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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 ]
어릴 적엔 강 건너 산비탈 마을 기차가 지나갈 때 손 흘들었지 창밖으로 모자를 흔들던 이가 바람에 모자를 놓쳤을 때 보기 좋았지
어른이 되어 기차를 타면 창밖으로 모자를 흔들고 싶었지 강 건너 앵두꽃 핀 마을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 창밖으로 하얀 모자를 흔들다 명주바람에 놓아주고 싶었지
모자를 열개쯤 준비해 강마을 아이가 손을 흘들 때 하나씩 바람에 날리는 거야
KTX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지 손을 흔드는 아이도 없지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 사람은 좀 느리게살아야 해 사람이 기차고 기차가 사람이야 미친듯 허겁지겁 사는 거 부끄러워
시속 삽십 킬로미터면 강마을 아이들과 손 흔들 수 있어 시속 이십 킬로미터 구간에서 초원의 꽃들과 인사 나눌 수 있지 시속 십 킬로미터면 초원의 소들에게 안녕, 무슨 풀을 좋아해? 물을 수 있어
목포에서 신의주 6박 7일에 달리는 거야 우리나라 강마을 아이들 모두 모여 하얗게 손 흔들다 모자를 찾으러 강물 속 풍덩 뛰어들 수 있게
[ 꽃눈 ]
3월에 꽃눈 온다 누이야 청국장을 끓이자 바람 든 무 숭숭 썰어 넣고 국 멸치 대구리 큰 놈으로 한줌 넣고 구례장에서 사 온 두부 한모 파 뿌리 숭숭 썰어 넣고 오곡밥 한상 차렸으니 영변 약산 사람아 진주 와본 통영 지심도 미룩도 청산도 사람아 다들 밥상머리 모여라 3월에 꽃눈 온다 청국장 냄새 펑펑 천지에 꽃눈 온다
[ 비 아버지 ]
비 오시네
염병 처먹을 넘 제명대로 못 살고 폭 꼬꾸라질 넘
어머니 누굴 기다리시나 밤새 들리는 저 욕 소리 마른 들에 스미는 저 빗소리
오살넘 워디서 지랄허구 자빠졌능가 날 여태 데릴러 오지 않고
천지사방 어머니의 따뜻한 욕 오시네
여든일곱 어머니 대청마루에 서서 스무살 적 손 내미네
마른 손닥 위 빗방울 하나 툭 떨어지네 스무살 비 아버지 어머니 손에 입맞춤하네
[ 그리움 ]
달빛 하얀 밤
두엄자리 곁 분꽃 피었다
오래전 당신이 똥 눈 자리 그자리가 좋아서 나도 쭈그리고 앉아 똥 누었지
함께 눈 세월의 똥
그립고 아득하여라 때로는 별이 잠긴 호수가 되고 불칼이 되고 하얀 물고기가 되고
당신이 똥 누던 소리 속으로 분꽃처럼 우수수 별들 쏟아지고
[늙은 시인은 새 시집 읽는 게 두렵지 않다 ]
늙은 시인이 종이 가방을 들고 강을 따라 걸어간다
수양버들 가지 사이 밀화부리 노래가 맑다 시인이 수양버들 아래 앉아 오랜 동무의 노래를 듣는다
시인이 종이 가방에서 시집 한권을 꺼낸다 첫 장을 찢어 종이배를 접는다 종이배는 강물을 따라 졸졸졸 흐른다 시인이 다른 시집의 첫장을 찢어 종이배를 접는다 종이배는 물살을 따라 명랑하게 흐른다 일곱권의 시집으로 하나씩의 종이배를 접었을 때
염소가 왔다
염소는 음매 배가 고프다 염소에게 첫 장이 없는 시집을 준다 염소는 시집을 먹으며 웃는다 시집을 열심히 먹으면 언젠가 자신도 종이배가 되어 강을 따라 흐를까 생각한다
종이배와 염소가 있으니 시인은 새 시집 읽는 게 두렵지 않다
... 소/라/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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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시인이 새로 내놓은 시집, 어떤 다른 말이 필요할까. 그냥 읽는다. 이번에는 어떤 노래를 들려주시려나. 가벼운 듯 경쾌한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어조는 여전히 그렇게 들리는데, 읽고 젖는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경건해지고 숙연해진다. 그래, 우리네 현실이 이러했던 거지, 이걸 자꾸만 잊고 사는 거지, 남북이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는 궁극의 해결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자꾸만 까먹는 거지, 그리고는 딴소리만 자꾸, 자꾸자꾸 하는 거지.
