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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는 일상에서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쉽게 접하고 있다. 본래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뜻하는 이 단어는 현대에 접어들면서 주로 정신적인 외상, 즉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트라우마의 종류나 증상, 치유방법은 고사하고 트라우마에 대한 정의부터 헷갈리기 일쑤다. 말로는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왜 일어나는지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트라우마는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또한 비밀스러운 경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뚜렷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기 어렵고, 당사자도 자신이 겪는 아픔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6쪽)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트라우마가 아닌 다른 질병 혹은 요인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닐런지 모르겠다.
이 책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들려주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트라우마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하여 종류와 증상, 그리고 치유방법에 이르기까지를 영화를 소재로 하여 소개한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모든 과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영화 25편을 선택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인인 우리가 그 영화를 보고서 트라우마에 대한 것을 콕 집어내기란 쉽지가 않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것이 트라우마임에 분명하지만, 우리는 단지 하나의 서사로써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설명하는 영화 속 트라우마에 대해 읽고서 그 영화를 다시한번 보기를 권하고 있을게다. 알고서 본다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우리는 그 영화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영화 속 서사의 흐름이나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트라우마를 설명하고, 자신의 상담실을 찾아온 내담자들의 사례를 통해 트라우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놓치기 쉬운 트라우마의 초기 형성과정과 증상까지도 소개한다. 저자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에 노출되고, 또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에 직면하게 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먼저, 1부 ‘트라우마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7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의 기억이 가지고 있는 속성과 그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기는 이유, 트라우마에 대한 우리의 편견 혹은 오해, 그리고 그런 트라우마의 특징 등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흐릿해진다. 그리고 희미해진 부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짜깁기된다. 그러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는 뇌의 정보처리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전혀 가공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트라우마의 기억을 자꾸 덮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트라우마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더 은밀하고 집요하게 의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또 똑같은 트라우마라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달라진다. 저자는 사람에게서 받은 트라우마, 그것도 아는 사람에게 받은 배신감 같은 트라우마가 더 심각하고, 어린아이나, 빈곤층, 그리고 여성과 같이 사회적 소외계층이 트라우마에 보다 취약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수치심은 안전과 생존을 위해 진화론적으로 발달해온 감정이지만 지나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명백해 보이는 학대보다 은근하게 일어나는 무관심이 독성 강한 수치심을 더 자주 일으키며, 트라우마가 수치심을 강화하고 강화된 수치심은 또 다른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악순환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볼 때 트라우마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부터 출발했지만 오히려 당사자를 고통과 공포라는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외상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트라우마에 대해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라 할 수 있겠다.
2부 ‘트라우마의 종류와 증상’에서는 8편의 영화 속에 나타나는 트라우마를 전쟁 트라우마, 스몰 트라우마와 빅 트라우마, 아동기 트라우마로 나누어 그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빅 트라우마는 대부분의 인간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평범한 일상의 경험 범주를 넘어서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대표적인 것이 전쟁 트라우마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스몰 트라우마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축적된 부정적인 영향들로, 자신감이나 자존감 상실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빅 트라우마를 경험했을 때 사람들은 사건과 관련된 고통을 잊기 위해 감정을 마취시키는 감정인지 불능증이나 해리성 기억상실로 현실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오르게 하는 어떤 사소한 자극에도 뇌가 과도하게 흥분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이처럼 과도한 흥분 혹은 과도한 둔감이라는 극단적인 두 가지 양상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은 우리 뇌의 신경생리학적 변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가 하면 아동기 트라우마는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스몰 트라우마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성폭행과 같이 개인에게 있어 빅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지만 생애 초기 양육자로부터 어떤 돌봄을 받는지에 따라 아이는 커가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내면의 비난에 시달리거나, 공격적인 자아상태, 자해하는 자아상태, 공감능력의 결핍, 감정조절의 어려움, 발달상의 트라우마 장애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 모두는 무관심이나 방임처럼 알게 모르게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동기에 양육자와의 안정적인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3부 ‘트라우마의 치유’는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방법들을 10편의 영화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분명 두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는데 무조건 괜찮다고 하는 것, 즉 외면당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에게 몰이해와 무관심은 2차 가해나 다름없다. 저자는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오는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해내고, 오히려 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성장하는 ‘외상 후 성장’은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회복을 통해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즉 트라우마의 치유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당사자는 무엇보다도 내면의 두려움과 공포에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며, 주위에서는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형성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가 있는지, 그리고 아무런 의식 없이 말하거나 행하는 사소한 언어나 몸짓 하나도 반복되면 상대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솔직히 놀랬다. 그만큼 말로는 많이 들어왔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기억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도 우리 뇌의 기억회로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 여전히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계속해서 미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많은 취향과 선택은 트라우마의 기억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든 못 하든 말이다.’(301쪽)라는 저자의 말은, 내 주위에 혼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나로 인해 누군가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주변사람들과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모두에게 중요함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저자는 이처럼 영화의 서사나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설명 말미에는 PS를 통해 가장 핵심이 되는 사항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코멘트하고, 이어서 의학적인 사실을 설명함으로써 트라우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우리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용기를 주면서도, 어려운 의학적 지식을 쉬운 언어로 알려준다. 그래서 트라우마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은 충분히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참, 저자가 소개하는 25편의 영화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영화는 <엔딩 노트>이다. 영화는 정년퇴임을 한 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스나다 씨와 그의 가족들이 겪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스나다 씨는 죽기 전에 한번은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그것을 하나하나 실천해간다. 말기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으며 죽어가는 과정은 당사자나 가족 모두에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 그리고 누가 가장 소중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주제곡이 흐를 때 소중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동시에 느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을 읽은 후 수록된 영화를 꼭 한 번은 보도록 권유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를 찾아서 한번 보아야겠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 지, 또 트라우마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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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유년 시절에 학교 가는 길에 조그만 동굴이 하나 있었다. 그 동굴은 어린 나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흉악한 짐승들이 살고 있고, 혼자 가는 사람들에게 달려든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얘기까지 소문으로 듣는다. 어릴 적 학교는 가야하고, 그곳을 지나쳐야 하는 상황에서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가위 눌리는 적도 있다. 친구들과 학교에 다녔는데, 어쩌다 함께 갈 수 없을 때는 정말 그 앞을 지나기가 두려웠다. 그럴 때 그 앞을 지나야 하면 100m 달리기 선수가 되어 뛰었다. 그런 것이 어떤 닫힌 공간에서의 답답함이 되어, 요즘도 동굴 같은 곳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자신을 스스로 밀어내는 자기 방어기제로 작용하는 듯하다.
유년 시절을 어떻게 성장했는가가 그 사람의 일생을 많이 좌우한다. 유년 시절에 억압과 공포 가운데 자란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그런 것을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 몸을 사리거나 과격한 반응을 나타낸다. 그것은 결국 그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모두 트라우마가 된다. 트라우마는 자신이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작용하는 일련의 모습들을 통칭해 말한다. 그것은 지극히 자극적이고 과격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영화 이야기
이런 트라우마는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도 이런 경우, 많이 일어난다. 트라우마를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감동이 된다. 이야기가, 영화가 이런 것을 놓칠 리가 없다. 이 책은 영화 25편을 통해서 나타나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그 치유의 과정들이 담겨져 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책을 쥐고 있는 내내 트라우마도 트라우마지만 영화와 함께하고 있다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일반 기억과 트라우마 기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처음 지적한 사람은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피에르 자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 이 선지적인 정신과 의사는 환자들을 세심하게 면담하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기억의 이중체계를 발견하고, 두 가지 기억이 명확히 다르다는 것을 지적했다. 24
트라우마를 끌어내고 있는 내용이다. 일반 기억과 트라우마를 구분해 보고 있다.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잘 확인할 수 있다. 일반 기억은 인간관계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신을 주장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 기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기억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변용된다. 그리고 이야기를 반복할수록 점점 더 정교하고 유연하게 통합되어 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즉 일반 기억은 실제의 사실과 다르게 변형되었을지라도, 시간 개념이 분명하고 앞뒤 맥락이 질서 정연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트라우마 기억은 통합되어 있는 얘기가 아니다. 기억의 파편 조각이라 할 수 있다. 시간 개념이 없고, 앞뒤 맥락도 모호하다. 그것은 감정과 신체 감각 혹은 이미지로 뜬금없이 표출된다. 조리도 없고 설득력도 없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분노가 풀발하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기억이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으라.’는 신호를 내보내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기억인 이 트라우마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충동적이고 감각적인 기억인 이 기억은 그러기에 훨씬 더 사실적이다.
그런 브라이언에게 어느 날 마치 영화처럼 한 여성의 사랑이 찾아온다. 사랑이 힘으로 브라이언은 주치의의 오랜 속박에서 빠져나와, 지긋지긋한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창작 활동에 매진해 2004년에 드디어 <Smile>이라는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음반은 브라이언이 <Pet Sounds> 앨범을 만들고 난 뒤, 무려 38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앨범으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받은 그는 재기에 성공하여 현재까지도 전 세계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정말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조현병으로 진단받고 20년간 약물 복용을 했던 사람이 약물을 완전히 끊고 다시 자신의 능력을 되찾고 재기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니 놀랍다. 일반인들은 이 이야기를 감동적인 한 이야기로 들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의사들에겐 아무래도 석연치 않게 수용될 수밖에 없다. 물론 특별한 경우가 이겠지만 조현병이란 질병은 약물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대개 재발과 정신적 황폐를 가져오고 전반적인 기능과 능력이 서서히 감퇴를 가져오는 진행 과정을 보인다. 그러면 이 브라이언의 성공은 어떻게 보는 것이 옳을까? 과연 조현병으로 보는 것이 옳을까
영화 <러브 앤 머시>는 미국의 전설적인 팝 그룹인 ‘비치 보이스’의 뮤지션 브라이언 윌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는 이 그룹에서 주로 작곡과 작사를 맡았다. 이 그룹은 영국의 비틀즈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의 팝 밴드다. 그는 비틀즈의 노래에 버금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시간을 겪으면서 <Pet Sounds>를 만든다. 이 음악이 당시 그 유명했던 앨범이다. 그런데 이 앨범이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맴버들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음악이라고 비난을 받게 된다. 지나치게 예술성을 추구한 난해한 음악이라는 이유에서다. 정작 경쟁 상대인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는 극찬을 했는데 말이다. 이 영화를 통해 보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창작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고 늘어난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정신적, 신체적으로 피폐해져 결국 음반 작업을 중단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브라이언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난다.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린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의심하지 않고 조현병 초기라 진단한다. 그리고 20년 조현병 약을 복용하게 된 것이다. 이러다 한 여인을 만나고 회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의사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조현병으로 오진해 상황을 여기까지 몰고 온 것이라고 본다. 트라우마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아버지는 과도한 폭력을 사용했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작용한 것이라고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결국은 그 여인의 사랑을 통해 치유된 것이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의 영향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비난과 잔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이들보다 방임을 겪은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로 일어나는 해리장애를 더 많이 겪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엄마가 우울증이나 트라우마로 고통받아 아이들에게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할 경우, 그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보다 6배나 더 많은 정서적 문제를 보이게 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많은 아이들은 차라리 엄마에게 야단맞을 때에는 ‘그래도 엄마가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반면, 엄마가 아무런 반응을 안 보이면 ‘난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여서 엄마에게 애정을 받을 수가 없구나’ 하는 절망감에 빠진다.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 고통을 의식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인격을 분할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해리 현상이라 한다. 해리는 그 자체로 질병이라고 하기보단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재라 할 수 있다. 해리장애는 한 번 일어나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즉 조그만 자극에 의해서도 쉽게 해리가 일어나니, 고통스러운 상황이 된다. 해리는 1차, 2차, 3차 해리로 온노 판데르 하르트는 나눴다. 1차 해리는 단순 외상 후 스트레스, 2차 해리는 분노폭발과 자해 같은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보이는 복합성 트라우마 장애, 3차 해리는 다중인격에 해당된다. 흔히 3차를 해리로 보지만 1, 2차도 해리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2004년 칸 영화제의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아무도 모른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한 여성이 4명의 아이들을 허름한 아파트에 남기고 수 개월간 집을 떠난다. 이 일이 일본 동경에서 일어난다. 열두 살이 된 장남 아키라는 언젠가 엄마가 돌아오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버틴다. 엄마를 대신해야 하면서 느꼈을 그 고통, 두려움 무엇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희망의 끈이 끊어질 때쯤 엄마가 돌아온다. 하지만 엄마가 또 나가버릴까 봐 그 두려움을 얘기도 못한다. 그런 가운데 엄마는 아이들이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생겼다면서 다시 집을 나간다. 아키라는 돈도 떨어지고 동생들과 도시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간다.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을 먹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공공의 장소에서 몰래 빨래를 한다. 전기, 물이 끊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 가운데 막내가 죽고, 시신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동생이 평소 좋아했던 공항 근처 공터에 묻는다. 이처럼 어릴 적 부모의 무관심이 가져다준 트라우마는 치명적이 된다.
