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0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을 읽었던 여운과 기대감으로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태양을 상징하는 듯 빨간색 표지와 해의 모습이 비친 창문을 연상하는 디자인이 잘 어울린다.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본 적은 있지만, 소설로는 처음 만났다.
작품의 내용은 가까운 미래에 AF(Artificial Friend)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아이들의 친구로 생산되어 팔려나가고 인간과 로봇이 함께 살아가는 환경에서 빚어내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는 클라라다. 로사와 클라라는 매장에서 매니저의 지휘를 받으며 인간 친구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태양광을 받아야 몸에 자양분을 받아서 활동할 수 있다. 자리에 따라 빛의 양이 달라지니 그것 때문에 다른 에이에프 친구들과 옥신각신하기도 한다. 소년 에이에프 렉스와 단짝 친구인 로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로사와 클라라는 이 매장에서 대표로 여길 만큼 중요한 존재다. 이들은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 중 단연 클라라가 월등하다.
어느 날 클라라가 창가에 서 있는데, 불편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바로 14세 반 나이가 된 조시다. 사람들의 나이도 추정하고 슬픔, 기쁨 등 감정을 읽어낼 줄 하는데, 다정하게 웃는 조시의 얼굴에서 한 조각 외로움도 읽어낸다. 인간의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에이에프라니. 이 부분에서 몇 해 전 읽었던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에서 접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공생을 말하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제대로 ’ 배워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아직 까지는 우리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잘하는 것이 더 많다고 했다. 인공지능의 한계는 바로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문제를 풀려고 하기 때문에 어이없는 실수를 한다고 했다. 반면 인간은 사람이나 물건, 환경을 이해하고 상호작용을 하는 고등한 영역이 있기에 인공지능을 좋은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안도했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사람과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감정 읽기 능력,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졌던 기억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그렇게 인간의 감정을 읽기 위해 노력하고 인간의 아이와 친구가 된 클라라를 만나게 된 것이다. 꼭 찾아오겠다던 조시와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드디어 클라라는 조시의 집으로 왔다. 새로운 환경은 왠지 조금 불편해 보인다. 늘 깔끔하게 정리된 매장과 달랐다. 더구나 가정부 멜라니아는 클라라를 대놓고 싫어한다. 같은 동료인 에이에프들끼리 있다가 인간의 가정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궁금했다. 조시의 이웃집 친구 릭과 그의 어머니, 조시의 언니 샐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조시의 어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매장에만 있던 클라라는 새 환경에서 제법 당당한 모습이다. 교류 모임 때문에 조시의 집으로 몰려든 손님들 속에서 짖궂은 친구들의 장난에 시달리다가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B3 에이에프로 살 걸 그랬다는 조시의 푸념을 듣기도 한다. 그때 클라라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정을 느낄 줄 아는 클라라지만 내색할 수도 없다. 모건 폭포에 조시의 어머니와 함께 바깥나들이를 하다가 죽은 언니 샐의 이야기를 했다가 혼나기도 하고, 조시 흉내를 내달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들어주는 등 지금은 아프지만 조시가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얘기하며 돌아왔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조시와 어머니는 클라라에게 냉랭한 태도를 보이면서 클라라를 힘들게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지만, 자신의 감정은 표현하지 않아도, 아니 표현할 수 없어서 편리한 존재가 인공지능 로봇일까. 사람들 사이에서는 감정이 상하면 관계가 틀어질 텐데 클라라와 조시 사이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그저 조시를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조시에게 좋은 친구가 되면 바랄 것이 없었다. 여기서 『남아있는 나날』의 집사 스티븐스가 오버랩 되었다. 달링턴 가의 ‘위대한 집사’로 35년을 살면서 나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복종하며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던 스티븐스 말이다. 사람과 로봇이라는 성격만 다를 뿐이다. 스티븐스는 나중에 일에 파묻혀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회한을 품지만 클라라는 끝까지 희망을 이야기는 부분이 대조적이었다.
클라라의 희망과 달리 조시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 가고 어머니 등 주변 사람들은 체념하기에 이른다. 이제 조시는 어떻게 될까.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꼽는다면 멕베인 씨의 헛간에서 조시를 위해 기도하는 장면이 아닐까. 꺼져가는 생명 조시를 살려 릭과 연결시켜 달라고 클라라는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영혼의 기도를 들어주듯이 어두운 밤 갑자기 태양이 떠오르며 눈부신 빛을 발산하는데... 이 장면은 그야말로 환타지였다.
