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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여자의 뇌와 남자의 뇌는 다르다고 알고 있다. 직관적으로 보아도 여자와 남자는 모든 면에서 구분이 간다. 그러니 당연히 뇌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과학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여자의 뇌는 의사소통과 정서를 관장하는 부분이 넓고 그래서 공감능력이 내장되어 있으며, 남자의 뇌는 섹스와 공격성 영역이 넓고 체계를 구축하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뇌 영역을 조금씩 들여다봄으로써 여자의 뇌는 이곳 또는 저곳이 남자의 뇌보다 크거나 작기 때문에, 혹은 어떤 호르몬이 많거나 적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고 믿고 또 그렇게 설명한다. 여자와 남자는 근본적으로 뇌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믿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신경과학자인 다프나 조엘 교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여자와 남자의 두뇌구조는 집단으로 보았을 때는 차이가 있지만, 개별인간의 두뇌는 여자의 뇌, 남자의 뇌 같은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즉 우리 모두의 뇌는 남자의 것도 여자의 것도 아니며, 여자에게 흔하거나 남자에게 흔한 특징들이 모인 고유한 모자이크일 뿐이라는 것을 뇌 영상연구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녀는 인간 두뇌 연구의 역사는 사회적,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학적 사실을 왜곡한 창의력의 역사라고 단언한다. 즉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적절한 방법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처음엔 뇌의 크기나 뇌의 비율을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들어서는 대뇌피질, 전두엽, 두정엽, 회백질의 비율, 뇌실 등 뇌의 전 영역을 비교하면서 남성의 지적우월성을 옹호하는 해부학적 근거를 찾아 나섰고, 21세기인 지금도 남성과 여성 뇌의 본질적인 차이를 찾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평균적인 차이라는 것은 두 개의 집단을 비교할 때 생길 수밖에 없는 차이이며, 개인으로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겹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 평균적 차이는 작고, 성별 간 겹치는 부분은 상당히 크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유사점은 보고되지 않고 차이점만 과학계와 대중매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성별차이가 실제보다 훨씬 더 크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성불평등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는 것이 문제라고 그녀는 말한다.
인간의 뇌는 고정되어 있는 기계가 아니다. 뇌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의 행동 역시 뇌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뇌의 성별차이가 본성인지 양육인지 구분하기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뇌에 관한 여러 연구결과로 얻은 결론은 성별과 두뇌를 생각할 때 무의식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생식기이지만, 생식기로 인해 익숙한 논리가 두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어떤 두뇌 특징이나 뇌전체가 하나의 성별로 분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뇌에서 성별은 스트레스나 약물, 경험, 나이와 같은 수많은 결정요인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뇌의 본성은 태아 때부터 일생동안 복합적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낸 가변성이 그 본질이다. 그래서 많은 연구결과들이 일관성 있는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한 것들도 서로 모순된 결과를 보여준다고 한다. 아이는 두뇌는 여자 뇌와 남자 뇌 특징의 고유한 모자이크로 구성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자라면서 자신의 유전자, 호르몬,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를 양육하면서 무의식중에 아이의 생식기를 기준으로 여자의 특성 혹은 남자의 특성에 맞게끔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뇌는 여자의 특성이나 남자의 특성에 치우친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남자의 특성을 보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여자의 특성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처럼 인간의 두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단지 여자에게 흔하거나 남자에게 흔한 특징들이 모인 모자이크라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젠더문제에까지 확장한다. ‘여성과 남성을 집단으로 보았을 때는 확실하게 성별차이가 있고, 때로는 사회적 고정관념과 일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평균적 여성 또는 평균적 남성을 찾기는 힘들다.’(136쪽)라고 말하는 그녀는, 일반인은 물론 과학자, 사회심리학자들 마저도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이분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고정관념에 적절한 특성을 마주하면 성별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예외라고 하거나 상황 또는 개인차라고 치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두 개의 젠더로 나누는 것은 우리 자신의 행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로 하여금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통해 타인의 행동을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개의 젠더가 존재한다는 환상은 그저 신화일 뿐이고, 현대과학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젠더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여자 뇌나 남자 뇌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며, 젠더 자체를 구분하지 않는 젠더프리 사회를 제안한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젠더 이분법적 구분은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 저자는 대표적인 것으로 여성의 능력 장애와 남성의 감정 장애를 꼽는다. 