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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알 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구슬비> 너무나 유명한 동요지요.
초등학교 다닐 때 배웠는데 가끔 생각날 때마다 거미줄에 맺히 빗방울을 어쩜 저렇게 예쁘게 표현했을까하고 절로 감탄하게 되는 동요랍니다.
지금도 초등학교 음악책에 실려있는 이 노래의 가사가 원래는 시였다고 합니다.
이 책 <구슬비 소녀>는 구슬비의 가사를 쓰신 권오순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를 절던 시인께서는 학교를 다니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도 일본 말과 일본 글을 가르치는 학교에는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신데다 학교에 가면 놀림을 받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으로
집에서 한글을 배우고 익혀 밤을 새워가며 온갖 책들을 섭렵하셨습니다.
또한 몸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바느질을 배워 가족의 옷을 직접 짓는 분이셨어요.
시인님의 애국심이 깊어지는 계기가 된 것이 소파 방정환선생님께서 편찬하신 <어린이>잡지 였습니다.
잡지를 읽으며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시인의 꿈을 지니고 잡지에 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글을 보석처럼 갈고 닦는 것이 항일운동이자 독립운동이라는마음으로 시를 쓰신 권오순 시인님.
시인님같은 분들 덕분에 우리의 글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시인님의 간절하신 염원이 담겨있기때문에 보석처럼 아름다운 <구슬비>가 나온 것이겠지요.
자칫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던 권오순 시인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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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어린이 < 구슬비 소녀 >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 구슬비 >의 시를 쓴 권오순 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답니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 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 쓰고 아이 데려다 줄때 항상 아이랑 부르는 노래예요~ 이 노래가 원래는 시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시를 쓴 작가가 권오순 시인^^ 정말 많이 부르는 노래였는데 정작 이 노래가 시였었다는 것도 작가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요. 이 책을 통해서 권오순 시인의 구슬비 이야기를 알게 되니 이 노래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책의 시작은 권오순 시인의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시작된답니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았던 오순이는 한쪽 다리를 절게 된답니다. 어렸을 적부터 순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 많은 시를 쓴 권오순 시인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요. 그녀가 학교를 가야할 당시에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학교에서는 일본말과 일본글을 강제로 배워야 했고 한글을 쓸 수 없었죠. 그리고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것도 싫었던 그녀는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치고 아름다는 시를 쓰게 된답니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무엇이든 열심히 했던 그녀가 참 멋지더라구요.
그럼 그녀가 처음 시를 쓰게 된건 언제일까요? 아버지가 읍내에서 사다준 책 한권 방정환 선생님이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면 내일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독립의 꿈을 심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만들게 된 <어린이>라는 잡지였어요~ <어린이>의 애독자가 된 오순이는 그곳에 실린 동시와 동화를 보고는 직접 동시를 써서 출판사에 보내게 되고 그 동시가 실리면서 자신의 글에 자신감이 생겼고 오랫동안 시를 적는 시인이 될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순탄치 않았어요. 남북분단의 아픔도 겪었고 부모님과의 이별, 전쟁도 여러번 겪으면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는 멈추지 않았고 그래서 오늘날 그녀의 아름다운 시를 만날 수 있는거겠죠? 이 책에서는 수많은 권오순 시인의 시를 만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구슬비>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노래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담고 있어요.
부록에서 권오순 시인의 사진과 권오순 시인의 동시집, 그녀의 글씨들, 권오순 시인 연보를 담고 있답니다.
저 어렸을 적부터 많이 불렀던 <구슬비> 노래를 쓴 시인을 알게 되고 그녀의 삶을 알게 되서 넘 좋았던 책이였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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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책읽는 별셋이와 엄마, 별셋엄마에요. 어렸을때 종종 부르던 동요를 만든 시인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나봤어요. 잘 알려진 예쁜 노랫말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시를 지은 분이 참 궁금했어요. 바로 소개해드릴게요.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이 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구슬비
구슬비 소녀 전병호 글 고공이 그림 가문비어린이 즐거운 동화여행129
표지를 살펴보았어요. 비가 내리는날 한 소녀가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쓰고있어요. 바로 권오순 시인이지요.