어느 정도 사람의 감정을 읽으며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서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인간과 동일한 속마음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 탄생하는 날도 올까. 왠지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첨단 과학 변화의 과도기를 지나는 상황에 로봇이 가정의 구성원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 사람의 빈자리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특성을 보면. 그래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 작품은 사람과 인공지능의 상호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사람이 채워주지 못하는 따뜻한 정을 로봇이 채워줄 수도 있다는 희망. 그래도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 본문 번역 내용 중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자주 나온다) ‘등급이 높은 양복’ 이나 ‘등급이 높은 드레스’ 이런 문장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그것을 ‘고급의 양복’ 이나 ‘고급의 드레스’ 또는 ‘고품격의 양복’ 이나 ‘고품격의 드레스’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같은 의미인데, ‘등급이 높다’는 표현은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
|
“인간과 AI와의 만남과 우정을 통한 인간다움에 대한 사유”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출처: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1/03/08/kazuo-ishiguro-uses-artificial-intelligence-to-reveal-the-limits-of-our-own>
만약 당신 앞에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로봇이 있다면? 그 로봇이 나의 가족과 친구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당신은 그 로봇과 기꺼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시작과 함께 AI(인공지능)가 발달하고, 그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인공지능 친구 즉 AF(Artificial Friend)까지 생산 가능할지도 모른다.
소설 『클라라와 태양』은 몸이 아픈 인간 소녀와 AF와의 만남, 우정과 사랑 이야기이다. AF 클라라의 인간과 소통과 관계속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전작 『나를 보내지 마』에서 “나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나요?”라고 외쳤던 복제인간 캐시의 비통해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인간 복제와 복제 인간의 존엄성의 윤리에 대해 물음을 던졌던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번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성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한다.
인간과 AF는 정말 친구 관계가 가능할까? 친구는 어떤 의미일까? 소설 속 클라라는 아픈 소녀 조시의 AF(Artificial Friend)가 되기 위해 매장에서 조쉬에 의해 선택되고 그의 친구가 되라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조쉬에게 클라라는 친구의 모습보다는 가정부 멜라니아처럼 심부름을 하거나, 간병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친구는 동등한 관계를 맺는데 조쉬와 클라라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처럼 보인다. 클라라는 본인 스스로 판단, 사고할 수 있는 데도 조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마치 주인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반려동물의 모습, 프로그램된대로 일을 수행하는 로봇의 모습이 결합된 ‘반려 로봇’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조쉬의 오랜 친구인 릭과는 다른 모습이다. 릭은 조쉬와 친하다가도 의견이 대립하여 싸우기도 한다. 그러다 서로 용서를 하고 다시 또 친해진다. 그런 점을 보았을 때 조쉬의 말에 무조건 ’Yes’라고만 하는 클라라는 과연 조쉬의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클라라가 조쉬를 위해 자발적인 판단하에 맥베인 씨의 헛간으로 가서 태양에게 조쉬의 건강과 무사함을 빌게 된다. 이 장면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두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의 능동적인 판단하에 인간을 살리고자,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클라라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을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진심으로 그 사람의 행복과 무사함을 빌어줄 수 있을까 . 어떻게 보면 클라라는 로봇이면서도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보다 더 나은 인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마 인간이라도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숭고한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보여준 클라라를 과연 단순히 로봇이라고만 부를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중심 주제이자 사건을 반전시키는 역할을 하는 ‘태양’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태양은 일차적으로 클라라와 같은 AF의 주요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저자 태양을 종교적인 의미로 승화시킨다. 태양신 숭배 사상 속에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고 싶은 이집트 사람들의 소망이 반영되어 있다. 클라라도 맥베인씨 헛간에 비친 태양에게 조쉬의 건강과 무사함을 빌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클라라의 헛된 소망과 기도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 어쩌면 종교적인 태양신 숭배를 떠나 조쉬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클라라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고도 마음에 여전히 깊게 각인되는 문장이 있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고 그것은 조쉬 안이 아닌 조쉬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클라라의 말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인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소통과 연대에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들과의 연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스24X문화일보 #국민서평프로젝트 #읽고쓰는기쁨
