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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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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위대한 실존주의 사상가로 추앙받던 하이데거를 나치에 동조하고 유대인 배제 정책에 협력한, 심지어 그를 존경했던 제자들까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배척한 문제적 사상가로 그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 하이데거의 위대한 철학에 큰 감명을 받아 수련의 시간을 함께 보내다 나치정권의 시대에 이르러 존경했던 스승에 의해 직접 차별 당해야했던 그의 유대인 제자들은 하이데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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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위대한 실존주의 사상가로 추앙받던 하이데거를 나치에 동조하고 유대인 배제 정책에 협력한, 심지어 그를 존경했던 제자들까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배척한 문제적 사상가로 그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 하이데거의 위대한 철학에 큰 감명을 받아 수련의 시간을 함께 보내다 나치정권의 시대에 이르러 존경했던 스승에 의해 직접 차별 당해야했던 그의 유대인 제자들은 하이데거에 대해 과연 어떻게 평가했을까.

 

평생 비판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스승의 잘못에 대해 지속적으로 합리화시킨 제자도 있었으며 스승과 다르게 자신들만의 철학세계를 구축한 제자들의 행보도 소개해주는 등 하이데거의 철학 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 한나 아렌트, 카를 뢰비트, 한스 요나스, 허버트 마르쿠제의 사상까지 돌아볼 수 있어서 그 시대의 여러 사상들을 유기적으로 한눈에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전쟁의 시대, 혼란스러웠던 그들의 사상, 전쟁이후에는 자신들을 합리화하려는 노력들이 현재코로나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다양해지는 가치관들로 전 세계적으로 어지러운 시대를 보내고 있는 현재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f*******3 2021.04.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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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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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이라는 저서로 그 내용은 잘 알지 못한다 해도 이름만은 들어본 적이 있는 철학자 하이데거, 그와 한나 아렌트와의 이야기 정도만 들어왔던 나는, 이 철학사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나치에 충성하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작업을 했다는 기록에 너무나도 놀랐다. 그가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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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이라는 저서로 그 내용은 잘 알지 못한다 해도 이름만은 들어본 적이 있는 철학자 하이데거, 그와 한나 아렌트와의 이야기 정도만 들어왔던 나는, 이 철학사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나치에 충성하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작업을 했다는 기록에 너무나도 놀랐다. 그가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심지어 참혹한 학살 사건의 희생자인 유대인들에 대해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살한 것과 다름없다는 뉘앙스의 발언이나, 서구 근대성의 쇠퇴에 대한 책임까지 뒤집어씌우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정신 세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서구 합리주의의 한계, 그것은 세계대전이라는 역사가 증명하였다.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는 그것을 극복하고자 실존철학의 위대한 논리를 전개했고, 뛰어난 제자들이 그 지성의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위대한 철학의 유산은 집단학살을 초래한 전체주의적 독재와 악마적인 철학적 동맹을 맺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이 결단성이라는 속성에 근거해 윤리적 결핍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반성하지 않고 회피하고 다른 말로 둘러대는 모습에서 나는 서정주 시인이 떠올랐다. 물론 역사적 비중이나 그 영향력에서 대등하게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개인의 능력과 윤리적 측면이 현실에서 모순되게 나타날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하이데거의 경우에도 우리는 경험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학문적 유산을 열렬히 추종하는 사람들은 역사 왜곡도 서슴치 않는 것 같다. 그것을 전면적으로 인정하면 철학사에서 하이데거의 지위는 완전히 땅에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그들 자신의 정체성 추락으로 이어져서일까? 그러나 저자가 공개한 하이데거의 검은 노트의 내용은 더 이상 하이데거의 용서할 수 없는 정치적 성향을 덮어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이런 논란은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학자로서의 하이데거와 나치에 협력한 하이데거라는 이중성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다.

 

한편 하이데거의 제자들은 유대인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실존적으로는 유대인이라 하기 어려워 보인다. 독일의 문화와 예술 정신에 매료된, 여호와 신앙을 잃은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같은 한나 아렌트, 한스 요나스, 카를 뢰비트, 허버트 마르쿠제 - 그들은 각기 철학의 한 페이지를 당당히 장식할 만큼 뛰어난 철학자들이지만, 평생 스승의 잘못된 선택을 어깨에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혈통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사실상 독일인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변절은 유대인으로서 받는 충격보다 윤리적 측면에서 더 컸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책에서는 유대인, 유대주의에 대한 언급이 많이 되고 있지만, 사실상 이들이 말하는 유대주의가 실제 유대인의 역사에서 흘러온 여호와 신앙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냥 포장지만 유대주의일 뿐, 유대 역사에서 파생된 새로운 형태의 서구 철학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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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 2021.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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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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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문학가 등 소위 인문학자들이 정치이념에 매료되어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채 망국의 한 보다는 매국의 행복(?)을 만끽하고자 열심히 부역하는 배신자의 삶도 있다. 돌아보면 일제시대 문학가인 이광수, 모윤숙 등 많은 이들이 그들의 저작물이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저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친일파, 부역자, 반역행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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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문학가 등 소위 인문학자들이 정치이념에 매료되어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채 망국의 한 보다는 매국의 행복(?)을 만끽하고자 열심히 부역하는 배신자의 삶도 있다. 돌아보면 일제시대 문학가인 이광수, 모윤숙 등 많은 이들이 그들의 저작물이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저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친일파, 부역자, 반역행위를 한 이름으로 더 각인되는 불명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2차세계대전 나치독일의 정치체제와 히틀러를 지지한 저명한 철학자 하이데거는 당시 대두하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모두 기술문명의 산물로서 인간을 경제적 생산을 위한 소모품으로 치부해 인간성을 외면당할 것이라는 우려로 나치를 지지하였다. 배경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하이데거는 철학자로서 엄청난 영향력과 결과물을 남겼음에도 부정당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단다.

