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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선(善)한가, 악(惡)한가. 오랜 기간 동안의 논쟁이지만, 현대로 올수록 홉스의 세계, 즉 인간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쪽이 우세해졌다. 인간에 대한 그런 인식은, 따라서 교육과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행동 지침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폭력적 성향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고, 세상은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닉 레인의 《낙관적 이성주의자》나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기존의 세상에 대한 부정적 판단에 대해 역사적 통계를 들이대며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지만, 그들의 전제는 인간은 원래 선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인간의 본성과 역사에 대해 그들과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우선 사람들이 무인도에 표류해서 고립되었을 때 보이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읽었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여된 윌리언 골딩의 《파리대왕》의 세계가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실제로 벌어졌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브레흐만은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 권위에 복종하는 나약한 품성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회 실험인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과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에 대해서도 깊숙이 들여다본다. 어마어마하게 인용되면서 짐바르도와 밀그램에게 명예를 가져다 준 실험이지만 다른 연구자와 브레흐만이 자세히 들여다본 실제 상황은 짐바르도와 밀그램이 발표하고, 또 많은 연구자와 언론이 다루고 결론을 내는 것과는 달랐다. 실험을 기획하고 수행한 이들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유도했고, 결과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연구의 결과 중에는 왜곡된 것이 적지 않았으며, 잘 재현되지도 않았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이른바 익명으로 살아가는 대도시에서의 ‘방관자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대서특필된 ‘키티 제노비스 사건’도 다시 조사해본 결과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냉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문제는 어떤 것이 뉴스가 되는지에만 사건을 왜곡한 언론에 있었다.
전쟁 중에도 병사들은 대부분 총을 쏘지 않으며, 크리스마스에 서로 대치하고 있는 병사들끼리 노래를 부르고, 기꺼이 휴전을 했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지휘관일수록, 또 정치인일수록 그들에게 상대방을 향해 총을 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서로 가까이에서 접촉하는 ‘사람들’일수록 잔인해지지 않았다는 증거는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왜 세상은 점점 잔혹해지는 것처럼 생각할까? 브레흐만은 바로 그 화살을 언론 등으로 돌린다. 언론이 주목하고 생산해내는 뉴스가 과장하고 있으며(“뉴스는 썩은 사과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른바 ‘노시보(nocebo) 효과’에 의해 우리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본성을 싸움을 싫어하고 서로 돕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브레흐만의 주장은 독창적이지만, 그다지 낯선 것도 아니다. 성악설, 혹은 홉스의 세계에 밀려왔지만 성선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루소의 세계에 대한 옹호도 분명히 존재해왔다. 또한 브레흐만이 ‘인간은 선하다’라는 주장을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무조건 악한 것만은 아니며(그런 ‘지나친’ 낙관주의였다면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선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방안을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분명 가치가 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처벌 위주의 교육관으로 이어진다. 그런 교육관이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는 쌓이고 있다. 대신 세상과 인간에 대한 냉소주의 넘어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신념은 그런 나아진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절망을 설파하는 세상보다 희망이 존재한다고 믿는 세상이 훨씬 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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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 성선설, 성악설 논쟁같은 책인가? 하는 생각에 읽기 시작한 책이다. 했을 것이고 그런 잘못된 정보가 인간의 본성을 악하게 본다고 주장하고 이런 잘못된 인식으로 사회의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말하는 듯 하다. 현실은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저자는 하느님의 말씀같은 말을 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가치관이나 관념, 선입견 같은 것이다. 픽션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스토리, 감독이 관객들에게 인상에 남는 한 장면만 있으면 나머지는 이해해주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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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알아보고 있다. 물론 이 책의 사례들이 긍정적인 내용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 후 폐허 속에서 사람들은 약탈이나 살인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유머를 곁들인 일상을 이어갔다고 한다. 훈련된 군인들 중 상당수가 실제 전투에서 인간에게 결코 총을 쏘지 못했다는 사례도 있다.