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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결국 선향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드럽지만 급격한 변화(폭포효과)를 유발하는 임계를 언급하는 책이다. 그러나 결국 영미 실용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책이다. 바로 위에서 보듯 이 사람이 언급하는 변화에는 결국 ‘주체’밖에 없다. 타자가 없다. 그가 정의와 윤리를 아무리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희생을 요구하는 존재, 권리를 박탈 당한 근원적 타자와 화해하기 위한 주체의 근본적 자기 박탈로서의 없다. 예컨대 미국에 불법 입국하려는 라틴계 난민에 대해서 이 책은 어떤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까? 아마 이 책은 거의 쓸모가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고 활용하기에 좋은 방법론이다. 흔히 동양에서 정치는 ‘세’, ‘법’, ‘술’이라고 하지 않나. 이 책은 행복한 ‘자국민’의 정치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기술과 세력을 끌어들이는 데에나 도움이 될 법하다. 그리고 주체의 원리로서 협소한 윤리이자 정의의 주체들의 ‘법’ 정도가 작동한다. 이 책은 난민, 장애, 소수자, 지구상의 생물들.. 그래서 우리의 안전과 우리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간주될 수도 있는 존재(흔히 그렇게 간주되는 존재)들을 위한 대안을 결코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위험하고, 이 책이 제시하는 윤리는 지극히 교활하다. 이 책에 따르면 오직 이들이 자국민의 1) 행복, 2)자율성, 3) 존엄성, 4) 자기결정권에 유리하다고 부드럽게 개입해서 설득(nudge)할 수 있을 때에만, 이 책의 유용성이 드러난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결국 특정 공동체 내부에 있는 권리자들을 위한 변화일 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고 현재의 언어로 설득할 언어조차 없지만, 윤리적인 이유로 소외된 자들을 맞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적 윤리를 뒷받침하는 근거 따위는 여기서 눈 씻고 찾아보려해도 찾을 수가 없다. 실로, 허접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좋아하고 필요로 할 사람은 있다. 적어도 나는 아니지만!
그리고 편집에 대해 각주의 번역이 어색하고, 비문이 있다. 심지어 각주의 목차와 맨 앞의 목차가 틀리다. 출판사는 436쪽과 이 책 맨 앞의 목차를 비교해보라. 뭔가 이상한 게 있을 테니. 이런 오류는 기본적인 것이라 범하면 안 되는 것인데.....ㅉㅉㅉㅉㅉ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