 

교롭게도 하이데거의 철학을 계승하려는 제자들 중에는 나치가 인종말살을 획책했던 대상인 유대인들이 있었다.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는 하이데거와 4명의 유대인 제자들, 한나 아렌트, 카를 뢰비트, 한스 요나스, 허버트 마르쿠제에게 하이데거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며 동시에 그들과의 악연을 다룬 책이다. 애인이자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위대한 정치사상가로 명성을 남겼으며 카를 뢰비트는 역사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최고의 생태철학자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또한 허버트 마르쿠제는 나치의 주적(主敵)인 공산당의 이론적 아버지인 마르크스 이론과 신좌파의 대표적 사상가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 당연한 결과이지만 나치에 찬동하는 스승 하이데거의 모습을 본 네명의 유대인 제자들은 2차 세계대전 전후를 거치면서 사상적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충격에 빠져 20여년간 절연했다가 화해하고 일정부분 하이데거의 철학을 인정한 이도 있고, 부분적으로 스승 하이데거에게 빚진 점도 있다. 물론 나치에 부역하고 사상적으로 지지한 하이데거가 용서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단 기술문명에 빠져 소외당하는 인간성을 염려한 나머지 나치의 등장이 가져올 파국적인 운명까지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은 자연인 하이데거가 가진 인간의 한계로서 봐야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n*****r 2021.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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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와 그의 네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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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어떤 철학자에 대한 역사적 사실일까? 1933년 나치당에 입당하면서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오직 히틀러 총통만이 독일의 진정한 현실이자 법”이라고 연설하였다. 뿐만아니라 나치 당국에 동료 교수를 반나치 인사로 고발하기도 하고, 대학생들에게 히틀러의 나치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답은 바로 독일 (실존주의) 철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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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어떤 철학자에 대한 역사적 사실일까? 1933년 나치당에 입당하면서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오직 히틀러 총통만이 독일의 진정한 현실이자 법이라고 연설하였다. 뿐만아니라 나치 당국에 동료 교수를 반나치 인사로 고발하기도 하고, 대학생들에게 히틀러의 나치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답은 바로 독일 (실존주의) 철학의 거두 하이데거에 관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철학으로의 입문을 철학사와 사상사, 그 중 특히 힐쉬베르거의 철학사로 시작한터라 하이데거의 이러한 적극적인 친나치 전력을 뒤늦게 알게 된 후 그의 형이상학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이 물음의 철학적 탐구는 당연히 관련 연구서를 탐독해야 할 것이다. 하이데거의 나치활동, 하이데거 철학과 나치즘의 유사성, 하이데거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는 박찬국 교수의 저작(<<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을 읽어볼 수 있겠으나 미루고 미루던 차에 (사실 잊고 있었다), 리처드 월린의 이 책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를 먼저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히틀러의 아이들로 여기서 아이들은 하이데거의 제자들이었던 인물들 중 각자의 철학 체계를 심도 있게 구축한 동시대의 사상가 네 명, 한나 아렌트, 카를 뢰비트, 한스 요나스, 허버트 마르쿠제를 말한다. (이들 중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카를 뢰비트와 한스 요나스가 비교적 덜 알려진 축에 속한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되, 그의 네 명의 제자들과 하이데거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그 문제에 답하고자 한다. 네 사상가의 연구 방향의 설정과, 정치적 신념 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하이데거의 사상과 대결하여 어떤 지점을 수용하고, 또 어떤 지점은 비판하였는지를 통해 하이데거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재능 있는 유대인 제자들이 펼친 학문적 여정을 살펴봄으로써, 하이데거의 사유가 가지는 탁월함과 한계를 통찰하고 있다.

