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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저성장과 양극화를 극복할 최선의 방안은 동반성장이다. 초과이익공유제 어떤 대통령이 되었던 반드시 실천해야된다. P184 NFL 이 왜 세계최고스포츠가 되었는지 동반성장이 잘보여준다. 대기업 4대악 ㅡ 구두주문,기술탈취,장기어음,납품단가 후려치기 재벌회장님들도 처음엔 서민출신들이었는데 많이 변했다. 애덤 스미스의 이론이 이렇게 심오한지 오늘 처음 알게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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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정신을 통한 한국경제의 동반성장은 어떻게 할것인가? 코로나로 인해 자영업, 중소기업은 무너져가고 있다. 동반성장을 이루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것인지 전 총리에게 들어보자. 책을 읽으며 뉴스와 밖에서 보이는 가계경제를 체감하고 있다. 어렵지 않게 쓰여있어서 읽는 내내 불편하지 않고 이해하기 쉬웠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스미스의 사상을 보며 자본주의 정신과 동반성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추구해야 할 참모습을 엿볼수있고 명쾌하게 정리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정당한 이익추구를 보호하는 것이며 대기업은 해외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더라도 국내에서는 함께 발전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중소기업을 옥죄어 원가를 터무니없이 낮추거나 대기업의 이득을 위해 부당하게 대가를 지불하는 등의 불합리한 정책이나 관행은 없어져야 할것이다. 동반성장은 함께 성장하는 작동원리인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좀처럼 좁혀질 기미조차 안보인다. 중소기업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아 상품화 시키면 바로 대기업에서도 비슷한 상품을 내놓아 서로 뺐고 뺐기는 그런 구도형태이다. 골목상권 같은 경우도 한 아이템이 잘된다고하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못된 심리가 있지 않은가. 불필요한 규제는 풀고 규제를 투명하게 하여 가계와 기업의 경제활동에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은 왜 필요한가? 양극화 위기를 극복하고 함께 협력할 때에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게 된다. 저자는 동반성장의 필요성에 힘을 주어 말하고 있다. 동반성장만이 경제적 약자에게 불안을 줄여주며 경제를 재도약시키는 구체적이며 실천적 대안이라고 한다. 고객, 근로자, 협력업체에게 성과가 합당하게 돌아가는것이야 말로 한국의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지향점이라고 할수있겠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협력업체에 납품가 후려치기나 구두계약으로 인한 불공정한 관행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흔들리는 것, 중소기업의 부실은 가계부채의 부실로 이어져 국민의 구매력 저하로 인해 내수부실을 우려한다. 청년들이 좋은직장,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려해도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학 진학률과 편입률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대기업의 일자리만 가더라도 스펙과 자격증 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안은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으로 가는것인데 근무환경이나 급여수준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좋은 중소기업이 많이 생겨야 격차도 줄일 수 있고 재벌기업이 법률을 준수하머 협력중소기업에게 불공정거래관행을 근절해야 한다. 그래서 동반성장으로 인한 내수경제의 흐름이 원활해지고 균등한 기회부여와 공정한 경쟁질서를 창출하는 것이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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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동반성장, 자본주의 정신 : lalilu 이 책은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 원칙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동반성장’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능력 있는 총리로 활약했던 당시가 기억되는 정운찬 전 총리다. 사람들은 그를 ‘동반성장 전도사’라고 부를 정도로 저자는 동반성장이 얼마나 중요한 경제 원칙인지 이 책을 통해 가르쳐준다. 한국 경제는 세계가 놀라워할 만큼 단 시간 안에 놀라울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또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동반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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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얻은 게 많은 고마운 독서였다.
첫째, '동반성장연구소' 홈페이지다.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동반성장연구소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동반성장포럼에 대해서 안내도 나와있고 또 '포럼 자료집'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부동산문제의 진단과 과제,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제언, 코로나와 탈세계화와 바이든 시대, 평화적 흡수통일과 동반통일의 과제, 한반도 평화와 한일 관계, 동반성장을 위한 미래교육 방향,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한반도 안보정세 전망, 인구구조 변화와 세대간 동반성장, 재벌개혁 핵심이 무엇인가, 임직원 성과공유제와 부패척결, 대한민국 희망전략 지식재산허브, 통일 한반도의 성공적인 도시 및 지역개발 로드맵 등등 정말 재미있는 주제의 포럼 자료집을 모두 확인할 수 있으니, 아주 큰 수확이다.
