒤에 나오는 간략한 저자 소개 글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자신들의 이름으로 낸 저서들이 있고 유명 잡지의 편집자도 있으며 교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하는 말들에 다 무조건 공감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워낙 다양한 삶들이 소개되고 있으므로 그들 중에 단 한 사람의 입장에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많은 글들 중에서 프롤로그에 가장 공감했다. 우리 자신은 이십대와 별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 적어도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더 그러하다 - 실제의 우리 모습은 그때의 우리 모습과 전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시간을 멈춰놓지 않는 이상 우리는 점점 나이 들고 죽음으로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사를 자주 다닌 탓에 어렸을 때 친구들은 남아 있지 않다. 고등학교 때도 분명 누군가와는 친하게 지냈겠지만 대학에 오면서 그들과의 연락도 끊겼다.
가장 오래되고 친한 친구는 - 아무 이야기나 막 할 수 있는 그런- 대학때 만난 친구다. 처음부터 막 친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같은 과이긴 했지만 오티 때 사진을 보면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동아리도 아니었다. 서로의 관심사가 달랐기에 전혀 다른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랬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름 방학이 되기 전에 벌써 친해져 있었고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을 같이 해왔다. 그것이 이 책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 대의 내가 친구와 만난 방법이다.
분명 이 책의 저자들과 비슷한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제목과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해볼 건 다 해봤다니 그렁 말을 할 수 있는 그네들의 삶이 조금은 부럼다. 물론 나도 남들 못지 않게 안 해볼 경험까지 다 해봤지만 아직까지 못 해 본 것은 더 많고 나이 때문에 절대 할 수 없는 경험들도 있다. 그러니 절대 나는 제목과 같은 그런 배부른 소리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한들 어떠한가.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나이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 아니던가.
결혼을 했어도 안 했어도 남자친구나 남편이 있든지 없든지 아이의 유무와도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재정적 상황이나 직업적 경력과도 전혀 상관없이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을 찾아간다는 것은 오직 나 자신과의 일이니 말이다. 주위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신을 찾고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야 다른 모든 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방법도 변할 것이고 가족들이 나에게 대하는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인생이 더 길어졌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처럼 안 해 본 것이 있다면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나 자신을 찾아서 나다움을 확립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
|
어릴 땐 나이를 빨리 먹고 싶었다. 빨리 어른이 되면 그렇게 어른이 된 지금은 조금 늦게 나이를 먹었으면 한다. 좀 더 시간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시간을 그냥 열심히 달려가고 있고 난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나이가 들어간다. 그래서 이젠 좀 덜 안달하고 덜 고민하고 살고 싶다. 해볼건 다했다고? 설마... 책 제목을 보고 고민을 많이 했다.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는데 해보고 싶은건 여전히 많아서... 그런데 왜 저런 제목을 달았을까? 그렇게 책 속에 있는 그녀들이 하는 말을 들어봤다. 40은 아주 먼 이야기같았다. 아버지도 삼촌도... 너무 멀리 보였기 때문에... 30대가 되면서 그건 멀지 않은 일이란 것을 알게 되고, 나이들어 보이는 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녀들은 40대가 되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안정적인 위치에 올랐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어릴적 꿈을 다 이룬거 같진 않다. 그리고 그녀들도 여전히 불안정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불만인 부분도 있고 포기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어릴 때처럼 너무 안달내지도 그렇다고 고민에만 빠져있지도 않는다. 우린 요즘 그런 말을 자주 한다. 세상의 모든건 올라... 월급빼고... 책 속에선 집세만 오른단다. 혹시 외국에선 저렇게 말하는걸까? 헌데 오르기만 한다고 슬퍼하고 내려간다고 좌절하기엔 아직도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인정할건 인정하고 다시 노력할건 노력하고... 그리고 이룬 것에 대해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래서 제대로 남은 인생을 볼 수 있고 살아갈 수 있게 또 준비를 해야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있다. 그리고 잘못했던 것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된다. 중년으로 간다는게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좌절하고만 있는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노년에 대한 미안함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 당당하게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살 수 있다고 소리내야하지 않을까?
