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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고 해서 더 궁금한 작품이기도 했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이기에 더 관심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겐조는 해외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한다.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그의 성장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는 지식인이 되어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고급 관료의 딸인 아내와 결혼도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친정에서의 생활과 결혼 이후의 삶이 다른 것을 비교하곤 한다. 남편이 현실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내는 남편을 돈벌이에 관심 없는 괴짜로 보기도 한다. 어느 날 그에게 예전 양부가 찾아오면서 그는 과거의 망령에 시달린다. 그의 주변 사람들, 양부와 누나 형, 심지어 그의 장인까지 그에게 찾아와 경제적 도움을 요청한다. 이제 그의 모든 일상은 돈과 연결되어 있었고, 아내와의 갈등도 커진다. 그렇다고 주변인의 도움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의 형편에 겨우 돈을 마련해서 그들의 요구를 해결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을까? 돈이 없어서 병원 문턱에도 못 가보고 죽은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돈으로 인간의 목숨까지 주관할 수 있다는 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테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인간의 감정에 얽힌, 사랑과 우정, 가족과 같은 문제는 돈과 연관이 없다고, 돈으로 계산하거나 돈이 끼어들 이유가 없는 관계라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미 어린 시절에 돈으로 거래되는 인간관계를 경험했다. 돈 때문에 자식을 입양하고 파양하고, 다시 또 돈 때문에 파양한 자식에게 찾아오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을 보면 인간관계가 금전 관계에 지배당하기도 한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주인공 겐조는 이러한 돈이 중심이 되는 관계에서 고민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가진 삶의 방향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부자가 되는 것과 위대해지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 사실 나는 읽으면서 이 부분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위대해진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는 자기 삶의 위대함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돈이 휘두르는 인간의 삶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듯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면 되는 일인데, 실상 현실에서 마주치는 돈 문제는 그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기억할 테지. 그러니 돈 앞에서 추해지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느니 자기 명예를 가진 삶을 누리고자 한 것은 아닐까. 그는 자기가 추구하는 문학이나 글쓰기, 강의하는 것을 위대한 삶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난에 허덕이는 오늘이 현실인데도 그가 추구하는 삶을 바라보기만 하는 거였다. 그런 그를 보고 아내는 남편의 시원찮은 돈벌이를 한탄하고, 남편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한다. 현실을 보지 못하고 그가 바라는 이상향만 추구하는 남편에게 아는 어떤 관계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지.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이 바라는 아내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누가 누굴 탓할 수는 없으니까.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에 어려웠던 작품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흔히 말하는 ‘염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인간이기에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었는데, 겐조가 경험한 인간다움은 돈 앞에서 한없이 무너져내린다.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겐조 앞에 나타난 양부나 누나, 형, 장인과 같은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겐조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해질 때, 누구에게 손을 벌려야만 할 때가 생긴다면 한때의 인연으로 비빌 언덕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인연을 빌려와서, 그것도 가슴에 멍을 들게 한 잔인함을 기억할 대상에게 기대야 한다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건 아마도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겐조가 볼 때 누구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인생이 없을 것이다. 필요에 따라 키우고 버리는 양부의 행태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인제 와서 손을 내미는 것은 양부의 추레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학교수의 누나이면서도 문맹인 누나는 기침을 달고 살며 수다가 끊이지 않는 여자다. 불량한 남편을 생각하면 누나가 안쓰럽지만 동시에 창피하다. 두루뭉술 자존감 없이 살아가는 겐조의 형 역시 그는 한심하게 여긴다. 가진 게 많을 때는 그를 무시하는 듯하다가 사위에게 돈을 빌리러 오는 장인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다른 시선을 보게 되기도 한다. 나는 나로 살며 나의 인생을 바라보지만, 타인 역시 자기 삶을 누리며 자기 모습을 본다. 각자의 ‘나’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그저 그뿐이라는 진리를 얻은 건 아니었을까. 결국, 각자 자기에게 맞게 살아가며 자기 행복을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 각자의 삶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의 삶에 찾아와 존중을 망각해버린 인물들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기의 실제 이야기를 소설에 담으면서 자기 행복을 더 강조하게 되는 건 아니었을까 싶다. 끊기 어려운 인간관계로 비롯한 불행의 시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게 한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건 한 개인의 문제로 머물지 않는 사회적 관습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한다. 가족이니까, 형이고 누나니까, 너를 키웠으니까, 아내의 아버지니까. 개인의 삶을 존중하기보다는 공동체이니까 강요되는 것들을 중시하던 사회에서 개인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의 시간을 담아낸 것 같다.
