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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대상을 온전하게 보려면 자기 관점의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편견에 흐려진 눈은 볼 수 있어도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 같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글쎄 딱히 무엇이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난 자신을 먼저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읽은 [철학자의 거울]은 단지 글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바로크 미술과 함께 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요즘 미술 관련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작품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데 이 책에서 철학과 관련된 작품을 보여주니 한 번 더 사색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책은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을까?
책은 먼저 '누더기 철학자'라는 주제로 시작한다. 철학자 하면 보통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그리스 철학자가 떠오른다. 그러니 누더기 철학자라는 단어가 생소했고 첫 사진으로 보여준 후세페 데 리베라의 '데모크리토스' 작품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철학자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남루한 모습으로 있는 데모크리토스 그런데 리베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화려함 대신 너절한 옷과 어둠에 젖은 분위기를 보여준다.왜 리베라는 이런 모습으로 철학자들을 그렸을까? 하지만, 리베라 외에도 누더기 철학자 그림은 17세기 유럽 예술가 애호가 사이에서 인기를 누렸다. 그건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한, 푸생의 작품은 철학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묻는 그림이었으며 <물 뜨는 사람이 있는 풍경>은 깨달음의 독특성을 보여준 사례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 철학자의 다양한 모습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해를 할 수 없다. 작품 속에 그려진 작은 사소한 것이라도 그 그림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인데, 마네의 <굴 옆의 걸인>에서 굴은 성욕과 식욕을 상징하는데 이 그림 속에 남자는 굴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쾌락적 삶에 비켜 서 있기에 그를 철학자 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시대는 변한다 산업혁명 이후 물질을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정직한 인간을 찾는 디오게네스를 그린 야콥 요르단스의 작품속에 여러 인간상이 들어있다. 시장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으로 시장 사람들은 디오게네스를 오히려 비웃고 있으며 그는 그럼에도 정직한 인간을 찾기 위해 등불을 들고 있다.
그리고 철학자가 있을 곳을 포착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달빛과 지는 해에 빛나는 철학자>는 맨발에 남루한 옷차림에 얼굴 또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인물보다 오히려 배경에 눈길에 더 끌리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무엇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해와 달이 뒤섞어져 어느 것이 시작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자는 상상의 향락, 타오로는 분노, 혁명의 유혹, 소비의 위안으로 하루를 보내는 곳이 철학자의 삶이 있다고 전달한다. 여기서, 문득 왜 철학자들은 대부분 남성인 것일까? 물론, 지금은 배움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나 과거엔 남성 위주로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또한, 저자는 작품 속에서 여성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유혹을 하는 욕망의 화신으로 이미지로 덧씌워졌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내 크산티페가 남편에게 물을 붓는 작품은 왠지 여성의 무지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17세기 네덜란드는 다른 유럽과 다르게 교양 여성이 많았다고 한다. 지성은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적 능력이 권력으로 인해 특권층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여기에 여성이 배제가 되었고 오로지 가정에 편입되면서 생존을 위한 일에 국한 되어버렸다. 이런 규범으로 그린 작품 <깨진 계란>이 대표적 그림인데 자세히 보면 한 쪽에 있는 아이가 눈치를 보면서 계란을 다시 붙이려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지만 아이답지 않는 눈치는 이미 깨진 계란은 순수성을 잃었고, 또는 아이는 의도치 않는 잉태를 보여주는 것인데 여하튼, 아이의 정체는(?)여성의 일탈이 불러온 파국임을 설명한다. 음, 그러나 반대로 지혜의 여신으로 여성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음을 알아두자.
철학자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대립되는 두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리이토스로 전자는 웃는 철학자 후자는 우는 철학자다. 동시대 사람이 아님에도 많은 작가들은 두 철학자를 대립하는 이미지를 많이 그렸다. 웃는 철학자여도 그 웃음은 즐거움이 아닌 비웃음에 가깝다. 마치 인생의 덧없음을 비웃는거 같다. 인생의 덧없음을 그림으로 나타낸 비웃방울을 타고 아슬하게 있는 꼬마의 모습은 천진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을 전달한다. 도대체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책 속에 소개된 작품을 보면서 고뇌하고 때로는 허무함을 보여주는 그림을 보니 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인생 또한 그렇지 않는가. 책을 덮고서도 한동안 기분이 현실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왠지 그림을 좀 더 깊이 있게 보고 싶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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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철학자의 거울』
이 책은
이 책 『철학자의 거울』은 <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을 매개로 하여 엮어내는 철학책이다.
