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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거짓을 잘 구분해야 할 『성경의 거짓말』
이 책은
이 책 『성경의 거짓말』은 <맹신만을 강요하는 성경에 던지는 19가지 금지된 질문>이다.
저자는 마셜 브레인, [HowStuffWorks.com의 설립자이자 대중 연설가. 《How Stuff Works》 시리즈를 포함, 12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
이 책의 내용은
[마셜 브레인은 그만의 시그니처라 할 〈신은 왜 팔다리를 잃은 장애인을 고치려 하지 않는가 〉라는 글로 유명하다. 인류의 딜레마이자 영원한 논쟁거리인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주제를, 지적이고 엄격한 과학적 접근방식으로 이해하려 애써온 그는 계속해서 질문한다. 신은 누구인가, 신은 어떤 속성을 갖는가, 신은 무얼 하며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신은 인류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가 실재인지 허상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를 묻기에 이른다.]
새겨들을 말들
많은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 주장을 읽을 때에, 이 책을 읽는 기독교인이라면 당장 이런 일을 경험할 것이다.
마음 속으로 당신은 이미 왜 예수가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핑계를 떠올린다. (388쪽)
그러나 예수에게 기도하고 역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당신은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왜 예수가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는지 모든 이유를 대가며 합리화하려고 애쓴다. (389쪽)
해서 기독교인들도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떤 식으로 핑계와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중, 검토해야 할 내용이 많이 있다. 몇 가지만 적어본다.
첫째, 지극하고 지독한 문자주의로 성경을 해석한다.
먼저 저자의 주장 들어보자.
이런 주장, 합리적일까 이 성경, 신약이 기록된 시기는 기원후 100년이 채 되지 않은 때다.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은 어땠을까, 또한 지구는 어떤 모습이었다고 생각했을까 당연히 평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기록한 것을, 현재 과학이 최고도로 발전된 시점의 과학적 상식으로 이 말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저자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지독한 문자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천하만국을 보여주었다’는 말이 천하의 모든 나라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지 어느 한 나라도 빠짐없이 모든 나라를 일컬어 천하만국이라 했을까
기원전 4세기에 쓴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이런 글이 보인다.
둘째, 성경해석에 문제점이 보인다.
저자는 성경해석의 기초도 모른다.
예수가 다가온 여인에게 개라고 불렀다,는 것은 성경해석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인용한다.
셋째, 현대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고 있다.
저자의 발언 중에 ‘성경은 수천 년전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 ‘미개인’이라는 말 빼고 맞다. 그렇다면 그 뒤의 발언은 잘 못된 것이다. 당시 글을 쓴다는 것은 엘리트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내는 일이다. 일단 글을 썼다는 것은 그가 적어도 미개인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될 신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당시 사회를 배경으로 쓰여진 것이다. 수천 년전에 살던 사람들이 당시 사회를 배경으로, 당시 문화 속에서 쓴 것이니, 당연히 노예제도하에서, 여성 압박을 옹호하는 사회안에서 살던 그대로, 그것을 반영하여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의 주장이 타당하려면, 미국이 노예 해방 전에 링컨 대통령은 어땠을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도 노예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다 정치적 목적으로 마지 못해 노예 해방을 선포한 것이 아닌가?
미국의 남북전쟁은 1861년 4월에 발발했다. 그런데 노예 해방선언은 한참 뒤에 나왔다. 정식 노예해방 선언문은 1863년 1월 1일에 온 세계에 대하여 발표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50여전 일이다. 겨우.
150년 전에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노예제가 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는데, 하물며 수천 년전의 시대라면! 따라서 저자의 발언은 현재 시대의 문화를 과거시대에 구겨 넣어 적용하려는 억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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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마셜 브레인은 대중연설가이다.
과학자나 연구가가 아니기에, 책은 연구결과나 공증된 통계에 근거하여 주장을 펼치기 보단 개인의 의문과 생각을 기반으로 해답을 찾아나간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부족한 증거에 대한 주장에 반대를 외치기도 하고, 그의 생각에 동의를 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이해하며 읽어내려갔다.
