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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7개월 전에 구입했고 바로 완독은 했다. 대충 읽기는 했지만 정독은 아니고 읽고 싶은 부분만 열심히 읽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리뷰를 쓰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유는 그 무렵 나는 조국 백서와 흑서에 대한 느낌을 썼다가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는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이제 가능하면 정치적인 책에 대한 글은 쓰지 말자고 생각했고, 리뷰를 쓰더라도 좀 더 시일이 지나면 천천히 쓰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내가 중점적으로 읽은 대목은 진중권, 서민, 김어준에 대해서 언급한 60여 쪽 정도이다. 나머지는 프로보커터의 정의와 역사 및 외국의 사례들인데,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아서 책장만 넘겼을 뿐이다.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책을 리뷰로 쓰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했다.
7개월쯤 지나니 읽은 부분도 잘 생각이 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다시 읽을 여유도 없다. 다만 나로서는 어떤 생각이 있어서 구입한 책이니 흔적은 남겨야겠다는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몇 자 적는다.
첫째, 진중권, 서민, 김어준은 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이해는 갔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현재 라디오 청취율 전국 1위이니 김어준 씨는 진보 진영의 대표 논객으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진보에서 보수로 생각을 바꾼 진중권 씨는 족벌언론이 총애하는 듯하니 보수 논객의 대표로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서민 씨는 누구인가? 서 씨도 진 씨와 비슷한 유형이기는 하지만 앞의 두 분에 비해서는 중량감이 떨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저자는 왜 서민 씨를 두 사람과 같은 반열에 놓았을까? 물론 부제를 보면 짐작은 간다.
- 진중권 : 프로보커터들의 프로보커터 - 서민 : 게으른, 무능한 프로보커터 - 김어준 : '공정한 편파'가 감춘 정치 종족주의 (각 항목의 부제)
진중권 씨와 김어준 씨에게는 프로보커터로서 어떤 의미를 부여한 듯하지만, 서 민 씨는 '게으르고 무능한'이라고 표현했다. 두 사람과 같은 반열이 아니라 '게으르고 무능한 프로보커터'의 대표로 본다면 이해는 간다. 그는 두 사람과 같은 반열이 아니라 '게으르거나 무능한' 반열의 대표로 보는 듯하다.
둘째, 공정하게 표현한 듯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서는 진중권 씨와 김어준 씨 어느 한 쪽을 찬양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대로 객관적으로 서술하면서 그들의 단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아픈 점을 지적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얼굴이 붉어질 듯하다.
진중권 씨는 사람들이 그를 전향 혹은 변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고, 그는 어느 진영이라기보다는 언론에 노출되기를 꾀한다는 저자의 지적에 대해 어떤 답변을 할지 궁금하고, 김어준 씨가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서는 '누군가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했다'라고 음모론을 동원해서 사건의 진상을 흐렸다는 지적에는 어떻게 변명할지 궁금하다.
셋째, 개인적으로 진중권 씨보다는 김어준 씨의 역량이 더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중권 씨는 시국을 보는 눈이 정확하거나 예리하다기보다 족벌언론들이 집중적으로 보도를 해줌으로써 명성을 얻은 듯하다. 진 씨가 별로 대단치 않은 말을 해도 족벌언론들이 대서특필을 하거나, 발표할 지면을 주면서 보수의 대표 논객으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그에 비해 김어준 씨는 상대적으로 작은 매체인 딴지일보나 지금 진행하고 있는 TBS 정도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있다. 이른바 진보라고 하는 신문들도 김어준 씨를 신뢰하거나 호의적인 시각을 보이지는 않는 듯하다. 대한민국 주류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듯한 진중권 씨와 거의 혈혈단신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김어준 씨를 비교한다면, 당연히 김어준 씨의 역량이 더 크지 않나 싶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잘 모르겠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리 재미가 있는 내용이 아닌 듯하다. 다만 프로보커터의 속성에서 보수와 진보의 논객을 비교한 것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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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등장하고 오렌지족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90년대에는 대중문화 연구서들이 꽤 많이 출간되었다. 그 즈음이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융성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대중문화에 대해 이토록 유쾌하고 날카로운 연구서는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더군다나 이미 기성세대가 된 그때의 젊은이들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지금의 MZ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서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우선 ‘프로보커터(Provocateur)’라는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텐데, 'provoke'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선동가, 앞잡이라는 의미로, 도발(provoke)하는 사람, 즉 '인터넷 등지에서 글이나 영상으로 특정인이나 집단을 도발하여 조회수를 끌어올리고, 그렇게 확보한 세간의 주목을 밑천 삼아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p.79)을 일컫는다.
