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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인스타에서 먼저 접하고 벚꽃 무리를 닮은 분홍빛 화사한 표지에 사로잡혔다. 처음 만나게 된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가 31세에 요절한 천재작가라고 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작가 소개를 읽고 나서 맨 뒤의 작가 연보를 읽었다. 형이 빌려온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읽고 나쓰메 소세키에 빠져서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카지노 소세키‘라고 서명하기도 했다는 얘기를 접하고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좋아했다니. 요즘 긴 글만 계속해서 읽다가 만난 단편은 짧은 호흡으로 쉬면서 생각할 수 있는 틈이 있어 읽기에 좋았다.
가지이 모토지로가 실제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7년 정도이며, 거의 병상에서 구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온천 여관에 요양하러 가서 쓴 이야기가 많고, 아픈 사람, 불안을 안고 사는 우울한 사람, 피로에 지친 고단한 사람 등이 많이 나온다. 그렇게 병으로 시달리는 중에도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 열정에 숙연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고통스런 삶 속에도 희미하지만, 유머도 느껴졌다. 그랬기에 그 힘으로 버텨냈겠지. 열두 편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는데 이 중 인상적인 작품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태평스러운 환자
폐병으로 고생하는 요시다가 주인공이다. 열이 오르고 심한 기침으로 고생하면서도 단순한 독감이라 여기고 의사를 만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의사를 찾아갈 무렵에는 꼼짝도 못 할 만큼 쇠약해졌다. 잠을 제대로 못 이루게 되면서 불안감에 휩싸여 온갖 생각이 부유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요시다의 방에 고양이가 들어온다. 역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 등장한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몇 번이고 쫓아내어도 자꾸만 들어와서 아픈 요시다의 신경을 건드린다. 이 고양이도 나름 자기주장이 강한 녀석 같다. 전에는 요시다의 베개 쪽으로 찾아들었는데 이번에는 이불에서 잠들려고 한다. 아무리 못 오게 막아도 대담하게 베개 위로 올라와 이불 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기분 좋게 잠 잘 수 있는 것이 소원인 요시다는 이제 고양이와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고양이 때문에 어머니를 깨울 수도 없고 이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느라 안간힘을 쓴다.
다행인지, 조금 견딜 수 있게 되었을 때 ’힘들었던 2주간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그 병으로 죽었다든가 병을 치료하려고 별별 방법을 쓰다가 죽어간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울해진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폐병을 낫기 위해 인간의 뇌수 구이를 먹었다며 어머니가 요시다에게 그것을 권하자 심기가 불편해진다. 또 언젠가는 누군가 목매어 죽은 밧줄을 “그냥 속는 셈치고” 먹어 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병원에서 만난 간병인은 주전자에 생쥐를 넣고 다린 것을 아주 조금씩 나눠 마시다 보면 ’한 마리를 채 다 먹기도 전에‘ 낫는다는 끔찍한 말을 듣는다. 정작 자기 자신은 태평한 환자이건만 주위에서 먼저 알아차리고 처방전을 내리는 것이다. 병에 걸려 마음이 약해진 사람들에게 무엇이 좋다는 말엔 귀가 솔깃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결국 병이란 살아있는 동안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말로 매듭짓는다.
‘병이란 결코 학교의 행군처럼 견딜 수 없는 약한 사람을 행군에서 제외시켜주지 않는다. 마지막 죽음의 골로 갈 때까지는 어떤 호걸이든 겁쟁이든 모두 같은 줄에 서서 마지못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P41)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화자는 어느 무더운 여름 저녁 한 카페에서 두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 얘기가 소설의 주된 이야기다. 벼랑 위에서 다른 사람의 창문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창문을 통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린아이와 밥을 먹고 있는 남자를 보며 눈물을 흘릴 뻔했던 기억,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장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보였다. 어떤 때는 음흉한 욕망으로 비밀스럽게 다른 사람을 훔쳐보려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그 감정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그것은 인간의 기쁨이나 슬픔을 초월한 어떤 엄숙한 감정이었다. 그가 생각하던 ‘인생의 무상함’이라는 감정을 넘어선 어떤 의지력이 느껴지는 무상함이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풍습을 떠올렸다. 죽은 자를 눕히는 석관의 표면에 음탕한 장난을 치는 사람의 모습이나 암양과 성교를 하는 목양신의 모습을 새기던 그리스인의 풍습을……. 그리고 생각했다.‘ ‘그들은 모른다. 병원 창문 안 사람들은 벼랑 아래 창문을. 벼랑 아래 창문 안 사람들은 병원 창문을. 그리고 벼랑 위에 이런 감정이 있다는 것도…….’(P110)
두 청년 이시다와 이쿠시마는 비밀스럽게 타인을 엿보는 행위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이들의 창문 바라보는 행위는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살아가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고,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다는 인식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지는 않은지.
겨울 파리
아픈 몸을 요양하기 위해 온천 여관에서 지내면서 겨울 동안 방에서 함께 살았던 파리들을 관찰한 이야기다. 바깥으로 절대 나가지 않고 병자인 ’나‘를 흉내 내는 것 같다고 한다. 여름의 파리는 씩씩하지만, 겨울의 파리는 움직임이 느리다. 하지만 말라죽기 직전인 파리들이 햇빛 속에서 교미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면서 ’이 무슨 ‘살고자 하는 의지’란 말인가!‘ 라며 탄식을 한다. 그저 자연스러운 파리들의 생존 본능을 깨닫고 화자도 힘을 얻는 듯하다.
한번은 우체국에 나갔다가 지쳐서 승합차를 얻어 탔는데, 여관으로 돌아갈 길이 멀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어두워지는 산속에 내리게 된다. 아픈 몸을 산골짜기에 스스로 내치게 된 셈이다. 첩첩산중에 쥐죽은 듯한 고요와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걷고 또 걷는다. 자신이 ’내버려두고 온 우울한 방‘이 생각나고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는 상상을 한다. 이 산속을 벗어나려면 걷고 또 걷는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괴롭고도 절망적인 풍경인가. 나는 나의 운명 그대로인 길 안을 걷고 있다. 이것은 내 마음 그대로의 모습이고, 여기에서 나는 햇빛 속에서 느끼는 어떤 기만도 느끼지 않는다. 내 신경은 어두운 전방을 향해 뻗어 있고, 지금은 나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형벌 같은 어둠, 살을 에는 듯한 혹한, 그 속에서 내 피로는 즐거운 긴장감과 새로운 전율을 느낄 수 있다. 걸어라, 걸어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어라. 나는 잔혹할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걸어라. 걸어라. 걷다가 죽어버려라.(P132)
극한의 추위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산속을 걷는다는 건 얼마나 오싹한 일인지. 그럼에도 차가운 공기 속을 가르며 걷는 화자에게서 어떤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온 ‘나’는 상한 몸으로 며칠을 앓아누워 있다가 문득 파리가 한 마리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후련한 마음이기보다는 오히려 파리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버린 것을 알고 우울해진다. 귀찮은 존재였지만 무언가 움직이는 생물과의 동거에서 무언지 모를 살아있음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레몬
교토가 배경인 이 이야기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덩어리’를 안고 있는 화자가 온종일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초라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에 강하게 끌렸는데, 큰길보다는 지저분하고 친숙한 뒷골목이 좋았다. 병색이 짙은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고 깨끗한 여관방에서 한 달 정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자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화자가 보였다. 레몬을 좋아하던 ‘나’는 과일가게에서 레몬을 샀다.
