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4)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응시와 고발의 밑그림 - 구소은 작, 소설 [파란 방](2021년, 소미미디어)
"응시와 고발의 밑그림 - 구소은 작, 소설 [파란 방](2021년, 소미미디어)" 내용보기
응시와 고발의 밑그림- 구소은 작, 소설 [파란 방](2021년, 소미미디어)1. “인간은 곧 그가 먹는 것이다.”(Der Mensch ist, was er isst.) 이는 포이어바흐가 한 말이다. 근대적 유물론자로서 포이어바흐는 이렇게 촌철살인의 짧은 경구로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내었다. 내가 해석하기로, 그는 각 개인이 평시 먹는 것에 ‘계급적’, 또는 ‘사회구조적’ 함의가 있음을 의도하는 것이다
"응시와 고발의 밑그림 - 구소은 작, 소설 [파란 방](2021년, 소미미디어)" 내용보기
응시와 고발의 밑그림
- 구소은 작, 소설 [파란 방](2021년, 소미미디어)

1.
“인간은 곧 그가 먹는 것이다.”(Der Mensch ist, was er isst.)

이는 포이어바흐가 한 말이다. 근대적 유물론자로서 포이어바흐는 이렇게 촌철살인의 짧은 경구로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내었다. 내가 해석하기로, 그는 각 개인이 평시 먹는 것에 ‘계급적’, 또는 ‘사회구조적’ 함의가 있음을 의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분석하든, 기실 ‘먹고 싸는’ 인간을 이처럼 단순 명쾌하게 밝힌 사례가 또 있을까?

종교적으로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인간을 어떤 식으로 추켜세울지라도 이 엄연한 사실을 호도할 수 없다. 창조세계 앞에 신의 대리자로 세워졌다 해도, 존엄한 이성적 존재로서 고담준론을 생산할 수 있다 해도, 과연 ‘먹는’ 문제에 직결하여서 치열하고 나약한 인간의 본질을 감출 수 있을까? 우리는 21세기 한복판, 현란한 디지털 문명 가운데서도 여전히 인류가 먹는 문제로 비굴해지고 서로 잔인해짐을 매일처럼 확인하고 산다.

그렇다면, 섹스는?
이 역시 인간의 본질을 밝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되지 않을까? 가령 ‘인간은 곧 그가 (섹스)하는 것이다’는 식으로 말이다. 주지하듯, 유난히 인간은 특정의 번식기간이 없이 섹스를 즐기는 동물이다. ‘즐기기 위해’ 성교를 하는 종이 몇 더 있어도, 인간만큼 섹스에 부가적 의미를 지닌 동물은 다시 없다. 즉 섹스의 행태와 섹스를 위한 잠재성을 고려하자면 한 개인이 처한 사회적, 계급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파란 방]이 동원하는 섹스라는 주제는, 바로 위의 문제들을 가감 없이 폭로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독창적이다.

2.
앞서 두 권의 역사소설을 창작했던 작가 구소은은 바로 이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인간은 곧 그가 (섹스)하는 것’이라는! 또는 ‘우리는 어떤 섹스를 하는가? 당신은? 혹은 나는? 그것을 보라. 그러면 너는 네 자신이 누구인지 알 것이다’ 하는 식의 화두를!

출간된 지 겨우 이틀이 지났지만 홍보를 위한 본인과 출판사의 노력뿐만 아니라, 바로 성애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로 인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성적 묘사에 관한 많은 지면의 할애, 적나라한 자위 및 성애의 묘사, 금기된 집단 섹스 등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아낼 것이다. 그리고... 혹 모르겠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교양적 욕구충족에 더해 성적 취향에 있어 짜릿한 요깃감이 될 수 있을지는.

그런데 우리는 이 문제의 소설 [파란 방]을 그렇게만 읽을 것은 아니다. 구 작가의 전작들에 깊은 감동을 맏은 독자로서 노파심에서 남기는 말이지만, 행여 우리사회에 이 작품을 외설문학 내지는 일탈적 사랑 이야기쯤으로 치부하는 부류들이 생긴다면 코웃음을 쳐주고 싶다. 가령 어떠한 페미니스트라든, 엄마부대라든, 가식적인 꼰대라든, [파란 방]의 애처롭고 뼈저린 심층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당신들은 그리 말할 수준이 아니요!’하고 말이다.

대담한 성묘사에 기대어, [파란 방]은 심중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품은 줄곧 묻는다. 왜 우리는 여전히 정상과 비정상, 질서와 일탈, 중심과 주변부, 온전과 장애 따위를 나누어 서로를 재단해야 할까? 그것에 압살당하는 당사자들, 음지로 밀려난 타자들이 오히려 진정성 있는 삶의 수(繡)를 놓고 있을지 모를 일인데 말이다. 온갖 종교와 이즘(ism)이 짓밝고 거쳐간 이 땅에 유력한 것은 교묘한 편견이요, 왜 삶 자체가 아닐까? 우리는 이 소설과 더불어 계속 고민해야 한다.

3.
소설 [파란 방]은 양면적이다. 그 양면성은 소박하고 진지하게 삶을 경주하는 자들에 대한 따뜻한 응시를 지니면서도, 거창하지만 비열한 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냉소를 지녔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것은 작가의 전작에서도 노출된 구소은표 ‘휴머니즘’에 근거한다.

소설은 대중이 ‘비정상’으로 여기는 것들에 깊은 이해를 독려하면서, 동시에 선망하는 것들에 대한 비판을 촉구한다. 특히 후자가 구축한 철옹성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파렴치한 면면들을 폭로한다. 오래된 보도블록을 뒤집으면 음습한 자리에서 머물던 혐광(嫌光) 생물들이 놀라 피하듯이, 책을 집어 든 독자들은 그 ‘벌레’들의 난동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확실히 [파란 방]은 전작에서는 감추어두었던 신랄한 폭로, 비판, 비꼼이 작렬한다. 우리가 이 소설에서 느낄 오르가즘(?)은 바로 이러한 대목들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소설은 사뭇 시의적절한 작품이기도 하다. 근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권력 계층들을 부러 다루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소설 [파란 방]은 독자의 사회적 입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종이 같은 기능을 한다.

4.
구소은 작가의 세 작품을 모두 읽은 애독자로서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구 작가는 작품마다 넓은 스펙트럼의 소재와 시공간을 쓰고 있다. 그리고 다채로운 에피소드와 플롯을 다룬다. 쓰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많고, 쓸 말이 많다는 증거다. 이점은 그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요건이다. 소소한 일상과 장면을 나열하며 그다지 흥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묘사로 ‘떡칠’을 하며 분량을 채우는 소설도 적지 않은데, 구소은 작가는 과감한 생략과 밀도 있는 필치로 두껍지도 않은 한 작품에 여러 소재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한 작품 안에서는 집약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성긴’ 구조를 보인다. 때로 독자가 더욱 기대하는 바, 치밀하고 세세한 묘사를 결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친절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옴니버스식의 플롯을 즐겨 사용하는 작가이기에 어쩔 수 없다 싶기도 하지만, 다음 작품에는 독자가 머물고자 하는 장면, 깊은 페이소스에 공감하는 대목에서 조금 더 머물러 주면 어떠할까 한다.

우리는 [파란 방]이 화가라는 등장인물 중심으로 펼쳐진 이야기로 읽기 때문에, 시각적인 묘사와 서술이 적지 않아 가히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한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하여 이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어 대중들에게 다시 등장할 것도 기대해 본다.
g***m 2021.03.27. 신고 공감 6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