진중권, 김어준, 서민, 가세연, 이아노폴리스(트럼프의 킹메이커)를 대표적인 프로보커터의 예로 지적하면서 이들을 실명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저자의 기본 생각은 프로보커터들은 세상을 망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프로보커터들은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면서 '공론장의 아이돌'로 군림하는 자들인데, 그들이 해법으로 내세우는 것은 대개가 근거가 빈약한 음모론이거나 진영 논리식 ‘내로남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의 주목을 목적으로 한 도발과 결집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정치 혐오를 유발하고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냉소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위해하다.
사유의 외주화로 인해, 도발과 음모론, 어그로로 탄생한 게 프로보커터라는 걸 감안한다면,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할텐데, 선동되지 않고 분별력 있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의 기준과 지표를 제시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근래에 읽은 사회비평서 중 가장 흥미로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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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나쁜 관종’에 관한 이야기다. 주목과 관심을 위해 무슨 짓이든 불사하는 ‘관종의 멘털리티’는 정치 담론장에서 왜곡과 소란을 일으키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특정 정치인이나 유명인, 혹은 인종·종교 등을 향해 강도 높은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유튜버가 급증하고 있다... 이렇게 그들‘을 공격하는 행위는 ’우리 편‘을 모으고 결집해 낸다... 이런 사람들은 문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문화평론가로 불리지 않고, 정치 이야기를 하지만 정치평론가로 불리지 않는다. 대중 강연과 거리 연설에도 곧잘 나서지만 운동가로 불리지 않는다. 이들은 어떤 신념이나 가치를 설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무런 내용 없이 ’어그로‘를 끄는 것만으로 커리어를 쌓아간다. 영미권의 언론에서는 이들을 ’프로보커터provocateur’, 우리말로 ‘도발자’라고 일컫는다.“ (pp.7~8)
김내훈 / 프로보커터 (Provocateur) / 서해문집 / 231쪽 / 2021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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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과 관심에 환금성이 부여되는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 조회수에 자아를 동기화하는 관종의 시대, '좋아요'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상상 밖의 추태를 불사하고 사회적 금도를 넘나드는 무질서의 시대에 작동하는 문화정치적 몇몇 원리를 들여다 볼 것이다. 나아가 기민하고 기막힌 적응력으로 이 난세의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있는 한국과 엉미권의 아모스 이(Amos Yee)들, 요컨대 '관종스피커'들의 양태를 비평하고자 한다. 감염병의 치료는 바이러스의 존재와 그것들의 병리를 진단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 쓰여있는 글. 지극히 집필의도에 충실한 책이며 매우 흥미롭다. 그게 그런 거였어? 하고 뒷북치게 되는 구간이 많다. 이런 비평서는 참 좋은 듯. 당장 우리가 맞딱뜨리고 있는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되짚어 보고 어떤 입장을 견지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받아쓰기 언론들이 연일 주시하는 대표적 프로보커터 진중권,김어준,서민,가세연과 같은 이들이 어떤식으로 자기편을 모으고 이익을 취하는지 낱낱이 분석하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가세연이 유튜브 슈퍼챗 수익 창출 세계 4위-2020년기준-라니 완전 깜놀!) 그 중 진중권을 설명하는 글 하나를 공유해볼까낭. (왜냐하면 진중권이 제일 싫으니까.) p.131 진중권은 조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레토릭을 구사한다.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그보다 더 파렴치한 일도 있었습니다"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더 파렴치한 일'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2021년 4월에 나온 책인데 20대가 쓴 사회비평서라 해서 당시 한겨레 출판에서 나온 <지금은 없는 시민>과 비슷한 시기에 구매했지만 이제야 읽었다. 그것도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됐다고 해서...ㅎㅎ <지금은 없는 시민>도 괜찮았는데 이 책이 좀 더 배울 게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넷플릭스 갓띵작 <돈 룩 업>을 보면서 감독이 요지경 속을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미국사회를 조금은 과장되게 표현한 건 아닐까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렇지도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하... 세상이 어찌 되려고 참... #프로보커터#김내훈#서해문집#이책이주는교훈을한마디로말한다면#병먹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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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풍요로운 시대도 없었지 싶다. 경기 침체와는 별개로 키보드 자판을 얼마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굳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바다 건너 거주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 또한 가능하다. 