‘나는 오랜 시간 거리를 걸었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아서 나는 거리 위에서 굉장히 행복했다. 그렇게도 집요했던 우울함이 이런 과일 하나로 풀리다니. 때로는 확실하지 않은 어떤 것이 역설적으로 사실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가사의한가.’(P147)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이더라도 무언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마루젠(서점)에 가서 화집을 탑처럼 쌓고 그 위에 레몬을 올려놓고 나온다. 마치 폭탄을 설치하고 나온 악당이 된 것처럼 기이한 상상을 하면서. 역자 후기의 해설에 의하면 <레몬>의 무대인 마루젠 교토는 1907년 산조에 문을 열어 1940년 가와라마치로 자리를 옮겨 영업하다가 2005년 폐점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교토 시민들은 이 서점 예술 서적 코너에 레몬을 놓아두는 이벤트를 벌여 화제가 되었다는 얘기가 들어있다. 이 작품의 단편들을 통해서 작가가 고통 속에서도 마냥 주저앉지 않는 맑고 깨끗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기이한 상상력과 짧은 일탈도 때로는 삶의 의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벚꽃나무 아래
봄이 왔다. 겨우내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여린 싹이 나오고 아름답게 활짝 핀 꽃을 보면 경탄해 마지않는다. 그게 보통 건강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 화자는 너무 아름답게 핀 벚꽃을 보고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생각해 보니 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오랫동안 병에 시달리다가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면 싱싱하게 피어오른 아름다운 꽃도 너무 낯설게 보이지 않을까. ‘나’는 아픈데 주위의 모든 것은 건강하고 빛나 보인다. 그래서 더욱 정이 가지 않는다. 뭔가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위안거리를 찾아야 한다. 아래의 문장이 이것을 증명해 준다.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휘파람새와 박새도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비로소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P200)
아픈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다 보면 누구든지 악귀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저 벚꽃이 원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시체를 파먹고 살아서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 거라고 상상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내 동생이 예쁘지만 내가 좀 더 예뻤으면 좋겠다는 시가 떠올랐다. 조금 삐딱한 시샘이라도 해서 화자가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눈감아 주고 싶다. 사물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고유의 미’를 발견해 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이전에 작가 자신이 고통스런 삶을 이겨내는 방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화자의 기이한 상상력에 충분히 공감하고 미소짓게 한다.
아프고 고단하고 지친 삶 이야기를 읽으며 건강한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새삼 느꼈다. 이제 벚꽃은 다 지고 말았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누구나 피로감이 역력해 보인다.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복잡한 오늘을 살고 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남긴 이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우리가 가진 소박한 일상이 한층 더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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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벚꽃나무 아래』는, 단편소설이 아닌 일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산문집 분위기를 풍긴다. 그가 십대에 앓기 시작한 폐결핵은 죽을 때까지 이어져 31세라는 이른 나이에 서둘러 생을 마감하도록 재촉했다. 7년의 작품 활동을 했고, 사후에 더 큰 명성을 얻었으며 지금까지 천재 작가로 불리고 있다. [작가 연보]에 소개된 작가의 삶을 작품에 투영한 자전적 소설임을 발견하게 되지만, 일반 소설처럼 우발적 사건이 다뤄지지 않을 뿐더러 책 속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대화체도 적으며 대부분 일인칭 화자의 독백 형식을 취하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의 글이 계속 읽히는 이유는, 사물을 대하는 독특한 그의 시선과 기이한 상상력 덕분일 것이다.
작가 자신이 대부분의 삶을 병약한 육신에 의존해야 했으나 사물을 향한 굴절된 모순에서, 보통 사람들이 간과했던 부분을 그만의 방식으로 정밀하게 관찰하고 해석해냈다. 그 표현방식은, 문학적 기교에 강한 개성이 더해져 일상의 문체가 결합된 파스텔톤의 풍경화 같은 느낌이다. 잦은 병치레로 인해 우울함과 죽음을 전하지만, 허무나 절망이 아닌 위트와 기발함으로 치환하는 능력이 있다. 이는 <겨울 파리>와 <레몬>에서 한층 부각되어 보이다가 책과 동명의 제목인 <벚꽃나무 아래>에서 절정에 이른다.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한 카페에서 두 청년이 만나 '창문을 보는 취미'에 대한 담론을 이어간다. 이쿠시마는 남녀의 베드신을 목격한 것을 들려주고, 이시다 역시 같은 욕망을 갖고 있다. 이내 이시다는 이쿠시마가 알려준 벼랑 위에서 수많은 창문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낯뜨거운 베드신 현장에 주목하기보다 다른 창문 안에 갇힌 사람들과 또다른 창문 안에 갇힌 사람들의 온도 차를 발견한다. 인간의 죽음과 음탕함이 칸 하나 사이로 교차한다는 것을.
<겨울 파리> '겨울 파리'에 대한 정의가 평소 우리들이 느꼈을 정서와 아주 잘 부합한다. '여름철의 뻔뻔함과 밉살스러울 정도의 민첩함을 잃어버리고 온 것', 겨울 동안 함께 주인공의 방에서 살았던 겨울 파리들의 이야기이다. 창문을 열어 두어도 결코 바깥 공기 속으로는 나가려 하지 않고 병자인 주인공 흉내를 내는 것 같은 겨울 파리들은 햇빛 속에서 교미를 하며 아등바등 살고자 하는 생명들이다. 헌데 주인공이 사흘 동안 방을 비운 사이, 파리가 모두 사라졌다. 닫힌 창문과 데우지 않은 방 탓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변덕스런 조건이 자신에게도 있을 것 같아 우울해한다.
<레몬> 초라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주인공. 그에게는 한 푼의 돈도 없지만 무기력한 그의 촉각을 유혹하는 것을 찾는 중이다. 뜻하지 않게 획득한 레몬은, 오랜 시간 자신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걷히고 굉장히 행복해진다. 이내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둔 레몬을 두고,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중량으로 환산한 무게'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평소 피해가던 마루젠을 들어가고, 책으로 성을 쌓은 뒤 꼭대기에 레몬을 올려두고 나간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 재밌을 것 같다는 흥분에 휩싸인다. 레몬이 폭탄이 된 순간이다.
<애무> 검표 펀치로 구멍을 뚫어보고 싶은 고양이 귀, 고양이 발톱을 전부 잘라버려서 나무에 못 오르게 하고 싶은 심술까지 상상하다가 결국 기력을 잃고 죽지 않을까 슬퍼한다. 이내 그의 꿈엔 '고양이 앞발로 만든 화장도구'까지 등장한다. 그걸로 파우더를 얼굴에 펴 바른다면 고운 털로 감싸인 벨벳 느낌이 간질간질 날 것만 같다.
<벚꽃나무 아래>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왜냐하면 벚꽃이 저렇게 멋들어지게 핀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이유엔 설명하기 힘든 모순이 담겨 있다고 역설한다. 주인공에겐 멋진 벚꽃에 대비되는 잔인하고 슬픈 사건이 필요하다. 그런 균형이 있어야만 자신의 이미지도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단편선 #벚꽃나무아래 #가지이모토지로 #위북 #일본단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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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나무 아래> 가지이 모토지로 저/ 이현욱, 하진수, 한진아 공역 위북(webook)/ 2021년 4월 16일
"병약한 천재 작가의 기이하고 상상력이 만들어 낸 독특한 정신세계를 들여다보자."
1. 들어가며
우리가 사는 인생은 변덕스런 날씨와 같을 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햇빛 쨍쨍하고 화창한 맑은 날이지만, 또 어떤 날은 구름이 잔뜩 끼고 온통 회색빛의 흐린 날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날은 하늘이 온통 까매서 아무 것도 안 보이고 비가 억수같이 오는 비가 오는 날이기도 하다. 이렇게 인생은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고 하루종일 비가 오는 우울한 날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인생이 맑은 날은 하루도 없고 온통 흐리고 비가 오는 날만 있다면 어떨까? 온통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어떨까? 핑크색 꽃망울을 터트리며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를 보며 따뜻한 봄이 왔음을 마냥 기뻐할 수만 있을까.
