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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가 10년 동안의 간담회, 연설회, 세미나 등에서 청중에게 받은 질문에 답한 내용들 중, 촘스키 사상의 고갱이와 세상을 읽는 통찰의 큰 줄기를 가려 뽑아 엮은 책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는 총 3권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법에 관하여’란 부제를 가지고 있는 1권에 이어, 2권은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관하여’란 부제로 5장에서 7장까지를 다루고 있다. 1권과 마찬가지로 책에 나와 있는 여러 내용 중에서 부제에 맞는 내용만을 골라서 정리해본다.
이 책에 뽑아 놓은 촘스키와 청중들의 질의응답은 20년도 훨씬 전에 있었던 강연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간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엄청나게 달려졌음에도 언론이나 권력 등 세상을 지배하는 것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은밀하게 혹은 더 뻔뻔하게 이어져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주로 미국의 모습에 대한 것이지만 지금의 세상에서 미국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어있다. 그래서 오래된 이 책을 읽음에도 마치 현재의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 했고,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 일게다.
먼저 촘스키는 왜곡된 전제를 바로잡아야 제국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곡된 전제로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사회주의가 패배했다는 것, 그리고 과거 소련은 줄곧 테러를 지원해왔지만 미국은 테러에 반대해왔다는 것을 꼽고 있다. 촘스키는 소련이 사회주의체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러시아혁명이후 사회주의가 도입되었지만 레닌이 권력을 잡고 맨 처음 한 일이 사회주의 요소를 다 걷어내는 것이었다며, 소련은 계획경제에 기반을 둔 전체주의체제였지 결코 사회주의체제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또한 무수한 테러집단을 뒤에서 사주하고 인권을 탄압하도록 원조를 해준 것은 미국이었다며, 이런 왜곡이 가능했던 것은 서방 엘리트들이 일구어낸 귀중한 프로파간다의 승리였다고 단언한다. 유엔에서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유엔결의를 멋대로 무시하는 유일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지만, 언론은 통제되고, 또는 알아서 보도해야할 것과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기에 미국인들은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미국의 공격을 받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에는 여러 사례가 나오지만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아이티의 쿠데타와 걸프전을 들 수 있다. 1990년 아이티에서 군부쿠데타가 일어나고 그런 군부쿠데타를 몰아낸 것은 치밀한 각본 하에 진행되었지만 미국인들과 미국의 영향 하에 있는 나라들은 미국이 아이티의 민족주의를 위해 쿠데타세력을 몰아냈다고 믿고 있다. 또 1991년 걸프전은 중동이 미국의 배타적인 세력권임을 선언함과 동시에 중동의 다른 국가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촘스키는 비밀 해제된 정부문서 혹은 연구자료 등을 통해 우리에게 미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모든 경제학자들이 분명히 알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의 규제를 받는 제도권의 경제학자라는 신분 때문에 언급하지 못하는 한 가지 사실은 ‘어느 나라 역사에서도 자유시장 원칙을 지켜서 경제발전을 이룬 경우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즉, 국가가 경제에 광범위하게 개입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경쟁력을 가지는 대표적인 분야로 농업과 첨단기술 산업을 드는 촘스키는, 이들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는 이유를 납세자가 사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윤이 발생하면 기업이 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본집약적인 미국 농업은 국가가 잉여농산물을 구매, 저장해주고 투입된 에너지에 보조금을 지급해주기 때문이며, 첨단기술 산업의 경우 연구개발이 펜타곤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자유시장이 자본주의 체제의 최고의 선(善)으로 각광받는 것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사회복지를 반대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과 외국의 빈민을 겨누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은 보호주의를 취하지만 외국에 대해서는 자유시장을 강요하는 것이 경제에서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지식인과 언론은 각기의 역할을 수행한다. 혹 체제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온갖 불이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가능하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또한 진정한 교육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제도권 내에서 학교가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은 학생들로 하여금 복종과 순응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 그래서 통제 가능한 시민으로 양성하는 것, 그것뿐이라고 한다. 경쟁은 그런 학생들을 통제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권력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러나 실제세상은 늘 우리 앞에 있고 우리가 약간의 눈가리개만 벗겨내면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건전한 상식에 입각하여 사실을 면밀히 살펴보면 된다는 것이다. 더하여 약간의 노력을 한다면 무엇이 사실인지, 그것이 언론기관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고 수정되는지를 알 수 있다고 촘스키는 강조한다. 또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투명하지 않은 어떤 사건의 틀을 만들어낼 때 심각하게 의심해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복잡한 이론이나 전제없이 간단히 설명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행한 강연이지만 촘스키가 파헤치는 제국주의 미국의 민낯은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가 이런 미국의 민낯을 보며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정치, 경제 어느 것을 살펴보아도 미국은 항상 상수로 존재한다. 촘스키는 자신의 다른 저작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에서 힘이 곧 정의인 시대, 우리는 어떤 프로파간다에도 흔들리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미래를 섣불리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더불어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비록 불의한 사회라 할지라도 상황은 개설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이나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지 싶다. 3권 ‘민중이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에 관하여’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촘스키는 어떤 말을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