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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개인주의(individualism)하면 이기주의(egoism) 혹은 자유주의(liberalism)를 떠올린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함으로써 근대 민주주의 사상의 토대가 되었지만 서로 다른 말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개인주의는 자유주의 또는 이기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취급된다. 개인주의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삶의 태도로 공동체 정신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고, 자유주의 역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기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나보다는 우리,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는 전통과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은 개인주의란 무엇이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태동되었으며,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개인주의가 필요한지에 대해 쓴 책이다. 저자는 개인의 존재가 외면 받고 침해당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참다운 나’, ‘인간다운 나’로 살아가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하여 이 글을 썼다고 한다. 부제마냥 ‘각자도생의 시대를 견뎌내기 위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했다는 것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우리가 한 개인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존재의미를 획득하여 개인이 되었는가,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개인주의가 처한 딜레마와 한계는 무엇인가를 살펴본 후, 제대로 된 개인주의 사용을 위한 15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먼저 개인주의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근대의 여명기에 태동한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개인주의는 신분과 계급에 의해 소외되었던 인간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우는 휴머니즘과 함께 탄생했다고 한다. 이어서 저자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무엇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탄생을 위한 부단한 노력과 투쟁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며, 고대에서 근대로 나아가면서 인간이 한 개인으로 인정받기까지 어떤 투쟁과 모색의 과정이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전통사회에서 개인은 공동체의 한 부분이었다. 따라서 개인은 균열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모습을 나타낼 수 없었다. 그 균열이란 바로 공동체에서의 배제였고 그것은 개인에게 징벌이자 파산을 의미했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가 개인의 자율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그 대가로 치렀지만 여전히 개인은 집단속의 일원이었다.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17-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절대왕정과 함께 전근대문명이 붕괴되면서 지배와 종속의 원리아래 신민으로써 존재했던 인간은 자유와 평등의 원리아래 개인으로 탄생했다. 전통적 삶의 질서가 붕괴되자 개인의 독립성과 자유를 위한 공간이 점차 확대되었고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거침없이 발현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구 문명의 질서를 대신하여 자유로운 개인들의 협력과 결속을 가져올 수 있는 해법 찾기가 근대문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과제로 등장했다고 한다. 특히 과학혁명은 과학공동체 구성을 통해 개인주의, 민주주의, 휴머니즘의 근간을 마련했고, 이것이 바로 근대문명을 지탱하는 이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이념의 중심에 개인, 시민,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근대문명의 중핵이 바로 ‘개인’이었음을 과학, 종교, 철학, 정치, 사회에서 펼쳐진 개인의 존재의미 획득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시장의 발달은 개인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배경이었다고 한다. 돈에 의해 매개되는 피상적이고 익명적인 인간관계는 기존의 구속과 제약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었고, 개인의 개체성과 내적 독립성을 크게 넓혀주었다. 돈이 추동한 인간관계의 변화가 평등주의와 휴머니즘으로 이어져 개인주의를 가능케 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상품교환 원리를 관철하면서 잉여가치를 얻는 자기재생적 시스템에 기초한 자본주의가 시장지상주의를 추구하면서 근대문명을 열었던 개인주의는 패배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의 대중문화는 개인의 자기보존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고 강화하면서 실제로는 개별성의 해체를 가속화시킨다. 이것은 개인의 평균화와 평준화를 시대의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작동방식이기도 하다. 또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소비를 조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차이를 생산하며, 이러한 차이는 소비자로 하여금 차별짓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차이추구와 차별짓기를 통해 개인들을 파편화시키고 이기주의와 무한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런가하면 개인적 삶의 지형도를 노동시장 중심으로 재편하여 시장경제시스템의 유용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개인의 독립성을 요구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기대고 있는 것은 바로 자기착취의 다른 이름인 성과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우리 삶을 포획하고 침투해옴에 따라 획일성이 인간의 자격조건으로 자리 잡았으며, 누구든 현실과 타협하려면 획일성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문법이 생산과 소비라면 생산은 결핍의 무한창출을, 소비는 욕망의 무한추구를 의미하게 되면서 개인은 다른 개인과 비교되고, 혼동되며, 심지어 교체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개인적인 이해관계 앞에서는 그 어떤 동기도 무력해지는 세계에서 사회적 결속은 끊어지고, 서로 점점 더 같아지는 동일성 사태는 모방을 통해서만 개인들이 잘살아갈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파편화와 동일화를 통해 자유로운 개인은 지구전체를 아우르는 데이터 처리의 시스템 속으로 흡수되면서 완벽한 통제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처럼 시장자본주의와 최첨단 기술의 동맹이 개별적 존재인 개인에 관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시대에, 저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본질적 물음 앞에 존재의 빈틈을 채워줄 개인주의 사용법을 제안한다. 15가지 사용법은 책 뒤표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개인주의가 잘못 이해되면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우리사회에 우려를 표시한다. 