저자는 유성애, <한양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문신저술상, 한국조각평론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관심사는 예술과 정치철학이다. 관심 분야에서 다양한 글쓰기를 모색 중이다. 15년째 공부모임을 이어오며 예술 관련 주제를 공부 중이다. 대학시절 미술가의 꿈을 품었으나, 지금은 읽고 쓰는 사람으로 예술과 함께한다. 예술의 중립성과 객관성이라는 허상을 뛰어넘어, 현실과 연계된 예술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최근에는 예술과 감정, 정치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일단 철학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근대 이후의 철학자들은 사진이란 문명의 이기 덕분에 그 얼굴을 알고 있지만, 예컨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 얼굴 어디 생각할 수나 있었나? 헌데 이 책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화가들이 그려 놓은 덕분이다.
데모크리토스, 헤라클레이토스, 디오게네스(41쪽), 아리스토텔레스 (37쪽), 소크라테스 (95쪽), 아스파시아(226쪽), 플라톤 (325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을 그린 화가들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 플루타르코스, 호라티우스의 역사서 등을 참고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223쪽)
디오니게스는 특히 많은 화가들이 즐겨 선택한 철학자다. 디오니게스는 여러 명의 화가들이 그렸는데,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이 책을 관통하는 시대는 바로크 시대다. 17세기의 예술인 바로크.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철학자의 거울』인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 속의 철학자는, 가난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철학과 철학자, 저자는 철학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철학자들이 추구한 철학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한다. 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은 철학의 모습들이다.
그림 몇 개 살펴보자.
<호메로스 두상을 보는 아리스토텔레스> (74쪽)
네델란드 화가 렘브란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렸다. 호메로스의 두상을 바라보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한다.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
18세기 신고전주의의 대표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살펴보자.
먼저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보자. 소크라테스가 있다. 그는 작품의 중앙에 침대에 앉아, 왼손을 들고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의 왼쪽에 서 있는 사람, 손에 잔을 들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마셔야 할 독이 든 잔이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그저 잔만 건네고 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무릎에 손을 얹고 있는 사람은 크리톤이다. 플라톤이 저술한 『크리톤』의 실제 인물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에게 탈옥과 망명을 권유한 사람이다. 그 과정이 『크리톤』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 그가 이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현장에 같이 있는 것이다.
그밖의 인물은? 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니, 그의 추종자 또는 제자로 짐작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그림에서 이상한 모습이 하나 포착이 된다. 이런 장면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 그림의 가장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그는 누구이며, 왜 그렇게 현장과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가 그 답을 찾았다. 여기 소개한다.
베르나르도 스트로치의 <운명의 세 여신 >The Three Fates
헤시오도스가 쓴 『신들의 계보』에 의하면, 운명의 여신은 이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이에 대하여 역자는 다음과 같은 각주를 달아놓았다.
운명의 여신들(Morai 라/ Fata 또는 Parcae) 은 ‘각자가 맡은 몫’이란 뜻의 morai(Moirai의 단수형)가 신격화된 것으로, 호메로스 이후에는 클로토(Klotho, 실 잣는 여자), 라케시스(Lachesis, 할당하는 여자), 아트로포스(Atropos, 되돌릴 수 없는 여자, 가차없는 여자) 세 자매인데, 한 명이 실을 자으면, 다른 한 명은 이를 감고, 나머지 한 명은 명(命)이 다하면 이를 끊음으로써 각자의 수명을 조절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 세 여신을 이미지로 살펴보자.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조르다노가 그린 플라톤은 자기와 투쟁하는 인간이다. 작은 탁자에는 『법률』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최고의 승리는 자기 자신에게 이기는 것.” (325쪽)
‘자기 자신에게 이겨야 한다’는 말의 원조가 바로 플라톤이라는 것, 이제 알게 된다.