둘째,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동반성장의 구체적 전략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초과이익 공유제'를 알게 된 것도 감사하다.
셋째, 전세계에서 프로스포츠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미식축구(NFL), 야구(NLB), 농구(NBA), 아이스하기(NHL)이 4대 프로스포츠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왕중왕 자리에 군림하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익숙한 야구도 농구도 아이스하키도 아닌 미식축구(NFL)이며, 이 NFL에서 저자가 지향하는 수익 공유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그리고 토론토 대학 교수 로저 마틴이 "NFL은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탐욕에 찌든 기업들이 배워야 할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 평가했다고 하는데, 곁가지로 나는 '로저 마틴' 교수를 알게 되는 덤까지 얻는 행운을 맛보았다.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과업'이 과연 손쉽게 이루어지겠는가? 저자가 쓰디쓰게 맛보았듯이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이 그리고 언론권력이 호락호락하게 절대 자기들의 특권적인 지위를 내놓지 않는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아니면 20년 우리는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싸워야 한다. 왜냐, 독점과 특권의 싹은 계속 움트고 커져가려고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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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그동안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이뤄졌습니다. 이런 대기업 위주의 성장은 예를 들어 대만이 선보이는 중소기업 위주의 성장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대만 역시 1980년대 이래 한국처럼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 왔으며, TSMC 같은 세계 굴지의 기업이 반도체 산업을 리드하는 것만 봐도 그 성장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한국 역시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첨단 산업 분야에서 새로이 세계 정상을 차지했으니 대만만 못하다고 결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한국은 어떤 진로를 취해야 할까요? 삼성 등 대기업이 그간 잘해 있으니 이를 적극 장려하고, 기업이 보다 기업하기 좋은 풍조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크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최근 이재용 회장이 수감되었을 때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그간 재벌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마냥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지금처럼 펴 나가도 문제가 없을까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여 남용 악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집니다. 남의 기술을 뺏어서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런 일이 일상화하면 앞으로 젊은 인재들이 어떻게 의욕과 패기를 갖고 아이디어를 내며 건강한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한국처럼 국토가 협소하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저 후츠파의 정신으로 일어선 이스라엘 모델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요구하는 바는 재벌의 몫을 나눠 달라는 게 아니다(p94)." 재벌은 재벌의 영역에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중소기업은 자신의 강점이 있는 영역에서 자신만이 발휘할 수 있는 창의력을 발휘하게 장려되고, 그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오랜 동안 주창해 온 동반성장의 핵심입니다.
이 책의 제목, 그리고 본문에는 "자본주의 정신"이란 말이 들어 있고 자세히 논의됩니다. 자본주의 정신, 즉 가이스트 카피탈리스무스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노동과 창의와 근면과 헌신의 정신을 귀하게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이익을 창출하며, 그 결과는 개인의 영역에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처럼 재벌이 중소기업만의 성과를 함부로 침해하고, 이후의 재생산이나 창의력 발현을 막는다면 이것은 자본주의의 존중이 아니라 그 정신의 말살에 가깝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걱정 없이, 자신만의 기여를 사회에 베풀고 그 대가를 합리적으로 거두어갈 수 있게 돕고 북돋우는 게 정부의 할 일입니다.
