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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 유다를 통해 인간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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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의 『유다』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이었다. '유다'가 자신의 스승을 판 배신자로서 신약성경의 가장 문제적 인간이라면 '카인'은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최초의 살인자로 구약성경의 가장 문제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제 사라마구와 아모스 오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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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스 오즈의 『유다』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이었다. '유다'가 자신의 스승을 판 배신자로서 신약성경의 가장 문제적 인간이라면 '카인'은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최초의 살인자로 구약성경의 가장 문제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주제 사라마구와 아모스 오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아모스 오즈 역시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곤 하였다)로 두 작가 모두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카인』이 주제 사라마구의 마지막 소설인 것처럼 『유다』 역시 아모스 오즈이 마지막 유작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소설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 사라마구와 아모스 오즈는 왜 죽음을 앞둔 인생의 마지막에서 카인과 유다를 호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이 그들이 평생을 천착하고 추구했던 것들과 어떻게 맞닿아 있고 이어져 있을까. 왜 두 거장은 인생의 마지막에서 성경을 재해석하고자 했을까.

이 소설이 궁금했던 이유, 이 소설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에서 카인을 직접 등장시킨다. 그리고 카인은 가상 역사 여행을 하며 구약의 인간들의 삶을 돌아보며 신에게 질문한다. 카인은 구약성경에서 악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인물이지만, 카인의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체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잔악함이다. 카인은 거듭거듭 신에게 묻는다. 주제 사라마구가 그리는 카인은 구약성경의 욥에 가까운데, 역설적이게도 욥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의인으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이러한 전복, 선과 악이 뒤바뀌며 신에 대한 관념들이 반전되는, 을 통해 주제 사라마구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우리에게 뿌리박은 고정관념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아우를 죽이고 신에게 버림받은 카인은 거듭거듭 신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비해 아모스 오즈는 『유다』에서 20대의 대학원생 남성과 40대의 미망인 여성, 그리고 70대의 장애인 노인을 등장시켜(그리고 이 소설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모스 오즈'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또 한 명의 인물이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유다'라는 인물을 재조명한다. 

주제 사라마구가 '카인'이 직접 경험하는 형식을 취했다면, 아모스 오즈는 시기적으로 후대의 사람들이 '유다'의 삶을 재해석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좀더 '역사적'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초점이 신에게 있었다는 측면에서 형이상학적이었다면, 아모스 오즈의 관심은 '유다'라는 인물과 그 당대, 그리고 이스라엘의 독립이라는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역사적이다.

 

철학적 혹은 신학적 사유와 역사적 고찰이라는 방법론의 차이는 소설의 전개방식이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왜 아모스 오즈는 '유다'를 주목했을까? 평생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애썼던 아모스 오즈는 자국민들에게 '배신자'로 오해받고 낙인 찍혔다. 예수를 판 유다와 같은 '배신자'말이다. 따라서 유다의 삶을 재고찰함으로써, 자신을 평생 따라다녔던 오해들에  대한 자기변호를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간다.

 

“내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에서도 유다라는 이름은 배신자와 동의어가 되었다네.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말과도 동의어가 되었을 걸세. 수백만 명에 이르는 일반 기독교인들의 눈에 모든 유대인과 유대 민족은 배신이라는 병원체에 감염된 셈이지.”
(pp.375~376)

 

예수를 배신한 제자인 유다는 (유럽) 현대사에서 유대인에 대한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셈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의 번역가도 지적하고 있듯이, ‘가롯 유다’의 히브리어 ‘케리오트 예후다’의 ‘예후다(유다)’의 복수형은 ‘예후디’는 ‘유대인’을 의미할 뿐더러 ‘암하예후디(유대 민족)’와도 관련된다. 아모스 오즈는 이 점에 착안하여,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겼다’는 하나의 사건을 ‘유대인 또는 유대 민족 전체가 예수를 배신했다’라고 해석한 후, 이러한 이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유대인 또는 유대 민족의 운명이 유다와 같은 맥락에서 고찰한 것이다.

 

즉, 이 소설은 '유다'라는 단지 한 인물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혹은 유대민족)과 그들이 세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대한 기존의 모든 평가를 배제하고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하기를 권면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제 사라마구가 신에게 신의 길을 묻는 소설이었다면, 아모스 오즈는 인간에게 인간의 길을 묻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c*****g 2021.11.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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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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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아모스 오즈의 책을 아주 강력히 권장하는 글을 접한 적이 있어서 늘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 때 집어들었던 책으로 집에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 민음사 판이 있는데, 오래 전에 구매했으나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다. 신간코너에서 우연히 아모스 오즈의 마지막 책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고 그냥 문득 구매하게 된 책. 히브리 문학을 한 번도 접해본 적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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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아모스 오즈의 책을 아주 강력히 권장하는 글을 접한 적이 있어서 늘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 때 집어들었던 책으로 집에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 민음사 판이 있는데, 오래 전에 구매했으나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다. 신간코너에서 우연히 아모스 오즈의 마지막 책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고 그냥 문득 구매하게 된 책. 히브리 문학을 한 번도 접해본 적도 없고, 아모스 오즈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책 소개만으로도 강하게 끌렸다. 종교는 없지만 유다라는 흥미로운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거장의 손에서 유다라는 인물을 어떻게 풀었을지 궁금해지는 책이다. 