다시, 이 책은
저자는 왜 철학자를 17세기를 나타내는 인물들로 뽑은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자기 삶을 책임 지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철학자, 그들은 비록 누더기를 걸쳤다 하더라도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인간 삶을 의미 지우는 가치다. 거지 철학자의 누더기는 언제 보아도 예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성실한 믿음으로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은 부정될 수 없다. (73쪽)
철학은 반드시 철학자만 하는 게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은 철학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 보여주는 초상화를 자기 자신의 얼굴로 대신해보면, 어떨까? 자화상이 철학하는 자로 보인다면, 내면도 외면을 따라 철학자가 될지 모른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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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그림들이 가득한 책이다. 저자의 시선을 끈 그림들을 대상으로 끈 책이긴 하지만, 이렇게나 강렬한 그림들이라니. 그림 한 점 한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철학자의 거울』은 철학자를 담은 그림들을 통해 오늘날 철학의 역할과 철학자의 존재 의미를 돌아본다. 눈여겨볼 것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그림들을 대상으로 하는 점이다. 바로크 시대는 대중에게 호소하는 현실성과 감각성을 드높인 화려한 색채의 회화로 대표되는 시대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들이 많아 글만큼이나 그림 보는 재미가 있다.
철학의 부재(不在)가 세상을 망치고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철학이란 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지식을 의미하지 않나. 때문에 철학이 부재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추구하는 신조와 세계관이 없다는 말이다. 잊을만하면 뉴스를 장식하는 갑질, 불공정 뉴스들도 다 그런 가치의 부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철학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무형의 가치를 한두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없음이 당연하지만, 그런 모호성 때문에 철학 하면 어렵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철학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거창한 이론이 없어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자의 거울』라는 제목처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오늘의 삶은 어떠했는지 자기 자신을 반추한다면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삶이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책에 담긴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 흥미롭다. 익히 알려진 철학자부터 처음 듣는 이들까지. 다양하지만, 그들의 이름이나 철학을 몰라도 상관없다. 그들이 어떻게 세상과 자신의 삶을 더 낫게 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회화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는 회화야말로 당시의 시대를 담은 거울의 역할이 되어왔음도 알 수 있다. 딱딱한 텍스트로 배우는 철학이 어렵다면, 회화라는 진정한 가이드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거기에 도슨트의 역할을 하는 저자의 설명이 더해져, 한결 더 쉽게 철학과 마주할 수 있다. 물론 단번에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철학자들이 세상과 어떻게 맞닥뜨렸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사유의 힘을 엿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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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인문학이 어렵게 느껴져요 그 중에서도 철학은 더욱 어렵게 느껴지구요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여러 철학자와 학파, 그들의 사상에 대해 배우고 열심히 외웠지만 철학은 저와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학문이었죠 그림에 대해서도 물론 잘 알지는 못해요 <철학자의 거울>의 부제가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인데 바로크 미술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하지만 관심 있는 분야라서 철학과 명화의 만남인 이 책이 기대되었죠
표지 속 그림은 전형적인 철학자의 모습처럼 보였어요 명화 관련 책들을 보면서도 늘 생각하는거지만 제가 모르는 명화들이 참 많아요 이 그림 역시 생소했죠 하지만 책 제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림 속 주인공은 어떤 철학자일까 궁금하기도 했구요 이 그림은 마리아 포르투니의 '양지에 있는 노인 누드'에요 철학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특정 철학자의 모습이 아닌, 일반적인 노인의 모습인 것 같더라구요 저는 이 노인에게서 지혜와 경건의 상징으로서의 노년의 모습보다는 죽음을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았어요
이 책에 실린 명화와 설명들을 보며 저 혼자 보았으면 보지 못했을 세세한 부분도 볼 수 있었어요