이 영화의 실제 모티브가 된 내용인 스가모 아동방치사건은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아버지가 다른 5명의 아이들을 낳은 엄마는 아이들의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수년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작은 생활비만 보조했다. 셋째가 죽자 벽장 안에 악취 제거제와 두었고, 막내도 첫째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죽었다. 그러다 이 일이 매스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아이의 엄마는 보호자 책임유기, 상해치사 및 시신유기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그 일로 세간에서는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여론이 일었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의 역할을 되찾는 것이다.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할 때 치유가 가능하다. 관계회복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 해리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양익준 감독은 <똥파리>는 ‘내 분노를 다룬 살풀이 영화’이며 ‘일기에 쓸 내용을 영화로 찍었으니 영화가 내 일기와도 같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양익준 감독 본인의 실제 어린 시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진 이야기인 것 같은데.......그렇다면 그에게는 어떤 긍정적인 기억회로가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195
영화 속의 주인공 상훈은 지극히 폭력적인 인물이다. 그의 폭력 상향은 거의 통제 불능이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주저하지 않고 폭력이 먼저 행해진다. 그 특성을 살려 사체 이자를 받아내는 용역업체 직원으로 일하면서 무자비하게 일을 행한다. 이 사람 저 사람 때리고 또 때린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횡포 때문에 겁에 질려 성장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말리던 여동생이 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찔리게 되고, 병원으로 옮기는 중 숨을 거둔다. 엄마도 정신없이 따라오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한꺼번에 가까이 살던 식구들을 모두 잃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폭력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책망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힘을 기른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서 난폭하게 분노하는 자아로 성장하게 되었다. 힘도 싸움도 어느 정도 되어서는 뇌의 분노조절정치가 고장 난 상태에서 폭력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성장에는 긍정기억이 있었다. 배다른 누이의 아들 형인에게 향하는 삼촌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은 다른 구석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 오랜 친구 만석과의 관계에 투박한 언어를 사용할 지라도 사이에 흐르는 온기가 있다. 이것은 분명히 초록색 신호라 할 수 있다. 그런 상훈의 삶에 어느 날 여고생 연희가 나타난다. 연희도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다. 하지만 연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애를 쓴다. 그런 연희에게 상훈은 묘한 동질감과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온 과도한 분노에 대해 의구심과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고 폭력 없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한다. 즉 긍정의 불빛이 들어온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긍정의 기억 회로가 만들어낸 치유의 모습이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삶을 살아갈 지라도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지닐 때가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소중한 이야기다. 그것이 바탕이 될 때 회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트라우마 회복의 신호는 보편적으로 서서히 나타난다. 트라우마 사건과 관련된 강렬한 감정을 견딜 수 있다. 증상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며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과 공간 등이 조금씩 늘어난다.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관계는 정리해 나간다. 손상되었던 자존감이 회복된다. 부정적인 믿음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유연하게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세상이 생각보다 우호적이고 선량한 곳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248
회복은 서서히 일어난다. 그래서 막상 회복이 일어날 때는 변화를 감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시릴이 사만다와 함께 행복하게 웃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회복의 신호들이 하나씩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어느 햇빛 좋은 날,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시릴이 사만다와 자전거를 타고 있지나 않을까? 마음에 온다.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 속의 시릴의 얘기다.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의 주인공 시릴은 보육원에서 자란다. 시릴은 아버지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엄마는 영화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보육원을 탈출하는 위험도 겪는다. 시릴이 어렵게 아버지를 만나지만 아버지가 벌써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불쌍한 시릴에게 새로운 인연이 나타난다. <애착관계는 혈연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보육원 교사들을 피해 병원 대기실에 있던 시릴은 그곳에 왔던 사만다와 부딪히게 된다. 사만다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 난생 처음 보는 아이가 귀찮게 하는데도 오히려 따뜻하게 다가와 준다.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 보육원으로 가져다주고, 시릴이 주말마다 보육원을 나가고 싶다고 하니 위탁모가 되어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생면부지의 시릴의 삶에 뜬금없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 편이 되어 주고, 친아버지를 찾으러 갈 때도 동행해 준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고통스러워 할 때 ‘슬퍼하지 마. 이제부터 내가 네 곁에 있어줄게.’ 한다. 시릴은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렇게 트라우마에서 긍정적인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회복의 길을 찾게 된다.
나가기
영화 속에 나타난 트라우마의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이다. 세상에서 크든 작든 트라우마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 담고 힘들어 하고 아파는 사람들에게 이런 영화는 묘약이 된다.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동일시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영화가 주는 재미와 즐거움도 중요하겠지만, 이처럼 삶을 풍요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은 스스로의 삶에 대입할 수 있는 내용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통해 자신를 보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영화와 나의 소극적인 삶의 태도를 보상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듯하다. 책이 마음에 절실한 이야기로 다가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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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심리학 관련 책들을 좋아했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를 좀 더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과정이 좋았다. 그래서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이란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도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트라우마에 대해서만 초점을 둔 책은 아직 만난 경험이 없었기에 이 책을 통해 트라우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영화와 관련 지어 설명하는 책인 듯 보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영화는 행복한 결말이든 슬픈 결말이든 어쨌든 끝이 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아픔도 고통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악몽 같은 트라우마가 아주 작은 기척에도 되살아나고, 비슷한 환경에 처하기만 해도 당시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이 덮쳐오기도 한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걷는 것처럼 과연 끝이 있을까 무력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제대로 직면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트라우마는 삶에서 그리 중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 되리라 믿는다. 혹시 지금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트라우마를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자.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지금부터의 삶은 네가 선택할 수 있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괜찮아.” 트라우마는 어디에나 있지만 트라우마를 치유할 힘도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p. 9)
이 책은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 트라우마에 대해 알아본다. 1부에서는 트라우마란 무엇인지에 대해 <스포트라이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다크 나이트>, <굿 월 헌팅> 등의 영화와 함께 알아본다. 2부에서는 트라우마의 종류와 증상에 대해 <아메리칸 스나이퍼>, <아무도 모른다>, <케빈에 대하여> 등의 영화와 관련 지어 설명한다. 마지막 3부는 트라우마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로 <룸>, <원더>, <엔딩노트>, <한공주>, <김복동> 등의 영화와 함께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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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부분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기억의 저장방식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저장된다고 한다. 너무나 강렬하고 파괴적인 부정적 경험은 뇌의 정보처리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여 기억이 가공되지 않은 채 저장된다고 한다. 그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당시의 고통, 공포를 생생히 떠올려내고 때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더 또렷해지기도 한다고 한다.
2. “트라우마 기억은 오로지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으라’고 하는 긴박한 신호를 끊임없이 내보내는, 변치 않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하니, 트라우마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p. 25)
우울, 불안,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들도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듯이 트라우마 기억 또한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고 고통스럽고 생생하기에 생존을 위한 목적이었더라도 그 자체로 너무나 괴로울 뿐이다.
3. “문제는 아무리 해리시켜도 트라우마의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해리시켜 덮어둘수록 트라우마 기억은 무의식의 장막 아래에서 더 은밀하고 집요하게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가 자신의 지성과 의지라고 믿으면서 하는 결정이 사실은 처리하지 않고 덮어둔 트라우마 기억의 영향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p. 33)
4.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라우마 치료를 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라우마 기억을 떠올리고 버티면서 그 기억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컸었다. 그러나 최근 많은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 기억을 떠올릴 때 곁에서 누군가가(사랑하는 사람, 가족 혹은 신뢰할 수 있는 치료자) ‘내가 지금 함께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사람과의 연결감을 통해서만이 트라우마 기억의 압도적인 에너지로 마비되었던 우리 뇌의 적응적 정보처리 시스템이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p. 34)
트라우마 기억을 꼭꼭 숨기기보다 다른 이에게 털어 놓는 것이 당사자의 마음을 편히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저자는 두려웠던 과거의 일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절대적인 이해와 사랑’ 이 필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5.
“ ‘가해자가 가족의 바깥쪽에 있느냐, 안쪽에 있느냐?’ 그리고 ‘안정적인 애착 경험을 했는가, 불안정한 애착 경험을 했는가?’에 의해 배트맨과 조커의 트라우마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했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감정과 신체를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만약 안정애착을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성인이 되고 나서라도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얼마든지 안정애착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관계를 통한 회복이 일어나곤 한다.” (p. 46)
저자는 배트맨과 조커를 비교하며, 두 사람 다 트라우마를 경험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이부분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애착 경험,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6. ‘빅 트라우마’와 ‘스몰 트라우마’라는 개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전쟁, 천재지변, 불의의 사고 등의 빅 트라우마 못지 않게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p.124)들인 스몰 트라우마 역시 당사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의 경우 반복적인 스몰 트라우마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저자는 ‘스몰’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트라우마로써 미치는 영향력이 작다는 뜻은 아니며, 그만큼 그러한 사건들이 일상에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스몰 트라우마의 예로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경험, 엄마에게 심하게 야단맞거나 혹은 관심받지 못했던 경험, 할머니에게 딸이라고 늘 멸시받았던 경험, 친구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놀림받은 경험, 너무 급한 나머지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오줌을 싼 경험, 영어 발표에서 실수한 경험, 어릴 적 길을 잃어버렸던 경험’(p. 124) 등이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이의 감정을 수용하고 올바른 육아 회화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깨달았다.
7. “분명 두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는데, 무조건 괜찮다고 하는 것, 즉 외면당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상처가 된다. 피할 곳이 없는 느낌, 혼자만 내쳐진 느낌을 더 강하게 받게 되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대개 자책을 하게 된다. 불안해하는 몸과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중략) 안전지대 역할을 잘 하려면 말로만 괜찮다고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곁에 있어 주어야 한다. 함께하면서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안전하게 보호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이 손으로, 표정으로, 눈빛으로, 목소리 톤으로 부드럽게 아이를 만져주고, 안아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가 보이는 모든 반응에 대해, 즉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골을 내고 짜증을 내고 슬퍼해도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타당화시켜주는 반응을 보여야 한다. 만약 이러한 안전지대를 충분히 경험하게 된다면, 불안 반응으로 흥분되어 있는 아이의 뇌간과 변연계는 자연스럽게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p. 236~237)
힘들어하는 아이 곁에 실제로 함께 있어주며, 아이의 요구를 인정하고 아이가 보이는 반응을 수용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 특히 우리 아이에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부모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아이를 감싸주어야 한다. 이런 태도에 대해 어떤 부모들은 ‘오냐오냐 받아주면 아이가 버릇없어진다’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필요한 욕구를 정확히 이해받고 인정받는다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질 이유가전혀 없다’고 말하며, ‘아이가 계속해서 과도하게 요구한다면 그때가서 제대로 한계를 알려주면 된다’(p.24~25)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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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영화’라는 친근한 소재를 통해 트라우마 심리학이라는 전문적 분야의 이야기를 편안히 풀어놓는다. 책 속에서 내가 본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반가운 마음에 그 부분은 좀 더 열심히 읽게 되기도 했고, 몇몇 영화는 책을 읽고 난 뒤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영화를 보게 되면 트라우마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단순히 영화를 스토리 위주로 보았다면,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초점을 달리하여 트라우마와 관계된 장면들에 집중하고, 트라우마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들의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의 경우 책을 읽은 후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주인공이 트라우마 기억으로 인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지 그 마음에 공감하려 노력하며 보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는 아이들이 겪는 공포와 비참함을 강조해서 보여주기보다는, 언젠가 엄마가 돌아오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버텨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실낱같은 희망을 믿는 아이들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더 무겁게 만든다.” (p. 148)
책 속에 소개된 영화들 중 한 편인 <아무도 모른다>를 보았다. 이작품은 1988년 도쿄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한 여성이 자신이 낳은 아이 네 명을 허름한 아파트에 버려둔 채 수개월간 방치해 벌어진 일에 관한 내용이다.