 

월린은 네 사상가의 지적 여정을 치밀하게 살피며, 사상의 형성 과정에서 스승 하이데거가 미친 영향,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 과정을 세밀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 속에는 스승 하이데거가 가지고 있었던 죄의 근원으로서의 근대라는 보수주의적 이데올리기의 부정할 수 없는 길고 강력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드러낸다.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근대성에서 기원한다고 여겼으며, 요나스는 생태학적 재난 극복을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기꺼이 묵살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기까지 하였다. 뢰비트와 마르쿠제 또한 그들의 사상에서 근대 사회는 주요한 비판 대상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사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네 제자들이 근대 철학사 및 사상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고려하면 철학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네 제자들의 사상 형성 과정에 대한 충실한 분석은 짧다면 짧은 분량 속에서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철학사를 어느 정도 접한 사람이라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이 책 덕분에 당분간 제쳐두었던 철학에 대한 흥미가 다시 생겨났다. 나중에 다시 읽으며 음미해야 하겠다는 확신이 든다.

 

             * 이 책에 나오는 하이데거의 네 제자들, 아렌트, 뢰비트, 마르쿠제, 요나스

 

# 서양철학 # 하이데거제자들그리고나치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g******g 2021.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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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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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를 통해 특정 사건이나 일정한 인물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실수나 실패의 과오를 씻고 더 나은 삶을 계승하거나 교훈을 통해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며 구성원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라는 관점에서 교정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수정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볼 수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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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를 통해 특정 사건이나 일정한 인물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실수나 실패의 과오를 씻고 더 나은 삶을 계승하거나 교훈을 통해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며 구성원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라는 관점에서 교정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수정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볼 수 있다. 이 책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 사상가로 활동했던 인물과 독일 나치라는 매우 무거운 집단의 연결고리를 분석하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는 책이다. 

 

일각에서는 하이데거가 나치와는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전혀 개연성이 없었다고 부정할 수도 없기에 책을 통해 그의 사상과 당시의 시대상, 나치가 상징하는 의미나 관련 인물 및 사건들에 대해 연결지어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부역을 하거나 개입을 했다고,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물론 그들을 무조건 비난하거나 옹호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를 밝혀지기 마련이며 우리는 이런 사례를 통해 사상과 인물, 사회, 역사 등의 의미를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게 해도 된다의 개념보다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더 나은 대안책은 없는지, 발전을 추구하는 자세와 과오를 인정하며 성찰을 통해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물론 책에서 말하는 다양한 사건들과 이념, 사상, 철학, 역사 등으로 표현되는 가치들이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때로는 구분해서 보거나 철저한 비교를 통해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이 더 가치있는 행위일지 모른다. 지금도 지난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며 더 나은 국가와 사회가 되려는 독일의 태도를 바라볼 때, 왜 그들이 대단하며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는지, 책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복잡한 관계로 보이는 유대인과 유럽인들의 사고와 편견, 그들의 역사에 있어서 어떤 가치가 우선되었기에 이런 비극적 과정과 만행이 자행되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반면교사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 지금도 독일 나치라는 용어는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나 밀덕의 입장에선 매우 흥미로운 주제로 통한다. 하지만 이를 더 깊이있게 이해하며 사상과 결집시켜 판단해 본다면 막연하거나 무조건 즐겁게만 보이진 않을 것이다. 책을 통해 무슨 의미와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알리려고 하는지,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이 책을 통해 읽으면서 판단해 보자. 

 


 

 

m**********m 2021.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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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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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서양 철학이나 동양 철학에 대해서 배우기는 했지만 그때는 철학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몰랐습니다. 누가 어떤 주의를 주장하였는지 암기하기 바빴고 키워드만 알뿐 철학의 상세 내용은 거의 몰랐네요. 특히 고대를 지나 근대, 현대로 올수록 복잡하고 추상화되면서 이해하는것 자체가 불가능했던것 같아요. 최근에는 극우파의 득세, 점점 심해지는 부의 양극화, 코로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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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서양 철학이나 동양 철학에 대해서 배우기는 했지만 그때는 철학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몰랐습니다. 누가 어떤 주의를 주장하였는지 암기하기 바빴고 키워드만 알뿐 철학의 상세 내용은 거의 몰랐네요. 특히 고대를 지나 근대, 현대로 올수록 복잡하고 추상화되면서 이해하는것 자체가 불가능했던것 같아요. 최근에는 극우파의 득세, 점점 심해지는 부의 양극화, 코로나19로 드러난 선진국의 민낯 등을 보면 삶에 대한 올바른 철학이 왜 필요한지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현대 철학의 기틀을 만든 철학자 중 하이데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이데거가 쓴 '존재와 시간' 은 현대 철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제자들 중에서도 뛰어난 철학자들이 다수 배출되었네요.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이데거와 그의 학파를 이룬 제자들에 대한 책입니다.