또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자질이 아니라 거기에 성별의미를 첨가하고 젠더에 따른 역할, 지위, 권력을 부여하는 사회체계로 작동하며, 이는 우리 삶에 최우선시 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상황에서 상대가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비슷한 행동에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 젠더의 특성을 말하는 이야기들은 증거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해석이 문제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모든 증거를 편견없이 점검하지 않고 선별하여 선택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러한 성별차이를 타고난 것으로 치부하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젠더프리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젠더교육이 체계화 되어야 하고, 젠더규범이 나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먼저 돌아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사회 역시 젠더 이분법적 구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남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이고,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렇게 볼 때 우리가 관념적이고 무의식적인 젠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저자의 연구결과처럼, 우리의 뇌는 모자이크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젠더가 없고 다만 성별이 있을 뿐인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사랑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인간이 해도 되는 것이라면 당신이 해도 된다.’(235쪽)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여운을 남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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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음식점에서 공깃밥을 주문하면 남자는 가득 담아주고 여자는 덜 담아주는 경우가 있다. 같은 가격을 받으면서 말이다. 분명 '차별'이다. 하지만 이유는 있다. 밥 한 공기로 양이 차지 않는 건장한 남성이 배부르게 먹으려면 가득 담아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여성은 의도적으로(?) 공깃밥의 반을 남기면서 덜 먹으려 한다. 한 공기를 다 먹으면 배가 부르는 여성도 많지만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 일부러 남기는 여성도 많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런가보다 할 수 있다. 근데 남자들 중에도 밥 한 공기를 다 못 먹는 소식가들이 있다. 물론 여자들 중에도 밥 한 공기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는 대식가가 있고 말이다. 그런데 식당 아줌마가 재량껏(!) 빼빼 마른 남성에게는 살 좀 찌라며 더 많은 밥을 퍼주고 덩치 큰 여성에게는 그만 좀 먹으라며 밥을 더 달라는 여성의 요청을 묵살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곤 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과연 식당 아줌마는 왜 '차별'을 했을까? 같은 가격을 받는 '밥 한 공기'에는 어떤 사연이 담긴 걸까?
<젠더 모자이크>는 남자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애써 남녀로 '구분'을 했을 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이를 테면, 복용약 가운데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따로 판매하는 약이 있다. 성분은 똑같지만 복용하는 양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임상실험결과를 근거로 남자는 1알 전부를, 여자는 1알의 반만 복용하도록 따로 포장해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남성용', '여성용'으로 알맞게(?) 복용했을 때 효과가 미약하거나 때론 심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서다. 그 까닭은 잘못된 구분법으로 판매한 탓이다. 애초에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지 않았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수면제의 경우, 건장한 남성이 1알을 먹으면 푹 잠을 잘 수 있다. 대부분의 여성은 '반알'을 먹으면 역시 푹 잘 수 있다. 하지만 저체중의 남성이 1알을 먹으면 아침이 되어도 잠을 깨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곤 한다. 반대로 과체중의 여성이 반알을 먹으면 아침이 되어도 개운하지 못한 느낌을 받곤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단다. 분명히 '남성용'과 '여성용'을 제대로 복용했는데 말이다. 이는 수면제의 약효가 '근육량'이나 '신진대사'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애초에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눈 것도 바로 평균적인 남성과 여성의 '근육량'을 기준으로 삼아 만들었던 것이다. 만약, 남녀로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라 '체중별'로 몇 알씩 복용하라는 기준을 삼았으면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각각 남자와 여자의 고유의 특성이 아닌 '보편적인 특성'에 남녀의 명칭만 갖다 붙였을 뿐이다. 이를 테면, '힘이 세다'는 특성은 보편적으로 남성에 해당하는 것이고, '화장을 하다'는 특성은 보편적으로 여성이 더 많이, 더 잘 할 뿐이다. 그런데 힘이 센 여성도 있고, 화장을 잘 하는 남성도 있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려고 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젠더(사회적인 성)'의 문제점이라고 지칭했다.
우리는 종종 '생리적인 성별(섹스)'의 차이를 '젠더의 문제'로 심화시키곤 한다. 오늘날의 한남충이니 메갈리안이니 하는 '페미니스 문제'도 바로 이러한 오해와 편견에서 시작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애써 '남녀를 구분하려 들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책이 패미니즘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은 아니지만,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이 그닥 없다'는 사실을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심오하고 세심하게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결론은 '남녀는 구분할 수 없는 모자이크의 성향을 띤다'라고 내렸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100% 남성성을 지닌 남성과 100% 여성성만 갖춘 여성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 뇌과학적으로 증명하면서, 각각의 영역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각각 파랑과 분홍으로(중간은 하얀색으로) 나누어서 '뇌지도'를 그려보았더니, 다양한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각각의 남성과 여성의 뇌지도를 펼쳐보이면서 '구분'해보라고 했더니 대다수는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더라는 사실도 함께 발표했다.
이는 우리의 상식과 매우 다른 결론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뇌영역을 그린 지도를 보았을 때, 파랑색이 우세한 뇌지도는 '남성의 뇌', 분홍색이 우세하면 '여성의 뇌'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서로 다른 다양한 색색의 모자이크만 발견했을 뿐,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로 따로 구분할 수 있는 뇌지도는 없었던 셈이다.