그러기 전에 해보고 싶은건 시작하는걸로~
해볼거 다 못해 봤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지금 현재가 나에겐 가장 젊은 때라고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아. 순간 뜨끔했다. 해볼거 다 못해봤으니까 이제 니가 해보고 싶은거 해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순간 울컥했다. 그래 이제라도 해보자하고... 그럼 우리 함께 해보는거 어떨까?
*소담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 그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언젠가 나도 40대가 되겠지?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나이를 잊은 채 아직 내가 열일곱 살인 듯, 스무 살인 듯한. 특히 친구들을 만날 때면, 지금의 나이를 어느 순간 잊어먹게 된다. 열아홉 때까지는 안 그랬는데 스무 살이 딱 되고나서는 브레이크 없는 시간이 흐르는 듯 했다. 지금의 나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뭐랄까,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아쉬운 마음에서 나오는 일종의 투정이랄까. 열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풀어낸 마흔의 이야기를 접해보니 '멋진 마흔'을 마주하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 같다.
저자, 린지 미드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영어학 학사를,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수료했으며 다수의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다. 그 외 열 네명의 저자들이 있다.
소울메이트, 옷으로 쓰는 우리의 연대기 _캐서린 뉴먼
저자, 캐서린 뉴먼은 소설가로 월간지를 비롯해 「뉴욕타임즈」, 「오프라 매거진」, 「보스턴 글로브」 등 여러 간행물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1972년 나는 청 나팔바지, 그리고 모자에 인조털이 달린 물려받은 파카를 입고 있고, 내 친구는 빨간색과 흰색 체크무늬 바지에, 내가 엄청 탐내는 빨간색 고급 코트를 입고 있다.
1975년 우린 가장자리에 술이 달린 스카프에 샤워커튼 고리를 주렁주렁 꿰매 달아 머리에 두르고, 분홍색 립스틱을 발랐다.
1978년 우리는 얼굴에 계란을 바르고 있다. 아니, 흰자만 바른 것 같다. …… 우리는 '고래를 구해요!'배지를 달고, 줄무늬 스니커즈를 신고, 본벨 화장품에서 출시한 케이크 향, 그리고 소다 향 립밤을 줄에 달아 목에 달랑달랑 걸고 있다.
1980년 나는 무지개 멜빵을 하고, 무릎 보호대를 차고, 반짝거리는 빨간 바퀴가 달린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있다. 앞머리를 내리고 머리는 땋았다.
1981년 바르미츠바에 갈 때, 우린 아주 얇은 골지의 카키그린 코듀로이 바지에 하얀색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고, 통굽 샌들을 신었다.
1983년 우리는 발목에 지퍼가 달린 청바지를 입고 있다.
1986년 우리는 그룹 R.E.M.의 티셔츠를 입고 빈티지 라인석 액세서리를 하고 마돈나 스타일의 머리띠를 머리에 둘렀다.
1989년 사진 속에서 친구는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색 미니스커트, 그리고 예일 대학 스웨트 셔츠를 입고 있다.
1990년 우리는 리바이스 501 청바지를 입고, 정치적인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침묵=죽음) 아래에는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입고 있다.
1994년 뉴욕에 사는 친구는 닥터마틴 신발을 신고 유명한 브랜드의 짧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다. 캘리포티나에 사는 나는 싸구려 군화를 신고 중고 가게에서 산 짧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었다.
1996년 난 여전히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스에 살고 있다. …… 친구도 여전히 뉴욕이다. …… 우리는 서로의 삶을 부러워한다. 우리는 둘이 같은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2003년 친구는 내가 입던 검은색 임부복을 입었다. 그 옷은 친구의 첫 아이를 감싸고 있다.
2007년 우리는 참을성이 바닥나는 걸 느끼며 억지로 좋은 척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함께 호텔 방을 쓰고 있는데, 아기는 울어대고 잠이 깬 큰애들은 기분이 안 좋고, 우리는 서로 '저런 건 참 저렇게 안 하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나처럼 헐렁한 탱키니를 입고 있는 건, 이 나이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아줌마 뱃살을 감추기 위함이지 소변 주머니나 항암 치료를 위한 케모포트, 그리고 여러 차례 수수릉ㄹ 받고 생긴 수술 자국 같은 것을 숨기기 위함이 아니다.
