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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라고 하면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가 먼저 떠오른다. 시인의 시속에 등장했던 그 이름의 강렬함을 오늘 나는 책에서 다시 접하며 나 또한 여자로 살면서 내속에 잠재되어있던 어떤 목소리를 듣는듯하다. 버지이나 울프 하면 가장 대표적인 책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던 글과 잡지에 기고한 글을 에세이로 발전시켜 낸 책이다. 늘 들어오던 책 제목이어서인지 그동안 한번쯤 읽어봤을거 같은데 (아마 다들 그럴듯) 실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목부터 강렬한 이 책이 어떤책인지 전혀 몰랐던 나는 책을 읽으며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여성으로 제약받고 살았던 시대의 버지니아 울프가 그 시대가 여성을 어떻게 취급하고 홀대하고 억압했는지를 여성으로써 목소리를 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성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식의 설명을 하거나 직접적인 어떤 답을 주는 글이 아니다.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뒷받침과 자기만의 방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여성으로 억압받던 시대상을 하나하나 들추어 내면서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남성만 들어갈 수 있었던 잔디밭을 우연히 들어가다가 쫓겨나게 되는등의 여러가지 여성으로 제약받았던 상황들을 들어 이야기하고 도서관이나 박물관등에서 여성으로 느끼는 것들을 반어법을 활용하고 은유적인 문장으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 ?‘다음 날, 10월 아침의 햇빛이 커튼을 땐 창문 사이로 먼지투성이 빛줄기를 들여보냈고 거리에서 붕붕거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무엇보다 깜짝 놀란건 버지니아 울프식 문장들이다. 어떤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눈앞에 보이는듯 표현하는가 하면 은유나 비유적인 표현을 하는데도 직설적인 느낌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자칫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헷갈릴수도 있지만 문장을 끝까지 쫓아가다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또한 억압받던 한 시대를 살았던 여성으로써 정말 많은 질문을 하는 책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사는 이 시대의 수많은 버지니아 울프들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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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심한 불면증으로 잠못드는 검사가 매일밤 읽던 자기만의 방을 본적이 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 책이 나왔을거라고 생각하니 너무 궁금했었던 책이었고 불면증과 버지니아 울프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태초부터 시작해서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말과 동시에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 받는 존재로 각인(?)되어 왔다 자기만의 방이란 여성이 온전히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대해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여성에 대해서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 여성들이 이 세상에 갖추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왠지 이해가 갈듯 하면서도 속시원히 이해를 할수 없는거 같은 느낌이다. 그냥 글을 쓰면 되지 자기방까지 있어야 글을 쓸수 있나 하지만 단지 그 문제를 위해서 나열한 글들은 아니었다 사색에 잠겨 무심코 걸었던 교정이 남성만 출입이 가능했다라던지 여성에겐 돈이란 권리도 없었고 글을 쓸 권리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다 오래된 책들속에선 여성들은 보호받는 존재로 여겨졌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뿐이었다
1장의 시작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이유부터 6장까지 나열하면서 여성에겐 돈의 권리조차 없었지만 화자는 고모님의 유산 덕으로 안락함을 누리게 되기도 한다 그 당시의 여성의 삶들과 우리나라도 70~80년대까지의 여성들의 삶과 비교해도 별반 다른점은 없는거 같다 그리고 지금도 여성과 남성의 차이점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단지 방은 내가 있는 공간이라기 보단 더 큰 의미가 있고 울림이 큰 이야기들이 많은거 같다 어렵긴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방이 되길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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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모닝 글쓰기를 시작하게 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물론 자기만의 방이란 책을 다 읽지 못하고 한 구절을 읽은 후에야 이 책을 읽어보겠다는 다짐만 계속 하던 중. 드디어 만나게 된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는 그 당시 여성들의 인권, 그리고 문학계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자신만의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풀어쓰며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처음에 책을 읽으며 익숙하지 않은 문체 덕분에 속도가 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생각을 의식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읽어가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소리내어 읽다보니 그녀의 문체에 적응이 되었다. 여자들은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깊은 사색을 통해 고민하며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문학에 있어서 여성 시인이 적은 이유는 그녀들이 깊은 사색과 성찰을 통해 고민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많은 여성 문학인들이 거실에서 글(주로 소설)을 썼던 현상들을 이야기하며, 여성 문학인들이 소설을 썼던 이유 역시 깊은 사색과 성찰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역시 거실에서 책을 쓰며 그녀들만의 공간이 없었다고 이야기한다.