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두현 시인 에세이, ‘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를 읽고. - 산책자를 위한 인문 에세이 (완벽주의자보다 경험주의자가 되라) ‘시 읽는 CEO’, ‘옛시 읽는 CEO’, ’시를 놓고 살았다~’, ‘동주 필사’, ‘마음필사’ 등 시인으로서 詩를 알리는 책무를 다하겠다는 듯, 詩 에세이를 여러 권 출간했던 고두현 시인의 신간 ‘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는 그의 시집과 에세이를 거의 섭렵해온 사람인데도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팬이다. 팬이라는 사실을 숨길 이유가 없다. 저자의 시집과 책을 거의 다 읽었다. ‘동주필사’나 ‘마음필사’는 볼펜으로 필사까지 다 했다. 시 몇 편은 외다 시피하고 시인의 고향마을 ‘경남 남해군 서면 정포리 윗물마을’을 돌아 남해 섬 일대를 돌아보기도 했다. 상주 은모래비치 해변에는 저자가 나온 상주중학교가 있고, 금산에는 시인과 어머니가 얹혀 살다 시피했다는 보리암이 있는데, 당연히 올라가 봤다. 중학교까지 20리 산길을 걸어 매일 통학했다고 한다. ‘바람난 처녀’의 공간인, ‘얼레지 한무더기’ 피었던 산자락도 눈에 담아 두었다. 노할머니 오목두시던 ‘금산산장’에서 오목 맞두던 할머니를 만나 아는 체를 해보기도 했다. 죽어서야 빛이 나는 남해멸치 가두는 죽방렴도 가까이에서 봤다. 이래저래 감격스러웠다. 시를 좋아하는 덕후로서 덕질이었으니 왜 아니 감격스러웠겠는가. 덕후로서 이번 신간 에세이는 아주 특별한 감회를 불러일으켰기에 장황하게 쓸 수 밖에 없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라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특별한 감회를 느낀 점은 일단 두가지 이유다. 첫째는 어라? 이 분이, 이렇게나 신박하고 트렌디한 에세이 제목을 쓰시나? 의아하게 한 점 하나와 둘째는 편편이 칼럼을 묶은 것이라기에는, 그저 묶은 것이 아니라 쓸 때부터 이미 온 정성이 스며 있는데, 거기에 더해 재삼 재사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산고의 흔적이 묻어 있다는 점 둘이다. 시인이자 경제신문 논설위원이자 대한민국의 4대 문학전문기자로 알려져 있는 저자 고두현은 자타공히 글쓰기에서 국가대표급이고, 옛말로 ‘당대의 문사’에 꼽히는 분이다.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3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단 세권의 시집을 냈는데도, 전국의 시낭송 전문가들이 손에 꼽는 낭송시의 시인이기도 하고, 데뷔 당시 이미 ‘달관의 경지에 오른 서정시인’이라는 칭호를 얻어 지금은 국민시인의 반열에 들어 있다. ‘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는 에세이로서 새롭게 지경을 넓힌 어떤 선구자나 개척자의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낸다. 일단 제목부터 범상하지 않고, 아주 섹시하고 트렌디하며 내용은 그에 걸맞다. 226쪽 ‘메밀면은 목젖으로 끊어야 제맛’ 제하의 냉면 에세이는 “살얼음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먹고 우루루 떨어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이라는 1920년대 작가 김소저의 냉면 찬가 한대목으로 시작하고 박목월 시인의 유명한 문장 “단맛의 용해적 황홀감은 노란빛과 통할 것 같고, 신맛의 서늘한 신선미는 청색과 통할 것 같다”을 빌어 냉면을 독자들 가슴 속에 쓰윽 밀어 넣는다. 그리고 나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생치냉면(꿩고기를 넣은), 나박김치냉면, 풍기냉면, 명월관, 부벽루, 을지면옥, 우래옥, 을밀대, 평래옥 등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을 일별시킨 뒤 “냉면 마니아들은 꼭 주방 가까이에 앉는다. 면발이 붇기 전에 맛을 보려면 일각이 아쉽다는 것이다. 또 ‘메밀면은 이가 아니라 목젖으로 끊어야 하므로 입 안 가득 넣고 먹어야 메밀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도 한다.”라는 알짜배기 팁을 제시한다. 