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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거울, [자치통감]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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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은 북송대의 사마광이 송 영종의 전폭적인 지지와 당대 최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쓴 역사서이다. 그는 주나라 위열왕이 3晉을 각각 제후로 임명한 기원전 403년부터 960년 후주(後周) 세종에 이르기까지 열여섯 나라, 1362년간의 역사를 총 294권에 담았다. 이 책의 역자인 신동준 선생은 완역을 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가 다룬 시기는 전국시대부터 진(晋)나라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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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은 북송대의 사마광이 송 영종의 전폭적인 지지와 당대 최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쓴 역사서이다. 그는 주나라 위열왕이 3晉을 각각 제후로 임명한 기원전 403년부터 960년 후주(後周) 세종에 이르기까지 열여섯 나라, 1362년간의 역사를 총 294권에 담았다. 이 책의 역자인 신동준 선생은 완역을 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가 다룬 시기는 전국시대부터 진(晋)나라 초기까지로 즉, 주기(周紀) 권1에서 진기(晋紀) 권3까지 81권을 역했다. 그중 이 책 1권은 주기 5권, 진기(秦紀) 3권에 이어 한기(漢紀) 5권까지 13권을 싣고 있으며, 그 기간은 기원전 403년부터 기원전 178년까지 225년간이다.

 

사마광은 48세였던 1066년부터 66세가 된 1084년까지 19년에 걸쳐 전국시대부터 송 건국 이전까지인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 편년체로 기술했다. 편년체는 사건을 시간대별로 추적해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역사서술방법으로, 이는 공자가 쓴 [춘추]에서 유래했다. 노나라의 역사가 좌구명은 경문으로 된 [춘추]를 해석하여 전(傳)을 달았으니 그 책이 바로 [춘추좌전]이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쓰면서 문체와 구성 등 모든 면에서 춘추시대를 다룬 [춘추좌전]을 본받았다. 아마 그래서 [자치통감]의 시작을 [춘추좌전]이 다루는 이후의 시대로 정하지 않았나 싶다. 사마광이 처음 전국시대부터 진나라 말기까지의 역사를 8권으로 묶어 통지(通志)라 이름 붙여 송 영종에게 올렸으나, 송 영종은 진나라 이후의 역사도 기록하라고 했다. 송 영종 사후 송 신종이 ‘치도의 자료를 두루 통할만한 역사의 거울인 사감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자치통감]이라는 서명(書名)을 하사하고 서문을 써주자, 사마광은 이후 자치통감의 저술에 매달렸다고 한다.

 

중국 역사서로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사마천의 [사기]와 사마광의 [자치통감] 그리고 남송 말기의 학자인 증선지의 [십팔사략]을 들 수가 있다. [사기]는 기전체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오제의 신화시대부터 한나라초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에 반해 [자치통감]은 전국시대부터 다루고 있으니 [사기]와는 전국시대가 중복되는 셈이다. 증선지의 [십팔사략]은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 중 18종의 정사를 선정하여 내용을 축약했다고 하나, 삼황오제부터 춘추전국시대까지는 [사기]에서, 그리고 송대 이전까지는 대부분 [자치통감]에서 발췌했고, 송원대의 역사만을 다른 정사에서 발췌했다고 한다. 그렇게 볼 때 [자치통감]이 왜 역사의 거울인 사감(史鑑)으로 불리고, 모택동이 17번이나 읽었는지를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 [자치통감 1]권에서 역자가 다루는 시기는 전국시대와 초한(楚漢)시대, 전한(前漢)시대의 초기이다. 전국시대에는 주기 5권과 진기 1,2권을 묶었고, 초한시대는 진기 3권과 한기 1,2,3권을, 그리고 전한시대는 한기 4권에서 26권까지이지만 이 책에서는 4권과 5권만을 소개하고 있다. 각 권은 [춘추]의 내용마냥 특별한 일이 없는 해는 간략하게 기록하고 넘어간다.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주 위열왕 23년, 즉 기원전 403년부터 시작한 것은 전국시대의 시작을 주 위열왕이 진(晉)나라의 대부 위사, 조적, 한건을 제후로 삼은 시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마광은 이를 두고 ‘비록 지양자가 무도했지만 진나라의 대부들이 자신들의 주군을 멸시하고 영토를 나누어가졌음에도 이들을 토벌하지 않고 총애하여 제후로 삼았다는 것은 명분과 예법이 여기서 끝이 났음’을 의미한다고 평한다. 이로써 천하 사람들이 단지 지략과 무력으로만 서로 다투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1부인 전국시대는 그렇게 시작된다. 전국7웅이 천하를 놓고 쟁패했던 이 시기의 역사는 우리가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고전들에서 접했던 내용들이 그대로 나온다. 물론 저자가 다르고, 글을 쓴 이유가 다르기에 관점은 다를 수 있지만 사건 자체에 대한 사실이 다른 것은 아니다. 특히 역자가 썼던 다른 책 [풍몽룡의 동주열국지 5권 전국시대]와는 내용면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자치통감]이 편년체 역사서인지라 한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해 그해의 사실만을 기록했기에 [동주열국지]마냥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사서인 까닭에 국가나 군주와 관계없는 개인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아 우리가 [동주열국지]를 포함한 다른 동양고전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기록되지 않기도 한다. 더욱이 전국시대 각 제후국들은 명목상으로 주 왕실에 매여 있기는 했지만 각기 서로 다른 정사(政事)인 이정(異政)을 펼친 까닭에 실제로는 주 왕실에 매어 있은 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자치통감]은 이들 제후국들의 역사를 주 왕실의 역사와 연계시켜 기록하고 있다. 전국시대 전 기간의 역사가 주기(周紀)로 통칭된 것이 그런 이유였다.

 

제2부 초한시대는 진시황이 죽고 2세황제 2년, 오현에서 기병한 항량이 진나라의 장함에게 죽임을 당하자 초 희왕이 제장들에게 먼저 관중으로 들어가는 자를 왕으로 삼겠다고 약속한 시점부터 한고제 유방이 천하를 재통일한 시점까지를 다룬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 [초한지]의 대부분과 시점과 내용이 일치한다. 다만 제1부 전국시대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편년체로 기록된 사서라는 점에서 우리가 읽는 [초한지]와 다를 뿐이다.