여기 그렇게 인생을 고통과 절망 속에 살다 간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며 죽음의 순간까지도 병상에서 글을 쓰다가 삶을 마감한 한 남자가 있다. 그렇게 힘겹게 병마와 싸웠지만 끝내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작가의 불운했던 삶과 핑크색 표지의 벚꽃이 흩날리는 이쁜 표지의 책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과 이 핑크빛의 화사함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일부러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정말 벚꽃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이었다. 평생을 병마와 싸우다 간 작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떨지, 그 세상 속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했는지도 궁금했다. 간접적으로나마 이 책 속에 담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저자의 마음을 느끼고도 싶어 이 책의 책장을 펼쳐본다.
2. 책 속으로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벚꽃나무 아래] 중에서-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일본의 천재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단편선 '벚꽃나무 아래'에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문장이 내 머릿 속에서 계속 맴돌면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강렬하고 인상적인 문장이기도 했지만, 이 문장이 품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자, 섬뜩하기도 했다. 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왜 아름다운 벚꽃나무 아래에 시체가 묻혀있다고 말하면서 그 아름다움조차 공포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작가인 가지이 모토지로는 오랜 시간동안 병마와 싸우며 시달려 왔다. 20살에 폐결핵을 진단받고 7년 간의 투병생활 중에서도 그는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주로 병상에서 구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피곤하다. 그렇다고 우울함에 젖어,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회복될거라는 막연한 희망에 젖어 꿈과 미래를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의 병든 삶을 조용히 견디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위안을 찾는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병든 삶의 모습이지만, 어둡고 절망적이지 않고 맑고 깨끗한 숨결이 깃들어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모습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감각적이고 기이하기도 하다. 이 책 속 [겨울 파리], [애무]에서 그의 기이하고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은 그와 마찬가지로 삶이 고단하고 아프고 지친 나약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이 곧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속에서 고단한 사람, 아픈 사람, 지친 사람들이 작은 행복으로 위안을 얻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불치병에 걸려도, 삶이 따분해도, 사는 게 우울하기 그지 없어도, 하루하루가 절망적이라 해도 그런 삶 속에서도 작은 행복이 존재하고, 그 행복으로 그들은 그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다. 비록 작품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는 침울하고 어둡긴 하지만, 그런 소소한 행복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작가는 그런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현실의 삶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속에는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12편의 단편 속에는 작가 가지이 모코지로의 삶과 그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 12편 중에서 인상깊었고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난 작품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태평스러운 환자> 이야기 속 주인공 또한 작가처럼 폐병에 걸린 환자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요시다는 폐가 나빠서 날이 조금 추웠다 싶으면 바로 그다음 날부터 열이 오르고 기침이 심하게 난다. 병세는 밤에 심해지는데 고통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잘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는 '잠이라도 기분좋게 잘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지만 하루하루 반복되는 낮과 밤 동안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낮을 꼬박 새어야 했다. 그런 요시다의 모습이 꼭 작가가 처한 현실같아서 이 이야기가 작가 본인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 이야기 속에 담긴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작가의 모습과 그 아픔, 고통이 느껴져서 마음이 저려왔다. 희귀병, 불치병에 걸리더라도, 살릴 수 있는 치료약이 없더라도 우리는 기적을 바라고 특효ㅕ약을 찾고, 민간요법까지도 찾게 되는 법이다. '누가 이걸 먹었는데 다 나았다더라, 그러니 너도 이걸 먹어보렴' 이라고 말하며 약이 아닌 민간요법상의 특효약을 권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이 이야기 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잡화점 딸이 먹었다던 송사리처럼 누군가가 자신에게 권하는 폐병약이라는 걸 접하면서, 세상이 이 질병과 싸우는 전쟁의 어두면 이면을 알 수 있었다. (p.30) 요시다는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뇌수 구이를 먹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서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p.30) 몸이 안 좋아 마을로 돌아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누군가 목매어 죽은 밧줄을 "그냥 속는 셈치고" 먹어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권유를 한 사람은 야마토에서 칠기 세공을 하는 남자였는데, 어떻게 그 밧줄을 손에 넣었는지를 요시다에게 들려주었다. (p.32) 그렇게 대단한 게 있다는 듯 말한 약은 초벌구이한 질주전자에 생쥐를 넣고 다린 것으로, 그것을 아주 조금씩 나눠 마시다 보면 한 마리를 채 다 먹기도 전에 낫는다는 것이었다. (p.34)
이야기 속에서 요시다는 인간이 폐병을 대하는 방식과 절망에 대해 말한다. 몸이 아픈 병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는 암시를 원한다고 말이다. 어쩌면 병자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약을 먹어서라도 나아서 계속해서 살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이런 헛된 기대와 희망에라도 기대는 것이 아닐까. 병이 자신의 목숨을 빼앗고 삶의 행군에서 자신을 제외시킬 때까지는 힘들어도 그 병약한 삶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병이란 결코 학교의 행군처럼 견딜 수 없는 약한 사람을 행군에서 제외시켜주지 않는다. 마지막 죽음의 골로 갈 때까지는 어떤 호걸이든 겁쟁이든 모두 같은 줄에 서서 마지못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p.41)
<바다>
바다는 어떤 공간인가? 나에게 바다는 재충전의 공간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안식처이다. 바다를 보면 꽉 막힌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모든 근심, 걱정,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버리는 것 같다. 특히 얼마 전에 보았던 일몰의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어느 새 바다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 같다. 바다의 고요함은 산에서 온다. 마을 뒷산으로 넘어간 해가 그 그림자를 점점 바다로 넓혀간다. 마을도 해변도 지금은 휴식 중이다. 그 색은 점점 더 멀리 바다를 물들여 간다. 먼바다로 나가는 어선들이 그 그림자 속에서 양지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오렌지색이 섞인 약한 햇빛이 배를, 그리고 어부를 잽싸게 물들인다. 보고 있는 나 자신도 호 하고 물든다. (p.75)
작가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바다는 어떤 바다일까?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바다는 그런 바다가 아이냐. 이미 결핵에 걸려버린 듯한 풍경도 아니고 잘난 체하는 시인 같은 바다도 아니야. 지금이 아마도 근래에 내가 가장 진지해진 순간이 아닐까? 잘 들어봐. 그것은 실로 밝고 쾌활하고 생기가 넘치는 바다다. 아직 피로나 근심과 걱정에 더럽혀진 적 없는 순수하게 밝은 바다다. 유람객이나 병자의 눈에 닳고 닳아 너무 달아져 버린 포트와인 같은 바다가 아니다. 시큼하고 떫고 거품이 생긴 와인같이 아주 깊고 야만적인 바다다. (p.77)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벼랑 위에 서서 벼랑 아래의 창문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들의 삶과 내 삶이 다른 것에 대해 우울함을 느낄까?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들여다봐서 스릴있고 설레일까? 이 이야기 속에 두 남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커피숍에서 앉아서 벼랑 위에 서서 아래의 창문을 바라보면 어떨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그 벼랑 위에 혼자 서서 열려 있는 창문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나는 항상 그때 그일이 떠올라요. 나 혼자만 이 세상에 뿌리내릴 곳을 잃어버리고 부초처럼 떠다니는구나. 그리고 언제나 그 벼랑 위에 서서 남의 집 창문만 바라봐야 하는구나. 이것이 바로 내 운명이다. (p.84) 그런 생각이 들어어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창문을 바라보는 행위에 원래 사람들을 그런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누구든 문득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건 아닌지, 뭐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나요?" (p.85) 내가 창문을 보는 취미에는 사람들에게는 말하기 힘든 욕망이 있어요. 그건 일반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비밀을 몰래 엿본다는 건데,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잖아요, 그런데 나에게는 한 발 더 나가서 사람들의 베드신의 보고 싶다는, 결국은 그런 걸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특이한 집착이 있어요. (p.88)
