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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 - 윤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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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국고대사 저자 : 윤내현 출판사 : 만권당 국가이전시대부터 열국시대까지, 윤내현의 역사 새로 읽기   역사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보는 관점이 바뀌니 옳은 일과 옳지 못한 일이 바뀌기 마련이고, 새로운 유물, 유적 등이 발굴되면 새로운 기록이 추가된다. 심지어는 고의로 왜곡하는 경우도 생기고, 역사 의식의 변화, 대중들의 민족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확대,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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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국고대사

저자 : 윤내현

출판사 : 만권당

국가이전시대부터 열국시대까지,

윤내현의 역사 새로 읽기

 

역사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보는 관점이 바뀌니 옳은 일과 옳지 못한 일이 바뀌기 마련이고, 새로운 유물, 유적 등이 발굴되면 새로운 기록이 추가된다. 심지어는 고의로 왜곡하는 경우도 생기고, 역사 의식의 변화, 대중들의 민족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확대, 축소하는 경우도 생긴다.

 

전자의 경우는 발전적인 변화로 볼 수 있으나 후자의 경우는 잘못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의 해석이 달라지는 건 관점의 차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료를 잘못 해석하는 것은 명백하게 문제가 있으며 자의적 해석이 들어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런 면에서 고대사는 어렵다. 역사와 고고학 그 중간에 끼어있다. 희박한 사료와 유물, 유적을 바탕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그 이후 기록된 역사들과 같은 방향으로 기술되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게다가 빈 공백은 (철저히 사료를 바탕으로 해야겠지만) 상상이 들어가 채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고대사는 너무 어렵다. 가장 최근 자료가 고려시대에 출간한 삼국사기, 삼국유사이며 그들이 직접 쓴 역사서는 전해지지 않고 중국의 24정사를 참고하여 유추해보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윤내현 교수는 사학과 박사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큰 획을 남긴 사람이다. 여러 책과 여러 협회에서 일을 했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훌륭한 책을 써서 자신을 증명하고 과학자는 새로운 발견 또는 발명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역사학자는 사료의 숨겨진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여러 정황 및 고고학적 연구 자료를 해석함으로 자신을 증명하기 마련이다.

 

과연 윤내현 교수는 자신을 증명했을까?

 

이 책은 크게 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있다.

 

제1부 국가이전시대

1장 무리사회

2장 마을사회

3장 마을연맹체사회

 

제2부 고조선시대

1장 고대국가의 출현

2장 고조선의 정치

3장 고조선의 경제와 사회

4장 고조선의 문화

5장 고조선의 대외 관계

 

제3부 열국시대

1장 열국시대의 개시와 변천

2장 동부여의 정치와 대외 관계

3장 고구려의 세력 확장

4장 읍루, 동옥저, 동예, 최씨낙랑국, 대방국, 말갈

5장 한의 정치와 사회 변화

6장 백제 초기의 세력 확장

7장 신라 초기의 세력 확장

8장 가야의 정치와 흥망

9장 열국시대의 정국변화

10장 열국시대의 경제와 사회

11장 열국시대의 문화

12장 열국시대의 대외 관계

 

크게 세 시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인 국가이전시대는 단순히 선사시대로 통칭하는 것이 아니라 셋으로 나눈다.

 

-무리사회

구석기시대. 30-100명의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시대

 

-마을사회(부족사회)

씨족을 기초단위로 하여 무리사회보단 조금 큰 구성원을 지닌 사회

질서가 있는 평등한 사회

신석기 시대로 농경이 일반화되었고 정착을 하며 살던 시대

한반도와 만주를 크게 한 문화권으로 설명하고 황하 문화권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 근거로는 빗살무늬토기와 특유의 돌무덤(돌무지무덤, 돌상자무덤, 고인돌 등)을 든다.

 

-마을연맹체사회(추장사회, 군장사회)

빈부 격차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이며 그에 따라 사회 계층이 형성된다. 하지만 아직 국가사회 단계까지는 진입하지 못한 시대이다.

 

다음은 고조선 시대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나라이다. 하지만 한민족의 청동기문화의 대표적인 비파형동검의 연대를 보면 기원전 1000-900년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시기를 대개 고조선 건국 연대로 생각했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하지만 비파형동검은 매우 발달했기 때문에 비파형동검의 연대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만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하가점 하층문화는 기원전 2410년으로 확인되었고 양평군 양수리 고인돌과 영암군 장천리 집자리는 기원전 2500-2400년 경의 문화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나라라는 것은 옳을 것이다.