너무나 마음 아픈 이야기였다. 엄마 아빠 없이 세 동생들을 돌봐야만 했던 열두살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행복해지고 싶다며 자식들을 버려둔 채 다른 남자에게로 떠나는 엄마를 소년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아이들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곁에 있어주는 사람은 왕따 당하는 중학교 소녀와 가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챙겨주는 편의점 알바생 뿐이다. 낡고 더러운 옷을 입고 다녀도, 공원에서 머리를 감고 마실 물을 떠가도 아무도 모른다. 영화로 보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나 마음이 힘든데 이것이 실화였다니... 영화보다 더 끔찍한 실제의 이야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도 트라우마다’ 라고 하는 저자의 말은 영화를 보며 더 생생히 와닿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도 이어서 보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김복동 할머니의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미안하다’라는 말의 무게와 그 의미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들은 물질적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그들에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리 어려운 걸까. 잘못을 인정하고 마음을 담아 사과하는 것만으로도 얽혀 있는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그것이 왜 그리도 어려운지....
끔찍한 트라우마 경험을 겪었음에도 할머니는 그 경험에 지지 않았다. 마음 속 쌓인 분노를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표출시킨 할머니. 자신이 겪었던 아픔에 지치고 쓰러진다 해도 충분히 이해될 것 같은 상처를 할머니는 오랜 세월에 걸쳐 견뎌냈고 용기있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눈을 감기 전까지 할머니는 정의를 위한 투쟁과 약하고 소외된 자들과의 연대를 멈추지 않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결코 트라우마의 피해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간 삶을 살았다.” (p. 305)
이 책을 통해 트라우마 기억이 무엇인지, 그것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는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트라우마 심리학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토대로 나의 마음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고, 아이를 키우며 조심해야겠다고 여긴 부분도 생겼고(생각보다 이 부분이 컸다),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등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또한 그동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어쩌면 책에 소개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엉켜있는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싹트게 되었다.
과거의 지우고 싶은 경험들로 마음이 힘든 사람이라면, 트라우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트라우마 심리학의 관점에서 영화를 새롭게 바라보고 싶다면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책은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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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배려와 용서의 행위는, 분노로 질식되어 가는 사람의 마음을 기적적으로 심폐 소생시킨다. 216p.
전문가들이 영화를 소재로 책을 낼 때는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자신의 영역에 비추어 영화들을 ‘끼워 맞추’거나 작품에 깊이 빠져 본 후에 텍스트로부터 지혜를 끄집어 내거나.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단연 후자였다.
더욱 반가웠던 게 저자가 영화보기를 무척 좋아하고 영화매체를 아끼는 분이어서기도 하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은 별개일 때가 많은데 간혹 놀랍게 겹치는 순간이 있다.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은 읽고 싶었고 읽어야 했기에 의미깊은 책이 되었다. 정신과전문의 김준기는 영화 25편을 통해서 ‘트라우마’의 모든 것을 소개하고 있다.
1부에서 트라우마란 무엇인지를 밝히고 2부에서 구체적인 증상을 설명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어떻게 트라우마를 치유하는가를 상세하고 깊이있게 알려준다.
자신만의 시선, 솔직함과 날카로움이 있는 영화 글을 늘 좋아해 왔다. 본 책은 전문적인 것도 전문적이지만, 그러한 정직함과 뜨거움이 있어서 취향 저격이었다.
영화를 나름 안다고 생각해 온 나에게도 헉! 저런 영화가 있었다고?! 외쳤던 영화들을 만나는 것이 기쁨이었다. 역시 정신과 의사가 바라본 영화는 달라도 뭔가 다른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주인공들의 시련, 상실, 고통이 조금 더 남다르게 다가오며 단지 픽션 속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사람이라 여기면서 해석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끔찍하고 아픈 일을 겪은 주인공이 나온 영화를 보며 ‘에이 저건 영화니까 저렇겠지’ 무심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실제로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되는지를 작가는 놀랍게 들려주었다. 아니, 현실에서의 트라우마가 더 지독하고 ‘영화같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조곤조곤하면서도 예리하게 말해주었다.
세심하고 친절하게 선별된 영화 25편을 통해서 그저 흥미진진한 영화 이야기를 읽듯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트라우마 전문가가 되는 신비롭고 탁월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안 읽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책!^^
그런데 트라우마가 궁금한 이라면 이 책으로 입문하고, 안내받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책이라고 자신있게 추천할 것 같다.
책 중에서 「앞으로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치료약이 발명되고, 아무리 기발한 치료방법이 개발되어도, 트라우마의 치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
「회복력의 바탕은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에게 조율해주는 든든한 사람으로부터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그 사람의 생각과 가슴속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얻을 수 있다.」
「죽으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에도 사실은 “나 온전히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 그녀의 간절한 외침에 우리 모두 더 귀 기울여야 했다. 더 가까이 손 내밀었어야만 했다.」 294쪽
김복동 할머니는 분노와 복수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지켜야 할 가치와 정의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까지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 나갔고 다른 아픈 이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외상 후 성장의 삶이 아닐까? 30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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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트라우마와 기억에 차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기억과 트라우마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끔찍한 기억이 트라우마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이 책은 트라우마와 기억에 차이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한다. 영화를 통해서 조금 더 쉽게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도 어렵게만 생각했던 트라우마에 대해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책이었다. 이 책은 25편의 영화로 트라우마를 설명하고 있다.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그리고 트라우마의 종류와 증상 마지막에는 치유하는 모습까지 영화를 통해서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또 이 책은 영화를 한 편 소개하고 그 뒤에는 영화에 나온 트라우마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설명해준다. 25편의 영화를 다 소개하고 싶지만 그중에서 내가 꼭 보고 싶은 영화들 몇 편을 골라서 적어보려고 한다.
< 다크 나이트 - 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고통 받을까? >
나는 배트맨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히어로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챙겨보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몇번 명절 특선 영화로 본것같긴 하다. 하지만 배트맨도 배트맨이지만 조커라는 악당을 알 정도로 조커 또한 이 영화에 유명한 주인공이 아닌가 싶다. 조커라는 영화가 따로 만들어질 정도니까.
생각해 보면 조커와 배트맨 모두 어린 시절 상상도 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하지만 조커와 배트맨의 성장은 누가 봐도 다르게 성장했다. 악당과 영웅이라니.. 무엇이 이렇게 두 사람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저자는 수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트라우마가 일어나기 전 어떤 양육자의 돌봄 속에서 어떤 애착을 경험을 하며 어떻게 자랐느냐가 중요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애착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엄마의 감정 연습 책이 생각났다. 안전한 애착을 물려주는 것 또한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인 것을 읽었었다. 배트맨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조커는 혼란스러운 애착을 경험했을 것이다. 애착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과 신체를 조절하고 통제하며 성장하는 것 또한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아이들에게 정말 안전한 애착을 형성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부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 아메리칸 스나이퍼 - 일상의 평화 속에서도 총탄이 들려온다 >
그는 전쟁 영웅이었지만 전쟁터가 아닌 집에 왔을 때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파병 횟수가 늘어날수록 긴장 상태는 심각해져 가고 환청 가지 들리게 된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평화로운 집안 소파에 앉아있는데도 귓가에는 전쟁터의 빗발 피는 총소리가 생생하게 울려 퍼진 것이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강한 신념과 용기를 가졌지만 왜 정신적으로 점점 쓰러져 갔던 것일까?
저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뇌는 전쟁터에서 노출된 시간이 길수록, 반복해서 노출될수록, 그리고 끔찍한 장면을 자주 목격할수록 생화학적 변화가 심해진다고 한다. 이런 변화가 심하면 심할수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점점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한 병사들 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받은 군인은 대략 20만 명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같은 기간에 발생한 전사자 및 부상자보다 4배에 이르는 수치라고 하니 죽거나 다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다칠 확률이 더 높으며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접 겪어 보지 않아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쟁 트라우마. 정말 무섭고 잔인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쟁은 무기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만큼 끔찍한 하루하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바시르와 왈츠를 - 영원히 감추어진 기억이란 없다>
이 영화 다음에 소개되는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조금 다른 전쟁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아리는 왜 20년 동안 잊고 살고 있었을까? 바로 ' 해리성 기억 상실'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뇌의 기질적인 이상이라든지, 마약이나 알코올 같은 약물남용 없이 일어나는 기억상실이다. 하지만 해리는 말 그래도 기억상실이다. 바로 기억이 그저 숨겨져 있을 뿐이다. 아리가 20년 만에 기억을 찾아낸 것처럼 숨겨진 기억은 언젠가 어떤 상황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온다. 해리는 기억으로부터 잠시 피해있을 뿐이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처럼 삶 속에 퍼져서 영향을 주고 있다. 영원히 도망갈 수 없다면 한 번쯤은 마주 서서 이겨내야 하는 것 또한 나밖에 할 수 없음이 참 안타깝다.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 의식에서 그 고통을 배제시키기 위해 인격을 분할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해리 현상이라고 한다. p.112
이 책을 읽으면서 아동기 트라우마는 중간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 만큼 가슴이 아팠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그런지 이런 부모가 있을 수 있지? 머릿속에 아는 욕이란 욕은 다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 아무도 모른다 -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도 트라우마다 >
그중에서도 < 아무도 모른다>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난 이 영화가 실화라는 점에서 한 번 더 놀랐다. 이 영화는 1988년 도쿄에서 일어난 실화로, 한 여성이 자신이 낳은 네 명의 아이를 허름한 아파트에 남기고 수개월간 집에 돌아오지 않아 아이들이 방치되고 사망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이 영화가 궁금해서 조금 더 찾아보니 실제로는 5명의 아이 중 2명이 죽고 첫 번째 죽은 아이의 시신은 엄마가 장롱에 숨겨뒀다던데.. 생각보다 더 끔찍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아이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 집에 물이 나오지 않자 공원에서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하지만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시기가 1988년 30년도 더 된 이야기이고 요즘에는 아동학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에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단 한 명이라도 관심을 가져줄 거라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자기 돌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 돌봄이란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필요한 것을 자신에게 스스로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4남매 엄마도 자기 돌봄을 했으면 어땠을까? 남편이 아이를 버리고 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도 아이를 버리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돌봤다면 아이들도 충분히 돌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 똥파리 - 폴력은 대를 잇는다 >
아동기 트라우마에 대한 또 다른 영화는 바로 똥파리다. 한국 영화라서 조금은 더 반가웠다.
어떤 트라우마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은 아주 작지만 그 작은 씨앗이라도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폭력은 대를 이을 수 있다는 것도.. 아무리 물려줄게 없다고 폭력을 물려주지는 맙시다!!!