(공용 거실에서 글을 쓰며 시끄럽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에서 그녀들의 글쓰기는 깊은 사색을 할 만한 필요충분 조건이 만족도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나이팅게일 역시 "여자는 자신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삼십분도 되지 않는다"고 책에서는 언급한다. 그리고 1920년대 버지니아가 살던 그 시대와 2021년을 사는 나를 비교해보며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해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엄마라는 이유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까 쩔쩔매며 퇴근을 준비한다. 엄마이고 여성이여서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들에는 중요한 사안들이 반드시 존재하며, 그 일들을 처리하기에는 늦게까지 야근을 하며 일을 진척하기도 해야하고, 팀원들과 회식과 소통을 하며 부서의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하지만 2021년을 사는 나 역시 퇴근 시간이 되면 급하게 아이들을 픽업하러 간다. 하지 못한 일들을 바리바리 가방에 싸매고.. 퇴근해서도 나의 공간은 커녕 30분의 시간을 내기는 어렵다.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내고 나면 아이들 보다 먼저 잠이 들고, 새벽에 일어나 업무를 처리하며 남들보다 빠른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버지니아가 살던 시대의 여성들의 삶과 일의 형태는 다르나, 여성들이 하는 일들과 마음의 짐에서 해방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들은 경제적 자립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여성들은 삶의 조건 즉 문명이 결핍된 상태가 결함을 인식하자 두려움과 비통함이 점차 연민과 관용으로 변한다고 이야기하며 고모님의 유산이 자신(책 속의 저자)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백 년 뒤에 여성은 1920년대의 영국에서처럼 더 이상 보호받는 성이 아닐 것이고, 필연적으로 여성은 한때는 허락되지 않았던 모든 활동과 노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900년대 초반의 영국은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여성조차 책을 쓰는 것을 터무니없는 일이며 이성을 잃었다는 뜻이라고 믿었다. 즉 여성들의 글쓰기를 반대하는 분위기가 얼마나 팽배했는지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는 이야기한다. 여성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오백 파운드의 수입(경제적 자립)과 자물쇠로 잠글 수 있는 방(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아직까지 실천하기 어려운 이 결론을.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기만 한닫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글이 몇 세대 동안 중요한 존재가 될지 몇 시간 동안만 그럴지,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이상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희생하거나 그 색조를 조금이라도 포기한다면 그것은 가장 비열한 배반이며 .....(중략) 여러분에게 주제가 아무리 사소하거나 아무리 거창하더라도 망설이지 말고 온갖 종류의 책을 쓰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여행하며 빈둥거리고, 세상의 미래나 과거를 곰곰이 생각하고, 책을 보며 몽상을 펼치고, 길모퉁이에서 어슬렁거리고, 생각의 낚싯줄을 강물 속에 깊이 담그기에 충분한 자기 몫의 돈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여성들에게 각자 상징적인 의미의 일 년에 오백 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생긴다면 그리고 우리 스스로 남들의 이목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그대로 쓸 수 있는 자유와 용기를 갖게 된다면 1920년대 버지니아 시대의 여성들의 권리보다, 지금이 더 좋아진 것 처럼. 나의 세대 역시 여성들의 위치가 많이 변하고 있고, 앞으로 두 우주가 살아갈 그 시대에는 조금 더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버지니아울프 #자기만의방 #에프출판사 #여성인권 #김율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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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여, 버지니아 울프를 닮아가라!!! 물론 그 시대에도 인정받았지만, 죽은 뒤, 현세에 이르러 더 인정받고 있는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 요즘 내가 보는 프로는 "해방타운". 그만큼 이 시대에 우리조차 아직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희생하고 살고 있기때문이다. 혹자는 버지니아 울프를 보면 패미니스트라 부른다. 패미니즘에서 나온 패미니스트. 패미니즘은 여성우월주위가 아닌 남녀평등을 의미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이 성공하려면 최소한 이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 자꾸만 시크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우리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 노력에 의해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된 버지니아 울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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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지인들의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한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늘 책을 선물하다보니, 아이들은 힐씨 이모(혹은 아줌마)는 늘 책을 선물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다행하게도 ( 인사치레인지는 모르겠지만 ) 골라 보낸 책들은 늘 재미있었다고들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지인의 딸이 대학생이 되면 늘 이 책을 선물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을.