이번 시들 안에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한 편 한 편이 드라마처럼 영화처럼, 한 장면 안에서도 여러 장면으로 나뉘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사연을 전해 준다. 마음 아픈 이야기가 많고, 알아야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몰라도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알고 난 뒤의 삶은 알기 전과 다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아픈 채로 따라 읊어 본다. 언제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오나, 오기는 오나, 와야 하는데, 올 것을 믿는데, 너무도 천천히 오고 있어서 못 느끼고 있는 것일 뿐, 이미 와 있는 것이겠지? 시인이 이렇게나 간절하게 노래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이련만.
시가 끝난 자리에 시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어떻게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는지 배경이 나타나 있다. 따로 산문집으로 엮을 수도 있었겠는데, 선물처럼 와 닿은 글이다. 신춘문예 당선작인 '사평역에서'가 새롭게 읽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시집에서 남북한의 모습을 한데 모아 놓은 뜻도 알 수 있게 된다. 끝내 모을 수밖에 없었을 시인의 사명 같은 의지, 애처로운 듯 보여도 굳건히 지녀왔을 오랜 소망을.
시인의 말처럼 독자인 나도 시가 방패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 무서운 총도 칼도 한낱 욕설이나 악플까지도 다 막아 주는 방패가 되기를, 정녕 바란다.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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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시 창작을 가르치던 시인은 금년 2월 정년을 맞았다. 간혹 캠퍼스와 인근 식당에서 만나던 그의 모습을 앞으로는 좀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년을 앞두고 새로이 펴낸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읽다가, 문득 시인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작품을 발견했다. ‘세월’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오랜 '세월' 시를 쓰면서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쓴 것이라고 짐작된다. 처음 시를 쓰면서 주변의 '하얀 민들레'를 비롯한 모든 것에 시선을 던지다가, 문득 꽃이 핀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던 소년은 아마도 처음 시를 쓰던 시인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리고 '천지사방 꽃향기 가득'한 세상을 '걷다가 시 쓰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밤을 맞은 시인이 아침과 무지개를 그려봤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제는 '무지개 뜬 초원의 간이역 / 이슬밭에 엎드려' 시를 쓰는 '한 노인'은 지금의 시인을 형상화한 것이리라. 자신의 시처럼 늘 넉넉한 마음을 사람들과 세상을 맞는 시인의 일상에 행복이 깃들기를 빌어본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하다가, 관심이 많이 갔던 몇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웃고 있군요 샌들을 벗어 드릴 테니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걸어보세요 (곽재구의 '채송화' 전문)
이 시집의 맨 처음에 실린 작품인데, 단 4줄로 이런 시를 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인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월 퇴직을 해서 이제 '자유인'이 된 시인의 세상을 보는 관점을 읽어낼 수 있을 듯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게 핀 채송화를 보고 느낀 시인의 감정이 그대로 잘 묻어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채송화가 활짝 핀 모습이 마치 시인에게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군요'라고 말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항상 웃는 모습의 시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자는 아마도 바닷가에 핀 채송화를 보고 이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라 짐작된다. 꽃에 시선을 빼앗긴 화자에게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는 듯, 꽃은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걸어보'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인의 감성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나는 강물을 모른다 버드나무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둘이 만나
강물은 버드나무의 손목을 잡아주고 버드나무는 강물의 이마를 쓸어준다
나는 시를 모른다 시도 나를 모른다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는다
어릴 적 아기 목동이었을 때 소 먹일 꼴을 베다 낫으로 새끼손톱 베었지 새끼손톱 두쪽으로 갈라진 채 어른이 되었지
시가 내 새끼손톱 만지작거리며 괜찮아 봉숭아 물 들여줄게 한다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한다 흐르는 원고지 위에 시를 쓴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것이다 (곽재구의 '세상의 모든 시' 전문)
어떤 이들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알고 있노라 떠벌리기도 하지만, 세상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시인은 시조차도 바로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시를 모른다 / 시도 나를 모른다'고 강조하면서, 시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를 창작한다. 굳이 '시가 이것이다'라고 정의하지 않아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 비친 모습을 그려낼 뿐이다. 그렇게 시를 쓰다 보면 마치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아서 새로운 작품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때로는 '내 새끼손톱 만지막 거리며 / 괜찮아 봉숭아 물들여주게' 하는 것도 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토로하고, '흐르는 원고지 위에 쓰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흘러서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는 것이 시인의 소망이듯, 나도 역시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 시들을 읽으며 살아갈 것이다.