벼랑 위에 서서 아래 창문을 바라보면 난 이렇게 남의 집 창문이나 보며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는구나.이게 나의 비참한 운명인가 보다 생각되기도 할 것이다. 또는 창문을 통해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엿보는 것이고 그것은 상당히 은밀하고 사적인 비밀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그 창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베드신을 목격한다면, 관음증 환자처럼 그런 성적인 쾌락을 느끼면서 특이한 집착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병약한 작가는 그렇게 벼랑 위의 집에서 아래 창문을 통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았으리라. 그 창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부러워한 나머지, 자신의 병약하고 비참한 삶에 대해 절망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베드신과 같은 타인의 은밀한 비밀을 알게 되어서 창문을 바라보는 행동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그들은 알까. 이렇게 벼랑 위에서 아래 창문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감정을 말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아마도 그들은 모를 것이라 말한다. '그들은 모른다. 병원 창문 안 사람들은 벼랑 아래 창문을. 벼랑 아래 창문 안 사람들은 병원 창문을. 그리고 벼랑 위에 이런 감정이 있다는 것도...' (p.110)
<겨울 파리> 겨울 파리를 본 적이 있는가? 겨울 파리는 비실비실 걷는 파리.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가도 도망가지 않는 파리. 날지 못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역시 날아가는 파리이다. 마치 똥파리를 연상하게 할만큼 색은 선명하지 않은 검푸른 빛을 띠고 몸통과 팔다리는 위축되어 있다. 이런 파리의 비실비실한 모습이 작가의 병든 모습을 닮아서일까. 작가는 그 겨울 파리를 내치지 못하고 겨울 파리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방 한쪽 구석에는 엷게 먼지가 쌓인 빈 약병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이 얼마나 권태로운 일인가. 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일인가. 나의 병적인 우울함이 아마도 다른 방에는 살지 않을 겨울 파리조차 살게 하는 게 아닐까? 도대체 언제가 되면 이런 일이 끝나는 걸까? (p. 124~125)
작가는 휑한 골짜기 근처 여관방에 누워 있다. 천장의 파리들도 죽은 듯이 가만히 붙어 있다. 움직이지 못하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작가의 모습이 천장의 파리와 닯아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겨울 파리들도 햇빛 속에서는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부지런히 교미하기 위해 날아다닌다. 그런 파리의 모습에서 작가는 삶에 대한 희망과 작은 행복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괴롭고 절망적이긴 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을 저주하면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바깥 공기 속으로는 절대 나가려고 하지 않고 왜인지 병자인 내 흉내를 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무슨 ‘살고자 하는 의지’란 말인가! 그들은 햇빛 속에서 교미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아마도 말라서 죽기 직전인 그들이! (p.116)
이 얼마나 괴롭고도 절망적인 풍경인가. 나는 나의 운명 그대로인 길 안을 걷고 있다. 이것은 내 마음 그래도의 모습이고,. 여기서 나는 햇빛 속에서 느끼는 어떤 기만도 느끼지 않는다.(p.132)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형벌 같은 어둠, 살을 에는 듯항 혹한, 그 속에서 내 피로는 즐거운 긴장감과 새로운 전율을 느낄 수 있다. 걸어라, 걸어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걸어라." 걷다가 죽어버려라. (p.132)
그래서 그는 마을을 벗어나 이웃마을에 우연히 머무르게 된다. 사흘 후에 돌아와보니 겨울 파리가 모두 죽어 있었다. 죽은 파리를 보며 그는 다시금 우울함과 울적함을 느낀다. 마치 그 파리의 죽음이 자신의 삶에서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자신의 삶이 이제 절망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나에게도 뭔가 나를 살리기도 하고 언젠가 나를 죽이기도 할 변덕스러운 조건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녀석의 넓은 등을 본 것 같았다. 그것은 새롭고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공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공상으로 점점 더 울적함을 더해가는 나의 생활을 느꼈다. (138)
<레몬> 이 작품에서 작가의 기이하고 독특한 상상력이 빛을 발하게 된다. 마치 수류탄 모양처럼 생긴 레몬의 모습에서 폭탄을 연상하게 된다. 또한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자신의 마음을 짖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누그러 진 것 같다. 그런 집요한 우울함이 과일 하나로 풀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그 사실에 기분이 좋다. 나는 마루젠의 책장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무시무시한 폭탄을 설치하고 나온 괴기한 악당이고, 이제 10분 뒤에 저 마루젠에서 미술 코너를 중심으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p. 151) 급기야는 래몬이라는 폭탄을 자신이 좋아하는 마루젠의 미술 코너에 설치해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사악하지만 재미있고 섬뜩한 상상도 하게 된다.
이런 기이하고 섬뜩한 상상은 [벚꽃나무 아래]에서 더욱더 빛을 발한다. 벚꽃나무 아래에 시체가 묻혀 있다는 엉뚱하고 말도 안되고 공포심을 자극하는 상상으로 말이다.
<벚꽃 나무 아래>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이건 믿어도 돼. 왜냐하면 벚꽃이 저렇게 멋들어지게 핀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 나는 저 아름다움을 믿을 수가 없어서 요 이삼 일 불안했어. 그런데 지금 겨우 그 이유를 알았어.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이건 믿어도 돼. (p.197)
원래 어떤 나무의 꽃이든 한창때엔 주위에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흩뿌리기 마련이야. 마치 팽팽 돌던 팽이가 완전히 정지해서 고요해지듯이, 아름다운 음악 연주가 으레 어떤 환각을 동반하듯이 작열하는 생식이 불러일으키는 환각의 후광 같은 거야.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신비하고 생생한 아름다움이지. (p.198)
저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벚꽃을 보고 작가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냥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봄이 왔음을 느끼고 즐기면 될텐데 자신의 침울한 삶 속에 이런 소소한재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다운 것이라 인식하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다.
저 흐드러지게 만발한 벚꽃나무 아래 한두 구의 시체가 묻혀 있다고 너도 한번 상상해봐.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나를 불안하게 했는지 수긍할 테니까. (p.198)
마치 벚꽃나무의 뿌리는 탐스러운 낙지처럼 뿌리를 휘감아, 말미잘의 촉수가 다른 동물의 수액을 빨아먹듯이 그렇게 쪽쪽 인간의 시체를 빨아들인다. 무엇이 저렇게 아름다운 꽃잎을 만드는 것일까? 털뿌리가 빨아올리는 수정 같은 액은 조용히 줄지어 관다발 속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나는 이제야 겨우 벚꽃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되었어. 어제, 그제 나를 불안하게 했던 신비에서 자유롭게 된 거야. 나는 그 광경을 봤을 때 무언가에 가슴이 찔리는 듯햇어. 묘지를 파내고 시체를 즐기는 미치광이처럼 잔인한 기쁨을 맛보았지. (p.200)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희파람새와 박새로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비로소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 (p.200)
너무나 괴롭고 우울한 삶이기에 뭔가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슴이 먹먹해온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아아,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도대체 어디서 떠오른 공상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시체가, 지금은 마치 벚꽃나무와 하나가 되어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떨어져 나가질 않아. 이제야 나는 벚꽃나무 아래서 술잔치를 벌이는 마을 사람들과 같은 권리로 꽃구경을 하면서 술을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p. 201)
3. 나오며
7년 간의 창작 기간 동안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는 어떠한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내가 읽은 책들 중에 이렇게 죽음의 순간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고 죽는 그 순간까지 글을 쓴 작가들이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죽음의 순간까지 고통을 감내해가면서 글을 써야만 했을까? 그들에게 글쓰기는 어떠한 의미일까?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소통의 창구, 휴식을 위한 공간, 안식처였을 지 모른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절망을 노래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의 순간을 앞두고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깊어졋고, 주변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높아졌다.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도저히 정상적인 생각과 사고방식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기이하지만 기발한 상상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끝으로 글쓰기를 통해서라도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삶이 조금은 즐겁고 의미있었기를 바래본다.
