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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동화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집어들었는데 보다 보니 언젠가 들어봤던 아는 이야기였다. 치매걸린 어머니를 보살피던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며 일을 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끝에 살던 집에서 나와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건. 어머니가 짜주신 목도리에서부터 어렸을 적 만들어주셨던 하얀 스웨터가 생각나서 눈물이 핑돌았다. 나는 그걸 몇번 입었던가. 씁쓸한 동화의 끝에 현실적인 구제방법을 알려주고 있지만 절망적인 현실에 고립되고 무기력해진 당사자가 적극적인 해결책을 찾기란 어렵다. 다른 책에서 삶은 고통뿐이니 다시 태어나지 말던 말이 머리에 계속 남았다. 사랑을 주고 받았던 좋았던 짦은 순간으로 나머지고통을 사는 건지. 그래도 할 수 있다면 계속 살고 싶어지는 것이 삶인데 아들에게 짐이 되어 삶을 포기하게 된 어머니와 어머니를 죽인 아들이 슬프면서도 먼 이야기가 아니라서 고민해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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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치매국가치료책임제'라는 제도가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에 걸린 장모님을 돌보면서 이 제도의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해서 만든 제도라고 들었다. 치매.. 누군가는 치매를 환자 본인만 행복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불행한 병이라고 말한다. 결국 지쳐 요양원으로 보내지게 되는 이 무서운 질병은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에서 더욱 무서운지 모른다.
『마지막 산책』은 일본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4년간 돌보다 결국 어머니를 죽인 실화를 구성으로 한 그림에세이다. 어머니와 아들 하루는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추억이 있는 장소로 산책을 떠난다.
『마지막 산책』에서 처음은 아들 하루가 어머니와 함께 추억의 장소를 산책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지하철을 타고, 세 가족이 함께 가던 메밀국수집을 지나 엄마가 줄곧 찾아다니던 나무를 향해 간다. 추억의 장소를 향해 가는 모자의 그림은 표면상으로는 아름답기만 하다.
이 평화로운 풍경도 잠시, 어머니와 아들 하루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며 아들 하루는 엄마의 생을 마감시킨다. 엄마는 아들의 행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생을 마감한다.
이 손으로 엄마를 돌보고 , 이 손으로 엄마를 죽였다.
충격적인 현실 앞에 『마지막 산책』 은 아들 하루가 엄마 치매 진단을 받은 후부터 현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엄마의 병세, 빈약한 경제 사정, 일할 수 있다며 도움을 거부하는 정부기관, 사면초가에 몰린 하루는 점점 궁지에 몰린다. 집을 나가고, 밥을 거르면서 어머니를 보호하지만 나아지는 건 없다. 개인의 힘으로 어머니를 돌보기에는 현실적인 여건이 최악이다.
하루가 어머니 살인으로 재판을 받으며 형사와 변호사가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이 에세이는 진지하게 묻는다.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아들 하루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이 에세이가 일본의 현실을 반영해다지만 한국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치매국가책임제가 도입되었지만 과연 그 제도가 고통받는 돌봄 가족에게 얼마나 큰 효용이 있을지 미지수이며 여전히 그 해답을 찾지 못해 끝내 요양원이라는 최후 수단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 속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느껴야만 하는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경제적인 짐은 여전히 큰 숙제이다.
그래서 이 살인사건을 다룬 재판부의 판단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치매는 한 개인만을 파괴하지 않는다. 끝없는 돌봄과 경제적인 부담 등은 가정을 파괴시키며 이는 공동체의 파괴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초고령화 사회로 급속하게 접어들고 있으며 치매환자의 수 또한 늘고 있다. 한 가정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실질적인 국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마지막 산책』 은 책 말미 일본 내 전문가들의 의견을 첨가하여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의견들은 국가 정책 및 우리 모두 꼭 함께 논의하고 고민해봐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돌봄사회, 이제 돌봄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정책이 시급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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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내내 울컥울컥 뭔가가 올라왔다. 치매란 사회적인 문제가 남일 같지 않아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 와닿아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왜 그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어딜가든 남일처럼 딱딱하게 얘기하던 공무원들 왜 그렇게 고립되었을까. ㅠㅠ 민폐끼친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혼자서 다 감당하려 했던 주인공의 힘듬이 느껴져 같이 울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P55 “ 저는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루라도 더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지만, 다시 한번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 그리고 재판장의 판결문_ “ 이 사건으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은 피고인만이 아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 중략 . “ 앞으로 결코 자신을 해치지 않길 바랍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행복하게 살아주십시오. “ . 안타까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적 제도도 많이 바뀌기를. 도움의 손길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 #도서협찬을 받아 주관적 으로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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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동화책을 한 장 넘겼을 때 훅 끼쳐오는 뻣뻣하면서도 새 책 향이 짙게 밴 그 냄새가 오늘따라 더욱 짙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림 에세이답게 책 표지가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모자로 보이는 둘 인물의 뒷모습이 있고, 길고 붉은 털실은 짜는 엄마 옆에 어린 아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제목만 봐도 누군가의 마지막이 이 책에서 펼쳐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마지막 산책일까? 그 마지막 산책은 혼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옆에 같이 있을까? 같이 간다면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생각들은 잠시 묻어두고 책을 펼쳤다.