< 룸 - 엄마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극복해낼 수 있어! >
또 인상 깊었던 영화는 바로 룸이다. 룸은 열일곱 살에 남치 되어 3평도 안되는 작은방에서 7년간 감금 생활을 하게 된 조이와 그녀의 다섯 살 된 아들 잭의 이야기다. 이 영화도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서 엄마가 보여주는 애착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해자를 향한 차가운 시선이 아닌 피해자가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 같아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피해자는 말 그대로 피해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한공주 - 상처에 상처를 더하는 사람들 >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영화는 바로 한공주이다. 요즘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학교폭력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왜 영화 제목이 한공주일까 싶었는데 세상의 모든 여성이 어릴 적 가정에서 '공주'라는 소시를 들으며 자란 소중한 존재였다는 점을 모두에게 상기 키 시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다고 한다. 이렇게 뜻깊은 의도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 영화의 조인 공인 한공주는 전혀 공주가 아니다. 한공주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자일 뿐이다. 끔찍한 사건을 당했지만 그 누구도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소문이 나는 것만 걱정하며 그저 조용히 입다물고 지내기를 원하는 교장, 교장 뒤에서 병풍처럼 좋게 말할 때 말 들어라 하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다른 선생들, 아이가 전학 간 학교까지 쫓아와서 네가 꼬리친 거 아니냐는 가해자의 부모들, 가급적 빨리 가해자들의 부모와 합의하여 돈을 받아내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는 친아버지 등등 그 누구도 상처받은 그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 요즘은 이 모든 것들이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진짜 어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비난과 멸시, 그리고 방관과 무관심 흔해빠진 충고로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에게 2차, 3차의 트라우마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수많은 영화가 말해주는 것은 바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바로 관계다. 트라우마를 감소시켜주는 치료제 같은 역할을 한다. 요즘은 무슨 무슨 상담 센터가 참 많다. 하지만 그런 기관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결코 방관하지 않다는 것을 소리 내어 보여주어야 한다. 그게 진짜 어른이 아닐까 싶다.
트라우마가 어덯게 당신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당신의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을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고, 그 증상 때문에 당신 자신을 비난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p.98
25개 영화를 통해서 다양한 트라우마에 대해서 만나봤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트라우마가 있나? 하는 생각을 몇 번 해봤는데 없는 것 같네 하면서 책을 읽던 도중에, 내가 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구기종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운동장 끝 쪽에 앉아 친구랑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날아오는 축구공에 얼굴을 전통으로 맞았다. 축구공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그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파 엉엉 울었고 지금까지도 나를 향해 날아오던 축구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로는 피구를 할 때마다 축구공 생각이 났고 누군가 나를 향해 던지는 공을 피하는 것을 놀이로 즐길 만큼 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 했던 것 같다. 내가 공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지 않아서 요령껏 잘 숨기면서 살았다. 꼭 피구를 해야 된다고 하면 빠른 시간 내에 공을 다리 쪽에 맞고 나가거나 아니면 친구랑 바꿔서 밖에서 공격만 한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잘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이런 트라우마를 지금도 가지고 있구나 아직 트라우마를 이겨내지는 못한 것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언젠가는 영향을 준다는 게 참 신기한 것 같다.
연대감이란 단순히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몸의 감각이다. p.211
이 책에 나온 영화를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한결같이 했던 생각은 아동기 시절 애착관계가 정말 중요하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애착관계는 혈연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던 자전거 탄 소년이라는 영화도 기억에 남지만, 소개해 준 많은 영화가 어린 시절에 안정적이지 못한 애착관계를 통해서 사이코패스로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로, 복합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등 다양하게 사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애착을 만들어 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나도 자기 돌봄을 하면서 아이들과 건강한 애착관계를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영화 <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 커리우먼 엄마 에바는 여행지에서 만난 트럭 운전사와 사랑에 빠져 갑작스럽게 결혼하게 되고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임신이 아니었기에 배속의 아이가 전혀 반갑지 않았고 아이를 낳고도 아이에게 행복한 얼굴보다는 시무룩하고 짜증 내는 표정을 더 많이 보여줬다. 이러한 상황이 어떤한 결과를 낳을 거라는 걸 에바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 케빈의 뇌에서 공감 신경회로와 충동조절 회로가 성장을 멈추었던 것이다. 전두엽의 발달이 멈춘 것이다. 엄마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과 애정을 받지 못한 캐빈의 마음은 엄마에 대한 불신감과 적대감으로 가득 차게 되고 엄마의 소중한 물건을 망가트리는 등 엄마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케빈은 자신의 열여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체육관의 물을 자물쇠로 걸어 잠가놓고 친구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 뒤 한 명씩 화살로 인간 사냥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강한 적개심을 보이지 않았던 여동생과 아버지까지 죽이게 된다.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물론 엄마뿐만이 아닌 에바의 우울증과 케빈을 돌보지 못한 남편 역시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을 탓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부모라는 그 두 글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서 누군가의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책임감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부모라면 자기가 선택해서 낳은 아이라면, 그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 당연한 것을 모르는 부모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트라우마로부터의 진정한 치유는 단지 삶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삶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에서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p.200
평범한 기억은 아주 쉽게 잊힌다. 그리고 조금은 다르게 기억된다. 추억이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되는 것처럼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다르다. 트라우마는 변하지 않는다. 비슷한 자극을 받을 때마다 더 생생해지고 그 고통이 어떤 한계치를 넘어가면 전혀 기억이 안 나는 해리 현상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해리는 위에서 말했듯이 정말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숨어있을 뿐.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책에서 이야기했던 치유 방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한마디만 더 보태자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외상 후 성장은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일어난다. p.207
바로 사람이다. 트라우마는 사람을 통해서 받지만 치유하는 것도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어디에나 있지만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힘도 내 주변 어디에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저자의 조언대로 영화를 하나하나 찾아보려고 했는데 끝까지 다 볼 자신이 없어서 걱정이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거나 주변에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어렵지 않게 당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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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투라우마란 무엇인가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보스턴 지역의 가톨릭 사제들에 의해 자행된 아동 성폭행 사건을 ‘스포트라이트’ 취재팀 기자들이 폭로하는 과정을 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속 서른세 살의 피아니스트 폴은 어릴 때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 그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폴은 두 이모에 의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 그녀의 정원에서 자신의 과거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에게도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 마담 프루스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폴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폴의 경우처럼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일 때 겪게 되는 트라우마를 ‘언어를 하기 전 단계의 트라우마’라고 하는데,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대략 3세 사이에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트라우마 기억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 기억을 의식으로 꺼내 직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서둘러 꺼내면 영화 속의 폴이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트라우마 기억에 압도되어 상태가 안 좋아질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트라우마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자원과 함께 힘이 되어 줄 든든한 가족, 친구 혹은 치료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폴이 자신의 아픔을 딛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 있어주었던 마담 프루스트와 같은 그런 존재 말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 등장하는 조커와 배트맨은 각각 다른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술에 취한 조커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칼로 찌르고 옆에 있던 어린 조커에게 왜 그리 심각하게 구냐며 미소를 만들어주겠다고 조커의 입을 찢어놓는다. 그리고 배트맨은 깊은 우물에 빠졌던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컴컴한 극장 안에 앉아 있게 되면서 촉발되어 극장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그때 길에서 만난 강도에 의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커와 배트맨은 정반대의 인격체로 성장하는데 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가 어렸을 때의 부모와 형성하게 되는 애착 경험이라고 한다. 그러니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조커를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최악의 빌런으로 만들어버린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목도하게 된다.
거식증을 앓고 있는 스무 살 엘렌은 거식증 치료에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자 새엄마는 윌리엄 베컴 박사의 재활 치료를 권유하고 엘렌은 치료를 받기 위해 그곳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루크를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루크의 사랑도 거부한다. 결국 엘렌은 친엄마를 찾아가고 엄마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엘렌을 품에 꼭 안은 채 젖병에 담긴 우유를 먹여준다. 그리고 엘렌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이제 자신은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품에 안긴다. 거식증 환자가 음식을 먹을 용기, 체중 증가를 받아들일 용기, 즉 거식이라는 방어벽을 내려놓고 내면의 두려움과 공포에 직면하여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는 다른 사람의 절대적인 이해와 사랑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 <투 더 본>에서 엘렌의 엄마가 엘렌을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엘렌의 마음도 엘렌 엄마의 마음도 이해하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러브 앤 머시>는 미국의 전설적인 팝 그룹인 ‘비치 보이스’의 뮤지션 브라이언 윌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브라이언 윌슨은 그동안의 음악과는 다른 <Pet Sounds>라는 앨범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그 앨범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고 브라이언은 더 좋은 앨범을 만들려고 하지만 스트레스와 환청을 겪게 된다. 브라이언은 조현병 진단을 받고 활동을 중단한 채 치료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멜린다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사랑으로 브라이언은 약 복용을 중단하고 원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그런데 브라이언이 약을 먹지 않고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므로 브라이언이 겪은 환청은 조현병 때문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하니, 환자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증상을 바탕으로 하여 진단을 내리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윌은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한 채 어두운 밑바닥 삶을 살아간다. 윌의 재능을 알아본 MIT 수학과 교수는 자신의 대학 동기인 심리학 교수 숀 맥과이어 교수에게 윌의 상담을 부탁한다. 그렇게 거칠고 사고만 치던 윌은 어린 시절 자신의 아픈 경험을 털어놓은 숀에게 상처를 위로 받고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윌은 양부모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한 것과 엄마와 동생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결국 원인은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여 자신을 수치스럽게 느낀다. 특히 트라우마가 일어날 때 수치심은 독성이 강한 수치심(toxic shame)으로 탈바꿈하여 또 다른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악순환을 반복하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모든 곳에 있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 영화 러브 액츄얼리 중에서
2부. 트라우마 종류와 증상 전쟁 트라우마 전쟁 트라우마를 잘 보여주는 영화에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작품이 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이라크로 파병되어 전장에서 전설로 불리며 전쟁 영웅이 된 크리스 카일의 자전적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그리고 <바시르와 왈츠를>이라는 영화는 1982년에 벌어진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두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참혹하고 끔찍한 현장에서 소년과 민간인을 죽였던 과거의 경험이 상처가 되어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인다.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 고통을 의식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인격을 분할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해리 현상이라고 한다. - 프랑스의 졍신과 의사, 피에르 자네 p.120
영화 속의 등장 인물 아리 폴만 감독이 겪은 해리성 기억상실은 뇌의 기질적인 이상이라든지, 마약이나 알코올 같은 약물 남용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기억상실로, 힘없는 초식동물이 호랑이나 사자 같은 포식동물을 만날 때 겪을 수 있는 매우 원시적인 방어기제라고 한다. 해리성 기억상실은 경험한 사건에 대한 기억이 통째로 의식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인데 트라우마가 끔찍할수록, 오래 지속될수록, 그리고 트라무마를 겪는 사람이 어린아이일수록 심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스몰 트라우마와 빅 트라우마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엄마를 잃은 아이가 겪을 상실감과 슬픔, 외로움을 잘 표현한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프리다는 얼굴 표정과 행동 등 비언어적 방식으로 엄마를 잃은 자신의 내면을 외부로 표출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프리다의 아픔을 오롯이 알아채지 못한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안고 있는 아이에게 어른들이 따뜻한 눈길로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준다면 아이는 그때야 비로소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슬픔을 극복하고 본연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 리는 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간다. 하지만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형이 자신을 조카의 후견인으로 정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카와 함께 보스턴으로 가려고 하지만 조카는 가지 않겠다고 하고 리는 전 부인 랜디를 만나면서 자신의 아픈 과거와 대면하게 된다.
리는 심한 우울증에 빠진 사람처럼 무기력하고 삶의 활기가 없다. 리의 상태는 트라우마로 인한 정서적 고통을 마취시키기 위한 감정의 둔마라고 볼 수 있는데 진심을 담아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랜디를 보고도 자신의 실수로 아이들을 잃어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더 힘들고 랜디에게 마음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끝내 그의 아픔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난다.