|
|
태양빛을 이용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아티피셜 프렌드Artificial friend(AF)의 4세대 버전 B2 모델인 ‘클라라’는 가게의 쇼윈도에서 바깥 세상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쇼윈도 밖에서 ‘조시’라는 여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그 아이에게 선택받는 소망을 품게 된다. 가게 매니저는 아이들의 헛된 약속을 믿지 말라고 했지만, 얼마 뒤 조시는 정말로 엄마와 함께 가게를 다시 방문하였고, 신모델 B3가 새로 나왔음에도 구형모델인 클라라를 구매해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면 다른 것도 좀 물어보자. 이런 걸 묻고 싶어.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관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만약에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조시를 제대로 배우려면 조시의 습관이나 특징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어?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하지 않아?” (p. 320)
미래에 매우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인공지능 로봇이 어떤 한 인간을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따라 한다면, 우리는 로봇을 그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짜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오직 인간만이 특별하게 가질 수 있는 영역이 있기는 한 걸까. 이 소설을 읽으며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에 대해서 그저 과학기술적인 측면에서 서술된 글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깊게 고민해 보게 되었다.
소설은 에이에프인 클라라의 시선으로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들 사이에서 그들을 세심히 관찰하며 자신에게는 없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이성적으로 이해해 보려 하는 클라라의 모습은 어딘가 안쓰럽기도 하고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 모습을 통해 관찰자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감정들이 어떻게 보일지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해 보는 경험도 얻게 되었다.
조시를 관찰하고, 잘 돌보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 위한 목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클라라의 모습은 때때로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음의 경계가 어디까지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어려운 무언가를 해내는 것도 마음이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클라라의 행동도 그와 비슷하지 않은가란 생각이 들었다.
“가시기 전에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겠어요. 해가 저한테 아주 친절했어요. 처음부터 늘 친절했지만 조시와 같이 있을 때는 특별히 더 친절했어요. 매니저님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p. 443)
주어진 정보에 한해서만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내기 때문에, 항상 이성적이고 똑똑한 말만 할 것 같은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도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클라라가 말도 안 되는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 인간들도 클라라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희망’ 앞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비이성적인 믿음과 판단을 내릴 때가 있지 않은가. 태양이 우리를 보살펴 주리라 믿는 클라라나, 힘든 일 앞에서 신에게 기대는 인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클라라와 태양>을 읽으며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얻었다. 이 책을 통해 먼 미래에 우리가 하게 될 고민일지도 모르는 생각들을 미리 맛보았다. 희망을 잃고 흔들리는 인간들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리고 한 인간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클라라는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쓴 SF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인공지능 로봇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면, 소설책 한 권과 함께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태양빛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
|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줄 에어에프 인공지능 로봇을 판매하는 진열대 창가에 놓여진 한 로봇에게 마음이 끌리고 그 로봇에게 다가가 가만히 말을 건다.
"안녕? 내말 들려? 어제 너를 봤어. 어제 차를 타고 가면서 널 봤을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바로 쟤야. 내가 찾던 에이에프가 저기 있어!"
그렇게 조시와 에이에프 로봇인 클라라는 판매상점 창문을 사이에 두고 몇번의 조우를 한다. 다시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참만에 지키며 결국 조시는 어머니와 함께 상점에 들어와서 자신의 마음에 담아두었던 클라라라는 이름을 가진 에이에프를 구매한다. 신제품인 B3에 비하면 구형에 가까운 모델이지만 클라라는 다른 에이에프와는 다른 영리한 모습을 보이는 에이에프로서 관찰을 통해 배우는 속도와 세밀함이 다른 어떤 기종들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시와 함께 지내게 된 클라라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조시의 집의 주요 인물인 어머니와 조시와 가정부 멜라니아 그리고 조시의 가장 친한 이웃 친구인 닉의 모든것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배우고 또 사려깊은 말과 행동을 보이며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조시는 정상 아이들과 다른 허약한 몸에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회복을 할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예측할수 없을정도로 위중해져서 매번 조시의 컨디션이 이 가정에 가장 중요한 일임을 클라라도, 독자인 우리도 깨닫게 된다.
