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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메모나 메시지 말고 손글씨로 쓰는 편지. 편지를 써본 지가 언제인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건 편지라는 아날로그 감성만은 아닌 것 같아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
<꼭두각시 조종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난 요슈타인 가아더 작가의 장편소설이에요. 북유럽 소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뭔가 혹한기를 견뎌내는 극한의 감정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주인공 야코브 야콥센은 60대의 언어학자예요. 이 소설은 주인공이 한 여인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 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야코브의 독백에 가까워요. 늘 그렇듯이, 아웃사이더이자 외톨이로 살아 온 그가 왜 하필 그 여인에게 편지를 보냈을까요.
2013년 5월, 스웨덴 고클란드 섬 친애하는 앙네스 씨. 이제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 합니다. 나를 기억하시는지요? (9p)
소설의 첫 문장이자 편지의 첫 구절이에요.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이 부분을 다시 읽으니 마음 한 켠이 시큰하네요. 야코브는 할링달의 올 출신인데, 오슬로로 이사 온 1970년대 초부터 장례식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대요. 어느 날 야코브는 옛 스승인 에리크 룬딘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앙네스를 만났어요. 사실 앙네스를 처음 만난 건 그녀의 여동생 장례식이었고, 앙네스의 사촌인 트룰스와 그의 아내인 리브베리트 룬딘, 그들의 두 딸 투바와 미아가 참석했었죠. 그다음이 에리크 룬딘의 장례식이에요. 그래서 룬딘 가족을 중심으로 편지를 쓰게 된 거고요. 그로부터 10년 후에 만났고, 다시 일 년 후에 또 만났어요. 물론 그 만남의 장소는 모두 장례식장이었어요. 대개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추모식을 하는데, 유족이나 지인들이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에요. 야코브는 바로 그 추모식에서 화려한 입담을 뽐내곤 했어요. 그런데 에리크 룬딘의 추모식에서 스승과의 일화를 들려줄 때는 유족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냈어요. 뭔가 일이 꼬였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뒤로 다른 장례식장에서도 계속 룬딘의 유족과 마주치게 됐어요. 그들은 야코브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어요. 단 한 사람, 앙네스만 빼고. 그녀는 크게 망신을 당한 야코브가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할 때 추모식에 남아달라고 거의 애원하듯 부탁했어요.
왜 당신은 나를 붙들었을까요? 당신은 무슨 이유로,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그곳을 벗어나려는 나를 붙들었는지요? 어디서 시작하면 될까요? ... 회상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면, 결국 내가 소년으로서 경험했던 일까지도 짚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현재의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14p)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지만 우리는 결국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 같아요. 오해와 편견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그 대상이 나라면 어떨까요. 주인공 야코브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중간에 잠시 섬뜩함을 느꼈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네요. 네,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편지가 아니었다면, 그가 내 앞에서 이런 고백을 들려줬다면 끝까지 듣지 못했을 거예요. 아마 당장 도망쳤겠죠. 이래서 편지를 썼던 거구나, 바로 납득이 되더군요. 그가 언어의 뿌리를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나 절친 펠레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 그리고 장례식을 찾는 습관이 생긴 것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차마 이해한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누가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직 펠레, 공식적인 이름은 페더 엘링센 스크린도 씨뿐일 거예요. 다행스러운 건 앙네스 베르그 올센을 만났고, 그녀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거예요.
<꼭두각시 조종사>는 야코브가 앙네스에게 보내는 편지예요. 그러나 그 편지를 다 읽고나면 스스로에게 묻게 될 거예요.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이가 있나요? 인생 이야기는 그 사람과 함께 쓰여질 테니...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계선은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르는 선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입니다." (3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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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야코브 야콥센은 이름이 우스운(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성 언어학자입니다. 이름이 우습다는 건... 저 이름은 예컨대 고골의 <외투>에 나오는 불쌍한 하급 공무원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이름과 같은 구조이기 때문이죠. 야코브의 아들 야코브, 아카키의 아들 아카키... 여튼, 소설은 이제 60대에 접어든 그가 자신의 인생 중 중요 국면을 회고하며, 2인칭 청자를 앙네스로 삼아 보내는 편지 형식입니다. "앙네스"라는 이름은 물론 노르웨이식이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다른 나라의 여성 이름인) 아그네스, 아녜스 등과 같은 계열입니다. 도쿄식 발음으로 "도쿠가와"는 "도쿠앙와" 등으로 불리듯, [ng]는 [g]와 의외로 서로 자주 교체, 혹은 유사시되는 자음입니다.
