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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제품의 내구성이나 물건을 잘 만든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국가가 있다. 바로 서양에서는 독일이 그렇고 동양에서는 일본이 이런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실제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고 우리의 관점에서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문이 들 정도로 엄청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읽기가 쉬울 것이며 일본 건축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줬던 인물과 문화, 역사적 가치에 대해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관점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는 책이다.
특히 백제와 일본의 문화교류, 인적교류는 너무나도 유명하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책에서도 천년경영이라는 제목처럼 백제인 금강조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교류상, 그리고 여전히 이들을 기리면서 전통적 가치를 바탕으로 현대적 결과물을 척척 만들어 내는 회사가 존재하며, 관련 업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이 점은 매우 놀라운 부분이며 한국과 일본이라는 역사적 단위의 부정적 감정을 빼고 보더라도,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뛰어난 기술과 문화, 문명을 꽃 피우며 살았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런 교류와 배움을 통해 일본의 기업들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원래부터 뛰어났던 분야도 있겠지만 기술을 대하는 자세, 이를 계승하려는 움직임과 보전하려는 확고한 원칙, 인재경영 및 조직관리, 기업경영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바꿀 수 없는 철학과 방침의 존재는 오늘 날 일본 기업들의 정서가 되었고 일본인들의 문화로 자리잡아 우리에게 좋은 효과를 반대로 전해주는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쉽게 잊거나 별거 아닌 가치로 취급했던 것조차 그들은 관심을 갖고 자신들의 것으로 승화했고, 문화적, 역사적 교류가 활발했지만 오늘 날의 모습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아쉬움도 묻어난다.
기술과 기술자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와 인식의 차이가 지금과 같은 격차의 차이를 발생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들은 매우 집요한 구석도 존재한다. 또한 리더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나 관리자의 역할론은 무엇이며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인드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는지, 우리가 말로만 외쳤던 부분들을 그들은 행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고, 그런 그들의 정서와 문화, 역사적 배경에 우리 선조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또 다시 놀라움을 표하게 될 책이다. <천년경영> 을 통해 기본적인 기업경영의 중요성과 방침, 철학적 요소, 그리고 생소할 수 있는 일본건축과 건축기술에 대해서도 자세히 배우며 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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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하상 교수님은 한중일 기업인들에 관한 논픽션은 38년 동안 저술했으며 이제 시야를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장수기업이 많은 국가는 독일, 스위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인데, 이 국가들은 100년 이상 된 기업의 숫자가 650개를 넘지 않는다. 일본의 2만 3700개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숫자가 적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수치 또한 공식적인 노포 리포트에 포함된 목록이고, 비공식적인 수치는 약 10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 기업이 오랜 업력을 가지게 된 사연을 연구하고, 가장 오래된 회사인 금강조를 주목한다.
이 책 <천년경영>은 저자가 1994년부터 2017년까지 23년간 금강조를 60여 회 방문하면서 지켜본 관찰기록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를 생각하면 유럽의 회사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놀랍게도 가장 오래된 회사는 서기 578년에 백제인 류증광이 창업한 금강조이다.
당시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치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백제의 국력이 약해지고 신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했을때, 수많은 백제의 유민은 신라에 항복을 하느니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한다.
특히, 백제인이 자리를 잡은 지역은 큐슈를 출발점으로 오사카, 나라 일대이다. 백제는 7, 80톤에 이르는 규모의 목선으로 바다를 건넜다. 지금도 포항 지방의 속담에는 "왜 가는 배 같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떼로 몰려다닌다는 표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짐작하게 하는 표현이다.
과거 오사카, 나라 여행을 할 당시 호류사를 견학한 적이 있는데, 국보인 금당벽화를 보관한 절로 알고 있었는데, 이 절을 중건한 사람이 백제인이 설립한 금강조에서 만든 절로 짐작되는지 전혀 몰랐다.
1,400여년 동안 이어내려온 금강조의 사장님에게 한국의 정체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백제의 후손이라는 점과 전남 구례군의 문화 류씨의 후손이라고 전한다.
1대조인 류중광이 금강중광으로 바뀐 것은 그의 탁월한 건축 솜씨를 본 용명천황이 그이게 '금강'이라는 성을 하사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선 일본에서 일어난 49년간의 불교전쟁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신사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10만여 개 이상의 신사를 가지고 있다. 서기 587년 백제계 출신의 성덕태자는 불교전쟁에서 승리한다. 정권을 장악한 그는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헌법을 만들고 부처님에게 바치는 사찰을 세운다.
이 절이 사천왕사이다. 성덕태자는 사천왕사를 짓기 위해 백제에 기술자 파견을 요청했다. 백제의 위덕왕은 요청을 받아들여 기술자를 파견했는데, 그중 우두머리는 4명이었다.