아동기 트라우마 책 속에서 아동기 트라우마를 잘 보여주는 영화로 <아무도 모른다>, <아이, 토냐>, <케빈에 대하여>, <똥파리>를 들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올 거라며 메모와 돈을 조금 남기고 떠난 엄마를 네 명의 아이들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열두 살 아키라는 동생들을 돌보며 엄마를 기다리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봄이 되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 엄마 대신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지만 아키라는 불안감은 점점 커져간다. 생활비는 다 떨어지고 아이들은 공원에서 물을 받아 근근히 생활하다 막내 동생이 죽는다. 아키라는 비행기를 보고 싶어 하던 막내 동생을 공항 근처에 묻어 주고 영화는 끝이 난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의 영향력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비난과 잔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이들보다 방임을 겪은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로 일어나는 해리장애를 더 많이 겪게 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연구이다. 무관심하고 애정을 주지 않는 부모의 방임으로 인해 버려진 아이들이 느꼈을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영화 <아이, 토냐>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의 폭언과 통제 속에 오로지 스케이트만 탔던 토냐는 미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후 정상에 오른다. 하지만 그녀에게 강력한 라이벌인 낸시 캐리건이 등장하고 낸시 캐리건은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당한다. 이 일로 인해 토냐는 은반 위의 요정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폭력적인 자기애적 엄마에게서 온갖 폭언과 통제를 당하며 스케이트를 탔던 토냐는 폭력의 희생자이자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라가 되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늘상 들어왔던 엄마의 비난으로 자신 스스로가 쓸모없는 존재라고 인식했을 것이고 결국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삶도 행복도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히 가질 수 없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에즈라 밀러가 나와서 예전에 보았는데 소재도 충격적이고 보고 나서 머리가 너무 아플 정도로 마음이 무겁고 심란한 영화였다. 영화는 시종일관 케빈과 엄마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데 원치 않던 임신으로 케빈을 낳은 에바는 삶이 우울하기만 하다. 그리고 케빈은 그런 엄마로부터 정서적 공감을 받지 못한다. 케빈은 교묘한 방법으로 엄마를 괴롭히고 엄마는 점점 지쳐간다. 결국 케빈은 아버지와 여동생을 죽이고 학교 체육관 문을 잠근 채 학교 아이들까지 활로 싸 죽이고 만다.
과거에 무시당하고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사람들이 겪는 모든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래서 아이였을 때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욕구들의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다. - 존 브래드쇼, 미국의 심리학자 (p.173)
케빈의 마음속에 내재된 엄마에 대한 불신감과 적대감은 케빈에 대한 엄마의 공감의 부재에 기인한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자 했던 어린 케빈의 기본적인 욕구가 전혀 채워지지 않아 발생한 불행인 것이다. 어린 시기에 형성된 엄마와의 안정적인 애착 관계는 전전두엽의 발달을 촉진시키는데 양육자의 학대나 무관심에 노출된 아이는 전전두엽 발달이 멈추고 그 후유증 또한 치명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린 시기에 형성된 엄마와의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도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시킨 영화이다.
영화 <똥파리>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엄마와 여동생을 잃은 상훈은 자신을 그토록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아버지처럼 통제 불능의 폭력 성향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상훈도 어린 조카 형인에게는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불우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여고생 연희와 함께 하며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다짐한다. 그러나 연희의 동생에 의해 결국 상훈은 죽음을 맞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계속되는 폭력으로부터 엄마와 여동생을 지켜내지 못한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와 자책감이 상훈을 짓누르고 있었고 상훈은 그 감정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난폭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분노하는 자아를 선택하게 된다. 연희의 무릎을 베고 상훈이 오열하는 장면에서 그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이 함께 했는지 누구라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껏 예민해진 그의 신경인지 시스템에도 과거의 긍정적인 기억이 남아 있고 우리는 그 긍정의 기억을 통해 통제불능의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상훈에게서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
3부. 트라우마의 치유 영화 <그린 토리노>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소년병의 얼굴을 쏴 죽인 죄책감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월트가 자신이 아끼는 자동차 ‘그랜 토리노’를 훔치러 온 타오를 만나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이야기이다. 월트는 타오를 만나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 용기있는 행동으로 타오를 구하고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 밀드레드는 딸이 살해당한 후 도시 외곽의 옥외 광고판에 딸의 죽음을 알리는 광고를 싣는다. 이로 인해 밀드레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더 소외되고 단절되지만 경찰서장 윌러비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를 돕는다. 광고업자 웰비는 딕슨에게 폭력을 당하고도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렇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사람과의 연결 의 끈을 놓지 않고 이해와 용서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간다.
영화 <룸>은 열일곱 살에 납치되어 작은 방에 갇힌 채 감금 생활을 했던 한 소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조이는 감금된 채 납치범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잭을 낳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도 잭에게 진심을 다해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실직한 납치범에게 위협을 받자 조이는 목숨을 걸고 잭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서 탈출한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조이가 잭에게 보여주었던 사랑과 관심 덕분에 잭은 안정적인 애착 관계 속에서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원더> 속에 나오는 선천성 안면기형을 가진 어기 역시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든든한 안전지대와 지지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꼭 혈연을 전제로 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자가 꼭 가족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 죽음이라는 고통스럽고 슬픈 과정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서로에게 사랑을 보여주며 희망을 선사하는 영화 <엔딩 노트>, 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상실감과 아버지에게 받은 폭력으로 인해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았던 셰릴이 PCT 하이킹에 도전하며 자신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와일드>, 자신의 어릴 적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영화 <메리 포핀스>로 담아내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한 트래버스의 이야기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영화 <한공주>를 통해 우리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냉정하게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영화 <김복동>은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받았던 김복동 할머니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고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며 진정한 외상후 성장의 삶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트라우마를 겪은 주인공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해나가기까지 그들의 겪었을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트라우마의 늪 속에 갇히지 말고 그곳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온전히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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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김준기 저/ 수오서재 2021년 1월 21일 "영화 속에 숨겨진 트라우마 이야기를 통해 트라우마는 어디에나 있고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다."
1. 들어가며 나에게 '트라우마'는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복직 전 첫째를 시댁에 맡기고 난 후 첫째에게 나타난 변화를 보고 이런 게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아이를 데려왔다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데려다주었는데, 아이는 유독 가기 싫어했고, 할머니를 보자마자 너무 무서워해서 내 뒤에 숨곤 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아이 모습이 나에겐 충격이었고, 이러다 아이의 애착불안이 심리적 트라우마로 나타나면 어떡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다행히 아이가 자라면서 이런 불안 증세는 없어지고, 그 이후 집에서 양육하고 나서 생긴 애착관계로 인해 지금은 할머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잘 지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었고 나의 지나친 걱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 느끼게 되었다. "트라우마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트라우마를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비밀스러운 경험' 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뚜렷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기 어렵고, 당사자도 자신이 겪는 아픔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한다.
솔직히 이 책에 담긴 영화 속 트라우마 이야기가 없었다면 트라우마에 대해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책이 단순히 트라우마와 그 치료방법에 대해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설명했었더라면, 여전히 트라우마는 나에게 낯선 개념이었을 것이고 트라우마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 속에 소개된 25편의 영화 속 트라우마 이야기를 통해 트라우마는 더 이상 나에게 낯설고 상관없는 개념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교통사고, 자연재해, 전쟁, 강간, 아동학대 등 여러 가지 사건, 사고에서도 트라우마는 생길 수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배신, 아동기에 겪은 무관심, 방치, 차별 등 이 모든 것들이 트라우마의 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우리 곁에 있는데 우리는 과연 트라우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이 책 속 영화들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2. 책 속으로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트라우마 전문가이며 영화로 만나는 심리학 첫 번째 이야기인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을 쓰고 이번에는 그 두번째 이야기로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을 펴냈다. 지난 25년 간 폭력, 폭행, 강간, 성폭력, 학대, 방임 등 부정적인 경험들을 겪어온 환자들을 만나면서 그는 그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려고 노력하였고 영화를 통해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쉽게 설명하고 내담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처음에는 이 책 속에 제시된 25편의 영화는 내가 잘 모르는 영화들일 뿐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가 즐겨 보던 영화속에도 주인공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그는 영화 속 트라우마 이야기를 바탕으로 트라우마에 대한 모든 것 즉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트라우마 증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에 대해 영화 한 편, 한 편을 정성스럽게 소개하면서 트라우마에 대해 안내해주고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속에 소개된 25편의 영화들 모두에 대해 소개하면 좋겠지만, 내가 인상적으로 보았고, 영화 속에서 트라우마에 대해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 작품들 먼저 소개해보고자 한다.
트라우마의 기억은 일반적인 기억과 무엇이 다른가?
실제 일어난 사건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사진제공: 오마이뉴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보스턴 지역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취재팀 기자들이 폭로하는 과정을 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톨릭 신도들의 반발과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끈질긴 취재 끝에 보스턴 지역에서만 약 90명의 가톨릭 사제들이 아동 성추행을 해왔다는 사실이 2002년에 밝혀진다. 피해자들에게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가가 격려하고, 가해자들에게는 용감하고 정의롭게 대적한 기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2016년에 아카데이 최우수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 책을 통해서 이 영화를 처음 접하였다. 오로지 진실만을 밝히려고 고군분투하는 <스포트라이트> 팀의 기자들의 모습과 30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성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해자인 가톨릭 사제들쪽에서는 30년 이상이나 지난 기억이기 때문에 기억이 왜곡되거나, 잊혀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기억을 바탕으로 판결했는데, 그 기엇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느냐?" "전혀 과학적인 증거가 없는 것이 아니냐?" 이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트라우마의 기억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보스턴 아동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들의 진술은 놀랍도록 비슷했다고 한다. 최대 30년이나 된 오래된 기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그들의 진술은 일치했던 것이다. 어린아이를 속일 때 가해자들이 했던 말들, 성폭행이 일어났던 장소, 성폭행을 당할 때 들었던 말들, 성폭행을 당할 때의 자세 등이 대부분 비슷했다고 한다. "두렵고 고통스러워 기억에 접근할 수 없다면, 그 기억은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트라우마의 기억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오랜 시간도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만약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을 이겨내고 그 기억에 접근하여 그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실제로 보스턴 아동 성폭행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아서 그나마 고통스럽고 끔찍한 기억들을 지우고 트라우마로 조금은 고통받지 않고 조금은 더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기억이 통합되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든,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이제 너는 거기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중 대사-
트라우마 기억은 잃어버린,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은 기억의 파편 조각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간 개념이 없고 앞 뒤 맥락도 모호하다. 트라우마 기억은 오로지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으라'고 하는 유일한 단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생존을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하니 트라우마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 어렸을 때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후 그 충격으로 말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 부인의 비밀정원>은 한 남자의 트라우마 치유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한 남자는 서른세 살의 피아니스트인 폴이다. 그는 어릴 때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며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지낸다.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적인 성장도 완전히 멈춘 듯, 그는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는 두 이모 손에 놀아나는 무기력하고 희망도 없고, 목표도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이모들의 강압에 의해 매년 피아노 경연대회에 나가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같은 건물 4층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의 집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다.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는 신비로운 정원이 있는데, 이 비밀의 정원이 바로 마담 프루스트의 기억치료실이다. 이곳에서 폴은 마담 프루스트가 주는 차와 마들렌을 먹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기억의 파편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엄마가 자신에게 미소 짓는 행복했던 기억은 폴을 웃게 만들지만, 왠지 거칠어 보이고 소리만 지르는 아버지에 대한 무서운 기억은 폴을 긴장시키고 진땀 나게 만들다. 그래서 폴은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해 소리치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기억하지만 나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열렬히 사랑했고, 아버지는 그런 자신을 따뜻하게 사랑해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처음에는 왠지 마주하기 두렵고 무서워 억눌러 놓았던 기억이었는데, 막상 떠올려 보니 의외로 폴에게 좋은 기억들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억은 통합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억으로 변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폴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겨우 두 살 때 자신의 눈앞에서 즐겁게 웃으며 춤을 추던 엄마, 아빠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게 되는 끔찍한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이런 끔찍한 기억에 직면하게 된 충격과 부작용으로 폴은 이성을 잃고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소중한 손가락을 충동적으로 부러트리는 극단적인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 직면과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보였지만, 결국은 폴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주체적인 자기 자신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마담 프루스트 부인은 암으로 갑자기 죽게 된다. 그녀의 죽음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폴은 자신의 트라우마 기억에 직면하고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폴이 스스로 깨닫게 하고, 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것이다. 그 치유의 힘이 외부가 아닌 폴 자신의 내면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드디어 폴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기를 바라보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 뭉클한 첫 마디를 건넨다. 가슴 뭉클한 폴의 첫 마디는, 아---빠----아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트라우마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면 먼저 튼튼한 갑옷과 커다란 몽둥이같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자원을 충분히 갖고 있어야 한다. 또한 늘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위안을 줄 수 있는 든든한 내 편, 가족이나 친구, 혹은 치료자의 존재도 반드시 필요하다. (p.39) 이처럼 트라우마는 혼자서 극복할 수 없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 기억에 직면할 때 자신이 상처받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힘이 되어줄 든든한 자기 편이 필요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마담 프루스트 부인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내 편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영화 속 마담 프루스트 부인이 폴에게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든,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이제 너는 거기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직도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도 말하고 싶다. "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 다 괜찮다고."
