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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처럼 국가의 정체성에 관하여 고민을 해본 적이 있던가 싶습니다. 국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인가? 국가는 누구를 위해 있는 걸까?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국가는 필요할까? 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국가의 딜레마>는 이런 의문을 가진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을 쓴 홍일립박사는 ‘사회사상·정치경제학·미술사 등을 공부했고, 예술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라고 간략하게 소개되었습니다. 이 정도 소개만으로는 책이 지향하는 바를 파악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저자는 저보다 조금 늦은 1976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셨다고 합니다.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세대였습니다. 저자는 학생운동가로 시작하여 용접공, 기업가, 정치인을 거쳐 지금은 은퇴하여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젊었을 적에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선대위의 기획실장을 맡아 대선을 치렀고, 당선 후에는 정치판을 떠나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연구원을 지냈다는 것을 보면, 진정한 노사모였던 것 같습니다. 전작 <인간 본성의 역사>가 나온 뒤에 나온 서울신문의 기사를 보면, “정치판에서 인간의 탐욕을 봤어요. 공인의 책무나 책임 윤리에 대한 성찰 없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치가 전도된 우리 사회의 실상을 느꼈어요.”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가 정치판을 떠난 이유일 듯합니다.
제가 앞서 적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의문은 저자의 서문에서 따온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여기에 담겨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국가는 정당한 조직인가?”하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국가의 ‘비천한’ 기원”, “국가라는 괴물”, “반국가주의자들”, “민주주의는 희망의 언어인가?”, “국민의 국가의 주인인가?”, “국가의 딜레마”의 순서로 국가의 정체성을 정리해나갔습니다.
국가라는 집단형태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그렇게 생겨난 국가가 특히 다른 국가와의 충돌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하여 내세웠던 ‘국가주의’라는 개념의 정체, 그리고 국가라는 사회적 형태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장도 소개합니다. 소련의 사회주의체계가 붕괴된 이후에 자연스럽게 대세로 자리 잡은 민주주의가 과연 정답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 민주주의의 본질, 특히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리고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여 이상적인 형태의 정치체계가 되었어야 할 민주주의는 여전히 허점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국민이 과연 국가의 주인인가 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누구나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권력을 탐하는 자들도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내세웁니다. 하지만 권력을 쥔 자가 보기에 국민은 선동에 휩쓸리는 군중에 불과하고 권력의 들러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달콤한 언사로 국민들을 호도하여 권력을 쥔 자들 역시 과거의 독재자들의 행태를 닮아가는, 아니 더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그런데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북쪽에 세워진 국가는 일인독재체제이고, 남쪽의 역대 정권은 자유국가의 형틀을 갖추었지만, 이상한 나라라고 단칼에 정리하였습니다. 초대 대통령은 무능과 부패, 이어서는 철권통치를 휘두른 독재자로, 이어들어선 군사정권의 대통령은 임기 뒤에 감옥으로, 그 뒤로도 권력형 부패와 국기 문란으로 두 명의 대통령이 수감되는 등, 건국 이래 최고 권력자는 민주주의의 옹호자 김영삼과 김대중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삶을 정상적으로 마무리 짓는 행운을 얻지 못했다라고 하였습니다. 현 정권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언제쯤 현 정권에 대한 생각을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저자는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책을 읽는 이가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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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무사책방> 시리즈의 대단원을 장식하게 된 마지막 책은 홍일립 작가님의 [국가의 딜레마] 다. 그 누구도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대. 그런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국가라는 조직은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어쩌면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본 적 없는 '국가'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정말 우리는 국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둘러싼 국가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 해온 것일까.