겐조는 오로지 금전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 욕심을 한참 못 따라가는 유치한 잔머리를 최대한 굴리고 있는 노인을 차라리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움푹 들어간 눈을 지금 반투명 유리 덮개에 갖다 대고 연구라도 하는 것처럼 어둑신한 등불을 응시하고 있는 그가 가엾어 보였다. ‘그는 이렇게 늙었다.’ 시마다의 평생을 압축한 듯한 한마디를 눈앞에 떠올린 겐조는 자신이 과연 어떻게 늙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신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하지만 그때 그의 마음엔 분명 신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만약 그 신이 그의 일생을 통찰한다면 이 탐욕스러운 노인의 일생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36~137페이지)
원작의 제목을 풀이하면 ‘길가의 풀’이라고 하는데, 인생에서 ‘길가의 풀’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담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삶의 방향을 보고 가는데, 누구에게나 바라는 삶의 목적지가 있을 텐데, 그 길을 그대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인지도. 그 방해 요소의 대부분은 돈이겠지만, 돈을 품은 인간의 이기심이 체념과 예의를 넘어서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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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10번재 작품 <한눈팔기>는 일본 근대 문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지막 완성작이자 자전적 소설로 꼽히는 걸작이다. 실제로 소세키도 작품 속 인물 겐조처럼 국비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후, 넓은 시야와 객관적 시선으로 일본의 개방과 근대화에 대해 일본 국민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작가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한눈팔기>는 <그후><문> 이후 접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세 번째 작품이자, 제일 읽기가 편한 작품이었다. 근현대의 많은 일본 작가 중 가장 오래된 작가임에도 소세키의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고리타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많은 식구들 중 막내였던 겐조는 이웃에게 입양되었다가 파양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스스로 단단해진다. 지식적으로 깊은 학문을 쌓고, 영국 유학을 다녀온 시점 다시 만난 양부로 부터 이야기는시작된다.
★[한눈팔기/p.81]
작품 속 겐조는 자신의 국가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소세키 본인을 투영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겐조 주변에 그와 엮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은 개방과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의 일본 속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다. 자신들의 실제적인 모습과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 어떻게든 힘이 머무는 곳에 기대려는 사람, 변화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대처에 미흡한 사람, 자신이 잘 대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세키의 감정은 동정과 환멸,권태, 우월감이다. 꼴보기 싫은 모습들 투성의 가족이지만 그런 모습이 곧 내가 속한 나의 모습이기도 함을 받아들이는 겐조처럼 우리도 내가 속한 세상을 때론 초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기도 한다. 근대화의 과정 안에서 보여지는 중국인의 모습을 비판한 루쉰의 <아큐정전>과 같은 맥락에서 <한눈팔이>를 바라보았다.
일본이 사랑한 작가, 일본의 지성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한눈팔이>는 다양한 각도와 시선으로 해석되고 읽힐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작가 본인의 경험인 입양과 파양의 과정이 담겨있어 어린 시절 소세키의 아픔을 토닥이고 싶다는 느낌이 들만큼 슬픈 작품이기도 했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며 그들을 다독여야 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역시나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멋지다.
#한눈팔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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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학을 다녀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남자, 그는 남들에게 번듯한 직장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남자가 아내와의 불화로 괴로워하며 인연이 끊긴 양부가 나타나 돈을 요구하고 형과 누나, 사업에 실패한 장인까지 경제적인 도움을 청하는 상황에서 혼자 힘들어한다는 걸 모르고 말이다. 이 남자는 일본의 국민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소설 <한눈팔기>에 나오는 주인공 겐조이다. 이상을 좇으며 학문을 연구하지만 현실은 겐조가 자신이 세운 '위해단 목표'를 향해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돈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겐조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우울해한다.
