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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노인 이필재 지음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려면 지금의 기득권적 사고와 행동 원칙을 바꿔야 한다. 세상은 결코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저절로 좋아지는 법은 없다. p.82 나 때도 초등학교 시절에 체벌은 있었다. 몽둥이로 손바닥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저자는 58년생으로 60년대에 학교를 다녔을 때, 폭력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이 폭력을 일삼는다니 충격이다. 저자는 나이가 들면 진보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체제에 적응하고 조직이 원하는 대로 처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바꿔야한다. 저자는 1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전,현직 장관 30여명, CEO 약 350명과 인터뷰를 하였는데 촌지를 받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고 싶지 않아도 분위기상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촌지를 받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받지 않았고 그 시대 기자들의 3종세트인 고스톱, 사우나, 보신탕을 즐기지도 않았다. 남들 다하는 것들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사회 분위기상 힘들었을 것 같다. 학벌주의자이지만 출신 학교와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인종주의자로 다른 인종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있다는 솔직한 심정을 말하기도 한다. 저자의 또래는 대부분 보수라서 동년배 사이에서 진보는 소수자라고 한다. 글과 이미지를 카톡방에 공유하는 것은 꼰대의 특성이며 나도 웃긴 것은 남도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도 꼰대라고 한다.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불편할 수 있는 글은 올리면 안된다. 꼰대는 자신이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준으로 걸핏하면 가르치고 지적질을 하며 자신보다 서열이 낮다는 이유로 하대한다. 저자는 58년생으로 꼰대를 운운하며 그러지 말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존경스럽다. 요즘은 젊은 꼰대도 있다. 30대 꼰대로 본인보다 낮은 직급에게 존중이라고는 볼 수 없는 태도로 지적질을 일삼는 꼰대가 있다. 수평적으로 대하며 존중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사회가 정해놓은 사고와 행동방식을 깨어 열린사고로 자식이 성인이 되면 수평적인 관계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또한 진보적 노인이라고 불릴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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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진보에 속하고 보수가 오히려 소수파인 샌드위치 세대가 있다. 바로 X세대다. X세대인 나는 평생 진보로 살아왔기에 이후 70세를 넘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진보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론인 이필재의 신작 '진보적 노인'이란 책제목을 딱 보았을 때 혹시 한번 비튼 풍자적인 뉘앙스가 아닐까 싶었다. 왜냐면 일단 저자가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만드는 보수 언론사 출신이고, 우리 사회는 "젊어서 진보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 먹고도 보수가 안 되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이른바 아포리즘을 가장한 선입견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말그대로 '진보적 노인'이 되리라는 저자의 굳은 자기선언이었기 때문이다. 58년 개띠, 77학번, 기독교인, 인터뷰 전문 프리랜서 이필재의 결의다. 책의 추천사를 써준 경제학자 우석훈의 말대로, "100세 시대, 노인이 진보해야 한국 사회가 좋아진다는 생각"에 나 또한 공감한다.
저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전·현직 장관 30여 명, CEO 약 350명과 인터뷰한 베테랑 저널리스트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들에게서 배운 인생의 교훈도 심심찮게 들려준다. 가령 남승우 풀무원 재단 상근 고문의 '수영장 이론'이 그러하다. 당시 언론계의 관행과 달리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초심'을 우직하게 고수한 것을 보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법 싶은데, 막상 가정 속 에피소드를 들여다보면, 드라마 보며 눈물 흘리는 남자, 빨래를 도맡아 하는 남자, 딸을 위해서 평등한 미래 사회를 꿈꾸는 남자이다. 이해타산적 현실주의자가 아닌 고지식한 원칙주의를 지향하는 점이 내겐 멋지게 다가왔다. 맘에 든다.
노욕과 노탐, 노추를 멀리하려는 일화도 흥미롭다. 나이를 먹으면서 갖는 두 가지 불안(실명 공포와 실직 공포)을 토로하기도 하고, 아내와 같이 '방탕중년단'이 되어보자고 허풍을 떨기도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한국의 기득권 동맹에 기생하는 개신교 목사들은 종교 자영업자로 전락했다고"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한다. 당연히 내로남불과 시대착오적 편 가르기를 일삼는 86세대 정치인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빼먹지 않는다. 이들이 역사상 어느 세대보다 정치적으로 과잉 대표되고 있고, 홍세화의 지적대로 윤리적, 지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으며,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능력 만능주의에 갇혀 있다고 일침을 가한다.