 

하이데거가 살았던 시대에는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면서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며 유대인과 집시들을 집단 학살하였습니다.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학생들이 나치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등 친나치 행보를 보였습니다. 책에 나오는 아렌트, 뢰비트, 요나스, 마르쿠제 등 네 명의 제자들은 유대인이거나 유대계인데 처음에는 어떻게 하이데거의 제자가 되었고 또 같이 연구를 하면서 학문적인 성과를 내었는지 아이러니했네요.

 

예전에 책에 언급된 제자들 중에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었었습니다. 그녀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에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내용은 많은 논란이 되었네요. 아이히만을 포함한 독일인들은 본인의 의사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단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을 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치를 옹호하던 하이데거와의 관계가 영향을 미친 것일까요.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계승하면서 정치 이론가로서도 명성을 쌓았네요.

 

카를 뢰비트와 한스 요나스, 허버트 마르쿠제는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이들의 삶과 철학에 대해 자세히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마르쿠제는 마르크스 주의를 사회의 변화에 맞게 재해석하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좌파에도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였네요. 하이데거의 제자들이 현대 철학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면 하이데거가 얼마나 뛰어난 철학자였는지 새삼 느껴집니다.

 

원서의 제목은 Heidegger's Children 으로 나치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이 하이데거의 제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번역서의 제목은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인데 하이데거와 제자들, 나치가 각각의 비중으로 나올 것으로 느껴지네요. 나치가 들어감으로써 원서의 의도와는 조금 달라진 느낌인데 이와는 상관없이 하이데거와 제자들의 철학에 대해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서양철학 #하이데거제자들그리고나치

p***s 2021.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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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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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니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책 내용은 분명히 좋은 것 같고 번역을 잘 한건지 문체가 바로 빠져 들게 했다. 그래서 점심 먹는 시간도 1시간이나 늦어졌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제자들의 관점으로 하이데거를  분석한 책이다. 하이데거는 반유대주의자인데도 유대인 제자들이 많았다. 이 책의 하이데거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독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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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니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책 내용은 분명히 좋은 것 같고 번역을 잘 한건지 문체가 바로 빠져 들게 했다.

그래서 점심 먹는 시간도 1시간이나 늦어졌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제자들의 관점으로 하이데거를  분석한 책이다.

하이데거는 반유대주의자인데도 유대인 제자들이 많았다.

이 책의 하이데거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독일 문화권에 속해 있고 세대적으로 소속되어 있고 하이데거 초기 철학의 실존론적 방향성에 실질적으로 전념했음이 증명되어야 한다.

하이데거의 강의와 세미나에 비유대적 유대인들이 몰려 들었다.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와 동시대 유대 사상 간의 숨겨진 관련성과 예상치 못했던 공통점은 전승된 이항 대립과 분류를 극히 유행하는 방식대로 해체하는 것이다.

비판적, 경험적으로 접근했을 때 그러한 이항 대립은 동시에 필수적인 해석학적 열쇠를 제공하고 방향을 지시할 수 있다.

헤겔은  모든 것은 사태 자체에 의존한다.

모든 것은 제기되는 질문의 유형에, 그리고 우리가 설명하고자 시도하는 주제의 성격에 달려 있다.

하이데거는 니체에 충성했다.

저명한 역사학자는 나치즘은 국가적 트라우마, 정치적 극단주의, 그리고 폭력적인 갈등과 혁명적 격변의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다.

소수의 범독일 극단주의자들을 도취시켰던 혐오, 공포, 그리고 야망이 뒤섞인 자극적인 혼합물은 갑자기 결정적인 추가적 요소인 물리적 힘을 사용하기 위한 의지와 결단을 획득하게 되었다.

국가적인 굴욕, 비스마르크 제국의 몰락, 사회민주주의의 승리, 공산주의의 위협, 이 모든 것은 범게르만, 반유대주의자, 우생학자, 그리고 초국수주의자들이 세기가 바뀌기 전부터 옹호해왔던 방안들을 실행하기 위해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이데거는 유대인 공동체는 형이상학의 시대에 파괴의 원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상 자기-파괴의 절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형이학적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유대적인 것이 유대적인 것과 투쟁할 때뿐이라고 한다.

아우슈비츠와 다른 죽음의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근대 기술의 제공자로서 그들 자신의 형이상학적 운명의 과잉과 약탈에 굴복했을 뿐이다.

이 주장은 반유대주의적인 정치적 이미지를 열광적으로 투영했을 경우에만 '참'이다.

사르트르가 "반유대주의와 유대인"에서 만일 유대인이  현존하지 않았다면 반유대주의자가 그들을 발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하이데거가 근대 신화로서 세계 유대인들을 재창조하면서 한 일이다.

하이데거의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홀로코스트에 대한 해석에서 유대인들은 단지  그 자신의 형이상학적 명민함의 희생자일 뿐이다.