가지이 모토지로 (Motojiro Kajii,かじい もとじろう,梶井 基次郞) 1901년 2월 17일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기타노(北野)중학교를 거쳐 1919년에 제3고등학교(第三高等?校) 이과에 진학하지만 점차 문학과 음악에 흥미가 있었다. 1920년 9월에는 폐첨카타르(폐결핵) 진단을 받고 잠시 학교를 휴학했다가 11월에 다시 복학하였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깊어져 1922년부터 습작을 시작하는 한편, 방탕한 생활로 5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고, 나카타니 다카오(仲谷孝雄) 등과 동인지 [아오조라(靑空)]를 창간했다. 같은 해에 객혈(喀血)과 이복 여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심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정해졌다.
추천사히라타 지사부로“구김살 없이 스스로 삶을 바라보지만 그것이야말로 정밀하고 투명한 삶의 현실이며, 종국에는 작품의 기조가 되는 권태나 퇴폐는 씻겨 나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역설적 효과야말로 그의 문학 세계의 숨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아키라“무릇 유례가 없다. 모방하려고 해도 범인(凡人)은 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이과계 청년의 자질이 엿보이며 그것은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언어의 건강일지도 모른다.” 요도노 류조“퇴폐를 맑고 깨끗하게 그려내고, 쇠약을 건강하게 그려내고, 초조함을 태연자약하게 그려내어 참으로 활달하고 중후하다.” 스즈키 사다미“스스로의 작품을 빌려 꾸밈없이 어디까지나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표현 욕구에 충실함으로써 비로소 현대의 불행한 영혼의 실상에 청량한 표현을 줄 수 있었던 작가이다. 그는 거대한 사회의 영위에서 보면 전혀 보잘것없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도 거의 의미가 없는, 미묘한 기분의 변화나 의식의 현상을 언어로 정착하는 데 고심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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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봄의 아쉬움을 붙잡아야 할 것 같은 연분홍의 표지, 벚꽃잎이 흩날린다. 말랑말랑한 연애,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벚꽃나무 아래』란 제목 옆에의 문장은 ‘시체가 묻혀 있다’로 섬뜩하다. 정말 벚꽃나무 아래에 우리는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가지이 모토지로의 단편집 『벚꽃나무 아래』을 그런 호기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모두 12편으로 제법 긴 중편, 단편, 아주 짧은 일기 같은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화자는 대부분은 병약한 존재다. 깊은 병을 앓고 있거나 그로 인해 요양을 위해 홀로 지내는 경우도 많다. 몸이 아프다는 건 우울한 일이고 그 시간이 지속되면 우울도 깊어진다. 그럼에도 소설 속 화자는 전혀 그런 분위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일부러 아닌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걸 다 포기한 마음 같기도 하다. 제목부터 기꺼이 병을 맞아주겠다는 태도의 「태평스러운 환자」속 요시다는 폐가 나쁘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다 병으로 인해 시골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요시다는 밤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의사를 부르기도 그렇고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병을 아는 어머니가 좀 더 정성껏 돌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특별한 일 없는 일상, 그런 그에게 들려온 잡화점 딸의 죽음. 그녀 역시 폐병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해 태연함을 보이는 요시다의 태도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그것일 것이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인간의 내면을 묘사한다. 소설 곳곳에서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생활, 그 안에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만나는데 어둡거나 무거운 신산함이 아니라 아름답고 신비롭다. 바다에 대한 이미지, 바다를 보고 느끼는 감정을 들려주는「바다」나 아픈 몸을 이끌고 산책을 하다 발견한 과일 가게 앞 레몬을 구매하는 이야기 「레몬」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한 편의 긴 편지를 읽는 기분이 드는 「바다」의 이런 부분은 내가 아는 바다가 아닌 처음 접하는 바다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것은 실로 밝고 쾌활하고 생기가 넘치는 바다다. 아직 피로나 근심과 걱정에 더럽혀진 적 없는 순수하게 밝은 바다다. 유람객이나 병자의 눈에 닳고 닳아 너무 달아져 버린 포트와인 같은 바다가 아니다. 시큼하고 떫고 거품이 생긴 와인같이 아주 깊고 야만적이 바다다. (「바다」, 77쪽)
어디 그뿐인가. 자신을 지배하는 모든 감정이 레몬 한 알로 인해 바뀔 수 있다는 「레몬」의 문장들. 폐결핵으로 신경쇠약까지 걸렸지만 전혀 곤란하지 않다는 화자는 하루 종일 우울해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레몬. 자유자재로 감정을 지배하는 가지이 모토지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이끄는 병에 저항하고 대항한다고 느꼈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아서 나는 거리 위에서 굉장히 행복했다. 그렇게도 집요했던 우울함이 이런 과일 하나로 풀리다니. (「레몬」, 147쪽)
그러나 병세로 인해 세상과 단절하듯 지내는 화자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소설도 있다. 요양지였던 N 해안에서 우연히 만난 K에 대한 이야기「K의 죽음」가 그렇다. 화자는 바닷가에서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쫓는 K와 이야기를 나눈다. 한 달 가까이 지냈지만 K의 죽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건강이 좋아져 그곳을 떠난 화자에게 들려온 K의 죽음. 밤을 가득 채우는 달, 그리고 바다.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리기에 충분하지만 K는 그때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까. 홀로 적막했을 K가 달로 갔을 거라는 화자의 바람이 맞았으면 싶은 마음이 든다.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스스로를 견디고 위로할 방법을 갖기 마련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 혼잣말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이 표제작 「벚꽃나무 아래」에서 느낄 수 있다. 독백처럼, 편지처럼 시작하는 이 단편에서 화자는 자신과는 다르게 생생한 아름다움이 불안할 뿐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달랠 공상이 필요했던 아닐까.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휘파람새와 박새도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비로소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 (「벚꽃나무 아래」, 200쪽)
온통 우울하지만 우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 단편집이다. 아름다운 권태, 쓸쓸한 위태로움이라고 할까. 아무렇지 않게 수북하게 쌓인 꽃잎을 밟고 지나가는 삶이라고 할까. 31세의 나이로 영면한 작가의 작품집이라는 게 아쉽고도 안타까울 뿐이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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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고 나서, 책 읽어야 할 것도 늘고 영화도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는 이런 때가 좀 버거울 때가 있더군요. 다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심리적으로 억눌린게 있다 보니 아무래도 그냥 마냥 기쁘게 다가오는 상황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특정 작가의 단편 소설집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 작가가 가져가고자 하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매우 다양하지만, 정작 이를 장편으로 이끌어가기에는 부족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단편에 더 맞는 이야기일 경우에는 아무래도 단편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단편은 여기저기에 기고되고, 그 상황에서 각자의 판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특성 시점이 되어 어느 정도 단편들이 모이고 나면, 그 글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만들애는 식이죠.
이렇게 해서 만들어낸 작가의 세계관은 그 작가가 생각하는 면들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에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작가가 잘 쓰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해서, 그 이상으로 작가가 다루고 싶어 하는 지점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지점들을 가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작가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 위에서, 전혀 다른 것들을 시도하는 식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작가가 잘 하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결이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사실 워낙에 많은 단편들을 쓰거나, 아니면 특정 장르에 매우 특화된 작가인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스티븐 킹의 단편집들과 중편집들을 보면 그 느낌이 매우 확실하게 드러나는 편이죠. 다만, 스티븐 킹은 워낙에 많은 양의 글을 쓰는 작가중 하나이다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엮는 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 다루는 작가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는 것이죠. 가지이 모토지로는 그 많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요절 해버린 상황이니 말입니다.
이쯤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과연 이 가지이 모토지로라는 작가가 무엇을 다루고 싶어하는가 제가 이미이 알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불행히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니다 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을듯 합니다. 솔직히 국내에 출간된 책중에 레몬 이라는 책을 아시는 분들은 작가의 성향에 관해서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거기까지는 못 간 상황이어서 말입니다. 다만, 책 전체의 제목으로 봤을 때는 어딘가 독특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 도시 전설중에 벚꽃나무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벚나무들은 뭔가 기묘한 사연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벚나무 밑에 사람의 시체가 있고, 그 시체를 영양분 삼아 거대한 나무가 된다는 음침한 이야기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선후관계는 알 수 없지만, 책의 제목이자 단편의 제목, 그리고 내용이 도시전설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는 이야기 역시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그렇게 음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불행과 무기력을 이야기 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무기력이라고 하는 이유는 주인공이 뭔가 활동을 많이 하는 식으로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로 많은 이야기를 듣거나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식으로 가는 것이죠. 덕분에 그 짧은 글 내에서도 매우 다양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매우 많은 공을 들였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죠.