"후생"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체계화했을 때 이 개념은 대단히 보수적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후생은 이제 재정의되어야 하며, 많은 이들이 최대한의 만족을 누리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자유와창의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오랜 세월 동안 강조해 온 동반성장 정신의 핵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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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 그리고 비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워낙 유명한 분의 저서라 대중들이 궁금해 할 것이며 우리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며 이해해야 하는지, 책을 통해 배우면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 요소 및 부정적 상황을 극복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장에서는 한국경제의 저성장 기조, 양극화 문제, 동반성장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모두가 바라는 시대정신에 맞는 경제 성장 및 발전, 재도약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나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우리 사회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참모습, 이상적인 부분에서 벗어난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현상 및 재벌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는 산업구조의 문제점, 대기업과 재벌들의 독점화로 인해 취약한 구조로 전락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현실은 계속해서 제기되는 시대 과제와도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제도개선 및 지원책 등이 마련되고 있지만 그 효과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오히려 역행하거나 이를 악용하는 사례만 늘어나고 있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동반성장 모델, 새롭게 자본주의를 정의하며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개선과 정책의 일관된 방향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언급을 통해 경제학의 기본 원리와 개요에 대해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 소수가 권력과 자본을 독점하기 시작했고 이는 또 다른 불균형, 양극화, 사회문제 등으로 나타나며 자본주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했고 예전의 관습이나 기조로는 한계점도 명확한 지금의 현실을 반영해서 동반성장의 가치와 새로운 형태로 재편된 자본주의적 모습, 궁극적으로 바라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소개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정부와 대기업, 재벌들의 역할론, 그리고 모두가 혜택과 결과를 누릴 수 있는 상생의 방안 등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두가 협의를 통해 더 나은 대안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갈수록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강한 경제예측, 기본으로 돌아가 더 나은 방법과 방향성을 찾는 관심과 행위에서 모든 변화와 구체적인 혁신적 방안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 동반성장, 자본주의 정신> 을 통해 읽으면서 경제전망과 경제사, 경제학 등의 관점에서 배우면서 판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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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한국경제 동반성장 자본주의 정신 / 정운찬 지음 / 파람북
#한국경제 #한국경제 동반성장 자본주의 정신 책은 동반성장 전도사 정운찬 전 총리가 전하는,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제언. "동반성장 없으면 자본주의도 없다!" 저성장과 재벌기업 횡포, 양극화와 중소기업 몰락 오염된 한국 경제생태계, 동반성장이 해법이다.
![]()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는 사회 작동원리다.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경쟁이 공정하다고 느끼며, 격차를 좁힐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때, 비로소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 동반성장에서 ‘함께 나눈다’라는 말의 의미는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에게 주자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 전체의 파이는 크게 만들되, 분배를 좀 더 공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저성장과 양극화가 심화될 것은 틀림없다. 상징적으로 보자면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월급을 받는 반면, 일용직 등 일반 노동자들은 소득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지 않는가? 따라서 코로나 충격으로 인해 동반성장의 필요성은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한국경제 #한국경제 동반성장 자본주의 정신 이 책의 목적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과 양극화를 극복할 최선의 방안은 동반성장이며,동반성장은 적지 않은 인사들의 인식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기본정신에 충실한 방안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동반성장이 사회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라며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반대하는 것은 동반성장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지 않은 채,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격이다. 건강한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들이 누려야 하는 자유는 애덤 스미스가 저서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강조했듯이 법률과 게임의 규칙을 전제로 한다. 그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의 추구는 자유방임이 아니다.
![]() 지금까지 달려온 한국 경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당시의 런던을 닮았다. 우리는 선성장, 후분배 정책으로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달려왔다. 그만큼 발전도 빨랐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경제생태계의 오염된 모습이 성장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경제 성장의 선순환은 연결고리가 끊겨버렸다. #한국 경제 동반성장 자본주의 정신 은 동반성장연구소 정운찬 이사장이 한국 사회를 위해 내놓은 동반성장 보고서이자, 경제 위기 탈출을 위한 해법서다. 동반성장이란 무엇인지, 한국 경제에 동반성장이 왜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지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동반성장’을 반시장적,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비난했던 우익 진영을 향해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 원론을 상세히 짚어가며, 동반성장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참모습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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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까지 한국 경제는 말 500마리가 끌어당기는 철갑 전차 같았다. 