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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헬라인이 찾는 지혜는 십자가의 도에 비해서 어리석은 것이며(고전 1:22~25), 당대의 학문을 대변한 철학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속임수나 다름없는 것으로 취급하였다(골 2:8). 2세기 때 교수 터툴리아누스는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라고 하면서 “(철학의 도시) 아테네와 (믿음의 도시)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물음으로써 믿음의 세계에는 지식이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알기 위해서 믿어라”(crede, ut intelligas)고 했고, 안셀무스도 “알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고 했다. 모두 믿음이 지식에 우선하고 믿음이 있어야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지 지식의 종교가 아니다.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중 발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세상의 한복판에서 책임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감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개신교회의 개혁은 말뿐인 성찬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간 개혁과 갱신을 그렇고 주창하고 강조하며 행사도 벌였지만, 정작 삶의 자리에서 순종과 실천이 없었기에 결실이 나오지 않았다. 이 도서는 그러한 맹점을 아주 정곡을 찔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