책속에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조시의 병이 조시의 어머니가 선택한 결정과 관련이 있으며 이 결정은 다수의 아이들의 부모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결정하는 '향상'과 관련있음을 짐작케 할수 있는 대목들이 책속에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이 '향상'은 무엇일까? 책속 어디에도 저자는 속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이 책 속 교류모임에서 만나는 어머니들의 대화를 통해, 또 이웃집 소년 닉이 '향상'을 선택하지 않은 어머니의 결정으로 일반 대학을 가지 못하는 상황들을 토대로 유추해본다면 아이들의 지적능력향상을 위한 유전자편집 기술을 선택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 중에 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가 조시같은 경우가 아닐까, 그리고 이미 비슷한 문제를 겪다가 결국 죽게된 조시의 언니 샐도 같은 경우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인공지능로봇이 각 가정마다 자연스럽게 보급되어 있는 환경과 많은 사람들이 기계에 대체되어 일자리를 빼앗기는 상황들이 언급되는것도 미래의 암울한 상황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들은 대학에 가기전까지 일반 학교가 아닌 오블롱이라는 기계를 통해 온라인 학습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조금은 낯설면서도 코로나 시기덕분에 익숙한 그런 모습들을 보여준다.
클라라가 조시의 가정에 온지 얼마 안되어 조시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조시의 곁을 지키는 AF 클라라가 조시를 나아지게 할 방법으로 자신이 에너지를 얻는 방식인 태양을 떠올리고 마치 신앙과도 같은 믿음으로 태양을 향해 기도하듯이 조시의 건강을 위해 빌고 약속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태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자 한 약속임에도) 자신의 몸속의 기능과 관련된 중요한 액체를 사용하면서까지 조시의 건강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클라라의 모습을 보면서 이쯤되면 이건 그냥 단순한 AF 기계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
인간과 고도화된 기계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클라라는 잘 정리되고 학습된 데이터로 최선의 결과를 보여주고 세심하고 사려깊게 대답하지만 마음은 없는것일까. 그렇다면 무모할 정도로 조시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클라라는 그렇게 해야한다는 데이터에 명령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계일 뿐일까. 혹은 아무런 이기심없이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선의의 결과를 바라는 사람보다 나은 존재인 것일까.
클라라는 기계이기에 계속 학습하고 배워간다. 결국 조시의 죽음을 대비한 끔찍한 프로젝트의 전말을 알게되고 그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속에서 우리는 조시의 엄마와 주변 인물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조시의 죽음을 대비한 엄마의 사랑은 그 괴로움을 충분히 짐작하면서도 소름이 끼친다.
저자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AF라는 로봇을 등장시켰지만 이 소설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로봇이라는 객관화된 사물을 통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별히 아픈 아이를 두고 있는 엄마의 감정의 변화와 생각의 변화들을 섬세하게 잡아내어 묘사한 모습들은 흡입력있게 다가온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우리가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고 믿는 감정들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고도화된 인공지능의 로봇과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것인가. 혹시 우리의 착각은 아닐까. 우리 내면에 가 닿을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계속 믿고싶어하는 우리만의 착각은 아닐까라고. 혹은 우리의 감상과 감정에 지나지 않는것 아닌가라고.