 

제3부 전한시대는 토사구팽의 유래가 된 한신과 팽월의 죽음, 한고제 유방사후 여후가 실권을 잡고 자신의 일족들로 봉왕하는 과정, 그리고 여후가 죽자 군신들이 여씨 일족을 도륙하고 유황을 옹립하는 시점까지를 다루고 있다. 유황이 바로 한 문제이다.

 

[자치통감]을 읽으면서 다른 사서와는 다른 한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주 위열왕이 3진을 제후로 삼은 내용을 평한 것처럼, 사마광은 곳곳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자신의 관점에서 평을 하고 있다. 사마광이 평한 내용 중 몇 부분을 살펴보면 이렇다. 한비자가 한(韓)왕의 사자가 되어 진나라에 와서 천하의 합종지계를 깨뜨리는 계책을 진시황에게 제시한 것을 두고 사마광은 ‘한비자는 진나라를 위해 계책을 내면서 자신의 조국을 복멸케 할 생각으로 그 같은 주장을 펼쳤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만한 것’이라고 평한다. 또 유방을 도와 유방이 한고제로 즉위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장량이 한나라의 후손인 자신이 진나라에 원수를 갚았으니 되었다며 관직을 물러나 두문불출한 것을 두고서 사마광은 ‘공명을 자신과 무관한 외물처럼 보았고, 영광과 이익을 방기하고도 돌아보며 애석해하지 않음으로 현명하게 몸을 보전하는 명철보신을 행한 사람은 오직 장자방 한 사람 뿐이다’라고 평했다. 그런가하면 한신이 죽었을 때 사마광은 ‘고조가 한신을 배신한 것은 맞지만 한신 또한 시기를 틈타 이익을 취하려 하다 종족이 멸절되었다. 천하가 안정되어 있는데 반역을 도모했으니 이 또한 당연한 결과’라고 평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고전을 읽으면서 받아들였던 내용과는 다른 관점으로 보인다. 이는 사마광이 살았던 시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유학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시점에서 사마광 역시 유가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치통감]을 읽어가면서 사마광이 어떤 장면에서 어떤 평을 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맛을 주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이러한 중국역사서를 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하는 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지혜와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 또한 그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함을 느낀다. 분(分)과 합(合)이 교대로 나타나는 그들의 역사를 읽으면서 합을 위해 분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고 신영복 교수는 동양고전을 읽으면서 고민해야 할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바 있다. ‘고전 공부는 고전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과거를 기억하고, 또 어떤 과거를 망각할 것인가 하는 기억 투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사상사의 쟁점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고전들이란 오늘이라는 시대가 선택하고 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고전을 읽으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오늘이라는 시대가 선택한 관점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과연 오늘을 사는 우리가 선택하고자 하는 관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는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많은 생각을 해본다. 고인이 된 역자가 유작으로 펴낸 [자치통감 2]권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k*****1 2021.04.05. 신고 공감 2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사의 흐름을 통해 역사의 준엄함을 확인하다!
"중국사의 흐름을 통해 역사의 준엄함을 확인하다!" 내용보기
과거 동양에서는 <자치통감>을 제왕학의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주나라(BC 403)부터 후주시대(959)년까지 1362년의 역사를 매해의 사건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구성하여, 전체 294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송나라 신종이 명해서 사마광이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편찬한 책으로, 송나라 신종은 완성된 책에 <자치통감>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고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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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동양에서는 자치통감을 제왕학의 교과서라고 평가했다중국의 주나라(BC 403)부터 후주시대(959)년까지 1362년의 역사를 매해의 사건을 중심으로 편년체로 구성하여전체 294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송나라 신종이 명해서 사마광이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편찬한 책으로송나라 신종은 완성된 책에 자치통감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고 한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이란 다스림()에 도움()이 되고 역대를 통하여(거울()이 되는 책이란 뜻이라고 한다사마천의 사기와 더불어 동양의 대표적인 역사서라 할 수 있으며흔히 사기를 기전체의 대표로 꼽는다면 자치통감은 편년체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치통감에 주석을 달았던 호삼성(胡三省)은 이 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임금(황제)이 되어 자치통감을 모르면 정치를 잘 하려 해도 잘 다스릴 수 있는 근원을 알지 못하게 되며혼란스러움을 싫어하면서도 그런 혼란을 막는 방법을 알지 못할 것이다또한 신하된 자가 자치통감을 알지 못하면 위로는 임금(황제)을 섬길 줄 모르고 아래로는 백성(신민)을 다스릴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위정자들에게 자치통감을 필독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전체 내용을 독파한 사람은 매우 드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위정자들도 자치통감의 독서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지만방대한 규모로 출판할 수 없다는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그 요약본에 해당하는 자치통감강목> 등의 내용만 접해 읽었다고 한다하지만 원본이 지닌 내용을 아무리 잘 요약한다고 해도 그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음은 물론이다예컨대 대하소설이 아닌그 요약본을 읽고 작품 전체를 읽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다그런 의미에서 자치통감을 번역하는 작업 역시 만만치 않는 시간과 공력을 필요로 할 터인데비록 완역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역자가 이를 착수하여 그 성과물의 일부를 출간한 일 자체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하겠다또한 어려운 용어를 그대로 노출하지 않고친절한 풀이를 덧붙여 주석을 최소화한 형태라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역자는 완역을 하지 못하고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결국 역자의 자치통감> 번역은 미완으로 남을 것이다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지침이 되거나 자극을 주어새로운 번역으로 이끌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원문과 번역을 함께 제시하여 84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1권은 전국시대초한시대’ 그리고 전한시대의 일부까지로 구성되어 있다그동안 맹자나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서 알았던 내용들이 적지 않아읽는데 큰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다오히려 편년체로 기록된 내용을 통해서 당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겠다아울러 대체로 집권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역사를 통해서 권력의 유한함’ 혹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등 역사의 격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예컨대 다양한 세력이 맞설 때에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의 문제를 제기했던 전국시대의 합종론이나 연횡론이 진나라가 통일했을 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자신했던 진시황의 거대한 포부나 영원한 삶을 추구하고자 불사약을 탐했던 시도도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오히려 자신과 주위에서 일어난 불의와 부패로 인해 나라가 망하는 허망한 결과만을 도출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서초패왕 항우와 맞서며 생존하기에 힘썼던 섰던 한고제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지마자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을 보필했던 장수들을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하나씩 제거했던 것도 비정한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도취되는 위정자들의 행태는 결코 좋은 결과로 귀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차니)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바탕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23.09.12. 신고 공감 1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치통감(資治通鑑) 1 - 사마광(저), 신동준(역주)
"자치통감(資治通鑑) 1 - 사마광(저), 신동준(역주)" 내용보기
삼국지를 읽다보면 가장 아쉬운 대목 중 하나는 바로 오장원에서의 제갈량의 죽음이다. 그의 경쟁자였던 사마의가 천수를 누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갈량의 죽음은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인간사랑에서 출간한 [자치통감]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최웅 교수의 '조물주의 시기를 받음인가!'라는 표현으로 신동준 선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
"자치통감(資治通鑑) 1 - 사마광(저), 신동준(역주)" 내용보기