요즘 대중매체는 젊은 남자 꼰대가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인 '이남자' 이슈로 시끄럽다. 20대 젊은 친구들이 유난히 보수적인 발언을 해대고, 반퇴 혹은 은퇴한 시니어들이 오히려 진보적인 발언을 하면서 청년 기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확실히 '젊은 진보, 늙은 보수'는 이제 식상한 공식이다. 지금이야 저자의 말처럼 진보적 노인이 여전히 소수파에 속하지만, X세대가 노년 대접을 받는 20년 쯤 후에는 진보적 노인이 오히려 다수파에 속하리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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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8년 개띠 ‘끝난 사람’이 아니다
몽스북에서 출판한 이필재 작가님의 <진보적 노인>은 저자가 지금까지 진보적 가치관을 고수하며 원칙주의자로 살아온 그의 삶과 철학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이필재 작가님은 58년 개띠생으로 우리나라 베이비붐을 대표하는 세대이고, 언론학을 전공해 중앙일보에서 오랜 시간 기자였고 시사잡지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2013년 퇴직 후 언론 관련 기관, 학교에서 강의한다.
‘58년 개띠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조어가 될 만큼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세대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의 대표였고, 이들이 청년일 때 우리나라는 농업사화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시대였다. 이들이 은퇴를 맞이할 때는 생산가능인구가 부족할 수 있다고 했다. 은퇴 후 이들의 소비력이 국내 소비에 중요하다는 의미로 김난도 교수는 OPAL세대를 별도로 조망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반공교육을 받으며, 초등학교 시절 한 반에 100여 명이 수업하던 시기라, 2부제 수업과 교육 현장에서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들 세대의 2/3 이상이 보수적이라 알려져 있음에도, 저자는 확고한 원칙을 지키는 원칙주의자였다.
기자라는 직업이 촌지를 받았던 것이 관례처럼 여겨지는 시기에도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다. 사회의 명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때로는 고교 선배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건네는 촌지도 다시 돌려준다.
기자라는 집단만큼 사회에서 받는 인식이 바뀐 집단도 없을 것이다. 신문이 여론을 이끌었던 시기와 민주화 운동을 불씨를 피어오르게 한 사람도 신문기자다. 어느 순간, 기레기(기자+쓰레기)에 이어 기더기(기자+구더기)라는 조어까지 생겨난 기자의 수난 시대다. 저자는 이를 기사 편집 간부들이 오너에게 종속되어 제대로 된 기사를 쓰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의 주류 언론이 지나치게 정파적이고 언론사주의 강력한 오너십이 작동하며 언론사주는 자본가로서 보수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5년 중앙일보 이찬삼 시카고 중앙일보 편집국장의 10회에 걸친 동토 잠행기를 연재했을 때 이를 문제 삼는다. 이찬삼 국장은 김정일 치하의 북한에 잠입해 국내 최초로 잠행 르포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잠행이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취재원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북한 통행증을 공개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공정보도 위원회를 통해 이를 문제 삼았던 저자는 경제 주간지로 발령받았다.
그렇게 원칙을 지키면 일했던 기자 생활과 편집장을 거쳐 이제는 은퇴하고 경기도 별내로 이사한 후 저자는 아내가 하고 싶은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집안일을 한다. 설거지하기 위해 식기세척기를 들여놓고 건조기도 샀다. 집안의 빨래는 세탁기에 맡긴다. 한 사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사회적 차별이 없어야 한다. 성희롱과 성차별이 만연한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도 바꾸고 여성이 느끼는 유리 천장에 깨져야 한다. “장차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남자는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 딸을 둔 남자 후배들에게 저자가 사석에서 하는 말이다.
책에서 저자가 인터뷰를 진행한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이중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 대표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85세에 독특한 노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나이가 들면 꿈은 사라지고 목표만 남아요. 뭘 하든 세끼 밥이야 먹겠지만 사람은 살아가는 목표가 있어야 해요. 자기 의지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나의 역사를 써야죠.” (136쪽)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죽을 때까지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죽기로 마음먹었다는 저자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진보적 노인>은 평생을 언어 노동자로 살아온 사람의 인생이 녹아있는 수필집이다.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돌아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지난 단면을 알고 싶은 사람은 <진보적 노인>을 읽어보길 바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진보적노인 #이필재 #몽스북 #에세이 #중앙일보 #책과콩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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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안에는 퇴직이란 것도 있습니다. 보통 퇴직을 하고나면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요즘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저자는 기자에서 퇴직한 후에도 글을 쓰는 삶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도 나온 것이겠지요.
다양한 사람이 있겠지만 이렇게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분들은 새삼 대단한 것 같아요. 특히나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더더욱 대단하고요.
젊은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가 되어버리고요. 저조차도 저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세대차이를 느끼곤 하니까요.
