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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교회에서 길을 찾다
대구 ㅅ천지로 인해 나라가 발칵 뒤집힌적이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은 오직 예수와 복음이라는 진리를 왜곡한 ㅅ천지의 교리속에서 세뇌되어 자신들만의 소속감속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분위기속에서 ㅅ천지만이 진리이고 세상에서 소속감이 있어야 할 공간을 ㅅ천지로 채우는데 만족하며 안타까운 젊은 시간들을 보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교회도 홍역을 치루었다. 여기서 예수님을 정말 믿는 것이 무엇이고 교회가 무엇인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이 책은 1세기 가정교회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교회의 모습과 성경속 예배와 믿음에 대해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들이 이 도서에 있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도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안희열 저자는 신학 석사(Th.M.)와 철학 박사(Ph.D.)를 졸업하고 여러 경력과 여러권의 책을 낸 인물이다. 저자는 신약교회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지금 교회의 회복을 말해주어 여기에 고민이 많았던 교회들에게 길을 안내해준다. 또한 우리가 전도, 즉 선교에 대한 방향성과 해석들을 남겨주어 기독교의 중요한 선교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게 된다.
예수는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려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려냈는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다. 이제 교회는 신실한 교회로 서야 한다. 어떤 조직과 제도가 예수가 이루신 사역을 방해할 수 없음을 말한다. 한국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교회가 건물이 아님을 세상에게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저 천국만을 바라보고 세상과 등지는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기독교인들은 주로 잘 뭉친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수가 세상속으로 들어갔듯이 기독교인들도 세상속으로 들어가 함께 해야 한다.
1세기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예수의 정신은 차별없이 주는 복음과 피부색깔과 상관없이 여성들이나 약한자 모두가 한가족이 것이 예수의 정신이다. 저자는 신약 교회 선교 정신을 회복하게 해주어 교회들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접근하여 바로 보게 해주고 바로 걸어가도록 인도해준다. 이 책은 모든 한국교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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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의 역사의 발자취가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예배의 형태와 예전에 대한 방법,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뛰어넘는 구성원들의 이야기 등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교회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조개가 진주를 품고 있는 것 같다. 현재 한국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큰 어려움과 위기 상황 가운데에 봉착했다. 마치 난파된 배와 같은 상황 가운데에 놓인 것이다. 이런 한국 교회를 향해서 저자는 우리의 시선을 ‘성경’으로 향하도록 인도한다. 즉 신약시대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서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제시해 주고 있다. 당시 교회는 로마의 엄청난 박해와 무서운 전염으로 인해서 큰 어려움과 위기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교회는 영혼을 세웠다. 즉 한 영혼이 또 다른 영혼을 살렸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한 마리 양을 찾으신 후 어깨에 업으신 모습과 같다. 오히려 당시 교회는 위기 속에 더욱 빛났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본 저서가 제시해 주고 있는 1세기 가정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교회의 의미와 사역의 방향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 회복해야 한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세 부분으로 제시해 주었다. 하지만 저는 두 부분으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교회에 대한 성경적 의미이다. 그들은 교회의 외형적 모습보다는 영혼을 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하며 그 분의 신부로서 거룩한 삶을 강조하였다. 결국 그들은 부름 받은 곳에서 믿음의 진정성이라는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영혼이라는 귀한 열매를 맺었다(p.15). 둘째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를 통해서 세워진 교회의 의미와 사역의 방향성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으로 고린도교회를 설명한다면 분열의 아이콘이었다. 또한 로마교회는 다인종, 다문화, 노예와 여성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였다. 이곳에서 장사꾼부터 시작으로 중상류층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개종하는 놀라운 역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엄청난 박해와 위협을 당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과 그 신앙의 담은 성도의 공동체로서 본질을 부름 받은 삶의 자리에서 잘 보여주었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들을 토대로 저자는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목회분야, 선교분야, 적용분야, 자료 분야 등 총 4가지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예루살렘교회를 시작으로 로마교회에 이르기까지 당시 1세기 가정교회들에 대해서 성경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치밀하게 분석해 놓았다. 또한 저자는 당시 가옥의 구조, 인구통계, 사회의 흐름 등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이 시기의 집은 아파트형의 인슐라가 아니라, 단독주택형 도머스를 의미한다. 도머스는 가정교회로 제공한 집주인의 경우 식당이 넉넉했다. … 150년까지 그리스도인 수는 서서히 증가해 약 4만 명에 이르러, 로마제국 전체 인구 중 0.07퍼센트를 차지했다(p.25). 