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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하여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는 것이 어쩌면 기적같은 날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입니다.
이로 인하여 점점 많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신앙을 내려놓거나 하느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과 교회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서, 혹은 교회에서는 이상적인 이야기만 할 뿐 피부로 와닿는 현상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고 느껴서 라고 합니다.
성당에서 청년회 활동이나 다른 봉사단체의 일을 하게 될 때면 청년들이 정말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들이 교회에서 멀어지는 것은 분명 교회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극도로 세속화된 세상에서, 세상이 주는 것들에 도취된 이들은 물론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이들마저도 교회의 울타리 밖을 방황하고 있는 지금 그들의 걸음을 돌려세우기란 쉽지 않은 일 같이 느껴지고 있고요~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여기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겠다는 소명으로 출간 된 『낮에도 별은 빛나고 있음을』 도서를 추천받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살아가며 마주하는 많은 사회적 문제, 신앙적 고민에 대한 사목자의 따뜻한 조언과 격려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갖고 이끌어 주기를 바라던 이들에게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느라 주변과 바깥세상을 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이 책의 기반이 된 것은 한 신부와 몇몇 청년의 단체 채팅방에서 오간 대화였다고 하네요~ 제기동성당 주임 이석균 신부가 청년들이 세상을 올곧게 바라보고 행동하기를 바라며 조직한 가톨릭 청년 시민학교 ‘단톡방’에서 오랜 기간 쌓인 메시지들 가운데 더욱 많은 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나눌 만한 이야기들을 모아 고른 내용이라 더욱 흥미롭습니다.
은총은 조건 없이 주어지지만 은총의 가치를 모르는 이에겐 땅속에 묻힌 보물과 같습니다.
태양은 온 세상을 비추지만 빛을 맞으려면 집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너는 나를 믿느냐?”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마음에서 비롯되는 사랑은 무엇이든 나누게 만듭니다. 꼭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음을 가진 이에겐 젊음이 시간을 가진 이에겐 시간이 지식을 가진 이에겐 지식이 봉헌이 될 수 있습니다.
행운이란 우연처럼 다가오는 필연입니다. 알고 보면 부르심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란 시간은 ‘그러던’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기적과 표징은 한 사람의 이기적인 꿈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주어진다는 것은 압니다. 만일 그 부르심을 들었다면 용기 있게 응답할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교회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세상의 눈으로 교회를 보는 시대가 된다면 교회의 내적 성장은 멈추고 말 것입니다.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이룬 번영과 풍요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고민의 끝에 신앙에서 멀어진 이들을 다시 교회 안으로 끌어와 감싸 안고, 반대로 깊은 신심을 추구하지만 세상의 일에는 관심이 없거나 신앙과 세상을 완전히 별개로 바라보는 이들을 깨우고 부르는 초대장같은 "낮에도 별은 빛나고 있음을" 도서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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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을 접할 때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이렇습니다. ‘금방 읽겠네!’ 작은 책의 크기와 무게만큼, 그 내용도 작게 그리고 가볍게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책이 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주저주저합니다. 손이 아니라, 마음이 그렇습니다.
글귀에 눈이 머물고 생각이 머물고 마음이 머뭅니다. 그리고 지나 보낸 시간을 돌아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살고 있나?’ 어떤 모습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떤 모습은, 그러지 못한 것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낮에도 별은 빛나고 있음을> 이 책이 그렇습니다. 글은 짧지만, 생각은 길고 깊어집니다.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별은 항상 떠 있지만, 태양에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회도 그렇습니다. 태양이 비치는 맑은 날은, 별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기라는 어둠이 깔리면, 희미한 별빛에 의지해, 무언가를 찾아야 했습니다.
절실함이 별을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별은, 어둠에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그 빛의 소중함을 알기에 이제는 어둠이 내리면 좌절하기보다 별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별은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별이십니다.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비추고 계십니다. 우리가 찾으려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둠을 내리십니다. 우리가 당신을 찾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입니다. 주님을 뵐 기회입니다.