국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국가는 과연 필요한가? 여러가지 질문을 앞에 두고 보니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지구상에는 분명 국가같지 않은 국가도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쿠데타로 인해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미얀마를 보라. 미얀마도 분명 국가이지만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그 누가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에 의하면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원칙을 명시하고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척도를 만족시키고 있는 나라는 200여 개의 국가 중 1/3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하지도 않는 국가. 작가는 우선 '국가의 기원'으로부터 국가의 실체를 파헤쳐보고자 한다. 원시국가에서부터 시작해 국가의 자연발생설, 자연상태를 곧 전쟁상태라 규정하고 이 전쟁상태를 종식할 유일한 해결책이 국가라 믿은 홉스의 이론과 루소가 제시하는 최초 국가의 단초, 오펜하이머의 늑대국가론, 다윈의 이론을 거쳐 국가주의, 반국가주의, 민주주의에 대해 살펴보는 과정. 작가의 마지막 질문은 '국민은 국가의 주인인가?' 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결국, 국가를 결정짓는 것은 국민이 아닐까. 국민이 국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올바른 국가의 방향을 고민하고 행동할 때 그 국가의 색이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국가 뿐만 아니라 국민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 국가에 있어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국가의 진화는 상대적 선을 추구하는 과정이며, 조직체의 정당성을 조금씩 제고하는 과정이다'라는 마지막 말씀처럼 국가는 더디게 나아가고 있다. 작가가 던진 국가와 관련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끝내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국가를 상대로 우리는 늘 궁금해해야 한다. 지금 이 국가는 정당한가. 읽는 동안에는 쉽게 읽었으나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어 쉽게만 느껴지는 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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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애초에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우선 홉스의 경우 발췌문에 언급한 자연상태를 무법천지라고 보았다. 달리 상상하지 않아도 본능에 충실한 양육강식 상태일거라 생각한다. 자유로운것은 좋지만 어느정도의 제재를 두는 것, 그것이 바로 국가라는 인의적인 상태다. 반면 루소는 애초에 자연상태라는 것이 실재하지 않으며 흄도 이에 동의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엄연히 따지자면 전쟁상태나 다름없다고 말한 홉스 또한 애초에 자연상태라는 것이 우리의 상상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루소는 문명의 발생이 바로 인간에게 소유라는 개념을 가지게 했고 그것이 시민사회 곧 국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제도와 체제, 시민과 사회라는 중립적인개념들이 결국은 분리와 차별에 기인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또 군중과 공중의 차이를 정신적 결합으로 본 타르드는 공중의 탄생 15세기로 보고 있다. 당시 인쇄술의 발명으로 성서 및 신문이 다량으로 보급되면서 계급에 의해 차단되거나 제한되었던 정보 및 지식의 전달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고루 퍼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성장한 시민들은 이성적 사고 및 사유능력이 고취되면서 '공중의 시대'로 발전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의 공급이 우리에게 가져온 변화만큼이나 놀랍지만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수위에 대중의 지배력이 여전하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내용도 대중에 의해 활성화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나라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국가든 권력을 잡기 위한 정치세력 간의 다툼이 있고, 정치권력과 시민사회 간의 긴장이 있고, 국민 사이에도 이해 충돌이 빈번히 일어난다. 국가는 온갖 형태의 분란이 일상화된 집합체이다. 347쪽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거나 하다못해 직장인들 사이의 점심시간에도 나라가 잘살기 위해 혹은 국민이 잘살기 위해 필요한 정책과 제도가 무엇인지 열변을 토하는 사람 혹은 상황이 존재한다. 저마다 자신의 불편을 바탕으로 그 불편만 해결되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처럼 말하지만 각 개인별 욕구와 불편이 다른 상황에서 완벽하게 누구에게나 좋은 국가가 가능할까. 현명하게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만한 정책을펼칠 수 있는 통치자가 나오면 가능할까. 하지만 애초에 그런 통치자가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느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민주주의라서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역설을 품는다. 어제의 정책이 오늘은 부조리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절대 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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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딜레마
사무사책방 시리즈 일곱 권 중 여섯 번째로 만난 책은 홍일립 작가의 <국가의 딜레마>이다. 평소 즐겨보지 않았던 인문학 분야의 책이라 너무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어려운 책도 있었지만 읽기를 잘 했다는 책도 있었다. 국가의 딜레마는 국가에 대한 이야기라 쉽지 않았지만 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존재했기에 국가의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국가가 있기에 내가 보호받을 수 있고 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 의심 없고, 당연하게 여겼던 국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이 책을 통해서다. 국가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자이고, 국가의 구성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국가가 과연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이 불만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국가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는 신석기 시대 최초의 촌락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도시국가가 생겨났고 그 국가에 맞는 법도 생겨났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애국심'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톨스토이는 애국심을 백해무익한 악의 감정으로 배척했다고 한다. 톨스토이에게 국가란 경찰과 군대로 입증되는 폭력조직이고 대다수 국민을 소수의 지배하에 묶어두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한다고 했고 국가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악의 근원이라고 했다. 국가의 철폐..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나라가 잘 되길 바란다. 국가는 애초부터 구성원들의 요구와 희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그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흉하게 변했고 현대 국가가 민주주의 정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국가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원리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해 제 기능을 하길 기대해본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 주시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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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딜레마 홍일립 Ι 다산북스 Ι 사무사책방시리즈
어릴 적, 특히 학생 시절 조회시간에 수없이 듣고 외쳤던 '국기에 대한 맹세'이다. 「국가의 딜레마」를 읽기 전에는 이 문구가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조차 해본적 없다. 오히려 어른이 된 지금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게 되는 경우도 손꼽을 정도이니 이 문구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의 전성기 때는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종교의식 같은 것으로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어디서든 어김없이 울려 펴졌다고 한다. 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국가에 충성을 다하라고 강요하는가? 도대체 국가가 무엇이길래?