그러나 자신의 역할을 다 마치고 야적장에 버려진 클라라가 우연히 찾아온 매니저를 보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적어도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을 확연히 깨닫게 된다. 조시가 만약 죽을경우 조시를 대체할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학습하면서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할수 있을까. 겉모습이 똑같이 생긴 조시의 외형을 하고 조시의 행동, 습관, 생각들을 학습한 자신이 그 내면을 대체할 경우 조시의 엄마나 주변 인물들은 새로운 조시를 기존의 조시로 생각하고 똑같이 받아들이고 사랑할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던 부분이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필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바로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우리안에 있는것들이 아니었음을 깨우쳐주고 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고 오로지 그것들만이 나를 결정하고 나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나를 나답게 완성해주는것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특별한 감정과 관계속에 내가 오롯이 설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거장 가즈오 이시구로는 AF라는 조금은 생소한 소재로 우리에게 다가와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근간은 역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이며 저자의 인간의 감정에 대한 끈질긴 관찰과 묘사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 질문들에 우리 스스로가 답을 해볼 차례이다. 나를 사랑하고 나와 소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지, 어떤 특별한 기억과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
|
굉장히 따뜻한 얘기인데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이유는 뭘까? [토이스토리]의 버려진 인형들처럼 마지막의 황무한 야적장에서 클라라가 치매노인처럼 기억의 편린들을 주어 삼키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래의 가상세계 속에서는 아이들이 향상시술(?) 등을 거쳐서 사회에 발을 내딛는 시스템인 듯 싶다. 반대로 그런 시스템 속에 갇히기 싫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무섭거나 미개하거나 두려워 한다. 그리고 학교라는 제도가 사라지고 온라인으로 대체되거나 가정교사 시스템의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되면 접할 수 있는 대인관계의 폭이 사라지기 때문에 교류라는 명목으로 사적인 모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친구이면서 보호관찰(?) 쯤 되는 명목의 에이에프가 대량으로 팔리고 집집마다 보급되기 시작한다. 필수 가전인양 받아들여진다. 처음 전시장에서의 클라라는 다른 에이에프들보다 관찰력과 공감력이 띄어난 아이였고, 조시를 만나고 부터는 운명의 끈처럼 그 아이만 기다리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조시의 집에 들어가서는 향상의 부작용인 것 같은데 아픈 조시를 최근접거리에서 관찰하고 보살피게 된다. 감정적인 교류부터 조시의 가족들과 절친인 릭과 엄마와도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제목에 거론되고 있는 '태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에이에프들에게 물리적인 힘을 주기도 하고 클라라에게는 감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신적인 존재, 죽은 줄만 알았던 거지아저씨를 벌떡 일으키게 하는 자양분을 줄 수 있는 따뜻하고 인자한 존재이다. 조시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자신의 중요한 부속품이 될 수 있는 부분도 다 내어 줄 수 있는 강력한 헌신과 배려가 있는 에이에프를 도대체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클라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만 전달할 뿐 아니라 조시와 관계된 모든 관계에서 윤활류 같은 역할도 한다. 버팀목처럼 그 자리에서 늘 긍정적인 표정과 신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 누군가 있다면 어떨까? 바람이 불고 태양이 구름에 가려 있어도 모든 것이 소진 됐다고 생각해도 한줄기 태양이 반드시 뒤에서 비치고 있음을 믿게 해주는 누군가 말이다.
조시는 극적으로 어른이 되고 비록 그녀의 삶을 찾아 떠나가지만 클라라는 그것 만으로도 소임을 다했다는 듯 추억을 보듬고 있다. "대체 덕에 나는 세상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됐어. 그래서 뭐가 중요하고 뭐가 그렇지 않은지 구분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 "
“저게 해의 무늬야. 걱정되면 저걸 만져 봐. 그러면 다시 튼튼해질 거야.” 인간, 기계, 자연, 문명 등등 생각할 꺼리가 많아서 좀 무거워 질 수도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라의 초지능적인 에이에프로서 할 수 있는 최선과 순결한 그 어떤 감정에 맘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와 형상을 서로 떼놓고 사유했던 플라톤과 달리, 둘의 관계는 불가분이라고 보았다. 자신의 고유한 형상 안에 내재된 본질을 찾는 것이 자아실현이요, 개인의 완성이라고 했다. 정의로운 것/아름다운 것/선한 것을 관조하면서 그에 닮게 사는 것이 곧 행복이었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번 작품에서 에서 인간의 본질에 관해 관조한다. 인조인간 클라라의 눈을 통해서다.
이야기의 배경은 미국. 작가는 4살 때 영국으로 건너간 일본계 영국인이다. 왜 미국으로 무대를 설정했을까? 아무래도 미국이 영국보다 디스토피아적인 측면을 많이 보이고, 상대적으로 역동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싱글 맘 크리시는 아픈 딸 조시를 키우고 있다. 첫째 딸을 병으로 잃은 아픔이 있다. 그녀는 전남편 폴과 가끔 만나면서 조시를 위한 해결책을 함께 찾기도 한다. 조시의 말 동무라도 삼으려는 것일까, 크리시는 인조인간 클라라를 매장에서 사서 데리고 온다.