이런 결론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만끽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런 '다름(차이)'로 인해서 보여지는 다양성을 무시하고 천편일률적인 남성과 여성의 '기준'을 억지로 정하고 애써 '구분'하려 들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지으려 들면 생기지 말아야 할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분명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르기에 더욱 아름답다. 우리가 남자다운 남자와 여자다운 여자에게 큰 매력을 느끼는 것도 바로 '다름의 아름다움'에 끌린 탓이다. 그러나 그런 매력을 '고정관념'으로 삼아서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고 애써 '구분'짓게 되면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남자와 여자는 이래저래 피곤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남녀의 갈등이 복잡해지고 심화되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잃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패니미즘 갈등이 전혀 아름답지 못한 까닭이다. 이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의 아름다움'을 만끽해야 하지 않을까?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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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남자? 아니 그냥 나! 다프나 조엘/ 루바 비칸스키 <젠더 모자이크> / 한빛 비즈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는 정말 다른가? 많은 과학자와 일반인들이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가 엄청나게, 그리고 중요한 측면에서 다르다고 여전히 믿는다. 뇌의 차이는 인지, 정서, 능력, 흥미, 선호도, 행동의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 두 성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믿는다. 뇌의 성차를 연구하는 선도적인 신경과학자인 저자 다프나 조엘은 이에 대해 다시 묻는다. 스트레스가 여성의 뇌의 한 영역을 30분 안에 남성의 뇌로 바꿔놓는다면?
저자는 뇌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본격화하려는 시도가 17-18세기 유럽에 대두한 평등주의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평등의 원칙이 휩쓸었던 이 시기에 이제껏 하급의 역할을 수행해 온 여성 또한 그 바람을 타고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위치로 올라서야했다. 그러나 이때 과학은 불평등의 책임을 남녀의 두뇌차이, 즉 자연의 섭리(?)에 있다고 주장하며 왜곡의 역사를 열었다. 선천적 두뇌 특성이 다르다고 주장하면 성별 간의 사회적 불평등은 정당한 것이 아닌가?
성별차이는 본성이냐 양육이라는 문제로 가시화된다.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가 달라지는 것은 임신 중 자궁 속에서 Y 염색체를 가진 남자아이가 배출하는 테스토스테론의 양 때문이며 이 때 성 정체성이 뇌 구조 속에 고착되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고 뇌 의학자들은 말한다. 출생 후 남녀아이들이 서로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취향이나 행동방식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한 예시와 일방적인 실험 결과를 일반화하려는 과학자들의 오류를 지적한다. 그동안의 여러 가지 실험과 연구결과는 유사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함구한 채 일반화할 수 없는 사소한 다른 점들을 부각시킨다. 평균적인 남녀 차이는 있더라도 일관되게 여성 뇌, 남성 뇌로 칭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의 차이가 성별차이보다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는 뇌의 성별 차이가 살면서 획득하는 남자와 여자의 경험 차이를 반영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라 매우 유연하고 평생에 걸쳐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뇌는 ‘가소성’을 갖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성별에 따라 다른 옷을 입히고 다른 장난감을 주고 다른 행동을 기대하는 우리 사회에서 뇌의 특성이나 인지능력, 행동이 선천적인 것인지 경험과 외부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가?
여성 뇌의 한 영역을 30분 안에 남성의 뇌로 바꿔놓을 수 있는 스트레스 말고도 두뇌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아주 많다. 생활조건, 양육방식, 약물에 대한 노출, 나이 등 많은 다른 외적 요인도 두뇌의 특징을 결정한다. 이에 대한 다양한 실험 및 연구 결과가 책에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성별에 따른 두뇌의 차이와 남성 뇌, 여성 뇌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 공명 촬영(MRI)를 이용한 두뇌 스캔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저자의 또 다른 논의는 한 개인이 갖는 남성적인 특질과 여성적인 특질에 관한 심리적 특성과 행동에 관한 연구이다. 인간 두뇌 모자이크와 젠더 모자이크이다. 이 두 실험의 결과는 유사하다. “대부분의 뇌는 여러 특징이 섞인 고유한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흔한 특징,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흔한 특징, 그리고 남성과 여성 둘 다에게서 흔한 특징이 함께 섞여 만들어진 모자이크다.” 그의 결론을 정리하면, 인간의 두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 단지 개개인에게 고유한 모자이크일 뿐이다. 저자의 또 다른 논의는 한 개인이 갖는 남성적인 특질과 여성적인 특질, 즉 젠더에 관한 심리적 특성과 행동에 관한 연구이다. 청소년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오직 여성적, 오직 남성적 특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은 남성적, 여성적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른바 젠더 또한 모자이크 특성을 나타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성별 차이로 인한 편견으로 고통 받고 있는 여성이 많다. 가정교육에서 비롯하여 결혼, 취업은 물론이고 출산과 아이 양육이라는 대목에 들어서면 오랜 기간 이어져 왔던 우리 사회의 편견이 여성 개인에게 한꺼번에 몰려든다. 마땅한 직업을 그만두고 출산과 육아의 시간에 전념하도록 강요받는 사회, 육아와 집안일로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는 그녀들에게 사회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는 비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성별 차이로 인한 능력 차이의 강조, 교육의 차이, 취업 기회의 박탈, 월급 액수의 차이, 사회적 지위의 차이, 역할분담의 차이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 걸까?