가정교회에서 집주인의 자발적인 섬김, 낮아짐, 자기 비움은 참여한 모든 이들을 춤추게 만들었다(p.72). 이와 같이 당시 여성에게 가정교회는 교육, 소통, 사회봉사, 선교의 중심지였다(p.73). 이와 같은 모습이 현재 코로나19로 힘들어 하는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당시 교회에서 드려진 예배와 예배를 위해서 자신의 집을 헌신한 집주인의 모습과 여성들의 왕성한 활동에 대해서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다. 저자는 성경을 통해서 이 부분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이 외에도 사진, 지도, 그림, 도포 등을 통해서 선교 이야기를 이해하는 도움을 준다. 또한 각 장마다 끝부분에 ‘다함께 생각하기’ 코너를 통해서 해당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물론 스터디 교재로도 안성맞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신약교회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놓았다. 현재 1세기 신약교회의 정신을 회복코자 하는 목회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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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교회가 세워지는 기록과 함께 “기쁨이 충만하더라”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초대교회는 누가 뭐라해도 행복한 교회 었고 능력있는 교회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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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가정교회'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는데 '가정교회'가 얼마나 위대한 교회인지, 그리고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경험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 인슐라와 도머스 - 로마에는 크게 2가지 주거형태가 존재한다. 인슐라와 도머스다. 인슐라: 오늘 날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며, 처음에는 남녀가 같이 목욕을 하는 공간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란하기도 하며, 가정교회의 역할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화재와 전염병에 취약하다.
도머스: 가정교회는 도머스에서부터 시작되어졌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형태이며 예배 및 애찬식 등 성도의 교제가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 사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져봤다. 나중에 개척은 집에서 해야겠다. 그리고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이사가면 좀 어떨까? 왜냐하면, 성도들이 모이고 자유롭게 교제하기 위해서는 밑에 집, 윗집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교제하고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도머스와 같이 넓은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때 당시 도머스는 그래도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살 수 있는 집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물질에 여유를 허락해주시면 집을 오픈해서 교회로 사용하는 것도 너무너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도 교회당이 커지고, 교회의 건물을 짓고 있는데,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가정교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가정교회의 모습을 본받아야 하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대그룹이 아닌 소그룹이 모이는 형태에는 가정교회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2. 교회의 위기 AD313년 이전에는 '가정'에서 이루어졌으며, 소수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선교가 이루어졌으며 교회다움이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변질되기 시작한 것은 313년 이후라고 생각한다. 교회에 1)번영주의가 들어오게 되었고, 2) 감독에게 강력한 권한이 생겼으며, 3) 교회는 사유화 되기 시작했고 4) 조직화되면서 권력화가 되었다. 5) 수평적인 구조는 어려워졌으며, 6) 사람중심이 아닌 건물중심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기독교의 타락은 313년부터 시작되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이 책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여기서 지적한 6가지의 문제점을 우리가 고치려고 노력하면 오늘 날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강한 교회를 꿈꾸지만, 기존의 교회에서 바뀌지 않는다면 교회는 여전히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은 바뀌면 안되지만, 본질이 아닌 것은 바뀔 수 있어야 하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해서 잘못된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6가지의 문제점을 보면서 한국교회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를 생각했을때에 모든 것이 해당되었다.. 3. out-in / in-out 유대인은 out-in을 추구했다. 사람들이 회당으로 와서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충전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어떻게 보면 수동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유대인의 방법이 통할까? 통하지만 앞으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번 코로나로 인해서 온라인예배와 사역들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더군다나 교회에 오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앞으로 코로나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 코로나로 인해서 많이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날 유대인의 관점에서 out-in의 효과는 점점 더 약화될 것이다. 반면 바울은 in-out을 추구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세상으로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앞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온라인으로 찾아가든지, 현장으로 찾아가든지 하는 형태로 선교와 전도의 형태를 바꿔야 할 것이다.
