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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라는 삶의 문맥과 마주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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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알게되는 진정한 이유는 내가 이미 그와 삶의 수준에서 조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 강신주, 『노자 혹은 장자』 오월의봄 刊,  315쪽에서   이 소설집의 각 작품들을 읽으면서 지속해서 떠오르는 것은 '나'라고 일컫는 존재를 이루는 어떤 특정한 삶의 문맥에서 구성된 마음의 제한성에 대한 자각이었다고 해야겠다.  다시 말해 내가 지닌 의식의 동일성 혹은 선(先)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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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알게되는 진정한 이유는 내가 이미 그와 삶의 수준에서 조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 강신주, 『노자 혹은 장자』 오월의봄 刊,  315쪽에서

 

이 소설집의 각 작품들을 읽으면서 지속해서 떠오르는 것은 ''라고 일컫는 존재를 이루는 어떤 특정한 삶의 문맥에서 구성된 마음의 제한성에 대한 자각이었다고 해야겠다.  다시 말해 내가 지닌 의식의 동일성 혹은 선(先)이해라는 매개의 지평을 벗어나야 비로소 타자와 진정한 소통의 준비가 이루어지며 감응, 공감, 그리고 사랑이나 유대라는 새로운 생성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다.   나와 너, 나와 가족, 나와 동료 같은 관계 단위에서의 소통 실패가  바로 이 '나'의 불변하는 동일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Ⅰ.

수록된 단편 작품들에서 이 소통의 실패가 사랑의 불가능, 인격 손상, 몸과 정신의 왜곡, 인명 경시와 폭력에 의한 굴종의 요구 등으로 표현되거나 부상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첫 번째 작품인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는 연명 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자신의 환자 이시진이란 인물을 모티브로 한 소설을 쓰려하는  삼십대 초반 봉직의()인 '나'가 환자의 보호자인 유나와의 대화에서 새로운 인식이 탄생하고 자기 변형을 이뤄내는 마음의 여정를 따라가게 한다.  화자인 '나'는 보호자의 동의 없이 환자를 모델로 한 소설을 쓰고 있으며, 결말부에서 동성(同性)의 연인을 만나게해야 할지를 망설이는 난처한 기분에 빠져있던 차였다.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환자 이시진에 대한 내원 과정이 모교대학 병원 동기인 '수연'을 통해 '생활동반자법'이라는 동성커플보호에 대한 입법의 사회적 환기의 명분으로 동의도 없이  "극적인 전개를 가미하여 장면까지 강렬하게 묘사"하여 SNS에 게재 되어 가족들을 고통스럽게 한 사실이 있다.  "인정투쟁에 골몰하느라" 타자의 고통에는 무심한 수연이란 인물과 사실 '나'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산책에서 유나에게 듣게 되는 이수진과의 이야기는  자신과 어머니를 두고 좋아하는 동성의 연인을 위해 떠나는 아버지를 향해 외쳤던  "사랑, 그거 안하면 안되나?, 그냥 안하면 되잖아!"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더 강한 사랑을 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로 바뀌어 있다.  그녀는 자기 삶의 문맥이 바뀌는 부득이한 낯선 느낌을 안음으로써 새로운 자기, 새로운 삶의 이해를 만들어 냈음이리라.  그리곤 "내가 두 노인을 정원 저편에 남겨 두었다는 것을" 이라며 맺는 '나'의 마지막 문장은 열린 '나', 타자와의 소통에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나'로 변해 있음을 말한다.

 


 

Ⅱ.

이와 달리 「컨프론테이션」이란 작품의  중심 인물인 변호사 이정민은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이므로.(177쪽)"라며, "섣부른 응원도, 삿된 가르침도 (...) 내게는 아무 의미가 되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세상이 이런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두렵고 무서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즉 주체라는 것에 대한 어떤 불변의 확고함이 '나'라는 것인데,  이러한 존재에겐 애초 타자와의 소통이란 것이 공허할 것이리라는 생각이다. 주고 받을 것이 없으며,  자기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니 엄청난 폭력성의 잠재만 느껴질 뿐이다. 

 

이정민 자신은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서의 이방인으로 지냈던 어린 시절의 고립과 외로움의 경험 덕분에 그나마 공감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사랑이 되지 못한 남자들과의 관계를 줄줄이 꿰다가 지식재산권 정보 공유 모임에서 만난 변호사 김한서와의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장황한 서사를 이룬다. 한서라는 인물은 "예전 여자 친구가 좋아해서 자기도 좋아하게 된 작품(155쪽)"이라고, '트레이시 에민'의 설치작품 사진을 저장하고 있다.  그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타자로 향하는 자기조절 과정을 통해 이를테면 '나'라는 주체의 자기 생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된다.