저자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신은 왜 팔다리를 잃은 장애인을 고치려 하지 않는가?> 라는 글로 유명하다. '아무리 기도해도 신이 팔다리를 자라게 해주었다'는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책 전반에 걸쳐 여러번 중복해서 나온다.
하지만 성급한 성급한 결론이기도 했다. 한국의 치유의 은사가 있는 목사나 강연가들이 기도로 팔다리가 자라났다는 간증을 했고, 구글검색을 해봐도 가족의 팔다리가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자라났다는 간증을 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저자는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이런한 사실에 대한 자료 조사가 충분하게 이루어 진 다음에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와 정확한 통계를 제시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책 전반에 따랐다.
성경말씀을 기반으로 그의 논지를 펼치는 부분에 대해선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십계명의 6번째인 '살인하지 마라'에 대한 내용이다. 십계명의 6번째가 '살인하지 마라' 인 것을 상기해보라 -성경의 거짓말 202P 살인을 하지 말라고 십계명에 써 놓고도, 잔인하고도 많은 살인이 이루어진 곳이 성경아닌가.
타락한 인간에 대한 분노로 인해 '노아의 방주'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불태움'을 통해 엄청난 살육이 행해진 사건을 볼 수 있다.
선을 행하고 용서하는 신이지만, 때로는 질투와 분노로 이와 같은 살육을 저지른다.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책을 접하기 전, 코스모스, 다윈의 진화론 등을 통해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증거를 흥미롭게 보았다. 그건 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만한 근거를 제시했다.
또한 이 책에 나와있는 '다빈치코드의 미트라 신'에 대한 예제를 통해서도 우기기 방식이 아닌 합당한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합리적 의심을 해 볼 만한 기회였다.
성경의 거짓말도 신뢰할 수 있을 만한 근거와 증거로 주장을 펼쳤으면 더 없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은 내내 실험과 통계를 이야기하며 주장의 합리성을 세우려 하지만 실험의 방법이나 통계의 정확성이 온전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의문과 성경을 통한 반박은 볼 만 했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주장에 대해 고민해보고, 동의하며 한번 더 생각할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이던, 기독교인이던 자신이 옳다고 하는 관점에서 중립적인 관점이 되어 책을 읽어보고 합리적 의심을 함께 해본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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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은유와 비유를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과 예수, 그리고 기독교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다. 비판의 강도가 너무 강렬해서 저자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이다. 종교는 평상시엔 불편한 정도의 주제이지만, 때때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주제이니까. 기독교인들이 보기엔 섬뜩할, 반면 비기독교인들은 키득거리면서 볼 게 분명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이 책은 집필과 구성 자체가 독특하다. 엄격히 말하면 책을 집필한 저자가 없다. 이 책의 내용은 마셜 브레인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WhyWontGodHealAmputees.com>(신은 왜 팔다리를 잃은 장애인을 고치려하지 않는가?)에 수록된 글들이다. 그렇다고 마셜 브레인이 동명의 책을 낸 것 같진 않고, 이 책을 번역한 엄수종씨가 주도하여 책을 만들고 출판한 듯 하다. 그래서인지 책의 어디에도 마셜 브레인의 인사말은 보이지 않고 엄수종씨의 옮긴이 글만 눈에 띈다.
책은 말한다. 성경과 예수, 그리고 신은 모두 허구이고 사기라고, 망상이 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포 때문이라고. 인간의 기도가 절대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단순히 신 자체가 없기 때문이며, 이성적, 과학적으로 사고한다면 성경과 예수와 신이 만들어낸 거짓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일갈한다. 성경은 노예제도, 여성과 인종 차별, 아동 살인과 같은 보편적 관념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이 존재한다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개한 호색한 무리가 쓴 2천년 된 책', '살인과 증오를 옹호한 미개인이 쓴 책'이라며 매섭게 비판한다.