우리사회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간의 선명한 경계가 지워지는 문제와 집단이 개인에 우선하는 전근대적 양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연, 학연, 혈연에 얽매인 패거리문화, 진영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힘의 논리가 우선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무책임이 노골적이다. 저자는 이처럼 자신만의 욕망을 위해 무한 질주하는 시대에 ‘왜 나는 개인이 아닌 혼자가 되었는가’를 자문해보며 자유로운 개인으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저자의 글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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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책이다. 집단주의를 위해서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은 지금의 일상에서 무엇이 옳은 길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인간다운 삶의 조건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전체내용을 보시려면 ISO 국제인증전문기관 : 네이버 카페 사이트를 방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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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를 받는 단어들이 몇몇 있는데, '개인주의'라는 단어 역시 이에 속합니다. <누구나 개인주의자가 된다>의 저자 박상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자기만을 위하는 삶의 태도나 행동 방식'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이기주의(egoism)'이며, '개인주의(individualism)'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뜻한다며 그 차이를 밝혀줍니다. 오히려 '개인'은 '더 이상 나뉠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형용사에서 유래한 단어로, 단 하나뿐인 존재이자 존엄한 인간으로 불릴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라고요.
저자는 이러한 의미를 가진 '개인'을 중심에 놓고, 개인의 정의부터 시작하여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의미와 이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맞닥뜨린 딜레마와 한계,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배와 종속'이라는 주요 가치 아래 권위주의, 집단주의, 계급과 신분에 의해 소외되었던 개인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근대문명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사상, 르네상스의 휴머니즘과 인문주의, 여러 문학작품 등으로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개인'의 높아진 위상은 과학혁명, 계몽운동, 민주주의의 대두와 시장경제에 이르면서 인간의 문명 자체를 바꾸어나가는 핵심에 자리하게 되지요. 그런데 근대적 정체성을 이루는 '개인, 시민, 인간'에 대응하는 사회구성체의 형태인 '개인주의'와 개인들의 자유로운 동의와 참여의 권리에 기초한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 배려, 존중, 책임을 의미하는 '휴머니즘'은 자기보존에만 전력을 다하는 개인의 이기심 아래 그 형태마저 사그라들어가고 있습니다. 전근대 시대에 농노해방을 가능케 했던 화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에 가격을 매겨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역기능을 발생시켰고, 생존에 집착하는 인간은 정치권력의 지배 도구로 전락해버렸으며, 자동화, 매스미디어, 디지털화 등과 결합되어 본래의 '개인'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고요. 이에 저자는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 이슈를 중심으로 진정한 의미의 '개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나'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요즘,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개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흐름을 놓치면 따라가기 힘든 내용이어서인지 집중이 더 필요했지만, 배경과 함께 알아가는 개념은 개념 자체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었으며,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고, 본연의 목적이나 역할이 무엇인지 등 거시적 관점에서 개념을 생각해 보게 해주었습니다. 저자의 지적처럼 한국 사회는 집단이 개인보다 우위에 있는 전근대적 양상이 만연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개인'이 되는 것은 좀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잠시 생각도 해보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개인'이 된다는 것은 상황이나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 받았으며, 내용에 대한 요구 없이 저의 견해가 담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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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란 참 어려운 개념입니다. 만약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모두 파편화하여 공동체의 목표에는 전혀 관심도 쏟지 않고 가장 원초적인 개인, 가정의 이익에만 골몰한다면 이는 문명이 아니라 야만 상태에 가까우며, 이런 사회에서는 부정부패가 판을 칠 겁니다. 물론 이런 건 개인주의의 개념에 포섭되지 않고, 오히려 극복, 지양되어야 할 단계에 속합니다.