 

게다가 한서 지리지를 보면 기원전 11세기에 '기자'가 고조선으로 망명할 당시 '범금팔조'라는 법이 있었다. 법은 국가의 기틀에 중요한 요소로 기원전 11세기에 법이 있다면 그 이전에 이미 나라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표를 제시하며 환인, 환웅을 기원전 1만년 정도까지 확대해 해석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과장된 해석이 아닌가 생각된다.

 

(글에 나오는 저자의 설명은 정자, 내 생각은 기울임체로 쓰도록 하겠다)


 

저자는 여러 역사서를 참고하여 고조선의 영토를 지금의 난하강부터 북쪽으로는 흑룡강 남쪽으로는 한반도 전체를 고조선으로 보았다.

 

기원전 2333년에 세워져 기원전 100년 정도에 없어진 무려 2200년이나 되는 나라의 어느 시기의 영토인지 밝히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저 시기엔 중국은 상나라, 주나라가 없어지고 춘추전국시대가 지나며 진나라가 중국일통을 한 이후이다. 그동안 저렇게 넓은 나라가 제자리에만 있었단 말인가? 저 시대에는 사실 영토를 지금처럼 명확하게 나는 것이 아닐 것이고 중앙 권력이 통솔할 수 있는 범위는 굉장히 좁았을텐데 저걸 고조선의 영토 혹은 영향권으로 보는 것이 옳을까? 단순히 같은 문화권이고 그 중 가장 큰(혹은 가장 잘 알려진) 나라가 고조선은 아닐까? 일단 정확히 시기를 밝히지 않으니 어떤게 옳은지 알 수가 없다.

 

저자는 고조선의 형태가 거수국제국가, 즉 중국 주나라의 봉건제도와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보았다. 기존에 고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의 순서대로 진행을 했다고 하는 제도에서 '기자'가 고조선의 서부 변경으로 망명와 변방에 기자국을 세웠고 고조선의 거수국이 된 것이다. 후에 기자의 후손인 준이 왕으로 있는 기자국을 탈취해 만든 것이 '위만조선'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전한의 공격으로 위만조선이 망했지만 그것은 고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며, 그 곳에 설치한 한사군의 위치는 한반도가 아니라 저렇게 요하 서쪽에 위치한 대릉하 부근이라는 것이다. 고조선이 망한 것은 전한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철제 농기구가 보급됨에 따라 거수국들이 토지 쟁탈을 벌이며 내부에서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부여, 고죽, 고구려, 예, 맥, 추, 기자국, 낙랑, 진번, 임둔, 현도, 숙신, 청구, 양이, 양주, 발, 유, 옥저 등은 난하에서 요하에 이르는 요서 지역에 있었는데,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침략하자 고조선의 거수국 주민들이 대릉하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그런 후 위만조선이 멸망하자 요하 서쪽의 주민들은 전한의 침략에 항거하며 요하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두번의 대이동이 있고 난 후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떠올라 동부여, 고구려, 읍루, 동옥저, 동예, 최씨낙랑 등이 생긴 것이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은 조금 다르다. 일단 현재 '기자'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실존 인물일 수도 있지만 고조선을 차지하여 기자조선을 세운 것 자체가 실증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만에 의해 '준왕'이 폐위가 된 것은 맞고 실제로 한사군의 위치가 요서지방이 아니라 평양 근처인 것은 거짓으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사군이 한나라가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한사군을 설치하긴 했으나 토착화되었고 후에 한반도와 만주에 여러 나라들이 들어섰기 때문에 독립적인 국가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민들의 대이동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당시에 고조선의 거수국들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도 의문이고, 거수국의 의미가 어떤 건지도 궁금하다. 봉건 제후같은 것인지 아니면 동맹국의 개념인지 또는 단순히 무역을 자주 하는 나라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핵심은 당시에는 민족의 개념이 없었을 것이란 말이다. 요서 지방에 한나라가 쳐들어와 점령을 한다고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 동쪽으로 대이동을 한다? 게다가 요서지방에 있을 때와 같거나 비슷한 이름으로 국가를 만든다? 그럼 이동해간 지역엔 사람이 없었나? 심지어 과거 고조선의 중심지역인데 이동해온 세력이 나라를 세우도록 가만 두는 것인가? 오히려 애초에 동쪽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것 아닌가?

 

하지만 고조선 멸망 후를 삼국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열국시대로 칭하는 것은 좋았다. 사실 계속 궁금했다. 삼국시대 지도를 책에서 배울 때, 부여가 남아있고, 동해안에 동예, 옥저란 나라도 남아있다. 심지어 가야는 꽤 오랫동안 남아있지 않은가?