영화필름 안에 있는 그림은 엄마와 아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엄마는 말한다. "예쁘게 잘 뜬 데만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모성 담긴 대사였다.
그녀는 늙고 아들도 나이가 든다. 그리고 그녀는 추억이 담긴 기억들은 전혀 기억 속에 없지만 그저 그립다는 감정만을 품은 채 종종 이미 떠나버린 남편과 아들을 헷갈려 하는 노인이 돼버렸다.
늙은 그녀는 치매였고 이를 부양하는 이는 아들 하나뿐이었다. 그런 그녀와 함께하는 아들의 마지막 산책.
잠시 잠깐 돌아오는 정신에는 아들을 더 이상 괴롭히기 싫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엄마의 마지막 발악에 엄마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우는 아들은 맨 처음 예쁜 것만 주고 싶다던 엄마의 말과 대조를 이루며 이들을 도울 이가 정녕 없나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결국 아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그녀, 그리고 존속살인이라는 죄목으로 법정 앞에 선 그녀의 아들.
나는 과연 그 마지막 산책이 그녀의 마지막 산책이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아들인 그의 마지막 산책이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프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버린 건 치매가 걸린 그녀이지만, 그를 홀로 돌봐야 했던 그가 엄마를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했음은 어쩌면 그에게도 제발 이 고통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하던 마지막 산책이지 않을까 하는 이유로 말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거였다. 가족 돌봄의 굴레. 부양의 의무를 홀로 떠안아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조차도 우리 할머니가 아프시기 전까지는 몰랐으니 말이다.
부모이기에 그리고 가족이기에 오래 내 곁에 남아줬으면 하지만, 내 손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된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느끼게 되는 괴로움에는 어서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당연한 생각조차 이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죄책감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겪어보지 않은 이들의 쉽게 던지는 질문으로는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이 책은 더 이상 이러한 일들을 개인의 문제로 끌고 가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니?'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 이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못나서도 노력하지 않아서도 아닌 '우리'가 몰라줘서라는 것을.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잊고 싶지 않아도 잊히는 기억이 있다." p.64
과연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가 죽고 난 후 자신은 죽지 않았음에 조금이라도 삶의 감사함을 느꼈을까. 나는 그렇게 단기적인 문제가 아닌 우리 인식의 개선 그리고 사회적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아주 섬세하고도 장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본문의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주관적인 제 견해인 것을 알립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의 서평 이벤트를 통한 출판사의 도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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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산책> 은 잔잔한 에세이 처럼 쓰여진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요즘 이야기다. 글자가 많거나 묘사가 많지 않지만, 속마음을 이야기 하듯 적힌 글을 보면서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다시 생각하며 읽었다. 처음엔 아~ 슬프네. 두번째 읽을 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구나. 세번째는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고, 국가는 왜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걸까? 누구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인가? 읽는 내내 나 역시 이 선택이 옳다, 그르다를 반복하면서 읽어야 했다. 이야기는 이렇다. 하루라는 남자는 어머니의 치매로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곁을 지키기로 한다. 그러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틀에 갖힌 행정으로 도움은 고사하고 일할 수 있는데 일하지 않는다는 비난만 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더 도움을 바랄 수 있을까?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문을 닫고, 생각도, 감정도 닫아 버린다. 그러니 자연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을 못하게 되고, 결국 극단적인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하루는 '존속살해' 라는 패륜이라는 말을 듣고도, 집행유예판결을 받고, 하나도 기쁘지 않다. '승낙 살인' 이라는 변호사의 말에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만 받을뿐이다. 자신의 잘못을 그 벌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에 더 화가나고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의 깊이만 커진다. 하지만 하루 역시 피해자이며, 안타까운 사람이기에 사회에서는 그를 좀더 지켜주고, 다독이려고 한다. 늦었지만, 하루를 다시 돌보려는 사회가 하루의 아픔을 다독여 줄거라 본다. <마지막 산책> 은 누구든 공감하고, 누구든 그렇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가슴 아프지만 꼭 읽어야 하는 책인거 같다. 가슴아픈 이야기에 서정적인 그림까지 더해지다보니 <마지막 산책>은 슬픈 영화를 보는 듯 잔잔하게 내 마음에 울려퍼진다. 주변 누군가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걸 본다면 사회에서나 주변인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정한 손을 내밀어 줄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래본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쓴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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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다 크고 나면 언젠가는 부모 곁을 떠난다. 성장의 기쁨이 있다. 하지만 부모를 돌보는 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돌보면 돌볼수록 부모는 점점 쇠약해져간다. " -마지막 산책 중-