2015년 2월 나는 사흘째 똑같은 회색 원피스 잠옷을 입고 있다. 친구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의료용 압박 스카팅을 신고, 폴리 재질이 섞인 환자복에 정맥 주사를 꽂고 있다.
2015년 6월 "아무 것도 갖고 싶지 않아." 모두가 차례로 말한다. 아마도 죽은 사람의 옷이라는 게 영 기분이 이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전부 다 갖고 싶다.
이렇게 보면 '일기'라는 것은 단순히 기록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치는 단위로 환산할 수 없다고 자부한다. 무엇을 입고 다녔는지에 대한 짤막한 일기에 불과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괜스레 서글픔이 몰려오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나의 스타일을 직,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옷'이다. 옷 입는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의 평소 성격이나 취향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저자의 일기를 보면 성격 외에 환경 또한 스타일의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로서, 코미디언 박나래님을 보면 굉장히 패셔너블하다. 그녀의 밝고 활기찬 에너지가 옷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반면에 그 옷을 내가 걸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물론, 밝고 웃음도 많다. 그러나 박나래님의 활기찬 성격의 턱 끝에도 못 미치는 나는 평소 깔끔하고 단아하게 입는 편이다. 외출할 때 열에 아홉은 거의 정장식으로 입고 아주 가끔씩 캐쥬얼하게도 입지만 대부분은 블라우스, 치마, 슬랙스 혹은 원피스가 전부이다. 좀 웃길 수도 있긴한데 집에 있을 때도 깔끔하고 예쁜(?) 홈웨어를 입고 있는 편이다. 엄마의 앨범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닮은 것 같으면서도 살짝 안 닮은 듯한. 엄마도 내 나이 때에 대부분 입었었는데 프릴이 있는 예쁜 원피스 혹은 깔끔하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정작식 원피스가 대부분이었다. 여기까지 엄마를 꼭 닮긴 했는데 90년대의 도전적인, 패셔너블한 옷을 걸친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마주해 볼 때면 내가 절대 소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아, 그 부분은 아마 둘째 동생이 엄마를 닮은 듯 하다.) 극중 저자의 마지막 일기를 보자. 저자는 친구의 옷을 가져왔을까? 아님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녀는 친구의 줄무늬 튜닉을 입고 출근하며 잠자리에 들 때는 친구의 잠옷을 입는다. 다른 친구들이 행복하냐고 의아해하며 물을 때면 그녀는 행복하다고 답한다. 농담을 잘하는 다정한 그녀의 십대 딸이 "절친이 난소암으로 죽고, 내게 남은 건 이따위 티셔츠뿐."이라는 글씨를 찍어주겠다고 하는데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만 남긴 것이 아니다. 친구는 자신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사람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누군가와의 영원한 이별을 몇 번이고 맞게 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다가올 40대에도 누군가와 이별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몇 주 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마침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해주셨다. (선생님은 누가 봐도 30대 같은 40대의 예쁜 선생님이다.) 살아보니 인간관계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물론 넓은 인맥을 가지는 것이 능력 중 하나이니 어떻게든 다 챙겨주려고 하지만 내가 준 마음을 돌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상처로 답하는 이들도 분명히 많다고. 꾸려진 가정 때문에 혹은 바쁜 일 때문에 자주 연락하지 못해도 끝까지 남는 친구는 분명히 있다고. 그들을 하나라도 더 챙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이다.