위의 그림은 파올로 베로네세의 '지혜와 힘'이라는 작품이에요 철학사에서 여성 철학자를 찾기는 어렵기에 여성 철학자를 그린 작품은 없지만 지혜의 의인화로 여성이 등장해요 그림 속에는 바닥에 놓인 금은보화, 왕관, 칼 등에는 관심 없는 여성이 있어요 머리 위에는 지혜의 빛이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지구본을 밟고 있어요 앞에도 구를 밟고 있는 여신이 등장하는 프란스 프락켄의 '운의 알레고리'라는 그림이 나와요 구를 굴리면 계속 회전하듯 운에 있어도 인간의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그림이에요 '지혜와 힘'에도 구 형태의 지구본이 나오니 반갑더라구요 사실 저 혼자 이 두 그림을 봤다면 공통점을 잘 못 찾았을 것 같아요 그림 속의 배경이나 어느 소품도 의미 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학자의 거울>을 읽고서 철학보다는 바로크 미술과 좀 더 친해진 것 같아요 17세기 바로크 화가들은 어둠 속의 인간을 그렸는데 이는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이며, 어둠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닌 모든 것이 태어나는 장소임을 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미술과 철학이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었는데, 책을 읽으면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책 속의 이야기에 푹 빠졌던 것 같아요 철학은 아직도 어렵긴 하지만 <철학자의 거울>을 통해 철학에 대한 거리감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아요 그동안 암기 위주로만 공부해서 철학의 매력을 몰랐던게 아닌가 싶어요 책을 읽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머릿 속에 집어 넣으려고 하고 있더라구요 철학자에 대해서는 뒤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궁금할 때마다 찾아봐야겠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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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유성애는 철학을 전공하고 예술 특히 미술을 공부하는 작가이며 평론가입니다. <철학자의 거울>은 17세기 바로크 미술작품에 등장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을 찾고자 하는 저자의 고단한 사유의 여정이 잘 배어 있습니다. 예술도 철학도 결국 삶과 그 의미를 찾고 표현하는 일입니다. 철학 서적과 미술 서적을 즐겨 보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너무나 흥미로운 책입니다. <철학자의 거울>이라는 책 제목도, 표지 그림(마리아 포르투니, <양지에 있는 노인 누드>)도 마음에 듭니다. 미술 관련 책을 주로 펴내는 출판사 ‘미진사’ 출간이라 더 기대하며 즐겁게 읽었습니다.
저자가 미술작품을 통해 들여다본 철학자의 공통점은 “누구도,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 한다”(p. 28)는 것입니다. 저자는 미술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까요? 이 책에는 유명한 화가의 작품도 있지만, 처음 접하는 화가의 작품들도 꽤나 많이 나옵니다. 후세페 데 리베라, 캥탱 마시, 살바토르 로사, 헨드릭 테르브룩 헨, 윌리엄 비치, 프란스 스니더르스, 조아키노 아세레토, 야곱 요르단스, 아고스티노 카라치, 에홀른 반 데어 니르, 니콜라스 마스, 카를로 돌치, 등등. 그러고 보니 내가 바로크 미술을 많이 접하지 않아서 이런 화가들의 이름이 생소한 듯합니다. 오히려 이 책에 언급된 철학자들이 훨씬 친근합니다. 헤겔, 마키아벨리, 단테, 데모크리토스, 에라스무스, 디오게네스, 세네카, 몽테뉴, 스피노자, 소크라테스, 아낙사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장 자크 루소, 플라톤, 등등.
지금까지 철학이 예술을 똑바로 보게 하는 안내자였다면, 이번에는 화가의 눈에 비친 철학자를 탐구해 보자는 것이 저자의 의도입니다. 결국 미술작품에 담긴 철학자를 탐구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일입니다. 카라바조의 <나르키소스> 작품이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미술작품에서 철학자는 자기반성적 인간을 상징하며 거울은 자기 발견의 매체라고, 저자 유성애는 말합니다. 철학자는 고통받는 자신 곁을 떠나지 않는 자이며, 욕망하는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이라고 정리합니다. 동감합니다. 결국 작품 속의 철학자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과 끝없이 갈등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인간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입니다. 삶의 근간이 흔들리고 불안감이 몰려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삶의 엄청난 변화 속에서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크 시대 작품 속에는 어둠 속의 인간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 어둠이 두렵다고 눈을 감지 않는다면, 새로운 시작의 여명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은 욕망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라고 도전합니다. 나는 누구인지,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깊이 고민하는 자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바로크 미술작품을 알아가고 감상하는 기쁨은 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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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
미진사에서 출판한 유성애 님의 <철학자의 거울>은 특히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을 담고 있다.
