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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exbris/222630902018 내적 언어는 어차피 직접 발굴할 수 없습니다. 비고츠키는 발달 과정에서 변화하는 자기중심적 언어의 특징이나 외적 언어의 특수한 사례를 통해 그 윤곽을 그림으로써 내적 언어의 가능성을 규명하였습니다. 이렇게 간접적인 방법이 추인될 수 있었던 것인 전적으로 “언어적 사고의 복잡한 구조와 개별적 국면들 사이의 유동적 관계와 이행들이 오직 발달 과정 안에서만 발생”함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p.469). 실험과 이론적 분석을 통해 아동의 개념형성과정을 확립하고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과학적 개념의 기능을 통해 자기중심적 언어의 형태와 구조가 내적 언어로 전환될 가능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처음 유아는 어째서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말을 하게 된 것일까요? 무언가를 가리키고 싶고 무언가 자신의 욕구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을 통해서 무언가를 가리키지만 음성으로 할당되는 이 단어는 명명 기능과 구분되지 않으며 심지어 사물과도 또 자기 자신과도 혼재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근본적으로 이때의 언어는 외적 언어인 동시에 내적 언어이며 사상과 단어의 거리는 0에 가깝습니다. 어휘가 증가하고 각각의 단어간 연합을 통해 복합을 구성하면서, 완전한 구어를 구사하면서 의사소통은 원활해지겠지만 언어의 추상성을 완전히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명명 기능이나 상징 기능의 발달에는 일상적 개념을 뛰어넘는 과학적 개념의 도래가 필요합니다. 과학적 개념을 통해 개념을 자각하고 자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내적 언어는 분리되고 사상과 단어도 완전히 분리됩니다. “의미와 음성, 단어와 사물, 사상과 단어”가 분리되는 것은 개념발달 역사의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사상과 분리된 단어는 발달의 “최후 단계를 구성”합니다(p.471).
비고츠키는 마지막으로 사상과 단어, 사고와 언어에 관해 도달한 일반적 이해를 요약합니다.
사상과 단어를 연결하여 내부와 외부가 맞닿은 곳이 바로 단어의 구문법과 의미의 구문법의 접면입니다. 라캉의 표현을 빌리면 각각 기의(記意, 시니피에)와 기표(記標, 시니피앙)일 것입니다. 라캉에 따르면 이 접면에서 주체(subject)가 발생합니다. 라캉의 주체 개념은 사상과 단어를 능동적으로 주관하는 실체가 아니라 임시적인 존재입니다. 비고츠키에 의하면 주체 역시 ‘단어’로 완성되는 것이겠죠. 잘 생각해 보면 아무리 특징들을 나열해도(성별, 키, 무게, 성격, 기호, 기질 등등) 자신의 이름 이상으로 자신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여기서 자세히 논할 수 없지만 사상과 단어 사이의 상호작용을 역동적으로 추동하는 것은 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비약하자면 이렇게 기능하는 외부적 존재를 비고츠키는 성인(어른) 혹은 학교라고 칭했던 것은 아닐까요? 발달이 사상과 단어를 분리하면서 그 사이에 주체를 발생시켰다면 교육이 사상과 단어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추동합니다. 사상과 언어를 작동시키는 모든 외부적인 것이 선생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제가 읽어낼 수 있는 《사고와 언어》의 결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