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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종료 사카이 준코/남혜림 사계절출판사/2020.10.28. sanbaram
요즘 연예인 사유리의 비혼출산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동안 결혼한 부부의 출산만을 당연시하던 우리 사회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하는 것이 뉴스의 초점이 된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가족제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N포세대의 젊은이들은 비혼자들이 크게 증가하고, 전 세계에서 출산률이 가장 낮은 우리나라의 가족 구성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가족 종료>는 일본의 N포 세대라 할 수 있는 50대 중반의 비혼 여성 입장에서 일본의 가족에 상황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책이다. 저자 사카이 준코는 릿교대학교 사회학부 관광과 졸업 후 광고회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전업 작가 이며, 2004년 <네, 아직 혼자입니다>로 후지코론 문예상, 고단사에세이상을 수상했다. <깔보는 사람 심리>,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가족 종료>에서는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는 삼대가 함께 생활하는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났으나 조부모가 돌아가시고, 오빠가 독립하면서 핵가족이 되었고, 부모가 돌아가시고 본인이 비혼으로 남게 되면서 전통적인 가족이 와해되어 가는 중이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생각한 일들을 하나씩 정리한 것이 이 책이기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역시 40-50년 전까지는 대가족을 이루고 살다가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핵가족 위주의 가족이 구성되었는데, 요즘은 비혼을 추구하는 젊은이들과 직장생활로 인해 1인 가족이 대세가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혼술’ 이니 ‘혼밥’ 이라는 말이 보편화 되어 가고 있다. 저자는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이었나,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가족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나, 가족 종료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가족이 없기에 비로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p.16)”라는 말로 이 책의 주제를 정리하고 있다. 어렸을 때 가족구성원들과 그들의 성향을 소개 하는 것을 시작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차례대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일들은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사회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의 대가족제도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활성화되면서 <82년생 김지영>이 부각되었던 것처럼, 대가족 시대에는 가부장적인 통념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그러다 핵가족시대가 되면서 대가족이 해체되고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해 가정에서의 남녀관계가 변했고, 경기침체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N포세대가 출현하고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비혼율이 증가하면서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이 단계를 거친 일본에서 비혼으로 살면서 느낀 저자의 생각을 18편의 에서이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의 가족 제도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요즘 부부는 서로에게 이해를 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남편이 일방적으로 아내를 이해해주고, 남편은 무엇을 하든 아내에게 일일이 이해해달라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부부가 맞벌이하며 아이를 키우는 경우,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스케줄을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합니다.(p.82)” 서로의 일정을 확인해서 아이들 등하원이나, 갑자기 열이 났을 때 병원 데리고 가는 일들을 조율해야 하며, 회식이 겹치면 부모님 손을 빌리든가 그것도 힘들면 두 사람의 회식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저울에 달아 한쪽이 포기하든가 해야 한다.
“‘장남 지상주의’에서 ‘형제간 실력주의’로 시대가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가족상의 변화는 기업의 변화와도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p.145)” 일본 기업은 연공서열 시스템 위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갔으나 거품경제가 무너지며 실적주의로 바뀐 것처럼 우리의 사회도 변화를 겪었다. 장남위주의 전통적 사회에서는 평생직장이었던 것이 자유경쟁 체제로 바뀌면서 실적과 능력위주로 바뀌게 되면서 극심한 경쟁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가족 제도는 핵가족 제도가 해체되고 1인 가족이 늘면서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예전에 가족 간의 애정이나 걱정이 ‘언젠가는 내가 돌려받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주고 나면 끝인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다이묘 집안에서는 가부키 명문가나 텐노가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대를 이어야 했습니다. 후손이 없으면 막부에 영지를 몰수당하는 처분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다이묘들은 첩이든 뭐든 들여서 필사적으로 대를 이어왔습니다. (p.182)” 이와 같이 일본에서 사무라이 시대의 영향으로 장남을 근간으로 하는 대 잇기에 집착을 했다면, 우리나라는 유교 사상에 입각하여 조선 중기 이후에 장남을 위시해서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이는 일이 흔하게 되었다. 그러나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여 결혼을 해도 한두 명의 자녀만 두게 된 지금은 장남을 위주로 한 대잇기는 힘들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가족문화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혼자 산 지 오래된 독신들은 이제 와서 누구랑 같이 사는 것도 싫다고 합니다. 나이 들면 외로움이 사무칠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 들었기에 더욱 더 혼자가 좋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p.203)”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혼자 죽어간 사람을 동정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혼자가 되어 고독사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혼자 사는 게 ‘평범한 일’로 취급받는 세상이라면, 혼자 죽는 것 역시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되면 혼자 죽을 때를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고 혼자 죽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 되리라 생각 된다. 요즘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노인을 모시는 것이 일상화 되어 가고 있지만 혼자 살면서 죽고 싶은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줄 사회 인프라 구축이 초고령사회를 향해 가는 우리의 당면 문제라 생각된다.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불만스러운 사람들은 외부 세계에서 가족 같은 존재를 찾아다닙니다.(p.223)” 회사, 술집, 인터넷, 망상 속에서 등등. 나 역시 이렇게 여기저기서 유사가족의 단편들을 끌어 모아 조각보 만들 듯 이어붙여가며 가족 느낌을 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기독교 사회가 그런 느낌을 갖게 해주는 대표적인 시스템이 아닌가 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현실에서도 나이 먹으면서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비혼으로 살던 사람에게 중년 입장에서 사실혼 상태는 심리적인 장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파트너는 있지만 며느리 노릇은 안 해도 되는 것처럼, 필요한 것을 서로 얻을 수 있지만 귀찮은 책임이나 의무 등은 없기에 더욱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자기들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형태든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p.248)”라고 말하는 저자는 상대방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법률혼 관계이든 아니든, 섹스를 하든 안하든, 마음 맞는 상대방과 함께 사는 것, 그냥 그러면 되는 것이지, 그 형태가 딱히 ‘가족’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하기에 특별한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두 사람으로만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세 사람, 네 사람이 섹스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며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소설 속 인물들을 소개하며 변화될 가족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앞으로는 우리사회의 가족은 좀 더 다양한 형태를 갖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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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혼자 산 지 오래된 독신들은 이제 와서 누구랑 같이 사는 것도 싫다고 합니다. 