 삼국지를 읽다보면 가장 아쉬운 대목 중 하나는 바로 오장원에서의 제갈량의 죽음이다. 그의 경쟁자였던 사마의가 천수를 누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갈량의 죽음은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인간사랑에서 출간한 [자치통감]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최웅 교수의 '조물주의 시기를 받음인가!'라는 표현으로 신동준 선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동안 수많은 인문 고전을 번역하던 그가 바로 [자치통감]의 번역을 진행하던 도중 그것을 끝마치지 못하고 2년전에 별세를 하였기 때문이다. [자치통감]은 1065년부터 1084년에 걸쳐 북송의 사마광이 주나라 위열왕이 3진(晉)을 각각 제후로 인정한 BC 403년부터 960년 후주 세종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 편년체로 편찬한 역사서이다. 송태조 조광윤이 후주 세종의 휘하에서 장수로 복무하다가 세종의 죽음과 함께 송을 건국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마광은 주나라가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시점부터 송나라 이전의 모든 역사를 [자치통감]으로 기록한 셈이다. 

 주기(周紀) 5권, 진기(秦紀) 3권, 한기(漢紀) 60권, 위기(魏紀) 10권, 진기(晉紀) 40권

 송기(宋紀) 16권, 제기(齊紀) 10권, 양기(梁紀) 22권, 진기(陣紀) 10권, 수기(隨紀) 8권

 당기(唐紀) 81권, 후량기(後梁紀) 6권, 후당기(後唐紀) 8권, 후진기(後晉紀) 6권

 후한기(後漢紀) 4권, 후주기(後周紀) 5권

 

 위와같이 열여섯 나라의 역사를 총 294권으로 담고 있으니 [자치통감]의 방대한 분량은 가히 짐작할만하다. 이로 인하여 시중에서 [자치통감]의 완역본을 만나보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신동준 선생이 [자치통감]을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무척 설레였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사마광과 그의 [자치통감]은 짧게 언급된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서를 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자치통감]을 접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동준 선생의 번역은 사마염이 조위(曹魏)로부터 선양받아 결국 중국을 통일하고 진(晉)을 건국한 시기까지만 다루고 있다. 이후 5호 16국, 5대 10국에 관한 부분을 만나볼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쉽지만, 그래도 편년체 역사서로서 해당 시기까지의 중국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보통 중국의 사서라고 하면 사마천의 [사기(史記)]인데 이는 기전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인물 중심으로 생생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사를 시대순으로 살펴보고자 한다면 엄정한 사가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치밀하게 기술해 놓은 [자치통감]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면서 홀로 [사기(史記)]를 쓴 것과는 달리 사마광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방대한 자료를 시대순으로 서술하였으니 그 내용의 풍부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인간사랑에서 출간한 [자치통감] 1권은 주위열왕 23년(BC 403)부터 한문제가 즉위한 시기(BC 178)를 다루고 있다.

 


주위열왕(周威烈王) 23년(BC 403)

1) 주위열왕이 제후국인 진(晉)나라의 대부 위사와 조적 및 한건 등 3인을 제후로 삼았다.

신(臣) 사마광은 평한다.

"천자의 직책 가운데 예를 준수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예를 지키는 데는 직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직분을 지키는 데는 직위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략) 따라서 삼진이 제후들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은 이들 삼진이 예를 버렸기 때문이 아니고, 주위열왕이 스스로 예의 질서를 무너뜨린 데 따른 것이다. 