 

반면, 정민은  "누구랑 헤어지고 그림 몇 점 음악 몇 점 남으면 괜찮은 장사 아닌가?"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합리주의적 산수, 즉 불변의 전제가 놓여 있다. 결코 사랑이 스며들 여지가 없는, 그러니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그냥 나태하게 살고 싶"으며, 비록 수식어가 붙어있긴 하지만 타자의 응원이나 어떠한 가르침도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일 테다.  이러한 의식을 지닌 정민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 혹은 "네가 남자니까 할 수 있는 거야, 당연한 거 아냐?" 처럼  '상식'이라는 고착된 자기 규범의 강요, 범주화를 통한 일반화의 언어를 반복한다. 

 

"계속 눈을 마주치는 그의 노력 (... ) 그 느낌에 온전히 마음을 맡기기 보다는 외려 내 감정을 의심했던 것 같다."  - 170쪽에서, 「컨프론테이션」

 

이 자기 폐쇄성은 요즘 아이돌들의 대중 음악 가사는 물론 소셜 미디어의  "나는 내가 될거라"는 유행어처럼 쉽게 발견된다. 어렵기만한 타자와의 소통을 차버리고 자신의 세계, 고착된 주체라는 믿음에 매달리겠다는 의미의 다름 아닐 것이다.  왠지 권위와 지배의 욕망만이 넘실대는 폭력의 세계가 그려진다. 정민이 반복적으로 남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내 지루함을 느끼고",  자기 같은 "갖춘 여자가 남자와 같이 사는 일은 어느모로 보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 되고만다. 고정된 계산 속에는 타자가 존재할 자리가 없다. 이 유아(唯我)적 존재의 세계에 지배와 굴종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기획전 전시실 입구 위 벽면에    "나는 무규정적인 것을, 무제약적인 것을 좋아한다"라고 써있다는 글귀가 인용되고 있는데,  정민은 철저하게 오독하고 있는 듯하다. 이 문장은 그야말로 타자와의 소통에서 그 타자의 흐름에 유연하게 일체화하는 수용성을 말하고 있다. 타자와 차이를 경험하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하기 위한 주체의 상태가 이와 같아야 함의 의미일 것이다. 정민은 이것을 고착된 주체의 자유의지로 이해한 모양이다. 

 

Ⅲ.

이 논의를 계속 이어가면, 규정적이고 제약적인 주체라 할 수 있는 정민과 닮은 꼴의 인물로 단편  「부태복」의 양진석을 대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방 소도시 시립병원 내과의로 모교 대학병원 레지던트에 지원했으나 해당과 교수의 조카가 지원하자 포기하고 수월한 길을 선택했음에 일견 스스로 대견해 하는 인물이다. 특정 공동체 내에서의 관행에 복종하는 행위처럼  내면의 규정성에 얽매여 있다. 여기에 북한군 군의관 출신의 부태복이라는 인물이 부임하는데, "북한의 낙후된 병원에서 맨손으로 환자를 돌본 기억을 훈장처럼" 말한다고 조롱하며, 따라서 부태복의 귀납적인 진단법은 "편견을 수반(105쪽)"하고, 오직 축적된 "임상경험에 의존한 구분과 배제 능력에 달려 있다"고 폄하한다.

 

자신이 하는 기계에 의한 시스템적 세트 처방은 객관적 지표에 의한 치료이기에 진단 오류를 줄이는 합리적 방법이라 맹신한다. 양진석에게 일정한 경계가 정해진 범주를 벗어난 것은 자리를 잘못 찾은 것, 그래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편견, 선이해로 가득한 마음의 이 소유자는 부태복의 단 한 차례 진단 실수를 낙인 찍는 증빙으로 삼고, 부태복은 결코 시립병원의 내과 의사에 합치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자기 확신을 강화한다.

 

폐 속에서 끓는 소리를 내는 열여섯 살 소년이 입원하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진단을 내린다. 부태복은 신종코로나임을 의심하며 음압격리치료를 주장하지만 진석은 강력하게 무시하고 외면한다. 결국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신종감염경보'가 오자 "경기를 일으키며 목이터져라, 만지지마!"라고 소리를 지르는 진석의 모습은 타자성을 견디지 못하는 주체의 규정성이 낳는 또 하나의 불편한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타자가 지닌 고유성과 단독성을 자기 앎이라는 협소한 규정으로 재단하려하는 이 비근한 인지적 폐쇄성은  「컨프론테이션」의 변호사 이정민의 그것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닌것 같다.

 

Ⅳ.