우리나라도 갈수록 치매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로 가족간병의 문제는 남 이야기가 아니다. 쇠약해져가는 치매 부모 간병을 10년 넘게 하다가 부모를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이야기는 수년 전부터 뉴스에 등장해 왔다. 간병살인이라는 외면해서는 안될 현실을 다룬 내용으로 책을 읽은 독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문제에대해 고민하고 행동을 촉구하게 만든다. 책 뒷장의 전문가들의 조언도 탁상공론이 아닌 여러가지 입장에서의 다양한 방향 제시로 희망적으로 여겨진다. 간병의 어려움은 단순히 손놓고 있어서만은 안될 일로 쉽게 읽히면서도 메시지가 명확하기에 모두에게 추천하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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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는 앞서 언급했듯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평균수명의 증가에 따른 인구 고령화, 주출산 연령층 인구 감소, 비혼·만혼 증가, 출산율 저하 등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으로 현재 우리는 '데드크로스' 지점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장차 한국 사회에서도 노부모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응당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질 일이었다. 그러나 현시점, 개인의 삶을 영위하기도 퍽퍽한 현실 속에 가능한 일인가 자문해본다. 심심찮게 기사화되어 접하게 되는 돌봄 살인이 더 이상 패륜적인 행위보다는 슬픈 현실의 반영으로 다가오는 것은 더 이상 그들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신의 가족의 안위를 보장해 주고 싶고, 안락한 삶을 함께하고 싶겠지만, 보이지 않는 복지의 사각지대와 현실적이지 않은 제도들은 많은 이들을 병들게 하고, 사고마저 우울의 극치로 몰아낸다. 개인은 보이지 않는 중압감 속 자꾸만 움츠러들게 되는 것이다. 책 속의 이야기는 쓸쓸한 그림과 함께 우리를 일깨우고 있었고,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은연중에도 맴돌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가슴은 먹먹하고, 답답했지만 바꿀 수 있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희망은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멈추지 말고, 계속 공론화해야 하며,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움직여야만 한다. 매일 누워만 있는 요양원의 모습이 아니라 그 나이대에도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보장 제도를 꿈꾸며, 내가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논하고 또 실천해봐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또 느껴보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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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마지막산책 #나가미네마사키_지음 #야쿠가오리_그림 #송경원 옮김 #지금이책 "이 손으로 어머니를 돌보고, 이 손으로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책이 도착하고 소설이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사실에 놀랐고 무거운 주제에 맞게 차분한 톤의 잔잔한 그림이 동화같은 느낌이라 또 놀랐다. 치매 노모, 노인간병, 간병 살인... 죽음보다 깊은 가족 돌봄의 굴레 이전의 직업상 노인을 많이 만났고 노인돌봄의 어렵고 힘듬을 직접 경험해봤기에 이 책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또 그만큼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저는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하루라도 더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10년간 홀로 치매 노모를 돌본 하루. 늘 만성 수면 부족인 상태의 하루는 치매가 점점 심해져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간병 때문에 5년간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게 되고 만다. 주변에 폐가 되긴 싫어 직접 간병을 하며 할수있는 일자리를 찾지만 그마져도 쉽지않고 기관의 도움조차 녹록치 않은 상태가 지속되며 집세는 고사하고 끼니조차 해결이 어려워지는 시간이 길어지자 마지막 산책을 힘들게 결심하고 실행하게 된다. 노인돌봄 특히 치매노인 돌봄은 장기간의 돌봄으로 보호자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되는게 현실이다. 많이 무거운 주제이고 일본뿐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일어나는 죽음보다 깊은 가족 돌봄의 굴레에서 일어나는 존속살인. 더는 개인이 아닌 우리사회가 마주해야하는 이야기일것이다. 판결문에서조차 가해자에 대한 심판보다는 사회적 제도의 모순을 환기하는 내용으로 일본사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부록으로 각 전문가들의 조언이 말해주듯 이 사회가 조금씩 더 관심을 가져서 이렇게 가슴아픈 사건은 이제 더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읽는 내내 너무 맘이 아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직접 오랜 시간 간병을 해보지 않고는 가족 돌봄의 힘듬을 뭐라 잘라 말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평생 죄책감의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야할 가해자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간병살인 #간병 #가족돌봄 #치매노인돌봄 #그림에세이 #에세이 #그림책 #책추천 #신간도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캘리그라피? #수채캘리? #붓글씨 #손글씨? #손그림? #지우개스탬프? #소통 #공감 #힐링 #이음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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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으로 어머니를 돌보고, 이 손으로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가족 간병의 현실에 관해 담은 책이다. 우리 사회에 돌봄에 대한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안전망이 부재되고 자존감까지 낮아질 정도로 지친 그들에게 돌봄의 사회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마지막 산책은 그것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해 볼 만한 책이다. 실화 바탕으로 한 픽션이며 그림까지 함께한 그림에세이로 그 여운은 더 깊기만 하다.