저자는 이 이유를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개의 사회적 범주로 나누는 이분법적 젠더 신화에 기인한다고 본다. 차이의 강조는 바로 우리의 행동과 심리에 영향을 준다. 악순환은 계속된다. 젠더는 다시 성별 차이에 이바지하면서 개인의 삶의 형태에 요람 때부터 영향을 끼친다. 역할과 맥락의 차이가 빚어낸 행동의 차이는 성별 차이를 정당화하는 좋은 예시가 된다. 역할과 지위의 차이가 빚어낸 말하는 방식(언어)과 체험 문화의 차이는 다시 성별 차이를 강화하는 도구가 된다. 잘 알려진 바이지만, 남성의 어깨에 지워진 과도한 기대감은 남성에게도 고통의 원인이 된다. 젠더 이분법은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모든 사람이 개인의 태도, 흥미, 특성의 모자이크에 따라 자신의 삶을 걸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꿈꾼다. 각자가 모두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을 발전시키고 융합하는 태도, 교육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젠더가 더 이상 가장 쉽고 가치 있는 평가 기준으로 등장하지 않는 ‘젠더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이런 책들이 나오면 또 어디선가 이 결론에 반하는 증거를 과도히 포장하여 뇌의 남녀차이를 주장하는 연구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내보일 것이 분명하다. 1970-80년대 사회 환경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후세의 아이들을 길러내는데 성별 차이보다는 양육 방식이 중요하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을 때, 뇌 과학자들은 일련의 연구와 해석을 통해 또 다시 뇌의 다른 점을 강조했다. 판매대에 놓인 유아복의 색깔은 다시 분홍과 파랑으로 엇갈렸고 장난감은 남녀로 분리되었다. 가소성을 가진 두뇌에 진정한 본성이나 불변의 진리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인간 모두의 삶을 훨씬 다채롭고 아름답고 고통 없이 만들어주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어느 한쪽의 주장은 분명 누구는 고통 받더라도 기존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부류에게 유리할 것이다. 그에 비해 젠더 모자이크 이론은 보다 다양한 특질을 지닌 개인을 인정하고 그 어깨에 놓인 짐을 같이 들어줄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이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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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임시저장에 당했습니다. 특정 시간 이후에 대략 임시저장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 빠져나왔는데, 실제로는 글이 사라져버리는 증상이 발생 해서 말이죠. 그나마 아예 다른 데에 저장해둔 글이 있어 그걸로 겨우 복원 했네요.
어쨌거나 리뷰 시작합니다.
성에 대한 담론은 이제는 매우 복잡한 지점들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성평등의 문제가 점점 더 핵심에 서 있는 상황에서, 각자의 탐욕은 또 인정 하지 않는 기묘한 면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들의 깨끗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상황을 보여주긴 하는데, 그래서 더 더러워 보이는 기묘한 면들까지 보이고 있죠. 이런 상황이 반복 되면서, 차라리 학술서로 넘어가서 그 근본부터 파헤치는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가장 편하게 접근 할 만한 학문은 사실 뇌과학은 아니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뇌과학을 항상 불안하게 보는 이유는 상당히 복합적이지만, 정말 간단하게 말 하면 뇌의 회색질 이라는 부분이 아직까지도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뇌에 관해서 어디가 무슨 판단을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온 상황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도 맞네 틀리네가 계속해서 이야기 되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몇몇 영역들이 장애나 사고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능해지긴 했습니다만, 그 영역들 외에는 미지의 지점들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입닏. 물론 최근에는 나름대로 더 밝혀진 것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정보가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밝혀진 것들이 워낙에 되는 만큼, 그 지점들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쉽게 서술한 책들이 꽤 있는 편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밝혀졌다고 생각한 것들이 여전히 이론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틀렸다고 판단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것들은 최신 과학을 통해서 알려지고 반영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과거 이론과의 비교를 하고, 각 이론에서 오류라고 판단되는 부분의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다시 최신 과학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그 최신 과학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지점에 관해서 나름대로 검증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사실 위에 이야기 한 과정을 어느 정고 거쳤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책의 핵심 이야기가 바로 위에서 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책에서 내놓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책에서 배우던,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라는 지점 입니다. 그리고 책에서는 그 차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태여나는 때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죠.
책에서는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오랜 기간을 통해 이론의 핵심으로 들어가고 있고, 그 이론이 왜 만들어지게 되었는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뇌에 관한 이론을 만들 때 차별이 존재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결국에는 우월성에 대한 증명으로 뇌과학을 사용하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여기에서 드는 이야기 역시 매우 재미있는데, 바로 고래 입니다. 뇌의 크기 차이로만 따지면 고래가 사람보다 뇌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든 것이죠.