나와 너를 구분하고 차이를 만드는 경계짓기의 선수인 내과의 진석은 우연하게도 단편  「참(站)」 에 등장하는 교도소 의무과장에서 발견하게 된다. 교도소 수감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의학 자문을 촉탁받은 기초의학 전임강사인 진영의 조사 면담에서 그는 말한다.

의무과장: 인두겁을 쓴 짐승이지 않은가.

진영: 왜 그런식으로 말씀하십니까? 정말 의도적으로 방치하신 건가요?

의무과장: 파렴치한 소아강간범이 죽은 일이 잖습니까?   -279쪽에서

 

이 일을 20년간 해왔기에 의무과장 자신은 다 안다는 것이고, 범죄자가 죽은 것에 인권위 조사에 열을 올리는 것은 "명예나 양심이라는 너의 갈급함"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며 조롱한다. 이런 일은 고결한 가치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의무과장은 질서라는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세계, 이를 벗어났는지를 결정하는 경계라는 것에 매몰되어 있다. 그래서 제자리를 벗어난 타자는 쓸어내버리거나 다른 곳에 옮겨야 하는 것이고, 이 경계를 감시하는 이 자가  "시도 때도 없는 공포"라는 자신의 긴장감을 말하는 것도 바로 자기 규정성에 묻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재소자인 타자와 진정한 소통을 20년 동안 한 번도 지니지 못했음의 반증으로 보인다. 의무과장의 자기 규정성은 작은 변화도 갖지 못했을뿐 아니라 고착된 주체의 편협성만이 심화되었다. 인간 생명, 타자에 대한 무심함, 괴물은 이러한 평범성에 잠복해 있는 듯하다.

 

화력발전소 노동자 사망이라는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보다 훨씬 오래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우재'라는 인물을 통해 더 이상 발군의 기술을 발휘하던 존재가 아니라 자기 동일성을 완전히 상실한, 경계를 멀찌감치 벗어난 존재에 대한 먹먹함을 읽게하는 단편  「눈빛이 없어」와,  1980년 5월 20일 오후 2시 반경으로 시작되는 광주민주화 항쟁을 군사폭력으로 진압하려는 치욕의 현장을 배경으로 종합병원 간호사인 정혜의 시선을 통해 미소지니(misogyny: 反여성적 편견, 여성 혐오)의 끈질긴 생명력을 얘기하는  「너를 따라가면」은 사람을 사람으로써 대우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거듭거듭 되뇌게 한다. 

 

Ⅴ. 

그런데 표제작인  「다른 세계에서도」는 어쩌면 카프카의 작품에 대한 카뮈식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소모적인 쟁점들을 봉합하고자 하는 충동을 피하고자 했다."는 해석처럼 작품을 몇 차례고 다시 읽게 만드는 소설이라 하여야겠다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하도록 고무하는 그런 작품이라고. 낙태죄 폐지를 위한 형법조항 위헌판결을 위한 의사들의 모임을 축으로 하여, 임신과 임신중지에 대한 '교차성'에 입각한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한 논의의 변(辯)은  "낙태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죄 폐지에 동의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호락호락한 납득을 허용하지 않는다. 종합병원 산부인과 전공의인 소설의 화자인 정지수 만큼이나 이러한 수사법은 몹시 불편하다. 여론 환기를 위한 방편의 문장 표현인데, 진실을 임시방편으로 은폐한 느낌으로 정말의 이해에 담겨야하는 의미를 포기한 듯한 인상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이 되어야 할 것을 헌재 결정의 영향력을 위해 방어적이고 고심하여 정치적 수사화하는 것과는 달리 타자성에 대한 몰이해로 비치는 정지수의 말들이 주는 불편이 있다. 이를테면 "초음파상 배아 영상을 태아처럼 '상징화'해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치게 관습적인 재현이다!(52쪽)", 혹은 " 임신중지가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로 가정된다면 우리의 주체성은 지워 질것이며..(63쪽)." 에서 드러나는 일반화, 규범화의 논리가 주는 모순적 주장 때문이다.  '관습적 재현'은 주체의 규범성이 지닌 편협성을 비판하는 것인데,  '생명'에 대한 경계를 14주라는 인위성으로 구분하는 것만큼 강력한 규범성이 없을 것이다.  어떤 임산부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배아의 사진을 보고 '내 아가'라고 재현하는 것이 과연 관습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오히려 타자와의 교감, 주체 유연성의 표현으로 파악될 수는 없는 것인가? 또한 고통수반 행위로 가정되어 주체성이 지워지는 것은 나쁜 것인가? 주체성이 일종의 허심(虛心)이 되는 것은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필요 조건이 아닌가? 내겐 타자 배제의 논리가 개입된 주장으로 여겨진다.