나는 주인공 겐조가 언제 한눈을 팔지, 어디에 한눈을 파는지 내내 궁금했다. 그러면서 쉽게 해결될 일을 혼자 끙끙대는지 겐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겐조는 자신이 어릴 때 양부에게서 순수하지 않은 친절 받으며 양모에게서 인간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고 친부에게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누구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며 삐뚤어진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안다. 알면 뭐하나. 받은 상처를 꼭 끌어안은 채 변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세상 고난 다 짊어지고 가는 듯 힘들어하는데. 물론 아내, 형, 누나, 장인, 양부 중 누구에게 했다 해도도 겐조의 고민과 아픔을 이해하진 못했겠지만. 때론 힘들어도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겐조는 늘 귀찮다며 회피한다. 말해도 모를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갈등을 풀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쉬운 길을 두고 어렵게 돌아가는 행위다. 겐조가 조금 덜 상처받고, 충분히 사랑받았다면 무뚝뚝한 별종이 되지 않았을 텐데.
언급했듯이 <한눈팔기>는 나쓰메 소세키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 겐조처럼 나쓰메 소세키는 친부모와 양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 그때 받은 내상은 소세키가 인간관계를 맺는데 영향을 미쳤다. 아내와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고 괜히 시비 걸고 다투고 갈등을 만들어내는 겐조를 보며 소세키도 참 힘들게 살았구나 싶었다. 그의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 유치하고 이기적이며 남을 배려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성격은 누구와도 동화하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고립시켰기 때문이다. 원작은 '한눈팔기'보다 길가의 풀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더 맞단다. 번역가는 작가가 인생에서 길가의 풀은 무엇인지, 목적을 향해 가는 인간의 관심을 흩뜨려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결론짓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 인생에서 꿈을 향해 가는 길의 방해물은 무엇일까. 돈, 인정 욕구, 편리. 어떤 것이 나의 집중을 흐려놓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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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평생 그들의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데 그 미래가 어느 순간 일어난 위험 때문에 갑자기 막혀 버리고 이제 끝이다, 싶으면 갑자기 눈을 돌려 과거를 바라보게 되니까, 거기서 모든 과거의 경험이 한꺼번에 의식에 떠오른다는 거지.” (본문 128쪽) 신기한 일이다. 인간의 감각이란 크게 나누면 오감, 그 중에서도 시각에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로지 현재만을 보면서 살아간다. 지난 날에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낀 것은 모두 우리의 머리나 마음 속, 아니 어쩌면 그 둘 다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계기로라도 마음 한 구석에 치워뒀던 기억의 편린이 되살아나면, 조그마한 조각은 이내 거대한 폭풍이 되어 이내 몸과 마음을 전부 집어삼키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겐조는 해외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원고 청탁을 받아 그 수입으로 가족들을 부양하는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양부모에게 맡겨졌고, 양부의 불륜 행위 때문에 양부모 가정은 이혼하고 자신도 파양당한다. 오래 전 인연이 끊긴 양부 시마다가 불현듯 나타나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면서 그는 잊어버리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에 휩싸인다. 이어 양모도 나타나 금전을 요구하고, 심지어 자신의 형과 누나, 매형, 그리고 은퇴하고 사업에 실패해 사정이 힘들어진 장인까지 모두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가족과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겐조는 돈과 엮인 인간 관계 때문에 더욱 괴로워진다. 소설의 줄거리는 큰 굴곡없이 겐조에게서 돈을 빌리려는 주변 인물들과 마뜩치 않게 여기면서도 어떻게든 지원해주는 겐조, 그리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와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한 집안에 살고 자녀가 셋이나 있지만 겐조와 아내는 서로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평행선같은 관계다. 아니 평행선보다는 동심원같은 관계가 더 어울릴 듯하다. 식구라는 공통점으로 엮인 두 사람이고 주변이 보기엔 서로 모나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 같지만 둘은 서로를 이해하려고도, 이해할 수도 없는 사이다. 이 갈등의 시작은 어디부터이고 끝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만나지 못하는 원이 서로 자기 자리만을 멤돌면서 갈등이 이어질 뿐이다.