꼭 다가오는 40대 혹은 40대가 그 대상은 아니다. 그저 살아오는 이야기가 한 책에 묶여 있어 '인생'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된다. 언니, 오빠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여자 나이, 서른은 이제 아이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인생에서의 시작은 20대가 아닌, 이제는 30대, 조금 늦어지면 40대가 될 수 있으니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덧붙여준다. 마흔이라는 나이의 기점을 맞으며 가족, 친구, 결혼, 일과 꿈 그리고 사랑과 우정을 가득 담은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한숨 쉴 겨를 없이 나는 내일도 더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
|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책은 열 다섯명의 미국 여성작가들이 말하는 마흔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흔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글을 쓴 작가들은 실제로는 마흔을 앞두거나 마흔 후반, 오십대가 지나기도 하였다. 작가들 대부분은 뉴욕, 프린스턴, 하버드, 예일, 노스캐롤라이나 등의 대학교ㆍ대학원을 나와 <뉴욕타임즈>, <애틀랜틱>, <버몬트 퍼블릭라디오> 등의 최고의 매거진에 글을 기고하거나 편집자로 일하였고, 본인들의 책을 한 권 이상을 낸 소위 엘리트 여성들이다. 그녀들이 말하는 마흔은 뭔가 특별하고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런 걱정을 한 게 성급한 결론을 내린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책은 열 다섯명의 작가들이 쓴 자전적 성향을 띤 글들이 대부분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만 있는 일러스트인 것도 있고 '시'로 마흔을 표현한 것도 있었다. 각 작가의 개성과 성향이 나타나서 글 읽는데 지루함없이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많은 세월 글쓰기를 업으로 하며 지낸 베테랑들이라 이야기 하나 하나 잘 읽혀졌고 "맞아 맞아. 내가 그런 마음인데!" 하며 공감이 가고, 그래서 더 가슴에 딱 꽂히는 말들 가득이였다. 코로나 사태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고 24시간 풀 가동 가정보육을 하고 있는 나에겐 책 한 권 읽는게 매우 사치라 느껴지곤 해서 책을 보는건 엄두도 내질 못했었다. 하지만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는 15인의 작가들의 글이 많게는 삼 십 여장, 적게는 열 장도 채 되지 않는 분량들에 서로 이어지는 글들이 아니라 충분히 집안일과 아이를 챙기면서도 책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책을 읽으며 느낀게 있다면 각기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면서 나이에 따라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비슷하구나!' 였던 것 같다.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아이를 낳았거나 낳지 않았거나 일을 하고 있거나 하지 않거나 등등,.... .. 각자 살아가는 방식과 능력은 다를 수 있어도 글들 속에서 엿보이는 작가들의 고민들과 삶은 어느 정도 지금의 내모습과 겹쳐져 더 공감하며 집중하게 되었던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녀들의 크고 작은 고민들과 생각들은 요즘 나의 고민들과 많이도 비슷했다. 아내로써의 나에 대한 고민, 자녀의 미래, 취미 활동의 부재, 운동에 대한 필요성, 건강에 대한 걱정, 나이듬에 따른 여자로서의 감정, 앞으로 살아갈 노후까지..... 하나같이 현재의 내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아내로, 엄마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며 지내고 있지만, 어느새 나라는 존재를 잊고 지낸 느낌이 컸었다. 특히 마흔이 지나며 내 스스로에 대해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위축되고 우울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는 그녀들에게 얻는 조언들로 내 자신을 다독이게 되고, 뭔가 내 삶의 활력을 찾으려 노력하게끔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읽고나서 얻은 조언으로 인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 여자 나이 마흔~~ 마흔을 앞두고 있거나 마흔이거나 마흔이 지나고 있거나 한 여자들에겐 필독서로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나도 과거에 대해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지금까지 터득해낸 지혜를 이용해 삶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지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되는 마흔을 찬란하게 시작하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해볼건다해봤고이제나로삽니다 #메건다움외 #린지미드 #소담출판사 #김현수옮김 #여자나이마흔 #힐링에세이 #도서협찬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로 평가할 수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이나 내공, 생각의 변화 등은 개인들의 행동에도 주관이 되거나 또 다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도 명확하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우선에 두면서 관리해야 하는지, 자신의 커리어 관리나 삶에 대한 태도 및 자세, 혹은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나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안, 혹은 유리천장에 대한 단상이나 사회적 편견이나 사람들이 말하는 한계에 대해서도 함께 고려하며 인생의 방향성을 잡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외국에세이라는 특징을 무시할 순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나은 환경이나 조건,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변화를 추구할 수 있고 여성이라는 이름에 상관없이 자신의 역량이나 능력을 표출할 수 있는 사회가 조성되어 있는 것도 