다만 모든 단편이 감정을 따라가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에 맨 앞에 소개된 태평스러운 환자는 폐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그걸 앓으면서 주변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기묘한 결말들을 들은 사람들이 많은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말 그대로 군상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이 군상들은 잘못된 믿음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고, 그 결과가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에 관해서 역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그래서 더 기괴하게 다가오는 지점들이 생기게 되기도 합니다.
뒤에 진행 되는 이야기들 역시 기묘한 면들을 게속해서 드러내게 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해를 바라는 글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해를 하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독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지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게 대체 뭔가 싶은 지점들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고 말입니다. 이런 특성들로 인해서 독자는 사실 이 글을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 몇몇 상황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보통 이런 지점들에 관해서 책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에는 그 무아지경의 흐름을 같이 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기괴한 글들의 연속은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독자에게 전달되는 데에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글들이 독자가 읽는 흐름을 잡게 되면 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타면 작가가 내세우고 싶어 하는 감정의 특성을 이해하기 쉬운 면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이 책에서 가져가는 이야기는 흐름에 관해서 한 번쯤 지켜볼만한 지점들을 많이 가져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가리키는 방향에 관해서 의식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이야기들을 가져가고, 이 속에서 이야기를 감지 해가는 식으로 독자를 끌고 가고 있다는 겁니다. 덕분에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다양성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복잡성을 독자들이 따라가야 한다는 어떠한 생각을 심어주는 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굉장히 독특한 글들이 모인 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해를 바라는 글들이 아니고, 삶의 다양한 지점을 조망하는 지점을 말 그대로 늘어놓으면서 따라오라고 유혹하는 책에 더 가까운 면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한 번쯤 도달할만한 지점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덕분에 생각의 넓이가 넓어지는 느낌이 생기는 면이 생기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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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평탄하지 않다. 그건 눈을 따갑게 만드는 먼지들이 풀풀 날리며 자꾸만 발에 채이는 자갈돌도 많은 거친 길이다. 이마를 환하게 만드는 눈부신 빛보다 차마 마주하고 싶은 어둠이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삶은 그렇다. 바랐던 꿈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저 멀리로 홀연히 사라지고 원치 않는 옷을 입고 있고 싶지 않은 자리에 식물처럼 붙박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만 곱씹다가 물러갈 때가 되면 후회 속에 사라진다. 삶이란 정말로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는 것과 같다. 잠깐 누리는 화려함은 오랜 번민과 절망 그리고 고통을 거름삼아 피어나는 것이다. 7년간 지하 속에 날다가 고작 7일만 바깥 세상에 나와 울다가 최후를 맞는 매미와 같이.
가지이 모토지로의 글은 봄에 읽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비 오는 처연한 봄밤이라면 어울릴 것 같다. 찬바람 씽씽 부는 늦가을이나 겨울밤에 읽기엔 더욱 제격이다. 그의 글들을 모은 책이 나왔다. 제목은 일본 소설을 즐겨 읽었다면 아주 낯익을 문장이기도 할,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이다.
낮 보다는 밤을, 밝음 보다는 어둠을, 희망 보다는 절망을 찬양했던 작가.
이런 모든 것이 햇빛이 비추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곳에는 감정의 이완, 신경의 둔화, 이성의 기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햇빛이 상징하는 행복의 내용이다. 아직도 이 세상이 생각하는 행복이 이것들을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처럼...('겨울 파리' p.121)
생명력 넘치는 여름만을 원하는 이들에게 실은 더 중요한 게 살을 에이며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겨울이라고 알려주는 작가.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휘파람새와 박새도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벚꽃나무 아래'중에서 p. 200)
그가 바로 가지이 모토지로다. 기형도 시인은 자신의 시 속에 이런 구절을 남긴 바 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 볼 것인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글도 그렇다. 다른 이라면 한창 다가 올 인생에 대한 이런 저런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스무 살에 폐결핵에 걸려 늘 그 병을 그림자처럼 짊어지고 살았던 작가. 나이가 들수록 그는 요양을 위해 여관을 전전해야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나 다다미에 놓은 이불 속에서 누워 보내야 했던 작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건 폐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뿐이고 그렇게 자기도 언젠가 가리라는 것을 늘 절감하며 살아야했던 작가. 그런 작가가 새로 돋는 새싹 보다 곧 쓰러질 고목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러나 그가 우울을 옷으로 삼고 비애를 자신의 거처로 삼았더라도 삶을 쉽게 포기하려 했던 건 아니다. '겨울 파리'라는 단편이 잘 보여주듯, 그럴지라도 삶이 허락하는 모든 순간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그걸 자기 스스로 실천했다. 그는 증명하고자했다. 모든 이들이 기피하는 고통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릴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의미있는 경험임을. 그것이 바로 시체 위에서 태어나 더없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벚꽃나무란 이미지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겪고 있는 아픔과 좌절을 위로하고 새롭게 보도록 이끌어주는 작가. 그러므로 가지이 모토지로의 글은 벗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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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상상을 하게 된다. 책 속 내용이 그려진다. 이 소설집은 참으로 싱그럽다. 요절한 병약한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소소한 내 주변의 일상을 상상으로 그려낼 수 있을만큼 잘 표현했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천재란 평이 나온 듯하다. 역자후기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작가는 작품활동을 시작해서 7년 후쯤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지만, 세상에 그가 남겨놓은 작가의 눈, 나는 이를 심미안이라 표현하련다.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단편 중, 첫 번째 실린 “태평스런 환자”와 네 번 째 소설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열 번째 소설 “벚꽃나무 아래서”를 읽으면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옮겨본다. 먼저 태평스런 환자는 요즘 이야기처럼 느껴지도 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다. 혹세무민의 종교, 교회의 등장도 그렇다. 태평스런 환자 내용을 따라가보자. “어느 동네 홀아비 폐병환자가...최근 목을 매 죽고 말았다....그 남자에게 집을 빌려준 집주인이 채권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그 남자의 물건을 경매로 팔아 뒷수습을 했다. 그런데 여러 물건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이 그 남자가 목 매단 밧줄이었다. 한두 치씩 잘라 판 돈으로 집주인은 그 남자의 간단한 장례식을 치러주었을뿐만 아니라 집세도 모두 받게 됐다고 한다.”(32쪽) 밧줄이 얼마나 고급이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밧줄은 글쎄, 몸이 안좋은 사람(폐병)은 누군가 목메어 죽은 밧줄을 먹으면 좋아진다는 미신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주인공 요시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미신을 믿는 인간의 무지가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사실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무지한데, 그 이야기에서 어리석음을 빼고 보면 그리고 병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는 암시를 원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33쪽) 짧은 문장 속에서 당시의 폐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의 심리를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보자. “요시다는 평소 자주 생각하는 통계 숫자가 있다. 바로 폐결핵으로 죽은 인간의 백분율이다. 통계에 의하면 폐결핵으로 죽은 인간 100명 중 90명 이상은 극빈층이고, 상류층은 그중 한명도 안 된다.(중략) 통계 속 90여명을 생각해보면, 그중에는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고 아이도 있고 노인도 있을 것이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나 병의 괴로움을 굳세게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쪽도 견딜 수 없는 약한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병이란 결코 학교의 행군처럼 견딜 수 없는 약한 사람을 행국에서 제외시켜주지 않는다. 