저 또한 저자의 글을 보면서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느새 남들보다, 나보다 어린 사람보다 뒤쳐진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이 기분에서 조금은 벗어나고픈 생각이 든다면 나이가 든걸까요? 진보적 노인이라는 것은 저자의 희망사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진 것 같아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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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노인은 왠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인 듯하다. 보수 청년만큼.
2018년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연령대별 정치성향이 54세부터 보수성향이 진보를 역전한다고 한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보수성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진보에 서는 사람은 이러한 성향을 거슬르는 사람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젊은 시절의 마음을 유지하며 공정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이상주의자와 같다.
저자는 중앙일보와 시사잡지에서 일했고, 정년퇴임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를 진보적 노인이라고 부르지만, 원칙주의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치를 따져 옳지 않은 것에 타협하지 않고, 옳은 것을 밀고 나간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몸에 베인 가부장적인 습관은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몇 개의 원칙을 세우고 실천했다고 말한다. 기자로서 촌지를 받지 않겠다든가, 군대에서 부하를 구타하지 않겠다는가, 강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초심이다. 그래서 누구와 인터뷰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고, 부대 내에서 이어지는 폭력을 끊겠다는 노력을 보여주었고, 누구보다 빡센 수업을 진행한다. 딱딱한 사람처럼 보이고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한결같은 태도는 신뢰감을 줄 수 있겠다.
간혹 저자에게는 실천하기 쉽지 않은 원칙도 있는데, 가정에서 딸과 아들에게 남녀 평등을 가르치면서도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극복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남자는 담배를 펴도 되지만, 여자는 좀 그렇다라는 생각이다. 딱히 담배를 핀다는 이유로 여자들을 비난하지 않지만, 그저 그런 모습이 불편하다. 딱히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글은 필요없는 단어는 조사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깔끔하다. 쉽게 읽히면서도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한국사회를 꼬집고, 진보정당의 보수화, 기독교의 문제점, 당연시하지 말아야하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다각도에서 살핀다. 여성의 권익, 재벌총수와 언론, 교회와 동성애자, 한국 대통령과 기독교, 정치와 언론조작, 진보와 보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빵 터지는 반전 유머도 매력적이다. 예로, "선배들과 보신탕집을 향했다. 내키지 않는 음식을 먹으려니 맛이 안 느껴졌다. '얼마나 살겠다고 당기지 않는 음식을 먹나.' 더이상 먹지 않았다. 그 후로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나는 58년 개띠다(102)," "나도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눈감고 싶다. 직업적인 글쟁이에겐 현장이라고 해봤자 책상머리이다(137)," "기자와 형사, 세무서 직원 셋이서 밥을 먹으면 밥값은 누가 낼까? 정답은 식당주인이다(144)." 사뭇 진지한 톤의 글 끝에 가벼운 반전의 재미는 쿡쿡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에세이지만 강하게 주장하는 글이다.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과 인터뷰 기자로서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의 인용이 설득력을 높인다. 톡톡 튀는 유머도 있어서 딱딱하기만 하지 않고 말랑말랑하다. 즐길 수 있는 에세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적 삶은 이 시대의 대세인 신자유주의적 규범에 저항하는 것이다...(중략).. 무엇보다 나는 이런 양극화된 세상을 바라지 않았다. 이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려면 지금의 기득권적 사고와 행동 원칙을 바궈야 한다. 세상은 절대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반드시 노력해야한다. (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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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보수가 되는걸까요? 보수는 나이든 세대, 진보는 젊은 세대라는 공식도 있고, 한때 진보였던 인사가 노년에 보수쪽으로 선회하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4.7 재보궐선거에서 그 틀이 많이 깨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대는 보수쪽에, 40대는 진보쪽에 투표한 것인데요, 여기 또 한명의 나이 든 진보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보수언론사에 입사해서 편집국을 거쳐 시사 잡지에서 일했고 2013년 가을, 쉰다섯에 정년퇴직한 저자는 어느날 진보로 커밍아웃을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보수화가 되는건 기득권 때문이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려면 지금의 기득권적 사고와 행동 원칙을 바꿔야 한다고, 그렇게 자신이 바뀐 이유를 설명합니다. 제목에서 풍기는 정치적인 뉘앙스 때문에 정치적 이슈를 풀어쓴 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선 정치 뿐만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문제와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 인종차별문제, 그리고 기레기로 불리는 언론에 대한 비판까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유연한 사고와 성찰로 가득한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부양하고 부양 못 받는 '낀 세대'로, 성찰하지만 실패하는 학벌주의자로, 별수 없는 인종주의자로, 또한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겸손에 도달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합니다.