이런 지점들로 인해 나름대로 축적 되어 온 여러 과학 이론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고 책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들은 결국에는 기능적인 차이로 인한 사회적 활동이라는 것을 규정하기 위한 지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이 지점들 덕분에 책은 매우 독특한 면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특성들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고정관념들이 뇌 과학으로 설명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는 것 역시 매우 자세하게 설명 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해당 지점들에 관해서 맹목적인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증거를 두고 과거 이론에 대한 반박을 하가는 식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아는 지점들에 관해서 매우 다양한 것들이 여전히 있으며, 그리고 뇌의 신경 회로라는 점에서는 아예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계속해서 설명 하고 있습니다. 이는 MRI라는 정밀한 기계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뇌의 전극 신호라는 것을 감지하는 기술 자체가 발전하면서 가능해진 일임을 같이 곁들여서 설명 해주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뇌의 기본적인 특성에 관해서 더 재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뇌의 변화에 관해서 상당히 다양한 지점들을 설명 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 입니다. 뇌의 기반에서 우리가 아는 특성이 나타나게 되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책에서는 모자이크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각각의 상황에 따라 뇌의 형성과 변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 지점들이 발달하게 되면서 각각의 뇌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이렇게 성장한 뇌가 그 사람을 규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죠.
책에서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그러면 왜 남녀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인가를 이야기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지점들에 관해서 계속해서 교육과 환경이라는 것이 만들어내는 지점이 분명히 있으며, 이로 인한 차이는 뇌 자체의 특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설명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단순히 성별로 모든 것들을 교휵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오히려 뇌의 발달과 성격 형성에 제한을 걸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지점들 덕분에 정말 무턱대고 모든 담론에 짜증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그래도 일부러 한 번쯤 들여다볼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뇌과학에 관한 이야기로서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는 면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기본적으로 성적인 면에 관해서 단순 이분법이 초래한 뿌리 깊은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좀 더 큰 담론으로서 나아가기에도 무리가 없는 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가까이 봐서 여전히 성에 대한 여러 특성을 이야기 하는 것에 관해서 어느 정도는 생각 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성 담론에 관해서 하는 설명 역시 꽤나 탄탄하게 잘 해주는 책이라고 말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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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다. 유연하게 평생을 거쳐 변하는 것으로 이를 가소성이라고 부른다. 뇌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우리의 행동이 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뇌의 성별 차이는 살면서 획득되는 것도 있다. 여성과 남성의 특성이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미리 정해진 것인지 후천적으로 외부 영향에서 온 것인지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남성과 여성으로만 젠더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어느 정도는 옳지 않다고 본다. 트랜스젠더나 논바이너리 등의 정체성을 과연 질병으로만 보아야 할까? 어려운 문제지만, 전 인류를 남성과 여성, 생식기를 근거로 두 가지로만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인간의 두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며 단지 여자에게서 흔하거나 남자에게 흔한 특징들이 모여 이루어진 고유한 모자이크라고, 이 모자이크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끊임없니 변화한다는 의견이 좀 더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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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신화(이분법)는 깨졌다. 여자의 뇌, 남자의 뇌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근대적 연구의 시작은 1930년대에 루이스 터먼과 캐서린 콕스 미일스의 <<성과 성격>>이라는 600쪽짜리의 두꺼운 책이 발표되면서 불을 당겼다. 이들의 관심은 전형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신화를 입증하려 했다. 그들이 가졌던 신념은 ”여성과 남성이 행동에서 특유의 성별 차이를 보이고, 그 차이는 뿌리가 깊고 만연해 있어 전체 성격에 뚜렷이 구별되는 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으로 이런 신념도 화성, 금성론도 종지부를 찍었다. 지은이의 연구 결과는 이 책 표지에 실려있다. “젠더 모자이크” 즉, 당신의 뇌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 어우러진 당신만의 독특한 모자이크다. 