비교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빠르게 변하고 있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나 예전에 비해 나아진 처우나 대우 등으로 인해 성별은 무의미하며 더 이상의 남녀차별이나 여성이라고 해서 무시당하는 그런 조건 등은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주는 명확한 조언과 가치를 통해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교훈적 메시지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또한 나이를 먹었다는 의미는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기준으로 볼 땐, 많은 제약과 스스로에 대해 한계점만 부각하는 요소가 되지만 반대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정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자기관리나 판단, 행동 등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삶이나 인생 설계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중요시 되는 역량이나 구체적인 방법론, 결국에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부분일 수 있고, 다양한 인간관계에 적용해도 나를 위하거나 보호하는 처세의 방법론이 무엇인지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성찰의 메시지, 또 다른 배움의 의미와 과정, 아직까지 많이 남은 시간적인 부분을 통해 삶의 전환점이 되는 시기인 마흔이라는 무게감, 그리고 책임감, 이를 너무 양극단의 논리로 바라보지 말고 최대한 유연성과 개방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나를 돌아보는 긍정적인 과정과 결과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판단한다면 이 책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배우게 될 것이다. 여전히 여성들은 불합리한 처우나 조건, 불공평, 차별의 문제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바꿀 수 있는 것도 그들 스스로이며, 사회적 관점에서도 그들을 마주하며 어떤 점에 관심을 갖고 공감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의미와 사례를 접하며 배워 보는 계기로 활용해 보자.
|
|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 책은 특별히 여성들에게 소중한 도서가 될 것이다. 마흔인 여성들 뿐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여성들이 읽기에도 공감하고 독서하기 유익한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옛날엔 사십대는 사실 불혹의 나이라고 불렸다. 그만큼 인생을 다 산 사람이 보여주는 무게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오래전엔 사람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40이라는 숫자는 많은 삶을 산 존재였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지혜들과 삶의 인생길위에 젊은 사람들에게 말해줄 무언가들이 많았다.
지금은 사람은 변하지 않았지만 수명이 늘었고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나이 마흔이면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벌고 위치 또한 사람들이 주로 말하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다는 선입견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 다시 말해 그 만큼 피곤해지고 부담감이 높은 나이대라고 할 수 있다.
한번 사는 인생 뭐가 그리 중요한지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 그 사람의 경제와 성공만을 평가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때가 있다. 무엇보다 자기를 주도하며 인생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나 답게 인생을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남성들도 알아야 하기에 나는 이 책은 여성도 좋지만 남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도 세 명의 누님들이 계시지만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자신이 생각할 때 부정하고 싶은 것들과 나이를 먹어가면서 밀려오는 공허함들, 여자로서 살아가고 싶은 꿈들속에서 좌절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까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을 듣곤 한다.
저자들은 대부분 작가이자 다른 직업을 가진 마흔의 여성들이다. 때문에 그녀들의 이야기는 서로 비슷하지만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스스로의 사연들과 꿈과 인생들이 얽혀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내가 스무살때의 가족과 지금의 가족을 생각하고 대하는 건 달라져 있다. 지나간 기억들과 추억들이 그녀들의 마음속에서 드러나오며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그녀들의 우정과 빠질수 없는 사랑이야기까지 여성으로 살면서 나의 자아와 감정들 내가 하고 있는 일들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 모두가 그녀들의 숨소리안에 머물며 변화되고 후회라는 단어가 밀려와 괴롭히는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십대 여성들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책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십대들뿐 아니라 모든 여성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춘기 시절에는 빨리 이십대가 와서 나에 젊음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리 바라던 이십대가 와도 자신에 불안전함에 불암감에 자유로움이라기보다는 삶에 불안감이 높아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이리도 빨리 지나갈 줄 모르고 얼른 나이 먹고 싶다고 말했던 그 시절에 나를 반성하게 되네요. 