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자리를 대신 맡아둔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은 에피소드나 기자시절 촌지를 받지 않았다는 일들, 조직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상사에게 좀처럼 머리가 숙여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들에서 그의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런 깐깐한 원칙이 있었기에 지금의 '진보적 노인'을 탄생시킨게 아닌가 합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예수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진보란 약자편에 서는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요, 저 또한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기자출신이어서 글이 아주 정갈하고 진지하면서도 곳곳에서 유머가 느껴졌습니다. 요즘들어 존경할만한 어른들이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의 바람대로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눈감기까지 많은 곳에서 진보적 가치를 일깨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지금은 기레기라고 불리는 조중동 대형언론사 중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보낸 저자가 조직에서 은퇴하여 현장에서 책을 쓰고 강의하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과 시대를 바라본 이야기다.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일화 및 어린시절과 학창시절, 기자생활을 통해 저자가 살아온 삶의 풍경과 저자의 삶의 원칙들을 읽어낼 수 있다.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온 문장 삶이란 부모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시간 226쪽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타박하기 보다는 부모로부터 멀리 달아나도록 부모가 만든 능력주의 세상을 내면화한 결과가 더 지옥 같은 세상으로 다가왔으니 그 세상을 극복하도록 지지해야겠다. 살다 보면 양지 아래 그늘이 있었고, 그늘 안에도 양지가 있었다. 양지가 그늘이고 그늘이 양지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지만, 그게 다 공부였지 싶다. 그걸 깨닫고 나니 양지가 아닌 곳에 있는 순간에도 사는 것이 좋다 173쪽 저자의 글이 아닌 두산회장의 말을 인용한 글이다. 행복이 화두가 되어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지만 어디 삶의 과정이 그런가? 양지와 그늘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을 긍정하는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다. 기업은 존속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계속 기업이다. 사람을 내보낸 것도 기업으로서는 존속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172쪽 두산회장의 인터뷰를 고사한 일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난 두산회장을 잘 모른다. 그 회장은 직원 정리를 맨 나중으로 고려하며 진짜 해고할 때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사실 많은 사람이 저 글에 동의한다. 그런데 한국 기업이 존속을 위해 가장 손쉽게 선택한 과정은 정리해고였다. 노동자들의 권리도 매우 취약한 한국에서 많은 대기업이 존속과 주주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일 먼저 희생시킨 사람들이 직원이었음을 생각할 때 한국의 육식공룡같은 기업문화에서 저런 말은 비정규, 상시 구조 조정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성찰 없는 능력주의는 세습주의를 낳는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 세습화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 70쪽 내가 사는 지역은 두가지 가치가 공존하다. 공공성을 복원하려는 동네의 다양한 시도도 있고 초등 저학년이 영어학원을 여러 개를 다닐 정도로 사교육도 많이 한다. 경기도 초중고에 혁신학교와 마을교육공동체가 많이 생겼지만 몰입식 사교육도 함께 심화되었다. 초등 1학년 중에 영어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가 거의 없다. 아이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남들도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국가적으로 교육정책에 대한 담론이 부재하고 입시정책만 있는 능력주의가 팽배한 한국에서 개개인들의 부모가 자녀들의 사교육에 몰입하는 부분을 탓하기는 어렵다. 감상 58년 개띠인 저자는 가부장제구조속의 혜택과 동시에 폭력와 야만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였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가정에서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고 가족에게 소소한 심부름조차 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 가져오라는 심부름은 여성인 나도 우리 딸들과 남편에게 잘 시킨다. 그걸 시킨다고 권위적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저자는 58년 개띠 남성이자 아버지이기에 부권의식을 예민하게 의식하며 성찰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직장에서 그 구조를 깨려고 노력하였다.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초심을 직장 평생 실천해왔다는 사실에 나라가 망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사람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야만과 폭력, 그리고 가부장제하의 남녀차별이 심했던 세상. 58년 개띠의 세상은 그런 세상이 맞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제도적인 가부장제구조의 억압보다는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공공성이 사라진 각자 도생의 생존경쟁에 의한 능력주의가 가져온 불공정이 더 문제며 기생충의 인물들처럼 부자든 가난하든 단일한 욕망만이 지배하는 사회가 더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런 문제가 결국 20대, 30대의 남녀갈등과 세대갈등으로 표면화되어 누가 더 약자인지 약자논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미국이 오바마 이후 트럼프 당선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한 이유를 백인 하층민에게 전가하면 답이 없는 것과 같다. 처음엔 제목이 매우 거슬렸다. 스스로가 진보적 노인이라니! 진보가 누더기가 된 세상에서 진보를 말하고 있지만 책을 읽어보니 기자로서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을 일평생해온 저자의 태도와 퇴직하고도 여전히 현장에서 글쓰기를 이어 나가고 있고 기성세대로써 원인과 책임에 대한 성찰을 통해 흐름을 되돌리려는 자세와 사회에서 복원해야 할 가치인 공동체적 연대와 배려의 가치를 고민하며 시대정신으로 바라보고 노력하는 면에서 진보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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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목부터가 멋집니다. "진보적 노인" 책 제목이 너무 멋져서 읽게 된 책입니다.