한갖 음식일뿐인 냉면이 마치 벗처럼, 애인처럼 친근해지고, 맛도 보기 전에 그 신상정보를 다 얻어 한 번 만나보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그리고선 ‘냉면 마니아들은 꼭 주방 가까이에 앉고, 메밀면은 가득 넣고 목젖으로 끊어야 한다’는 깜짝놀랄 팁이라니. 아주 맛있는 냉면같은 글이 아닐 수 없다. 냉면의 여러 맛이 다 녹아 있는 것 같은 글이다. ‘LP판의 화려한 부활’(142쪽)은 “LP음반이 처음 나온 것은 1931년이었다. …… LP판을 닦고, 턴 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조심스레 올려놓는 과정도 하나의 의식처럼 즐겁다고 한다. …… 패티김과 들극화에 이어 2AM, 지드래곤 등이 LP로 앨범을 냈고, ‘가왕’ 조용필도 LP판을 냈다. 요즘은 ‘가성비’ 좋은 보급형 턴테이블이 많이 나왔다. 기존에 쓰고 있던 스피커나 헤드폰과 바로 연결할 수도 있다. …… 2005년 서라벌레코드사를 끝으로 사라졌던 LP음반 제조공장도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새벽 2~3시까지 작업해도 밀린 주문을 맞추지 못할 정도 …… 강한 비트와 빠른 템포의 K팝 콘텐츠가 조곤조곤한 LP그릇에 담겨 물 흐르듯 스며들면 사회도 그만큼 부드러워진다. 이어폰 세대와 음악다방 세대를 이해하게 되고, 디스코 세대가 클럽 세대를 포용하며 서로가 같은 젖줄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LP판. 이왕이면 살아나서 지치고 날선 사람들의 마음에 안식과 조화를 주는 ‘천사의 하모니’가 되어 주기를.”이라고 쓴다. 기자답게 알차게 골라진 정보를 요목조목 배열하고 그 문화의 내력과 앞으로의 전망이나 바람까지 단숨에 기억하게 만든다. 이 에세이만 읽으면 어디 가서 LP판 이야기가 나올 때 한가락 아는 얘기를 펼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두현의 에세이는, 기왕의 많은 감상문같은 에세이와는 다르다. 은은하되 계몽의 의지가 스며 있거나, 힐링을 주되 정신승리뿐이라 허망감이 생기는 여타 에세이류와는 다르다. 주제와 소재에 얽힌 내력과 연혁 등을 짧지만 진하게 알려주고, 기자의 촉으로 건진 알짜 정보의 목록을 열거하는 것 만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예술적, 문학적, 문화적 의미와 트렌드적 위상과 스며 있는 철학이나 사상, 정신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깨닫게 해준다. 마치 내가 공부해서 알아낸 것 같은 착시가 온다. 친절이 몸에 밴 글쓰기이다. 독자의 반보 앞에서 손을 잡아 주고 때로 반보 뒤에서 등을 밀어주는 글쓰기이다. ’산책자를 위한 인문에세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네 개 챕터의 제목은 ‘길에서 만난, 반짝이는 생의 순간’, ‘음유시인 조르주 무스타키를 만난 날’, ‘우리가 사랑한 LP판과 턴테이블’, ‘혼자 여행할 땐 새우를 먹지 말라’이다. 인생은 산책과 같기도 할 것이다. 실제 걷고 이동하고 여행하고, 그러다 순간 순간 사람도 만나고 음식도 먹는다. 추억도 쌓고, 추억에도 길이 생긴다. 전혀 새로운 길로 접어 들어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깨달음도 얻고 좌절도 맛본다. 상처도 생기고 면역력도 얻는다. 옛날 이야기, 남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서 빠져 들어 생각지 않은 영감을 얻고 자족하기도 한다. 이런 여러 편의 신선하고, 요즘말로 신박한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제목만 일별해도 그가 다니거나 조사하고 취재한 공간과 시간들을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기분좋게 만드는 에세이다. 글을 읽는 내내 적은 돈 내고 명품 음식을 먹은 듯 뿌듯했다. 한 편 한 편 쓸 때부터 온 정성을 다해, 쓸 때마다 기진해서 어지러움증을 느낀다는 그 부담감과 무게감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요즘 시대 독자들은 이런, 알차면서도 풍성하고 가벼우면서도 엑기스가 녹아 있는 명품 에세이를 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에세이가 한국말 에세이의 한 시대를 열었다 평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것은 기승전결, 계몽, 아포리즘, 개념어 남용, 한잣말 과용, 지나친 수사학, 서투른 정보, 적은 공력, 출판 마케팅, 허울좋은 제목 등으로 버무리된 수다한 에세이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에세이의 한 시대를 열었다’는 말이 과하지 않음을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에서는 역시 ‘친절’이 ‘알짜’다. 