이야기는 클라라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거의 백지 상태에 놓여 있는 클라라는 존 롤즈가 말한 원초적 무지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상대적으로 선입관이나 편견에서 자유롭다. 우리는 클라라를 통해 조시와 가족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클라라는 태어난 이후 자신이 보고 듣는 모든 것들에서 배운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인조인간이나 인간에게 모두 공통점이다. 인간성을 갖추기 위한 하나의 필요 조건일 수도 있겠다.
한편 클라라는 아픈 조시를 위해 어떤 일을 꾸미기로 결심한다. 선한 영향력 같은 것이기도 하고, 태양의 자양분 같은 것이기도 하다. 딱히 논리를 댈 순 없지만 클라라의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다. 이때 태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양은 클라라의 에너지원이면서 생명을 상징하는 자연과 같은 존재다.
우리는 클라라가 나서는 모험도, 꾸미는 음모도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기꺼이 함께 할 수 있을 듯한 묘한 체험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엇을 간절히 바랄 때면 때로 무턱대고, 때로 무모하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의 선함을 믿는 클라라는 주변을 희망적으로 변화시킨다. 때 묻지 않은 시선, 순수한 희망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작가는 2005년 《나를 보내지 마》에서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의 이야기를 다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번 《클라라와 태양》에선 AI와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공학자인 조시의 아버지 폴은 클라라에게 말한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중략) 조시를 제대로 배우려면 조시의 습관이나 특징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어? 조시의 마음을 배워야 하지 않아?”
결국 소설은 인조인간이든 인간이든 형상 자체 보다는 그 안의 본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본질이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요, “두 사람이 서로 안 만나고 산다 해도 어떤 부분은, 마음 속 어딘가에서는 늘 같이 있을 거라는” 사랑과 믿음이다.
우리는 작가 특유의 능준한 필력과 표표한 문체 덕분에 방대한 이야기 속으로 스펀지처럼 빠져든다. 다 읽고 나면 무언가 번뜩이는 영감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게 거장의 솜씨가 아닐까. |
|
인공지능로봇은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가 되도록 프로그래밍을 하면 되니까. 문제는 다른 분야에서도 늘 그래 왔지만 인간 쪽에 있다. 인간이 과연 인공지능로봇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 나는 못하지만 너는 나에게 해 달라는 일방적인 요구에서 오는 슬픔, 작가는 너무도 잔잔하게 그러나 더할 수 없이 깊고깊게 이 슬픔을 이야기한다. 자칫 이 슬픔을 몰라볼 뻔 했다. 그래서 더 슬퍼졌지만.
클라라는 인공지능로봇으로 나온다. AF라고 불린다. AF가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 환경에 등장한다는 설정이 배경이다. 언제가 될까? 곧 올까? 아니, 모습만 갖춰지지 않았을 뿐, 이미 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인간의 친구로만 기능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AF. 작가의 상상력은 차분하고 세밀하며 끈질기게 이어진다. 이곳저곳에서 금방이라도 클라라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책을 읽고 읽은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면 화제가 참 다양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야기에 담긴 요소들이 풍부하다. 문학도 과학도 문명도 기술도 감정도 사랑까지도. 건드려지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니 읽고 있는 내내 말하고 싶은 것들로 넘쳐흐르는 마음의 가장자리를 막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한 줄기도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 정도로. 그러나 이 또한 곧 포기하게 된다. 흘러넘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은 채로는 다음 장을 읽을 수 없게 되고 마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클라라는 야적장에 남았다. 인간의 친구로서 아주 많이 행복했다는 클라라. 친구였던 조시도, 딸이 되어 달라고 했던 조시의 엄마도, 조시의 친구였던 릭도 이제는 옆에 없는데, 클라라의 기억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있다. 가끔 깜박거리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렇게 서서히 모든 기억이 사라져가겠지. 그리고 사라지는 기억과 같이 클라라도 없어지는 것이겠지. 그저 기계의 부품으로만 남는 채로.
