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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영지순례 조용헌 불광출판사/2020.12.24. sanbaram
수능을 앞두고 분비는 곳이 있다. 신앙인들은 평소처럼 기도를 올리지만, 일반인들은 유명한 사찰이나 알려진 명산대천의 기도처에 가서 기도를 한다. 뿐만 아니라 음력 새해가 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될 때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간절하게 기도하는 곳을 영지라 한다. <조용헌의 영지순례>에서는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던 우린나라 곳곳의 영지를 소개하고 있다. 조용헌은 강호동양학자이며, 사주명리학 연구가, 칼럼니스트로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조용헌의 사찰기행>,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방외지사>, <조용헌의 인생독법>등 다수가 있다.
<조용헌의 영지순례>서문에서 기도는 대자연과 일체가 되는 마음이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과도했던 자기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라고 한다. “기도의 목표와 초점은 저마다의 체질과 환경마다 다를 수 있지만, 자기정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치한다. 이러한 자기정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해주는 땅이 영지다.(p.9)”라고 영지를 정의하고 있다. 한국형 영지는 기운도 좋지만 그 풍광 또한 일품이다. 아름다운 풍광은 그 자체로 사람을 치유하고 달래주는 효과가 있기에 사람들이 영지를 찾는다고 말한다. 영지에 대한 탐구를 세 가지 주제, ‘신령한 땅 그곳에 가면 힘이 솟는다, 치유의 땅 그곳에 가면 슬프지 않다, 구원의 땅 그곳에 가면 길이 보인다’ 등으로 나누어 23곳을 설명한다. 영험한 명당터는 그 땅의 형상과 풍수도 중요하지만 그 터에 조림하여 비추는 별의 각도가 어떤지도 중요하다. 대명당은 칠성이 조림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북두칠성 신앙은 매우 뿌리가 깊다. 북방 유목민족들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축을 이끌고 이동했다. 이동에는 방향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방향과 시간을 가리켜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 별자리가 북두칠성 이었다. 칠성은 인간세계의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북방 유목민족은 믿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칠성님에게 돌아간다고 믿었다. ‘돌아가셨다’는 말은 칠성님에게 돌아갔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의 고대 토속신앙이 불교 사찰로 흡수되어 칠성각, 또는 칠성전으로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영험한 장소는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단지 그 자리에 들어온 종교에 따라 간판만 바꿔다는 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적 성지는 바위산에 자리 잡고 있다. 요즘도 보면 절이나 암자가 폐사된 곳에 기독교 기도원이나 수도원이 들어서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샤머니즘도 그렇지만 모든 종교는 영발이 생명이라고 한다.
지금도 중국의 산둥지역이나 랴오닝성, 지린성 쪽에서는 여우 신앙이 남아 있다. 흰여우가 그만큼 영험이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토착 수행법이 있었다. 여우굴 같은 입구가 좁은 컴컴한 굴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 방법이다. 불가에서는 이러한 재래의 토착 수행법을 야호선(野狐禪)이라고 하여 비판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리산 일대에는 단군과 고대 한민족 신앙의 원형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산청군 정취암도 크게 보면 이 신앙권에 포함된다. 단군의 원형을 간직한 산신도가 남아 있다는 것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단군, 정취보살, 여우 숭배가 모두 보존되어 있는 매우 뿌리 깊은 영지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금나와라 뚝딱, 은나와라 뚝딱’하는 만사형통 도장이었던 것이다. 설화에서는 합천의 해인사(海印寺)도 해인의 신통력으로 순식간에 만든 절이었기 때문에 해인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해인은 팔만대장경 속에 보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방대한 <화엄경>을 7언 30구, 총 210자로 압축하고 글자 배열을 만(卍)자와 비슷한 도상 형식으로 배열한 <법성계>는 법계도장 또는 해인도(海印圖)로도 불렀다. 해인사 구광루 앞마당에 만(卍)자 비슷한 형태로 디딤돌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형태가 곧 <법성계>이다. <법성계>가 해인이다. 해인은 도장이 아니고, 법성계를 깨달은 상태라고 설명한다.