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소세키(본명 긴노스케) 늦은 나이에 아이를 둔 부모의 부끄러움 때문에 같은 마을 이웃에 양자로 맡겨지지만 양부모는 소세키를 자신들의 노후 부양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을 뿐이다. 하지만 조숙한 소세키는 이 사실을 너무도 이른 나이에 알았고 감수성이 풍부했기에 이 사실이 평생의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가 남긴 유일한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작가 사후 1년 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의 평생을 어떻게 붙들었는지를 고백하는 마지막 일기같기도 하다. 원제를 직역하자면 ‘길가의 풀’이란 뜻이라고 한다. 길을 걷다가 길가의 풀에 눈길을 주는 건 원래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글쎼, 우리 인생의 목적이란게 언제나 분명하고 확실한 경우가 얼마나 있던가. 오히려 이런 사소한 행동이 쌓이고 쌓여서 이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란 것이고 소세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의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그럼에도 결국 바뀌는 것은 없다는 걸 ‘한눈팔기’로 보여준 게 아닐까. 한 눈을 팔아도 인생은 결국 인생이니 말이다. “이 세상에 정리가 되는 일 따위는 거의 없어.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나 이어지거든. 단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하니까 남들도 모를 뿐이지.” (본문 291쪽)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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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는 그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줄기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런던에도 갔다 온) 학문을 한 남자, 겐조'의 복잡한 가정경제사 이야기다. 겐조는 생부의 눈에도 양부의 눈에도 인간이 아니었다. 차라리 물건이었다. 단지 생부가 그를 잡동사니 취급한데 비해, 양부는 조만간 무언가 도움을 받아야지 하는 속셈을 갖고 있는 존재들의 아들이었다. '바다에도 살 수 없고, 산에도 있을 자리가 없는' 불안정한 존재였다. 이러한 그의 중간자로서의 불안은 개화기 일본인의 서양인도 아닌, 그렇다고 동양인으로 함께 묶이고 싶지 않은 어정쩡한 모습을 비유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특히 탁월하다고 생각한 문장은 다음이다. 겐조는 자신이 얽힌 원가정을 '자기 등 뒤에 숨겨진 세계'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이 학문을 하게 됨으로써 만나게 된, 자기 등 뒤에 숨겨진 세계와는 전혀 관계없는 방향의 세계. "겐조는 자기 등 뒤에 이런 세계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못내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81쪽) "과거의 교도소(학교와 도서관) 생활 위에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 낸 그는 현재의 자기 위에서 어떻게든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방침이었다. 그가 보기엔 올바른 방침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방침에 따라 앞으로 나가는 것이 이때 그에게는 쓸데없이 늙어간다는 결과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할 듯이 여겨졌다(83쪽). 이렇게 겐조의 과거의 현재와 미래의 연결은 그 이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도 표현된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대조해보았다. 과거가 어떻게 현재로 발전해 왔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 그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꺠닫지 못했다.......그와 시마다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바로 이 현재 덕분이었다. 그가 오쓰네를 싫어하는 것도 누나나 형과 동화하지 못하는 것도 이 현재 덕분이었다. 한편에서 보자면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낸 그는 가엾은 존재였다(259쪽)." 겐조는 과거의 자기 등 뒤에 숨겨진 세계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뭔가를 이루어낸다,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였다(61-62쪽). 그는 모자라는 생활비를 더 벌기 위해 그의 학문이나 교육에 비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시간낭비로 생각했다. 겐조는 가족들에게 무정하고 냉랭한 것 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누나와 장인과 자신을 파양한 양부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는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한 이유가 다음의 문장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 자, 이 말은 해야겠는데, 나는 입으로만 논리를 가진 남자가 아니야. 입에 있는 논리는 내 손에도 발에도 온 몸 전체에 다 있다고."(279쪽). 이 책에서 겐조와 아내는 시종일관 원을 그리듯 엇나가는 관계로 그려진다. 