그들의 이름이 금강, 도자, 다문, 중촌이었다. 사천왕사는 부여의 정림사를 모델로 지어졌다. 사천왕사의 총 설계자인 금강중광은 일설에 따르면 부여의 정림사를 완공한 총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런 추정하는 근거는 정림사와 사천왕사의 가람배치도와 구조가 똑같다. 둘다 일탑일금당식, 즉 탑 하나에 대웅전 하나인 양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후 1대에서 40대에 걸친 금강조의 기록을 차장서 보관하기로 한 저자는 금강조의 역사와 후손의 이야기를 전한다.
금강조는 1,400년 동안 건재하다 1932년 37대 금강치일이 할복자살로 충격을 남긴다. 그가 자살하게 된 것은 그의 대에서 회사가 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가 망한 이유는 금융 대공황 때문이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파탄 나고 이어 독일의 도이체 뱅크가 파산했다. 그 여파는 일본에도 넘어와서, 일본도 연일 실업자가 쏟아졌다.
이후 1934년 오사카의 사천왕사 내의 높이 48미터의 오중탑이 무너져 이를 재건하기 위해 금강치링의 부인 38대 금강요시에게 맡긴다. 할복자살로 남편을 잃은 금강요시는 오중탑의 재건과 함께 금강조도 다시 살아났다. 금강요시는 1950년 사위인 39대 금강리융에게 사장 자리를 넘겼다.
현재 금강조는 40대 ‘금강정화’대에 이르러 다시 한번 파산을 경험하고 일본 다카마쓰 건설의 한 사업부서가 되었다.
1400년 전에 백제의 금강조가 전수해 준 목조 건축 기술은 여전히 금강조에 전수되어 남아있다.
<천년경영>을 읽는 동안, 한국과 일본의 친밀한 과거 역사에 대해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이런 사실은 반기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이제 소수에 불과하다. 홍하상 교수님의 오랜 노력이 미래에 양국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천년경영 #홍하상 #헤르몬하우스 #금강조 #건축 #책과콩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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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나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존경받을 만한 것들에 대한 배움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알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금강조라는 가장 오래된 건축회사라는 것을 처음 알게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그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고 있고 그 뿌리가 우리나라라는 것이 뿌듯하다.
작가가 어떤 책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 기간이 매우 긴것도 있는 것 같은데 이 책은 무려 23년이나 찾아가고 조사하여 만든 책이라고 하니 그 열의와 전통을 읽기도 전에 감탄할 만 한다. 많은 문화재들이 그렇지만 특히 과거의 건축물들에 대해서는 감탄과 존경을 안할 수 가 없다. 지금보다 기술과 여건이 훨씬 좋지 못한데 과학적으로 증명할수 없는 여러가지고 엄청난 결과의 건축물을 만들고 지금까지 위풍당당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작가도 그러한 건축물에 대한 존경과 감탄으로 건축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외국에 대한 교류가 적어지는 시기여서인지 외국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들이 줄어들고 있는것 같다. 특히 옆 섬나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서로 발전하고 우리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울점들을 배우고 우리 환경에 도움되게 적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뿌리는 우리지만 과정과 현재는 일본에 있는 건축회사이지만 장점은 찾아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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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심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 책 "천년경영" 은 저자 홍하상 교수가 니난 23년간 60여 회의 일본 출장을 통해 자료조사를 하고 확인한 문화재 중의 하나인 '금강조', 건축물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밝힌 관찰기록으로의 책이다. 1400년 간을 이어 내려온 금강조 건축회사는 서기 578년에 창업된 화사로 새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기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것이고 또한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더더욱 놀라움이 기쁨으로 변하는 순간을 갖게된다.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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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간 가업을 이어존 금강조에 대한 기록을 담고있다. 백제인이 세운 기업으로 금동대향로등 당시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엿볼 수 있다. 금강조는 일본의 절이나 신사 부문에서 전국 10%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1년에 약 60~70개의 공사를 진행한다.
일본이란 나라에서 집마다 작은 불단을 두고 기도를 올릴 정도로 신이 많은 나라 라는 것은 알았으나 그것들이 기업에서도 세밀하게 지켜진다는 것은 조금 놀라웠다.
금강조는 전대에서부터 전해진 유언을 50페이지의 소책자로 기록하여 아주 작은 것까지 지켜오고 있었다. 그 중 한가지로 선조의 묘에 매년 헌향하라는 말이 있는데 단순히 바로 윗 선조가 아닌 1대 조상이 등장할 정도로 조상숭배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금강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인재육성법도 남아있다. 일본은 특히나 장인들이 많아 가업을 이어오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금강조의 궁대공이라고 하는 목수 최고 책임자들도 당대 최고 경지에 오른 기술자들이었다. 보통 경력이 4~50년이었다는데 수백 년, 수천 년 전에 지어진 사찰을 보수하고 복원하는 일을 대하는 자세와 기술전수에 임하는 마음가짐들이 적혀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금강조가 지은 건물이 흔들릴 정도면 일본열도가 흔들린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단언한 말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신기했던 것은 금강조의 역사를 보면 직계가 아닌 사람들이 금강조의 대를 이은 경우가 많았던 것이었다.