마지막 죽음의 골로 갈 때까지는 어떤 호걸이든 겁쟁이든 모두 같은 줄에 서서 마지 못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41쪽) 이 문장을 보라. 병에 대한 달관, 운명 아니 인간의 생로병사에는 귀천도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고 예외도 없다는 점을, 태평스럽게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일본의 1932년을 상상한다. 일왕 쇼와 등극 후 몇 년 후의 사회상이다. 이 소설집은 1920년대 중반과 30년대초의 일본세상을 잘 들어내보이고 있다. 12편의 소설 모두를 이렇게 하나 하나씩 뜯어보고 싶다. 네번째 소설로 네 번째 소설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세상보기, 벼랑위에서 그 아래 펼쳐진 광경을 살펴보는 것, 이 세상의 축소판과 같다. 누구는 일하고, 또 누구는 손님을 맞이하고, 병원에서는 임종을 맞이하는 모습들을 두 사람(이쿠시마와 이시다), 세상을 엿본다는 것, 누군가의 행동을 몰래 숨어서 관찰한다는 것의 의미를 그리고 그 감정을... 열번째 소설로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이건 믿어도 돼.왜나하면 벚꽃이 저렇게 멋들어지게 핀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 나는 저 아름다움을 믿을 수가 없어서 요 이삼 일 불안했어. 그런데 지금 겨우, 그 이유를 알았어.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있어. 이건 믿어도 돼.” 열 번 째 소설 “벚꽁나무 아래”의 첫 대목이다. 작가의 상상, 사물을 보는 독특한 시각, 기발한 사고다. 어떻게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있을 거라고 상상을 했을까, 벚꽃이 저렇게 멋들어지게 핀다는 것은 뭔가의 희생으로, 아마도 누군가 그 밑에 제물로 바친 걸까, 시체는 개, 고양이, 사람?, 양분을 제공하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심미안이다. 열 편의 소설은 각각의 맛과 분위가 다르다. 글쓰는 방식이 흥미롭다. 누군가와 이야기 하듯이 읽는이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세다, 강하다, 아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원서를 읽어보지 못해 번역본과 원본의 뉘앙스의 차이를 느껴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다. 일본문학의 1920년대 중반에서 30년대 초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당시의 일본 사회상을 상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게다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의 전개들이 뛰어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YES24리뷰어클럽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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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이 모토지로(梶井 基次郞)의 단편소설집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는 제목이 주는 섬뜩한 느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N해안에서 만난 K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K의 죽음’은 일본탐미주의단편선집에서 이미 읽어본 바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이과에 진학했지만 문학과 음악에 흥미를 느껴 대학은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는 폐결핵에 걸렸는데 초기에 치료에 소홀하게 되면서 병이 깊어졌고, 그때는 요양에도 불구하고 일찍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투병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변화가 작품에 반영되어 그의 작품들은 사소설의 범주에 들어간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는 탐미주의 계열의 경향을 보인다고 하겠습니다.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에는 ‘태평스러운 환자’, ‘칠엽수꽃-어떤 편지’, ‘바다’,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겨울 파리’, ‘레몬’, ‘애무’, ‘작은 양심’, ‘K의 죽음’, ‘벚꽃 나무 아래’, ‘눈 내린 뒤’, ‘게이키지’ 등 12편이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 작품 ‘태평스러운 환자’의 주인공이 작가처럼 폐결핵을 앓고 있는데, 서너 편에서 결핵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표제작인 ‘벚꽃 나무 아래’에서는 벚꽃이 화사한 이유는 분명 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있어 뿌리가 수정 같은 수액을 빨아올린다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병상에서 구상된 것인데, 그래서인지 소설 속 주인공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거나 막연한 희망을 뒤쫓지도 않습니다. 히라타 지사부로(平田次三郞)는 가지의 모토지로의 작품은 ‘병든 삶의 표현’이었지만 거기에 나타나는 것은 ‘맑고 깨끗한 삶의 숨결’이라고 했습니다. ‘애무’에서는 고양이의 귀를 잡아당기거나 깨물기도 하고, 전철표 천공기로 구멍을 뚫는 상상을 하는데, 심지어 고양이의 주인은 발을 잘라 화장하는데 소도구로 사용하기까지, 끔찍한 상상을 한다는 것입니다. ‘태평스러운 환자’에서는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하여 송사리를 다섯 마리씩 삼킨다거나, 인간의 뇌수 구이가 치료약이라고 소개하는데, 제가 어렸을 적에는 나병에 어린 아이의 간이 특효약이라 하여 나병환자가 어린아이의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도 돌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치의 병에는 무엇무엇이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을 작품에 반영한 셈일 것 같습니다.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에서 보는 것처럼 작가 자신의 삶을 담은 소설을 일본에서는 사소설(私小說)이라고 합니다. 심경소설(心境小說)과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자연주의 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 다야마 카타이(田山花袋)의 <후톤(蒲団)>이 사소설의 시작이라고 합니다만, 히라노 켄(平野謙)은 1913년의 치카마스 아키에(近松秋江)의 <기와쿠(疑惑)>와 기무라 소타(木村莊太)의 <케닌(牽引)이 사소설이 확립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의 <와카이(和解)>는 심경소설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객관적인 사실 뿐 아니라 작가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이 초점이 됩니다.‘ ‘태평스러운 환자’를 마무리하면서 작가는 폐결핵 환자의 90%는 약다운 약도 없이 죽음을 재촉하는 형편이고 보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나 병의 괴로움을 굳세게 견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쪽도 견딜 수 없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겨둘 만한 이야기입니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폐결핵을 앓아 31살에 죽음을 맞은 천재작가로 자리매김을 했는데, 1907년 산조에 문을 열어 1940년에 가와라마치로 자리를 옮겨 영업을 한 마루젠 교토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의 무였습니다. 그래서 2005년 폐업하게 되었을 때는 교토 시민들은 이 서점의 예술서적 구획에 레몬을 놓아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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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벚꽃나무 아래 - 시체가 묻혀 있다'만 보면 마치 살인사건이 일어난 추리소설같죠?
이 제목은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단편 '벚꽃나무 아래'의 첫 장면과 매우 관련 있습니다.
단편 '벚꽃나무 아래'의 첫 부분입니다.
매우 강렬한 첫 문장이에요. 벚꽃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그 이유가 시체가 그 밑에 묻혀있기 때문이라니요... 섬뜩한 상상력이면서도 번뜩이는 재치입니다.
독자로 하여금 순식간에 책에 몰입하게 만드는 첫 문장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뒤가 궁금하고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걸까 하고 읽는 참에 이 단편은 단 3장만에 끝나버립니다.
그럼 가지이 모토지로라는 작가가 누구인지 짚어볼까요? 그의 단편중 제일 유명한 것은 '레몬'일 것입니다. 번역서도 '레몬'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적이 있고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처음으로 낸 작품집이 '레몬'이었으니까요.
'레몬'이라는 단편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그냥 목적없이 여기저기 거닐다가 마루젠이라고 하는 서점겸 문구점에 작가는 자주 들렀습니다. 실제로 작가는 그 마루젠에서 서양화가들의 작품집을 보는 걸 즐겼다고 하는데요 이 단편의 주인공도 떠돌다가 마음에 들었던 과일가게에서 레몬을 하나 사고 마음에 들어하다가 갑자기 서점에서 책을 마구 꺼내어 쌓아둔 뒤 그 위에 뜬금 없이 사온 레몬을 올려두고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마음속으로는 레몬이 폭탄이 되어 서점이 폭발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소재도 상상력도 독특한 단편이지요? 그런데 가지이 모토지로의 길지 않은 작가 인생에서 이 레몬이라는 단편은 큰 인기를 끌고 유명해서 실제 모델이 되었던 마루젠의 폐점 소식이 알려졌을 때 교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예술서적 코너에 레몬을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이번 단편집의 번역가는 총 3분입니다. 세 분 모두 일본어 전문 번역가 모임 '쉼표온점'의 멤버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전 일본소설을 읽을때 일본어 특유의 번역체를 선호하지 않는데 이 분들의 번역은 아주 자연스러워서 읽는데 전혀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어요. 안심하고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
총 12개의 단편이 실려 있으니 4개씩 맡아서 하셨을까요? ^^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과 작가연보가 아주 자세해서 가지이 모토지로의 작품과 삶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각 단편의 끝머리에는 이렇게 출처를 적어 놓아서 더 좋았습니다. 어디에 몇년도에 실렸는지를 말이죠
단편 한개를 읽을 때마다 적혀 있는 연도를 바탕으로 작가 연보를 뒤적이며 그 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면서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더 잘 이해가 되었어요.
