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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 강준만 교수의 저널룩 인물과 사상이 표방하는 기치다. 학연, 지연, 혈연의 끈으로 꽁꽁 묶인 우리 사회. 그 속에 숨어 있는 무수한 성역과 금기들. 아무도 입밖으로 내둘르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터부에 강준만 교수는 분노를 뿜어낸다.
우린 언제 부터인가 분노를 잊어왔다. 그리고 경망스러운 것으로 여겨왔다. 좋은게 좋은 것이고 참는게 미덕이다. 비판이란 것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배님이고 고향 사람인데 어떻게 감히 싫은 소리를 한단 말인가. 강준만 교수의 강도 높은 실명 비판은 이런 우리 문화에 비춰볼 때 미친짓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깨끗해지기 위해선 강준만 교수 같은 미친 사람이 많이 생겨야 한다. 우리에겐 지금 분노가 필요하다. 사회의 부조리들, 잘못된 관행들, 패거리주의, 지역 이기주의...이 모든 것들에 분노를 터트려야 한다. 왜 다들 침묵하는가? 그리고 왜 동조하는가? 강준만 교수보다 더 강렬하게 분노를 뿜어내자. 우리 시대에 분노는 아름답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지식인들의 글쓰는 행위에 대해 암묵적이나마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규칙을 갖고 있다. 냉정할 것. 감정을 절제할 것. 균형감각을 가질 것. 정중할 것. 모두 다 타당한 규칙들이다.그러나 그러한 규칙들이 요구도는 패러다임을 넘어선 다른 패어다임의 이야기를 할 때엔 그런 규칙들은 무의미하다.아니, 그 규칙을 지키는 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 이야기는 자연법칙이나 기계의 작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같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태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 강준만의 글을 처음 읽은 게 언제였더라...? 아마 대학교 3학년 때 <김영삼 이데올로기="">를 읽은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후 <김대중 죽이기="">가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조선일보 공화국="">, 최근의 <인물과 사상=""> 시리즈까지..., 많지 않은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가슴 시원함이야 그의 직설화법 때문이겠지만 부끄러움은 왜일까? 잠시 생각하다가 침묵에 대한 부끄러움일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알고있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 새기는 부끄러움, 말하지 못한 것을 몸으로도 보이려 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부끄러움... 이 부끄러움을 계속 안고 살아야 할지, 맘에서 덜어낼 방법은 없는지 고민중이다.인물과>조선일보>조선일보를>김대중>김영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