4.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한 자매 - 가정교회의 모습을 이 때 당시 보면 빈부귀천에 상관 없이 주 안에서 한 형제로 묶였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때 당시 '도머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위가 꽤 높은 사람이었으며, 물질적으로부요했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였다고 한다면 사실, 가난한 사람들도 오고, 몸 불편한 사람들도 오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주 안에서 한 형제요 한 자매가 된다. 심지어는 이 때 당시 종과 노예는 아주 천민이었고, 물품처럼 여겨지던 시대였지만 종이든 노예든 주 안에서 한 형제요 한 자매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오늘날 교회는 문턱이 너무 높아져버렸고, 교회 안에서도 서로 차별을 하는 모습이 있다.직분자는 직분자 아닌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교회 안에도 계급으로 인해서교회도 권력화되었으며 함께하는 사람들 역시 말은 주 안에서 자매요 형제라고 하지만, 가족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말 가정교회의 장점을 이 책에서 많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정교회의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정교회의 놀라운 점이 참 많다.
5. 높고 큰 교회보다는 작지만 넓은 교회
이 그림을 보면서 오늘날의 교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오늘 날 의 교회는 높고 큰 교회가 꼭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대형교회, 대형교회 예배당이 과연 필요한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그림이었다. 높고 큰 교회보다 교회가 없는 곳이 없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에 맞춰서 평신도 지도자가 잘 세워지고 가정에서 함께 모여, 혹 가정이 아니더라도 자그마한 공간이라도 함께 모일 수 있으며 예배드릴 수 있는 곳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점 - 가정교회에 대해서, 신약교회의 정신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가정교회는 가정에서 모이는 소그룹의 교회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신약성경을 통해서 살펴본 가정교회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역사적으로 가정교회가 어떻게 모였고, 어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참으로 은혜가 되면서 앞으로의 목회 사역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중에 개척을 하게 되면 꼭 가정에서 먼저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 아니라면 작은 공간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점점 공간을 늘려가고 싶기도 하고, 심지어 공간을 늘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가정교회를 하기 위해서는 전임목회가 아닌 바울과 같은 텐트메이커가 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중직을 한다면 어떠한 직업으로 이중직을 준비해야 할까도 생각해본다.
앞으로 목회의 현장은 많이 바뀔 것이다. 많이 바뀌는 가운데에서도 본질적으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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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교회에서 길을 찾다"
팬데믹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의 위기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위기 상황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이고, 코로나로 인해 가속화 되었을 뿐입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현 상황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진단이 맞는다면 위기는 위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갱신될 새로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올해 들어서 청년들에게 사도행전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박해와 고난 가운데 어떻게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생겨났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교회의 본질과 진실한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안희열 교수님 역시 성경에 답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1세기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웠던 가정교회, 바로 신약교회 정신에 입각한 가정교회에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기독교 초기에 로마의 핍박과 전염병으로 고난을 겪었던 교회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후 313년 공인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이 가정교회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전염병과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안티 기독교 정서를 극복하기 위해서 교회가 회복해야 할 정신은 바로 신약교회의 정신인 가정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회당이 아닌 집이다. 