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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본주의를 말한다]
"[농본주의를 말한다]" 내용보기
1.   농업과 농사가 어떻게 다른지를 일깨워 주는 책이다. 말하자면, 농사가 더 큰 개념이고 농업은 농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농사란 천지대자연의 품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농사란 그 품속에서 모든 생명체들과 관계맺어 살아가는 것이다.   농사란 생명을 키우는 하늘의 은혜를 의식하며 사는 삶이다.   농사란 받은 은혜를 알기에
"[농본주의를 말한다]" 내용보기

1.

 

농업과 농사가 어떻게 다른지를

일깨워 주는 책이다.

말하자면, 농사가 더 큰 개념이고

농업은 농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농사란

천지대자연의 품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농사란

그 품속에서 모든 생명체들과

관계맺어 살아가는 것이다.

 

농사란

생명을 키우는 하늘의 은혜를

의식하며 사는 삶이다.

 

농사란

받은 은혜를 알기에,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은혜를 나누며 사는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는 수천년을 이어오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속가능한 세상이 되도록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농(農)이야말로

천하의 근본 도리이다(農者天下之大本).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최초의 인간에게 부여하신 사명도

()의 사명이었다.

땅을 가꾸고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2.

 

농업이란 무엇인가 

농업은 먹거리를 생산하여 소득을 얻는

농사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농사일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려고

하는 것이 농업이라 말해 본다면,

농업은 자본주의적 혹은 산업적 개념이다.

 

 

 

3.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상은

돈으로 돈을 버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것도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질 수 있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마저 착취당하게 되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적 체제 아래

살고 있다.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온 농사가,

그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아래

먹거리 산업인 농업으로 등치되면서,

농촌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농사가 경쟁을 해야하는 농업이 되었고,

날이 갈수록 거대 자본, 다국적 기업들이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농가들이라 할지라도,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없으면

경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당연히 소농(小農)들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

 

넉넉한 시골 인심도 많이 사라지고,

마을을 지탱하던 공동체의식도

겨우 그 무늬만 남아있는 지경이다.

 

 

 

4.

 

21세기, 우리가 농본을 말해야할 이유다.

()이야말로 태초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원초적 사명이요,

그래서 이 세상을 떠받치는 근본도리임을

되새겨야할 때라고 본다. 

 

이상기후, 기후변화, 기후위기, 이제는

기후붕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무한경쟁으로 오로지 성장과 발전만을

추구하는 인류에겐, 미래가 없다.

적정선에서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농업만큼은 세계무역질서에서

예외 분야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농업이 아닌 농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가 만들어가야할

새 삶의 질서(뉴노멀),

농사가 우리 인류문명의 토대와

기초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옳다.

그래야 그나마 희망이 있다.

 

농사가 그 본래의 제자리인

천하의 근본도리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다면,

현 자본주의 체제아래 대두되는

온갖 차별, 불평등, 양극화 현상 등과 더불어

기후위기를 맞이한 환경에 대한 문제들도

하나둘씩 풀어갈 수 있다.

 

 

 

5.

 

소농들이여, 분발하자.

 

 

 

(본문 발췌)

 

 

천지자연의 은혜는

농사가 토대를 이루기 때문에 받을 수 있고,

또 그것을 받게 해주는 농사가 있기 때문에

은혜가 된다. (15)

 

 

천지자연의 품은 ....

아무리 둘러봐도 ...

교환가치라고 하는

자본주의적 척도는 찾을 수 없다.

.... 농사를 지으면서 천지자연 속에서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타락...

(25)

 

 

자본주의에서는 경제성장이 불가결합니다.

... 그러나 어디쯤에선가 이쯤 해두자”,

적당히 해두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 사회가 아니었을까요?

(35)

 

 

인간중심주의가 아니라

천지의 은혜를 감사하고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농민의 감각입니다.

.... 천지자연 속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있는 생명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같이 살아가는 존재로서,

사람도 천지자연의 일원이라는

감각이야말로 농사의 본질임을

꿰뚫어 보는 게 농본주의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43)

 

 

사람은 천지자연 덕에 살아가고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자신의 혼자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망상에 빠져 있다.

(45)

 

 

농작물은 하늘의 은혜를 받아 자란다.

, 농작물이 익어가는 것은

하늘의 힘에 의해서인 것이다.

사람은 그저 (천지자연)을 거들 뿐이다.

따라서 수확물에 대해서는

하늘과 땅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61)

 

 

이른바 노동농사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농사일은 돈이 되지 않는 것까지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만드는 주체는 천지자연입니다.