존재역사의 순화된 관점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본질적으로 그 자신의 손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이데거의 견해에 따르면 그들의 대량 전멸에는 시적 정의의 요소가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서구 근대성의 쇠퇴에 대해 역사적인 책임을 갖는 집단으로서 그들은 단지 그들이 뿌린 씨앗을 거둔 것일 뿐이라고 한다.

한스 게로르크 가다머는 1920년대 초반의 시대 분위기는 비타협적인 문화적 급진주의의 동기에 대해서 얘기했다.

독일에서 키르케고르를 새롭게 수용하는 분위기에서 당대 진리에 대한 주장은 그 자체로 실존론적이라고 했다.

실존주의는 보편적으로 제기된 명제나 지식의 견지에서 증명되는 진리가 아닌 자신의 고유 경험의 직접성 속에서 그리고 실존의 유일무이한 특수성속에서 증명되는 진리를 다루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실체 형이상학을 해체해야 한다고 호소한 하이데거는 관습에 대한 저항이 극에 달해 전통적인 철학의 어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반드시 처음부터 재창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믿었다.

그의 걸작에는 손안의 존재, 죽음을 향한 존재, 존재 전체의 가능성 등등의 크고 무거운 신조어들이 넘쳐난다.

 

 

 

 

 

 


 

 

하이데거의 철학적 출발점은 현사실성 혹은 실존, 즉 최소한의 존재론적 의미로 환원되는 세계-내-존재, 혹은 현존재와 함께 철학을 시작했다.

이와 반대로 로젠츠바이트의 경우, 그의 신학적 열망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방식으로 철학은 신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 혹은 창조된 삶에서 시작해야 한다.

성취의 전망이 긴급한 구원 가능성에 달려 있는 철학은 타락한 인간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 실존의 궁극적 목적을 규정하는 방식에 대해 성찰할 때 그들의 차이는 보다 극명해진다.

로젠바이크에게 있어서 인간 실존의 궁극적 목적은 무한하고 영원한 구원을 통해 피조물로서의 삶, 즉 시간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반대로 하이데거에게 있어, 유한으로서 죽음을 향한 존재는 본래성에 이르는 열쇠일 뿐만 아니라 인간 실존의 완벽한 범례에 해당한다.

로젠츠바이크의 경우 죽음은 초월을 향한 길 위의 중간역, 즉 영원의 이름으로 인간성을 유한성의 고역으로부터 해방하는 더 높은 형태의 존재로 향하는 자기성과 무한한 객관성의 빛나는 명료성 사이를 잇는 다리라 볼 수 있는 것에 관한 물음에 의해 추동된다.

"구원의 별"에서 극도의 주체성과 무한한 객관성의 두 계기를 매개하는 연결고리는 계시이다.

세속주의 사도들이 한계와 결핍으로 인식하는 유대인의 비역사적 민중으로서의 지위는 특히 그들이 영원과 구원의 약속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데거의 실존은 로젠츠바이크의 접근 방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인간의 유한성이라고 하는 불안이 들끓는 변전에 돌일킬 수 없을 정도로 빠져 있다.

그의 실존론적 존재론은 초월이 영구히  폐기되었다고 전망하며 신에게 버림받은 인간 조건의 본성에 열중한다.

남겨진 것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빼앗긴 채 세계-내-존재라는 극복 불가능한 진리로서 절망스러운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반유대주의이고 마르스크주의이고 한나 아렌트와 바람을 피웠다.

교회사람들이 바람을 핀 남자는 사람이 아니니까 바로 손절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하이데거를 읽어야 하는데 하이데거라고 얘기를 안해서 그냥 일반 남자인줄 알았나보다.

하이데거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봐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는 사실상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일에 한 때 손을 댄 사람일 뿐만 아니라 광적인 반유대주의자이다.

하이데거는 유대인들은 도구적 이성을 이끄는 매개체였으며 아우슈비츠와 다른 몰살 현장에서 진보한 과학기술에 의해 살해되었다.

하이데거는 유대인들의 제거를 악의적으로 일종의 집단 자살로 기술한다.

전쟁 후 연합군이 독일을 거대한 강제수용소로 바꿔놓았기 때문에 독일인들이 전쟁의 실질적 희생자라는 것이다.

나치 박해의 희생자들에 대한 하이데거의 공감 능력 부재는 냉담하고 용납할 수 없는 도덕적 무관심을 가졌다.

국가사회주의의 끔찍한 악행을 하찮게 보이게 만드는 하이데거의 불온한 노력, 그것도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실질적 가해자인 독일인들을 역사적 책임에서 면제사ㅣ켜 주려는 노력은 그의 제거주의적 반유대주의 고백과 결합되어 그를 더 이상 훌륭한 사상가로 볼 수 없다.

요즘에 하이데거의 옹호자들이 하이데거 전집에서 반유대주의 부분을 삭제하려고 했다고 한다.

잘못인 건 아는가보다.