이책을 지은 전병호 지은이와 구슬비 소녀 권오순 시인의 이야기는 각별해요. 전병호 지은이가 청년때 권오순 시인을 만났다고해요.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거같아요. 머리말에서 나온 맑은 영혼을 지키며 살아오신분이란 말이 책을 덮으면서 저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차례를 살펴볼게요. 1.학교에 가지 않겠어요 2. 한글대사전을 사다 주세요 3. 한글로 시를 쓴다는 것은 4.한글학교를 열다 5.반동분자, 당장 잡아 가두겠다! 6. 죽음의 고비를 넘고 넘어 7.전쟁고아를 돌보는 보모가 되다 8.구름골 오두막 이렇게 여덟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어요. 그림이 앞에 그려져 있어서 쉽게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있었어요.
한장 한장 읽어나가면서 권오순 시인의 생애가 펼쳐지는거 같았어요. 일제 강점기를 거쳐서 해방 그리고 6.25등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선하게 살아온 일생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어요. 아이도 "엄마 디게 이쁜 시다" 하면서 권오순 시인의 구슬비시를 읽었어요.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 엄마 권오순 시인은 정말 대단한거같아요. 가족을 위해서 바느질도 하고 사람들에게 한글도 가르치고 전쟁고아를 돌봐주고 시도 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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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슬비 소녀/권오순 시인의 구슬비 이야기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구슬비 라는 동요 가사지요. 저는 동요로 알고 있었는데요. 구슬비는 처음부터 동요는 아니였어요. 권오순시인이 쓴 동시 인데요. 권오순시인은 1937년 일본의 탄압으로 잡지가 폐간되자 자신도 절필하게 되요. 시인의 대표작이 된 ''구슬비''는 문예지가 폐간되어 폐기하게 된 원고를 안타깝게 여긴 ‘이 선생님’이 만주 용정으로 가지고 가서
''카톨릭 소년''에 게재한 것이죠.
그뒤 구슬비는 해방 후에 작곡가 안병원 선생이 작곡하여 보급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네요. ''구슬비소녀'' 라는 책은 우리가 잘알고있는 구슬비라는 시를 쓰신
권오순시인님에 대해 알아볼수 있는 책이예요.
구슬비 라는 동시는 잘 알지만 권오순 시인에 대해서는 아는게 아무것도 없죠. 그럼 권오순 시인의 인생을 조금 살펴볼까요. ![]() ![]() ![]() 191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권오순 시인!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게 되었어요. 시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을때는 일본식 교육을 받지 않겠다며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독학을 하였죠.
1923년 방정환 선생님이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면 내일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독립의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린이'' 라는 잡지를 만들었어요.
권오순시인은 이때부터 ''어린이'' 애독자가 되었죠. 빼앗긴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한 오순은 한글대사전을 읽고 또 읽으며 우리말,우리글을 사랑했지요.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은 ''어린이''에 시를 보내게 되고 권오순시인이 보낸 동시가 입선동요란에 뽑히게 되죠.
그뒤로 열심히 시를 더 쓰게 되었어요. ![]() ![]() ![]() 구슬비라는 시도 어느날 시인이 장독대 앞 작은 꽃밭에서
풀을 뽑다가 싸리나무 싹이 돋아난것을 보고...
싸리잎에 이슬비가 내려 빗방울이 맺힌것을 보고...
거미가 처마 끝에 쳐놓은 거미줄을 보며 썼어요.
구슬비 말고도 좋은 동시들이 많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쁜 글들에 미소지어지더라구요. ![]() ![]() ![]() 해방된 후 황해도 해주에서 살고 있던 권오순시인은
어느 날 밤 목숨 걸고 삼팔선을 넘어온 언니에게
서울에서 구슬비가 작곡되어 널리 불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월남해요.
순탄치만은 않은 삶...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시인은 천주교에 귀의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 전쟁고아를 돌보는 보모로 살았지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시를 남기기도 하고 남북분단의 아픔을 시로 남기기도 했어요. ![]() ![]() ![]() 구슬비 소녀 책은 청년 시절에 권오순 시인을 뵙고
함께 문단 활동을 해왔던 전병호 시인이 썼는데요.
권오순 시인의 삶과 문학을 자신만큼 아는 사람이 없기에 자신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네요.
덕분에 우리가 잘알고 있는 구슬비 동시를 지으신분에 대해 이렇게 알아갈수 있어서 좋았네요.