어떤 건강상태였는지, 그 해에 몇 개의 작품을 썼는지, 작가의 상황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작품의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마음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가 연보가 자세해서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01년 생인 작가는 딱 성인이 되려는 시점에 문학에 빠지게 됩니다. 형의 영향으로 '모리 오가이' '나쓰메 소세키' '다니자키 준이치로'등의 작품들을 탐독했죠. 저도 대학원 시절 일본 근대 문학 전공을 해서 이 작가들의 작품을 꽤 많이 읽었는데요 참 마음에 드는 소설들이 많았어요. 아름다운 문체와 기구한 작가의 삶 등을 알게 되면서 더 작품들에 애정이 생기기도 했어요
작가 가이지 모토지로는 또 특이한 것이 '이과생 문학소년'이었다는 점입니다. 이과쪽으로 진학을 했으면서도 꾸준이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이죠 그리고 후에는 러시아 작가인 톨스토이 작품도 많이 읽었다고 해요
그의 단편 '눈 내린 뒤'에서는 주인공 남편이 아내에게 러시아 작가의 단편 내용을 이야기 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아마도 그 러시아 작가는 톨스토이겠지요.
이 단편집에 실려있는 12개의 작품들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특히 'K의 죽음'이라는 단편이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유명한 단편인 '레몬' 이외에도 'K의 죽음'이라는 단편도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작가 본인이 결핵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 결핵이 옮게 된 첫 이유가 같이 살던 할머니로부터였다고 해요 그 시절에는 할머니들이 입으로 먹던 사탕을 뱉어서 손주들에게 주곤 했잖아요 할머니가 결핵에 걸린 분이었는데 입으로 사탕을 주는 바람에 5명의 손주가 모두 초기 결핵에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안타까워요...
단편의 주인공은 작가 본인의 모습을 투영해서 방황하고, 몸이 건강하지 않고, 괴로워하는 분신을 그려넣었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듯 우울하지만은 않은 투명하고 맑은 작가의 내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통해 아름다운 단편집을 만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다시 꺼내어 읽어보고 싶은 단편집입니다.
- 본 도서는 컬처블룸 카페의 서평단을 통하여 출판사 위북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임을 밝힙니다. 서평은 개인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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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채소를 팔러 오는 여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폐병 특효약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 여자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폐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마을 화장터에서 여동생을 보내는 자리에 스님이 오셔서 "인간의 뇌수 구이는 폐병의 약이니, 가지고 있다가 혹시 이 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누어주시오"라고 말하며 직접 꺼내주었다고 한다. - 태평스러운 환자 p. 31
스쳐 지나가면 아름다운 표지에 벚꽃나무 아래 라는 제목에 무심코 로맨스 소설인가 싶지만 자세히 보면 섬뜩한 제목을 가진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 이런 기묘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은 31세의 짧은 삶을 살았다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단편집이다. 폐결핵으로 짧은 생을 살아냈으며 작품활동을 한 기간은 7년 뿐이라는 이 작가는 죽을 때까지 병상에서도 작품을 집필했다는데, 이 책에 담긴 12개의 작품 중 가장 첫 작품인 태평스러운 환자에서 폐병 환자와 폐병의 약에 관해 다루었다는 것 부터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었다는 것까지.. 생과 사라는 주제에 갑자기 던져진 것 같은 작은 충격이 느껴졌다.
"그 벼랑 위에 혼자 서서 열려 있는 창문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나는 항상 그때 그 일이 떠올라요. 나 혼자만 이 세상에 뿌리내릴 곳을 잃어버리고 부초처럼 떠다니는구나. 그리고 언제나 그 벼랑 위에 서서 남의 집 창문만 바라봐야 하는구나. 이것이 바로 내 운명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어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창문을 바라보는 행위에 원래 사람들을 그런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지. 누구든 문득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건 아닌지, 뭐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나요?" - 어느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p. 85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하는 가자이 모토지로의 작품들은 폐병으로 인해 병상에서 주로 구상되고 집필했기 때문인지 대부분 음울함이 깔려있고 어느 작품은 불길하고, 또 어느 작품은 초조하고, 불안하고, 절망스럽다. 주인공들은 마이너스 감정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고 냉소적일 때도, 무기력할 때도 있지만 기묘하게도 그 우울감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 같지만은 않아 그 간극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겨울 파리란 무엇일까? 비실비실 걷는 파리.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가도 도망가지 않는 파리. 날지 못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역시 날아가는 파리.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여름철의 뻔뻔함과 밉살스러울 정도의 민첩함을 잃어버리고 온 것일까. 색은 선명하지 않은 검푸른 빛을 띠고 몸통과 팔다리는 위축되어 있다. 더러운 내장으로 팽팽하던 배는 종이를 비벼서 꼬아 만든 끈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그런 그들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부자리 같은 곳을 쇠약해진 모습으로 기어 다니고 있다. 겨울부터 초봄까지 사람들은 그런 파리의 모습을 몇 번 쯤은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겨울의 파리다. - 겨울 파리 p. 113
가지이 모토지로의 18개의 작품은 짧게는 몇 장에서 길게는 수십 장에 이르기까지 길이도 다양한데 짧은 생을 화려하게 꽃피우고 스러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표제작에 쓰인 단어인 벚꽃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섬뜩하고 기묘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집중하게 된다.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어 라는 표제작은 벚꽃의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에 불안해하다가 그 신비스럽고 생생한 아름다움을 한 두구의 시체가 묻혀 있다고 공상하고 그제서야 불안하게 했던 신비에서 자유롭게 되어 벚꽃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화자가 청자에게 왜 그렇게 괴로운 표정을 짓냐고 묻는 데서 작품을 읽는 나 자신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한 공상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같이 꽃구경을 하며 술을 마실 수 있다고 하는 '나'에서 가지이 모토지로의 우울하고 불안한 일면을 발견한다.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이건 믿어도 돼. 왜냐하면 벚꽃이 저렇게 멋들어지게 핀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 나는 저 아름다움을 믿을 수가 없어서 요 이삼 일 불안했어. 그런데 지금 겨우 그 이유를 알았어.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이건 믿어도 돼. - 벚꽃나무 아래 p. 197
그 외에도 바다 라는 작품에서는 암초와 익사체에 대해 말하며 그 속에서 붉은색과 푸른색, 썩은 낙엽색이 솟아난다고 하지를 않나, 벼랑 위에서 느낀 감정 작품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분리해 벼랑 위에 세워 그 인격을 바라보는 공상을 매혹적이라고 말하며 전율하고 황홀해하는가 하면, 겨울 파리라는 작품에서는 여름과 달리 약해빠진 파리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며 죽은 파리가 살아와 노는 것 같다고 페허에 있는 듯 하다는 표현하기도 하는데 천장을 바라보며 권태로이 죽은 듯 누워있는 '나'를 생각하면 나조차 울적해질 지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큼하고 떫고 거품이 생긴 와인같이 아주 깊고 야만적인 바다라느니, 마음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누그러진 것 같아 거리 위에서 행복했다느니 하는 감각적 표현들 때문인지 수록된 단편들은 우울에 묻히게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정신적 고양감을 건네는데, 어느 정도 불안을 마음에 품고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듯한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단편집 이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