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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곡선의 회항> 얼마나 커다란 열망과 써내려감이 있어야 '작가'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 해이수 소설가에게도 '문학을 머리 위에 두고 숭배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좋은 작품을 읽으면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글을 내가 쓸 수 있을까 하는 의혹과 좌절에 시달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국의 공항 패스트푸드점에서 잇자국이 남은 햄버거를 앞에 두고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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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곡선의 회항>

얼마나 커다란 열망과 써내려감이 있어야 '작가'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 해이수 소설가에게도 '문학을 머리 위에 두고 숭배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좋은 작품을 읽으면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글을 내가 쓸 수 있을까 하는 의혹과 좌절에 시달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국의 공항 패스트푸드점에서 잇자국이 남은 햄버거를 앞에 두고 눈물을 철철 흘'린 후 '서랍 깊숙이 묻어둔 원고를 다시 꺼내 쓰기 시작했'을 때는 울컥했다. 지금 빛나는 글을 쓰고 있는 작가도 거기까지의 여정에 '한 바퀴 돌리는 얼차려'는 기본이었음을 읽으며 그러니까 너만의 괴로움이 아니라는, 너도 한번 해보라는 격려를 받는 듯 했다.

 

<한 폭의 바다>

작가는 요가를 '자기 안의 바다를 찾는 몸짓'이라 했다. '혼자 하는 운동이어서 고요한 듯 보이지만 실은 치열하'고 '우리는 정신을 매만질 수 없으니 몸을 통해 단련할 수밖에 없다.'며 요가의 내적 효용성을 말하는데 큰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단지 운동 목적으로만 요가를 했던 내게는 보다 넓고 깊은 이해와 시각의 전환이 이루어진 계기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고 하였다. 코로나 19 이후 실내 운동이 힘들어지면서 나는 달리기를 선택했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나와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하다. 그러고보면 요가도 달리기도 자기 자신을 버텨내는 수양의 순간은 아닐까. 

 

<바다의 여러 얼굴>

작가의 '허물없이 지내는 소설가 친구'는 '청탁받은 소설의 데드라인을 한참이나 넘겼는데도 도무지 쓸 수가 없어서 훌쩍 떠났'고 바다로부터 "빨리 가서 써!"라는 해답을 얻어왔다. 나는 에세이를 읽으며 이러한 일화의 매력에 빠졌다. 창작의 고통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어설픈 습작생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과 결국 '쓰는 것'만이 답이라는 것을 직접 들은 듯 했기 때문이다. 

 

<수첩백서>

'내게 수첩은 몸 밖에 꺼내놓은 뇌이자 심장이'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작가는 어느 심포지엄에서 많은 것을 메모한 수첩을 비행기에 두고 내린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오한이' 들 정도였던 사건에서 작가는 오히려 '야릇한 해방감'을 얻는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는다면 적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필기구에 집착하고, 기억 못할 것 같아 열심히 메모한 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드문 나같은 사람이 되새겨 볼 부분이다.

 

<기억나지 않아도 상당히 유효한>

해이수 소설가의 『탑의 시간 』은 다음의 집필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고 한다. 

'나는 단순하게 한 문장이 끝나면 다음 문장만을 생각했다.' '나는 소설을 쓰는 일 없이 소설을 썼다. 이 하나게 내게 전부였다.' 

어떠한 경지면 위와 같은 상태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정신수련의 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탑의 시간 』은 '관계의 기쁨과 고통, 그리고 그것이 지나간 자리'를 쓰고 싶었다고 해이수 작가는 술회하고 있다. 그 소설에 대한 인상이 아직 깊게 남아있는 독자로서 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배면을 듣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고자 한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가의 선배 김종광은 "너 말이여, 하여튼 쓰던 거 제대로 써봐. 그게 니 길이여."라고 술에 취해 말했고 한다. 국외 공간에서 펼쳐지는 글을 발표할 때마다 쓴소리를 듣곤 했다는 작가에게 그 말은 또 한번 국외가 배경인 국내소설을 쓰는 추진력이 되었던 것 같다. 여러 조건과 사정에 밀려 여행을 뒤로 미루고 살았던 내게 해이수 작가가 펼쳐 놓는 국외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책상에 앉아서 이국의 모습을 훤히 들여다보고 냄새 맡고 경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통로가 되었다. 나는 소설 속 해외의 곳곳을 낯설지만은 않은 호기심으로 읽어내려갔다. 그것은 해이수 작가의 밀착된 서술 기법에서 오는 다정함과 배려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내 문학적 영혼의 멘토>

"어디서 그 많은 소재를 얻어 그렇게 계속 글을 쓸 수 있죠?" 라는 질문에 '몽구 형'은 "비빔밥이다! 이것저것 한데 넣고 비비면 된다."라고 답한다. '한 손을 정수리 위에 얹고 휘휘 젓는 시늉을' 하며. 