정신과 육체의 상관관계 -영화 <투 더 본>
다이어트와 폭식 또한 자기처벌 수단 혹은 복수의 표현이다. 다이어트는 조절감, 통제감, 자신감, 성취감을 주고 폭식은 자기위안, 긴장완화의 느낌을 준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들이 매우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앤드루 서버트(미국 EMDR 치료자)-
다이어트와 폭식 또한 트라우마로 인한 증상일 수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이러한 식이장애는 건강상의 문제 때문일까? 이런 의문점을 가지고 영화 <투 더 본>을 접하게 되었다. 그 영화 속 거식증에 걸린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영화 <투 더 본>은 거식증을 앓고 있는 스무 살 여성 앨런이 주인공이다. 앨런은 갈비뼈가 흉하게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먹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다. 스스로 손목 굵기를 대면서 자신의 체중을 가늠하고, 조금이라도 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해 등에 멍이 들 정도로 윗몸 일으키기 운동에 집착한다. 또한 끊임없이 자신을 비난하고 학대하면서 스스로 고통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 같아 보인다. 그녀는 왜 거식증에 걸리게 된 것일까? 영화에는 엘런이 거식증에 걸린 이유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 속 한 장면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친엄마를 찾아간 엘런에게 친엄마가 엘런이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준다. 그녀는 엘런을 낳은 뒤 산후 우울증으로 어린 엘런을 안아주지 못하고 혼자 둔 적이 많았다면서 미안하다며 진솔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그녀는 엘렌에게 말한다.
“네가 설령 죽기를 바라도 엄마는 널 사랑하니까 다 이해할게.” (p.57)
그러면서 그녀는 엘런에게 지금이라도 직접 젖병에 우유를 담아 먹여주고 싶다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엘런이 친엄마 품에 아기처럼 안겨서 젖병을 먹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엄마의 사랑 때문이었을까. 엘런이 안정적인 돌봄과 연결감을 제대로 경험하고 그녀에에게 쌓였던 엄마에 대한 미움이 풀려서일까. 그 이후 엘런은 조금씩 회복하게 된다. 나 또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엘런의 친엄마가 느꼈던 산후 우울증과 그로 인해 삶의 고통과 절망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그리고 엘런이 느꼈을 분리불안과 외로움 등도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엘런이 엄마 품에 안겨 젖병을 빠는 장면이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는지도 모른다. 결국 엄마와의 관계 회복과 사랑 속에 그녀의 트라우마 치유의 열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섣부른 확진의 위험성 -영화 <러브 앤 머시> 정신과 진단명은 한 개인에게 중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진단에 따라 치료가 이루어지거나, 잘못된 피료는 환자에게 처참한 결과를 안겨줄 수 있다. -베셀 반 데어 콜르(미국 정신과 의사)-
영화 <러브 앤 머시>는 미국의 전설적인 팝 그룹인 ’비치 보이스‘의 뮤지션 브라이언 윌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비치 보이스는 영국 비틀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의 팝 밴드로 우리가 익히 할고 있는 <Surfin USA)>같은 명곡을 히트시킨 당대 최고 인기 팝 그룹이다. 멤버 중 하나인 브라이언 윌슨은 그룹에서 주로 작곡과 작사를 맡았는데, 대중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홀로 창작의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런 창작의 고뇌와 노력 속에 <Pet Sounds>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브라이언의 <Pet Sounds> 앨범은 그 당시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같은 멤버들에게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음악이라고 비난받게 된다. 지나치게 예술성을 추구한 난해한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늘어난 부담감과 스트레스에 짓눌려 음반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해지던 그는 결국 음반 작업을 중단하게 된다. 바로 이때부터 자꾸 브라이언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귀에서 자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특히 자신을 비난하는 말소리가 들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결국 브라이언은 이후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꽤 오랜 시간, 거의 20년 동안이나 조현병 약을 복용하게 된다. 그렇게 오랫동안 조현병 약을 복용해왔지만 그의 증상은 전혀 호전이 없었다.. 그런 브라이언에게 어느 날 마치 영화처럼 한 여성의 사랑이 찾아온다. 사랑의 힘으로 브라이언은 주치의 오랜 속박에서 빠져 나와, 지긋지긋한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창작 활동에 매진해 2004년 드디어 <Smile> 이라는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음반은 브라이언이 <Pet Sounds>앨범을 만들고 난 뒤, 무려 38년 세월이 지난 뒤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앨범으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상인 그래미상을 받은 그는 재기에 성공하여 현재까지도 전 세계를 돌며 순회 공연을 하고 있다. 정말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정말 그는 조현병이었을까. 브라이언을 괴롭혔던 환청 증상이 정말 조현병 증상에 해당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만약 그의 증상이 조현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의 증상이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로 인한 트라우마의 증상이었다면? 그렇다면 그는 잘못 진단을 받은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그런 진단의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어린 시절 브라이언이 아버지의 폭력과 비난이 수시로 폭발하는 공포스러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왜 그거 밖에 못하니? 더 잘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어, 그렇게 할 거면 다 때려치워라, 라는 아버지의 반복적인 비난이 그의 내면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그에게 환청의 형태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브라이언이 보인 피해의식과 환청 증상은 복합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한 증상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 속에서 브라이언이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브라이언의 환청 증상이 사라지게 한 것은 약물 치료가 아니었다. 뒤늦게 운명적으로 그에게 나타난 한 사람을 통한 사랑과 자비 덕분인 것이다. 그는 그 사랑을 통해 내면이 안정화되고 평온함이 찾아왔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일상 생활 속에서 다시 평온함과 안정을 찾은 그는 다시 창작에 매진하게 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섣부르고 성급한 진단이 얼마나 위험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환자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관심을 통해서 올바른 진단을 내릴 수 있고 이를 통한 치료가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영원히 감추어진 기억이란 없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 의식에서 그 고통을 배제시키기 위해 인격을 분할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해리 현상이라고 한다." -피에르 자네(프랑스 정신과 의사)-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는 나에게는 좀 특이하게 느껴졌다. 처음에 이 영화의 제목만 보았을 때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어떻게 애니메이션이 그런 정신분열적인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보았는데 나의 의심은 단번에 깨지고 왜 이 영화가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는 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영화감독 아리에게 친구 보아즈가 찾아와 매일 밤 시달리는 악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보아즈는 스물여섯 마리나 되는 사나운 개에게 쫓기는 악몽을 수년 째 꾸고 있는데, 이 꿈이 20여 년 전에 레바논에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리는 그제야 자신이 20여 년 전 이스라엘 군인으로 레바논 전쟁에 참전했던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반복적인 악몽과 선택적인 기억상실, 이러한 현상은 대개 충격적인 트라우마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 결과 그는 20년 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리는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그 기억은 레바논 전쟁 때 자신이 저지른 학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982년 벌어진 팔레스타인 학살 사건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하길래, 당시 사건 장소에 있던 군인들이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는지 말이다. 기록에 의하면 3일 동안 약 3천 명이 넘는 난민들이 잔인하게 학살되었으며, 절반 이상은 어린이와 여성, 노인이었다고 한다. 실로 끔찍한 지옥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이 영화를 통해 팔레스타인 학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참혹함과 잔혹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 아리도 그 끔찍한 학살의 기억을 20년 동안 잊고 산 것이 아닐까. 그가 겪은 기억상실증은 '해리성 기억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뇌의 기질적인 이상이라든지, 마약이나 알코올 같은 약물 남용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기억 상실이다. 즉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압도적인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했을 때, 사건과 관련된 특정 시간대나 특정 상황을 갑자기 잊어버리는 심리적 방어 메커니즘으로 인해 생긴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해리된 기억은 일시적으로 숨겨진 것이긴 하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p.118)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도 트라우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삶에서 어쩔 수없이 발생하는 역경에 대해 얼마나 잘 대처할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후 첫 2년 동안 1차 양육자로부터 얻은 안정감의 수준이다." -앨런 스로프(미국의 임상 심리학자)-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애착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아이의 탄생을 시작으로 엄마와 아이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된다.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열 달 동안 내 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나와 교감하고 있었겠지. 내가 이 아이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 엄마로써 이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을 져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저자 또한 이런 애착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아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양육자와 애착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에 대해 저명한 정신과 으ㅟ사이자 애착이론의 창시자인 존 볼비는 "엄마와 소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과도 소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이런 엄마와 아이의 애착관계를 찾아볼 수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한 여성이 자신이 낳은 네 명의 아이들을 허름한 아파트에 남기고 방치한 이야기이다. 엄마가 수 개월 간 돌아오지 않아 결국 아이들은 방치되고 사망하게 되었다. 이 비참한 사건이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요즘 뉴스에서 이슈인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한 '정인이 사건'을 생각해 볼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통탄할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속에서는 아이들이 겪는 공포와 비참함을 강조해서 보여주기 보다는 언젠가 엄마가 돌아오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버텨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래도 엄마라고 엄마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을거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받은 심한 정서적 학대나 신체적 학대도 분명 커다란 상처이지만, 반드시 있어야 할 부모의 애정과 관심이 없는 것도 어린아이들에게는 정말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가 된다.(p.150) 엄마로서 깊이 공감하고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애정과 관심을 주고 있나 혹시 나의 일상으로 인해 아이들을 소홀히 대한 적이 없었나 하고 반성해보게 된다.
트라우마의 흔적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영화 <김복동>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과거에 당한 게 잊혀지지가 않아 그게 머리에 생생히 박혀 있다고. 그래서 그걸 알려야 되겠다 싶어서 증언을 한 것이야" -영화 <김복동>애서 김복동 할머니 인터뷰 내용 -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고 인상깊었던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김복동> 이다. 아마도 저자도 나처럼 인상깊고 김복동 할머니가 겪은 트라우마야말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어서 마지막에 제시한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본 영화들은 그래도 트라우마가 치유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과연 김복동 할머니가 평생을 겪어온 그녀의 트라우마는 치유가 된 것일까? 이에 대한 의문을 영화 <김복동>을 통해 김복동 할머니의 인생을 조망해보면서 찾아보려고 한다.