국가론에 대해 정말 쉽고 깊이 있게 다룬 「국가의 딜레마」, 읽는 족족 왜 이해가 되냐며 신기해하면서 다 읽었다. 정치사회 도서 분야와는 친숙하지 않아 거의 그쪽으로는 읽은 책이 전무할 정도인 나조차도 재미있게 이해가 되니, 신기한 나머지 이 저자 완전 능력자라며 저자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국가의 딜레마」 2장의 첫 문장을 보는 순간 '정말 '최초의 국가'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느 나라인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겨 바로 옆에 있던 아이들에게 물었다. "선사시대 알죠?! 그때부터 네 땅 내 땅 하면서 싸우고 하다가 나라가 만들어진 거 아니겠어요?"라고 대답하는 아이, 네 땅 내 땅이라니 땅따먹기도 아니고 표현이 귀엽다며 웃어넘겼는데... 아니, 이게 답이랑 근접하다고?!
어떤 사람이 "이 땅은 내 것이다."라며 공동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자 순진한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단다. 그로 인해 특권을 가지게 된 그 사람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권위를 누렸고 그 특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세력을 만들어 나간다.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 시작된 전쟁과 범죄 그리고 살인, 영토 확장을 추구하며 인적·물적 자원의 약탈을 일삼던 수많은 국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소수의 무리에 의해 장악되어온 역사적 사실을 루소의 '최초의 사기꾼'을 등장시키며 재미나게 풀어놓아 더 쉽게 이해가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루소가 제시한 최초 국가, 헤겔의 국가 찬미, 국가보다는 개인이 우선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시민 불복종을 주장한 소로,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국가가 약탈과 정복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스푸너의 강도 국가론 등 다양한 국가론에 대해 만날 수 있다. 각자가 주장하던 국가론을 보며 지금 현재의 국가는 그 당시와 비교했을 때 어떻게 변화해 왔을지 떠올리며 읽는데 어떻게 그 당시와 바뀐 게 많이 없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국가는 항상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조직화된 폭력을 동원해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한다. 그리고 국가는 필요할 때마다 국민의 희생을 요구한다. 개인을 위해 존재해야 할 국가가 어느새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국민이 된 거 같다.
자신의 의사를 대변할 만한 사람을 찾아 뽑아 놓은 사람들은 자신과 정파의 이해득실을 따지기 바쁘고, 국가적 정책 과제를 심의하는 데서 이성적 숙의와 진지한 토론은 뒷전이다. 공공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 '대표자'의 자리에 직업적인 정치꾼 무리가 들어서 '국민을 위한 헌신'이나 '책임의 윤리'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기보다는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들 자신이 시민의 대리인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걸 잊고서 살아가는 거 같다.
선거일이 왔을 때 간혹 뽑을 사람이 없다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럴 때 다 나쁜 놈이지만 그중 덜 나쁜 놈으로라도 뽑아야 하지 않겠냐는 대답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란 국민의 이사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자들이 국민의 대표임을 자임하고 행정, 입법, 사법 권한을 행사하는 나라를 말한다고 한다.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면 권력의 남용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물론 정치적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소명의식을 갖고 책임의 윤리를 실천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손에 넣게 되면 가장 위대한 자유 투사라 해도 압제자로 변한다는 바쿠닌리의 말이 더 와닿는 건 왜일까?