그는 유독 자주 장례식장을 찾아다닙니다. 머리도 좋은 편인 그는 고인과의 각별한 연을 추모객이나 유가족들 앞에서 자세히, 혹은 장황하게 늘어놓습니다. 이렇게까지 고인들과의 연을 섬세하게 회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유가족들에게 각별한 환영을 받을 만도 한데, 독자인 우리가 밖에서 보기로는 분위기가 왠지 좀 이상합니다. 환영을 받는 게 아니라 미심쩍인 시선 정도를 받으며 경원되는 듯도 합니다. 1인칭의 주관적인 담화를 떠나, "혹시 진상은 이러이러한 게 아닐까"하며 우리 나름대로 재구성을 해야 할 듯한 기분도 듭니다.
우리가 당혹스럽게 느끼는 건 야콥센의 장황한 언사뿐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만난 젊은 여성 윌바의 매너도 마찬가지입니다. 윌바는 아주 똑똑하고 주관이 강합니다. 언어학에 대해 자신만의 확고한 관점을 갖고 있어서, 장례식장을 찾은 손님인 야코브에게 면박을 주는 것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원래 그런 아이이니 이해를 하세요." 야코브 씨는 성정이 본래 순한지, 아니면 어떤 다른 사정이 있는지, 현장에서 바로 윌바에게 반박하지 않습니다. 그는 객관과 학문의 세계로 곧바로 침잠하며, 이런 게 모순과 적의와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가 대처하는 방식인 듯합니다.
히틀러는 2차 대전 당시 노르웨이를 사정 없이 유린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코카서스 인종의 아득한 한 분파의 순혈을 간직한 북유럽인들에 대해 경외심을 품었다고도 합니다. 책에도 간간이 언급이 있지만 노르웨이인들은 2차 대전 당시에도 영웅적인 게릴라 활동이나 사보타지를 전개했고,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엔 스웨덴, 덴마크 등으로부터 독립 운동을 전개하여 승리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느끼는 건, 그저 추운 나라, 어업국, 노벨 평화상 시상 주체 정도로 알고 있던 수백만 인구의 국가가 이처럼이나 강한, 그러면서도 이지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었나 하는 점이겠습니다.
우리는 학부 시절 스펙 쌓기나 입사 시험 통과를 위해 영어 어휘책을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런 학습서는 대부분 암기의 편의를 위해 어원을 제시하고 연관된 단어들을 한 데 묶어 설명하는데, 언어학자인 야코브 씨는 소설(아니, 편지) 속에서 아주 뭐 어원 실력을 유감 없이 과시합니다.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어휘 설명 상당수는 노르웨이어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그 중 또 상당수는 라틴어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거나, 현대에 와서 세계어가 된 영어 어휘를 차용한 것이라서 영어(역시 라틴어의 영향을 받은) 어휘와도 매우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ㅎㅎ 학창 시절 영어 공부 열심히 했던 우리 한국 독자는 별 위화감 없이 읽을 수가 있죠.
p57에 보면 reg- 관련 어휘가 주르르 나오는데 대부분은 우리들도 익숙한 것들입니다. 본문에는 없습니다만 royal도 마찬가지이며 g와 y가 서로 통한다는 게 여기서도 확인됩니다. 그런데 저는 erection(발기)도 같은 어원인 줄은 이 소설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이 단어는 예의 그 윌바가 야코브 선생 앞에서 또 태연하게 거론하는데 너무 솔직한 것도 문제는 문제입니다. 물론 노르웨이어라서 Ereksjon이라고 책에는 나옵니다. 대문자로 시작하는 건 독일어를 포함 명사(고유명사가 아닌데도)를 그리 쓰는 게 저쪽 동네의 전통이죠. 아무튼 윌바나 야코브 씨나 이 분야에서 다들 선수들인지라 급수 겨루기 중 서로 피를 튀깁니다.