그러한 친절은 오랜 내공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리라. 당대의 시인이라는 말을 듣는 시인으로서의 내공이 더 다가오는지, 문학전문기자와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낸 저널리스트로서의 공력이 더 다가오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명인의 솜씨로 만들어진 한 상 차림을 받은 손님(독자)으로서는 잘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면 제몫을 다하는 셈이니까. 이 에세이는 맛있는 찬 가지수가 107가지나 된다. 독자들은 주방 가까은 식탁에 앉아 있다. 독자 여러분의 건독을 빌며 일독을 권한다. |
|
고두현 시인 에세이, ‘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를 읽고. - 산책자를 위한 인문 에세이 (완벽주의자보다 경험주의자가 되라) ‘시 읽는 CEO’, ‘옛시 읽는 CEO’, ’시를 놓고 살았다~’, ‘동주 필사’, ‘마음필사’ 등 시인으로서 시를 알리는 책무를 다하겠다는 듯, 시 에세이를 여러 권 출간했던 고두현 시인의 신간 ‘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는 그의 시집과 에세이를 거의 섭렵해온 사람인데도 마음을 설레게 했다. 첫장을 넘길 때 심장이 두근거렸다. 알베르 까뮈가 장 그르늬에의 에세이집 ‘섬’을 사서 길거리에 선 채 야금야금 아껴 읽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는데, 어찌됐건 에세이집을 펼치면서 심장이 두근거린 건 처음이었다. 시와 소설을 두루 읽으며 때론 필사도 해봐서 문장의 맛이 느껴진 탓인 지도 모르겠다. 윤동주가 백석의 시집 ‘사슴’을 필사해서 들고 다니며 아껴 읽었다는 일화도 아하,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나는 공히 고두현 시인의 팬이다. 요즘말로 덕후다. 저자의 시집과 책을 거의 다 읽었다. ‘동주필사’나 ‘마음필사’는 볼펜으로 필사까지 다 했다. 시 몇 편은 외다 시피하고 시인의 고향마을 ‘경남 남해군 서면 정포리 윗물마을’을 돌아 남해 섬 일대를 다녀보기도 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출향 언론인이시자 시인의 고향 선배께서 안내해 주어 짧은 동안이 짯짯했다. 아름다운 길로 내로라하는 물미해안 끝자락에 상주 은모래비치 해변이 있고 한켠에 오도카니 저자가 나온 상주중학교가 있다. 시에 쓴 대로 축구공을 차면 바다에 빠지는 위치였다. 물이 많은 산, 비단 금자 금산에는 시인과 어머니가 얹혀살다시피했다는 보리암이 있는데, 당연히 가 봤다. 중학교까지 20리, 가파른 산길을 매일 걸어 통학했다고 한다. 가파르고 우둘우둘한 산길이었다. 그 길 한 자락엔 ’바람난 처녀’의 공간인, ‘얼레지 한무더기’ 피었던 자리가 있었다. 꽃무더기는 없었으나 꽃 진 자리는 눈에 담아 두었다. 노할머니 오목 두시던 ‘금산산장’에서 노할머니와 오목 맞두던 할머니를 만나 시에 대해, 시인에 관해 아는 척을 해보기도 했다. “아이구, 그러냐”며 반가워 하셨다. 시를 액자에 담아 언젠가 선물해드리고 싶다. “죽어서야 빛나는 생애”라는 ‘남해멸치’가 우굴우굴 죽방렴에 갇혀 있는 것도 가까이에서 봤다. 곰치국에 밥 말아 먹던 저녁밥상이 놓였던 툇마루, 아버지가 천자문을 느릿느릿 일러주셨다는 집터에 못 가본 건 두고두고 아쉽다. 언젠가 가볼 것이다. 꼬맹이 시절 고두현은 천수답 농사에 물초롱 걸머지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엄마 아빠한테 떼 한번 못 써봤다고 한다. 까까중학생이 되어서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등학생이 되자 어머니가 절로 가셨다. 처자식 놔두고 북간도까지 가셨으나 재산도 건강도 잃고 돌아온 아버지를 평생 미워해야 할지, 일생 그리워해야 할지 망설이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라 불러야 할지, 스님이라 불러야 할지 망설이던 이야기는 오롯이 시가 되어 가슴을 적신다. 시가 탄생한 곳, 시인의 발자취가 남은 공간을 다니던 기억은 이래저래 감격스러웠다. 시를 좋아하는 덕후로서 덕질이었으니 왜 아니 그렇겠는가. 