 - p. 83 ~ 87 中에서 -


 [자치통감] 원문의 첫부분에 대한 이 책의 번역을 보면 이 사서가 편년체로서 어떻게 쓰여져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우선 3진(晉)으로 분열, 즉, 조(趙)·한(韓)·위(魏)의 등장이 BC 403년에 이루어졌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역사에서는 이 시기를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기점으로 평가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우리는 정확히 이 사건이 BC 403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그리 신경을 쓰지 못하였다. 진(晉)의 유력한 권신 중 하나인 지백이 다른 가문이었던 조(趙)를 치려다가 오히려 한(韓)·위(魏)가 조(趙)와 협력하여 강성한 지백을 죽이고 결국 진(晉)을 3분하게 되었다는 내용과 또 그 과정에서 지백에게 충성을 다한 협객 예양의 이야기로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이 사건을 야사 또는 기전체 형식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치통감]은 이 사건을 시간에 따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자치통감]이 편년체로 기록된 사서이긴 하지만, 해당 사건 또는 인물에 대한 사마광의 의견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는 점 역시 눈길을 끈다. 역사에서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과 또 그 사람이 속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사마광의 평 역시 그러한 점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진(晉)의 분열은 당시 약육강식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능력이 있는 세력이 새롭게 제후가 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사마광의 평가는 달랐다. 유교의 관점에서 평가가 이루어지니 반란을 일으킨 3 제후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으련만 가는 오히려 주 왕실이 그들의 모반을 인정함으로써 예의 질서를 무너뜨렸다고 평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의 질서와 충(忠)이라는 관점에서도 사뭇 다른 이러한 평가는 확실히 역사를 바라보는 그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의 관점을 잘 나타내는 것이기에 [자치통감]에 등장하는 사마광의 평가 역시 역사적인 서술과 함께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편년체의 특징은 시기별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내용을 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주(周)의 멸망이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역사서는 춘추전국시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종가였던 주(周) 왕실에 대한 부분은 유명무실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춘추오패라 불리우던 초나라 장왕이 주(周) 왕실의 보물인 '구정'이 무게를 물었다는 일화와 같이 짧막하게 등장하던 주(周)의 멸망은 어느 시점이었을까? 진(秦)이 6국을 차례로 멸망시키면서 통일되는 과정은 상세히 언급되지만 그 과정에서 사라진 주(周)의 역사는 사실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다행히 [자치통감]에서는 주기(周紀)로 편성하여 그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왕조의 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주난왕 59년(BC 256)

1) 주난왕이 크게 두려워한 나머지 제후들과 합종하여 진나라에 저항했다. 이때 주난왕은 천하의 정예군을 이끌고 이궐을 나와 진나라를 쳤다. 이로써 진나라가 양성으로 통과하지 못하게 됐다.

 진소양왕이 장군 규를 시켜 서주(西周)를 치게 했다. 주난왕이 진나라로 들어가 머리 숙여 청죄하고 36개 성읍과 백성 3만 명을 모두 바쳤다. 진나라가 이를 받아들이고 주난왕을 서주로 돌려보냈다. 서주로 돌아온 주난왕이 이 해에 죽자 주나라는 800여 년 만에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 p. 357 中에서 -


 

 비록 편년체의 서술이지만, [자치통감]은 오히려 그동안 마치 소설과 같은 중국의 역사가 실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역시 상당히 의미가 있다. 드라마틱한 유방과 항우의 '한초쟁패전'이 사마광의 서술에서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또 소설과 같은 그 내용들이 대부분 사서에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동준 선생은 서문에서 사마광이 한족 중심의 역사관에 입각하여 [자치통감]이 5호 16국이나 5대 10국을 주도 세력이었던 북방민족의 국가의 관점이 아닌 남쪽의 한족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하였지만, 이외의 부분들은 객관적인 사실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꼭 읽어봐야 함을 알 수 있다. 

 

 유방이 힘겹게 항우를 누르고 한고조로 개국에 성공을 하였지만,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에 걸맞는 것이었다. 가장 큰 공을 세운 한신은 물론 경포와 팽월을 비롯하여 유씨 성이 아닌 대부분의 제후국의 군주들을 죽였다는 점은 군주의 냉혹함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꼭 군주의 관점이 아니더라도 신하의 입장에서도 이 사례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사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서도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실제 이러한 사례는 훗날 중국의 역사에서 반복된다. 비록 송나라의 조광윤은 자신의 부하들을 잘 회유하여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면서 정계에서 은퇴시키는 방법을 구사하였지만, 명태조 주원장은 자신을 도와 큰 공을 세운 공신들을 대규모로 숙청하였으니 '토사구팽'의 역사가 반복된 것이다. 더구나 주원장은 중앙집권체제를 이룬 상황에서 제후국이 아닌 신하로 있던 공신들을 숙청하였다는 점에서 그 정도가 더욱 크다할 수 있다. 비록 그가 출중한 공신들이 조정에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를 어린 손자(건문제)에게 넘겨야 했기 때문에 단행한 것이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고 이는 오히려 건문제가 자신의 숙부인 연왕 주체(훗날 영락제)의 반란으로 죽음을 당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또한 유방이 죽은 다음 그의 아내인 여태후가 여씨 일족으로 조정을 장악한 점 역시 훗날 역사에서 그대로 되풀이 되었다. 바로 당나라의 측전무후가 그 사례라 할 수 있다. 여태후가 형식상 유씨 일족을 황제로 유지한 것과는 달리 측전무후는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더 지나친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역사는 분명 교훈을 주면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인간사람에서 출간한 [자치통감] 1권은 이렇게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한나라의 '문경치지'라 불리우던 문제의 치세가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동안 여러가지 책으로 이 시기의 역사를 살펴보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 인물들에 대한 열전이나 특정 사건에 대한 기록, 심지어 역사소설로 접하였기 때문에 [자치통감]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실 역사를 시대순으로 서술하는 것이 평범한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방대한 역사를 우선 시대의 흐름으로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방대한 역사의 원전을 보다 편하게 읽어볼 수 있게 한 역자의 공 역시 지나칠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남은 [자치통감]에 대한 기대와 그 번역이 완전히 마무리 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공존한다. 아마도 이 시리즈의 출간을 기다리면서 서문의 '미완의 완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이후 역사 서술에 대한 기대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g*******7 2021.04.24. 신고 공감 1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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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년체로 중국의 역사를 기술한 동양 고전의 보고/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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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청평악이 진행되었던 송 인종 시대, 그 즈음에 왕안석과 사마광 두 불세출의 기재는 거의 같은 시기에 조정에 출사한다. 그리고 처음은 비슷한 길을 걸었으나 신법이 시행되면서 차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왕안석은 신법의 중심인물로, 사마광은 구법당의 영수로 자리매김한다. 인종 때 송은 관료들과 북쪽 이민족들과의 다툼에서 재정적으로 무척 궁핍하게 된다. 그동안 흑자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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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청평악이 진행되었던 송 인종 시대, 그 즈음에 왕안석과 사마광 두 불세출의 기재는 거의 같은 시기에 조정에 출사한다. 그리고 처음은 비슷한 길을 걸었으나 신법이 시행되면서 차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왕안석은 신법의 중심인물로, 사마광은 구법당의 영수로 자리매김한다. 인종 때 송은 관료들과 북쪽 이민족들과의 다툼에서 재정적으로 무척 궁핍하게 된다. 그동안 흑자였던 나라 경제가 적자로 돌아가고, 필요 없는 인물들이 많은 녹을 받는 어려운 상황이 된다. 송 인종의 뒤를 이은 신종이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그리고 신법 시행의 수장으로 왕안석을 부른다. 이에 사마광은 권력다툼에서 밀리는 형세가 되어 지방에 내려가 기거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동안 추진해 오던 자치통감을 기록하게 된다. 물론 많은 서적과 도움을 받아서 정리를 하는 것이었기에 혼자의 역작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심인물로 활약하고 집대성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그의 역작으로 본다. 내용이 무척 깔끔하고 명료하다.

