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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과 11월의 간극 :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 - 최은별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최은별 시인의 시집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를 읽었다. 책장을 넘기자 머지않아 은별 시인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여서 그리고, 그 뒤의 커텐의 밝은 빛을 보면서 5월 같은 사람이다. 시어도 어쩌면 밝고, 아름다울 것 같다 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니 어쩌면 시인은 11월 같은 감성을 지닌 사람인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시인에 대해 전혀 모른다. 단편적으로 실린 사진 한 장과 시를 통해 교감했을 뿐이다. 나와 대화한 시인은 시어들이 주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포착하는 모습을 토대로 11월 같다고 생각했다. 시집의 곳곳에 사람들이 생각할 만한 외로움, 그리고 반성,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담겨 있었다. 시집을 읽고 나면 특히 직후에 글을 쓰면 좀 더 나의 글도 시어처럼 보이기를 원하게 되는 것 같다. 마음에 들었던 시구들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숱한 별은 눈앞을 아찔하게 만드니까 자꾸 희망을 갖게 하니까 울게 하니까 웃게 하니까
-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 낮비 中 』
낮 비 라는 시를 읽고 나서는 뭔가 병원을 막 빠져나오는 사람이 연상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가족이든 혹여 나든 뭔가 힘든 상황이 연상되는 느낌이었다. 비야 낮에도 오고 밤에도 오고 밝을 때도 흐릴 때도 오지만, 낮에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보면 눈물 같은 때가 있지 않은가. 시인은 건반을 치는 방울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듣기에는 눈물소리 같은 느낌이었다.
『수년 뒤 전주 변두리 삼십 평대 아파트로 이사한 건 순전히 엄마 덕분이었지만 엄마를 제외한 나머지가 어리거나 아프거나 철없었으므로 빚은 거의 갚지 못했다. 따라서 이 집도 우리 것이라기엔 늘 애매했다
-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 어느 도배공의 손 中 』
어느 도배공의 손에서는 어머니를 그리는 시인의 시선이 여느 어머니를 보는 보편적인 사람 같아서 공감하며 읽었다. 열심히 부양의 의무를 지고계신 부모님을 보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어리고 철이 없었기에. 조금 나이가 들면 가족의 평화는 아픈이를 위시하여 깨지기 마련이다.
『눈물 속에서 세상은 경계를 갖지 않아 분명했던 경계들은 눈물을 따라 어룽어룽 번져 나가지
-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 얘기해 줘 中 』
마지막으로 실렸던 얘기해줘라는 시에서 뭔가 시인의 눈물이 감정이입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개인적으로 내가 최근 밝은 기분이 아니어서 눈물과 관련된 시어들만 꽂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물속에서 세상을 본다는 말이 참 아름답고, 울먹이는 그 찰나의 감정을 잘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곁에 두고 더운 여름날도 읽고 찬바람이 부는 때쯤에도 다시 읽고 싶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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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문예 연구> 신인상 시 부문으로 등단한 작가의 첫 번째 시집입니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첫 번째 시집이라는 의미가 부여된 책이라 시인의 감회는 남다르리라 짐작해 봅니다.
이 시들에 대한 인상은 솔직히 약간은 생경하기도 합니다. 이는 기존의 시들에 익숙한 경험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주로 김소월 시류의 정서나 리듬에 익숙해 져 있어서 더 드런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주로 서사시입니다. 길이도 길고, 비정형화, 서술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집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시인의 시로 되어 있고, 2부는 문신 시인의 해설로 되어 있습니다. 내 경우, 이 해설이 없었다면, 시를 깊게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인데, 문시인의 해설이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뒤표지에는 김정배 문학평론가의 평론도 또 다른 참고자료가 됩니다. 이 시집의 제목,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는 ‘시(詩) 와 시(時)’를 한꺼번에 관통하는 자기 고백적 실어(失語)에 가까운 언술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시어에는 ‘당신’이라는 2인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자기동일성을 유지한 채 자기로부터 연장된 자기를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친절한 해석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 시인의 대표작이라고 생각되는 ‘네 시를 읽는 오후 네 시’의 시는 시인인 자신보다 더 시인처럼 살고 행동하는 ‘숨 없는 너’를 만나러 가는 것임을 볼 때에 사자(死者)에게 바치는 헌시인 듯합니다.
‘너는 시를 쓴 적 없어도 항상 시인이었다’의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그 사자의 삶은 시처럼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책 까만 속 표지에 하얀 글씨로 써 있는 저에게 주는 덕담이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어루만지게 합니다.
서평의 지면을 통해서 고마움을 전하며, 더욱 정진 하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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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은 한 번 걸리면 두 번 다시 걸리지 않는다. 항체가 생겨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별은, 상실감은 그렇지 못한 거 같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이별을 하고 아주 많은 상실감에 아파한다.
4월5일 월요일 4교시가 끝나고 나는 유일한 가족과 이별을 하였다. 항상 엄마 아빠 사랑을 독차지 하더니 만나러 가는 것도 먼저 가버리다니. 그렇게 혼자 웃는 오빠의 사진을 뒤로하고 모든일들을 대충이라도 정리하고 상경해서 오늘이다. 왜 가족을 멀리 보내는 아픔은 이별은, 상실감은 면역형성이 되지 않을까?
저자 은별님은 프롤로그를 시작하며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그 인사는 처음의 인사일까? 마지막의 인사일까? 그 짧은 인사를 내뱉지 못해서 오늘밤도 참 서글픈 그런 밤이 될 거 같다.
별일 없이, 별 탈 없이 살아주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부탁)
아주 작은 기억. 너무나 작고 소소해서 도저히 기억해 낼 수도 없는 그런 너무나도 쓸데없는 작은 기억들때문에 따끔따끔 아프다. 남겨진 우리가 기억하는 당신의 그 기억들. 그 기억들이 차이가 우리를 조금씩 미소짓게 하는데.... 그 작은 미소로 남은 우리는 버텨보기로.
추락하는 것들은 날개가 있겠지. 추락하는 것들만이 날개를 가질 자격이 있는거지. 희망이 있는 것들만 추락하는거지. 추락과 날개, 그리고 희망
당신은 차가운 낭만주의인가? 아니면 당신은 따뜻한 현실주의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도록 노력할 것이다. 매일 오후 네 시가 되면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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