기술의 힘이 실로 놀랍다는 걸 일상에서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밝음과 어둠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예찬 일색으로만 바라보기에 오늘날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과거 같았으면 극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치거나 그마저도 힘들었을 많은 이들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획득하고, 과시할 수 있게 됐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양산되는 정보 중 무엇이 진정 내가 필요로 하는 건지를 가늠하기란 꽤 어렵다. 저자는 프로보커터(provocateur)를 주목했다. 예나 지금이나 주목받고자 하는 건 모든 이의 본능일 테지만, 여느 시절보다도 주목받는 게 용이해진 요즘은 아예 이를 자신의 무기인양 활용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관심 받고자 안간힘을 쓰는 ‘관종’들의 독특한 몸놀림은 그저 호기심을 자극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일종의 도발로써 작용하고 있다. 단순히 질이 낮고 영양가가 없다며 배척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을 하나의 구심점 삼아 결집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책은 ‘아모스 이’라는 인물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세상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었다. 작품성까지 논할 단계는 아니었으나 신성처럼 나타난 그에게 세상은 막중한 관심을 보였다. 이후 그가 보인 행보는 톡톡 튀었다.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그의 영상은 급기야 정부를 자극했으며, 고작 20살의 나이에 정치적 망명의 길을 걷도록 만들었다. 딱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수도 있으나 그는 이미 타인의 관심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뭐든 좋으니 자신의 이름이 거론될 수 있게끔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는 듯 절대 건드려서는 아니 될 주제에까지 손을 대고야 말았다. 그가 진정으로 소아성애를 옹호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꼭 그 주제가 아니었어도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도록 만들 수 있는 카드라면 뭐든 꺼내 들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무너졌다. 극소수의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존재야 하겠지만, 초창기와 같은 시선을 하고 그를 바라보는 이들은 더 이상 없다. 해외의 사례이므로 우리와는 동떨어졌다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기제를 활용해 스스로를 부각시켜 왔다. 최근 들어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걸까, 의문을 자아내는 일이 잦아진 진중권에 대해 저자는 같은 잣대를 들이대 평했다. 180도 달라진 정치적 지향점도 실상은 변질이나 배신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었다. 프로보커터에게 중요한 건 스스로가 돋보이는 것이지 자신의 입장이 지닌 진실성은 아니다. 특정 집단을 과감히 비판하다가도 그로써 자신이 주목받을 수 없다는 판단이 든다면 과감하게 이로부터 탈피해, 지금껏 자신이 부정해온 입장 또한 견지함으로써 계속해서 생명력을 이어나갈 궁리를 하는 게 프로보커터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제법 수려한 문체를 구사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서민, 여전히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김어준 등도 저자의 책에서는 형태는 조금 다를 수 있으나 프로보커터로서 다루어졌다.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 중인 이들과 비교했을 때 소위 우파의 입장을 고수한 프로보커터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듯했다. 안정권, 강용석, 윤서인, 여명숙, 심지어 유승준까지. 과연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옹호를 받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면 저자가 그와 같은 평을 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단 한 명이라도 자신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이가 있다면 포기가 어려운 것일지도. 그다지 성공적인 모습이 아니어도, 이와 같은 방식을 시도하는 이들은 점차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실제로 트럼프의 낙마 이후 그에게 동조하는 여론몰이에 나선 이들이 미국 사회에선 대거 늘었다. 온갖 음모론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예전과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의 세련됨을 자랑하는 신생 프로보커터가 등장하고도 있는 게 현실이다. 내면이 공허한 이는 갈대마냥 흔들린다. 프로보커터도 마찬가지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비었다. 오로지 주목 받는 게 목적인 그들은 수시로 알맹이를 바꿔가며 제 생명력 유지에 안간힘을 쓴다. 혹 자기 변혁처럼 보일 수도 있는 전략에 공론장이 오염된다면 정치는 희망 아닌 절망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정치와 브로보커터의 경계가 모호해진 듯하다. 정치에, 브로보커터와의 분간을 가능하게 해 줄 품격을 요구하는 게 욕심이 아니었으면 싶다. |
|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가장 큰 맹점은 몰라도 되는 걸 너무 많이 보게 되고, 기술이 없었다면 평생을 살면서 만나지 않았을 인간 군상들을 너무 많이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대개 프로보커터인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그런 군상들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