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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경 교수의 글은 '수행'하지 않은 외부자의 눈과 '수행하는 운명공동체' 안에 있는 내부자의 눈에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읽힌다. 서양인들에 의해 부추겨지고 인기가 있는 서양식 불교, 일본의 일부 학자들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는 비판 불교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한국불교의 정신을 근본불교와 대승불교의 연속선 하에 투명하게 한 줄 한 줄 풀어놓은 역작이다. 저자가 새로 내놓는 강연과 저작의 내용에는 매번 새로운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자신의 치열한 수행을 통한 대답이 나와 있다. 쉬운 문장으로 써 있으나 한 줄 한 줄 천천히 음미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나는 저자가 말한 보편성의 윤리, 불이의 윤리, 자비와 표용의 윤리가 절대평등과 현상적 차이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이 윤리에 대해서도 빈 여백을 남겨놓아 읽는 우리들의 삶과 생각을 스스로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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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성 교수님의 책들을 통해 불교의 논리적 기초를 다져온 덕분인지, 한자경 교수님의 깊이 있는 유식 철학 강의도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서양 철학자분들의 시각으로 먼저 불교를 접한 것이 제게는 큰 인연이자 공부의 차례였던 것 같습니다. 학문적 깊이가 상당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앞선 공부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마음의 실상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새로운 지식을 찾아 조급하게 헤매기보다, 이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평상의 삶 속에서 묵묵히 수행하듯 독서를 이어가려 합니다. 부족한 독자에게 길을 보여주신 저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평온한 마음으로 성불하시길 바랍니다. |
| 나는 누구인가? ,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 그답을 찾지 않고선 진정한 행복에 이룰 수 없다는 확신으로 이화여자대학교에 들어가서 서양철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로 건너가서 칸트철학을 연구한 한자경 교수는 마음의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지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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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공사상과 연기론 등등 불교에서 곧잘 주장하는 모호하고 난해해보이는 이야기들에 대한 아주 쉽고 매우 자세한 풀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철학교수답게 매우 분석적으로 하나하나 빠짐없이 설명하며 영자역학은 물론 각종 그림이나 타종교 그리고 동양철학과 기독교와의 비교를 통해 누가 읽더라도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논리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동일한 내용을 너무 많이 반복한다는 것이다. 물론 책이라는 것이 핵심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다양한 설명을 통해 더욱 깊고 풍요롭게 이해되기 마련이라는 것은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이 책은 반복의 정도가 좀 심한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단을 통째로 복사해서 반복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굳이 이미 쉽고 길게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면을 비슷한 이야기로 늘려봤자 결국 같은 내용의 되풀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참으로 많이 들었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는 불교에는 해박한지 몰라도 과학의 근본정신에 대해서는 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의 빅뱅이론을 독단이라고 보는 저자의 견해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빅뱅이론이 절대적 진리라는 뜻은 아니다. 빅뱅이론으로 놀라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우주의 신비를 풀기에는 너무나 모자라며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다 알고 있기에 지금도 그토록 분투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빅뱅의 대폭발을 지금 우리의 우주가 탄생한 최초로 보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우주가 팽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과거로 소급하여 점점 덜 팽창한 최초의 지점으로까지 소급해본 것이다. 그 순간까지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나온 결론이었고 그러한 결론을 통해 우주의 최초라고 말했을 뿐이다ㅡ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들이 빅뱅 대폭발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하지도 않거니와 이미 그 이전에 대해서도 여러 가설을 읽은 바 있다. 대폭발이 처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현재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이 우주만의 시초에 대해 과학의 힘으로 갈수 있는 곳까지 가본 것이다. 그 이전에 물론 뭔가가 있었겠지만 그게 뭔지 말할수 없고 또 과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검증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쉽게 발표되거나 쉽게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빅뱅 대폭발이 현시점에서는 옳지만 언제나 새로운 발견으로 인해 수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빅뱅 이전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블랙홀 그리고 중력과 양자역학의 통합이 필요한데 그것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인생을 바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주의 모든 비밀을 다 풀었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발견한 곳까지 최선을 다해서 한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그런데 빅뱅을 두고 독단이라니...저자의 견해에는 솔직히 좀 의아했다. 양자역학과 불교와의 공통점을 논하는 저자가 과학의 정신에 대해서는 그토록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다니 좀 씁쓸했다. 내가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불교자체가 훌륭하기도 하지만 종교이면서도 매우 과학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종교를 떠나서 누구나 자신의 삶과 세계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불교야말로 정신과 물질의 과학이 통합된 훌륭한 종교라고 생각해왔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구체적으로 반박하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여기에 그것을 다 입력하려면 수십장이 될 것 같아서 그만두겠다. 그래도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우리가 본래 부처가 아니라면 왜 굳이 부처가 되려고 하겠는가라는 주장에 대해서, 왕이 아니니까 왕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것이고 아직 취직을 못했으니까 합격해서 직원이 되려고 하는 것이지 이미 내가 왕이거나 직원이라면 뭐하러 굳이 애태우며 노력하겠는가라는 예를 들어서 저자에게 되묻고 싶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정말로 우리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불교를 통해 듣지 않았다면 부처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부처라면 부처가 되고 싶은 소망 즉 욕구도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처가 되고자 하는 것 또한 집착이 아닐까? 우리의 근본바탕의 마음 그 심층의식이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청정한 것과 비청정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 될뿐이지 않을까? 텅 빈 마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텅 비었다고 하면 꽉 찬 것의 대립구도를 일으키게 되고 , 노자의 말처럼 빛이 있으니 그림자가 생기고 아름답다고 하니까 추한 것도 생기는 것 아닌가? 불교는 분별하지 않는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가장 심층의 바탕이 되는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새하얀 헝겊처럼 혹은 하얀 백지처럼 청정하고 텅 비었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그 반대를 나쁘게 분별하게 되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을까? 저자의 주장이 정말로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과 일치하는 것인지..... 불교경전에서는 정말로 어떻게 나와있는지 궁금하다. 소승불교 대승불교 등등으로 나뉘어져서 경전도 하나가 아니지만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갑자기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저자의 생각이나 수많은 예들 중에서는 반박하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저자의 생각은 분별하지 말라고 하면서 분별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들이 보이긴 했지만,전반적으로는 좋은 책이고. 이렇게 쉽고 꼼꼼하게 설명한 불교책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인정하며 저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