파수강 칠십리 겨울비 오네 영변 약산 사오십리 삭주 구성 칠팝십리 누가 접었나 나뭇잎 배 낮달 동무 되어 흐르는데 얼굴이 파란 새가 남으로 가는 영을 넘네 (곽재구의 '파수강 칠십리' 전문)
이 작품의 제목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 있다. "파수강 : 해방 이전 청천강상류를 파수강이라 불렀다. 정주에서 도보로 한나절 길.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는 파수강 변에서 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는 내용이나 제목에 붙은 주석으로 보나 김소월을 떠올리며 지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3행의 '영변 약산'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에 언급된 지명이며, 4행에서 언급된 <삭주 구성>이라는 제목의 시도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소월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을 꿈꾸고 작품 창작을 시작했다는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5행과 6행에서는 윤극영의 동요 <반달>을 연상시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남으로 가는 영을 넘'는 '얼굴이 파란 새'는 아마도 시인이 그리는 소월의 모습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우리고물상 지나 용당식물원 지나 낙원주유소 담장 위 노란 호박꽃 어린 태양의 축제 같아라 시가 찾아와 깜빡이등 켜고 길가에서 시 쓰는데 경찰이 달려오네 주정차 금지 구역 열심히 설명하는 젊은 경찰에게 면허증을 건네니 뭐 하셨소? 묻네 호박꽃이 좋아 시를 쓰는 중이었소, 하니 호박꽃이 좋으오? 또 묻네 아니오 평소엔 자두꽃을 좋아한다오 그가 천천히 면허증을 건네주며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오, 하네 (곽재구, '자두꽃 핀 시골길' 전문)
이 작품에 담긴 상호들은 나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순천을 가로질러 흐르는 동천가의 한적한 길에 위치한 간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근의 아파트 공사로 인해서 교통량이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자동차 통행도 그리 많지 않았던 길이다. 간혹 고가로 지나는 기차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지만, 차를 타고 그 길을 가다 보면 인근에 핀 꽃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아마도 시인 역시 차를 타고 가다가 처음에 마주친 '낙원주유소 담장 위 노란 호박꽃'을 보며, '어린 태양의 측제 같'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순간 문득 '시가 찾아와 깜빡이등 켜고 / 길가에서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서 그려질 듯하다. 그곳에 '주정차 금지 구역'이었던 듯, 시인은 여기에서 경찰과의 대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호박꽃이 좋아서 시를 쓰는 중'이라는 시인의 설명에, '호박꽃이 좋으'냐고 묻는 경찱과의 대화는 아마도 시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장면일 것이다. 그러면서 '평소엔 자두꽃을 좋아한다'는 시인에게, 면허증을 거네주며 하는 경찰의 한 마디.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라는 기분좋은 대화로 작품은 끝맺는다. 시인의 시를 쓰는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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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시인의 글을 읽으면 가슴 한 켠 묵직한 그리움과 따뜻함이 교차한다. 그래서 많이 좋아한다. 산문도 시집도 좋다. 머리로 이해되기 보다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나도 모르겠다. 곽재구 시인의 글(시)만 읽으면 그렇다. 뭣이든지 다 쎄~하다. 뭉클함이다.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 이다. 시인의 사연이 담긴 글과 글 속에서 호올로 빛나는 詩의 향연. 곽재구 시인의 수필을 먼저 알았다. 그리고 그 수필 속 액자처럼 환하고 밝고 아련한 시어들을 만났다. 반갑고 그리운 사람이 있었고, 사연 깃든 장소가 거기에 있었고, 추억이 있었다. 잘 버무려져서 시인의 언어로 재탄생되었다.