치매 노모, 간병과 그로 인한 살해까지 오히려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힘들다는 가족 돌봄. 나에게 닥친 이 상황을 얼른 끝나기만을 바랄 수 없는 의무를 떠안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결코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림에세이 『마지막 산책』 너무나도 지쳐버린,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의 이야기.
이야기 속에는 엄마와 아들이 나온다. 치매가 걸린 엄마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전념한 가족 돌봄. 엄마는 종종 당신의 아들을 남편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천둥이 들린다며 무서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래도 그 상황을 탓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이야기를 받아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찾는 그 누군가인것처럼... 그림에세이 『마지막 산책』 형식이라 더욱 잔잔하게 볼 수 있었던 책이다. 실화라 더욱 깊이 파고드는 내용이었는데 간단하지만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우리 동네로 가고 싶어."
엄마가 가고 싶다는 곳, 둘은 익숙한 거리로 되돌아갔다. 이 문구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이제,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p.24)
아들은 이미 절망에 빠져버린걸까. 어릴 때 날 업어준 엄마, 나를 이렇게 키워준 분을 위해 가족 돌봄이라는 의무를 지게 된 상황. 보답하고 싶어서 안간힘을 다했는데 이제 그에게는 동전 두 개만이 남아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들과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들은 일어날 수 있을 상황이 없었을까?
그림에세이 『마지막 산책』 엄마가 아들의 목을 조른다. 하지만 그 힘이 너무 약하다. 그 손을 푼 아들은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지게 한다. 자신의 손으로.이렇게 '존속 살해'라는 패륜을 저지르게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왜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하는 형사, 아무리 솔직하게 대답해도 하루의 말은 의심을 샀다고 한다.
자식은 다 크고 나면 언젠가는 부모 곁을 떠난다. 성장의 기쁨이 있다. 하지만 부모를 돌보는 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돌보면 돌볼수록 부모는 점점 쇠약해져만 간다.(p.45)
밤시간 뿐 아니라 낮시간에도 뛰쳐나가는 엄마, 주간보호센터도 무료가 아니다. 매일 맡기기도 힘든 상황, 그리고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을 보면 자괴감까지 들어서 그는 엄마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일자리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을 구할 때까지 경제적 도움을 얻기 위해 구청도 찾아가보았지만 일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절망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가슴을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는 듯한 해방감도 느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모든 걸 포기하게 된걸까,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이제 더는 하지 않기로 한 것인가. 재판에서 그는 케어매니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거기서 그의 절망을 느낄 수 있었다. 케어메니저의 역할에 대한 설명, 그것을 받았다면 하루는 취직을 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무조건 가족 돌봄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 봐야겠다. 무조건 곁에서 돌보는 것이 방법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테니. 잃을만큼 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가졌다면 타인에게 의지할 힘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 산책』 의 주인공은 주변에 손을 다 내밀었던 상태도 제도에 내민 손을 거절 당했다. 그림의 떡에 불과한 제도가 아닌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메워 사회를 건강하제 유지해나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다가가야 할 듯하다. 누군가에만 있는 일이 아닌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인 가족 돌봄의 현실을 다룬 그림에세이, 돌봄의 사회화 문제까지 생각해 볼 책!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괴로운 일입니다." "저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보답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는 일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p.56)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어본 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