전형적인 남성성도 여성성도 존재하지 않고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합된 오직 나만의 당신만의 독특한 모자이크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왜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별이 필요했을까?, 제1성인 남성과 제2성인 여성을 구분해야만 했던 사회적 이유, 가부장제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함인가, 지은이는 이에 대해 직접 답은 하지 않았지만, 사회계급적 접근과 가부장제 등 일련의 이론에서 제기했던 문제들과 결과 무관하지 않다. 70년 가까이 이 사회를 지배해 온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을 위해 수많은 학자가 남녀의 뇌를 연구했다. 개별 연구에서는 그럴듯한 답이 나오기는 했지만, 결과는 남성적이다가 여성적이기도 한 그런 애매모호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과학적 결과는 전형적인 남성성도 여성성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이를 부정했을까?, 그건 과학이 이전에 사회질서의 문제였다. 가부장제, 남존여비의 프레임을 유지 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했어야만 한다. 그래야 성에 있어서 사회적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마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통해 원시사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늘 남성에게 지배당해 온 여성의 역사를 더듬고, 문학에서 묘사된 여성관련 신화를 파헤쳐 여성들 개개인의 자유로운 실존의 가능성을 열었듯, 이 책도 제1성은 남성, 제2성은 여성이며 이들은 성별에 따른 고유한 특성을 가지며, 뇌의 무게와 구조 등에 따라 구별된다는 논리를 과학적으로 깨부수고 있다.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이상‘을 내려놓자. 평균적 여성 또는 평균적 남성이란 없다. 인간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연구는 1990년 스펜스가 사람들은 남성적 특질과 여성적 특질의 집합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1993년에 발표한 논문에 “남성과 여성은 자신의 성별에 대해 사회에서 기술되고 관행으로 여겨지는 고정관념에 따른 성 역할, 특성, 관심, 태도, 행동을 모두 보이지 않고, 그것들 중 일부만 보인다. 또한 다른 성별과 연관된 특성이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라고 썼는데, 지은이의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인간이 전형적인 여성적 특성과 전형적인 남성적 특성의 모자이크라는 관찰이 반복되면서, 여성과 남성의 본성이라는 개념은 “여자 뇌‘와 ’남자 뇌‘의 개념만큼이나 의미 없는 것이 됐다. 그렇더라도 혹여 무수히 많은 여성의 성격 모자이크 중에 어느 것이 여자의 본성을 표현하는 걸까?, 마찬가지로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수많은 모자이크 중 남자의 본성을 표현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성과 남성을 집단으로 봤을 때는 확실하게 성별 차이가 있고, 때로는 사회의 고정관념과도 일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평균적 여성 또는 평균적 남성을 찾기는 힘들다(136쪽). 잰더라는 환상과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보이는 까닭?, 역할이 바뀌면 능력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바뀔 뿐이다. 그 답은 인간을 두 개의 사회적 범주, 여자와 남자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 구분은 우리의 행동 자체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보는가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준다. 행동과 그것을 지각하는 일은 사람들의 능력, 자질, 선호도의 모자이크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역할, 자신이 처한 상황, 지위,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며, 인간이 두 개의 구별되는 범주에 속한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즉, 역할이 바뀌면 능력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바뀔 뿐인데도 말이다.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스스로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기대가 우리의 행동을 젠더화한다.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자신의 실제 생각보다 남들 앞에서 성공에 대한 기여도를 낮게 평가하는 편이라는 결과를 보여준 연구들이 있다. 겸손이 여성적인 덕목이라 생각되기에 그렇다. 반면에 남성들은 성공에 대한 기여도에 대해 자신의 실제 생각이나 남들 앞에서나 모두 비숫하게 평가한다. 인간을 두 개의 젠더로 나누는 것은 우리 자신의 행동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믿음인 젠더 도식 또는 고정관념을 통해 다른이의 행동을 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특성의 모자이크를 가진 남자와 여자가 있을 때 그들이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한 사람은 남자, 다른 사람은 여자로 불리기 때문이다(143쪽). 지은이는 말한다. ”우리는 능력장애 여자아이와 감정 장애의 남자아이를 길러내고 있는지 모른다. 젠더의 감정 족쇄를 채움으로써“ 라고. 이 지적의 함의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지은이의 연구결과가 어떠하던 여전히 남녀구분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 고정화 된 남녀의 성 역할, 가정 내에서, 직장 내에서, 여자는 감정적이고, 남자는 이성적이라는 근거 없는 이 말들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모쪼록 이 책이 널리 읽혀지길 바란다. 이제 여성의 남성화, 남성의 여성화란 어처구니 없는 말들은 삼가토록 해야겠다. 그렇다고 남자로서의 기득권?, 역차별?, 이런 이상한 소리가 안 나오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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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엄청 좋아하던 책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였다.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이전까지는 동성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엄청 잘 통하던 말이, 이성 친구들과는 뭔가 커뮤니케이션이 안맞는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아" 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오" 하고 알아듣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남녀를 편가르는 말은 절.대. 아니다. 페미니, 마초니 이런데는 애초에 관심은 없다. 물론 그런 말하는 분들 의견은 존중한다. 단지 나는 그쪽이랑 거리가 멀다는 것. 첫 연애할 때 나는 이성의 뇌는 우리의 뇌와 좀 다른 줄 알았다. 그래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에 맞장구 칠 수 밖에 없었다. <젠더 모자이크> 에서 뇌는 남녀로 나눌 수가 없다는 말에 엄청 끌렸다. 여지껏 알아왔던 것을 부수는 이런 의견 좋다.