케임브리지 대학교 내 여자대학인 거턴과 뉴넘에서의 강연을 위해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울프는 1928년 10월,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두 강연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소득(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후 강연 발표문의 내용을 발전시켜 이 책 「자기만의 방」 에서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에밀리 브론테 등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고찰하고, 그들이 제한된 경험과 인습적 통제로 뒤틀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여성 작가들을 문학사 안에 위치시킨 최초의 시도이자 성을 중심으로 문학적 유산을 논의한 최초의 이론서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이 책이 페미니즘 책의 고전이 된 이유 중의 하나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 이전까지 소설 속의 위대한 여성들은 모두 남성의 눈에 비친 모습이었을 뿐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바라본 모습이었으니, 생각만 해도 이상했습니다. 여성의 삶에서 그런 관계는 얼마나 작은 부분입니까. 게다가 남성은 성이 자기 코에 걸어 준 검정색 안경이나 장밋빛 안경으로 여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여성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는데 말이에요. 어쩌면 이런 이유로 소설 속 여성의 성격은 특이하게 나타납니다. 놀랄 만큼 지극히 아름답거나 지극히 불쾌하고, 천사처럼 선량한 모습과 악마처럼 타락한 모습을 오갑니다. 연인인 남성이 자신의 애정이 솟구쳤는지 가라앉았는지, 순조로운지 아니면 불만족스러운지에 따라 여성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 (어쩌다보니) 「자기만의 방」 의 여러 에디션을 모아왔다. 그리고 모아놓은 것들은 다시 선물로 나간다. 그리고 이번에 또 다시 새로운 책으로 다시 읽었다.
그녀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이란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자,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이다. 외부의 제약이 없는 이러한 공간이 있어야 창조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비단 '창조력' 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에 직면'하는 삶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지.
그러니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부탁할 때, 나는 현실에 직면하여 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활기를 전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활기찬 삶을 살아가라고 부탁하는 셈입니다.
가부장적인 환경 내에서의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면들을 서술하고 있지만, 여성과 남성의 대결 국면을 조장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도 다시 읽으며 깨닫는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지점이다. 또한 '여성' 이라는 단어 대신 '사람'이라는 말로 치환해도 의미는 그대로 남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나는 신체에 두 가지 성이 있듯이 마음에도 두 가지 성이 있는지, 그리고 마음의 두가지 성도 완전한 만족과 행복을 얻기 위해 연합해야 하는지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서투르지만 우리 영혼의 약도를 그려 두 가지 힘, 즉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힘이 우리 각자의 내면을 관장하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남성의 머릿속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세하고, 여성의 머릿속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세합니다. 이 두 힘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정신적으로 협력할 때 우리는 정상적이고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남성이라고 해도 두뇌의 여성적인 부분이 작용해야 합니다. 여성 또한 자기 속의 남성과 교류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옮긴 이의 말에서 서술한 것처럼, 서로에게 '욕을 퍼붓느라 시간을 낭비'(p136) 하지 않으며 '두려움과 증오' 가 '거의 사라진' 시대를 꿈꾸게 한다. '다른 것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에 '나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보게 된다.
나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뒤져도, 남성의 동료가 되고 대등한 존재가 되어 더 숭고한 목표를 위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고귀한 감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다른 것보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간단히 그리고 평범하게 말할 뿐입니다. 고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말하겠습니다.