p80을 보면 또 g와 y(반자음으로서 w도 비슷)가 서로 통하는 예가 나오는데 독일어의 gelb(노란)와 영어의 yellow가 어원이 같다는 설명이 재미있습니다. 현재 이 각국어로는 발음도 판이하고 철자도 보다시피 저렇게나 다르기 때문에 간과하기 쉽죠. 저도 고1 때 제2외국어로 독어를 배웠고 gelb 같은 건 필수 어휘였지만 yellow와 통한다고는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여기서 황금이라는 뜻의 gold 등도 나왔다고 합니다.
p80의 이 "썰"을 누구한테 푸는가 하면, 여성 택시기사 안드리네라는 분을 상대로 삼았습니다. 어.. 이분도 나중에 가면 돌아가시는데, 이분 장례식에도 야코브 씨가 참여하며 여기서 또 (이번에는) 고인의 조카뻘 되는 윌바를 만납니다. 야코브 씨는 (젊었을 때) 여성들한테 인기가 있던 타입일까요? 소설 중반에는 그의 학생 시절이 회고되는데, 인기는 고사하고 "독특한 습관"으로 말미암아 왕따, 심지어는 폭행의 타겟이 되기까지 했다는 게...
현재는 혼자지만 야코브 씨는 한때 아내가 있었고 레이둔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인문적 소양이 다소 부족한 듯하지만 열정적인 성품이었고 한때 야코브를 뜨겁게 사랑했었으나... 펠레 스크린도라는 어느 사내(?)와 야코브 씨의 친밀한 관계를 못 견뎌서 결국은 헤어졌다고 하네요. 펠레 스크린도는 어렸을 때부터 야코브씨, 아니 야코브 군 옆에 바짝 붙어다녔는데... 아내뿐 아니라 어렸을 때 그 부친마저도 이 펠레를 무지 싫어했다고 합니다.
p75에는 어느날 펠레의 존재를 알게 된 아내 레이둔과의 끔찍한 다툼이 서술되며, 이때의 충돌이 야코브 씨에게는 몹시도 큰 충격이었는지 책에서는 p223, p297 등에서 계속 회고됩니다. p108에서 윌바는 자신의 사촌에게 야코브 씨를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고 평가하며(등 뒤에서 들으라는 듯 크게 떠듭니다), p216에는 "뻔뻔스러움"에 대한 야코브 씨의 몇 마디가 나옵니다. 사실 독자가 어지간히 둔하지 않다면 소설 중반까지만 읽어도 이 펠레 씨의 "정체"가 뭔지는 눈치챌 수 있습니다. p378에서는 드디어 펠레 씨(?)와 야코브가 대판 싸우는데 놀랍게도 펠레는 야코브더러 참으로 뻔뻔하다며 비난하고, 야코브는 다시 충격을 받습니다. 아니, 뻔뻔한 건 펠레 자신이 아닌가? 사실 둘 다 맞는 말을 하는 중이며, 자세한 건 스포일러라서 여기 적진 않겠습니다.