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한 고전 <파리대왕>과 비슷한 실제 사례를 찾아냈으나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며 지냈다는 것 등 이러한 반례들은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기존의 주장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책이 제시하는 다양한 근거를 따라가다 보면 점점 그렇게 느낄 수 읺게 된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을 깰 때 우리는 지금까지 상상도 못한 연대와 협력을 이뤄낼 것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지구 곳곳에서 혐오범죄가 발생하는 오늘날 이러한 시타심을 통해 불평등과 혐오, 불신의 덫에 빠진 인류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 ‘루시퍼 이펙트’, ‘방관자 효과’ 등을 통해 그동안 인간 본성에 덧씌워진 오해를 뛰어넘어, 엘리트 지배 권력과 언론에 의해 은폐되었던 인간의 선한 본성을 찾아가는 윤리교과서로 치면 성선설을 지지하는 편의 책이다. 저자 뤼트러흐 브레흐만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 유럽 전역을 뒤흔든 혁신적인 대안 언론 《드 코레스폰던트(De Correspondent)》의 창립 멤버이자 전속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럽 언론인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는 등 뛰어난 저널리스트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오늘날 전 지구적인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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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양한 인간본성에 대한 연구를 세밀하게 돌아보고 재검토하고 이를 통해 인간본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인간의 선의지내지는 선함을 고취하기 위한 책입니다 다만, 이 책을 통해서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만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무지 내지는 또다른 편견을 보여줍니다. 이는 서양인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히틀러 같은 사람도 있지만 간디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둘다 거의 동시대를 산 사람들 이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태도나 세상에 끼친 영향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은 자신의 의식수준만큼 인식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히틀러는 수치심정도의 낮은 의식수준에 머물렀던 것이고, 간디는 이성을 넘어서는 신성을 발현할 정도의 의식 수준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 성장입니다. 어릴때는 누구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데 이를 정신적 성장을 통해 극복해 나가서 자신의 신성을 삶을 통해 구현하는 것이 우리 삶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인간 본성이 어떠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선한 본성을 어떻게 이끌어내고 실현해 내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몇가지 사례들로 인간의 본성이 어떠하다고 하는 것은 실익도 없고 또 다른 편견내지 선입견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너무 단순하게 매체만을 비판합니다. 매체가 부정적인 뉴스를 주로 생산하는 이유는그런 뉴스가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평범한 대중들이 부정적인 뉴스를 소비하고자 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입니다. 즉, 마음이 부정적이고 의식수준이 부정성에 머물러 있는 대중들이 그런 뉴스를 원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단순히 부정적인 뉴스때문에 인간 본성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가 만연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지나쳐 보입니다. 즉,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식수준 내지는 마음입니다. 즉, 부정적인 마음내지는 의식수준에서는 세상이 부정적이고 위험한 곳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그런 뉴스에 마음이 가고 인간자체도 부정적이고 나쁘게 인식하게 되는 식입니다. (자세한 것이 궁금하신 분들은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 등의 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한 존재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게 믿고 싶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저자는 수 많은 사례와 증거를 인용하여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저자의 주장에 100% 공감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불러일으켜준 고마운 책이다. 인간이 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서로가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인간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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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성악설, 성선설. 참 많이 들은 말이다. 인간의 본성은 착한 것일까, 악한 것일까. 맹자, 순자의 주장부터 오해라는 이야기 등등. 오십을 산 내 입장에서 봐도 어떤 답을 내리기 어렵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월남전에서 우리 군인들의 행동,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에 참여했던 군인들의 자세 등등. 쉽게 어떤 결론을 꺼내기 힘들었다. 더 거슬러 가면 한국전쟁 당시 파르티잔과 군경 사이에 있었던 치열한 살육전, 남경대학살 등 일제에 저질러진 대규모 살육전도 과연 인간이 착한 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한다. 네덜란드 언론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책 <휴먼카인드>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가설을 철저하게 증명해가는 의미있는 여정이다. 브레흐만은 앞선 인류라는 호모계의 영장류에게서 나타나는 폭력성, 아우슈비츠의 비극 등의 성악설적 사건과 전쟁 시기에 진짜 적을 향해 총알을 쏠 수 있는 이들은 극히 소수였다는 논거 등 다양한 사건을 끄집어 낸다. 서양에서 성악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명언을 가진 홉스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루소를 대비시킨다. 또 월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라는 잔혹한 폭력성도 개인의 신경질적인 본성에서 나온 소설이지, 고립된 아이들은 오히려 착하게 지냈다는 사례도 찾아내 증명해 간다. 