 

한편 롤 모델이자 사랑하는 대상인 김희진에 대한  "단 둘이 보면 그 짧은 시간이 내게 더 없이 소중했기 때문이었음을, (...) 좋아했지만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감정이 걷잡을 수 없어질까...(63쪽)"라는 정지수의 감정이 표현되고 있는 문장이 있는데, 이 역시 자기 규범성, 제약성과 같은 주체의 단일성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보여, "전문직을 토템처럼 맹신하는" 엄마에 대한 비난을 토로하는 지수와 동일인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사실 이러한 의혹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당신이 없는 그곳에서도 (...) 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에서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동생 해수의 배 안에 자리 잡은 아기인 '당신'에 대한 일방 통행식 선언 같기만 해서 해석되지 않음에 머물게 된다. 아마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몇 차례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오기를 발동시키는 이 작품은 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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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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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는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분이신 이현석 작가님의 첫 번째 단편집이자, 표제작인 다른 세계에서도를 비롯한 여덟 개의 작품이 담겨 있는 소설집입니다. 사실 단편집이 가지고 있는 특성상 그 책에 실려 있는 모든 작품들이 다 좋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 책에 실려 있던 여덟 편의 소설들 모두가 그 색깔이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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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는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분이신 이현석 작가님의 첫 번째 단편집이자, 표제작인 다른 세계에서도를 비롯한 여덟 개의 작품이 담겨 있는 소설집입니다. 사실 단편집이 가지고 있는 특성상 그 책에 실려 있는 모든 작품들이 다 좋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 책에 실려 있던 여덟 편의 소설들 모두가 그 색깔이 완전히 달랐던 것은 물론 하나같이 독자들을 놀라게 (혹은 불편하게도) 만들었다 보니 정말 한 작품도 빠짐없이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이 책에 실려 있는 여덟 편 모두 그 안에 담긴 메시지 자체가 워낙에 강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는 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수록작이자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했던 다른 세계에서도 속 이야기가 그 여운을 가장 진하게 남겼던 것 같습니다.

r*********s 2023.07.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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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 않은 세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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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스타일을 알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라이파이와 부태복, 참이 좋았다. 눈빛이 없어, 너를 따라가면, 컨프론테이션은 비교적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른 세계에서도는 다시 읽으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왜 그렇게까지 좋아했을까 의문은 들었다. 그때같은 느낌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상작품집의 작가노트를 읽으며 더 많은 생각을 해서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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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스타일을 알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라이파이와 부태복, 참이 좋았다. 눈빛이 없어, 너를 따라가면, 컨프론테이션은 비교적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른 세계에서도는 다시 읽으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왜 그렇게까지 좋아했을까 의문은 들었다. 그때같은 느낌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상작품집의 작가노트를 읽으며 더 많은 생각을 해서인 것 같다.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는 재독의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첫 수록작인만큼,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작가의 스타일에 적응하는 데에 머리를 기울인 감이 있다.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주제)는 알 수 있었고, 어렵지는 않았다. 따로 문장으로 감상을 남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뒤에 작가의 참고한 글과 덧붙이는 말들, 발문, 표지의 추천사까지 읽었다. 얼핏 여기저기서 착안을 했다면 상상해낸 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이 또한 스타일인가 싶다. 또한 그만큼 자료를 고르고 소설로 만들기까지 정말 많이 읽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추해보건대 주제와 소재가 선택되면, 관련된 문헌과 서적들을 읽고 읽으며 하나씩 소설을 구상하고 맞춰가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이 무거운 느낌이었다. 어둡다는 말이 아니라 깊이가 있어 보였다. 이 요인 중 하나는 전문적인 배경과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 시대 배경이나 문제의 무게가 아닐까 한다. 작가는 처음 퇴고한 글을 투고하여 등단을 했다고 했는데, 그 재능이 부러웠으나 곧바로 그만큼 치열하게 쓰는구나 했다. 그런 느낌이었다. 자료조사나, 전문적인 책이나 논문에서 모티브를 얻는 것이나. 그 역시 상상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소설집이 나온다는 것을 보자마자 예약구매를 했고, 사인본을 받았다. 표지가 어울린다. 다 읽었는데, 다음 소설집이 나오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은 기다려야 할 텐데, 다음 책이 읽고 싶다. 오랜만에 읽어본 무거운 느낌이 드는 소설들과 작가였다. 항상 세부적임을 다루는 것, 미학적인 소설들을 읽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굵직한 질문들을 던지는 소설집인데 생각보다 큰 질문들이다. 깊이가 놀랍기도 하다. 내가 보지 않고 있던 새로운 스타일을 접한 것 같아서 새롭다.

 

YES마니아 : 로얄 d*******0 2021.02.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