<젠더 모자이크> 에 따르면 여자 아이의 뇌와 남자 아이의 뇌가 거의 차이점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지껏 믿어온 성별 차이라는 것, 뇌구조가 다를 것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통념으로 학습시켜 다르게 만들어 온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뇌가 비슷하다면 왜 남자가 하는 말을 여자가 잘 못 알아 듣는 것일까. 또는 반대의 경우도 궁금해졌다. 이 책에는 또 난소호르몬이 여성의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적어놓았는데 흥미로웠다. 난소가 제거된 암쥐는 뇌에서 숫쥐와 같은 수의 교세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숫쥐를 거세했을 때는 이 세포수에 영향이 전혀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애초에 남녀의 뇌가 다르게 태어나지 않았다면 최초부터 누가 성별에 따라 여자는 이래야한다, 남자는 이래야한다 또는 말투도 이렇게 달라져야한다를 만든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젠더 모자이크> 는 남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애초에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다르지 아니하다. 그래서 남자라 수학을 잘하는 것이라던가, 여자라 영어에 뛰어난 것이야 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녀가 없는 미래를 꿈꾼다고 한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뇌에 있어서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책이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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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모자이크 - 다프나 조엘&루바 바칸스키 지음 (한빛비즈)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책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화제작"이라는 소개문구가 내 궁금증을 자아냈다. 출간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 '화성남자 금성여자'라는 책은 엄청 핫 했다. 이성인 사람들과 교제를 할 때 종종 다름을 느껴왔던 나는 그 당시 공감하며 책을 읽었고, 이후로도 남성과 여성은 선천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해오며 살았다. 그렇지만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소개글을 보고 과연 정말 남성과 여성의 뇌가 다를까? 다르다면 어느 순간부터 달라지는걸까? 어떻게 다를까? 등의 질문이 생겼고 저자는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남자 뇌'와 '여자 뇌'가 따로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어떤 두뇌 특징은 평균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 그러나 대체로 여성에게 흔한 특징들이 일관되게 여성의 뇌에 모여 있지 않고, 남성에게 흔한 특징들이 남성의 뇌에 모여 있지도 않다. 그 대신 이런 차이점들이 서로 섞여서 인간의 두뇌와 심리적 특성, 행동은 여러 특징의 모자이크가 되며, 어떤 모자이크는 여성에게, 또 다른 모자이크는 남성에게 더 많이 보일 뿐이다. 이런 나의 결론은, 왜 어떤 특징은 한 성별보다 다른 쪽에 더 흔하냐는 가시 돋친 주제와는 상관 없다"
이에 대한 근거를 요약하자면, 우리의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라 오히려 매우 유연하며 평생을 거쳐 변한다. 따라서 뇌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반대로 우리의 행동이 뇌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가 뇌병리에 기여한다고 알려져 있는 것 처럼 그것이 뇌에 중대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 외에도 생활 조건, 양육 방식, 약물에 대한 노출 등 많은 외적 요인도 성별과 상호작용하여 두뇌의 특징을 결정한다. 성별이 두뇌에 영향을 미치고, 두뇌의 많은 특징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균적 차이를 찾을 수 있지만, 뇌의 진짜 본성은 그 형태가 매우 가변적이기 때문에 진정한 남자 뇌와 여자 뇌를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남성과 여성이 같은지 다른지에 관한 많은 논쟁에서 둘 다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개개인은 여러 특성의 고유한 모자이크다. 내가 가진 특성 중 어떤 것은 여성에게서 흔하고 또 어떤 것은 남성이 더 많이 지녔다는 사실은 내가 누구인지와 아무 관련이 없다"
"성별 차이를 타고난 것으로 치부하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문장이기도 하다. 나를 성별이라는 틀 안에만 가둬놓고 그 안에서만 행동한다면 누군가가 정해놓은 대로 사는 꼭두각시와 크게 다름이 없지 않을까.