p290에 보면 페다고그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우리 한국인들도 학부 시절 동아리 세미나 같은 걸 할 때 페다고지라는 말 많이 들어 봤을 겁니다. 책에도 설명이 있지만 이때의 ped-는 "소년, 아이"라는 어근인데, 저 앞 p169에 보면 ped- 어근에 "발"이란 뜻이 있다고 또 나오죠. 아니 "발"과 "소년"이 동의어인가? 예전에, 제가 좋아하는 고 이윤기 선생은 그의 그리스신화 해설에서 인문적(아니, 프로이트적?ㅋ)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둘의 연관성을 논한 적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사실 무근입니다. 적어도 언어학적으로는 말입니다(이게 사실이었으면 얼마나 멋있었을까요). 여튼 그래도 저는 이윤기 선생의 우아한 문장이 참 좋았고 그 원대한 사고의 폭을 여전히 존경합니다. p288에도 참 재미있는 설명이 나오는데 본문에는 없지만 독일어 명사 Bewegung도 마찬가지로 저 예에 해당합니다. p278의 러시아어 "고로드, 그라드"가 영어 "가든"과 통한다는 설명은 얼마나 황홀합니까. p349에는 생선 대구에 관한 어휘 설명이 나오는데 마치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한 대목을 읽는 듯합니다.
한 지방, 혹은 한 나라의 언중이 두 개 층의 언어를 사용하는 현상을 두고 diglossia라고 합니다. 이 대표적인 예는 방언과 꾸란 아랍어를 다 구사하는 아랍인들, 또 보크말과 니노르스크 두 가지 언어를 쓰는 노르웨이인들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마치 언어학 개념을 현장 학습이나 시켜 주듯 야코브 씨는 그만의 소속감 혼동, 갈등을 절절히 털어 놓습니다. "나는 어디 속한 사람인가?" 이런 존재적 긴장을 생의 매 순간 느끼는 주인공으로서 그리스인 조르바, 아니 노르웨이인 야코브만큼 적절한 세팅도 아마 없지 싶습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한 리뷰를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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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한 사람의 삶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식이라.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서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일단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많이 나눠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꼭두각시 조종사>의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해 편지치고는 제법 길었던 내용을 다 읽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인생도 있는 법이다. 2001년. 에리크 룬딘이라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장례식에 참석한 ‘나’. 신문의 부고를 보면 꼭 장례식에 참석한다. 문제는 고인과의 관계를 거짓말로 꾸며내 장례식장에 참석한다는 거다. 이번에는 추모식장에 늦게 들어가 유족 테이블에 합석하기까지 한 ‘나’. 거짓말이라 언제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꾹 닫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나’는 고인의 제자였다며 장례식장에서 언어의 어원에 관해 이야기를 하며 지식을 뽐낸다. 장례식장에서 거짓말에, 잘난 척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우리의 주인공.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삶을 산다는 것은 서사의 한 장르입니다. 장례식에 매번 참석하는 것은 나름 ‘나’의 중요 일과다. 그런데 갈 때마다 에리크 룬딘의 유족을 계속 마주쳐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탄로 나게 생긴 ‘나’의 진짜 정체. ‘나’가 계속 장례식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악습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족의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올해를 반추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고, 그렇게 될 거라 믿었다. 연말을 장식하기 딱 맞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내 기대가 무색해졌다. 오히려 실망감만 가득하더라. 누군가의 삶을 결코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사랑을 원했지만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던, 그래서 계보 있는 언어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 장례식장에서만이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꼈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이 주인공의 거짓말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마지막에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주인공의 말 그 어느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훌륭한 ‘소설가’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흠뻑 빠져들었을 정도로 그의 이야기는 생동감 넘쳤고, 거짓말이었지만 흥미진진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언어학자가 아닌 소설가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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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조종사
요슈타인 가아더 장편소설/ 현대문학 유럽의 모든 언어들이 어디에 근간을 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전공자 빼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유럽의 거의 모든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들 인도유럽인들은 베다 문명을 중심으로 세계에 넓게 퍼져있다. 인도 유럽어를 다시 또 세부적으로 여러 개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뿌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음은 아직도 학계의 관심과 연구 대상이다. 어떤 부족이 하나의 민족으로 세력을 형성한다 해도 수많은 전쟁과 이동을 반복하므로 칼로 무 자르듯 그 경계를 명확히 할 수는 없다. 종교나 전통, 문화와 관습은 언제든 가변적이다. 책의 주인공 역시 인도 유럽학에 대해 공부를 하고 문화와 역사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반복한다. 언어학자인 야고브는 스승 에리크의 장례에 찾아갔다. 장례식에는 스승의 아들딸, 손주들이 있었다. 그들은 야코브를 특이하게 바라보는데 야코브는 타고난 학식으로 이를 무마한다. 윌바라는 아름답고 감수성 풍부한 젊은 여인은 고대 게르만 신앙과 관습을 묻는데 대화는 마치 중년의 학자에게 치명적인 질문을 하는 젊은이의 상황이 돼버리고 만다.