단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건물이 없다는 점이다. 지리산 전체가 하나의 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리산 전체가 바로 삼신할머니를 숭배하고 제사 지내는 성지였던 것이다. 화엄사 뒤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구층암과 봉천암이 나오고, 봉천암 뒤로 옛날의 하악단 자리가 나타난다. 한반도에는 이런 곳이 세 군데가 있었다. 조선시대 나라에서 설치한 산신령 제단이다. 북한 묘향산의 상악단(上嶽壇), 계룡산 신원사 뒤의 중악단(中嶽壇), 그리고 지리산 화엄사 뒤의 하악단(下嶽壇)이 그곳이다. 이곳들은 우리나라 산신 신앙의 3대 거점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23곳의 기도처에 대해 사진과 함께 자세한 역사, 지리, 문화적 설명을 한다. 민초들이나 귀족을 막론하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기도발이 잘 받는 영지를 찾아 기도 하였다. 이런 영지를 발품을 팔아가며 찾아내어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영지는 또한 경치가 아름다워 관광지로도 소문난 곳이 많다. 시간이 되면 조용한 영지를 찾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신을 추스르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민속이나 풍수지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라 생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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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영지순례 조용헌 불광출판사/2020.12.24.
수능을 앞두고 분비는 곳이 있다. 신앙인들은 평소처럼 기도를 올리지만, 일반인들은 유명한 사찰이나 알려진 명산대천의 기도처에 가서 기도를 한다. 뿐만 아니라 음력 새해가 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될 때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간절하게 기도하는 곳을 영지라 한다. <조용헌의 영지순례>에서는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던 우린나라 곳곳의 영지를 소개하고 있다. 조용헌은 강호동양학자이며, 사주명리학 연구가, 칼럼니스트로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조용헌의 사찰기행>,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방외지사>, <조용헌의 인생독법>등 다수가 있다.
<조용헌의 영지순례>서문에서 기도는 대자연과 일체가 되는 마음이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과도했던 자기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라고 한다. “기도의 목표와 초점은 저마다의 체질과 환경마다 다를 수 있지만, 자기정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치한다. 이러한 자기정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해주는 땅이 영지다.(p.9)”라고 영지를 정의하고 있다. 한국형 영지는 기운도 좋지만 그 풍광 또한 일품이다. 아름다운 풍광은 그 자체로 사람을 치유하고 달래주는 효과가 있기에 사람들이 영지를 찾는다고 말한다. 영지에 대한 탐구를 세 가지 주제, ‘신령한 땅 그곳에 가면 힘이 솟는다, 치유의 땅 그곳에 가면 슬프지 않다, 구원의 땅 그곳에 가면 길이 보인다’ 등으로 나누어 23곳을 설명한다. 영험한 명당터는 그 땅의 형상과 풍수도 중요하지만 그 터에 조림하여 비추는 별의 각도가 어떤지도 중요하다. 대명당은 칠성이 조림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북두칠성 신앙은 매우 뿌리가 깊다. 북방 유목민족들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축을 이끌고 이동했다. 이동에는 방향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방향과 시간을 가리켜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 별자리가 북두칠성 이었다. 칠성은 인간세계의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북방 유목민족은 믿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칠성님에게 돌아간다고 믿었다. ‘돌아가셨다’는 말은 칠성님에게 돌아갔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의 고대 토속신앙이 불교 사찰로 흡수되어 칠성각, 또는 칠성전으로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영험한 장소는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단지 그 자리에 들어온 종교에 따라 간판만 바꿔다는 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적 성지는 바위산에 자리 잡고 있다. 요즘도 보면 절이나 암자가 폐사된 곳에 기독교 기도원이나 수도원이 들어서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샤머니즘도 그렇지만 모든 종교는 영발이 생명이라고 한다.