국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실재한다고 국가의 형체를 통째로 담은 하나의 명문화된 문서 '헌법'으로 증명한다. 법위의 법, 법중에 가장 기본 법인 헌법! 국가 운영의 기본이고 국민과 국가와의 기본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헌법!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8차례를 걸친 헌법 개정이지만 권력자와 정치집단, 그리고 일부 법률 전문가에 애해 주도된 엘리트 개헌이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1968년에서 2002년 사이에 태어난 국민은 현행 헌법에 동의한 적 없다. 이 헌법 아래 살아가고 우리. 국가가 무엇이고 시민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헌법에 대한 공부 할 필요가 있으며 국민의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에 대해서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하며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자기가 사는 공동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각의딜레마 #홍일립 #다산북스 #리딩투데이 #리투지원도서 #철학사회도서 #국가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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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딜레마 - 국가는 정당한가 - 홍일립 지음 국가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국가는 마치 나를 위해 탄생하여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체가 없는 이 국가라는 이름은 생각만큼 친절하거나 아름답거나 선하지 않다. 국가의 완성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고대 국가 형성으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진화해 온 방향과 맞물려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변증을 통한 발전 과정을 쉽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특히 <국가의 딜레마>를 완독하는 시간 동안 스스로 정치사회 분야와 인권과 존엄권의 역사 분야에 진전있는 앎의 성과를 얻었다고 자부한다. 국가는 내 삶의 목적과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특히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종, 성별, 문화, 관습 등을 정리해 보면, 서로가 작은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공동체나 모임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어간다. 국가는 이 모든 구성원의 자유와 삶을 누릴 권리를 보호하는 울타리같은 개념이어야 하지 않을까. 국가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동안 국가는 전쟁과 억압, 통제, 강탈, 감시, 강제, 폭력 등과 같은 부정적인 면모와 동일시 된다. 국가의 국민을 통솔하는 리더들 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권력과 폭력을 정당화 하기 위해 국민의 눈을 가리는 국가의 이름을 이용할 뿐이다. 국가는 절대 선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실체 없는 허상일 뿐인 것이다. 인간의 진화 역사에 따라 발전하고 변모하는 것에는 그 시대를 대변했던 이념들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거나 당대 사상들을 주창했던 사상가들의 국가론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검증하는 동안 각 국가론의 한계점이 드러나기도 하고 이상적인 실현 가능의 열린 중재안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국가론들은 결국 하나의 길로 통하고 있었다. 국가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과 끊임없는 성찰이다. 국가 존재의 정당성은 결국 이 한가는 분명히 포함하고 있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평등하게 보호하고,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것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국가가 갖게 되는 권력은 반드시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동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국가의 권력이란 없으므로 내 뒤에 국가가 서야 하는 것이다. 국가는 내가 내린 결정에 의해 실천 방향이 결정되는 알고리즘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개인이 국가에 우선한다라는 사이다 발언을 통해 내가 국가에 대하여 좀 더 적극적 운영 자세와 항상 정당한가에 대한 감시 태도를 가져야 함을 깨닫는다.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사무사책방시리즈 #나의초라한반자본주의 #그어딘가의구비에서우리가만났듯이 #만인의인문학 #메멘토모리죽음을기억하라 #국가의딜레마 #보이지않는가위손 #공주는어디에있는가 #리딩투데이 #리투리포터즈 #인문학 #다산 #리투지원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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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인가 국가는 누구를 위해 있는 걸까?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국가는 필요한가? 국가는 그저 필요악에 의한 자연적 집합체에 불과한가?' 저자는 양식 있는 구성원이라면 의당 이 같은 의문을 품을 것이라며 프롤로그에서 말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에 대한 다양한 논점과 견해를 비교 나열하며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무지한 것에 한탄하며 많은 사람들이 자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필한 듯 하다. 국가의 '정당성', 현재의 민주주의 국가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국가는 정당한 조직인가? 출처 입력
저자는 국가를 설명하기 위해 '정당성'을 서두에 놓고 시작한다. 국가적 행위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물리적 강제력에 의해 실행될 경우, '국가적 행위가 정당한가'하는 '정당성 문제'를 초래한다. '정당성'이란 정치적 지배질서의 타당성에 대한 믿음이다. 국가권력은 폭력이 아닌 '정당성'에 의존할 때 진정한 권위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합법적으로 만들어진 규정에 기초하여 국가 대행자의 직무 권한이 정해지고, 국민이 그 법령의 정당성을 신뢰하는 한에서 국가는 국민에게 보편적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
헌법의 목적은 국가권력의 범위를 한정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다. 그렇기에 헌법의 압도적 권위는 국민의 동의에서 나온다.