저자인 유성애 님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15년째 공부모임을 이어오며 예술 관련 주제를 공부 중이다. <해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집필했고 예술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을 썼으며, 문신저술상, 한국조각평론상을 수상했다. (책날개 중)
저자는 회화에서 철학자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어느 시대에 철학자를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지 확인한 후 바로크 시대에 주목한다.
철학과 철학자는 무엇을 뜻하는가? 어원으로 찾아보면 철학Philosophy은 사랑함philos과 지혜sophia가 합쳐진 말이다. 철학은 잘 정리된 개념 체계를 뜻하지 않는다. 지혜의 사랑은 활동이다.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인간이다. (17쪽)
철학자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바로크 시대에 철학자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크 시대(17세기)는 르네상스 시대와 종교개혁 시기를 지나 기존의 지식을 독점하던 계층에서 더 넓은 계층으로 지식의 확장이 일어나던 시기이다. 예술가들 역시 기존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던 생산자 역할에서 자의식이 싹트고 스스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시기이다. 음악으로 치면 귀족의 주문에 곡을 만들었던 모차르트에서 예술가의 독립성을 찾아간 베토벤의 시기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지식이 보편성이 가져온 다른 영향은 철학자에 관한 대중의 인식이 변했다는 점이다. 철학자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바티칸성당 벽화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다. 벽화에는 고대 그리스의 걸출한 철학자들이 모두 등장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은 탄탄하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크 시대 철학자를 가장 잘 그려낸 스페인 화가 후세페 데 리베라는 철학자를 연작으로 그려내지만, 그가 그린 철학자는 정돈되지 않은 얼굴과 가진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누더기 철학자의 모습이다. 철학자의 위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리베라는 세상의 근본 원리를 원자에서 찾으려 했던 웃음의 철학자로 알려진 데모크리토스와 만물의 근원을 불로 꼽았던 우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그렸다.
철학자가 과거의 지위를 잃어버린 건 16세기에 두드러진다. 중세의 철학자는 기독교 신학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철학은 신神존재 증명, 신학 논쟁의 중심 학문으로 중요하게 다뤄졌다. 궁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철학자는 궁정의 지원으로 연구와 교육을 이어갔다. 16세기 말부터 철학자와 궁정의 관계는 단절되기 시작했다. (51쪽)
철학자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대항해 시대로 영토와 부가 가져다주는 열망을 맛본 유럽의 왕은 도덕적 관점을 주목하는 철학자의 간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욕심을 더욱 내어야 했다.
견유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컵을 가지고 호숫가에서 물을 마시는 순간 옆의 소년이 컵이 없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컵을 던져버린다. 스스로 컵을 버림은 과거 자신과의 단호한 결별을 뜻한다.
죽음은 화가가 즐겨 다루는 주제다.
바로크 시대 미술 작품에서 철학자와 일반인의 죽음을 그린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죽음은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마지막 공부이다. 17세기 회화에서 죽음은 해골을 드러내고 모래시계, 다 타버린 초, 시들어진 꽃으로 표현한다. 마트에서 받은 영수증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바래지듯이 인간이 가진 의식도 서서히 사라진다.