k*********7 2021.04.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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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경솔한 감상이 되겠지만, 유다는 배신자로만 악명이 높지 다른 사도나 성경 인물들에 비해 설명이 불충분하다. 그야 배신자이니 그에 대한 설명은 전부 변명이 될 것이고 그를 배신자로 여기는 사도들, 성경을 집필한 요한이 그를 위한 이야기를 써줬을 리도 없다. 모든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유대인임에도 불과하고 유다=유대인 타이틀은 유구한 등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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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경솔한 감상이 되겠지만, 유다는 배신자로만 악명이 높지 다른 사도나 성경 인물들에 비해 설명이 불충분하다. 그야 배신자이니 그에 대한 설명은 전부 변명이 될 것이고 그를 배신자로 여기는 사도들, 성경을 집필한 요한이 그를 위한 이야기를 써줬을 리도 없다. 모든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유대인임에도 불과하고 유다=유대인 타이틀은 유구한 등호이고 이것은 유대인 스스로 벗어나기엔 또 들어맞는 부분이 있어 괴로운 멍에다. 그것은 어저께 열심히 집안을 구축하고, 혁명으로 사회를 개혁한 기성세대를 낡은 악습이라며 새로운 혁명으로 그들을 몰아내는 신세대의 모습을 보는 것과도 같다. 기성세대가 그들이 지켜온 규율을 지키기로 결정한다면 멍에는 더더욱 긴 기간 지속될 것이다. 유대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듯 소설에서 잠깐잠깐 묘사되는 유다는 오히려 정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예수의 든든한 후원자이며 지지자이며 신앙인이었는데 외려 예수의 부활을 단단히 믿은 나머지, 계속해서 지켜 본 결과 예수의 부활 이전까지의 죽음을 보고 자책하며 자살하는데 이 순간 믿음의 저버림이 배신이란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 주인공 슈무엘 상상 속 유다이다. 그리고 이미 고인으로 등장하는 인물, 아브라바넬은 유대인이면서 아랍인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배신자라는 칭호를 달게 된다. 그는 유다와 같이 고독하게 죽었으며 그를 알아주는 유대인은 거의 아무도 없었다. 아브라바넬을 설명하는 노인은 오히려 전 인류애적 평등한 사랑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말하는데 슬픈 공감이 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행하는 사람도 여지껏 비극적인 최후를 맞곤 했다. 하지만 예수의 죽음은 숱한 잊혀지는 비루하고 하잘 것 없고 조명되지 않는 죽음에 비하면 명예로운 것이다. 사후에라도 모두가 그를 불쌍히 여기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민족인 유대인을 떠올리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머릿속엔 어떤 고전적인 학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모습만큼이나 유서깊고 고루하고 단단한 울타리도 떠오른다. 이런 경우엔, 어떤 사랑은 배신이고 또 반대 쪽의 배신도 배신이다. 

1****l 2021.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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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이스가리옷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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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의 자서전인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읽을 거리가 가득 담긴 소설이었다. 제목 그대로 슬프고 어두운 사랑이야기가 내게 큰 여운으로 남아있어 작가의 또다른 소설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아는 순간 바로 구매했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에 관해서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를 읽은 것이 전부지만 많은 이들이 그에 관한 상상을 마음껏 할수 있을것 같다. 아모스 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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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스 오즈의 자서전인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읽을 거리가 가득 담긴 소설이었다. 제목 그대로 슬프고 어두운 사랑이야기가 내게 큰 여운으로 남아있어 작가의 또다른 소설이 번역되어 나온 것을 아는 순간 바로 구매했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에 관해서는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를 읽은 것이 전부지만 많은 이들이 그에 관한 상상을 마음껏 할수 있을것 같다. 아모스 오즈가 생각하는 '유다'라는 인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고 작가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다른 소설가들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심오할거라는 예상을 했다.

 

 작품속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이라는 인물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는지는 이 책만으로는 잘 알수 없지만, 배신자라는 오명을 들으며 사는 인물이다. 아모스 오즈 역시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민족에게는 배신자였기 때문에 어쩌면 '유다'와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에 대한 일종의 변론이며 작가의 신념을 호소한 책이라고도 생각된다.

 

 누가 그리던 간에 '유다'라는 인물은 항상 다른 제자들에 비해 열정적이고 예수를 누구보다도 따랐으며 그래서 누구보다 가슴 저린 인물인것 같다. 예상대로 김동리씨가 그린 유다와는 사뭇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으며  또다른 유다의 모습도 알게 되길 원한다.

v********1 2022.03.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