 

사마광은 1,400년에 달하는 왕조의 역사를 총 294권에 담았다. 기본적으로 춘추좌전의 춘추필법과 편년체의 체제를 고수하면서 기록하고 있다. 난세에는 난세의 치리가 따로 있다는 논리에 따라 춘추전국시대를 어느 나라를 중심으로 기술하지 않고 정사가 좋은 나라를 칭송하는 형태로 기술하고 있다. 즉 특정 시기만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방식을 버리고 전 기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을 가감 없이 고르게 다룬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사마광은 천자인 주위열왕이 하극상을 벌인 이들 역적들을 토벌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제후의 반열에 올려줌으로써 약육강식의 전국시대가 시작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통렬하면서도 명쾌한 사론이다. 사마광은 작은 일로 간주할 수 있는 이 사건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전국시대의 시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21세기 현재 대다수의 학자들이 전국시대의 시점을 주위열왕 23년으로 간주하는 것은 바로 사마광의 이런 논리를 추종한 결과다.

 

일의 추이에 다른 명쾌한 판단을 하고 그것을 사서에 담는 분명함을 보인다. 그러기에 후세의 사가들이 그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리라. 그는 근거가 부족한 것들은 사서에서 배제했다. 흔적이 뚜렷한 것,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모아서 정리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령 사기에 실린 상산사호, 항우의 해하가 등은 전설로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음에 버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객관성과 일반성을 담아 흐름을 기술해 나갔기에 뒤의 정치가들이 이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국공합작에서 우위로 돌아가 중국을 손아귀에 넣은 모택동도 자치통감을 늘 옆에 끼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역사는 현재의 스승이 되고, 자치통감을 그 역사의 근본으로 보는 것이다.

 

()나라 위열왕(威烈王)이 진()나라 3(:··趙氏)을 제후로 인정한 BC 403년부터 5(五代)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인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서 편찬한 것이다. 주기(周紀) 5, 진기(秦紀) 3, 한기(漢紀) 60, 위기(魏紀) 10, 진기(晉紀) 40, 송기(宋紀) 16, 제기(齊紀) 10, 양기(梁紀) 22, 진기(陳紀) 10, 수기(隋紀) 8, 당기(唐紀) 81, 후량기(後梁紀) 6, 후당기(後唐紀) 8, 후진기(後晉紀) 6, 후한기(後漢紀) 4, 후주기(後周紀) 5권 등 모두 16() 24권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사마 광이 먼저 마음을 내자 영종(英宗)이 편찬국(編纂局)을 개설하고 사마 광의 주재하에 유반(劉?)이 전 ·후한(前後漢), 유서(劉恕)가 삼국(三國)으로부터 남북조(南北朝)까지를, 범조우(范祖禹)가 당()나라 및 5대를 각각 분담하여 기술하였다. 즉 사마광이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저술한 책이라는 뜻이다. 거국적으로 통감의 편찬에 마음을 내게 되고 사마광이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 일에서 마음을 쓰지 않고 매달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치통감이라 함은 치도(治道)에 자료가 되고 역대를 통하여 거울이 된다는 뜻으로, 곧 역대 사실(史實)을 밝혀 정치의 규범으로 삼으며, 또한 왕조 흥망의 원인과 대의명분을 밝히려 한 데 그 뜻이 있었다. 후인들의 귀감이 되는 저서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많은 중국의 고서적을 번역해 보여주던 신동준 선생이 반역을 했던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쳤으리라 생각된다. 광범위한 지식이 늘 뇌리에 머물렀을 것이고, 사명감을 가지고 몰두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건강도 해쳤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 책을 번역하던 와중에 신동준 선생은 타계하셨다. 우리 동양 고전의 석학인 선생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이 되었다. 이 책은 유고집인 셈이다. 그 후 이어받은 사람에 의해 번역은 이어지고 결국 이렇게 책으로도 나오게 되었다. 사장될 뻔한 일을 그의 역작이 이렇게 다시 빛을 보게 되어 무척 기쁘다.

 

1권은 1부에서 3부로 이루어진다. 1부는 주기 전국시대가 개막하면서 이루어진다. 진나라가 동진하며 제자백가들의 활약상이 그려지고 합종, 연횡 등이 충돌하면서 결국 시황제 때 진나라가 통일한다. 시황제가 즉위하면서 진기로 넘어간다. 진나라는 지록위마한 조고를 비롯해 갑자기 왕권이 약화되고 만리장성을 짓는다고 애를 쓰면서 백성들을 곤경에 빠트린다. 그것은 결국 반란을 불러일으키고 진은 빠른 시간에 망한다. 한편 유방과 항우가 일어나 천하를 놓고 쟁패를 하게 되고 결국 유방에 의해 천하는 다시 통일된다. 유방이 뜻을 품기 시작하면서 한기가 그려진다. 유방에 의해서 통일된 한나라에 한신 등이 토사구팽을 당하고, 한의 나라가 통일된 국가를 갖춰 나간다. 3부에서는 전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외척 왕망이 정권을 잡고 신이라고 할 때까지를 전한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이 부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1년을 단위로 자세하게 풀어놓고 있는 편년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주위열왕이 3명의 대부를 제후로 삼으면서 시작된다. 그것은 주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주의 힘이 약화되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내용이 자세하게 그려지면서 저자의 사관에 따른 판단이 들어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가령

 

따라서 삼진이 제후들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은 이들 삼진이 예를 버렸기 때문이 아니고. 주 위열왕이 스스로 예의 질서를 무너뜨린 대 따른 것이다. 오호! 군신지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니, 천하 사람들이 단지 지략과 무력인 지력으로만 서로 다투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의 판단이 들어간 경우를 볼 수 있다. 사관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자세한 번역은 번역이거니와 원문도 그대로 담겨져 있다. 광대한 분량 잘도 반역해 중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감사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번역하다가 작고한 번역가 신동준 선생님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그분을 통해서 많은 동양의 고전을 읽을 수 있었음에다. 이 소중한 책도 그런 면에서 감사하면서 읽은 것이다.