주말에 우리 아파트에는 음악 DJ가 있다. 점심 지나고 3~4시 즈음 볕이 가득 들어오는 한나절에 음악이 울려퍼진다. 울림통이 큰 아주 빵빵한 전축 소리가 한낮의 적막을 깨운다. 나오는 음악도 아주 다양하다. 70,80 음악 뿐 아니라 올드 팝송과 클래식 음악까지......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음악에 관한 깊이가 있구나! 나도 모르게 그 음악에 빠져든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이 소음을 만들구나 싶었는데......... 이제 주말마다 멋진 전축에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허전하다. 낮잠이 스며들기 딱 좋은 시간인데, 울 아파트 DJ가 들려주는 음악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곽재구의 시집을 읽으니 더욱 아련함으로 들어간다. 따가운 볕이 베란다 창으로 뜸뿍 들어오고, 빨래도 잘 마른다.
---♠ 세상의 모든 시 ♠--- 곽재구
나는 강물을 모른다 버드나무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둘이 만나
강물은 버드나무의 손목을 잡아주고 버드나무는 강물의 이마를 쓸어준다
나는 시를 모른다 시도 나를 모른다
은하수 속으로 날아가는 별 하나 시가 내 손을 따뜻이 잡는다
어릴 적 아기 목동이었을 때 소 먹일 꼴을 베다 낫으로 새끼손톱 베었지 새끼손톱 두쪽으로 갈라진 채 어른이 되었지
시가 내 새끼손톱 만지작거리며 괜찮아 복숭아 물 들여줄게 한다
나는 내 시가 강물이었으면 한다 흐르는 원고지 위에 시를 쓰다 저녁의 항구에서 모여드는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시인이 어떤 시를 쓰야 하는지 이해하기 쉽게 시로 표현했다. 이런 시인의 시라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까! 흐르는 강물을 원고지 삼아 시를 쓰고, 저녁 어스름한 불빛 속 항구에서 세상의 시를 읽는 삶. 곽재구 시인의 삶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시였다. 문득 그리움과 고독, 외로움과 따뜻함이 교차한다. 이런 감정을 더 느끼고 싶어서 시를 찾고 읽게 된다.
---♠ 자두꽃 핀 시골길 ♠--- 곽재구
우리고물상 지나 용당식물원 지나 낙원주유소 담장 위 노란 호박꽃 어린 태양의 축제 같아라 시가 찾아와 깜빡이등 켜고 길가에서 시 쓰는데 경찰이 달려오네 주정차 금지 구역 열심히 설명하는 젊은 경찰에게 면허증을 건네니 뭐 하셨소? 묻네 호박꽃이 좋아 시를 쓰는 중이었소, 하니 호박꽃이 좋으오? 또 묻네 아니오 평소엔 자두꽃을 좋아한다오 그가 천천히 면허증을 건네주며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오, 하네
시로 응수하는 시인의 말센스에 한번 더 놀랍다. 일상의 상황을 시로 표현되는 세상, 삭막하지 않을 것 같다. '다음번엔 자두꽃 핀 시골길에서 시를 쓰오' 젊은 경찰의 훈계가 아닌 따뜻함 묻어나는 말이 그냥..... 고맙다. 참, 고마움이 가득한 세상이다. 다르게 보면..... 시인은 그래서 다르구나! 내면의 옹골찬 깊이를 사색하며 표현해내는 그 일을 감당하는 시인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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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곽재구 시인의 등단 40주년 해에 출간된 그의 아홉 번째 시집이다. 곽재구 시인하면 「사평역에서」와 「와온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런 시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발로 걸으며 쓴 산문들로도 유명한 곽재구 시인의 시에는 한국의 특정 지명이 들어간 시들이 많다. 요즘의 시나 소설들이 지역성이 소거되고 오히려 글로벌해지고 있다면, 곽재구 시인의 시들은 지역성을 고수함으로써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와닿는다. 한국 서정시의 명맥을 잇고 있달까. 한국 시단의 매우 소중한 곽재구 시인의 40년 시심이 담긴 시집이라 더욱 뜻깊다.
1부의 첫 시이자, 이 시집의 첫 시인 「채송화」는 이 시집 전체의 이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 간결한 시가 채송화처럼 아름답고 어여쁘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 곽재구, 「채송화」 전문
시인이 벗어준 샌들을 신고 파도 소리 들리는 섬까지 걷는 기분으로, 이 시집을 읽어보길 권한다. 시인이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길.
II 이 시집엔 총 71편의 시가 네 부로 나누어 실렸다. 시들에선 정지용의 「향수」가 연상되는 평화롭고 정겨운 '고향'의 이미지들이 많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부분인데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발로 걸어다닌 시인답게 이름도 정겨운 지명들이 많이 등장해서 시의 서정성을 높인다.