반대로 사회의 기율은 잘 지키고 일사분란하게들 움직이지만 개인의 판단 재량이나 자유가 없고 어떤 명령에만 복종하는 식이라면, 이 역시 미개의 소치입니다. 이런 사회는 전체주의라 불려 마땅한데 상황이 이렇다면 일응 능률적인 외양을 갖추어도 결국 참된 진보가 이뤄지기 어려울 겁니다. 현재의 북한이나 러시아, 혹은 아마도 조선 시대 농촌 공동체 역시 이 비슷한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과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린 시절 일부를 독일에서 보냈다고 하는데,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아주 획일적이고 자율성이 부족한 사회 풍조를 겪으며 "후진적"이라는 느낌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개인의 재량이 상대적으로 덜 용인되고 개성의 발현이 억제되는는 사회는 "선진적"이란 느낌을 잘 주지 못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회사나 각종 조직에서 개별 성원의 목소리가 존중되어야 그게 정상으로 여겨지며, 자격도 없는 자가 뭘 가르치겠답시고 혼자 목소리를 크게 낸다면 이미 삼류 사류 조직으로 평가절하당해 마땅하다고들 여깁니다.
이미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개인과 시민의 자율성"은 존중되어 마땅하다고들 여겼습니다. 서양의 문화가 이처럼 자유롭고 창의를 존중하는 아테네 도시 문명을 고전으로 삼고 발전했기에,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시민 문화가 이 정도씩이나 꽃을 피울 수 있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이라고 해도) 시민과 인간이 (누구에게서 어떤 권한을 부여 받지 않고) 그 자체로 자유로운 존재라는 점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p66)."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부인권, 불가양의 권리 등은 근대 계몽주의가 싹튼 이후에나 공유하게 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 민주주의, 휴머니즘"은 런던 왕립학회가 확립한 체계에 따르면 "삼위일체"로서 존재한다고 합니다(p64). 삼위일체는 그저 수식어구나 클리셰로 흔히 쓰는 어구가 아니라,. 신학에서 쓰이는 개념 그대로 "셋은 하나요, 하나는 곧 셋이며, 어느 하나 없이는 나머지 둘도 존립할 수 없다."란 뜻으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휴머니즘 역시 민주주의 없이는 현대 국가에서 현실화하기 힘들며, 이 모든 것은 개인주의를 출발점, 기초로 삼습니다.
근대적인 개인의 탄생은 아무래도 (시대를 앞서간) 문학 작품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문학은 아득한 고대에도 이미 여러 형태로 존재했으나, 돈키호테, 햄릿, 로빈슨 크루소 처럼 어떤 정형과 천편일률에서 벗어난, 입체적이고 개성 뚜렷한 개인들은 근대 이후의 우수한 문학 고전에서부터 등장하죠. 저자는 밀란 쿤데라 역시 개인을 논했음을 환기하는데, 쿤데라의 경우 오랜 동안 전체주의 사회의 획일적인 억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작가라서 그 논의가 더욱 실감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예술가들은 그저 예술가이기만 했던 게 아니라 과학자, 기술자, 군사전략가이기도 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특히 만능인이고 르네상스인의 전형으로 꼽힙니다만, 저자는 이를 놓고서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개인상"을 처음으로, 또 자신의 일생을 통해 직접적으로 증명해 보인 예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의 시조"로 꼽습니다. 이들 개인은 공동체의 후원이나 편입이 아니라도 자립할 수있었고, 군주의 은혜에 의해 존재하는 상태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군주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게 강력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추적 역할을 보였습니다.