 

인간사랑에서 지원받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j****3 2021.04.07. 신고 공감 1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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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 어느 고전번역가가 남긴 미완성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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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對 <사기>   11세기 북송(北宋)의 정치가 사마 광(司馬 光, 1019~1086)이 주체가 되어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은 여러 가치 측면에서 사마 천(司馬 遷, B.C. 145~86)의 <사기(史記)>와 대비되는 역사서이다.   첫째, <사기>가 기전체(紀傳體)의 사서를 대표한다면, <자치통감>은 편년체(編年體)의 사서를 대표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학계 일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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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對 <사기>

 

11세기 북송(北宋)의 정치가 사마 광(司馬 光, 1019~1086)이 주체가 되어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은 여러 가치 측면에서 사마 천(司馬 遷, B.C. 145~86)의 <사기(史記)>와 대비되는 역사서이다.

 

첫째, <사기>가 기전체(紀傳體)의 사서를 대표한다면, <자치통감>은 편년체(編年體)의 사서를 대표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학계 일각에서 <사기>를 ‘열혈문인 출신 사가가 지은 역사서’, <자치통감>을 ‘당대 최고의 정치가 출신 사가가 지은 역사서’로 평(評)” [p. 16]한다고 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사기>에 실린 ‘상산사호(商山四皓)’와 항우의 ‘해하가(垓下歌)’ 전설을 비롯해 북송 당시 변경(?京)의 와사(瓦肆)라고 불리는 공연장에서 강사(講史)가 나와 청중에게 과장되게 들려주며 미화된 ‘적벽대전(赤壁大戰)’ 대목 등을 전부 누락시킨 점을 들 수 있다.” [p. 19]

위의 사례 가운데 이 책, <자치통감 1>에서 다루는 전국 시대의 개막[B.C. 403]~ 전한(前漢) 문제(文帝) 2년[B.C. 178]에 해당하는 것을 살펴보면,

사기>에는 유방이 자신이 얻지 못한 은거 선비들인 상산사호가 태자를 따르는 것을 보고 태자를 바꾸는 것을 포기했다는 얘기가 실렸으나, <자치통감>에서는 “고황제는 폐태자(廢太子)하여 조왕을 태자로 세우고자 했으나 대신들이 다투어 반대하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p. 729]에 이어 어사대부(御史大夫) 주창(周昌)이 더듬거리며 반대한 일화를 실었다. 이는 사마 광은 고황제(高皇帝) 유방(劉邦)이 은거 선비 몇몇이 말린다고 뜻을 꺾었을 리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사기>[항우본기]에는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하구나! [力拔山兮氣蓋世]

시운이 불리하여 추(騶) 또한 나아가지 않는구나! [時不利兮騶不逝]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나! [騶不逝兮可奈何]

우(虞)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虞兮虞兮奈若何]라는 해하가(垓下歌)가 실려 있으나  <자치통감>에는 “슬픈 노래에 크게 의기가 북받쳐 비탄해하는 비가강개(悲歌慷慨)의 모습으로 뺨에 몇 줄기 눈물을 흘렸다.” [p. 663]이라고 기재되어 있을 뿐이다.

 

둘째, <사기>가 사마 천 개인의 노력으로 완성되었다면, <자치통감>은 각 분야의 전문가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완성되었다. 예를 들면, 전국(戰國)시대~한대(漢代)는 집현원(集賢院) 교리(校理) 유반(劉?), 삼국(三國)시대~남북조(南北朝)시대는 비서승(秘書丞) 유서(劉恕), 당대(唐代)~오대십국(五代十國)는 봉의랑(奉議郞) 범조우(范祖禹, 1041~1098)가 각각 맡아 정리했다. 게다가 북송의 영종(英宗)는 편찬국(編纂局)을 개설하여 지원하기까지 했다.

 

셋째, <사기>는 공자(孔子)의 저서로 알려진 <춘추(春秋)>가 포함된, 전설상의 오제(五帝) 시기부터 시작하지만, <자치통감>은 <춘추>이후의 시대인 전국시대가 시작하는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 23년[B.C. 403]부터 시작한다. 또한 <자치통감>은 <춘추>와 같은 편년체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자치통감>은 <사기>와 달리 <춘추>, 보다 정확히는 <춘추 좌전>의계승 의식에 입각해 서술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완의 번역, 그리고

 

자치통감>은 총 294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전근대(前近代) 시기에도 제대로 읽는 이가 드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내용을 축약한, 일종의 보급판도 많이 나왔다. 예를 들면, 50권으로 된 강지(江贄)의 <소미통감절요(少微通鑑節要, 이하 ‘통감절요’)>나 59권으로 된 주희(朱熹, 1130~1200)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이하 ‘통감강목’>, 42권으로 된 원추(袁樞)의 <통감기사본말(通鑑紀事本末)>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 <통감절요>나 <통감강목>이 원본인 <자치통감>과 달리 조선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주자(朱子)가 주석한 사서삼경(四書三經) 위주의 공부를 해야 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의 한계도 한 몫 했겠지만, 조선 후기의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자치통감>을 인쇄할 여력이 없었던 것도 상당히 작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번역은 한국 출판의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차대한 문제이다. 그런데도 번역이 홀대 받아 왔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같은 문제제기가 대부분 서구 출판문 번역에 국한되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 한문 고전 번역의 경우는 홀대가 아니라 아예 무시돼 왔다는 것이 보다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1)

 

이런 상황이니 <자치통감>이 완역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2010년 권중달 교수가 14년에 걸쳐 32권으로 완역하여 출판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한문 원문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각주와 용어 등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문맥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오역(誤譯)이 많다고 한다. 이에 저자가 완역에 도전했으나 1/3분량을 번역, 출간한 상태에서 별세하여 부득이 중단되었다. 여러 고전을 번역한 고인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자치통감> 번역본은 저자의 유작이라고 볼 수 있어, 아쉽고 안타깝다.

