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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라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며칠 전부터 읽고 있었다. 화자는 도쿄에서 온 서른 살의 남자이고 화가이다. 그동안 읽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도련님>등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몰입도가 좀 약하고 도중에 문장을 놓치고 산만해지기도 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화가 등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감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부족함이리라. 오늘(1.29일) 날씨 온통 잿빛의 하늘, 그리고 약한 빗방울 흩날리는 이런 날은 마음이 차분해져 이러한 작품을 읽기엔 제격이라 생각이 든다. 들뜬 기분으로는 몰입할 여지가 없다. 겉돌던 초반의 분위기를 지나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두 세 번씩 읽고 필사하면서 조금씩 화가인 화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1896년 문학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후 그 해 연말에 오아마 온천을 여행하며 소재를 얻어, 1906년에 발표한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사전> 등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옮긴이와 나쓰메 소세키의 가상 인터뷰 대화도 흥미롭다. 여기서 <풀베개>라는 제목은 여행을 상징하는 한다는 것과 자연속의 ‘비인정(非仁情)’-(각주: 인간의 의리나 인정 따위에서 벗어나 그것에 구애되지 않는 일을 가리킨다.)-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이쿠적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자연을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시적으로 형상화한 수법을 작품 전반에서 볼 수 있다.
산길을 오르면서 눈에 들어오는 여러 풍경들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하이쿠에도 그 모습을 담는다. 가는 도중 마부도 만나고 찻집 할머니를 만난다. 시호다 온천장의 사연도 듣게 된다.
‘저무는 봄의 색깔은 곱고 아름다워, 잠시 어스름한 문을 환영으로 채색하고, 눈부실 정도의 허리띠는 금란(金?)인가. 산뜻한 옷감이 오락가락, 날이 저무는 색깔은 창연한데 고요하고 적적한 건너편, 요원한 저쪽으로 점차 사라진다. 찬란한 봄별이 새벽녘에 보랏빛 짙은 하늘 저 멀리 빨려 들어가는 풍경이다.’(p93)
화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같은 장소를 배회하는 여인의 모습을 슬며시 지켜보면서 말도 못 붙이고 안달한다. 화자의 안달하는 마음을 그 여인은 알리도 없다. 온천장의 나미라는 이름의 여자는 결혼했다가 전쟁으로 남편의 은행이 망해서 다시 친정 나코이로 되돌아 왔는데, 사람들을 이를 두고 인정이 없다느니 박정하다느니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약간 정신이 이상하다고도 했다. 화자가 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데, 나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들어왔다가 갑자기 나가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려고 이곳에 왔지만, 아직까지 한 점도 못 그리고 있는데...
나미는 “내가 몸을 던져서 둥실 떠 있는 것을, 괴롭게 떠 있는 장면 말고요. 편안하게 죽어서 떠 있는 장면을 예쁘게 그려 주세요.” 라고 거침없이 말 한다.
가가미가 못에 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다. 하나 둘 꽃송이가 떨어진다. 요전에 온천장의 나미가 말했던 농담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떠 있는 장면을 그리면 어떨까 생각한다. 가가미가 못(연못)은 오래 전 온천장 시호다가의 아가씨가 투신을 했는데, 그때 거울(かがみ[鏡],가가미)을 가지고 있어서 ‘가가미가 못’이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하지만, 평소 나미의 얼굴에 떠 있는 사람을 얕잡아 보는 미소와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그 태도와 표정으로는 ‘인간 이상의 영원이라는 느낌’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통, 증오, 질투, 분노, 원한의 표정이 아닌 ‘동정’의 정서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그림이라고. 나미의 표정 속엔 이러한 ‘동정의 정념’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서 화자는 불만스러워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 나미의 사촌 동생 규이치가 전쟁터로 떠나는 것을 배웅하는 기차의 차창으로 이혼한 전 남편의 얼굴을 보게 되고 망연해 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애련함’의 느낌을 떠올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이 작품에는 한문과 중국의 학자, 문장가, 그리고 일본의 화가나 문장가, 하이쿠, 노(のう[能])-(각주: 일본의 대표적인 가면 음악극이다. 노가쿠(のうがく[能?])라고도 한다.)- 등과 서양의 화가나 문인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작품을 이해가 한결 수월하고, 그에 대한 감동도 배가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과는 다른 느낌의 작품, 자연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화가의 눈에 비친 아름다움의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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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작가의 <그 후><마음> 이후로 세번째로 만나는 책이다. 이 책은 소세키 작가 자신의 예술론에 관한 모든 생각이 담겨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제목의 '풀베개'는 '풀로써 베개를 삼는다' 라는 문장처럼 여행을 상징하고 있다고 책의 뒷편 소세키의 인터뷰에서 소개되었다.
여행.. 소세키 작가는 고등학교 강사일을 하다가 오직 문학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 일을 그만두고 그 해 연말에 오아마 온천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때 이 책의 소재를 얻었다고 하니 이 책에 나오는 온천으로 여행을 가는 주인공 나인 화가는 소세키 작가 그 자신일수도 있겠다.