「자기만의 방」은 필사를 해 보기에도 좋은 책이다. 이전에 '릴레이 필사 챌린지' 로 한번 필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어떤 문장이 나를 두드릴까 궁금해하며 이번에도 다시 필사를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이번에 대학생이 된 지인의 아이에게도 또 이 책을 선물했다. 나는 앞으로도 이 책을 계속 모으게 될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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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은 괜히 기분이 좋아져 잠을 일찍 청할 수가 없다. 더구나 코로나로 외출마저 힘겨운 요즘 봄밤의 독서란 우울함을 극복하기에 안성맞춤인 취미생활이다. 표지 그림에 무언가를 감춘 듯한 책 한 권을 만났다.
a room of one's own 굳게 닫힌 방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걸까? 공연히 그 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해져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여성 작가로 잘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는 지적 자유를 위해 필요한 돈이 정작 여성에게는 없다는 말을 하며 그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주 오래전 여성들에게 참정권이나 경제활동 혹은 재산권 같은 권리들은 주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도. 그저 살림을 하는 남편의 밑에서 가사 활동을 하는 정신적으로 누군가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나'는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자신의 능력을 표출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 제체가 갈등의 씨앗이 될 뿐 그 누구도 그런 '나'의 생각에 호의적이지 않다. '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는 누구보다 현명하고 자신의 길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친다.
"저녁이 되었는데 의미 있는 주장이나 믿을 만한 사실을 찾아내지 못하고 돌아오다니, 실망스러웠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가난한데 그건....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어쩌면 이제는 진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용암처럼 뜨겁게 개숫물처럼 혼탁한, 눈사태처럼 덮쳐 오는 수많은 의견을 머리에 받아들이는 것도 표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 p. 64
남성과 달리 제약이 많았던 여성의 모습, 아마도 작가 본인이 느꼈던 불편한 편견과 성별에 따른 제약이 주는 답답함 등을 이렇게 표현한 건지 모르겠다. 메리 카마이클 또는 원하는 어떤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말에서 '나'는 하나의 개체가 아닌 그녀들 중 하나인 것처럼 느껴졌으며 그녀들 중 그 누구면 혹은 이름을 내세울 수 없는 그녀이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오백 파운드를 주고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게 하고 지금 쓴 것의 절반을 덜어 내게 하면, 머지않아 좋은 책을 쓸 거야. 그녀는 시인이 될 거야. 백 년이라는 시간이 한 번 더 지나면."
자기만의 방에서 글쓰기를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 자신을 향한 끝임없는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에서 그녀는 행복했을까? 글을 써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대에서 그녀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닌 그 행위로 얻을 수 있는 직업, 경제적 자립이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자기만의 방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장애 요소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과정이었는지 모른다.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나를 향한 질문들을 하는 시간, 수많은 '나'의 발전을 기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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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다소 조심스러운 주제가 아닐 수 없는데요. 먼저 밝혀둘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 오히려 중립적인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 편입니다. 부족하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다 보니 한쪽으로 생각이 치우치면 그런 사상이나 이념이 수업 중 아이들에게 드러나게 되더라고요. 그런 제 자신을 돌아본 뒤로는 어떤 문제이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잘 되지는 않습니다만....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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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여성과 소설에 대한 강연을 부탁했는데 대체 자기만의 방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요, 라고. 이제 설명해보도록 하지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소한 한 가지 주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뿐이었으니, 그 주장이란 바로 여성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러한 까닭에 여성의 진정한 본질과 소설의 진정한 본질이라는 중대한 문제는 미해결로 남게 됩니다.
-이 모든 여성들이 몇 년 동안 일한 뒤에도 이천 파운드를 모으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삼만 파운드를 모으기 위해 그 이상의 노력을 쏟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 여성이 겪는, 비난받아 마땅한 가난에 냉소를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쓸데없는 일이에요. 당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뿐만 아니라 시터 부인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막대한 부를 축적해 대학과 도서관의 토대를 다지는 데 썼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질문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일입니다. 첫째, 그들이 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고, 둘째, 가능했더라도 법률상 그들이 번 돈을 소유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턴 부인이 동저 한 닢이라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사십팔 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 이전 수백 년 동안 돈은 남편의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고전 중의 고전, 그리고 에세이와 소설과 페미니즘을 넘나드는 울프만의 힘이 실린 글인 것 같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로 의식의 흐름으로 따라가다 보면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글이었다. 2018년, <자기만의 방>을 처음 읽은 충격을 잊지 못하는데 2021년 f(에프)로 다시 읽은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주장하는 그 글이 몇 십년, 어쩌면 몇 백년이 지나도 영원히 유효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1928년, 뉴넘 대학과 거턴 대학에서 발표한 두 강연문으로 시작한 <자기만의 방>은 제목이 주는 무게만큼이나 강하고 또 강한 주장이 실려있다.