이제부터 태양을 어떻게 보나. 태양 발전전지판만 보더라도 클라라가 떠오를 것 같은데. 기계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계가 사람의 적이 되는 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이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수준과 비교한다면. 그러니 이런 생각도 든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기계를 사람처럼 만들면 안 되겠다는 것. 이유는 SF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기계가 무슨 반란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사람을 기계의 하나로 취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는 클라라의 말이 못내 슬프다. |
|
대체와 향상을 통해 본 현대인의 불안
한가로운 오후에 펼쳤던 책장을 덮으니 노을 진 석양의 따뜻한 주황빛이 방 안을 가득 메운다. 이 순간 내가 느낀 아름다운 감정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것들이 빠르게 '대체'된다. 그것들이 대체되는 이유는 더 '향상'된 기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향상된 기능을 갖춘 대체품들은 삶을 더 편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더 향상된 기능의 대체품을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현대인들에게 고질적인 불안을 야기하게 되었는데, 대체품들이 나오는 속도가 더 빨라짐에 따라 그들이 가진 것에 부족함을 느끼는 속도 또한 빨라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부족함에 불안해하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점점 더 개인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으로 변해간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클라라와 태양>에서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의 시선을 통해 이러한 현대인들의 단면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조시의 어머니인 크리시이다. 그녀가 조시의 언니인 샐에게 한 번 실패한 바 있는 유전자 편집을 다시 조시에게 시도하는 이유는 단지 딸에 대한 사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혹시 조시의 집에서 진행되는 '향상된 자녀들의 모임'에서 자신은 더 향상된 대체품, 즉 향상된 자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불안해서이지는 않을까? 크리시는 너무 바쁜 일에 대해 자신을 걱정하는 이혼한 남편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계속 당신 말대로 매달릴 거야. 내가 그만두는 날에는 조시의 세계가, 내 세계가 무너질 테니까." 그녀는 계속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만 한다. 더 향상된 대체품을 구입하지 못하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더 향상된 것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우리의 불안이 정말 해소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향상된 것에 대한 욕망은 곧 더 향상된 것을 가지지 못한 불안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필연적으로까지 보이는 이 불안을 해소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클라라와 태양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클라라는 태양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흔히 갓 태어난 아이가 자신에게 양분을 주는 어머니를 통해 세상을 보듯이 클라라는 태양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녀가 본 세상에서 태양은 자신이 없었으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에게 재회의 기쁨을 주고,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클라라에게 태양은 어떤 것과도 대체할 수 없는 신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클라라의 인생에서 처음 불안(조시의 병)이 찾아왔을 때 그녀가 태양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클라라는 조시를 치유하기 위해 자신의 일부분을 희생하면서까지도 태양에게 기도한다. 클라라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태양의 특별한 자양분은 어떠한 향상된 기술로도 낫게 하지 못했던 조시의 병을 단숨에 고쳐 클라라의 불안을 말끔하게 해소시켜준다. 조시의 치유는 곧 현대인의 불치병인 불안의 치유로 해석할 수 있다. 향상된 기술과 크리시의 돈으로도 절대 고칠 수 없었던 조시의 병이 태양의 딸인 클라라가 보여준 대가 없는 헌신과 사랑으로 치유되었듯이 현대인의 불안 역시 진정으로 누군가에게 헌신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클라라는 야적장에서 우연히 만난 매니저에게 조시를 자신으로 대체하려 했던 카팔디 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줄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넘치도록 가지고 있다. 부족한 것에 불안을 느끼기보단 가지고 있는 것을 베푼다면 태양이 항상 우리를 친절하게 비춰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
친구. 그리고 선택. 친구가 되는데 필요한 자격이 있을까. 필요에 의해 만나게 된 사이에도 우정은 싹 틀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일방적인 지명에 의해서 선택되는 관계라면 어떨까?
그 유명한 만화 '베르세르크'에서 '가츠'는 '그리피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어 역설적이게도 그리피스의 곁을 떠나간다. 본인이 그리피스와 대등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개인적인 수련을 하려고. 친구란 그런 존재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존재.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존재. 본인의 의지로 머무를 수도 떠날 수도 있는 존재
그런데 여기 한쪽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관계가 있다. 아티피셜 프렌드. 줄여서 AF. '친구'라 이름지어졌으나 사고 팔 수 있고 고객인 아이나 아이의 보호자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존재. 상품인지라 전시되어져야 한다. 나름 좋은 자리에 놓이기 위해 경쟁을 하고, 아이의 눈에 들기 위해 어필을 한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나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시켜야 한다. 가끔 문학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데 인공지능의 의미에 대해,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문장이 '진행형'인 이유는 읽고나서 더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한가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어린왕자'의 그 유명한 구절인 '길들인다'는 의미는 동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인공지능 로봇'에게까지도 통용된다는 것 정도.