언어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서로 다른 언어라 할지라도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다. 편지는 계속된다. 그는 장례식에서부터 에리크 룬딘의 자손들을 만났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또한 언어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긴긴 편지를 받는 여인 앙네스는 우리들 자신이기도 하다. 그는 또 다른 장례식에 참석한다. 루나르 프리엘레의 장례식에서 룬딘 가족들을 재회하는데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맨 뒷자리를 선택한다. 그는 외로운 섬이었고 가족들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7~8년 전인가 루나르를 만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두 사람 다 아웃사이더였다. 그의 죽음은 참으로 비참했는데 열쇠를 놔두고 지하실에 얼음을 가지러 갔다가 죽은 지 몇 주 후에 발견된 것이다. 그의 형제자매들은 그가 죽은 후 지하실에 내려가 본다. 그는 벽에 마지막 흔적으로 글을 남겨 놓았다. 그레테 세실리에의 임종을 알리는 부고를 보고 그녀를 떠올려본다. 그녀는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고 한다. 그는 10여 년 전쯤 에리크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그의 손주들을 다시 재회한다. 그들은 청년이 되었다. 그들의 기묘한 인연은 이렇게 끊어질 듯 말 듯 계속된다. 그는 오슬로로 이사 온 1970년대 초부터 장례식을 찾아다녔다. 그의 마버지는 그가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 집을 나가버렸다.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꼭두각시 인형인 펠레. 인도유럽어족의 고유어와 고대 신화에 대한 강의를 할 때는 그와 동행했다. 그의 장례식장을 찾아다니는 습관은 이무렵 시작되었다. 거의 매주 찾는 장례식장 가족의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에게 고유한 의미의 가족은 없었기에 변질된 형태의 가족에게나마 속하고 싶었는지도... 그는 안드레아스의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앙네스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스토리는 욘욘의 장례식으로 이어진다. 노르웨이 출신 작가 요슈타인 가아더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많이 썼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소피의 세계》라는 책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소설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대가족에 속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소속감을 느끼려 하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장례식에서 우리는 천문학자가 되기도 하고 성직자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노르웨이 문학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하게 하는 책, 죽음과 삶, 러브스토리, 삶의 언어, 진실과 허구가 담긴 광활한 사유를 소개하는 가슴 벅찬 책이었다. 출판사 지원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꼭두각시조종사, #요슈타인가아더장편소설, #손화수옮김, #현대문학, #소피의세계, #진실, #고독, #모험, #신비, #책리뷰, #북리뷰, #신간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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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의 작가 요슈타인 가아더의 신작 꼭두각시 조종사! 제목이 특이하다. 물론 내용은 제목만큼이나 특이하다. 생각지 못한 반전도 있고 말이다. 처음에는 장면을 따라가며 내용을 이해하기가 꽤 어려웠다. 편지식의 글로 이루어져 있고, 주인공인 나이 많은 언어학자 야코브 야콥센이 부고문을 보고 장례식을 찾아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언어학자답게 관련 지식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서 등장하기에 집중하기가 좀 힘들었다고나 할까?
사실 첫 번째 장면인 자신의 스승 에리크 룬딘의 장례식장에 가서 그들의 유족들 특히 손녀 윌바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전문적인 이야기가 등장하기에 서실 어렵기도 하고, 공감도 많이 안 갔는데 그 지루함을 이겨내고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다 보면 앞장으로 다시 돌아와 그 숨겨진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묘한 재미가 있다.