트렌드. 우리는 적든 크든 트렌드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편입니다. 트렌드는 젊은 세대들만 민감해하는 게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도 그들 그룹 안에서 세련되고 멋있게 보이려고 온갖 유행을 참고합니다. 이런 트렌드도,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또 그것의 표준인지 정하는 문화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결정되는 바 다분히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일찍이 사회학자 뒤르켐은 "집단성의 또다른 이름"이라 규정한 바 있다고 합니다(p179). 예전에 왜 머리를 빨간색으로 염색하냐고 묻자 "개성 있잖아요?"라고 대답한 어느 X세대 소녀가 있었는데, 머리를 그리 물들이는 것 역시 또래 집단 안의 유행에 불과했던 걸 그리 포장해서 말하는 게 우습기도 했죠. 참된 개성은 트렌드, 혹은 일체의 집단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난 후에 발현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경제의 민주화", "바람직한 민주사회의 기초"로까지 논의릃 확장(p216)시킵니다. 본시 개인주의는 이천 수백년 전의 소크라테스(회의주의를 극복한 진취적 합리적 개인주의의 제창)에서 "익명의 택배기사들(p11)"에 이르기까지 그 맥이 이어진다고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들을 일상에서 혹은 구조(독점 자본의 그것 포함)에서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병폐와 모순 역시, 레닌이나 스탈린식의 작위적이고 폭압적인 기제가 아니라, 개인개인의 가식 없고 자연스러운 각성과 의견 표명(의 자유)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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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보다는 개인을 선호하는 편이라 개인주의란 말에 다소 긍정적인 편이다.
《누구나 개인주의자가 된다》는 이른바 '개인주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개인의 존재가 외면받고 침해당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참다운 나', '인간다운 나'로서 살아가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쓰였으며, 우연한 기회에 도서출판 추수밭에서 기획도서 자격을 얻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들어가는 말 중에서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란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나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팬이라서 이 애니메이션을 봤다. 그 당시엔 다른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재밌다는 것과 특별한 감동을 느끼진 못했다. 결말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랬던 내가 저자의 글을 통해 새로이 그 애니메이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으니 다시 한 번 더 그 애니메이션을 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 저자는 근대문명의 중핵은 개인이라고 일컫는다. 지배와 종속이란 원리가 전근대 문명을 지탱했다면 근대문명이 발명하고 추구한 가치는 자유와 평등으로 그 주체는 개인이란다. 이에 근대화라는 개념이 개인화 과정을 의미하며 근대화와 함께 개인주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님에도 여전히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라는 사고가 만연한 대한민국에 대한 비판도 의미 있었다. 생각보다 깊이 있게 파고드는 개인주의의 역사를 통해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상식이 많았다. 조금은 복잡하기도 했지만 그 상관관계를 알아가는 재미는 진정 특별했다. 개별성은 보편성의 전제조건으로 가장 보편적인 것이 휴머니즘이고 가장 개별적인 것이 개인주의로 근대적 인간은 개별성과 보편성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고 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에 대한 내용을 통해 이성의 사적 사용과 이성의 공적 사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휴머니즘이란 단어 또한 좋아하기에 그에 대한 내용도 참 좋았다. 칸트의 방식에 따라 이해하는 휴머니즘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관심, 배려, 존중, 책임'을 뜻하고 루소에 따른 휴머니즘은 '고통 받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연민, 배려, 존중, 책임'이라고 한다. 이러한 휴머니즘은 이성과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감정인 공감에 바탕을 두었음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개인주의 사용을 위한 15가지 제안을 통해 교양, 인공지능, 과학기술, 이미지, 거창한 표현들 등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마다 자신만의 이익을 고집하는 세상에서 고고한 '나'로 살기 위한 개인주의자의 원칙'은 이기주의자와는 확연히 다른 집단 속에서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의 말이다. p 194 다소 철학적인 내용이 많아 쉽지는 않은 책이었지만 읽을 가치가 충분한 도서였다. 그저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개인주의자를 뛰어넘는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다. 개인주의자와 이기주의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강추한다. 