요즘은 젊어서도 진보라고 하기 힘들고 40대 50대가 더 진보이니 요즘 사람들에게는 가슴도 머리도 없어지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저자는 진보적 삶을 신자유주의의 규범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저는 여기에 능력주의와 시장만능주의 경제체계에도 저항하는 것이라고 붙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늙어 갈 것인지에 대한 나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화두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또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찾아가 물어볼 수 있는 노인... 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예전에 마을에 촌장과도 같은 존재 말입니다. 물론 예전에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가 급격하게 바뀌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마을 촌장의 경험이 가장 큰 무기가 되어서 물론 존경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늙어가면서 더욱더 필요한 것이 저는 공부라고 생각을 합니다. 바로 책을 읽으며 쌓아가는 공부말입니다. 이 포스팅은 업체제공 도서로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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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시원한 글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전에도 글을 쓰는 업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글을 쓰는 업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고 하시니, 글에 관해서만큼은 어느 누구에 뒤쳐지지 않을 감각이 들어 있었다. 글이라는 것은 단순히 글만 잘쓴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대부분이(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지만) 말 또한 잘하기 마련이다. 저자의 이런 탄탄한 필력이 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있어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한껏 감성적이게도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을 표현하자면 '어린의 어른들을 위한 에세이'가 아닐까 한다. 어른들을 위한 에세이는 차고 넘친다. 근데 어른의 어른들을 위한 에세이는 아마도 접해 보지 못했다. 있다고 한들 은퇴 이후의 삶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저자의 글과 같은 '글'은 만나보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정년 퇴직보다 조금 빠르게 퇴직을 하고 지금은 그 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글 속에 종종 숨어 있는 위트 있는 문장들은 읽으면서 저자의 솔직함에 매료되기도 하고, 이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이제 가장 노릇은 와이프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문장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한 역할 분담이 바뀌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이렇게 나름 피식 웃음이 나는 문장으로 표현해 낸 것이(생각해 보니 무척 진심이었으리라 생각이 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맴돌았다. 어른의 어른을 위한 이 에세이는 저자의 성향을 그대로 담아냈다. 어른의 어른인 '노인'이 되면 보수적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저자는 아직도 진보적이라고 한다. 뭐 나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 하지들 않는가.
저자의 삶이 단순히 저물어 가는 '끝난 사람'이 아니라 나는 아직도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 같아 읽는 내내 힘이 느껴졌다. 나이가 들었으니 주변 정리로 내 삶을 정리해 봐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글들이 마지막까지 글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들었다. '진보적 노인'이라고 표현한 저자의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가 되는 내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의 어른을 위한 에세이'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에세이의 느낌을 얻어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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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소수자로 살아왔다는 노년의 저자는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은퇴기자이다. 책속에서도 언급했듯이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가치척도의 문제가 있는데 진보적이길 바라는 저자는 과연 진보적 성향인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야했던 1958년생으로 사회적 성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고민해야했고 선택해야하는 부담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성공이라는 처세보다 가치라는 묵직한 삶을 지향했다고 한다. 사회의 일반적 가치와 관용을 멀리 하고 원칙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삶을 살았노라 자부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사고에 기초는 진보라기 보다 보수주의의 근본을 두지않았을까 싶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왜곡된 진보와 보수의 그릇된 편견에서 비롯되 진영논리가 아니라 사회를 떠받치는 두 이념의 개념으로 설명할 때 말이다. 저자가 시종 주장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선택은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어야 하는지 한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인지를 따져본다면 진보냐 보수냐의 자리매김보다 상식이라는 기준이 훨씬 더 정확한 잣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관계에 의하지 않은 누구나가 긍정할 수 있는 기준을 상식이라 말한다면 이책은 상식에 근거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진보냐 보수냐의 어려운 구분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의 지혜로 이해되는 책인 것이다. 보편타당한 이야기와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저자의 삶이었고 그것에 공감한다는 것은 상식ㅇ 통하는 사회로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치열한 삶의 경험이 남긴 교훈은보다 정의로운 사회 더불어 평화로운 사회를 지향해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저자는 진보적 노인이라 정의하였다. 노인이 가진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하고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