저자는 이러한 원인 중 하나를 젠더 구분으로 이루어진 교육을 꼽았으며 성별에 따라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게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사회가 아이들에게 자신을 표현하고 행동 할 수 있게 격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많은 여학생이 수학이나 컴퓨터공학 분야에, 더 많은 남학생이 문학과 예술 분야에 오도록 하자는 말은 아이들이 반대 성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젠더의 이름을 제거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여, 아이들을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작은 구멍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대신 그들이 온전한 인간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돕자는 의미다"
인간이 갖고있는 엄청난 다양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상자에 욱여넣기엔 너무 광범위하고 크다. 여성과 남성이 없는 미래를 꿈꾼다는 저자와 100퍼센트 같은 생각을 하진 않지만 재미있게 책을 읽으며 여러 부분에서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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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남자 뇌, 여자 뇌’는 따로 없다!' 아담과 이브는 우리에게 단 하나를 알려준다. 아담은 최초의 인간이며,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를 빌어 태어난 종족일 뿐이라고. 은근슬쩍 우리에게 남성의 우월성을 알려주고, 남녀간의 차이를 들려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우리네 모습일까? 남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걸까? 이 책은 그 본질에 대해 설명을 하려한다. 인간의 뇌가 아닌 남녀의 뇌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통해 인간의 종을 둘로 나누려는 많은 시도들에 대한 반발이라 할 수 있다. 여자는 핑크를, 남자는 파랑을 좋아해야한다는 사회적인 편견과 구분법을 타파할 수 있는 그런 책! 저자는 인간의 두뇌를 생식기관처럼 구분짓지 말자고 한다. 마치 모자이크처럼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여서 그 비율이 다를 뿐, 노란색이 여자, 초록색이 남자! 이런 식의 구분은 아니라는 것. “인간의 두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 단지 여자에게 흔하거나 남자에게 흔한 특징들이 모인 고유한 모자이크일 뿐이다. 그리고 이 모자이크는 만화경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색 조각의 형태처럼 일생을 거쳐 변화한다.” <책 속에서...> 영국 택시기사들의 뇌 구조를 예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은 참으로 설득력있다. 영국의 미로같은 길을 머리 속에 넣고 다니는 그들은 공간지각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탁월하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 길러졌다는 사실이다. 다른 것들도 그저 사회적인 관습에 의해 남녀를 구분 지었을 뿐, 한때 베셀이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말하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세상 속에 만연해있는 젠더 이분법은 두뇌의 차이라기 보다는 그저 사회적인 구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여자라는 세상 속 차별을 받는 나 같은 종족에게 일종의 환희 같은 책! 남자들이여~ 편견을 깨라! 여자들이여~ 깨어나라~! '여성과 남성은 왜 그렇게 다르게 보일까? 그 답은 인간을 두 개의 사회적 범주, 즉 여자와 남자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 구분은 우리의 행동 자체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어떻게 보는가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준다.' <책 속에서...> #도서협찬 #젠더모자이크 #뇌는남녀로나눌수없다 #다프나조엘비칸스키 #김혜림옮김 #한빛비즈 #사회정치 #여성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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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서평을 적고 있는 나는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대학의 이름이 적혀 있는 분홍 티셔츠다.
나는 분홍색을 좋아한다. 이유는 없다.
갑자기 책 서평을 적으면서 내가 무슨 색깔의 티셔츠를 입고 있는지를 왜 적을까. 위의 책은 남자인 내가 분홍색 티셔츠를 입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이 어떤 직업을 구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남녀는 다르지만, 그 다름은 남녀라서 다른게 아니라 각 ‘개인’이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젠더라는 개념 자체가 오히려 젠더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이 책은 이야기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 책이 한국에서는 그다지 큰 파급력이 없었을까 생각했다. 내가생각한 원인은, 이 책은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대 한국의 ‘여성주의’의 물결에 적합하지 않다. 심지어 이 책의 전반부 전체를 ‘남성들이 권력을 활용해 그리고 과학을 도구화해 어떻게 여성들을 억압해 왔는가’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할지라도, 이 책은 현대의 한국에서는 그다지 반길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젠더 구분을 버리고, 개인을 이야기 하자’라는 주장이 그 내용이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를 구분해서 분류하는 것만큼 젠더의 구분은 의미가 없기에 ‘인간’이자 ‘개인’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통용될 수 없다. 개인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구조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구조로 접근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은 접근이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조에 대한 접근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님에도, 개인의 부상은 비판받는다. 입을 다물게 한다.
책 서평을 적으면서 딴소리하는게 특징이긴 한데, 나는 미국 사회에서의 ‘인종 차별’ 문제와 한국 사회에서의 ‘젠더 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딴소리가 하고 싶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인종과 젠더가 과연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이유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내가 인식하는 일련의 문제는, 인종과 젠더 문제가 아니라 ‘돈’의 문제이다. 재능이 충분하지만 돈이 없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남자와 재능은 없지만 돈이 있고 양질의 교육을 받은 여성이 있다면, 이 둘의 삶은 남성/여성으로 구분지어 설명하는게 오히려 무의미해진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쓸데 없는 소리가 길긴 한데, 나는 평소 지론이 하나 있다. ‘가부장제’에 대한 것인데, 이것이 하나의 사회문화(였다)라고 한다면, 무조건 한 쪽은 이득은 얻고 타 일방은 손해만 받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장남이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는 여동생들의 희생 덕에 대학교를 갈 수 있었지만 그 장남은 대학교를 가지 않고, 고향에서 가족과 살고 싶었을지 모른다. 대학교를 가서도, 앞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압박을 평생 느끼고 살아야 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개인으로 가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개인으로 무작정 돌아갈 수 없는 현대의 자본주의 체계 내에서 관련된 더욱 많은 논의가 있으면 좋겠다. 읽다보면 줄치느라 정신 없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몇 권 더 추천. 1. #인종토크 : 미국의 인종차별과 관련된 책이지만 비교하며 읽으면 좋다 2. #평등은개뿔 : 제목 그대로 평등은 개뿔이다 3. #성인언어 : 읽고 있는 책이긴 한데, 정체성 정치에 대해서 다룬다. 정치, 언론과 출판계에서는 지금 정체성 ‘장사’를 하고 있다고 난 생각한다.
책은 한빛비즈에서 받아서 읽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토론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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