사실 초반에는 그가 부고문을 보고 찾아가는 장례식들이 생전 자신과 친밀했거나, 적어도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장례식의 경우 남겨진 가족에 대한 위로와 사망한 망인에 대한 추모의 자리기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것뿐 아니라 야콥센 또한 망인과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큰 반전이라는 사실 또한 읽어가면서 만날 수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펠레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과 제목인 꼭두각시 조종사에 대한 연관성 또한 맛볼 수 있기를. . . 사실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유족들은 위로와 추모에 진심 어린 감사를 표현하기 마련이다. 설령 추모객에 대해 일면식이 없어도 말이다. 하지만 야콥센이 방문한 장례식 속 유족들의 경우 반응이 사뭇 다르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유족들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띄워지기 때문이다. 과연 야콥센이 숨기고 있는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그럼에도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느 측면에는 야콥센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어차피 인간은 외로운 존재고, 장례식장에서 그는 늘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 진실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외로움은 한층 더 깊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그를 떠나서도 군중 속에 있지만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은 야콥센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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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소피의 세계>를 아주 재밌게 읽었었다. 3권으로 출간된 책을 정신없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나의 이해력이 딸려 재미가 조금 덜했지만 서양철학에 관심있는 초심자용으로 최소의 소설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후 나온 그의 책 몇 권을 더 샀다. 당연히 그 책 읽기는 기약 없는 일이 되었지만 언젠가 <소피의 세계>를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가슴 한편에 품고 있었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 서점으로 작가의 작품들을 검색하니 내가 놓친 책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음… 이 책들은 일단 미루어 두자.
이번 책의 선택은 단순하다. 앞에서 말한 <소피의 세계>를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책을 선택할 때 작가 이름만 보고 책 내용은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노년의 언어학자를 주인공으로 오늘날 유럽 대부분 언어의 뿌리인 인도유럽어족을 탐구한다고 했는데 솔직히 이 언어 부분은 읽으면서 하나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나의 외국어 이해 능력도 부족하다. 하지만 이 부분을 잘 모른다고 소설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학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새로운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야코브 야콥센이다. 학교 교사인데 신문 부고란을 읽고 옛 스승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가 스승과의 일화를 말하는데 유족들이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고인의 손녀인 윌바가 그의 말에 딴지를 건다. 그와 언어학에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만 해도 이 부분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의 시작에 나오는 앙네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도. 그가 절친인 펠레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이 인물이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꼭두각시란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펠레 때문에 그가 이혼했다고 했을 때조차도 말이다. 작가는 중요한 사실을 숨긴 채 중간에 하나씩 풀어내는데 이때마다 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돌아보게 된다.
야코브가 장례식에 가는 것은 그 인물들을 개인적으로 알기 때문이 아니다. 아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습관처럼 찾아가는데 그 이면에는 대가족에 대한 선망이 깔려 있다. 장례식장에 가기 전 그는 고인에 대해 조사하고, 그와의 관계에 대해 치밀한 이야기를 만들어 놓는다. 모른 채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사실처럼 다가온다. 많은 장례식장에서 큰 문제없이 지나갔는데 한 장례식장에서 그는 큰 실수를 한다. 고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로 앙네스에게 관심을 받고, 그녀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이 소설이 편지 형식으로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읽다 보면 두 번 크게 놀란다. 펠레가 꼭두각시란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과 장례식장의 고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펠레와 대화를 나누면서 언어학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쌓고, 어린 시절 왕따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만 펠레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아내와 불화가 생기고 이혼하게 된다. 만약 인형극으로 이 대화를 본다면 재밌는 무대가 될지 모르지만 일상 생활에서 자주 본다면 소설 속 그의 학생들 같은 반응이 나올 것이다. 장례식장의 고인에 대한 가공의 관계는 이 소설이 풍부한 지식을 전달하는 지식소설임을 알려준다. 고인의 분야에 따라 전달하는 지식은 바뀐다. 물론 그에 따라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나온다.