저자는 '정당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국가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정의해주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국가가 성립된 이후부터 이 기준을 충족시킨 국가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헌법의 목적도 문서적, 개념적으로는 그럴 듯한 표현을 사용하여 포장하듯이 명제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그저 말뿐인 조항들, 멋들어진 수사 표현에 그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국가'의 개념은 무엇인가?' 국가의 기원에 관한 가장 평범한 견해는 '국가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즉, 국가의 자연발생적이며, 인간 본성에 따른 욕구 때문에 자연적으로 성립했다. 그러나, 자연발생설은 국가의 기원에 관하여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의존하는 평범하고 소박한 견해에 머루른다고 한다.
국가주의 vs 반국가주의 출처 입력
현대적 국가이론의 출발점인 홉스의 '사회계약' 이론은 국가주의 국가론을 주장한다. '국가주의'란 국가가 개인에 우선한다는 관념으로 제국주의, 민족주의, 국수주의 등을 말한다. 여기에 히틀러, 일본 제국주의, 무솔리니, 스탈린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반국가주의는 국가 속에 담긴 독과 악취를 고발한다. '선장이 없는 배의 선원'을 뜻하는 아나키즘이다. 이들은 국가는 강압적인 권위를 앞세워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한다. 즉, 사회의 모든 악인 국가를 철폐해야 사회악의 근원이 제거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톨스토이, <월든>의 작가 소로이다.
국가주의나 반국가주의나 흑백논리와 같이 너무 극단적인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국가주의에 관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몇몇 있었다. 과정, 결과, 현재까지 남겨진 이념을 통해 우리는 국가주의 사상의 무서운 면모를 보았다. 반국가주의는 소말리아 해적, 내전 등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정치, 국가, 사회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중도(中道)이 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란 국민이 의사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자들이 국민의 대표임을 자임하고 행정, 입법, 사법 권한을 행사하는 나라를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정당의 정치적 상업화로 변질되었으며 국가 구성원 전체의 권력이 아니라 소수자 권력으로 좌지우지 되니 바람직한 형태가 아니라고 저자는 우려를 표하며 비판하고 있다. 평소에 국가에 대한 궁금증과 지식이 없는 나에게 이 책은 또 다른 분야의 호기심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국가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을 정리해 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국가'에 대한 생각을 정립시켜주며, 국가를 향한 불편한 진실을 주목하게 해준다.
나는 이 책을 시작으로 비슷한 결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무솔리니, 스탈린에 대한 책도 찾아보려고 한다.
그동안 무지와 무관심 자세를 고수해 온 나 자신을 반성하며 사회, 정치적으로 깨우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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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라는 말은 두세 세기 전쯤에 만들어진 용어이다. 근대국가의 정치 이념이 인민의 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국가의 성원이 된 자연인은 국민으로 불렸다.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집합체로 국가의 구성원을 통칭한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생겨난지 오래되지 않았다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가의 구성원을 통칭한다고 하는데 소제목처럼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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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숭배하는 자는 숭고의 미를 발견했다면, 반국가주의는 국가 속에 담긴 독과 악취를 고발한다. 아나키즘은 '선정이 없는 배의 선원', 모든 정치조직과 권력를 부정하고 국가 자체를 반대한다. 무정부주의자에게 국가는 괴물과 같은 형상을 한 사회적 정의의 파괴자이다. 국가는 강압적인 권위를 앞세워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한다. 국가는 폭력을 항시적으로 사용함은 물론이고 대규모 약탈을 목적으로 한 전쟁도 불사한다. -> 앞에서는 국가주의자 , 여기서는 반국가주의자 관점과 이론도 설명해주니 비교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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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언스보다 더 재미있고 가독성 좋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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