그런데 문제는 뉴스라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사고를 자극적으로 포장하는 언론의 본성이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부분을 각인시키고, 문제를 야기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서 있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 시기의 혼란이 실제보다 훨씬 나쁘게 뉴스에서 보도됐다는 것이다. 언론은 부정 편향(부정적 뉴스에 눈이 가고)이나 가용성 편향(나쁜 뉴스가 휠씬 많다는 선입견)을 이용하고, 고착해 간다는 주장이다. 그럼 인간이 본성은 진짜 어떤 것일까. 첫 번째로 내세우는 개념이 호모 퍼피, 즉 애완성 인간이다. 모스크바 대학 생물학과 드미트리 벨랴예프 교수 등은 고립된 공간에서 수천마리의 야생 은여우를 기르는 과정에서 애완적 기질을 가진 여우들이 자연스럽게 우위를 가진다는 것을 찾아낸다. 그게 인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공격적으로 보이는 두상을 가진 영장류보다 부드러운 모습을 가진 사피엔스 같은 이들이 더 잘 생존한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순한 여우들은 세로토닌(행복 호르몬)과 옥시토신(사랑 호르몬)을 더 잘 분비해서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권력자의 등장이다.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도살했던 유럽인들처럼 조금 앞선 문명을 가진 이들은 다른 존재를 자신들이 아닌 다른 존재로 경시하고, 특히 권력자는 그런 본성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흔히 잔인한 인간 본성으로 설명하는 이스터섬 사건도 몇몇의 지나친 해석으로 본다. 이스터석상으로 유명한 이곳은 나무의 자원이 팽배해, 나무를 너무 남벌하자, 나무가 사라져 배를 못 만들고, 나중에는 식인으로 번졌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방증으로 이 이론의 허구를 말한다. 또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 등 평범한 인간도 어느 환경이 되면 사악한 본능이 들어낸 실험 사례들을 풀어간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런 실험은 진행자에 의해 조작됐다고 분석한다. 흥미로운 것 가운데 하나가 2차 대전 당시 영국군의 사망원인에 대한 분석이었다. 저자는 수차례 전쟁터에서 사람들이 상대를 겨냥해 총을 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인간 중에 가늠자로 상대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증거다. 이 통계를 보면 사망자 중 10%가 총알과 대전차 지뢰로 죽었다고 나온다. 가장 큰 사망원인은 75%인 박격포, 수류탄, 공중폭탄, 포탄이라는 것이다. 즉 실제 전장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이 상대를 겨냥해 쏘는 게 아니라 상대를 특정하지 않은 포탄에 의해 사망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즉 대부분은 전장에서 머리를 박고 있다가 날아오는 포탄에 사망한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포탄을 장전해서 발사하는 것이 소총으로 겨냥해 쏘는 것보다 어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바로 한 사람을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죄책감은 덜하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은 정말 선한 존재일까. 저자는 처음부터 대공습 시대에 오히려 냉정했던 런던 등의 사례를 들면서 인간은 폭력 앞에 무질서하지도,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나가지도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80년 광주의 상황을 잘 안다. 시민들은 그 시간에 자발적으로 평화를 찾았다. 반면에 공수부대 등 진압부대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소설 창작론’ 수업에서 내가 쓴 소설은 당시 진압군의 상황이 돼서 쓴 것이었다. ‘오이디푸스’ 스토리를 패러디해 진압군으로 간 사람이 진실을 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찌르게 되는 과정을 소설로 썼다. 다만 현실에서 진압군으로 간 사람들의 고백은 몇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진압군들의 내부에도 수많은 분열의 징후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저자는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책의 후반에 그 이유가 있다. 1963년 밥 로젠탈이라는 인물이 쥐를 통해 실험을 한다. 두 그룹에 각각 ‘똑똑한 쥐’와 ‘멍청한 쥐’라 써 두고, 결과를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똑똑한 쥐들은 탁월하게 똑똑해졌다. 연구원들이 이 그룹을 더 긍정적으로 본 결과였다. 이후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도 이 실험을 하고, 이 결과를 통해 칭찬을 받고,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 더 발전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로 정리한다.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만드는 ‘골렘 효과’도 설명한다. 즉 인간들이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생각하는 시간부터 인간 본성을 악해지고, 선하다고 하는 순간 선하다고 생각하는 특성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솔찍히 말하면 왜 악하다고 말해 싸움으로 가냐는 주장일 수 있다. 또 저자는 현재 민주주의 국가가 정당의 무력화, 시민들 사이의 불신, 소수의 배제, 유권자의 무관심, 정치인의 부패, 부자들의 탈세, 현대 민주주의가 불평등하다는 자각 등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본다. 반면에 베네수엘라의 토레스시나 브라질 포루투알레그리 등에서 시험적인 시민 참여형 민주주의로 가능성을 보고 있기도 하다고 본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본 춘천시의 행정도 비슷한 모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는 더불어민주당 등 정당의 배경도 있지만, 이재수 시장처럼 직업 그런 정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는 이들이 실행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보자. 저자는 ‘삶에서 지켜야할 열가지 규칙’을 말한다. 즉 악인보다는 선인이 살아남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제시하는 규칙들이다. 규칙에는 ‘의심이 드는 경우 최선을 상정하라’, ‘윈-윈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생각하라’,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하라’ 등 충분히 숙고할 말한 문제들이다. 이 책의 부제는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람이 악하다기 보다는 착하다는 쪽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이 세상은 더 그러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저자의 주장에 동참하고 싶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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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is kind. 