  

 

이 리뷰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 강철주, “읽을 만한 한문 고전 번역서가 없다 - ‘논어’ 논쟁을 통해서 본 고전의 번역 문제 -“, <문화예술> 2002. 11, p. 62

 

w******f 2021.04.03. 신고 공감 1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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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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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사마광/신동준 인간사랑/2021.3.30. sanbaram   중국의 역사가 길기 때문에 역사서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마천의 <사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역사를 비교적 간단히 정리한 <자치통감>이 예전부터 많이 읽혔다. <자치통감>의 저자 사마광은 송나라 진종 때 사람으로 20세 때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왕안석의 신법이 채택되자 관직을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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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사마광/신동준

인간사랑/2021.3.30.

sanbaram

 

중국의 역사가 길기 때문에 역사서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마천의 사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역사를 비교적 간단히 정리한 자치통감이 예전부터 많이 읽혔다. 자치통감의 저자 사마광은 송나라 진종 때 사람으로 20세 때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왕안석의 신법이 채택되자 관직을 사퇴한 뒤 자치통감저술에 몰두 했다. 그의 나이 48세 때인 1066년에 시작해 66세 때인 1084년에 마무리 했다. 역저자 신동준은 고전연구가이자 평론가로 삼국지 통치학>, <전국책>, <중국 문명의 기원>, <공자의 군자학>, <맹자론> <장자>, <한비자1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출간했다.

 

자치통감1065-1084년에 걸쳐 북송의 사마광이 책임자로서 주나라 위열왕이 3(, , )을 각각 제후로 인정한 BC403년부터 시작하여 960년 후주 세종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 편년체로 편찬한 역사서이다. 당대 최고의 정치가였던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통해 수신제가와 치국평천하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제왕과 신하들의 리더십인 이른바 군신공치의 리더십을 제시코자 노력했다. 검약과 겸양의 기풍 위에 부국강병의 실리와 예의염치의 명분을 공히 추구하는 국가가 바로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통해 구현코자 한 이상적인 치국평천하의 모델이었다고 역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끝까지 완역을 못하고 별세를 하게 되어 전한시대까지로 마무리 하게 되었다.

 

자치통감에 최초로 주석을 가한 호삼성이 자치통감의 요약본인 자치통감목의 요지 및 취지와 맥을 같이하고 있는 점이다. 약칭 통감강목으로 불린 자치통감목자치통감전체의 3분의 1가량으로 편년체인 자치통감과 달리 큰 제목인 강 밑에 목이 등장하는 이른바 강목체로 구성돼 있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강목체는 집필자의 주관이 지나치게 개입되고, 기록의 원문이 집필자에 의해 임의로 깎이거나 바뀌는 등의 단점이 있었다. 원래의 뜻이 뒤바뀌는 게 가장 큰 결점이었다. 주희가 통감강목을 출간할 당시 첨삭된 부분과 자의적인 편제가 너무 많아 커다란 비판을 받은 이유다. 주목할 것은 극단적인 명분론으로 치달은 이른바 조선성리학을 만들어낸 조선 사대부들의 행보이다. 이들은 원본에 해당하는 자치통감을 멀리한 채 오직 통감강목만을 중시하는 왜곡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한다.

 

자치통감의 시대구분에 대한 관점을 보면, 첫 번째로 한족중심의 중화관에 입각해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사기의 사마천을 비롯해 한서의 반고와 후한서의 범엽 등의 역대 사가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남북조시대의 주역이 북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조 위주로 편제를 한 게 대표적이다. 기존의 오호십육국 내지 위진남북조 등의 용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라고 한다. 진시황이 사상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하는 이 시기에 이뤄진 만큼 그 이전과 이후의 시기를 엄밀하게 나눌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자치통감은 그 이전과 이후의 시기를 하나로 뭉뚱그려 모두 권 7전기 2’에 묶어서 기술해 놓았다. 이것이 학계의 통설과 다른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원래 춘추는 공자가 쓴 것으로 알려진 춘추라는 사서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고 전국은 전한 말기 유향이 쓴 전국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춘추시대는 주유왕이 서융의 침공으로 도성인 호경 부근의 여산에서 죽고, 뒤를 이은 주평왕이 낙읍으로 천도한 기원전 770년부터 시작한다. <자치통감의 시대구분에 따를 경우 전국시대는 주 왕실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기원전 221년에 끝난다. 두 시기를 합치면 정확히 550년에 달한다. 사마천의 사기처럼 춘추전국시대를 동주시대와 동일시할 경우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적 특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객관적으로 볼 때 전국시대가 시작된 이후 주 왕실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춘추전국시대를 동주시대로 명명하는 관행이 지속됐다. <사기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춘추좌전은 제나라와 진나라 초나라, 진나라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춘추시대를 다루면서 결코 어느 특정 국가에 편중되어 기술하지 않았다. 비록 이적으로 비하된 초나라와 진나라일지라도 정사의 내용이 좋을 경우 이를 칭송한 게 그렇다. <자치통감춘추좌전의 이런 화이관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치통감 1>은 제1부 전국시대, 2부 초한시대, 3부 전한시대 등으로 이루어 졌다. 편년체이기 때문에 그 해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한 사정이 얽힌 방대한 역사를 년도에 맞춰 기술하다보니 그 한계가 드러났다. 호삼성이 사건의 추이에 따른 강목체로 내용을 3분의 1로 축소하여 자치통감목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편저자는 말한다. 어쨌든 중국의 역사를 비교적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책이 자치통감이다. 그렇기에 중국의 역사를 파악하는데 이 책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생각된다.