아내는 겐조의 말을 형식적인 텅빈 이론이라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겐조가 힘주어 답한 말이 위의 문장이다. 작품에서 겐조는 학문을 한 남자로 그려진다. 학문을 한다는 건 의미를 추구하는 것과 뗄레야 뗄수가 없다. 시간도 돈도 '그냥' 사용할 수 없는. 어찌보면 학문을 한다는 것은 참 피곤한 삶을 스스로 자초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학문을 한다는 건 삶과 세계의 풍성한 의미를 알고 살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진짜' 인간으로 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도서협찬 #도서제공 #나쓰메소세키 #나는고양이로소이다 #일본소설 #일본문학 #고전문학 #한눈팔기 #을유출판사 #자서전 #파양 #가정 #경제 #학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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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는 정적인 소설이다. 소설은 대략 3개월 동안 겐조라는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그는 외국에서 유학한 지식인이고 처와 자식, 누나와 형, 장인어른, 어린 시절의 양부모 등이 끊임없이 그를 찾아와 돈을 요구한다. 그는 그들을 혐오하면서도 그들의 부탁을 냉정히 거절하지 못하고 고통받는다. 자신의 일을 하는 시간과 건강을 해쳐가면서도 현실의 상황을 잘 헤쳐나가지 못한다.
사실 그는 현실의 수완이라고 하는 게 부족한 사람이고 돈을 잘 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상황은 더 비참하고, 어떻게든 돈을 변통해서 그들을 돕는다. 그 인간들 특히 처와 자식에게까지 어떠한 애정과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그의 고통은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한눈팔기의 일본어 원제는 길을 걷다 풀을 쳐다보는 딴짓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가 길을 걷는 일, 어딘가에 도달하려는 노력은 딴짓을 통해 상기된다. 딴짓을 하다보면 무엇을 위해 길을 걷는지에 의문이 생기고 그 목적을 생각하며 다시 길에 돌아가게 되는데 누군가는 거기서 길을 걷는 목적 자체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당장이 너무 바쁜 아이들의 가슴엔 한 번도 이런 의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자기들 스스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물론 지금 어떻게 '할' 것인지 따위 생각할리 없었다.” - 본문, 234p
"당신 마음에 드는 인간은 어차피 어디에도 없을 걸요. 세상엔 온통 바보 천치들뿐이니까요." 겐조의 마음엔 이런 풍자를 웃어넘길 만한 여유가 없었다. 주위 상황은 도량이라곤 없는 그를 점점 더 옹졸하게 만들었다. - 본문, 259p
목적을 설정하고 그걸 이루면서 사는 일은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지를 상상하며 이루어진다. 밝고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고, 삶이 차츰 나아지기를 기대하면서. 만약 그런 상상을 할 수 없다면 그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한 삶은 무엇을 위한 삶인가.
소설이 그런 의문을 던지고 있는데 반해 이 소설이 일본의 국민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역사에 남을 소설들을 써냈다. 그는 소설을 쓰는 일에서 해답을 찾은 걸까. 이런 생활 속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위대함을 어떻게 지켜냈던 걸까. 그건 이 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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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유일한 자전소설이다. 주인공 겐조는 오롯이 글 쓰는 삶을 꿈꾸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종류의 글을 쓰거나,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갈망과 경제적 압박에 동시에 시달린다. 겐조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돈을 원한다. 양부 시마다, 양모 오쓰네, 장인, 장모, 누나, 누나 남편 히다.... 그나마 돈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아내는 말은 아끼지만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겐조의 집안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닌데도 주변인들은 겐조 정도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부탁을 확실히 거절하지 못하고 빚을 내가며 돈을 마련할까. 그에게는 돈을 주지 않겠다는 강경한 의지가 없어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자리 잡은 ‘돈과 인간관계는 뗄 수 없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그 이유가 아닐까. 돈 때문에 양부모가 자신을 키운 걸 경험한 겐조는 어찌 되었든 키움을 당했으니 값을 계산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겐조의 오래된 상처가 어른이 된 현재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소설이지만 다른 사소설보다 훨씬 정제되어 있는 느낌을 준다. 자신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소설적으로 형상화한 까닭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는데 문체는 훨씬 더 무겁고 진지하다. 하지만 어렵지 않고 가독성 역시 상당히 좋다. 