철학자의 죽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그림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년)이다. 이는 죽음 이후의 진실에 대한 철학자의 확신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이다. 그림 속 소크라테스를 주목하는 청년들의 존재는 그의 사상이 제자인 플라톤으로 인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망 당시 병으로 집에 누워있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다비드가 플라톤의 모습을 그림 속에 삽입한 이유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바탕으로 플라톤이 구성하고 전해지는 이야기 때문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죽어가는 세네카>(1612-1615)도 주목할 작품이다. 세네카는 스토아학파 대표 철학자이자 고대 로마 정치가다. 그는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네로 황제에게 자살을 명받아 죽음을 택했다. 죽는 과정은 매우 끔찍했다. 독약을 마시고 혈관을 잘라도 숨이 붙어 있었고, 끝내 증기탕에서 질식사했다고 전해진다. (154쪽)
그의 죽음은 외부 힘에 짓눌린 비참한 삶보다 스스로 인생을 종결한 권리를 행사하고 신념에 따르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는 의미가 다르다.
‘손에 쥔 비눗방울’ 편에선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소재로 비눗방울을 소개한다. 인간이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과 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아등바등하는 모습도 비눗방울처럼 터지기 쉬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바로크 시대 회화에 드러나는 철학자를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신나는 시간이다. <철학자의 거울>에 소개되는 철학자와 작품의 도록을 부록 편에 별도로 수록하고 있어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철학, 미술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철학자의 거울>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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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적은 바로크 그림에 보이는 철학자의 모습과 철학의 의미를 설명하며 현대 철학의 역할에 대한 사유를 유도한 서적으로 다양한 미술작품과 철학전공 저자의 주장이 담긴 철학에세이라 하겠다.
서적은 총 6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장은 저자가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적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다만 바로크 미술품을 넘어 다양한 시기의 그림과 철학자와 상관없는 종교화, 신화에 관한 그림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1장은 누더기 철학자란 제목으로 화사한 색체의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인 <아테네학당>과 후세페 데 리베라의 <아리스토텔레스>, 푸생의 <디오게네스가 있는 풍경>을 비롯해 가난한 인물들을 소재로 한 명화들을 비교해 설명한다. 아름답지 않은 외모와 누더기를 입은 그림은 그다지 예쁘다고 느낄 수 없지만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마음의 눈으로 정신으로 느낄 수 있다는 설명과 철학의 지혜를 상세하게 설명한 부분이 유익하였다. 3장에서는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인 죽음에 대한 내용으로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현장에 없었던 플라톤을 그려 다비드가 다중의 시간과 해석을 겹치는 효과를 내어 플라톤의 존재가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세네카의 죽음을 다룬 두 작품을 해설하며 스토아학파의 이념을 설명한다. 서적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철학자는 우는 모습으로 표현된 헤라클레이토스와 웃거나 빈정거리는 모습으로 그려진 데모크리토스로 철학자의 웃음, 눈물이 인간세상을 함축한 것이며 자연사상과 연관이 있다는 설명을 한다.
저자는 17세기 화가들이 자화상을 통해 철학자에 버금가는 인식을 지녔음을 강조한다. 철학, 철학자가 특별한 존재가 아닌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과 사유로 도달한다는 전제하에 그들의 그림이 지닌 의미를 철학자의 글로 설명한다. 자기반성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철학자로 그려진 많은 바로크 미술작품이 수록되어 감상을 하며 독자들은 깊은 사유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부록에 서적에서 언급된 철학자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철학자를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줄 유익한 부분이라 하겠다.
이 서적은 철학에세이로 다수의 명화를 철학자의 관점에서 해석한 서적으로 명화를 감상하며 인간의 생로병사, 여성인권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를 성찰할 수 있는 유익한 서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서적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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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철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강연을 접하다보면, (어쩌면) 그 와중 더 나은 삶과 사회의 방향성을 알게 되는 것 같은 감상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학자들이 제시하는 그 방향성에는 보다 지성적인 인간의 모습과, 더욱 더 진보하는 인류사회의 긍정적인 모습이 비추어지지만, 의외로 이를 접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스스로가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가 되어야겠다는 실행에 있어서는 그리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반대로 이러한 '철학'을 전하는 철학자들의 입장에 있어서도 그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하나의 의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이미지를 빌어, 철학의 진리와 탐구 그리고 인물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그 해답을 표현하려 한다.