지금도 중국의 산둥지역이나 랴오닝성, 지린성 쪽에서는 여우 신앙이 남아 있다. 흰여우가 그만큼 영험이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토착 수행법이 있었다. 여우굴 같은 입구가 좁은 컴컴한 굴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 방법이다. 불가에서는 이러한 재래의 토착 수행법을 야호선(野狐禪)이라고 하여 비판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리산 일대에는 단군과 고대 한민족 신앙의 원형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산청군 정취암도 크게 보면 이 신앙권에 포함된다. 단군의 원형을 간직한 산신도가 남아 있다는 것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단군, 정취보살, 여우 숭배가 모두 보존되어 있는 매우 뿌리 깊은 영지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금나와라 뚝딱, 은나와라 뚝딱’하는 만사형통 도장이었던 것이다. 설화에서는 합천의 해인사(海印寺)도 해인의 신통력으로 순식간에 만든 절이었기 때문에 해인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해인은 팔만대장경 속에 보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방대한 <화엄경>을 7언 30구, 총 210자로 압축하고 글자 배열을 만(卍)자와 비슷한 도상 형식으로 배열한 <법성계>는 법계도장 또는 해인도(海印圖)로도 불렀다. 해인사 구광루 앞마당에 만(卍)자 비슷한 형태로 디딤돌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형태가 곧 <법성계>이다. <법성계>가 해인이다. 해인은 도장이 아니고, 법성계를 깨달은 상태라고 설명한다.
단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건물이 없다는 점이다. 지리산 전체가 하나의 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리산 전체가 바로 삼신할머니를 숭배하고 제사 지내는 성지였던 것이다. 화엄사 뒤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구층암과 봉천암이 나오고, 봉천암 뒤로 옛날의 하악단 자리가 나타난다. 한반도에는 이런 곳이 세 군데가 있었다. 조선시대 나라에서 설치한 산신령 제단이다. 북한 묘향산의 상악단(上嶽壇), 계룡산 신원사 뒤의 중악단(中嶽壇), 그리고 지리산 화엄사 뒤의 하악단(下嶽壇)이 그곳이다. 이곳들은 우리나라 산신 신앙의 3대 거점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23곳의 기도처에 대해 사진과 함께 자세한 역사, 지리, 문화적 설명을 한다. 민초들이나 귀족을 막론하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기도발이 잘 받는 영지를 찾아 기도 하였다. 이런 영지를 발품을 팔아가며 찾아내어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영지는 또한 경치가 아름다워 관광지로도 소문난 곳이 많다. 시간이 되면 조용한 영지를 찾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신을 추스르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민속이나 풍수지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라 생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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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영각사 왜 이제 산에 왔니?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함양은 덕유산이 조산에 해당하고 지리산이 조안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 터가 오래가는 장수의 터냐, 아니면 짧게 반짝하다 마는 단명의 너탸 하는 문제는 뒷산인 조산의 형태가 구불구불 길게 내려왔는가가 결정한다. 반면에 부와 귀는 대체적으로 앞에 놓여 있는 안산과 조산이 어떤 모양이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풍수가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p.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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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과 오행사찰 한국 페미니즘이 시원, 삼신할머니 지리산 노고단(老姑壇)은 이름 자체부터가 할머니를 상징한다. 늙을 노(老)자에 ‘시어머니 고(姑)자가 아닌가. 단(壇)은 건물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평평한 지형을 가리킨다. 따라서 노고단은 늙은 할머니, 즉 ’할머니에게 제사 지내는 터‘라는 의미를 지닌다. 단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건물이 없다는 점이다. 지리산 전체가 하나의 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리산 전체가 바로 삼신할머니를 숭배하고 제사 지내는 성지였던 것이다.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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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전체가 제단인 지리산 화엄사 뒤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구층암과 봉천암이 나오고, 봉천암 뒤로 옛날의 하악단 자리가 나타난다. 한반도에는 이런 곳이 세 군데가 있었다. 조선시대 나라에서 설치한 산신령 제단이다. 북한 묘향산의 상악단(上嶽壇), 계룡산 신원사 뒤의 중악단(中嶽壇), 그리고 지리산 화엄사 뒤의 하악단(下嶽壇)이 그곳이다. 이곳들은 우리나라 산신 신앙의 3대 거점에 해당한다. p.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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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지는 기운도 좋지만 그 풍광 또한 일품이다. 아름다운 풍광은 그 자체로 사람을 치유하고 달래주는 효과가 있다. 만사가 시들하고 하무하고 분노심이 들고, 세상 헛 살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장엄한 풍광을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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