여기에서야말로 자본주의를 넘어선 세계의

가능성이 분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69)

 

 

농사가 자본주의와 맞지 않는 이유는,

자본주의는 천지자연의 힘을

공짜로 얻어 쓰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지자연은, 그 힘이 다치지 않도록

천지자연의 도리에 따라

천지자연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그 은혜를 풍요롭게

가져다줍니다. 또 그 본질은 매년

변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발전이나 진보가 천지자연의 품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폐해가 없습니다

(설혹 악영향이 생기더라도 금방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자연을 경제성장을 위해서

이용하려고 하면,

천지의 은혜는 쇠락해 갑니다.

(88)

 

 

유동적이고 무미건조한

국내총생산(GDP)을 국익의 핵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마을의 모체이면서

농촌과 국토를 지탱해온

천지유정의 공동체의 힘을 소중히 하라고

농본주의자는 말합니다.

(133)

 

 

안심의 세계란 무엇일까요?

10년이 하루처럼 반복되는 것이야말로

과거로부터 미래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 천지유정의 공동체의 본질은

말하자면 천지중심주의로,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분출되는 욕망을

길들여서 진정시켜 줍니다.

따라서 농본주의자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천지자연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인간은 망의 경지에 이르고

욕망은 사라집니다.

(138)

 

 

우리는 앞서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큰 재산을 무상으로 받았습니다.

그중 최대의 재산은 천지자연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안정시키는 무형의 지혜입니다.

... 계절에 따른 농사일은

선인들이 남긴 지혜의 체계입니다.

... 다음으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형의 대지가 있습니다.

선인들은 천지유정의 공동체에

땅까지 포함시켰습니다.

.... 이렇게 유무형의 재산을 이어받았지만,

선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감사 인사를 할 수 있을까요?

그저 꾸준히 땅을 가는 것이

그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139)

 

 

천지의 은혜로 벼나 보리가 자란다는

사고방식은 종교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태양도, 공기도, 토양도, 물도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과학도 사람은 물론이고

아직 벌레 한 마리 만들어내지 못한다.

생명에 이르러서는

과학으로 벌레 한 마리조차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 실제로 신()이라고 하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는 형태가 없는 존재가 있다.

이것이 천지 가운데 충만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천지천지라고 부른다.

(152)

 

 

풍년을 기원하는것은 정말로

엣날부터 이루어져 온 것일까요?

풍년을 감사하는마음은

당연히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논밭의 결실은

천지의 은혜로서, 천지의 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아직 작물을 심기도 전에

풍년을 기원하는것은,

천지()의 영역에 간섭하는 것이

아닐까요?

(182)

 

 

농민이라면 풍년이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그저 생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풍년일지 어떨지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는

천지가 하는 일로,

사람이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182)

 

 

기도·기원이 없는 상태야말로

신과 마주할 때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고맙다는 감사뿐입니다.

그런데도 신에 대한 기원이 시작된 것이

신과 인간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184)

 

 

그런데 생명체들은 단호하게

효율을 거부했습니다. ...

생명체들은 헤엄치는 속도를 높이거나,

화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먹이의 양을 증가시키기를 거부했습니다.

즉 근대화, 자본주의화, 경제화, 효율화를

거절한 것입니다. .... 사람의 에서까지

생산성을 추구한 것에 대한

반성이 없기 때문에,

생명체들의 삶()이 상처받고 있는 것에

둔감하게 된 것입니다.

생물의 삶은 천지자연의 법에 따라서

숨 쉬고 있습니다.

(200)

 

 

생명체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것, ...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천지자연의 은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신과

생명체에 대한 정애야말로

농사를 지탱하는 것 ...

이제는 인간만을 위한

생명체와 먹거리를 추구하는

근대화 노선과는 결별해야 합니다,

(201)

 

 

농촌에 분업이 침투한 것은

농사를 자본주의로 편입시키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따라서 분업을 거부하고 자급하는 것은

자본주의로부터 한 발을 빼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 사서 쓰던 것을 자급하고,

...다만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듭니다.

기술과 지혜를 되살리고, 연마하고,

배우지 않으며 안 됩니다.

(213)

 

 

자급을 위해서 사용한 노동시간을

임금으로 환산한다면

물론 사는 편이 싸게 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급은 임금이라는

자본주의적 관념을 무시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 “사는 게 쌀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키우는 기쁨은 버리기 어렵지요.

스스로 만드는 기술도 계승하고 싶지요.

스스로 일하면

생명체들의 마음을 알게 되지요

(213)

 

 

자급의 본질은,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 천지유정의 공동체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자급의 세계는 천지자연의 품에 안기는

기회를 늘리는 것입니다. ....

자급생활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시도하기 좋은 것이

먹거리의 자급입니다.

(214)

 

 
YES마니아 : 플래티넘 7*****2 2021.12.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