영화 <김복동>은 1992년 이후로 약 30년 동안 여성인권운동가와 평화운동가의 삶을 살다 간 김복동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할머니는 열네 살 때 군복 만드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한 일본군의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간 이후 약 8년 동안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끌끌려다니며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받아야 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후 할머니는 결혼을 하게 되지만 끝내 아이을 임신하지 못하고,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외롭게 살아간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것을 목격한 김복동 할머니는 몇몇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2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발하게 된다. 이후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한다. 영화는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매주 수요일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면서,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인권운동가로서의 살아온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는 오랜 시간 동안 트라우마 기억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으로 고통을 받아왔던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트라우마 이후의 삶에서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포기해아만 했던 상실감까지 더해져, 할머니의 일상은 평온한 미소를 머금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유튜브로 짧게나마 영화 <김복동>을 보았다. 92세의 나이로 일본 '위안부' 피해자라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지난 한 평생을 살다간 김복동 할머니.. 이 책이 아니었다면, 영화 <김복동>이 아니었다면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 평생을 일본 정부에게 '위안부'에 대한 범죄인정, 공식사죄, 법적배상, 역사교육을 요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녀의 지난 삶을 보면서 얼마나 삶이 힘들었을까. 나이가 들어도 절대 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토로하던 할머니, 그렇게 할머니는 평생을 그 트라우마를 가지고 싸워왔다. 어쩌면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삶 또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드릴 수도, 내가 할 수 있는 없어서 가슴이 먹먹해온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일본 기자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신 말씀을 제시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싸우고 있을 일이 따로 있지, 이래서는 서로 끝이 나지 않는다고, 우리가 뭐 크게 사죄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네들이 했다. 미안하다, 용서해주시오...기자들을 모아놓고 그렇게만 말해주면, 우리들도 어떻게 해? 용서할 수가 있다고! 하루라도 서로가 좋게 지내려면 아베가 나서서 해결을 지어달라고 전해줘요. 이 늙은 김복동이가 얘기한다고 신문에 좀 내주시오. 아베가 보도록, 아베 귀에 들어가도록..."
3. 나가며
더이상 트라우마는 나와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책 속에 제시된 25편의 영화를 통해 나는 우리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 트라우마가 존재하며, 그 트라우마가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트라우마도 없고 나에겐 그런 트라우마 증상도 없을 거야.' 라고 자신했던 나는 육아와 출산을 통해 산후우울증을 겪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다행히 독서를 통한 치유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해서 그 우울증이 트라우마로까지 심화되진 않았지만, 이젠 나는 그 트라우마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우리 주변의 누구나 이런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고 그런 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즐겨보았던 영화들 속에서 이런 트라우마들이 숨겨져 있었는지 몰랐다. 내가 크리스마스 때 즐겨 보았던 <러브 액츄얼리> 속에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니... 저자는 이렇게 우리 일상 속에 얼마든지 트라우마가 존재할 수 있고 그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 친구, 나와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사실을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나아가 성장하는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딜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일상 곳곳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는 충분히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치유의 힘이 결국은 우리 자신 속에 있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와 그들의 사랑과 애정에 있음을 잊지 말이야 할 것이다. 이 책 덕분에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보지 못했던 영화들도 보면서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까이 다가가 따뜻한 손길을 건네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리뷰에 포함된 영화 포스터는 글의 효과를 위해 네이버 영화 포스터에서 가져왔거나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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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재판이 끝나고 형이 확정된 수형자들을 상대로 분류심사가 끝나면 다른 교도소로 이송가기 전 남는 시간동안 영화를 보여주고 감상문을 받았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10대 수형자가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세상의 험한 경험을 많이 하고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이곳까지 왔는데요, 영화 속에서 가족들이 모여 삼겹살을 먹는 장면을 보고는 감상문에 "삼겹살 먹고 싶다!"라고 한 줄만 적었더라구요. 물론 그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원했던 모범답안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음" 같은 것이었죠. 어릴 때 부모도 모르고 고아로 자라 어느 시골 마을에서 동네 험한 아이들과 지내며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과 달리 부모와의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채 지내다가 결국 보호시설과 소년원을 거쳐 구치소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 소년에게는 가족이 모여서 화목하게 지내는 것보다도 당장에 안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 지금 자신에게 결여된 삼겹살이 더 생각났는지도 모릅니다. 이 소년은 어릴 때 부모와의 안정적인 애착을 갖지 못하고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책 61쪽)을 한 상태입니다. 그 나름의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범죄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수형생활을 어찌어찌 보낸다 해도 형기종료 후에 사회적 지지 없이 앞으로 사회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영화를 보여주고 감상문을 받아오는 수준에서 좀 더 깊게 들어가고자 보게 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트라우마란 어찌할 수 없는 필수불가분의 것이다" 우리 삶은 항상 평화롭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상황을 만나서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겠지요. 우리가 모르는 어린 시절에 우리 마음 속에 트라우마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이것을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트라우마의 개념과 종류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를 이겨나가는 영화 속 주인공들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영화의 대부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들입니다. 처음 시작을 알리는 <스포트라이트>도 그렇고 중간에 나오는 <아무도 모른다>나 <아메리칸 스나이퍼>같은 영화를 비롯해서 영화 감독이 자신의 일기장이라 했던 <똥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김복동>도 위안부를 다룬, 우리 역사의 아픔을 담은 실화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많이 소개했기 때문인지 글로 대하는 영화이면서도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마음에 많이 와 닿습니다. 또한 대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가 영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어서 조금은 가볍게, 부담을 덜고 다가갈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 책에는 트라우마와 관련해서 상당히 전문적인 용어와 개념이 많이 등장합니다. 심리학을 전공하거나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각 영화의 시작 전에 유명한 의사, 심리학자 등의 어록을 담아서 트라우마를 비롯한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우선 이 책에서는 우리가 마주할 트라우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는 "트라우마 기억은 일반적인 기억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부제를 통해서 "인간의 기억 체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 지역 카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취재하여 폭로하는 과정을 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벌써 대충 내용만 훑어봐도 어쩐지 우울해지고 그 피해자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짐작이 됩니다. 이러한 상처들이 트라우마가 되고 이것을 잊기 위해 "해리현상"(이 책 120쪽)가 나오기도 합니다. 아니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기억왜곡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트라우마에서 발생하는 기억은 자신의 방어기제와 상당히 관련이 있어보입니다.
영화<다크나이트>는 배트맨이 등장하는 오락성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맨과 조커의 심리 표현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서 분석해주는 해설이 제법 흥미롭습니다.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배트맨과 조커는 어릴 적 부모와 관련한 강렬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둘이 성인이 되어서하는 행보는 완전 반대 방향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배트맨은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했고 트라우마의 계기가 된 사건도 부모가 강도에게서 자신을 보호해주려다가 사망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조커는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학대를 당하며 "혼란 애착"을 경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트라우마를 생성하게 만든 가해자가 가족의 바깥에 있는지 안쪽에 있는지가 다른 부분입니다. 이런 점이 결국 트라우마를 간직한 두 사람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을 것입니다.
영화<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영화 제목처럼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트라우마의 종류와 증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영화 제목처럼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이야기입니다. 생과 사가 오가는 전쟁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가 있었을까요. 영화에서는 전쟁에서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전쟁에서 평화로운 가정으로 돌아온 크리스는 무기력하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저흥분모드) 여기에 신경전달물질의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은 전쟁을 겪으면 겪을수록 점점 더 심해지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이 책에서 "급행열차 신경회로 vs 완행열차 신경회로"(이 책 107쪽)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상이 전쟁과 같다면(과흥분모드) 얼마나 괴로운 삶을 보냈을까요.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2013년경에, 이라크 전쟁에 참전 후 트라우마를 겪고 있던 그와 비슷한 처지의 군인에게 살해되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서 아동학대 관련 사건이 많이 발생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영화 <아무도 모른다>도 일본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도 트라우마다"는 부제를 바탕으로 아동기 당연히 있어야하는 부모의 돌봄이 없는 것도 트라우마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주 양육자인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내면과 소통하며 스스로를 돌볼 수 있습니다(자기돌봄). 이 영화에서 나오는 네 명의 어린 아이들은 이런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어른들로부터 버림받음으로써 자기돌봄을 하지 못하고 이것은 결국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입니다. 요즘 떠들석한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서 아동학대나 심한 경우 아동학대 및 유기로 인해 아동이 사망하는 사건이 종종 등장하는 데 정말 가슴아픈 일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전쟁 못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게 되겠지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영화<원더>의 아이가 헬멧을 쓰고 침대에서 뛰고 있습니다. <원더>의 아이는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과는 자못 다른 모습입니다. 영화<원더>는 "가족이라는 안전과 지지의 울타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천성 안면기형이라는 희귀 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헬멧을 쓰고 다닙니다. 집에서 부모와 지내던 중 결국 학교에 가게 되는데 이때 옆에는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과는 달리 부모가 용기를 주며 지지해 줍니다. 요즘 답답한 코로나19 사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백신과 치료제의 등장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백신으로 면역이 형성된다면 이것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은 치료제로 막아낼 수 있겠지요. 트라우마가 극단적인 단절과 소외를 초래하는 것이라면,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안정적인 애착관계는 가장 강력한 치료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병균에 대한 면역을 형성하고 백신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후 맺어진 소중한 사람과의 안정적인 관계는 치료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구치소에서 만났던 수형자들은 앞서 말한 어린 녀석처럼 어릴 때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처럼 어릴 때 안정적인 관계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밖에 나가서도 사회적 지지를 얻기 어려운 처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때는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영화<원더>의 아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 주변의 모든 이들은 저마다 당신이 전혀 모르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원더>의 아이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이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의 친절, 안정적인 애착과 지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트라우마 극복의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전쟁영화에서 흔히들 사랑하는 가족 사진을 갖고 다니며 보는 장면이 등장하고, 전쟁에서 고향으로 복귀한 용사가 가족들과 포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존재가 그들에게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더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부모 또는 치료자는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대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청소년들은 양육자의 스트레스 수준이 높을 경우 트라우마 증상에 악영향을 받는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먼저 양육자가 자신의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고 아이에게 다가가야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영화 <케빈을 대하여>에서 사이코패스 케빈의 엄마 에바는 자유분방한 여행자이면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갑작스레 만난 남자와 결혼하고 뜻하지 않게 임신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임신이 아니었기에 에바는 이후 이어지는 양육에서도 지치고 우울해집니다. 이런 점이 어쩌면 아이인 케빈의 뇌에서 "공감신경회로"와 "충동조절회로"가 성장을 멈추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도 결국 예전에는 누군가의 아이였으며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을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모의 아이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불행하면 아이가 행복할 수 없겠지요. 아이 또는 치료 대상인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을 보기 전에 우선 아이의 부모 혹은 아이를 상대하는 상담가 또는 치료자가 안정적인 상태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화 <케빈에 대해서>의 엄마 에바는 피해자들, 이웃들에게 아이를 대신해 비난을 받고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이의 트라우마가 ‘마치 모든 것이 부모의 책임인 양’ 오인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 ‘good enough mother’는 완벽한 엄마(perfect mother)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예전에 누군가의 아이였던 부모이기에 실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수할 수 있지만 이것을 인정하고 아이에게 반영하며 공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영화<김복동>으로 마무리합니다. 여기에서는 "외상후성장"이라는 개념을 알려줍니다. 위안부라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은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복수보다는 가치와 정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다른 아픈 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트라우마의 흔적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그리고 그 극복을 위한 노력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일까요? 오늘날 복원되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은 사람으로서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넘어서 다른 아픈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 참으로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치료약이 발명되고, 아무리 기발한 치료기법이 개발되어도, 트라우마의 치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날 것입니다. (이 책 217쪽) 이 책의 글쓴이는 작가와의 인터뷰 중 책에서 다룬 25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세 작품으로 <쓰리 빌보드>, <자전거 탄 소년>, <그랜 토리노>를 꼽았습니다. 세 편 모두 가족이 아닌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트라우마 치유를 경험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쓰리 빌보드>는 자신의 딸이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것이 경찰서장의 잘못이라고 광고까지 하는 밀드레드와 비난의 대상인 경찰서장 월러비, 광고를 실은 광고업자 사이의 예상하기 어려운 연결고리를 통해 치유와 화해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밀드레드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찰관 딕슨이 앙숙관계이고, 이들이 경찰서장 월러비와 광고업자 웰비의 이해 속에서 변화하는 치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 이처럼 “상상치 않은 사람들끼리의 연결이 일어나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앞서 말한 수형자에게 영화 보여주고 감상문 받는 정도로는 그들의 감정에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혹시나 "상상치 않은 사람들끼리의 연결"을 통해 무언가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어찌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아무리 좋은 치료약이나 기발한 치료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는 어떻게든 슬픔이든 즐거움이든 끝이 나지만,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의 삶은 영화 밖에서 계속 됩니다. 그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는 주변인들은 어떻게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을 상대해야할 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책에 등장하는 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하며 그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ps. 이 책에서는 영화 포스터를 비롯한 사진과 그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리뷰를 위해서 네이버 영화 포토에서 인용했습니다. 관련 사진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에 관심있는 지인이 있다면 새로 구입해서 나눠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상당히 깊이있는 내용을 보여준 글쓴이에게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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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트라우마란 어찌할 수 없는 필수불가분의 것이다"
이 책은 위와 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 삶이 항상 평화롭지는 않고 그 중에 어려운 상황을 만나서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겠지요. 피할 수 없으면 이것을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트라우마의 개념과 종류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를 이겨나가는 영화 속 주인공들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글쓴이는 이전에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이란 책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심리학이란 학문은 감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남의 겉모습만 보는 것도 어려운 데 타인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보고 생각해봐야 하니 더 어렵겠지요. 어려운 학문이지만 그나마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같이 보면서 알려주고 있어서 조금 부담을 덜고 심리학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줍니다. 글쓴이는 2009년의 치유의 심리학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트라우마 심리학이란 책을 내면서 영화를 예로 들며 심리학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 이번에 새로 심은 호접란하고 같이 찍어보았습니다. 썩은 뿌리를 잘라내고 새 화분에 담아 커가는 호접란처럼 이번 책도 트라우마를 치유하며 성장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 책에는 트라우마와 관련해서 상당히 전문적인 용어와 개념이 많이 등장합니다. 심리학을 전공하거나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트라우마의 유형에 대해서 알려주는 영화를 소개하고 이후 이에 대한 치유를 위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의 상당수는 <아무도 모른다>나 <어메리칸 스나이퍼>처럼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에서는 총 25편의 영화가 등장합니다. 영화<스포트라이트>부터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거쳐 <김복동>까지 트라우마를 간직한 주인공 혹은 트라우마와 관련된 사건이 나오는 영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는 어떻게든 슬픔이든 즐거움이든 끝이 나지만,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의 삶은 영화 밖에서 계속 됩니다. 그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는 주변인들은 어떻게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을 상대해야할 지 고민하게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하며 그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영화는 <스포트라이트>입니다. "트라우마 기억은 일반적인 기억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부제목을 달아서 이 영화에서 끄집어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해설 끝에는 "인간의 기억 체계"를 설명하면서 앞서 나온 부제와 연관된 주제의 심리학 지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비롯해서 영화를 설명하면서 나오는 용어들, 개념들이 상당히 전문적이어서 책을 정독하게 만듭니다. 부제목 밑에는 유명한 의사, 심리학자 등의 어록을 담아서 트라우마를 비롯한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어록에는 트라우마 및 그와 관련된 개념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영화 해설로 넘어가지요.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 지역 카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취재하여 폭로하는 과정을 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벌써 대충 내용만 훑어봐도 어쩐지 우울해지고 그 피해자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짐작이 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은 이처럼 트라우마가 있을 법한 영화들이 나오지만 오락성 영화나 의외의 영화도 등장하기도 합니다. 가령 영화<다크나이트>는 배트맨이 등장하는 오락성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맨과 조커의 심리 표현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차이점에 대해서 분석해주는 해설이 제법 흥미롭습니다.