거짓과 사실이 교묘하게 섞였고, 오해와 진실이 서로의 이해 속에서 엮인다. 윌바와의 만남이 그의 거짓을 밝혀내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실을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서로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좀더 편안하게 대할 때 이 둘의 관계는 미묘한 흐름을 가진다. 아는 것을 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과 약간의 불안감이 이 둘의 대화 속에 묻어 있다. 그리고 처음 그가 에리크 룬딘의 장례식장에서 느낀 데자뷔는 후반부에 예상하지 못한 사실을 풀어놓는다. 그의 이야기 중간 중간에 나왔던 몇 가지 사실들이 엮이면서 만들어진 사실이다. 소설을 다 읽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그 문장을 발견하고 이 소설이 얼마나 치밀하게 구성되고 전개되었는지 깨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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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적은 <소피의 세계>의 저자인 요슈타인 가아더의 신작소설로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하다 우연히 반복적으로 만나게 된 한 가족과의 만남을 자신의 진심과 유럽언어의 기원인 인도유럽어에서 파생된 단어와 의미를 편지로 보내는 형식을 띠고 있다.
서적은 언어학자인 야고브는 신문의 부고 란을 보고 장례식을 찾아다니는 인물이다. 2001년 9월 대학시절 교수였던 에리크 룬딘의 부고 기사를 발견하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추모식에 참석한 야고브는 에리크의 가족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손녀인 윌바와 할아버지와 자신이 뒤메질의 연구에서 북유럽의 신화와 고대 인도의 신화의 유사성이 인도유럽어족에서 기원했다는 내용으로 연구를 했다며 얘기하여 관심을 끌지만 윌바는 그를 거짓말쟁이로 무시하며 그를 비웃는다. 집으로 돌아온 야고브는 ‘펠레’라 부르는 인형과 산책을 하며 노르웨이 단어의 근간과 파생된 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에 대해 대화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2002년 1월 택시기사인 안드리네의 장례식에 참석한 야고브는 고인의 조카인 윌바 가족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30년 전 니스베르게에서 히피시절 만났던 스베레와 마리안네를 만났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리고 윌바에게 비교언어학, 종교 역사학에 대한 얘기를 던져 그녀를 자극한다. 2011년 그레테 세실리아의 장례식에서 편지의 수신인인 앙네스를 처음 만난다. 그곳에서도 에리크의 자손과 또 만난다. 그가 사전 조사하여 만들어낸 고인과의 일화를 얘기하다 고인이 하반신 마비라 야고브가 생전에 고인과 계곡을 거닐었다는 거짓말이 탄로나 투바와 미아에게 경멸의 눈총을 받지만 앙네스는 자신의 동생의 생전모습을 사진처럼 묘사해 주었다고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위기에 처했던 다음 장례식장에서 동행으로 소개해 야고브를 구해준다. 이후에 참석한 장례식의 이야기를 앙네스에게 편지로 고백한다.
처음 장례식에 참석하는 야고브와 그가 던지는 인도유럽어 관련 내용, 펠레와의 대화로 인해 조금 혼란스러웠다. 2001년부터 최근의 장례식을 통해 과거 히피족일 때 만났던 마리안네, 스베레, 욘욘과의 추억과 욘욘과 마리안네의 혼외자식인 윌바, 야고브의 다른 자아인 인형 펠레의 진실까지 드러나면서 전체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야고브가 장례식에서 고인과의 창작된 추억을 예기하며 자신에게 그어진 외부인이라는 경계선을 넘어가고 그것이 거짓이라도 고인의 사진을 보 듯 느낄 수 있어 행복했던 심리학자인 앙네스는 복잡한 인성을 지닌 꼭두각시 조종사 야고브와 다른 자아인 펠레에 관심을 보인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인생에서 삶과 죽음보다 더 큰 경계는 사람들이란 주인공의 고백은 깊은 사유에 빠지게 만들었다. 내용 중 철학적, 심리적인 내용의 기술과 북유럽 언어학과 관련된 내용이 조금은 난해했지만 인생, 공동체,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 많은 고민을 던질 유익한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서적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