같이 읽어보면 좋을 도서로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둘 다 사소설이지만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비교를 해봐도 좋을 것이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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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간된 1915년, 당시 일본 문학에서는 작가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소설이 유행했다고 한다. 소세키의 한눈팔기 역시 사소설의 일종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주인공 겐조는 어릴 때 대략 6년 간 양부모의 손에서 자랐다. 유학을 끝내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길에서 우연히 양부 시마다와 마주쳤다. 그 이후 시마다는 며칠마다 찾아와 그에게 어릴 때 키워준 옛정이 있으니 돈을 내어 달라고 부탁한다. 시마다 뿐만아니라 그이 이복누이도, 형도 그에게 의존하려고 한다. 나중에는 장인과, 그의 양모까지 돈을 목적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주인공이 자신들보다 훨씬 형편이 좋고 가장 성공한 편에 속한다고 여기는 주위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겐조 역시 사정이 별로다. 교수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고집스러운 면이 있는 주인공의 성격 때문에 아내에게는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겐조는 자신에게 기대려고 하고 돈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낀다. 주인공이 어렸을 때 양부모에게 자랐다는 점,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 아내와의 사이가 소원했다는 점, 등이 실제 소세키와 비슷하다.
『한눈팔기』에서도 잘 드러나는 소세키 소설의 특징은, 무서울 정도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 남과 나를 대할 때 드러나는 모순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주인공이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이 그렇다. 자신이 집안 사람들에게 모질게 행동하고 고집 때문에 속내와 다르게 말한 것을 어느 정도 자각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곧바로 남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 내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이런 묘사를 읽어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내 행동들을 반추하게 된다.
내 책임이 아냐. 도대체 이런 미치광이 같은 짓을 나에게 시키는 게 누구지? 그놈이 나쁜 거야. 그의 마음 깊은 곳엔 항상 이런 변명이 숨어 있었다. 『한눈팔기』, 161p
『한눈팔기』, 161p
자본주의에 의해 정신적인 가치 대신 금전적 가치가 우선되어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겐조는 자식 많은 집의 막내로 태어나 친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양부모에게 길러진다. 양부모는 겐조가 나중에 컸을 때 그에게 뭔가를 뜯어내려고 거짓된 친절을 보인다. 그리고 항상 그 친절 뒤에는 자신들의 욕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쩌면 겐조는 어렸을 때 부터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 어떤 가치보다 돈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그의 상처가 되었다. 아직 사회생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은 나와 비슷한 학생들은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역시 금전적 문제와 관련되어 꼬인 인간관계는 풀기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욕심을 챙기기 위해 빌붙어 다니는 양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그와 다를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그들을 욕하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모순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애정 그 자체의 발현을 목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오직 환심을 사기 위해 친절을 보여야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연히 그들의 불순함에 대해 벌을 받았다. 게다가 그것을 깨닫지도 못했다. 『한눈팔기』, 117p
책의 만듦새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보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접하는 세계문학전집은 민음사에서 출간한 것이고 을유문화사 판본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다. 사실 이 책에게 끌렸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클래식한 표지의 만듦새였다. 인터넷 사진으로 책을 처음 접했고 실제로 받아 봤을 때는 사진과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특히 갈색 바탕의 표지 껍질을 벗기면 드러나는 단색 표면과 금박으로 된 제목은 고전에 걸맞는 멋진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크기도 이상적이다. 세로로 적당히 길고 가로로 적당히 짧다. 가벼워서 들고다니기에도 편하다.