사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그 주장도 아주 명료하고 적확하고 빠르게, 바로 첫장부터 우리에게 들려준다.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이치인 것 같지만 사실 21세기에 들어도 전혀 무색하지 않을 법한 주장과 논리들이 아주 꽉 차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젠더 문제, 그리고 불쾌함을 넘어서 매일 살아남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할 정도로 최소한의 기본도 보장되지 않는 죽음의 문제까지.
사실 그전까진 막연하게 불편하게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되면서, <자기만의 방>을 읽으면서, 그리고 세상을 공부하면서 더 불편하고 깨름직하고 화내고 맞서 싸우고 싶게 만들어준다.
아주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돈'과 '자기만의 방', 하지만 이 둘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는 뒷전으로 두고서라도 이 둘을 가질 수 있느냐의 존재여부 조차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또 화가난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똑똑한 글처럼, 화를 화로 끝내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문제들을 인식하고 바꿀 수 있게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여성이 가난하고 비주류이고 성공의 사다리에 뒷전이었던 이유를 버지니아 울프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에게 '돈'과 '자기만의 방' 필요하다고 말해주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돈'과 '자기만의 방',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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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거의 다가 나의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한 만남이었습니다. <올란도>란 영화를 처음 선택했던 것도 버지니아 울프라는 낯익은 이름에 끌려서였으나 영화를 보는 내내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어 지루하기 짝이 없단 생각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엄청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라 할 지라도 나랑은 안맞는 작가라 치부하고 관심을 접었더랍니다. 그러다 세월이 한참 흘러 <댈러웨이 부인>을 도서관 강의에서 듣으면서 의식의 흐름 기법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책을 읽고 영화도 재밌게 본 작품이 되었지요. 그 후 거부감 보다는 울프의 작품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 <자기만의 방>을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여성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메세지를 어느 강연에서 메리라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페미니스트들의 필독서라고 부르며 부조리한 제도에 대한 비판과 개선책을 모색하는 방안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겠으나 저는 그리 거창한 의미보다는 현재의 제 모습에 견주어 보면서 골똘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사회의 제도적 장치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많지만 모든 여성들이 사회적 진출을 꿈꾸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만 하더라도 편안한 가정을 꿈꾸며 가정을 돌보는 일에 행복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울프가 6장에서 비아냥 거림처럼 읊어댄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고 말한 부분을 읽으면서 실제로 강연에 참석하고 싶은 여성들도 있었겠지만 설거지와 아이를 재우는 일에 더 가치를 두는 여성들도 있었을텐데 일반화시켜 말하기에는 다소 성급한 발언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요즘 제가 진지하게 꿈꿔왔던 지난 날의 생각이 철없던 것이었나 싶기도 하고, 그 꿈 때문에 내게 왔던 수많은 기회들을 스스로 차버리는 실수를 범하였나 싶어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쩌면 살고자 애쓰는 자기 합리화 속에 스스로를 기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보다 얇은 책은 금새 읽었지만 생각정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삶으로 생각하면 행복하나 누군가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삶을 보면 양심과 염치가 발동하여 스스로를 작게 느껴지게 만들어지고, 굳이 공간까지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능력은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요즘입니다. 소설을 쓰기위해서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기 만의 공간과 돈은 꼭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작가가 살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진 요즘, 과연 공간과 돈은 여성에게만 필요한 것일까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 내용을 여성에게만 국한시키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으로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내가 벌어 내가 쓰는 남자도 많겠으나 내가 벌지만 못쓰는 사람도 많고, 그 많은 공간 중에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는 가장들도 많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이 대학 잔디를 밟고 있다고 불쾌해 하는 시절은 지나갔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겠지요. 돈과 공간에 치중해 읽다가 문득 작가의 인생이 떠올랐습니다. 