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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스 리뷰어 클럽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이렇게 쓰는 거 맞나..?)
노랗고 예쁜 표지. 문고판 같은 휴대성이 좋은 판형. 넓은 행간. 짧은 페이지 수. For an autonomous life(자율적인 삶을 위해)
책을 처음 받아 봤을 때 눈을 통해 머릿속에 입력된 짤막한 정보들이다. 필자는 책을 볼때 '앞표지 -> 뒤표지 -> 목차 -> 머리글' 순으로 책을 먼저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서점에서 직접 볼 책을 골라보고 구매할 때 책들을 선별하기 위한 내 나름의 안전장치이다. 실제로 이렇게 하면 책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나 말하고자 하는 논지와 흐름을 미리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제목과 표지에 속아서 원하지도 않는 책을 구매를 해 속앓이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추천하는 바이다..ㅎㅎ 아. 왜 이런 말을 먼저 꺼냈냐면 '내가 생각했던 도서의 내용'과 '다른 내용의 도서'가 도착을 했다는 것이다. 낚였다는 뜻이 아니다. 나쁜 도서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생각했던 예상 내용과 달랐을 뿐.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들을 수 있었고 많은 영감을 받았고 큰 도움이 되었다 할 수 있다.
책에서는 '시지프스'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시지프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를 지어, 죽은 뒤 산 밑에 있는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올려놓는 일을 하게 되고 그 바위는 정상에 옮겨지는 즉시 산 밑으로 굴러떨어져 다시 처음부터 바위를 올려놓는 영원한 벌을 받는다. 매일매일 고통스러운 하루가 반복되는 셈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인가! 철학적으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있다. 계속 '자의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사는 사람'과 '타인의 기준에 따라 움직일 뿐인 사람' 조금 충격적일 수 있으나 과감하게 말하자면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사람, 주인과 남이 정한 기준과 규칙을 본인이 원치 않아도 따라야만 하는 사람, 노예로 나눌수 있다. 그들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 삶의 기준을 스스로 생각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무의식적으로나 혹은 그냥 귀찮아 남의 기준으로 대체한 것이 아닐까?
마치며...
삶의 심오한 원동력을 이야기 하는데 작은 판형과 짧은 페이지. 담아야 할 내용을 더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든다. 물론 책을 덮은 후에는 단점으로 생각했던 짧은 내용과 작은 판형이 매일매일 고통 속에 살아가면서도 경제적, 시간적으로 영혼마저 가난한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을 위한 배려라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피곤하고 가난한 삶에 지쳐 "나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시작한 사람들에게,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실체도 없는 길보다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자기주도적 삶으로 가는 정글에 눈을 돌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이제 흉내 내는(노예의) 삶과 안녕을 고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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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세상의 속도에 걸음을 맞추면서 버거워질 때즈음 서평단에 당첨되어 책을 단순에 읽어버렸다. 그리고 책을 한번 더 읽었다. 시지프스의 예로 시작되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블로그 한 편을 읽어내리는 것처럼 쉽게 읽혀졌지만, 책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왜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행복의 기준, 세상 속의 속도가 각자 자신이 내린 기준과 속도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기준에 따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일상에 갇혀버렸다. 1. 현대인의 비극 시지프스는 가혹한 운명에 저항하며 무거운 바위를 들고 있지만, 그 흔한 바위마저 현대인들에겐 구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적당한 무게의 바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변변한 바위 하나 구하지 못한 이들은 사회가 아닌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현대인의 비극을 이렇게 적나라 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스스로 되풀이되는 일상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저항하지 못하는 우리는 과연 우리 스스로 선택한 삶일까? 2. 누가 나를 만든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선택은 우리 몫이 분명하다. 그러나 선택의 기준도 온전히 우리 안에서 나온 것이었을까? 스스로를 선택의 주체라고 확신하지만, 저자가 공부한 문화학에서는 이러한 선택 중의 상당수가 그렇게 선택하도록 부추겨졌거나 암묵적으로 강요된 것으로 의심한다. 노예는 남이 정한 기준과 규칙을 본인이 원치 않아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주인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규칙과 기준을 스스로 정한다. 나는 우리 사회의 노예인가, 주인인가? 3. 자기계발 매일매일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신기술이 등장하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는 속도는 빨라진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자기계발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라고 강요한다. 자기계발에 뒤쳐진 인생은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하는 반면, 인생의 실패를 본인 책임으로 돌리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톱니바퀴 역할을 하게씀 부추긴다. 4. 문화가 정하는 경로 미디어와 언론, 우리 시대의 이념들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경로를 정해준다. 여기에서 뒤쳐진 삶은 실패한 인생으로, 본인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실패한 삶으로 규정해버린다. 타인의 기준, 문화의 기준에 맞추어 삶을 살지 않았던 여러 사람들을 소개해준다. 이런 삶을 살기는 어렵겠지만, 진지하게 우리의 삶을 고민해보는 것 또한 필요한 시대다. 5. 나가며 책은 너무도 쉽게 읽히며, 너무도 쉽게 망치로 머리를 때려버린다. 그리고 ‘고민’이라는 새로운 질문거리를 매 분마다, 매 챕터마다 던져준다. 내가 원하는 삶은 누가 규정한 삶인가. 내 행복의 기준과 척도은 누가 정한 것이었을까. 사회에서 뒤쳐진다는 것은 누가 정했으며, 그것은 진정 본인의 선택에 의한 실패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1시간 이면 충분한 책으로 채워준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모든 사람, 특히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필수서다.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하기 위해 두고두고 읽고싶은 책이며, 평생을 곁에 두고 읽고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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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사람, 좋아 보여서 하는 사람 리뷰
책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였다. 와 책 정말 귀엽다. 표지 색감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봄에 읽기에 너무나 적당한 책이다. 커피 한 잔과 곁들어도 좋을만큼 말이다.