또한 개인주의자에 대해 정확한 의미가 궁금한 분들에게도 권해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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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개인주의자가된다 #박상용지음 #추수밭 고고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주의를 사용하라. 15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개인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개인이 되었고 지금 어떤 시대를 사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주의는 민주주의와 휴머니즘과 짝을 이루어 있으며 개인의 독립성, 자율성, 평등은 개별화의 조건들이라고 했다. 개별화없이는 인간적인 것의 의미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개인주의는 휴머니즘과 함께 탄생했다. 이기주의와 다른점은 휴머니즘을 잃어버릴 때 이기주의로 전래해버린다.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와는 또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는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의 존재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사상과 태도이다. 개인은 정부의 간섭없이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개인의 존재가치 자체를 데이터 시스템에 증명해야 한다. 빅데이터안에 나를 증명하고 사용하며 알고리즘이 나를 분석하고 평가하여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자유로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오히려 개인의 사생활이 전시되고 판매되는 시장과도 같다고 말한다. 나만하더라도 완전 실시간은 아니지만 핸드폰으로 인스타, 페북을 사용하여 하루일과를 올리고 독후감을 쓰며 데이터 시스템에 나를 등록한다고 볼 수 있다. 소셜미디어가 점점 나의 삶을 역으로 감시하고 통제한다. 내가 자유롭게 올리는 것들이 오히려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데이터시스템과 내가 된 것이긴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은 데이터시스템에 항시 노출되어있고 개개인을 다 파악하고 있다. 저자는 개인주의 사용을 위한 15가지 키워드로 말하고 있는데 와닿았던것은 챕터1 교양으로 대학생의 교양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전공수업만 죽어라했지 교양교육에 대한 수업은 그냥 의무적으로 공부해서 학점따기위한 주먹구구의 공부방식이었다. 저자는 교양교육을 통해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르치고 배워야 할 '인간적인 가치의 고양'이 대학교육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전공위주의 학습이 아닌 교양교육을 통한 삶의 의미, 가치, 목적을 천착하기 위한 필수교육이라고 하겠다. 미래대학의 경쟁력있는 교양교육으로 교양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대학교육이 되었으면 한다. P.143 교양교육의 학습목표는 학생들에게 인간과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고 인간의 삶이 어떻게 의미를 획득하는지를, 바람직한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스스로 모색할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학부생 한사람 한사람이 탁월한 개인으로, 책임감있는 시민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함양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개인주의에 대한 폭넓은 지식으로 나답게 사는게 어떤건지 알게되었다. 여러가지를 앎으로써 인간관계와 책임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탐구하니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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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어떻게 살것인가? 이 책의 들어가며에서 던지는 질문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와 나오는 글의 마지막 쪽에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다른가?, 아니면 책을 읽기시작하기 전에 지은이가 던진 질문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달라진 게 있나, 있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또 다른 질문아닐까, 지은이가 첫머리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 까닭이 뭘까?, 아마도 책 제목으로 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지은이는 이 문장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1937년 일본에서 출판, 금서가 됐던 요시노 겐자부로의 책 제목이다. 1930년대 군국주의에 맞어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인간다움을 안겨주기 위해 혼신을 힘을 쏟았던 일본 지식인의 호소다. 지은이는 전체주의와 개인주의가 교차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개인의 삶의 경로는 어떠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이 책의 미덕을 전하고자 들어가는 글의 제목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 책은 4개의 장 37꼭지로 구성됐다. 마지막 4장은 개인주의 사용을 위한 15가지 제안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흐름을 잠깐보자. 