 

(예스24를 통해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달의 사락 k******4 2021.04.12. 신고 공감 1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자치통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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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資治通鑑  #십여년 전쯤, 비록 단권짜리였지만 흥미롭게 읽었던 정관정요, 궁형을 당해 쓰여진 사마천 등을 접한 뒤 얼마전 인간사랑 동양고전시리즈인 관자 상,하, 제자백가 상,하, 한비자 상,하 등과 이번에 자치통감1을 다시 접하게 돼 정신적 풍성함을 지울 수 가 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 독서도 잠깐이라도 공백기엔 항상 불확정성이 내포되기 마련이다. 특히 두께에 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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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資治通鑑 

#십여년 전쯤, 비록 단권짜리였지만 흥미롭게 읽었던 정관정요, 궁형을 당해 쓰여진 사마천 등을 접한 뒤 얼마전 인간사랑 동양고전시리즈인 관자 상,하, 제자백가 상,하, 한비자 상,하 등과 이번에 자치통감1을 다시 접하게 돼 정신적 풍성함을 지울 수 가 없다. 모든 일이 그렇듯 독서도 잠깐이라도 공백기엔 항상 불확정성이 내포되기 마련이다. 특히 두께에 압도당하는 고전은 10여page 진도만 이겨내면 금새 활자 마법에 빠지는데 사실은 그게 어렵다. 하지만 아는 사람만 알듯 고 신동준 작가님의 고전 시리즈는 활자와 활자, 행간과 행간 사이에 마음편한 사람이 속삭이듯 이어지는 평안함, 간결하면서 쉬운 현대적 본문 해설과 유려한 주해 이해 등이 존재하기에 누구든 고전의 새로운 재발견이 깃든 활자의 마법공감에 자기도 모르게 읽어나가게 되는듯 하다.

 

“천지 간에 없어서는 안되는 不可無불가무의 책이 자치통감이고,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읽지않으면 안되는 不可不讀불가부독의 책이 바로 자치통감이다.” 본문중에

 

#안타까운 것은 조선조5대임금 문종이 그랬듯, 한국근대문학 소설가 이상이 그랬듯, 공자의 애제자 안회가 그랬듯, 오의 장수 주유가 그랬듯이 누가 운명을 이기랴. 길고 긴 어학한문전문 태동고전학원과 춘추좌전,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박사를 한 서울대까지의 학습기간에비해 왕성한 활동을 이여오던 신동준 선생의 평균수명에도 짧기만한 이른 타계가 진정 더 없이 깊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번에 펼친 #자치통감주나라 위열왕 23년 기원전 403년 전국시대 ~ 삼국시대, 남북조시대, 오대십국 혼란기 후주 현덕6년 595년, 총 1362년간의 16개왕조 294권의 명칭처럼 결과적으로 집중조명한 난세시기를 약 3/1 정도만 집필을 마친상태로 인간사랑 출판부의 노력이 깃든 출간이여서 접하는 이들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올듯 하다. 아다시피 원래 통지였던 자치통감의 원형은 춘추좌전으로 1065 ~ 1084년에 걸쳐 북송의 정치가요 사상가인 사마광이 무려 19년, 유서(통감외기, 황조십국기년), 편찬국의 학자들의 집요에 걸친 저작으로 송나라 신종이 새로 붙였다. 

 

#그렇다면 왜 였을까, 왜, 세종대왕, 원세조 쿠빌라이, 중국 모택동, 일의 메이지유신 사상적 스승 료마, 후쿠자와 유키치 등 각국내 위대한 평가의 지도자, 현 기업 CEO들은 치국평천하의 기본으로 자치통감을 수번에서 17번씩이나 반복해 읽고 또 읽으며 끼고 살았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개인적 생각에 항상 난세의 한복판에 서있는 대한민국을 대입해보면서 생각해본다. 즉, '자치통감이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또다시 격을수없는 어지러운 시대가 재현될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전무후무한 난세시대를 편년체로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그렇기에 현대 지도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받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시대상황의 위기에대한 명쾌한 해결책과 비젼 제시에 요구받는 리더쉽 대응에 지혜와 혜안을 바로미터할 시대적 필요가 자치통감의 긴 시간속에 녹아있기에 그렇다'라는 의미리라.

 

#하지만 이런 중요도와는 달리 당시의 조선조 후기엔 열악한 경제상황과 맞물려 한지 물품조달과 인쇄력의 어려움으로 294권의 자치통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치더라도 그나마 제대로 원본을 축약한것으로 알려진 통감강목도 아닌 서당과 가속에서 한문의 원리로 사용됐던 반쪽 저작물인 통감절요를 읽은 사대부가 다수였고 그나마도 한문 원리만 익힌 후엔 다 읽지않고 7권까지만 읽은후 다른 경서로 넘어가기도 한 왜곡된 학문적 천박한 시대적 통증이 있다. 이의 근원적 문제로 주희가 주석한 사서삼경 위주의 편협한 등용제도였던 과거시험의 폐헤였다. 다행인것은 그나마 수준높은 학문을 연마시켰던 한림원같은 기구가 존재했다는 것은 퇴계와 기대승의 4단7정 논쟁등 형이상으로 빠진 조선과 달리 미래적으로 고무적인 현상이었듯 싶다. 

 

#또한 오늘의 텍스트인 고 신동준 선생의 자치통감1,2 외 대표적으로 2010년 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의 자치통감 32권이 완역됐는데 한국적으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생각이 들지만 3가지 면에서 치명적으로 한문 원문이 배제된 점, 각주와 용어가 통일되지 못한 점, 문맥상 가장 큰 문제점인 오역이 많다는 점 등은 상당히 우려스럽다는 지적을 본문에서 받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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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 2021.04.06.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