제목인 '클라라의 태양'에서 AF인 클라라의 '태양'이란 자신을 선택한 인간 아이 '조시'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수단'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결국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을 대체할 수 없고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행동을 학습하기에 주어진 상황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을 법한 행동 중 확률적으로 높은 것을 선택하여 행동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조시'의 어머니의 한때의 바램처럼 '조시'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시'의 미래는 '조시'의 선택에 따라 무한정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라라'는 주인(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는 결코 대등한 관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을 대체할 수 없다.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주인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 특기할만한 부분은 '클라라'가 '태양'을 대하는 태도이다. '조시'가 건강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빌고, 실제로 '조시'의 방에 '태양'이 들어온 이후 '조시'의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믿는다. 태양이란 클라라에게 신앙인 것인가. 인공지능과 신앙이라니.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클라라'의 믿음이 눈물겹다. |
|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의 클라라와 태양을 읽었다. 예전에 이 저자의 '나를 보내지마'를 읽고 처음으로 이작가를 알게 되었다. 잔잔하고 평화롭게 흐르는 전반부를 넘어 충격적인 사실 속에서도 중 후반부까지 그러한 문체가 이어지는데, 굉장히 신선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슬픔을 슬프다고 쓰지 않고, 그 슬픔을 엄청나게 큰 회오리로 날려내는 작가를 드디어 만난거였다. 소설 속에 슬프다는 말이 한마디도 안나와도, 우리는 소설속의 주인공들의 담담한 태도에서 그 애잔함과 슬픔을 볼 수 있다. 이번 신간 클라라와 태양에서도 저자의 그러한 담담한 문체속 충격적인 내용이 이어질것으로 기대하였다. 전작인 나를 보내지마 보다는 드러나는 사실들이 그닥 충격적이지는 않았으나, 곰곰히 곱씹어 보면, 그래볼수록 마음이 아픈 구석이 많은 책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클라라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미래의 어느 지점,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감수성까지 흉내내는것은 물론 계속 진화하며 학습하는 그시점에 클라라는 어느 상점에 진열이 된다. 클라라는, 바로 그 시대의 유행인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생산된 인공지능 로봇이기 때문이었다. 클라라외에도 상점안에는 여러 친구들이 있었으며 순차적으로 인간어린이의 친구가 되기 위해 팔려나간다. 그중에서도 특히 감수성이 남달랐던 클라라는 어느 한 아픈 소녀의 집에 팔려나간다. 소녀는 아프다. 그 소녀의 진정한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가던 어느날, 이 집에서 클라라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된다. 소녀가 아픈 이유는, 어머니가 무리하게 강행한 유전자 향상의 후유증이었으며, 그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이 아픈 소녀를 대신할 인공지능 로봇으로 클라라를 구매한 것이었다. 그러나, 클라라는 인간여자아이를 대신 할 수 있는 삶이, 인간 여자아이로 대접받으며, 살 수 있는 삶이 펼쳐질 수 있는데도, 이러한 행운을 자기의 의지로 거부한다. 결국, 인간아이를 대신하기 보다는 인간아이의 친구로 끝까지 남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도 포기한 그녀의 인간소녀의 건강회복을 위해서 클라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분서주 한다. 그것은 바로 그녀, 클라라의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에게 남몰래 비는 것이었다. 그녀의 인간 친구의 회생을 빌고 또 빈다. 그녀 만의 작은 공작도 수행한다.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에너지원이자 신인 태양은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 인간아이가 건강해 지고, 아이는 무사히 성장해 대학엘 간다. 인간아이의 친구로서의 역할을 마친 클라라는 이제 이집을 떠나야한다. 그래도 그녀는 만족했다. 인간보다 더 진한 인간성을 가진 클라라 이젠 안녕. * 본 서평은 내일을 꿈꾸는 꿈쟁이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