유산으로 받은 넉넉한 돈과 오빠 덕북에 나름 지성인들의 모임에 참여하여 지적 자유를 누릴 수도 있었으며 남편의 헌신적인 배려 덕분에 그토록 원하던 책을 만드는 일을 할 수 도 있었고 외부 환경으로 볼 경우 부모님의 사망 외에는 그리 큰 어려움을 느낄 수 없었던 것 같은데 결국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최후를 맞이한 것을 보면 인간의 삶에 물질적인 공간과 돈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안락함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문장이 마음에 콕 박히긴 하였습니다. 누군가는 말하겠죠. 니가 사회생활을 너무 짧게 해서 여전히 여성들이 얼마나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줄 알기나 하냐고 말이죠. 철없는 안락함을 누리고 있으면서 가끔 찾아오는 염치 때문에 그 안락함의 비용을 나의 경제력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기초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주제에 여성 평등이란 주제는 너무도 커다란 숙제처럼 보입니다. 그 사이 제 시야에 들어온 것은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을 향한 불평등과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남학생들을 향한 불평등이었지요. 버지니아 울프처럼 사회적 지위가 어느정도 자리잡은 여성의 발언을 통해 시대 문제를 고발했기에 오늘날과 같은 사회를 만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여성, 남성 성을 이분화 시켜 이야기하기 보다는 개인적 존재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이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공교롭게도 초코양락의 통장 개설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자기만의 방> 이나 초코양락이나 모두가 꿈꾸고 있는 것은 자유인 듯 싶습니다. 저 또한 궁극적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자유였을 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역시 변하지 않은 버지니아 울프의 문체는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코로나19가 어느정도 잠잠해지고 우리가 다시 모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독서모임에서 꼭 한번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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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강연 제안을 받은 화자가 청중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하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자기만의 방'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성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말하며 그것은 곧 돈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소설을 여성과 연관시키려면 자기만의 방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수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 시대 상황상 교육의 부재와 자신만의 것을 소유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회계층인 여성이 소설과 관계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찰이 드러나는 책이다. 이 책은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지 못한채 읽는다면 재미가 없다. 책 마지막 페이지에 버지니아 울프 연보가 실려있으니 당시 상황을 유추한 후 소설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책의 초반엔 대학가를 거닐며 벌어지는 모습을 묘사한다. 잔디를 밟거나 도서관으로 들어가려는 화자를 찡그린 표정으로 저지하는 관리인, 여성의 교육을 등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세세하게 그렸다. 그리고 여자들이 재산을 모아 여성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면 어땠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불가능한 시대배경을 타박하는 듯한 거친 흐름을 보인다.
두번째 챕터에서 화자는 소설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도서관을 찾는다. 그곳에서 여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남자들의 책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 이 부분에서는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시 남성들은 여성을 남성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평가하고 관찰한다. 지구상에 반이나 차지하는 여성이라는 존재를 열등하다고 말하며 발아래 두고 경제활동도,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못하게 하며 지배하려 하는, 그들만이 옳은 세상에서 여성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끝으로 갈수록 여성에게 경제적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에 대해 알 수 있게 저술하였다.
화자는 런던을 거대한 기계라고 말했다. 산업혁명시대에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 고스란히 실린 책이다. 문장 하나가 길고 장황한 느낌이 든다. 너무 많은 단어가 나열되어 있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한 문장을 여러번 읽게될 수도 있다. 지금 읽기에 그의 문학은 세세하고 늘어지는 느낌이지만 당시 이와 같은 움직임이 없었다면 현재 여성인권도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품이고 여성인권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한 작품이기에 현대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나는 동양인 여성으로서 선진화된 서양 문화만 바라보며 개방적이고 양성평등을 외치는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 했는데 그렇게 여성인권이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버지니아 울프같이 사람들의 의식을 깨운 여류작가가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우리나라도 여성인권이 많이 발전했다. 앞으로도 양성평등은 더 세련되게 발전할거라 믿는다.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여성들의 움직임과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