나이 들면 외로움이 사무칠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 들었기에 더욱 더 혼자가 좋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p.203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혼자 죽어간 미녀 여배우를 동정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혼자가 되어 고독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게 ‘평범한 일’로 취급받는 세상이라면, 혼자 죽는 것 역시 ‘평범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혼자 죽을 때를 위한 시스템이 마련되고 혼자 죽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 됨으로써 죽는 방식의 차별이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p.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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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진로는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친구가 근무하는 회사에는 ‘가족의 날’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직원의 자녀들을 회사로 불러 아버지 어머니가 어떤 곳에서 일하는지 견학시키고 회사 식당에서 밥도 함께 먹는 행사라고 하네요. 아이들에게 회사를 보여주어 부모님이 하는 일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 모양입니다. 집에 돌아갈 때는 선물까지 안겨준다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정말 알찬 행사지요. 요즘 아이들은 참 다양한 경험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p.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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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가족의 시대가 온다! 생애 미혼율이란 오십 살까지 한 번도 결혼한 적 없는 사람의 비울입니다. 2015년 조사에서 일본 남성 중 약 23%, 여성 중 약 14%가 생애 미혼인 것으로 나오는데, 소위 사실혼 관계인 사람도 이 수치에 포함됩니다. 헤이세이시대 초기에 남녀 모두 5% 안팎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비율이 얼마나 급속히 상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p.240 앞으로는 자기들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형태든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우리는 누가 그것을 ‘가족’이라고 불러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상대방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법률혼 관계이든 아니든, 섹스를 하든 안하든, 마음 맞는 상대방과 함께 사는 것, 그냥 그러면 되는 것이지, 그 형태가 딱히 ‘가족’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되는 거예요. 특별한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두 사람으로만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 사람, 네 사람이 섹스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며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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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 부모 극복하기 겉모습이 점점 부모님을 따라가고 있는 요즘, 목소리는 거의 예전 어머니와 동일 인물 같다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하지만 부모와 닮아가는 나이란, 내면적으로는 부모와 결별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의 불행과 엇박자를 부모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부모에게 기대어 응석을 부리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면 그것을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 손을 떠난다는 것이 아닐지. p.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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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곧 실체다! 제 세대의 경우 같은 반 남학생을 모두 평등하게 요비스데로 불렀느냐 하면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친하거나 좀 막 대할 수 있는 남자에게는 요비스테(이름으로 부름)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에게는 ‘00군’이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요듬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런 남녀 사이의 벽도 다 허물어졌나봅니다. 여자친구가 남자 친구에게 “유키, 나 배고파.”하고 말해도 사랑이 식지 않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그런 수평적인 관계의 두 사람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를 통해 서로를 부를 일은 없겠지요. 아내도 계속 “유키, 나 배고파”하며 수평적인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p.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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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시간에 가르쳐야 할 것은 뭐다 옛날 가정수업은 ‘엄마들이 사랑으로 노력하면 온 식구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까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가정 수업에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이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익히자’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사 능력은 한번 익혀두면 절대 손해 볼 일이 없으니, 어르신을 위한 가정 수업이 있어도 괜찮겠어요. p.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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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애틋할 순 없는 부모자식 메이지 시대의 소설을 들여다보면 일본의 가정은 아버지의 권위가 유독 강조되는 수직적 사회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아버지의 지위는 급격히 추락했고 가족의 수평화가 진행되었지요. p.29 부모에게 사랑한다고 외칠 수 있는 이, 부모를 껴안을 수 있는 이에게 행복 있으라. 사랑도 고마움도 말이나 태도로 표현하지 않는 한 결코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지금,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은 제게 너무나 눈부셔 보이네요. 그럼에도 그들을 보며 ‘헐’하고 외치는 게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 그것이 아마 ‘나는 이제 그런 사이좋은 가족들 사이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느끼는 질투겠지요.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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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의 무게, ‘장남 지상주의’에서 ‘형제간 실력주의’로 시대가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가족상의 변화는 기업의 변화와도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쇼와 시대, 일본 기업은 연공서열 시스템 위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갔습니다. 기본적으로 나이 많은 사람이 우선시되었던 거지요. 그러던 것이 거품경제가 무너질 무렵부터 이른바 실력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합니다. 실적만 좋으면 젊은 사람도 출세하거나 활약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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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능력은 생존 필살기 요즘 부부는 서로에게 이해를 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남편이 일방적으로 아내를 이해해주고, 남편은 물 하든 아내에게 일일이 이해해달라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부부가 맞벌이하며 아이를 키우는 경우,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스케줄을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일정을 확인해서 아이들 등하원이나 갑자기 열이 났을 때 병원 데리고 가는 일들을 조율해야 하니까요. 회식이 겹치면 부모님 손을 빌리든가 그것도 힘들면 두 사람의 회식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저울에 달아 한쪽이 포기하든가 해야 하지요. p.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