지금에 내 나이 사십대에 머물게 되니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잠시 머물며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생각만이 들게 되네요. 사십 대, 나에게 닥치고 보니 이제야 실감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로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책으로 만나보는 지난 시간들 지금에 내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있는 것인지 스스로 만나보며 질문이 많아지게 된답니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꿈도 많고 욕심도 많았던 나에게 지금에 내 모습은 어떻게 비칠지 궁금해지는데, 아직도 만족을 모르고 욕심을 내고만 있는 내 모습을 엿보게 되면서 책 속에 이야기는 나에게 질문을 만들어 주네요. 사십대에 나는 인생의 절반에 접어들면서 가야 할 길도 정해지게 되고,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에 삶을 살고 있는지 그토록 바라던 꿈은 이루게 되었는지 확인하게 된답니다. 살아가면서 인생에 정답은 따로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원하는 것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결과는 노력한 만큼 오는 것도 있지만, 너무 과학 욕심은 자꾸 바뀌어가는 답을 주었기에 조금은 양보와 타협이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말하게 되네요. 나만을 위한 삶을 욕심내다가 이제는 가족을 위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그 행복에 만족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답니다. 아주 가끔은 나도 나만에 19호실을 찾고 싶지만, 아직은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면서 작은 내 일상에 만족하면서 작은 일탈들을 짜릿해 하면서 지금 이 시간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답니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움직이는 나를 힘들어하면서도 사십대에 나를 반기고, 누리면서 아직도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보면서 혈기 넘친 나에게 감사하게 되네요. 삼십대에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린 것 같은데, 그때는 내가 사십대에 어떤 삶을 살아갈까 고민도 없이 달리기만 바빴고, 나만을 생각했던 시간에서 부모로 변화된 과정을 겪어가면서 두번 째 성장이 찾아오기도 한 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잘한 것이 있다면 뭘까? 질문해 주는 시간이 있다면, 부모가 되어 가족에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낄 수 있다는 점과, 사화에서 내 위치를 확인해볼때 이 순간이 아닐까 싶네요. 다양한 색깔에 순간들이 있지만, 나에게 영광과 행복을 주는 순가들이 있었기에 내 사십대도 빛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 전성기라 생각하면서 오늘도 행복하게 사회에서는 나만을 위한 삶과 시간을 집으로 돌아가서는 내 소중한 가족을 위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를 찾아보며, 나를 응원하면서 박수를 보내게 되네요. |
|
이 마흔이 되면 불혹이라고 하던데 저도 그 때가 되면 더이상 흔들림 없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그것이 완전한 착각이라는 사실을 빠르게 깨달았답니다.
![]()
내 마음은 아직도 성장하고 성숙되지 못한 사춘기 시절 소녀 그대로인데 육체적 나이가 늙어버려 어쩔 수 없이 불혹의 고지를 넘긴 것이지 그만큼의 연륜을 갖추지 못했기에 그런가봐요.
![]()
문득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소위 지성과 깊은 사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마흔 불혹의 나이를 즐기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어서 가끔 유명인들의 회고록을 뒤져 보기도 했었죠.
![]()
소담출판사 신간도서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책은 저명한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 담고 있어서 매우 다채로운 불혹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답니다.
![]()
누구에게나 청춘은 무모하고 무척이나 자신만만한 것은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르나 점점 나이가 들고 세상을 자각하게 되면 저절로 움츠려들고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했죠.
![]()
물론 우리는 세월에 우리의 젊음을 바친 대가로 사십 대가 된 지금 우리들은 과거 어릴 때 고민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되었고 그것이 과연 충분한 보상이었는가는 의문입니다.
![]()
어찌 보면 해답을 몰라서 끝없이 고민했던 시간들이 더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고 열린 결말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비로소 깨닫게 된 계기가 의외로 정답을 발견해버린 이후였음을 자각했던 것 같아요.
![]()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마흔을 넘었다고 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나는 아무 걱정도 없고 행복하고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결코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 너무 늦었다는 점이 안타까웠죠.
![]()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고 소위 역량있는 여성 작가들인 그녀들도 저와 똑같이 느끼며 불혹에 직면했고 지금 이 나이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만 있음을 재차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
매우 평범한 내 삶이 잘못된 것도 실망스러운 일도 아니며 커리어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던 그녀들도 똑같은 심리적 카오스 상태로 마흔이라는 불혹의 나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극복하고 있음에 위로 받았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