교회는 바로 집에서 시작되었다. ‘에클레시아’라는 속 뜻은 건물이 아닌 모임을 의미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지체들이 서로 연합해서 ‘덕’을 세워야 했는데, 이일은 그의 제자들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p.64)
이 책은 어려움에 처한 한국 교회로 하여금 1세기 가정교회의 선교 정신 세 가지를 발견해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첫째, 교회의 성경적 DNA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말하지 ‘건물’이 아닙니다. 바울이 세웠던 교회의 본질적 의미는 하나님께 부름 받은 백성들의 정기적인 모임을 의미합니다. 둘째, 원형교회의 선교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원형교회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를 말합니다. 1세기에 세워진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고린도교회, 로마교회 등에서 선교정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신약교회의 선교정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삶으로 보여준 신약교회는 이교들도 춤추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한국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가정교회 사역을 통해서 귀한 열매를 맺고 있는 휴스턴 서울교회와 카자흐스탄 살렘교회의 사례를 통해서 신약 교회의 정신이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각 장마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사진, 지도, 도표 등은 신약교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가정교회 사역을 준비하는 분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본질 회복을 위해 고민하는 목회자와 리더 및 성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바울교회에서길을찾다 #두란노 #안희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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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초대 가정교회의 그림을 가장 명확하게 그려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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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위기, 1세기 가정교회 선교 정신에서 답을 찾다. 누구든지 지금의 한국교회가 위기 속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그에 대한 해답 역시 다방면에서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이 인문학적, 사회학적 통찰을 가지고 교회의 상처에 어슴푸레 응급처치했을 뿐이지,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본서는 성경에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찾아낸다. 지루하고 반복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초대교회의 면모를 꼼꼼히 반복해가는데 오직 신약성경의 진술에 의존하여 그리한다. 지름길을 찾아내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돌아가더라도 바른 길을 가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본서는 그런 면에서 꽤 충실하다. 교회의 문제를 단순히 지적하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나의 아픔으로 여겨 함께 고난의 역경을 거쳐 결국 밝아올 소망의 날을 기대하는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익숙한 명제를 깊이 이해하기 교회는 교회당이 아니고 어떤 제도도 아니며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명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실책을 범하는가? 특히 코로나-19의 펜데믹을 거치면서 우리의 영적 실력이 드러난 상황에서 더욱 그렇지 않은가? 익숙하게 예배드리던 공간이 삭제된 상황에서 우리의 영성은 어느 정도로 유지되는가? 