들어가는 말이 이 책의 가장 핵심이요. 지은이가 세상에 하고픈 말이다. “시대의 왜곡이 개인들에게 던지는 질문,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척 철학적인 질문이다. 1장은 근대문명의 코어이자 자유와 평등의 주체는 누구인가?, 개인주의가 어떻게 등장, 몰락하는가, 근대인의 정체성, 개인, 시민, 인간에 관하여 적고 있다. 2장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개인이 됐는가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살핀다. 신민에서 개인으로 근대문명의 지각변동을 거쳐 과학 공동체가 마련한 휴머니즘 등의 통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3장에서 개인 지금 어떤 시대를 사는가, 바로 오늘 이곳에서 벌어진 일상 속에서 개인주의를 어떤 모습인가를 밝힌 후, 4장에 개인주의를 제대로 사용하기 15가지 제안으로 적고 있다. 지은이는 말한다. 개인주의 시대에 진정한 의미의 개인은 존재하는가라고, 개인의 존재와 관련하여 어떤 모순을 스스로에게 안기고 있을까 라고 묻는다. 우리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혼돈 속에 있다. 개인이라는 단어를 마주치면 거침없이 욕망을 추구하면서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와 같은 삶을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이기주의와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자기 이익외에 아무것도 살피지 않는 이기주의가 개인주의로 둔갑한다(22쪽).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개인주의 탄생은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우는 휴머니즘과 함께 탄생 인간의 존엄에 대한 확신은 개인들이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성과 유일성을 지닌다는 생각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개인주의가 추구해온 이상과 가치들은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생존의 조건으로 강제하는 시장지상주의에 패배했다.(25쪽) 오늘날 개인주의의 수사학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집단적 모방의 형식에 사로잡혀 ‘자유로운 강제의 역설’ 혹은 ‘파편화와 동일화의 양면성’으로 나타난다. 이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전체주의, 집단주의 속에 헷갈리게 돼버린 ‘개인주의’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자유로운 개인의 탄생을 위해 오랜 투쟁의 과정을 겪어왔다(27쪽). 이제 4장을 통해, 개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해보자. 여기에 제시된 15가지의 제안 중 9가지만 간추려 본다. 이 책을 읽어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의 특징과 메시지를 알려줘야 할 것 같다. 1. 인간다움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교양은 자기 자신을 견지하는 내면적인 힘이며 깊은 사고를 이끌어 내는 지적 체력이기도 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들의 탐색을 통해 학생들에게 ‘삶의 한가운데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을 진중하게 고민해보게 해야 한다. 교양교육의 목적이기도 하다. 지금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모든 것의 근원이 무엇인지, 지금의 세계가 무엇이 결여돼있으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인권 등 우리가 누리고, 지켜야 할 것에 대한 통찰을 해야한다. 2. 정신이 아닌 물질의 승리, 인간의 고유성이 기술의 지배 아래에서 정의되는 초유의 사태를 막기 위해 쉼 없이 생각이 흐르는 장소로서의 인간의식을 바탕으로 기술혁명이 가져올 변화와 도전에 대한 진지한 대응이 요청된다. 3. 파괴의 기계인가, 공생의 도구인가, 과학기술도 사용자의 세심한 관심, 배려, 책임이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자체의 양면성으로 말미암아 인간 삶 자체를 말살하는 폭력기제로 돌변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4. 민낯을 가리는 전시의 세상, 교양의 사색적 힘 자체는 깊이를 만들어 내는 문화적 기술로 작용할 수 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표면은 해석학적 깊이를 거부하기 마련이다. 5.표현들, 삶을 지배하는 언어의 난무, 거창한 표현들, 4차산업혁명에서 빅데이터, 포스트 휴먼, 인공지능, 뉴노멀까지 정보화 세계화라는 어휘들의 등장은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불투명성의 안개를 짙게 드리운다. 이렇게 거창한 표현들이 횡행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를 향한 불안, 존재의 망각이 정점에 이른 시기에 존재에 대한 사유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듯, 인간성 퇴락의 국면에서 인문적 가치의 소중함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철학이 부재한 곳에는 거창한 표현들의 공허한 울림만이 반복될 뿐이다. 6. 개인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허상, 트랜드가 시대감각에 가깝다면 감각은 정신에 비해 어떤 한계와 결함을 가지고 있을까?, 감각은 불안정하고 수명이 길지 않다. 이 한계와 결험은 깊이의 부재 혹은 얄팍함의 일상화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림을 보라. 참된 예술작품이 존재조건은 그림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정신의 본령이어서 이를 말로 장황하게 또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것이 예술작품이다.