나는 이 부분에서 뭔가 번쩍 했다. 늘 목말랐던 소재를 얻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대신 해 준 것이 우선 고마웠고 엉뚱하고도 유쾌하며 어찌보면 명쾌한 답번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단하고 근사한 뭔가를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되었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받아들여졌다. 

해이수 소설가는 단편『몽구 형의 한 계절 』을 통해 '고결한 이상은 품고 있으나 독사 같은 실천력이 결여된, 독사의 실천력이 따르지 않는 고결한 이상이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염두에 두었다'고 하였다. 독사 같은 독한 실천력 없이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작가의 단정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위대한 공포>

'당신을 때로 소름 끼치게 만들고, 울게 만들고, 간절히 기도하게 만들고, 밤을 새워 뒤척이게 만드는 공포가 있다면 그것은 감사한 일이다. 지금보다 나은 걸음을 떼게 하는 그것을 우리는 '위대한 공포'라고 한다.'

해이수 작가의 에세이가 중반으로 접어들 때쯤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고 입술을 꼭 다물었으며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글 앞에서 신성함이 전해지기까지 하는 작가의 태도들을 겹겹이 접하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울게 만들고 기도하게 만들고 밤을 새워 뒤척이게 만들었던 습작의 시간이 버거워 엎어지고 널부러졌던 일들이 떠올랐고 핑계 대고 도망가기 바빴던 나는 그 순간들에 감사해야 했단 걸 알았다. 그건 새가 알을 깨고 나가기 위한 '위대한 공포'였던 것이다. 이 부분은 뒤에 나오는 <공포와 대면하는 법>에서 '현자는 두려운 적을 동반자로 만들어 오히려 도움을 이끌어 낸다. 공포의 대상이 지닌 파워를 자신에게 이로운 가공할 만한 힘으로 전환하는 셈이'라는 부분과도 통한다. 

 

<스스로 등불이 되어 갈 뿐>

운명같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값진 한 생을 선물 받는 것과 다르지 않겠다. 알베르 카뮈와 그의 스승 장 그리니에의 경우가 이 책에서 나온다. 그리고 해이수 소설가와 대학에서 <문장론>수업을 받은 송하섭 선생님과의 일화가 그러하다. 또한 <그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소소한 에피소드>에서의 김수복 선생과의 일화도 있다.   

'지금도 나는 소설 쓰기가 무섭거나 집필 주인 글을 과연 끝낼 수 있을지 회의에 빠질 때면 자기 최면을 건다. 너는 지금 문장론 수업의 한 가운데 있다. 두려워 말자.'

'어쩌면 문학교육이란 쉽게 잊고 마는 것들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것이 본령이고, 실제 이를 기반으로 종합하고 예술적 결과물로 끌어올리는 작업은 온전히 창작자의 몫이다. 그 문을 열고 안을 보기 위해서는 결국 본인이 창조적 심지를 돋우어 등불이 되는 수밖에 없다. 훌륭한 선생이란 이렇게 혼자 불을 밝히며 가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도록 돕는 분이 아닐까.'

스승과 선생님은 어감에서 미묘한 차이를 느끼게 하는 면이 있다. 두 낱말 모두 가르침을 주는 주체이지만 '스승'은 존경을 담아 부여하게 되는 호칭일 것이다. 좋은 가르침을 전심으로 따르고 실천해주는 영특한 제자가 있을 때 훌륭한 스승도 계신 것임을 생각한다면 한 자리에서 20년간 꾸준히 빛나는 작품들을 쏟아낸 해이수 작가는 스승이 보시기에 참 어여쁘고, 기쁨과 보람을 주는 제자일 듯 하다. 혼자 가는 길이지만 함께 갈 때 더 아름답고 함께 가더라도 결국 주체자 스스로가 오롯이 일구어내야 하는 이치를 이 책의 작가는 먼저 수고로이 길 닦아 놓으며 자상하게 속삭이는 듯 하다. 

 

 

나는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좋은 책은 정신을 새롭게 하고 자세를 가다듬게 하며 스스로 깨닫게 한다는 것. 창작자로서의 길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깊고 힘들고 독해야 하는 여정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럼에도 한 생을 걸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라는 것. 

오래 곁에 두고 자주 들쳐보고 싶은 책이었다. 

 

 

 

7******w 2021.04.1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