권오순시인처럼 좀더 우리글, 우리말을 사랑하고 이렇게 한글로 예쁜글,멋진말 할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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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 동요로 잘 알려져 있는 이 동시는, 사실 권오순 시인의 작품입니다.
동시 구슬비도 권오순 작가가 일본의 식민지배와 8.15해방,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 우리글을 끝까지 지키고 다듬어 나가는것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애국운동이라 여기며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이 책은 권오순 시인이 어떻게 구슬비를 지켜냈는지 그녀의 굳건한 삶을 엿볼수 있습니다.
#구슬비소녀 #전병호 #가문비어린이
어린 오순은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일본아이들이 절뚝발이라 놀릴게 뻔했고 우리말은 쓸수없고 일본말과 글을 배워야했기에 오순은 집에서 독학으로 한글과 그림공부를 하게 됩니다. 다리를 절게 된 자신이 속상했지만 그때부터 한글을 깨치며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어버리게 되죠.
오순은 온가족들 옷을 다 만들어 줄 정도로 바느질도 수준급이었어요. 바느질 삯으로 모든 돈으로 한글대사전을 사서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다 합니다.
서울로 시집간 언니를 그리워하며 쓰기 시작한 시. 잡지사 '어린이'에 여러 작품을 투고하여 실리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마저 일본의 억압에 의해 폐간되고 다시 매일신문사 어린이글짓기란에 많은 작품을 싣어냅니다. 일본의 억압은 나날이 심해지며 모든 잡지가 폐간되고 오순은 이에 무척 상심하게 됩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소련군의 행패로 또 다시 사람들은 힘들게 생활했어요, 오순은 동네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기 위해 한글학교를 열게 됩니다. 하지만 이마저 오래가지 못하고 공산당은 오순네 가족을 마을에서 쫒아내죠.
어린나이에 일본의 탄압을 견뎌내고 수많은 전쟁에 목숨이 내놓아진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버텨내며 재속수녀가 되어 전쟁고아들까지 살피고 기도와 삯바느질로 겨우 삶을 버텨낸 오순.
그녀가 쓴 많은 시들의 구름, 강물이란 단어를 보니 그녀가 외롭고 힘들게 살아왔음을 느낄수 있어 더 마음이 아팠어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아픈 시대를 살았지만, 강인한 정신으로 한글을 지켜내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떠나신 권오순 시인. 구슬비를 아는 우리 아이들, 한국사를 배우는 많은 어린이들이 읽으면 너무 좋을 책입니다~
** 가문비어린이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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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
권오순 시인의 구슬비 이야기
구슬비 소녀
글 : 전병호 / 그림 : 공공이 출판사 : 가문비어린이
- 즐거운 동화 여행 129 - 소년한국우수어린이도서
오순은 다정한 부모님과 언니 둘, 여동생 둘이 있다. 오순은 아기였을 때 소아마비로 인해 평생 다리를 절어야 했다. 오순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을 때, 일본말과 일본글을 가르치는 학교에는 가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보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생각이 성숙했던 오순은 다리를 저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웠지만, 대신 공부를 더 많이 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순은 한글을 읽고 외우고 썼다.
하루는 아버지가 읍내에서 책을 한 권 사 갖고 왔다. 방정환 선생님이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면 내일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독립의 꿈을 심어 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만든 잡이 '어린이'였다. 그때부터 오순은 어린이의 애독자가 되었고, 한 푼 두 푼 바느질해서 모은 돈으로 한글 대사전을 사서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아름답게 갈고 다듬어 쓰는 것, 오순은 이것이 불구의 몸을 가진 자기가 할 수 있는 항일 운동이며 독립 운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순은 자신의 마음을 시로 쓰는 것을 즐겨했다. 서울로 시집 간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로 썼고, 동생들과 즐겁게 들로 소풍 갔던 일을 시로 썼고, 뜰에 핀 꽃을 보고 시를 썼고, 날아가는 새를 보고도 시를 썼다. 오순의 시가 어린이에 실리자 더 열심히 시를 썼다. 하지만 일본 순사의 방해로 잡지사인 개벽사는 문을 닫고 어린이도 폐간되었다. 어린이를 담당하던 이 선생님이란 분이 매일신문사로 자리를 옮겨 오순의 시를 신문에 실어주었다.