줄여서 휴먼카인드입니다. 도덕책에서 보았던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새로운 관점입니다. 인간은 선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잘지내고 의사소통능력이 좋으며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 권력을 쥐고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그의 유전학적인 관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왜 강인한 체력의 인종이 살아남지 못하고 더 친밀한 인종이 살아남았는가. 결국 우리안에 친밀함을 통한 유대감이 우리를 강하게 했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악함만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뉴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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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에서 인류보편의 속성에 대한 낡은 물음을 제기하고 새로운 방식의 답을 구한다. 사실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라는 질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기되어 왔던 낡은 질문이다. 정답은 선하거나 악하거나 아니면 백지상태라는 3가지 선택지 안에 있을 뿐이다. 어떤 답을 선택하든지 자유지만 왜 그와 같은 답을 선택했는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해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의 시도가 가지는 매력은 주장의 선명함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구하는 접근방식의 성실함에 있다. 필자의 논증은 종교적 신념이나 철학적 분석이 아니라 실증적 사료에 입각한다. 한축으로는 현재 인간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인간본성에 대한 악한 이해를 논박하고, 또 다른 한축으로는 인간의 선한 본성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현실 속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지를 실증한다. 따라서 필자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최종적 주장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실증적 논거에 대한 반박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독자로서 나는 그의 주장에 최종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지점이 있긴 하지만 구체적 실증에 대한 반박은 쉽지 않았다. 이것은 어쩌면 ‘실증’의 어려움에 기인할 것이다.
먼저 필자는 현대 문명이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전제 위에 구축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홉스의 인간관에 기반을 둔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과 마키아벨리 정치학이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철학적 사상적 기반이다. 구체적 현실을 보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 팽배하고 부정적 뉴스가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다 많이 영향을 받는 부정편향에 빠져있고, 넘쳐나는 부정적 뉴스에 묻혀 가용성 편향에 경도되어 있다. 이런 비관적인 견해는 기독교 초기 원죄개념 속에서도 드러난다. 원죄개념은 종교개혁 뒤에도 존속하고, 신앙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는 계몽주의 사상에 그대로 계승된다. 인간을 ‘살인자의 후손’으로 지칭한 프로이드나, 삶이란 하나의 전투라고 설파했던 헉슬리는 모두 스미드와 마키아벨리의 후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필자가 밝히는 현실을 지배하는 인간 본성은 악하다는 인식의 원인이자 결과다.
필자는 상식을 비집고 반박의 근거를 물색한다. 먼저 필자가 소환한 엠마 골드만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피력한 사상가들을 ‘정신적 사기꾼’이라 일갈한다. 엠마 골드만의 주장을 이어 인간 본성을 악하다고 규정한 실증적 연구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친숙하게 접해왔던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루시퍼 이펙트/이 실험은 인지부조화와 권력의 힘을 설명)’,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파괴적인 권위에 굴복하는 대중심리 테스트), 키티 제노비스의 사건(방관자 효과/1964년, 키티 제노비스가 뉴욕 시의 자기 집 근처에서 다른 많은 주민들이 알아챌 수 있는 조건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한 사건)의 허구성에 대한 필자의 주장을 만난다. 이들 사건은 인간의 악마성을 논증하기 위한 사례들이지만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편파적으로 해석된 오류투성이 일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동시에 필자는 인간 본성의 선함이 드러난 사례들을 통해 본질적으로 인간 본성은 선함을 논증해 들어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정치 지도자의 필독서였던 구스타브 르봉의 [군중심리학]에 입각해 대중의 동요와 공동체의 붕괴를 촉발하기 위해 민간에 대한 무차별공습이 이루어지는데 공습의 결과는 대중들을 더 결속하게 하고 협력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독일에 의한 런던 대공습, 연합군에 의한 드레스덴 대공습, 그리고 미국에 의한 베트남 대공습은 이를 결정한 정치집단의 의도가 무참히 박살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소기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위기에 처해 동요하고 광란에 빠지고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침착함을 잃지 않고 협력하고 의지했다. 위기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총 1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각각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주장하는 자들의 논거를 격파하거나 착한 본성을 드러내는 사례들로 구성되어있다. 그 각각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악한 본성이 표출되는 과정을 그린 “파리대왕”은 아태섬에 표류한 실제 사건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실제로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들은 협력하고 의지하고 희생했다. 인간은 호모퍼피로 인간의 생존력은 지능이나 근력이 아니라 친화성에서 나온다. 전쟁에서 다른 인간을 향해 총을 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공유지의 비극’은 지식인의 상상이지 현실을 반영 하지 못한다. 방관자효과 이론과는 달리 현실은 재난에 처한 타인을 위해 서로 희생하는 역방관자 효과가 더 많다.