난 이엠바운즈의 8권으로 된 기도전집을 한 번 읽고 두 번째 읽고 있다.

이제 8권째 읽고 있는데 기도에 대해서 항상 궁금하고 성경책보다 더 깊은 내용을 원했다.

그 전에 기도에 대한 책들을 무수히 읽어서 그 책들도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기도전집을 읽고나니까 기도에 대한 많은 의문들이 풀렸다.

기도생활하는 것도 더 좋아졌다.

하이데거의 전집은 97권이다.

그런 쪽으로 전공하는 사람들이 전집을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되기는 할거다.

하이데거는 도덕적인 사려를 존재론적 탐구 혹은 존재물음에 못 미치는 것으로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윤리적 문제를 과소평가하면 안 되는데 그는 반휴머니즘을 선언한다.

카를 야스퍼스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부자유하고  독재적이며 의사소통 능력이 부재하다고 했다.

나도 하이데거를 읽어 보니까 야스퍼스의 의견이 맞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하이데거는 학교 다닐 때 실존주의 철학자라는 인식만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더 깊게 그를 알게 돼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y 2021.03.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네 명의 제자들에 드리운 하이데거의 그림자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네 명의 제자들에 드리운 하이데거의 그림자" 내용보기
철학은 내게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고 조금 아는 것 같다가 금새 헤매게 되는 분야다. 어려운 문장을 붙잡고 있을 때면 '대체 내가 왜 이 책을……'하며 끙끙댄다. 책에 담긴 내용을 소화하지 못해 머리를 쥐어 뜯다가 해제 또는 옮긴이의 해설을 볼 때서야 '아, 내가 읽은 내용이 이런 거였어'하며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철학을 다룬 책에 끌리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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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내게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고 조금 아는 것 같다가 금새 헤매게 되는 분야다. 어려운 문장을 붙잡고 있을 때면 '대체 내가 왜 이 책을……'하며 끙끙댄다. 책에 담긴 내용을 소화하지 못해 머리를 쥐어 뜯다가 해제 또는 옮긴이의 해설을 볼 때서야 '아, 내가 읽은 내용이 이런 거였어'하며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철학을 다룬 책에 끌리곤 한다. 무슨 조화 속인지.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는 조금 만만해 보였다. 책 소개를 읽어보니 하이데거의 유대인 제자들인 아렌트, 뢰비스, 요나스, 마르쿠제와 하이데거의 사제관계에 집중한 책처럼 보였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동조한 일에 대해 또 제자 아렌트와의 관계에 대해, 그 전후 사정이 알고 싶기도 했다. 뢰비스와 요나스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지만 나머지 두 명의 이름은 들어 봤으니 어려운 철학을 다루더라도 읽을(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순진한 생각이었다. 책은 하이데거와 그의 유대인 제자들의 '관계'에 집중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관계'를 통해 하이데거 사상의 방향성을 명료히 하는 것이 책의 목표였다.

 

저자 리처드 월린은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가 우발적이거나 불가피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독일적 전통'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하이데거는 '독일에서 번성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계승자'이며 반유대적, 반근대적 사상가다. 이에 반해 하이데거 사상의 근원을 배제한 채 그의 텍스트를 독해한 북미권에서는 그를 "'인간'과 '이성'에 대한 비판자"로 여기고 그 안에 담긴 '정치적 함축'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전에 하이데거에 대해 읽었던 글들은 저자의 우려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하이데거는 나치에 부역했지만 주변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 기간이 매우 짧았고 나치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되자 곧 관계를 단절했다는 내용이었다. 옮긴이는 해설에서 국내 하이데거 연구가 '내재적 접근을 선호한다'고 적고 있다. 이는 북미의 연구 전통을 따른 독해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월린의 책은 하이데거 연구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월린은 하이데거 수용사를 논할 때에도 이러한 외적 평가 척도를 중요하게 제시한다. 월린은 영미권 내에서 하이데거의 수용이 (…) 여전히 내재적 접근을 선호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내 하이데거 연구에 대해서도 아주 다른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하이데거나 제자들의 사상에 대한 텍스트 외재적인 분석과 비평은 기존에 내재적 접근 방식이 주를 이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균형 잡힌 시선을 제시하는 미덕을 분명히 갖는다.

pp.435-436

 

책은 하이데거의 유대인 제자들에서 시작한다. 스승이 반유대주의를 표방하는 나치의 사상적 대표가 된 상황에서 유대인 제자들은 어떤 혼란과 반응을 드러냈는지를 서술한다. 저자가 선택한 대표적인 네 명의 제자는 한나 아렌트, 카를 뢰비트, 한스 요나스, 허버트 마르쿠제다. 저자는 이들을 독일에 동화된 유대인이라고 말한다. 나치의 탄압이 시작되기 전까지 자신들의 유대 정체성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나치 이전까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지우면 독일 사람들과 같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유대인들을 보는 독일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고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탄압이 시작됐다. 하이데거의 제자들도 갑작스런 스승의 변화에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제자들 중 사상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 스승의 영향에 많이 휘둘린 사람은 한나 아렌트다. 아렌트는 제자인 동시에 연인이었다. 하이데거가 나치에게 돌아섰을 때 아렌트는 스승을 비난했지만 종전후 그와 화해하고 스승의 대변자가 됐다. 월린은 하이데거 사상의 영향을 아렌트의 저작에서 찾아내 그녀의 사상 변천이 하이데거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밝힌다.