덕후로서 이번 신간 에세이는 아주 특별한 감회를 불러일으켰기에 장황하게 시작한 점을, 읽는 분들이 이해해주기 바란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특별한 감회를 느낀 점은 일단 두가지 이유다. 첫째는 어라? 이 분이, 이렇게나 신박하고 트렌디한 에세이 제목을 쓰시나? 의아하게 한 점 하나와 둘째는 칼럼을 편편이 묶은 것이라기에는, 그냥 묶은 것이 아니라 쓸 때부터 이미 온 정성이 스며 있는데다 거기에 더해 재삼 재사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산고의 흔적이 묻어 있다는 점 둘이다. 시인이자 경제신문 논설위원이자 대한민국의 4대 문학전문기자로 알려져 있는 저자 고두현은 자타공히 글쓰기에서 국가대표급이고, 옛말로 ‘당대의 문사’로 손꼽히는 분이다.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30여 년 동안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단 세권의 시집을 냈는데도, 전국의 시낭송 전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낭송시의 시인이기도 하고, 데뷔 당시 이미 ‘달관의 경지에 오른 서정시인’이라는 칭호를 얻어 지금은 국민시인의 반열에 들어 있다. ‘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는 에세이로서 새롭게 지경을 넓힌 어떤 선구자나 개척자의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낸다. 일단 제목부터 범상하지 않고, 아주 섹시하고 트렌디하며 내용은 그에 걸맞다. 226쪽 ‘메밀면은 목젖으로 끊어야 제맛’ 제하의 냉면 에세이는 “살얼음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먹고 우루루 떨어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이라는 1920년대 작가 김소저의 냉면 찬가 한대목으로 시작하고 박목월 시인이 쓴 “단맛의 용해적 황홀감은 노란빛과 통할 것 같고, 신맛의 서늘한 신선미는 청색과 통할 것 같다”는 유명한 문장을 빌어 냉면이라는 음식을 독자들 가슴 속 밥상에 쓰윽 얹어 바친다. 그리고나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생치냉면(꿩고기를 넣은), 나박김치냉면, 풍기냉면, 명월관, 부벽루, 을지면옥, 우래옥, 을밀대, 평래옥 등 ‘냉면’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을 일별시킨 뒤 “냉면 마니아들은 꼭 주방 가까이에 앉는다. 면발이 붇기 전에 맛을 보려면 일각이 아쉽다는 것이다. 또 ‘메밀면은 이가 아니라 목젖으로 끊어야 하므로 입 안 가득 넣고 먹어야 메밀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도 한다.”라는 알짜배기 팁을 제시한다. 한갖 음식일뿐인 냉면이 마치 벗처럼, 애인처럼 친근하게 하고, 맛도 보기 전에 그 신상정보를 다 얻어 한 번 먹어보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든다. 그리고선 ‘냉면 마니아들은 꼭 주방 가까이에 앉고, 메밀면은 가득 넣고 목젖으로 끊어야 한다’는 깜짝놀랄 팁이라니. 아주 맛있는 냉면같은 글이 아닐 수 없다. 냉면의 여러 맛이 다 녹아 있는 글이다. ‘LP판의 화려한 부활’(142쪽)은 “LP음반이 처음 나온 것은 1931년이었다. …… LP판을 닦고, 턴 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조심스레 올려놓는 과정도 하나의 의식처럼 즐겁다고 한다. …… 패티김과 들극화에 이어 2AM, 지드래곤 등이 LP로 앨범을 냈고, ‘가왕’ 조용필도 LP판을 냈다. 요즘은 ‘가성비’ 좋은 보급형 턴테이블이 많이 나왔다. 기존에 쓰고 있던 스피커나 헤드폰과 바로 연결할 수도 있다. …… 2005년 서라벌레코드사를 끝으로 사라졌던 LP음반 제조공장도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새벽 2~3시까지 작업해도 밀린 주문을 맞추지 못할 정도 …… 강한 비트와 빠른 템포의 K팝 콘텐츠가 조곤조곤한 LP그릇에 담겨 물 흐르듯 스며들면 사회도 그만큼 부드러워진다. 이어폰 세대와 음악다방 세대를 이해하게 되고, 디스코 세대가 클럽 세대를 포용하며 서로가 같은 젖줄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LP판. 이왕이면 살아나서 지치고 날선 사람들의 마음에 안식과 조화를 주는 ‘천사의 하모니’가 되어 주기를.”이라고 쓴다. 기자답게 알차게 골라진 정보를 요목조목 배열하고, 그 문화의 내력과 앞으로의 전망이나 바람까지 단숨에 섭렵하게 만든다. 