7.무늬, 달팽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 독일 아이들은 얼룩말 무늬라는 노래를 부르며 횡단보도(얼룩말의 무늬처럼 보여서)는 언제든지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얻는다. 이것이 최소한의 약속이다.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가장 기본적인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이를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다른이에 대한 관심과 배려이기 때문이다. 8. 개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윤리, 개인주의는 서로 개인적 이해와 존중이라는조건 충족과 함께 성립한다. 어떻게 보면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틀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상호존중의 이해의 바탕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휴머니즘이다(191쪽을 자세히 읽어보자) 9.동물의 숲(모동숲), 게임으로 알아보는 개인주의 사용법, 무인도라는 빈터에서 시작되는 모동숲의 설정 자체가 소극적 자유를 보장한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플레이어는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 자유의 차원으로 진입한다. 이 게임을 통해 뭔가를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무인도에 거주하면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개별성, 창의성을 실현해나가게 된다는 것을 나머지, 10, 강한 선택, 삶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 책임, 11,강한 평가, 자기와의 올바른 관계 정립, 12. 거리두기, 개인주의 문화정착을 위한 기회, 13.경제의 민주화, 바람직한 미래사회의 기초, 14. 증여, 세계공화국으로 나아가는 조건, 15.장미, 이름으로 다 포괄할 수 없는 깊이, 문장만 봐도 짐작이 갈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이기주의와 혼동하는 개인주의에 대한 교양서다. ”개인주의“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개인주의라 말하면서 이기주의를 관철시키려 드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나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구분은 갈 것이라 믿는다. YES24리뷰어클럽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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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에 대한 정서적 반응은 어떠할까? 과거에 대부분은 개인주의에 대해 부정적 정서반응을 보였다. 과거에는 집단의 가치가 개인에게 부가되었고, 개인의 것을 쫓는 것을 이기적인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즉,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같은 것으로 혼동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사회가 과학적 진보 등으로 발달해가면서 개인이 중요시 되었고, 개인의 삶이 의미가 있어졌다. 과거 집단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면, 현재는 집단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개인주의에 대한 재해석이 있어왔고,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구분하여, 휴머니즘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즉, 나뿐만 아니라 타인 개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게 된 것이다. 이기주의는 나의 만족을 위해 타인의 권리 따윈 신경 쓰지 않는 것과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 19라는 전례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이 개인주의의 가치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제 혼자를 강요받는 시대에 살게 되었고, 우리는 개인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즉, 무인도에 혼자 살게 된 내가 어떻게 개척해 살아가야 하는 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이 시의적절하게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개인주의에 대한 철학적 정의부터 어떻게 집단 내 일부가 아닌, 개인만으로도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정치, 사회, 경제, 과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그 과정을 살펴보게 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 개개인이 단순히 집단을 이루는 부속품이 아닌, 의미를 갖는 존재로서 그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들에게 대해서도 반성해보고,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개인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중에서 가장 와 닿았던 것이 바로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교양교육을 통해 그 힘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면서 현재의 대학이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지 반성해보게 하였다. 지금의 대학은 사회경제적 흐름에 편승하여 대학의 원론적인 존재 이유를 저 버린 지 오래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을 통해 우리는 트렌드를 따르는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 내는 데 치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은 ‘후마니타스’ 즉, 인간다운 가치에 중점을 두고, 올바른 삶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그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점점 더 진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과학기술에 의존한 삶을 살거나 그 기술의 발전 속도에 질질 끌려가기 급급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만을 긍정적으로 쫒기보다는 과학기술의 발전 내 인간의 가치가 포함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간과 공생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해 맹목적인 태도나 자세가 아닌, 비판적 태도나 자세가 그런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개인이 의미있게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듯 점점 혼자 있기를 강요받는 시대에 어떻게 개인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가야 하는 지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이 책을 통해 자신 안의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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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마다 개인의 삶을 각기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이 책 "누구나 개인주의자가 된다" 는 시대의 변화가 가져오는 인간 삶의 왜곡에 비추어 나,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를 묻고 있다. 마지막에 실어둔 개인주의 사용을 위한 15가지 제안 하나 하나 마다의 인간적 고유성과 특징적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생각된다. **네이버카페 책을좋아하는사람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