에세이 집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주로 말한고들 한다. 한 번 사는 인생 좋아하는 일 하며 살자고 말이다. 이 책은 그 깊이보단 두 폭 정도 더 깊이 사유한다. 철학을 곁들어 우리가 생각할 화두와 주제를 던져준다. 귀여운 표지와 그렇지 못한 내용이랄까.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되어 지길 바란다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인상 깊었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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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좋아서 그 일을 시작하는가? 아니면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여서 시작하는가?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죽음 앞에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환경을 탓하며 굴레에 굴복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나를 가둔 일상의 감옥을 무너뜨리고 싶어서였다. 내 욕망, 내 판단, 내 행동을 통제하려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부터 나를 더 자유롭게 하고 싶었고, 자신만의 인생을 조각하는 방식의 삶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보헤미안이 될 수도, 예술가가 될 수도, 실존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노마드가 될 수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살 수도 있다.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안적인 삶을 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행복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분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함께 일상의 단단한 감옥을 탈출해보자.
이 책은 계속해서 선택의 주체가 내가 되야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이념인 사회에서 공교육과 경제활동은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채 정해진 방향으로 나아간다. 어릴 때부터 학교와 직장, 결혼 등 정해진 사회의 틀 안에서 모두가 발맞추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취업에 성공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집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을 받는다. 육아와 대출 상환금으로 수십 년의 시간을 보내며 중년을 지나 노년기에 접어든다. 마치 육아와 아파트 장만을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육아와 내 집 마련 프로젝트'에 큰 의심 없이 덥석 뛰어든다.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답인지. 아무런 의식 없이 행하는 수많은 선택과 생활 양식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우리를 대체 어디로 데려가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바야흐로 자기 계발의 시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이어가고 있는가. 자기 계발의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알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말한다. 언제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게으른, 특히 자기 계발에 게을렀던 개인의 책임만을 말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한 쉬운 해고, 작은 정부를 외치며 복지와 사회 안전망에 대한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공공 일자리가 줄어도, 자기 계발서는 한결같이 '이건 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은 너의 책임이니 자기 계발서를 읽어, 고장 나거나 뒤떨어진 자신을 고쳐'라고 말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더 부지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결과 우리는 뭐든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고 마음도 몸도 늘 바쁘고 부산하다. 사회는 기댈 곳 없는 개인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면서 불안한 현대인의 심리를 빌미로 자기 계발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치워 얼마 남지 않은 돈까지 털어간다. 이윤 극대화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말이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하지만, 자기 계발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내가 지향하는 삶과 내 인생의 가치에 맞게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은 앞서 얘기한 떠밀린, 혹은 언제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기인한 수동적인 자기 계발과는 다를 것이다. 자신이 살 작은 집을 짓는 법을 배우고, 그 집 앞에서 텃밭을 일궈 자족하기 위해 농사를 짓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걸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을 위해 배우는 일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기 계발이다.
실존주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개인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사회의 여러 제도, 규범 체계,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에 순응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이런 세상에 던져진 운명이지만 처지와 제도를 어떻게든 극복해 꽃을 피워낼 것인지를 묻는다.
작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선택으로 오늘과 내일, 먼 미래에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고정된 내가 아닌 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지금 이 순간 내리는 선택으로 새로운 미래의 나를 잉태해야 하지 않을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