 

그러나 두 사람이 화해한 이후, 그녀의 어조는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화해 이후 그녀는 하이데거의 나치 전력의 무게와 크기를 체계적으로 축소했다. (…) 이전의 비판적 묘사의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pp.142-143

 

근대 역사의식 연구로 독일에서 잘 알려진 카를 뢰비트,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한 생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경우도 근대 정신을 비판하고 전제주의에 경도돼 있다는 점에서 스승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그(요나스)는 플라톤의 '철학자 왕' 교리가 담고 있는 반민주주의 편견에 명백하게 빚을 지고 있다. 이는 1930년대 초 하이데거 역시 미혹되었던 편견이기도 하다. 요나스는 전제정치의 미덕을 공공연하게 찬양한다.

p.263

 

허버트 마르쿠제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영감을 받아 스승을 찾은 사람이었다. 그는 스승의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결합하고자 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제자의 방향을 탐탁잖아 했고 나치를 선택하면서 결별에 이르렀다.

 

하이데거가 자신의 젊은 추종자가 좌파의 정치 신념을 가졌다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하이데거는 마르쿠제의 철학적 세계관의 핵심을 형성한 것이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를 종합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이데거의 단호한 반공산주의적 관점에 비추어볼 때, 이를 호의적으로 보았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pp.317-318

 

아렌트는 스승과 화해했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때문인지 아렌트에 대한 저자의 서술은 다른 제자들의 경우에 비해 신랄해보인다. 뢰비트, 요나스, 마르쿠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제자들의 사상적 흐름을 소개하고 스승 하이데거와의 관계 서술한 후 그들의 사상에서 보이는 스승과의 연계성을 풀어낸다. 반면 아렌트의 경우는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일대기적으로 소개하면서 그 변화에 따른 아렌트 철학의 향방을 서술한다. 한나 아렌트의 모든 사상은 하이데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마지막까지 짝사랑이 계속된 것처럼 묘사된 것을 볼 때 그녀가 가진 정치철학자로서의 위대함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난감해졌다. 아렌트는 책에 소개된 제자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인데 말이다. 특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악의 평범성'에 대한 아렌트의 주장을 어떤 맥락으로 바라봐야 할 지 생각하게 했다.

교육자로서 하이데거는 대단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제자들이 스승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데는 이런 부분이 일정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하는 말마다 '가치있는 어떤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스승이라면 그가 말하는 사상의 결점도 눈에 들어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자들은 한때 스승을 믿고 따랐고 그의 배신에 경악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배어든 스승의 그림자를 알아채지 못했던 듯하다.

 

요나스는, 상당한 정도로, 그 철학자의 매료시키는 능력이 '이해할 수 없는' 담론의 성격에서 기인했다고 언급했다. 말하자면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의 말에는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p.271

 

하이데거의 반유대주의자로서의 면모는 2014년 『검은 노트』가 출판되면서 확연히 드러났다. 사적인 기록물인 『검은 노트』에 그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일에 끔찍하게도 가담한 사실"을 적었다. 하이데거를 '수동적 반유대주의자'로 보려는 지지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본심'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월린의 주장이 더 합리적 결론이라 생각한다. 하이데거를 더 이상 '훌륭한 사상가'로 보기는 어려운 일이며 그의 철학은 '문제의 일부'다.

 

이러한 사실들은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국가사회주의의 끔찍한 악행을 하찮아 보이게 만드는 하이데거의 불온한 노력, 그것도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실질적 가해자인 독일인들을 역사적 책임에서 면제시켜 주려는 노력은 그의 제거주의적 반유대주의 고백과 결합되어 그를 더 이상 '훌륭한 사상사'로서 볼 수 없게 만든다.

p.49

s****y 2021.04.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 아렌트, 뢰비트, 요나스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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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하이데거   그는 철학의 한 분야인 존재론을 다뤄 존재의 시간 책으로 유명하다.       20세기 위대한 사상자가 이자 한때   나치에 참여한 하이데거 철학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차례       1. 도입부, 하이데거의 제자들이 지닌 딜레마   2. 독일에 동화된 유대인, 정체성 혼란관 시련   3. 한나 아렌트, 히틀러의 평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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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하이데거

 

그는 철학의 한 분야인 존재론을 다뤄 존재의 시간 책으로 유명하다.