화가는 혼자 온천 여행을 떠난다. 가는 도중에 찻집의 할머니를 만나고 마부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자연을 이야기 하고. 도착한 온천방에는 여자가 있었다. 나미라고 하는 여자로. 한번 결혼을 했다가 남편의 사업이 망하자 돌아온 여자인데 어떤 독특한 매력이 있었던 여자로. 그렇다고 그들 사이에 특별한 로맨스가 있는건 아니다.
단지 주인공인 화가는 이 여자 나미와 이야기하는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온천여행동안 한편의 그림도 완성하지 못하였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이 여자가 남편을 배웅하는 애잔한 표정에서 이 화가는 그림을 완성할수 있는 그 무엇을 보았다.
이 책은 이야기가 있는 소설이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예술에 관한 생각을 피력한 책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래서 그의 예술에 관한 에세이.. 라는 느낌이 더 강한 책이었다.
"소세키는 계속 읽힐 것이다!" 라는 말처럼 아주 많은 그의 책들을 몽땅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이지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p.7)
나는 풀을 방석 삼아 태평스러운 엉덩이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이런 곳이라면, 오륙일 이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어도, 아무도 불편한 소리 할 사람은 없다. 자연의 고마움은 여기에 있다. 때가 오면 용서도 미련도 없는 대신에, 사람에 따라서 차이를 두고 취급을 달리하는 따위의 경박한 태도를 조금도 보이자 않는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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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기분을 내주는 책은 많다. 자신의 여행담을 적은 에세이, 여행의 에피소드를 주제로 한 소설, 여행 정보를 빼곡히 담은 여행 잡지 등등. 훈훈하게도 과장님에게 빌려 드렸던 책에 얹혀 온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는 여행을 주제로 한 소설이지만, 기존에 보았던 들뜬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보통의 여행 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끊임 없이 세상과 삶에 관한 생각을 이어나가며 깊은 산을 향해 여행하는 자부심 있는 화가를 화자로 하고 있어, 진지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긴다. '풀베개'라는 제목부터 자연을 침소로 삼는 것이어서, 이 소설에서 그리고 싶은 내용을 언뜻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자연적 분위기는 주인공이 여행하는 목적이나 장소가 속세와의 연을 끊고 잇는 일과 닿아 있다는 점에서 한층 더 고조된다. 여행지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보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화자의 심리에 훨씬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다른 여행 소설과는 다른 점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인정'이라는 개념은 '속세' 내지 '세속'과 일맥상통하는데, 주인공은 이러한 인정에서 벗어난 '몰인정'을 추구하며 여행길에 오른 것으로 그려진다. 몰인정을 원하면서도 산속에서 만난 인정으로 인해 완전한 몰인정에 빠지지 못하고, 끊임 없이 예술의 역할과 몰인정에 대한 가치를 되뇌는 주인공의 의식은 나쓰메 소세키의 철학을 읽게 한다. 쉽지 않은 철학이 짙게 배어 있고 오래된 만큼 이제 와 읽기에는 평이하지 않은 문체로 쓰여져, 평범한 여행 소설을 읽을 때 기대하는 설레고 들뜬 기분을 느끼기에는 어렵다. 안개가 자욱하고 운치 있는 산속으로의 여행을 꿈꿔볼 수는 있겠으나, 어디로 향해야 할지 찾아야 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 소설 또한 여행 소설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니, 이러한 여행 소설 표면의 즐거움 안에 싸여 있던 심도 있는 여행자의 생각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로부터의 도피나 이상을 찾기 위한 탐색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보았다면, 주인공의 생각을 면면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망망하고 엷은 먹빛의 세계를, 몇 줄기의 은전이 엇비슷이 달리는 속을 흠뻑 젖어서 가는 나를 나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생각한다면 시도 되고 하이쿠도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잊어버리고 온전히 객관으로 눈을 돌릴 때 비로소 나는 그림 속의 인물이 되어, 자연의 경치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다만 내리는 비를 귀찮아하고, 발걸음의 피로함에 마음을 쓰는 순간은, 나는 이미 시 속의 인물이 아니며, 그림 속의 사람도 아니다. (20~21쪽) 방심과 천진함은 여유를 나타낸다. 여유는 그림에 있어서, 시에 있어서, 또는 문장에 있어서 필수 조건이다. 현대 예술의 일대 폐단은 소위 문명의 조류가 부질없이 예술가들을 구구하게 모든 곳에서 악착같이 집착하게 했다는 점이다. (103쪽) 여인은 사뿐히 일어섰다. 세 발자국이면 닿는 방 출입구를 나갈 때, 돌아보고 빙긋 웃었다. 한참 동안 망연자실했다. (131~132쪽) 선은 행하기 어렵고, 덕은 베풀기 어렵다. 절조는 지키기 쉽지 않다. 의를 위해 목숨을 버림은 애석하다. 이런 일을 감히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이 고통을 겪으려면, 고통을 극복할 만한 즐거움이 어딘가에 잠재해 있어야 한다. 그림이라는 것도, 시라는 것도, 혹은 연극이라는 것도, 이 비참함 속에 깃들어 있는 쾌감의 별칭에 불과하다. (16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