이 에세이만 읽으면 어디 가서 LP판 이야기가 나올 때 한가락 아는 얘기를 펼칠 수 있을 정도다. 고두현 시인의 에세이는, 기왕의 많은 감상문류 에세이와는 다르다. 은은하되 계몽의 의지가 스며 있거나, 힐링을 주되 정신승리뿐이라 뒤끝이 허망한 여타 에세이류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주제와 소재에 얽힌 내력과 연혁 등을 짧지만 명징하게 알려주고, 기자의 촉으로 건진 알짜 정보의 목록을 열거하는 것만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예술적, 문학적, 문화적 의미와 트렌드적 위상과 스며 있는 철학이나 사상, 정신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깨닫게 해준다. 마치 내가 공부해서 알아낸 것 같은 착시가 생긴다. 시인이자 기자로서 친절이 몸에 밴 글쓰기 덕분이리라. 독자의 반보 앞에서 손을 잡아 주고, 때로 반보 뒤에서 등을 밀어주는 글쓰기의 표본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런 행간의 뜻까지 알게 되면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산책자를 위한 인문에세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네 개 챕터의 제목은 ‘길에서 만난, 반짝이는 생의 순간’, ‘음유시인 조르주 무스타키를 만난 날’, ‘우리가 사랑한 LP판과 턴테이블’, ‘혼자 여행할 땐 새우를 먹지 말라’이다. 인생은 산책과 같기도 할 것이다. 실제 걷고 이동하고 여행하고, 그러다 순간 순간 사람도 만나고 음식도 먹는다. 추억도 쌓고, 추억에도 길이 생긴다. 전혀 새로운 길로 접어 들어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깨달음도 얻고 좌절도 맛본다. 상처도 생기고 면역력도 얻는다. 옛날 이야기, 남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서 빠져 들어 생각지 않은 영감을 얻고 자족하기도 한다. 이런 여러 편의 신선하고, 요즘말로 신박한 이야기들이 즐비하다. 제목만 일별해도 그가 다니거나 조사하고 취재한 공간과 시간들을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주 기분좋게 만드는 에세이다. 글을 읽는 내내 적은 돈 내고 명품 음식을 먹은 듯 뿌듯했다. 한 편 한 편 쓸 때부터 온 정성을 다해, 쓸 때마다 기진해서 어지러움증을 느낀다는 그 부담감과 무게감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요즘 시대 독자들은 이런, 알차면서도 풍성하고 가벼우면서도 엑기스가 녹아 있는 명품 에세이를 원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독서낭독 모임을 12년 째 지속하다보니 독자로서, 독자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던 것이다. 독자들은 뭔가 갈급해 하고 있고, 출판하는 분들도 속을 태우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에세이가 한국말 에세이의 한 시대를 열어 젖혔다 평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것은 기승전결, 계몽, 아포리즘, 개념어 남용, 한잣말 과용, 지나친 수사학, 서투른 정보, 적은 공력, 출판 마케팅의 필요, 허울좋은 제목 등으로 버무리된 수다한 에세이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에세이의 한 시대를 열었다’는 말이 과하지 않음을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에서는 역시 ‘친절’이 ‘알짜’다. 그러한 친절은 오랜 내공에서 배어나오는 것이리라. 당대의 시인이라는 말을 듣는 시인으로서의 내공이 더 다가오는지, 문학전문기자와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낸 저널리스트로서의 공력이 더 다가오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명인의 솜씨로 만들어진 한 상 차림을 받은 손님(독자)으로서는 잘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면 제몫을 다하는 셈이니까. 이 에세이는 맛있는 찬 가지수가 107가지나 된다. 독자들은 주방 가까은 식탁에 앉아 있다. 독자 여러분들의 건독을 빌며 쾌히 일독을 권한다. http://m.yes24.com/Goods/Detail/9930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