전쟁의 불길이 국토를 휩쓴지 채 50년이 되지 않은 국가가 마천루를 세워 올리고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의 중국처럼 연간 10%가 넘는 성장률을 거듭하며 식민 지배의 아픔, 전쟁의 상처를 빠르게 회복해 나갔다. 우리 정부가 택한 방침은 대기업 위주의 성장가도였다. 국가 전체의 부를 우선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재벌로 존재하는 그 기업들의 초창기 시절을 든든히 지원해 주었다. 놀라운 성장 속도와 자본의 맛에 매료된 기업들은 반도체부터 심지어는 도어락까지 손 대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몸집을 키웠다. 한동안 대기업들의 투자 수익률은 투자율은 밑돌았다. 투자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본다는 뜻이었다. 오랜 기간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라는 관성과 신념은 대기업을 '보증'했다. 사업이 조금 틀어져도 돈을 빌려줄 은행은 많았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구조조정에 따라 실직한 사람들이 줄을 이뤘다. 그래도 우리는 한 번의 거대한 경제 위기를 근면한 국민성과 단합력으로 이겨냈다. 그 후 기업들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대기업들이. 10년, 20년 후에 든든한 지원군이 될만한 신사업에 투자를 했어야 하지만 리스크 있는 일을 하기 꺼려 했다. 이미 커버릴 대로 커져버린 성장세 또한 멈추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는 성장 동력을 서서히 잃어갔다. 대기업을 위주로 국가를 키워갔던 결과는 99%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 거의 성장하지 못한 불균등이라는 세계였다. 노동 인구의 80% 이상이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고,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인 우리나라이지만 GDP의 30%는 삼성과 현대 두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소득, 자산, 부동산 등 경제의 모든 방면에서 철저히 한쪽으로 기울게 된 양극화 현상은 대다수의 서민들이 더욱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지갑을 열지 않는 소비자들 덕분에 기업은 성장 동력을 또다시 잃는다. 아름다운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단기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 경제관념의 부족, 대기업 일변도의 성장 정책 등 많은 요소들이 맞물려 오늘날의 한국 경제를 만들었다. 좋다 나쁘다를 가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과거의 작은 행위들이 오늘날의 한국 경제를 만들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는가'이다. 서울대 총장을 지내고 국무총리까지 지낸 정운찬 교수는 그 해답 중 하나로 동반 성장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극심한 수준으로 무너져버린 우리 경제의 균형 상태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리고 경제의 작은 주체들이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동반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애덤 스미스부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밀턴 프리드먼, 옐런 자넷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의 위대한 지성들을 잠시 만난다. 책의 제목인 <한국 경제 동반성장 자본주의 정신>은 저자가 크게 제시하는 3가지 키워드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와 오늘을 논하고, 그 제안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와 민간의 동반 성장을 논한다. 그 근간에 있는 자본주의의 큰 틀을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굳이 양극화라는 우리 사회의 참담한 현실과 1600조 원에 달하는 부채, 기업을 죽이는 규제,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국가 등의 암울한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사회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은 우리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거대한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비록 매 차례 그 담론과 개혁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우리 경제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일조차 포기할 수는 없다. 그때가 바로 우리 경제가 멈춰 서는 순간일 테니 말이다. 저자는 동반성장이라는 자신의 작은 제안에 대해 마음껏 비판을 가하라는 말을 전한다. 완벽한 경제 이론은 없다. 완벽한 경제 정책도 없다. 사실 한 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자들이 모이는 정부가 벌이는 일들은 완벽보다는 엉망에 가깝지만, 저자는 적어도 함께 담론을 이어나가자고 말한다. 우리의 고민이 대한민국을 어디로 이끌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어제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위기의 한국 경제에 전하는 작은 제안, <한국경제, 동반성장, 자본주의 정신>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파람북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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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운찬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경기도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으로 건너 가 마이애미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프린스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에서 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하다가 1978년 말 귀국해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서울대 경제학부장과 사회과학대학장을 거쳐 서울대 제23대 총장에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40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한국 경제는 70여 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눈부신 성장 뒤에는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바로 함께 잘사는 사회, 더불어 잘사는 삶이라는 가치이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를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한국 사회는 산업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소수에 의한 소득과 부의 독점과 기회의 불평등 현상이 나타났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 저자는 기회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인 격차는 용인되어야 하지만 기회가 평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격차는 수용하면 안 된다고 한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지 못한다면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 불공정한 상태를 방치하여 만들어진 격차, 부정행위로 만들어진 격차도 용인하면 안 된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쟁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어진 규칙과 감시기구가 중요한 이유는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여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함이다. 