1세기 가정교회는 "솔선수범해서 전염병으로 고통 당하는 이웃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돌보는 데 앞장섰다(30쪽)"는 기록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영성(예배)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전염병 상황에서 응당 가져야할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비록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측면에서 대면예배의 중요성 역시 간과할 수 없지만, 우리는 너무 건물로서의 교회 안으로의 회집에 집중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본령을 놓지 말기 신약 교회의 네 가지 정신 (87쪽) ① 원형 교회를 세우는 것 ② 애찬식(주의 만찬식)이 있는 천국 잔치를 여는 것 ③ 평신도에게 사역을 나눠 주는 것 ④ 영혼 구령하여 제자를 만드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전의 교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지시하시고 그 제자들이 세운 교회의 본래 모습을 찾는 노력에 천착해야 한다. 우리는 갈 길 없이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의 답을 찾아내도록 몰아세워진 존재들이 아니라, 교회의 원형을 이미 갖고 있기에 "회복"의 요구를 받는 공동체이다. 또한 할례나 안식법 등의 민족적 규례를 앞세우지 않고 선교적 목적으로 이방인과 '식탁 교제'를 가능케 한 예루살렘 교회의 자유를 보라. 유대적 표지에 목숨을 내거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가정(도머스) 안으로 차별없이 모두를 들어오게 허용하는 넓은 품이 원형교회의 것이었다. 한편, 초대교회는 빌립, 아굴라와 브리스가, 루디아, 빌레몬, 뵈뵈와 같은 평신도 리더들이 넘쳐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국가교회 안에서의 개혁이라는 반쪽자리 개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을 추구하며 평신도들에게로 사역의 본질을 공유하였다. 한국교회 역시 그러고 있는가? 어쩌면 어디선가 신학을 하지 않는 선교단체 간사들을 향한 고압적 자세가 여전한 것들이, 우리의 일종의 사역적 기득권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28:19-20의 지상명령을 되새기며 영혼 구령과 제자화에 목숨을 거는 일이 교회의 본령이다. 단순한 교인의 숫자를 늘리는데 집중된 사역은, 거룩한 사역을 가장한 세속화의 또다른 지표이리라. "양보다 질"이라는 격언이 어디에나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사역에는 분명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사역의 성공여부는-오직 주님만 아시지만-제자화의 정도이다. 최고의 샘플, 안디옥교회의 착한 선교 주목하기 안디옥교회는 다음의 네 가지를 통해 선교적 교회의 모델을 제시했다. 1) 꿈과 희망 제공 안디옥은 인구 밀도가 높고 전염병에 취약한 인슐라 구조를 가졌을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치안마저 너무 불안한 도시였다. 이러한 도시에 희생과 섬김으로 일종의 도시재생 사업의 선교적 전략을 성취한 것이 안디옥교회였다. 2) 집주인의 탁월한 사역 신앙심 좋은 집 주인이 자신의 집을 오픈해서 가정교회 예배 드리는 것이 얼마나 교회를 향해 얼마나 큰 기여인지 생각해보라. 더구나 그들이 예루살렘교회의 기근 때 구제 헌금을 보내는 일까지 감당했다. 3) 무명인 여성 리더들의 헌신 교회의 본령인 애찬식을 위해 많은 여성이 헌신했고, 손수 음식을 장만하고 아이들과 노약자들을 돌봄을 통해 가정교회를 풍성하게 한 것 역시 그들 여성이었다. 예를 들어,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의 아내들을 보라. 4) 자립 선교 제시 1세기 가정교회는 20-40명 정도 모이는 소규모 교회였다. 온갖 박해까지 난무했기 때문에 가정교회의 자립경영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폐쇄적인 회당과 달리 가정교회는 예수님의 자녀가 되면 집을 개방해 교회로 사용하는데 헌신적이었다. 제국마저 극복하는 다이내믹 선교 1) 우리는 하나다. ① 애찬식?② 주의 만찬식?③ 세례 2) 내려놓음으로 살아야 공동체가 산다. ① 자신의 영적 거만함을 조심하라?② 이단에 빠지지 말라 3) 거룩한 삶이 누룩처럼 번지게 하라. ① 목욕 문화: 혼탕 문화에 대한 거부?② 노예 문화: 노예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것을 거부?③ 결혼 문화: 이혼과 재혼이 흔한 문화 거부-'끝까지 서로 사랑하라' 4) 죽으면 죽으리라. "나는 주의 밀알이며, 그리스도의 정결한 양식이 되기 위해 맹수들의 아빨에 갈리는 것입니다." (이그나티우스) "순교자(폴리갑)는 그런 불길 한가운데서 타고 있는 육신이 아니라 구워지고 있는 빵처럼, 또는 화로에서 정련되고 있는 금이나 은과 같은 모습이었다." (235쪽) 두고두고 읽기 본서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는 바울 서신을 비롯해 신약 성경을 이해하는 보조수단으로 너무 탁월하다는 것이다. 바울과 1차독자 사이 주고 받았던 복음 안에서의 대화의 기록되지 않은 여백을 채우는데 충분히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당시 가옥구조, 로마시대 문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 등이 성경해석학적 유익을 준다. 두번째 장점은 현대적 조직경영의 차원이 아니라, 교회의 본령에 천착한 교회론 제시에 있다. 단순하게 "가정교회"라는 논쟁적인 명제에 집중하면 그 시야가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제시하는 성경적 기반 위의 교회는, 우리가 그동안 많이도 되내였지만, 실상은 놓치고 살았을지 모를 "초대교회"의 본래적 가치들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전통적 교회의 보수가 아니라, 선교적 교회, 초대교회, 성경적 교회를 회복하기를 원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