1937년 오순이 구슬비를 써서 아동문예에 보냈을 때, 일제의 탄압으로 잡지사가 문을 닫았다. 이 선생님은 구슬비 원고를 갖고 만주 용정으로 갔다.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이 동시를 많이 발표한 가톡릭 소년을 찾아가서 구슬비를 꼭 실어 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다.
이 선생님은 오순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갈고 다듬어 시를 쓰는 것이 곧 항일운동이며 독립운동이라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구슬비가 잡지에 발표되게끔 힘 쓴 것이다. 오순의 간절한 뜻이 하늘에 닿았는지 해방 후에 작곡가 안 병원 선생이 구슬비를 읽고 작곡해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해방이 되었다, 대한독립만세!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북쪽에서 소련군이 밀고 내려왔다. 오순은 구슬비가 노래가 되어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어머니와 고향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남한에서도 오순의 삶은 힘들었다. 북한 공산군이 남한으로 쳐들어왔다. 오순은 저는 다리로 먼 길을 걸을 수 없어 피난도 가지 못하고 숨어 지냈다. 언제 폭탄이 날아와 곁에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순은 두 번이나 공산군이 점령했던 서울에서 살아남았다. 폭탄 맞아 지붕이 날아간 방에서도, 공산군에게 끌려갈 뻔 했다가도 살아남았다. 오순은 어머니와 고향이 그리워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전쟁고아를 돌보며 살았다. 그리고 계속 시를 썼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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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구슬비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나 또한 임신했을 때 태교로 많이 불렀고, 우리 딸도 흥겹게 부르고는 한다. 둘이 같이 부를 때 정말 신 난다. 음을 빼고도 노래하듯 리듬감이 살아있는 가사가 재미있고 표현도 무척 예쁘다. 행복감이 잔뜩 느껴지는 이 구슬비의 지은이를 몰랐다, 여태…. 그리고 이토록 큰 아픔과 슬픔을 가진 삶을 살았을 거라고는 더욱 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글을 보석처럼 갈고 다듬어 시 쓰는 일에 평생을 바친 권오순 시인, 시인의 굳은 마음과 행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이러저러 이유로 쉽게 우울해 하는 내 자신을 반성한다. 우리 나라가 건실하게 존재하고 우리의 말로 자유롭게 대화하고 우리가 주인인 이 땅에서 실컷 웃으며 하루를 보낸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이런 오늘은 선사해주신 권오순 시인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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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순 시인의 「구슬비」이야기
권오순 시인이 살았던 당시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때여서 소아마비에 걸리면 2주일 정도 앓다가 죽는 병이었다. 시인은 죽음은 면했지만 평생 다리를 절면서 살아야 했다. 시인은 일본말과 일본글을 가르치는 초등학교에 입학 하지 않겠다고 한다. 집에서 한글 공부와 그림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어린이>를 읽게 되었고 애독자가 되었다. 오순은 <어린이>에 자신이 쓴 시를 투고 하고 만 14살에 뽑였다. 1937년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했다. 일본은 전쟁에 이기려면 물자를 절약해야 한다며 모든 잡치를 폐간시켰다.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던 <아동문예>는 폐간 하였다. 1938년 일본은 학교에서 아예 한글을 배우지 못하게 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름도 성도 모두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했다. 그때 나라 안에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천재 소설가, 천재 시인, 민족 지도자 등이 많았다.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이내 일본의 앞잡이로 변해갔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에서 소련군이 밀고 내려왔다. 북한 공산당은 1946년 '토지 개혁'을 발표하고 논과 밭을 빼앗아 갔다. 당시 오순네는 해주에 살고 있었는데 북한 공산당이 오순의 아버지의 논과 밭을 모두 빼앗았다. 남쪽에 내려와서 무려 열한 번이나 이사를 했다. 집주인이 해마다 방세를 올렸기 때문이다. 바느질해서는 서울 방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어느 건축가 부부의 도움으로 충청도의 구름골 천주 교회 옆에 오두막이 생겨 거기서 생의 마지막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책속에는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까지 쓴 다양한 시들의 전문이 수록 되어 있다. 아름다운 우리 말로 쓴 그녀의 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제공하는 듯 하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꿋꿋하게 살아간 그녀의 모습은 다시금 진정한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시들로는 <하늘과 바다><봄> <하늘 그림자> <빗방울> <구슬비> <꽃나무 맘마> <소년 행진곡> <들국화 핀 내 고향> <풀각시> <자유의 다리에서> <하얀 새벽길> <통일로를 달리면> <휴전선 비둘기> <돌배꽃 구름> <새벽숲 멧새소리> <산속 오두막> <하늘 어머니께> <이슬처럼>가 있다. 어린 시절 동요로 불렀던 <구슬비>의 시인을 이제야 알게 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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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때 권오순 시인을 찾아뵈었다는 전병호 시인이 글을 쓰신 책 '구슬비 소녀'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이렇게 시작하는 구슬비 노래가 바로 권오순 시인이 지은 구슬비라는 시 입니다.