하지만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600만 명을 학살한 가스실을 만들고 가장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폭력적 문명을 동반하는가는 물음을 제기하고 이에 답한다. 그가 제사하는 답은 권력이 부패하는 과정인 ‘후천적 반사회화’와 ‘공감’의 역설이다. 특히 공감은 혈통, 영토 등 근친성을 공유하는 집단 간 내부 결속과 동시에 외부에 대한 배타성을 가져온다. 배타성은 타자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 하는 폭력성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사피엔스]의 필자 유발 하라리와 브레흐만이 대척한다. 하라리는 인간이 가진 상상의 공동체가 인간의 유대와 결속 공감을 통한 문명의 창조를 낳았다고 본다면, 브레흐만은 그 상상의 공동체가 동시에 인간을 가장 잔인한 동물로 만드는 함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섬뜩하고 기발하고 향후 논의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주장은 명료하고 직선적이라 따라가기가 쉽다보니 분량에 비해 드물게 잘 익히는 책이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쉬 그의 결론에 동의하기가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반복하는 플라시보 효과와 시노보 효과를 대비해 펼친 주장은 논증이 아니라 도덕적 제안으로 들린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 실현되는 것처럼 인간본성이 선하다고 이해하는 순간 인간본성은 선하게 귀결된다는 것은 논증이 아니라 희망사항이고 교리에 가깝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현실속의 악을 줄이고 선을 증진하기 위한 대응’은 논리적 연관이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와 같은 필자의 입장은 지구온난화문제에 대한 입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며 비관적인 주장을 펼치면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정말 지구가 종말을 맞을지도 모르니 인간의 회복탄력성을 믿고 낙관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은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희망사항의 피력으로 들릴 뿐이다.
하지만 한권의 책으로 가치를 따진다면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성찰을 담고 있다. 인류 문명이 가진 비극의 지점들을 짚고 희망을 만들기 위한 지식인의 모범적인 노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족을 달자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성찰과 모색은 이 시대 가장 필요한 지식인의 책무이고 이에 충실한 필자는 ‘기본소득제’의 선구자를 자청하고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필자의 다음 책은 아마도 기본소득제에 관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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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기대 없이 사서 본 책입니다. 원래 인문학 서적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인문학에 관련된 책이라면 무작정 다 사서 보는 편입니다만 이 책은 번역이 잘 된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필력이 원래 좋은건지 책이 다른 어떤 책보다 더 술술 잘 읽혔습니다. 한 챕터를 읽고 책을 덮을 때 마다 4살 아들과 책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아주 컸습니다. 덕분에 인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 같습니다. |
| 다보스포럼에서의 명연설로 다보스포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을 만든 젊은 사상가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 그는 『휴먼카인드』에서 공멸과 연대의 기로에 선 인류에게 가장 시급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본성은 과연 이기적인가?” 최초의 인류부터 현재까지 방대한 인류 문명의 역사가 증명하는 한 가지 진실은 “전쟁과 재난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인간은 어김없이 ‘선한 본성’에 압도되어왔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을 깰 때 우리는 지금까지 상상도 못한 연대와 협력을 이뤄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불평등과 혐오, 불신의 덫에 빠진 인류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이기적 유전자’, ‘루시퍼 이펙트’, ‘방관자 효과’ 등 인간 본성에 덧씌워진 오해를 뛰어넘어, 엘리트 지배 권력과 언론에 의해 은폐되었던 인간의 선한 민낯에 관한 대서사가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