어둠이 감사한 이유입니다. 오늘도 내려주시는 어둠을, 겸허히 그리고 감사히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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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결코 거래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만일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주님이 원하시는 걸 먼저 알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中)
<묵상>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은 먼저 주는 것입니다. 먼저 주지 않고 받으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선행인지 욕심인지 아는 방법은 이렇게 질문해보는 것입니다.
먼저 주려고 하는가 먼저 받으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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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은 가장 강력한 사랑의 표징입니다.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하고 어머니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자녀에 대한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자녀와 함께 존재하는 일입니다.
훈련과 명령보다 위력 있는 장교들의 지휘권은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데서 나옵니다.
감동적인 말씀과 놀라운 기적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린 가장 큰 특권은 주님과 함께 먹고, 함께 걷고 함께 시간을 보낸 일이었습니다.
이루고 싶은 소원도 많고 드리고 싶은 말씀도 많지만 기도의 본질도 주님의 현존 속에 머무는 일입니다. (임마누엘 中)
<묵상> 가장 큰 위로는 묵묵히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 괜찮아질 거라고 다 좋아질 거라고 막연한 위로를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어깨에 손을 얹고, 살며시 도닥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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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내가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칼을 주러 왔다.” (마태 10,3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순된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랑은 정의 위에 기초한 사랑입니다. 폭압과 권력, 고통과 가난을 강요하는 세상 속에 평화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평화는 불의한 세상과 싸우면서도 수고와 고난을 받으면서도 구원에 대한 희망과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누리는 평화입니다. (시대와의 불화 中)
<묵상> 평화는 고요한 상태가 아닙니다. 부당함에 침묵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부당함에 침묵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행위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낙숫물에 바위가 뚫리듯 언젠가는 바위를 깰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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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마르 6,11)
시원한 격려 말씀입니다. 주님의 길대로 걷되 마음 중심을 사람에게 두지 말라는 겁니다. 능력 밖의 일로 자책하지 말고 주님 기준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겁니다. (시나이 中)
<묵상> 아시시 프란치시코 성인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고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아멘!”
모든 일을 해낼 순 없습니다. 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됩니다. 그것을 구분할 지혜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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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비롯되는 사랑은 무엇이든 나누게 만듭니다. 꼭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음을 가진 이에겐 젊음이 시간을 가진 이에겐 시간이 지식을 가진 이에겐 지식이 봉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누려는 모든 것이 형제들을 풍요롭게 만들고 주님을 기쁘게 하길 기도합니다. (왕소금 中)
<묵상> 나눌 것이 없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나눌 마음이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만들어 내는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나를 온전히 봉헌할 때, 그것을 값지게 써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 죄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이지만 죄에 취약한 사회적 구조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구조의 힘은 항상 개인의 힘보다 강합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들에게 보수가 없는 인턴직을 유도하고 공모전으로 아이디어를 빼앗고 값싼 임금으로 미래를 저당잡고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행위는 청년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죄짓게 만드는 일입니다.
가난한 청년들은 자신보다 더 가난한 난민이나 이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거나 사회적 경쟁을 내면화한 나머지 아무도 믿지 못하거나 자신들이 체험한 사회적 불평등을 더 약한 이들에게 투사하기 쉽습니다. (희생의 법 中)
<묵상>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악순환의 대물림입니다. 악순환의 대물림은 강자에서 약자에게 흘러갑니다. 약자는 더 약자에게 그 약자는 더 약자에게, 계속 약자에게 흘러갑니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노예의 비중은 귀족보다 월등하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노예가 불평등을 들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노예의 꿈은 귀족이 아니라, 노예 대장이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노예 대장을 꿈꾸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 선이 결핍된 곳에 악이 따라오고 사랑이 결여된 곳에 죄가 따라옵니다. 먼지를 닦아 내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먼지가 앉듯이. 때를 밀어 내도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때가 끼듯이.
죄의 유혹과 그 결과는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죽을 때까지 따라올 어둠이고 그림자입니다. (캘버리 中)
<묵상> 죄지을 기회를 피하길 청합니다. 나약한 인간인지라, 죄지을 기회에서 의지를 발휘하기보다 그 기회조차 오지 않기를 청합니다. 발조차 디디지 않기를 청합니다. 혹시 발을 디디더라도 빨리 되돌아올 수 있기를 청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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