설사 시골이 고향이 아니고 도시에서만 산 사람들이라도 향수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감수성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데, 어쩌면 이건 세대 차이와 관련될 수도 있겠다. 젊은 세대들이 이런 시들을 읽으면 무엇을 느낄지, 혹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기는 하다.
한편, 시인을 서정 시인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는 건 시인의 역사의식과 현실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1부의 「두부 먹는 밤」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2부엔 분단현실과 관련된 시들도 많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서정적인 감수성과 이러한 현실 인식이 정반대라고 할 수 없는게, 우리 산하와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시인이라면 당연히 자본의 논리에 의해 찢겨지는 산하나 분단의 역사에 가슴 아파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투쟁하게 된다.
III 이번 시집엔 제목을 한자로 지은 시들이 많다. 요즘 친구들은 한자를 읽을 줄 모를테니 진입 장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래된 옛 도읍을 보는 듯한 고즈넉한 운치가 느껴진다. 한글을 병기하지 않고 한자로 제목을 표기한 것에 대해 시인 곽재구는 한 인터뷰에서 '전아한 고전미'가 있어서, 그리고 한자 자체가 주는 시각적 이미지 때문이라고 답했다. 시는 이미지이므로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시인의 지론이다.
가령, 3부의 「평양냉면」은 이 시집의 정서가 담겨 있는 시다.
TV 속 북과 남 사람들 서로 만나
- 곽재구, 「평양냉면」 부분
IV 4부에는 유독 '꽃'과 관련된 시들이 많아서 지금처럼 추운 겨울에 봄을 그리워하며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자두꽃 핀 시골길」을 추천하고 싶다.
제목엔 자두꽃이 들어가지만 실은 호박꽃에 대한 시에 가깝다. 호박꽃을 보다 시가 찾아와 시를 쓰는 시인과, 그런 시인과 대화를 나누는 경찰이 눈앞에 그려지는데,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젊지만 융통성 있는 경찰이 고맙다.
우리고물상 지나
V 이 시집엔 특이하게도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권말에 싣지 않고 대신 시인의 산문을 실었다. 시집에 실린 산문이라니 독특하기도 한데, 『곽재구의 포구기행』 등 시인의 산문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시처럼 아름다운 모국어로 한국의 아름다움과 정겨움을 그려내는 시인의 산문도 사랑할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산문에서도 역시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유려함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산문은 그 자체로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해서, 등단 40주년을 맞은 시인이 독자에게 주는 선물과 같다.
시인이 산문에서 쓴 글을 그대로 시인에게 헌사로 돌려주고 싶다. '당신의 시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당신이 혼을 다해 쓴 시가 세상의 억압과 궁핍의 창을 막아내는 순결한 방패가 될 수 있어요. 새롭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를 써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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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시집을 읽을 때 시인이 지금까지 어떤 시를 써 왔는가를 생각하며 읽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의 시들과 지금의 시들은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생각하며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 시간의 변화에 따른 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고 무척 흥미롭게 시들에 접근할 수 있으므로 종종 시집을 읽을 때 시인의 과거 시들을 보며 함께 읽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읽은 시집은 곽재구 시인의 신작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입니다. 워낙 곽재구 시인의 시들을 많이 읽어왔기 때문에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 시집을 읽게 되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왕성한 시작을 보여준 한 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꽃으로 엮은 방패 시집은 잔잔한 시어들에 담긴 빛나는 의미들이 무척 매력적인 한 권의 시집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들을 아름답게 조합하여 의미 있는 시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고 관심 깊게 보게 된 시들이었고 이런 시도는 최근 서정 사의 경향과도 일맥 하는 작법이 아니었나 합니다. 어렵지 않게 우리 가까이 다가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한가득 담고 있는 시집으로서 매우 잘 읽히는 시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곽재구 시인의 시들이 으레 그러하듯 어려운 의미를 어려운 말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기에 무척 잘 읽히는 시들이었고 흥미를 끄는 여러 에피소드가 담긴 시들이라 친근함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집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곽재구 시인의 시집을 읽어서인지 과거의 시들도 문득 떠오르고 역시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좋은 시집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꽃으로 엮은 방패였으며 이런 느낌의 시집이 앞으로도 많이 나오길 바라는 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