 

신라 건국이 기원전 57년이고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은 676년이다. 신라가 세워진 후(심지어 신라라는 이름을 쓴 것은 한참 뒤이다) 통일까지 700년간 삼국시대라고 불리지만, 옥저도 존재했었고, 함경남도, 강원도에 있었던 동예가 고구려에 병합된 것이 245년이다. 심지어는 부여가 최종적으로 망해 고구려에 투항한 것이 494년이고, 가야 신라에 병합된 것이 532년이다. 즉 신라가 세워지고 550년가량은 가야, 부여를 포함해 최소 5개 나라가 존재했었고, 신라가 삼국통일하기 144년 전까지 가야는 존재했다. 삼국시대가 옳지 못한 듯 하다.

 

저자는 열국시대에서 부여, 고구려, 읍루, 옥저, 동예, 낙랑, 한, 백제와 신라의 초기, 가야에 대해 남은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물론 너무 적은 자료가 남아 설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것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간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저자의 방식에는 너무 헛점이 많다. 일단 자료의 해석이 너무 편협하다. 저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심하다. 심지어 적절한 사료가 없는 경우도 많은 듯하고, 대부분의 인용 자료는 자신의 책이나 연구이다. 즉 자신이 발표한 내용이지 학계에서 인정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료 해석을 했을 때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 많다던지, 그런 가설을 뒷받침할 유적지가 부족하다던지 말이다.

 

나는 실제로 역사학자가 아니라 확인하긴 어렵지만, 만일 위만조선에 의해 민족대이동이 일어났다면 그에 따른 유적지 이동이 뒷받침되어야한다. 집터나 무덤의 이동이 있다면 증거가 될 수 있지만 과연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학계에서 동의하고 교과서가 바뀌진 않았을지 의심스럽다.

 

두번째로는 당시에는 전혀 없던 민족주의적인 생각에 너무 빠져있다. 민족주의에 입각해 역사를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같은 민족의 개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건 잘못되었다.


 

고조선의 건국에 의해 형성되었던 한민족이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분열되어 있었지만 모두 고조선의 문화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자신들이 한민족에 속해 있다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

 

어느 사료에 우리가 한민족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조선의 문화 전통을 계승한다고 했나? 난 아직까지 비슷한 문장을 읽어보지 못했다.


 

고구려는 지금의 북경을 지나 중국 북부 깊숙이 황하 유역까지 진출했음을 알 수 있다.

 

황하 유역까지 고구려 땅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유적지로 실증된 것이 있나? 아니면 중국 사서에 확고하게 입증할 자료들이 존재하나?

 

심지어는 백제가 요서지방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도 한다.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낙랑이 평양 인근이었고 그 부분을 공격해 점령했다는 것이 이치에 더 맞는 말아닌가?

 

여기에도 나오지만 참고자료를 인용할 때 자신의 생각을 참고자료인 것처럼 덧붙인다.

서기 298년에 책게왕은 50여 년 전 고이왕 때 진충이 빼앗은 난하 유역의 낙랑군 서부 지역을 확장하기 위해 친히 출정했다가 전사했다.

기존 자료에는 '난하 유역의' 라는 말은 없다. 이런 식이다보니 사료의 원문과 생각이 뒤섞여 읽을 때 어떤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까지 의견인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열국의 흥망과 신라의 통일을 민족의 재통합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다.

 

저자의 글과 연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책이다. 고대사는 철저하게 사실 위주로 설명해야하며, 사료에 나온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부분이 부족한 책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연히 저자의 글이 맞는 부분이 많고 옳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다만 내가 여기서 적은 불만은 너무 자의적인 방향의 해석이 많다는 점이다. 심지어 출처도 자신의 글의 인용이 많아 믿음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내 주장이 옳지 않다고 해도 너무 언짢게 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r*********9 2022.07.07.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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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내용을 언급할 만큼 지식수준이 따라주지 않는다. 윤내현 교수의 저작 앞에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그의 연구 성과도 충격과 감동을 받기에 충분하지만, 그의 연구자세와 헌신은 지적허세에 충만한 나같은 독자를 티끌만한 존재로 축소시켜 버린다. 한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자는 숱하게 많으나 모두 같은 환경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유독 헌난한 고대사, 그것도 소위 주류 사학에서 벗어나 외길로 꿋꿋하게 연구에 매진해온 그에게 진심어린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서평은 이걸로 충분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u 2021.07.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