이처럼 책 속의 내용은 이를 마주하는 독자들에 대한 물음 뿐만이 아니라, 철학을 탐구하는 저자 스스로에 대한 물음도 함께 한다는 감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날 대중들이 원하는 철학의 현 주소, 그리고 위대한 선배? 들이 정립한 철학의 세계에 머물러 더 이상의 전진을 이루지 못하는 학문은 어쩌면 이 21세기의 세상 속에서 동떨어진 그들만의 아크로폴리스를 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오롯이 철학의 나태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흔히 물질사회로 불리우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그나마 철학이 살아남는 방법은 탐구가 아닌 해법을 전하는 것이였다. 인간이 보다 행복하게 살수 있는 방법, 그리고 인간과 인격의 마인드를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에 있어서 철학이 좀더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라는 강연의 주제에 분명 사람들은 몰려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저자가 표현하는 철학과 진리의 길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어쩌면 철학은 사회의 흐름에 편승하여 드높아지는 것이 아닌, 점차 변화하는 현상을 관찰하고, 또 이에 대한 최선의 개선점을 발견하는 학문이 되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미지의 미래에 대란 기대감을 동반한 대비가 가능해진 '사치스러운' 현대사회 속에서, 과거 철학의 공허와 허무 그리고 덧없는 끝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은 속된말로 옛 것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때문에 현대의 철학은 분명 과거와는 다른 현대의 최선을 주문하는 학문에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분명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는 문화수준을 누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회와 인류가 무한한 활력과 도전으로 끝끝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 오만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지혜를 진리라 착각한다. 그리고 현대의 풍요를 보장하는 시스템에 '복종하려한다'. 이에 오늘날의 철학이 할 일은 (가금씩) 그 인간의 한계와 겸허함을 환기시키는... 그리고 그로 인하여 개개인에게 보다 무지와 오만을 깨닫고 고뇌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나름의 역활 또한 수행해야 한다고 여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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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를 다룬 그림들에 관한 책들을 그동안 여러 권 봤었다. '히포크라테스 미술관',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경제학자의 미술관' 등 다양한 분야에 관계된 그림들만 모아 놓은 책들을 통해 그림의 주제가 상당히 폭넓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는데 이 책은 바로크 시대 철학자의 모습을 다룬 그림들만 따로 모아 그 의미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사실 철학과 예술은 동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면서도 뭔가 묘한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선 예술 작품은 철학 이론의 설명력을 높이는 매개체가 되고, 다시 철학 이론은 작품 감상의 척도가 되는 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음을 보여주는데, 바로크의 철학자 그림은 문제의 방향을 철학에서 철학자로 돌려 철학자 그림을 통해 철학자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총 여섯 장에 걸쳐 정말 다양한 철학자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철학자를 그린 그림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철학자 그림의 대표 주자는 바티칸에 있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라 할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 철학의 쌍두 마차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림 속에 등장해 철학자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맛보게 해준다. 이 책에선 그동안 몰랐던 화가들이 엄청 등장하는데 특히 후세페 데 리베라의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첫 장의 제목이 '누더기 철학자'여서 디오게네스 등을 떠올리게 했는데, 17세기 누더기 철학자상은 빈자의 모습을 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로, 철학자는 자발적으로 가난한 삶을 선택하지만, 가난 자체가 목적이 아닌 진정한 자유를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즉 17세기 누더기 철학자 그림은 자기 실현의 자유를 형상화한다고 볼 수 있는데, 자기 실현의 자유는 산업혁명과 시장경제 확산으로 매우 짧은 기간만 유효했다고 한다. 이렇게 누더기 철학자는 진리에 헌신하는 자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다. 서양 역사에서 철학자는 군중의 수호자, 보호자,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 책에선 역사 속 여러 유명 철학자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은 물론 철학자들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한정하여 철학자 그림들을 소개하였음에도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찾아내 풍성한 얘기들을 들려준 저자의 정성이 결국 이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는데, 자기반성적 인간을 상징하는 바로크 작품 속 철학자들의 모습을 통해 요즘 찬밥 신세가 되고 만 철학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