- 영화<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트라우마 종류와 증상]이라는 분류로 이 책 98페이지에 등장합니다. 일상의 평화 속에서도 총탄 소리가 들려온다면 얼마나 버텨내기 힘들까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영화 제목처럼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이야기입니다. 전쟁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가 있었을까요. 전쟁에서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영화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전쟁에서 평화로운 가정으로 돌아온 크리스는 무기력하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저흥분모드- 여기에 신경전달물질의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은 전쟁을 겪으면 겪을수록 점점 더 심해지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뒷 부분에서 [급행열차 신경회로 vs 완행열차 신경회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2013년경에, 이라크 전쟁에 참전 후 트라우마를 겪고 있던 그와 비슷한 처지의 군인에게 살해되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엄마에게 버림받고 근근히 살아가던 중 동생이 죽어 시체를 유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불안정한 애착관계에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오히려 양육자의 욕구에 맞춰가는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 뉴스에서 자신을 학대하던 부모를 찾아다니고 경찰 앞에서는 오히려 학대 부모를 변호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은 주 양육자인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내면과 소통하며 스스로를 돌볼 수 있습니다(자기돌봄). 이 영화에서 나오는 네 명의 어린 아이들은 이런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어른들로부터 버림받음으로써 자기돌봄을 하지 못하고 이것은 결국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되겠지요. 요즘 떠들석한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서 아동학대나 심한 경우 아동학대 및 유기로 인해 아동이 사망하는 사건이 종종 등장하는 데 정말 가슴아픈 일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전쟁 못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게 되겠지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트라우마가 극단적인 단절과 소외를 초래하는 것이라면,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안정적인 애착관계는 가장 강력한 치료제가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시대 백신과 치료제의 등장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단면역이라는 말도 많이 등장하는데 백신으로 면역이 형성된다면 이것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은 치료제로 막아낼 수 있겠지요. 트라우마와 비교해서 보면, 어릴 때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면역을 형성하고 백신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후 맺어진 소중한 사람과의 안정적인 관계는 치료제로 작용할 수 있겠지요. 책을 보다보니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와일드>에서는 "몸을 격렬히 움직일수록 마음은 평온해진다"라는 말을 해줍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이를 벗어나서는 어머니가 갑작스레 암으로 사망한 아픔을 겪은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많은 아픔을 겪은 주인공은 무기력하게 술과 약물과 섹스에 묻혀 살던 중,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가 국경을 잇는 극한의 트레킹 코스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육체적 피로에 전념하게 되면 결국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신체감각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것이 마음챙김 명상의 기본이라고 하는군요. 때로는 트라우마를 몸을 격렬히 움직이면서 신체감각에 집중하며 떨쳐낼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이 책의 시작은 <스포트라이트>로 성폭력 피해의 폭로에서 시작합니다.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영화<김복동>으로 마무리합니다. 위안부라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은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복수보다는 가치와 정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다른 아픈 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트라우마의 흔적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그리고 그 극복을 위한 노력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영화<원더>의 아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 주변의 모든 이들은 저마다 당신이 전혀 모르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결국 위에서 <원더>의 아이가 말한 것처럼, 모든 이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주변사람들의 친절, 안정적인 애착과 지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트라우마 극복의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영화<아메리칸 스나이퍼>포스터에는 아내가 옆에 있습니다. 전쟁영화에서 흔히들 사랑하는 가족 사진을 갖고 다니며 보는 장면이 등장하고, 전쟁에서 고향으로 복귀한 용사가 가족들과 포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존재가 그들에게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얼마나 나 자신이 사람답게 살수 있고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람답게 대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ps. 위 서평에 나오는 영화 포스터는 네이버 영화-포토-포스터-에서 서평을 위해서 인용했습니다. 이 책에는 영화 포스터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YES24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수오서재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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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영화「굿 월 헌팅」중에서
영화「굿 월 헌팅」에서 숀 맥과이어 교수는 윌을 상담하면서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합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열 번이나 말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괴로워하고 신경질을 내며 일촉측발으로 내몰린 상황에 처해 있던 윌은 나중에는 흐느끼면서 미안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윌은 결국 숀 교수 앞에서 마음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마음의 벽.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합니다. 마음의 벽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을 당연시합니다. 마음의 벽이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벽이 지금에 와서는 ‘트라우마(Trauma)’라는 정신질환의 상처여서 치료를 받아야 정도로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말합니다. 과거의 충격적인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 그 후유증으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장애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전문의가 들려주는『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트라우마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트라우마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트라우마에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트라우마를 알면 알수록 그 범위가 상당히 넓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트라우마는 과거의 일에서 끝나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트라우마의 상처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그들의 고민이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습니다. 보통이면 어떤 상황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합니다. 하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면 전혀 뜻밖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맙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왜 트라우마는 그들에게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을까요 프랑스 신경학자 르두에 따르면, 우리 뇌는 위험한 일을 처리하는 2개의 신경회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급행열차 신경회로이며, 다른 하나는 완행열차 신경회로입니다. 급행열차 신경회로는 외부의 자극이 뇌의 시상을 통해 편도체로 바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편도체는 위험경보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반면에 완행열차 신경회로는 외부의 자극이 뇌의 시상을 통해 대뇌피질과 해마로 전달됩니다. 대뇌피질과 해마는 위험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적절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 오로지 급행열차 신경회로만 작동하여 사소한 자극에도 부적절하고도 과잉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제 서야 영화「굿 월 헌팅」에 나오는 윌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윌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양부의 학대를 받은 충격으로 인해 그는 지나치게 상처 입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불안감 때문에 인생을 망가뜨리고 맙니다. 삶에 대한 마땅한 희망이 없다보니 쓰레기를 치우며 그럭저럭 인생을 아무렇게나 사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사실상 그의 폭력적인 성격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마음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아동학대를 당하면서 결정적으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트라우마라는 급행열차를 타게 되면 공격성이 쉽게 나타납니다. 조금만 불안감에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입니다. 트라우마 증상을 보면 공격성뿐만 아니라 무기력, 무감각해지거나 우울증에 시달려 자해를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가해자에 대한 복수 못지않게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또한「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성격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다중인격자가 되고 맙니다. 이와 동시에 두통, 소화불량, 폭식, 불면이라는 신체적인 증상도 나타나 현실 그 자체는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책은 트라우마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전입니다. 트라우마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밀스러운 경험을 개인에게 해결하라며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트라우마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트라우마의 피해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나 행동이 또 다른 제2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표현이라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선량한 트라우마의자’라는 부끄러운 현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일상적입니다. 전쟁, 재난, 그리고 성폭력으로 인해 생기는 강력한 트라우마를 ‘빅(big)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영화「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전쟁의 피해망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령, 전쟁으로 우울증을 알았던 사람이 누군가를 죽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가해자를 처벌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짜 가해자는 전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트라우마라고 해서 꼭 강력한 사건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왕따 같은 괴롭힘을 당하거나, 어렸을 때 엄마의 부재,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 등등 일상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트라우마를 ‘스몰(small)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영화 <프리다의 그 해 여름>은 엄마를 잃은 슬픔과 외로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심리적 스트레스는 최고치에 이르는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스몰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몰이라고 해서 트라우마의 영향력이 적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트라우마에 관심을 가져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트라우마는 일상적입니다. 만약에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상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트라우마를 방관하게 되면 피해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언제 어느 때고 폭발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도 트라우마의 안전지대가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치료가 아닌 굳이 치유를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화학적인 약물로 치료를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 최선은 아닙니다. 트라우마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만큼 좋은 연금술은 없습니다. 사랑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이해하며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가 트라우마 때문에 상처를 받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상처의 단계를 넘어서면 더욱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엔딩 노트」는 갑가지 암 선고를 받은 스나다 씨와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죽음이라는 고통을 스나다 씨 혼자 견뎌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 이상 살아갈 마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빙벽을 사르르 녹이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따뜻함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해야 할 일에 밀려 우선수위가 아니었으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 잃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게 사랑이라는 원초적 감각입니다. 고통 앞에서 사랑을 얼마나 회복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오묘한 경험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일찍이 괴테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영화 25편으로 만나는 트라우마를 보고 있으면 남의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도 합니다. 트라우마라는 두렵고도 부끄러운 주제에 대화할 수 있었으며 많은 부분 공감하며 발전했습니다. 그동안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트라우마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마음 구석구석 들어와 있는 내면의 상처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집안이 가난하다고 해서,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모범생이 아니라고 해서 따돌림을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트라우마라는 잘못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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