한편 '선'의 대리인으로서 신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성경과 십계명을 버리고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행동지침을 만들어 보급하자고 제안한다. 성경과 십계명이 비윤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심지어 매우 잔혹하기 때문이다. 천국과 영생이라는 망상을 버리면 고작 3만 日을 사는 인간을 위해 허상의 신을 버리고 현재의 천국, 모두를 위한 지구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 지적인 진화의 다음 단계로 올라서자고 주장한다.
위의 내용들은 비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봤음직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성경과 예수를 이렇게 낱낱이 분해하고 매스를 들이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국가 내에서 이런 웹사이트가 운영될 수 있다는 점도 놀랍다. 독자인 나도 비기독교인이지만 책의 모든 내용을 지지할 생각은 없다. 비슷한 주장이 반복되어 책의 중반부터는 지루할 정도다. 그럼에도 종교인들에게 몇 장의 페이지는 꼭 보여주고 싶다. 증명하라고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대의 종교가 왜 민폐의 대상으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다.
책의 말미에 저명인사들의 종교관이 소개되어 있다. 그 중 세네카의 말로 서평을 마친다. "종교란 평민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현자(賢者)에게는 거짓으로 여겨지며, 통치자에게는 유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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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거짓말]맹신만을 강요하는 성경에 의심을 품다 platinum2021.03.11 비록 크리스찬이지만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세상의 불행을 마주하면서 왜 관여하지 않는지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신의 뜻이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맹신만을 강요하는 성경에 던지는 19가지 금지된 질문 <성경의 거짓말>의 저자는 이 부분을 파고든다. 만약 신이 있다면 세상에 왜 그렇게 가난한 이들이 많으며, 학살이 왜 자행되는고, 좋은 사람에게 나쁜일이 왜 일어나며, 성경의 기록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의문을 품으며 신은 허상이라 주장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저자는 성경 말씀을 예로 들으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한다고 하였지만, 신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이를테면 잃어버린 팔다리를 다시 얻을 수 있게 해달라거나 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기도하면 신이 들어줘야 하는데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기도하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으며, 기독교인들이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 말한다. 아울러 예수는 신이 아닌 보통사람이라 주장한다. 신성함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는 신이 아니고, 성경은 신의 말이 아니며, 신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뿐만아니라 종교와 관련된 모든 것이 허상이라며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신, 성경, 예수, 부활, 기도, 십게명, 창조론, 영혼, 천국 등 이 모든 것이 상상의 산물이다. 알라, 코란 등도 마찬가지이며 이 모든 것은 이집트, 로마, 아스텍의 신들과 같이 허구라 말한다. 인간이 종교를 만드는 이유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공포를 다스리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고, 선을 증진하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 선의 대리인으로 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거짓말>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의심없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던터라 불신자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읽어보게 된 책이다. 그러나 관점과 믿음의 간극은 생각보다 깊다. 세상사람들의 기준에는 기독교의 믿음이 허황되고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이단과 다른점은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은 선한 영향력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기도는 나의 유익과 신을 시험하기 위한 기도는 응답받기 어렵다. 때로는 기독교인들도 성경 말씀에 의문을 품기도 하고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고통스러운 삶이 축복의 통로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나만의 유익을 떠나 공동체를 생각하고 이웃을 돌보는 사랑의 마음이 커지기 때문이다. 맹신만을 강요하는 성경에 던지는 19가지 금지된 질문들을 짚어보면서 나의 신앙의 깊이를 가늠해보는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기준이 어떠한지 체감한 시간이었다. <성경의 거짓말>은 다소 강한 논조로 기독교를 비판하지만, 맹목적인 신앙을 지양하고 인생의 의미를 자신에게서 찾고 죽음을 두려워하기 보다 현재를 충실히 자신의 바람대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합리적 의심을 시작했던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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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신은 무엇을 하였는가?