이 노래는 무척 유명한데 정작 어떤 분이 쓰셨나는 몰랐는데 이 시를 쓰신 분이 바로 구슬비 소녀라고 하니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밭둑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고 이틀 동안 깨어나지 못했던 아기. 간신히 깨어났지만 오랫동안 앓아누워서였을까. 일어서 걷지를 못했는데 알고 보니 소아마비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을 받게 되었어요.
오순이는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되어서도 일본말과 글을 가르치는 학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고 집에서 공부를 했어요. 다리를 절었지만 공부를 더 많이 하자고 생각하며 책에 푹 묻혀 살았다고 합니다.
바느질을 배워 가족들의 옷을 입혔고 동생 옷도 만들어서 입힐만큼 솜씨도 좋고 마음이 착한 분이었네요. 그런데 일본의 탄압이 심해져서 몸이 아파 병원에 가려고 버스를 타려고 하니 한복을 입어서 버스를 타지 못하게 했어요. 그때문에 몸빼를 입게 되는데 이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안좋았나를 알게 해줍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가 사다주신 <어린이>라는 잡지를 읽고 애독자가 되었고 빼앗긴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다가 바느질을 해서 모은 돈으로 [한글 대사전]을 사게 됩니다. 피부병으로 인해 온천에 갈 때도 한글 대사전을 가지고 다녔다고 하니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어요.
1933년 5월호에 14살 때 동시가 실리기도 하고 더 열심히 시를 썼다고 하는데요. 위의 시를 읽어봐도 마음이 잔잔해지면서 따뜻해지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어린이> 잡지는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간신히 발행하고 있었는데 일본 순사가 원고를 모조리 압수해가버려 책이 나오지 못했고 잡지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하여 눈물을 삼키면서 답장을 쓰게 됩니다. 이 당시 상황이 좋지 못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틈틈히 모은 돈까지 선생님께 보내드리는 마음이 참 아름다워요.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가진 분이라 그런지 고운 시들도 많이 쓰셨는데 그중의 하나가 우리가 알고 있는 구슬비입니다. 지금 읽어봐도 참 멋진 시죠.
1937년 7월 7일에는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면서 전쟁에 이기려면 물자 절약을 해야한다며 모든 잡지를 폐간시켰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름도 성도 모두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했답니다. 그야말로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란...
1945년 8월 15일에는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행복할 일만 남을 줄 알았는데 북쪽에서 소련군이 밀고 들어오면서 우리나라가 둘로 나뉘게 되었고 해방이 되자 북한 공산당이 오순의 아버지가 절약해서 산 논과 밭까지 빼앗기게 되었어요.
오순은 그 와중에도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게 되고 한글 학교는 비록 오래 가지는 못했으나 그 시간이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이후 오순네 가족은 빈몸으로 마을을 떠나야했거든요.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시기. 고통과 목숨의 위협까지도 느꼈던 살벌한 시간들.
후에는 삯바느질을 해주고 품삯을 받아서 생활을 했는데요. 어려움 속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워요.
시인은 돌아가셨지만 그 분의 시들은 이 땅에 남아서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권오순 시인의 구슬비 이야기 구슬비 소녀는 소년한국우수어린이도서로 그 당시의 생활상과 삶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더불어 권오순 시인의 주옥같은 시들을 만날 수 있고 어떤 삶을 사셨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느낌을 적은 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