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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운 여정
"삶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운 여정" 내용보기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 여전히 나에게는 ‘폐경’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만, 최근 들어 이를 ‘완경’으로 바꾸어 부르는 경우가 증가했다.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현상을 달리 부른다는 게 뜻하는 바는 무얼까. 나이 든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일어났다기보단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의 반영은 아닐지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남녀 통틀어 노화는 최대한 늦게 겪어야 할 무언
"삶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운 여정" 내용보기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 여전히 나에게는 ‘폐경’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만, 최근 들어 이를 ‘완경’으로 바꾸어 부르는 경우가 증가했다.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현상을 달리 부른다는 게 뜻하는 바는 무얼까. 나이 든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일어났다기보단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의 반영은 아닐지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남녀 통틀어 노화는 최대한 늦게 겪어야 할 무언가처럼 여겨지고 있다.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의 노화에는 한 가지 시선이 더 추가된다. 가치 없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하여 여성들은 의학적 치료를 통해서라도 노화를 거부해야만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호르몬제를 투여한다. 피부의 주름을 제거한다. 단순히 젊어보이기 위함을 뛰어넘어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그치지 않도록.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며 진정한 여성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회의 요구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 대체 누구를 위하여 여성은 여성다워야만 한단 말인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무슨 이유에선가 잠을 청할 수가 없어 뒤척인다. 어떠한 언어로도 설명이 힘들 것만 같은 무기력감이 완경기에 도달한 여성에게 나타나는 것들이라면, 이 시기를 바라보는 사회의 곱잖은 시선과 별개로 피하고픈 마음이 앞선다. 저자는 고민했다. 호르몬제를 먹어 이 시기를 최대한 뒤로 미루어야 할 것인가. 몸이 자신의 것 같지 않은 불편함을 혹 다른 사람들도 알아채진 않았을지, 정상이 아니라는 말을 듣게 되진 않을지, 우려하는 마음이 못내 신경 쓰였다.

이 시기를 상실기로 보고한 경우도 있는 반면 역으로 비로소 자유로워졌음을 고백한 이도 있었다. 그간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 사례도 있었으니, 사람들의 기록은 엇갈렸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다양한 반응은 그러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듯했다. 예전의 아내를 되찾고 싶다는 남성들의 아쉬움 토로가 이어졌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 의 존재를 어찌 바라보면 좋을지 몰라 난감해 하기도 했다.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며 치료를 권하기도 하였으니, 자본주의와의 견고한 결합이 이루어졌을 때 이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거부해야만 하는 완경, 여성 아닌 존재가 규정하는 여성. 유독 인간에게서 이와 같은 관점이 존재한다는 걸 저자는 꼬집었다.

그가 주목한 건 고래였다. 바다에 서식하는 포유류는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는 점에서 인간과 흡사하다. 무리 안에는 인간으로 치면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다. 남성, 여성도 물론 있다. 인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이 든 여성이 무리의 지도자격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제 딸이 낳은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모습이 보편화 되면서 ‘신모계사회’라는 말이 생성되기도 하였는데, 고래 군집은 이미 모계사회가 구현된 듯했다. 시간의 축적과 함께 쌓인 경험은 존중받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는 더더욱, 아이 하나를 키우고자 온 마을이 결집한 것과도 같은 현상의 목격이 가능했다. 인간 여성의 노화가 생명체로서 통과해야만 하는 자연스러운 법칙이라는 사실을 인정 받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게, 고래 사회는 인간의 폭력에 의해 해체를 겪고 있었다. 그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연어는 인간의 남획에 따라 개최수가 매해 급격히 줄어드는 중이다. 몇몇 고래는 좁디 좁은 수족관에 갇혀 인간의 필요에 부합하는 묘기를 부리는 존재로 전락하기도 하였는데, ‘롤리타’로 불리는 고래 또한 그러했다.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오랜 시간을 버티고 있는 롤리타의 해방을 부르짖는 이들이 부쩍 늘었지만, 실질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생명을 지닌 존재로서 마땅히 누려야만 하는 자연에 속한 삶이 자신에게는 물론 롤리타에게도 주어지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내내 읽혔다.

저자라 하여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생각의 정립을 방해하는 사회의 시선을 거르고, 자신보다 앞서 이 시기를 겪었으나 더는 어떤 조언도 건네지 못할 곳으로 떠난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드는 불편함과도 싸워야만 했다. 생물학적인 특성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 위한 투쟁. 비로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를 수 있게 된 저자의 모습이 부러웠다. 나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닌 세상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게, 나를 뛰어넘어 대자연의 일부로서 호흡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직 난 정확히 알지 못한다. 좀 더 나이 들어 현명해진다면 비로소 이해가 가려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여성을 응원하고픈 밤이다.

q*****2 2022.02.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