독자의 말초신경을 흥분시키는 극적인 연출과 서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담담하고 차분하게 한 개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자극적인 맛 보다는 싱거운 맛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소세키의 『마음』에는 등장인물들의 자살과 같은 충격적 요소가 등장했는데, 『한눈팔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소세키의 인생과 그가 느꼈던 고충들을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의 생각은 ‘나 자신은 결국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또한 생생한 묘사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속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의 모순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에 걸맞는 클래식한 을유문화사 판본 한눈팔기를 읽으며 인간의 감정에 대해 느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고 쓴 글이지만, 거짓말은 하나도 적지 않았다.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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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서평단으로 제공받은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한눈팔기’를 읽었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유작으로 ‘명암’이 사후에 출간되었지만, ‘한눈팔기’는 생전 선생의 마지막 완성작입니다. 그리고 유일한 자전적 소설이기도 합니다. 자전적 소설이기에 글의 흐름은 주인공의 시선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어려서 양부모에게 맡겨지고 일곱 살 무렵에 다시 친가로 돌아오고 성장해 공부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홀로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돌아와서 교단에 서며 글을 썼던 선생의 생애를 겐조라는 주인공에 투영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생애를 뒤돌아보며 과거의 자잘했던 기억까지 되살려 글을 쓰셨을 선생의 모습에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주인공을 통해 잊고 싶었던 기억, 잊고 살았던 기억, 기억하기 싫었던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당시의 생각과 감정을 다 끄집어내어 글을 쓴다는 행위는 체력과 사고력, 감정 등을 무척이나 소모하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이런 작업은 보통 글을 쓰는 시간 동안 고단했던 한 생애를 다시 사는듯한 기분입니다. 실제로 선생께서는 이 소설을 마치고 건강도 악화되고 신경쇠약증도 심해지셨다고 합니다. 선생의 후기작들은 대개 근대화의 병폐와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관계로 불거진 인간의 본성, 추악함, 잔인함, 등등을 소재로 한 소설이었습니다. 부정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바람직하고 가치있는 인간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주장하신 것이죠. 어둠을 통해 밝은 빛을 보는 이치와도 비슷합니다. ‘한눈팔기’ 또한 큰 테두리 안에서는 자신과 타인의 부정적인 민낯을 드러냄으로써 비슷한 경향의 소설로도 분류할 수 있지만, 앞의 소설과는 달리 비유적, 묘사적 표현보다는 서사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소설의 내용도 자전적이긴 하지만 표현방식의 차이에서도 후기작들과의 차이점이 느껴집니다. 소설을 통해 선생의 전기를 읽은 기분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전작을 읽을 계획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번 ‘한눈팔기’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독서가 되었습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 선생의 ‘한눈팔기’는 선생의 필독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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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
오랜만에 소설책을 손에 들었다. 나에게 소설책은 마치 넷플릭스서 시리즈 정주행하듯 끝을 봐야하는 장르다. 궁금해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먼저 이야기할 것은 바로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 나쓰메 소세키는 부유한 집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나 늦둥이로 아이를 낳은 그의 부모님은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그를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낸다. 나쓰메 소세키는 태어나자 부모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입양을 보내진 부모로부터 그는 많은 사랑을 받지만, 아이 같지 않은 조숙함이 있었다. 아마도 다시는 버림받고 싶지 않은 아이의 본능적인 태도일거라 생각한다. 계속 사랑을 받고 자라면 좋겠지만 입양한 양부의 외도로 그의 나이 8살 때 파양된다.
<한눈팔기>는 위와 같은 나쓰메 소세키의 성장 속 이야기를 녹여낸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인 겐지는 사랑에 익숙하지 않다. 그는 항상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늘 시간과 마음에 쫓긴다. 그리고 그의 양부부터 다양한 가족관계들이 그의 시간을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다. (자전적이라니...)
소설 속에 겐지는 대부분 서재에서 생활 한다. 그건 아마도 그에게 서재는 단순한 집무를 보는 공간이 아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유일하게 마음 놓고 쉴 수 있 그만의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눈팔기>만큼 나쓰메 소세키를 잘 표현해줄 만한 책은 없을 것 같다.
을유문화사 고전시리즈는 처음 읽어보는데 을유만의 고전 느낌인건가? 아니면 번역가의 스타일인 걸까? 다른 책도 궁금해지는 출판사 고전문학 전집은 처음이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 그리고 그 문장을 만드는 단어들의 어우러짐이 한층 더 이야기를 우아하게 만들었다.
#mj서재
* 위 책은 '을유문화사'로 부터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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