책 『성경의 거짓말』에서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기도에 대한 약속이 현실에서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 사이에서의 부조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해볼 만한 의심과 예시를 들어 성경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며 신의 존재가 불명확하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신이 기도에 응답한다는 결정적인 통계가 있다면, 그것은 곧 신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인용한 이유로 그런 증거란 없다는 것을 안다. 둘째, 가능성의 법칙은 기도하는 기독교인을 위한 것과 그 밖의 사람을 위한 것으로 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능성의 법칙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한 가지만 있을 뿐이다. 어떠한 통계적 연구에서도 기도의 효과는 찾을 수 없다. 셋째, 신이 허상임을 암시하는 일상의 증거들이 많다. 1장에서 본 네바 로저스의 경우, 그녀는 공개적으로 신에게 기도하고 머리에 네발이나 총을 맞는다. 기도를 통해 가옥이 보전된 스티브 호멜의 역설이 있다. 불행히도 그 거리에 있던 다른 39채의 가옥은 저주받고 불타서 무너졌다(2장). 97.5퍼센트라는 기도 실패율은 스티브의 집이 보존된 것이 기적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그런 역설을 계속 보아왔고, 그것 모두가 신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넷째, 과거의 모든 신들이 실제로 허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이집트, 로마, 그리고 아스텍 신들이 완전히 허상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를 숭배하기 시작했을 리 없다. ‘라’나 ‘제우스’가 실제였다면 예수보다는 그들을 믿고 있을 것이다. 다섯째, 성경은 전혀 말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실제로 성경을 읽어본 누구에게라도 분명하다(2부). 여섯째, 신에 대한 정의가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강력한 모순들이 있다. 기독교인들에 따르면 신은 완벽하고 전능하며 기도에 응답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는다(자세한 사항은 8장을 보라). 왜 완벽한 신은 수백만 명을 굶어 죽게 하면서, 잃어버린 개를 찾아달라는 기독교인의 기도에는 응답하는가? 이러한 분명한 수천 개의 모순들은 신이 허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495-496쪽)」
이런 가장 단순한 의문에 기독교인들은 나름대로 정의하여 답을 하겠지만, 이런 가장 단순한 의문에도 합당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신의 부재함을 증명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고 살겠다.’라고 먼 미국 땅 사우스캐롤라이나까지 가서 목회를 하는 친구에게 말했더니 ‘너 그러다가 혼난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신은 자신을 믿으면 상을 주고 믿지 않으면 벌을 준다했으니, 천국이라는 환상으로 인간을 회유하고 지옥이라는 공포로 인간을 협박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신(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 어떤 영적인 세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구 혹은 우주에는 무엇인가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 한다. 그것이 다만 인간을 창조하고 창조의 대가로 믿음을 요구하는 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자식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부모는 단지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부모라 할 수 없다.
나는 인간이 신을 믿는 행위는 그저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욕구이고 욕망이고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신자들에게는 얼토당토않은 말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세상은 살기 어렵고 이 땅에서의 삶은 비루하고 가난하고 때로 처참하고 보잘 것이 없다. 그런 삶에서 죽은 후 천국에서는 평화롭고 행복하고 즐거움만 가득하다니 어찌 끌리지 않겠는가. 가진 자는 더 가지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는 조금이라도 가지기 위해,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고 싶거나, 생의 외로움과 괴로움들을 어찌 할 바 몰라서, 그리고 드물게는 이 땅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도 신을 믿는 것 같다. 그 어떤 좋은 말들로 포장을 해도 그 맨 바탕에는 인간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한 욕구와 본성에 의해 존재되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진실로 그날, 정말 신(하나님)이 있어서 신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린 소녀와 소년들의 기도를 묵살하고 어둡고 차갑고 깊은 바다에 그들을 수장시켰다면 그것은 목적을 위한 살인일 뿐이지 그 어떤 거룩한 말로도 포장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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