지금은 신뢰가 다 깨졌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이 승자와 패자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패한 구성원과 승리한 구성원 사이에 격차가 너무 벌어져 마침내 양극화가 고착되는 것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경쟁에서 패하더라도 직업 교육과 업종 전환, 개인의 노력으로 재기할 수 있는 유연성과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와 같은 동반 성장을 사회를 위해서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활력이 저하된 배경에는 정부정책의 실패와 민간 부분의 소비와 투자 부진에 따른 수요 위축과 고용 및 기술력 둔화에 따른 공급 정체라는 요인이 있다. 저자가 동반성장이라고 해서 사회주의나 반자본주의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저자는 진짜 그런 이념적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동반성장은 좌우나 보수 대 진보라는 이념적 프레임 안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실사구시적 대안이었고 그동안 제기된 이념에만 치우친 반론은 매우 아쉽다고 했다. 동반성장이 사회주의적이라며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반대하는 것은 동반성장이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은 채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격이라고 한다. 동반성장이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자기 스스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동반성장은 앞서 가는 사람들에게 같이 가자고 말한다. 동반성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같이 가자는 말 속에 앞서 가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 끌어내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의심한다. 앞서 가는 사람들을 끌어내리려 한다면 그것이 곧 반자본주의적 사상일 수 있다. 앞서 가는 사람이 있다면 뒤쳐지는 사람도 있는데 왜 앞서 가는 사람에게 같이 가자고 하는가,, 그런 능력의 차이는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타고난 것인데 저자가 뭐기에 하나님이 만든 인간의 능력 차이를 부정하는가,, 그런 사상이 곧 사회주의 사상, 공산주의 사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의 이기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저자는 이기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후생도 같이 생각을 하자고 하는 것 같다. 각자가 이익과 효용을 극대화하면 사회적 후생은 저절로 극대화되고 남 걱정할 필요 없이 자기 이익을 최대로 추구하면 된다. 아담 스미스의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라는 식으로 이해한다면 자본주의를 너무 편협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과 행동 자체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닐뿐더러 인간이 모여 구성하는 사회는 더욱 간단한 원리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면 만사 오케이이다.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면 경제학을 잘못 배운 것이고 자본주의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난 항상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가 이기심만 있는지 궁금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최고 이상은 이윤 극대화이며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사회에 속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경제활동을 연구할 때 개인 내면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이 사회 구성원의 하나라는 측면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활동을 이해하는 데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개인이라는 측면과 사회 구성원이라는 측면을 동시에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성향과 사회적 성향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성향 때문에 인간은 도덕 또는 윤리의식을 가질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인간이란 다른 사람들이 정의를 위반하는 것을 절대로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공공 사법당국은 정의라는 미덕의 실천을 강제하기 위해 영연방의 권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예방 조치가 없다면 시민사회는 모든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고 믿을 때마다 자기 손으로 보복에 나서는 유혈이 난무하는 무질서한 조직으로 변할 거라고 했다. 아담 스미스는 이기심에 대해서 무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담 스미스는 각 개인의 이기적인 추구는 사회적 다툼의 풍부한 원천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의법칙과 도덕법칙이 필요하다고 했다. 도덕법칙은 완벽하게 강제할 수 없으며 오직 본인 스스로의 절제에 의해 지켜진다. 정의법칙은 부분적으로는 개인들이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절제에 의존하지만 정의법칙이 확실하게 준수되려면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정의법칙이나 도덕법칙 같은 제재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의 판단은 편파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안 좋은 판단은 실어하고 자기기만을 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이 맞고 적절한가에 대한 법칙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계속적으로 관찰한 뒤 이성과 추론의 기술을 사용하여 얻어지는 결과다. 도덕법칙에 대해 아담 스미스는 우리의 도덕적 능력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함으로써 우리는 필연적으로 인류 행복 증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신과 협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우리의 힘이 닿는 한도까지 신의 계획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미스의 특징적인 주제인 인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그의 원래 의도와 관련이 없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신의 손이다. 신의 손에 따라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이루게 되는 경제원론에서는 그것을 효용의 극대화, 이윤의 극대화라고 한다. 스미스가 말했던 것은 인류의 최대 행복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이루게 되는 것은 인간을 최대한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신의 계획이다. 신의 손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도덕적 능력을 통해서다. 도덕적 능력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법칙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여야 사회적 후생이 최대화될 수 있다. 도덕 법칙을 따르지 않고 정의 법칙만 따른다면 즉 처벌받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법률만 지키는 식이라면 그 사회의 행복은 절대 극대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에 대해서 궁금했었는데 저자가 그것을 풀어줘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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