 

 

 

20세기 위대한 사상자가 이자 한때

 

나치에 참여한 하이데거 철학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차례

 

 

 

1. 도입부, 하이데거의 제자들이 지닌 딜레마

 

2. 독일에 동화된 유대인, 정체성 혼란관 시련

 

3. 한나 아렌트, 히틀러의 평범한 사형집행인에 대한 기능주의적 해석의 위험성

 

4. 카틀 뢰비트, 근대 니힐리즘에 대한 스토아주의적 답변

 

5. 한스 요나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한 생철학자

 

6. 허버트 마르쿠제, 실존론적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좌파 하이데거주의로

 

7.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 독일적인 '방식'의 철학자, 하이데거

 

8. 남은 이야기, "존재와 시간" 실패한 걸작인가 

 

 

 

 

 

 

 

 

 

 

유대인 시인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 파울 첼란이 독일 슈바르츠발트 심장부에 있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유명한 스키 오두막을 방문했다. 그 독일 철학자가 20세기 실존주의의 획기적 사건 중 하나인 "존재와 시간"을 쓴 것이 40년 전 그곳에서였다.

 

 

 

 

강제 수용소 수감자였던 첼란은 의미심장한 선언을 한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스승이다." 이는 단연코 빛나는 첼란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글이다.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새벽의 홍자를 우리는 저녁에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점심과 아침에 마신다 우리는 밤에 마신다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그곳에서는 비좁게 누워 있지 않을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전 나티였던 하이데거의 산장 이름과 '죽음의 푸가'간의 언어적 포개짐은 세상에 지친 시인을 동요하게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동시대 독일인처럼, 하이데거는 과거 독일이 저지른 죄악을 헤쳐나가려는 진지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이 점에 있어서 하이데거는 확실히 유대인 '제자들'의 임무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의 제자들 중 몇몇은 그의 명성을 손상시킨, 나치 시대의 치정에 관여한 것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솔직 담백하게 그러한 일들과 단절할 것을 간청했다.

 

 

 

 

 

 

하이데거의 제자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한나 아렌트, 한스 요나스, 카를 뢰비트, 허버트 마르쿠제

 

하이데거 제자들의 철학 관점이 한 파트씩 나온다.

 

 

 

 

 

인간 능력의 범위 내에서 행정적인 대량 살상의 범죄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해결책이 없는 것과 같이, 정의에 대한 인간의 필요도 그러한 [대량 살상의 범죄] 목적을 위해 인민을 총동원한 것에 대해 만족할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모두가 유죄인 곳에서는, 결국 어느 누구도 유죄라 판달할 수 없다. 모두가 유죄인 경우 한낱 걸치러의, 말하자면 책임 있는 척하는 것조차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쿠제

 

사람들은 자신의 상품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자동차, 고성능 음악 장치, 복층 주택, 주방기구에서 발견한다... 그 결과는 적응이 아니라 미메시스[모방]이다. 말하자면 개인을 사회와 동일시하고, 이를 통해 전체로서의 사회와 직접적으로 동일시한다. 이러한 동일화는 보다 혁신적인 소외의 단계를 구성한다. 후자는 완전히 객관화되었다. 소외된 주체는 소외된 실존에 의해 집어삼켜진다. 어디에서나 모든 형태에서 오직 1차원만이 있을 뿐이다.

 

 

 

 

 

 

 

 

 

 

 

 

마르쿠제 '자유에 관한 에세이'

 

특정한 사회적 기준에 따른 모든 윤리적 행위에 앞서, 모든 이념적 표현에 앞서, 도덕성은 유기체의 성향이다. 아마도 공격성에 대항하고, '언제나 더 큰 생의 통일성'을 창조하고 보전하는 에로틱한 욕구에 뿌리를 두는 성향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가치'이전에 인간 사이의 연대를 위한 본능적인 토대를 갖게 될 것이다. 계급 사회의 요구 조건에 따라 효과적으로 억압되어 왔지만 지금은 해방의 전제 조건으로 등장하는 연대 말이다.

 


 

 

 

 

하이데거 강좌 중 [유럽의 니힐리즘]

 

지금 니체가 형이상학적으로 인식했던 사실이 이제 명확해졌다. '기계적 경제' 다시 말해 모든 행위와 계획을 기계적으로 철저히 계산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류를 무조건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근대 기술의 독특한 근본 본질과 그것이 형이상학적 진리에 근본적으로 적합한 인간 유형이다. 다시 말해 필요한 것은 기술의 본질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될 수 있고, 이를 통해 개개의 기술적 과정과 가능성을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인간 유형이다.

 

 

 

 

 


 

 

 

철학 책은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 이론을 알고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계속 염려와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인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시간성'이고, 결국 죽음을 바라본다. 그 안에서 계속되는 선택과 책임을 동반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y******3 2021.03.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