현재에 와서는 40대 당주를 끝으로 대가 끊어졌다고도 말하지만 금강조의 기술은 이미 널리 퍼져있고 곳곳에 전수되었으며 이미 1400년의 역사 속에서 대가 끊어진 적이 허다하게 많다는 말로 결국 역사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천 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 기업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경영 철학과 그들의 사생활, 수 많은 위기의 순간들과 찬란했던 시기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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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조 회사에 처음 간 것은 1994년 11월 3일로 적혀 있다. 당시 나는 오사카의 사천왕사를 조사하고 있었다.사천왕사는 서기 593년에 창건한 일본 최초의 사찰이다. 지금도 일본 최대의 사찰로서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당시에 누가 이렇게 큰 사찰을 지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 내 의문이었다.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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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천년을 넘었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거기에 백제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세운 회사다. 누가 설립하더라도 천년 넘는 역사를 유지하는 건 대단한 것이다. 오랫동안 기업을 유지한 비법도 궁금하고 일본으로 건너난 백제인의 내력도 궁금하다. 저자는 한중일 기업인에 관심을 가지고 저서를 다수 출판했다. 30여년동안 일본을 취재하면서 지켜본 금강조 회사가 파산되고 총수가 타계한 계기로 1400년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금강조라는 오래된 회사와 백제인의 흔적, 그 후예의 활동을 살펴보게 되었다. '금강조(金剛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 서기 578년에 백제인 류중광이 창립한 회사로 사천왕사를 시작으로 사찰을 건축및 유지 보수해왔다. 내력을 살펴보면 일본 최대 사찰인 오사카 사천왕사는 건축 면적이 잠실야구장 4배에 달하는 규모로 일본에서는 건축 기술자가 없어 일본이 성덕태자가 백제로부터 초청했다. 그가 금강중광이었다. 성덕태자는 "세세천년 영원히 사천왕사를 보수 관리하라."(p55) 불법을 떨칠 수 있도록 내린 것이다. 금강중광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후로 1400년 넘게 오늘날까지 사천왕사의 건물을 보수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제인의 일본 도래 역사로 사천왕사 왔소, 사천왕사, 백제계 검객 소아만치(목만치), 백제의 멸망, 백제계와 가야계의 불교전쟁, 성덕태자의 사천왕사와 함께 금강40대 그리고 가업을 대대로 내려온 대목수들, 1500년동안 연초마다 해왔던 연례행사 첫 끌의 의례인 전나하지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사천왕사가 부여의 정림사와 똑같은 구조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백제의 기술자들이 건너가 백제의 것, 일탑일금당식을 따랐던 것이다. 금강조가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것은 11가지 경영 철학과 함께 인재 육성 12계명, 작업시 8가지 원칙에서 엿볼수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의 고유한 철학을 갖고 있으며 시대와 풍토에 맞는 기술개발을 끊임없이 해 온 것이 장수 비결이었다. 그리고 성취적 지위, 즉 기술인 우대 경영체제가 오래 유지하는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2004년 파산되고 일본 건설회사 흡수되었다. 그래도 신금강조팀으로 남아 "금강조의 기술은 영원히 남아 있다"(p234)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파산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추렸다. "성취적 자아를 무시했다. ... 기업 계승자의 자질이나 도덕성 문제. 판단착오에 기인한 방만한 경영, 도덕적 문제등의 복합적인 작용."(p236-239) 금강조는 사라졌다. 하지만 백제인이 일본에 가 1400년 넘어 장수한 세계 최장의 기업에 이름을 올렸고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백제 후기와 그 시기의 일본 그리고 오사카 사천왕사 건축역사를 되새겨볼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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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금강조 이 회사는 1400년 전 백제의 기술자 유중광이 일본 최초의 사찰이자 가장 오래된 사천왕사 유지보수와 관리를 맡게 되면서 1,400년이 넘도록 그 자손들이 계승하며 사찰 전문 건축회사로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이다. 하지만 지금은 회사경영의 큰 위기에 빠져 다카마쓰 건설에 인수되어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1,400년이상 존속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백제인 유중광이 창업한 금강조라는 회사를 찾아 20여년 동안을 지켜보면서 금강조 창업의 역사와 어떻게 이 오랜 기간 동안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고 발전할 수 있었는지를 금강조 가문에 역사와 경영철학에 대한 기록을 이 책에 정리하였다.
책에서는 오사카의 역사, 백제와의 역사적 사실에 바탕으로 금강조 창업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먼 옛날 백제인들이 부여 백마강을 따라 무안 앞바다를 건너 일본 큐슈와 시모노세키 해협을 통과하여 종착역인 오사카항 까지의 머나먼 항해의 길은 ‘사천왕사 왔소’ 축제를 보면서 기나긴 항해의 역사를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사천왕사의 모습은 백제인의 화려하고 위대한 기술문명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백제인에 찬란한 문화와 일본의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금강조 이 책에서는 백제인의 위대함과 일본의 장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된다.
특일 장인을 존중하는 일본의 문화는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것이다. 기술산업에 종사하는 우수한 우리의 인재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우와 처우의 개선 그리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야지 만이 기술산업은 더 강해질 것이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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