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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지나갈 『장벽의 시간』
이 책은
이 책 『장벽의 시간』 은 20세기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장벽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저자는 안석호, <연세대학교 경법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클라호마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1년 동안 방문학자로 연수했다. 세계일보를 거쳐 현재 TV조선 기자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카슈미르, 캅카스 등 주요 국제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르포를 작성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에는 장벽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장벽이야기.
맨처음 살펴보는 베르린 장벽은 현재 사라졌지만 나머지 4개의 장벽은 목하 건재하다. 아니 더더욱 더 높게 쌓아지고 있는 중이다.
이들 장벽은 과연 누가 쌓았을까? 누가 쌓았고, 그 장벽 때문에 누가 고통을 받고 있는가, 하는 성찰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각각 장벽이 만들어지게 되는 계기와 그 후의 과정을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사건 - 장벽 - 탈출 - 붕괴 -그 후 사건 - 장벽 - 탈출 사건 - 장벽 - 탈출 - 그 후 사건 - 장벽 - 그 후
‘사건’이란 항목에서 저자는 그 장벽이 세워지기까지의 역사를 훑어본다. 장벽이 어느날 갑자기 세워지는 게 아니라, 다 사연이 있는데, 그 사연을, 역사적 사연을 저자는 살펴보고 있다.
지금은 역사가 되어버린 베를린 장벽
예컨대, 베를린 장벽의 경우는, 사연이 길다. 2차 세계 전쟁이 독일의 패배로 막을 내린 다음에, 연합국 -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 이 독일에 진주하면서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 다음이 문제다.
4개의 나라가 자기 나라에 할당된 지역을 관리했으면 베를린 장벽은 없었을 것인데, 동독에 위치한 베를린의 관리를 두고 독일에 진주한 소련과 다른 나라의 속셈이 달랐던 게 도화선이 된다.
그렇게 해서 결국 베를린을 둘로 나누고, 그 다음에는 아예 장벽으로 갈라놓는다.
‘사건 - 장벽 - 탈출 - 붕괴 -그 후’ 그렇게 장벽이 들어서자, 그 장벽을 넘어 탈출하려는 일이 생긴다. 그 탈출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된다. 탈출 과정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세월이 흘러,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지금은 다만 역사로만 남아있는 ‘베를린 봉쇄’니, ‘베를린 장벽’이니 하는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에도 지금 장벽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예전에는 삼팔선, 지금은 휴전선으로 한반도가 갈라져 있는데, 그 가운데를 막는 장벽이 서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DMZ.
그럼 위에 열거한 도식 중에서 우리나라의 장벽을 설명하는 도식은 어떤 것일까 <사건 - 장벽 - 그 후> 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장벽을 설명하는 ‘사건’은 1950년 6월 25일부터 시작된다. 그날 비가 갠 서울 하늘은 맑았단다. 일요일 아침 오전 10시 거리에 군용 지프가 다급하게 나타나, 장병들은 복귀하라고 방송을 하고 다녔다. 그로부터 전쟁의 화마가 나라를 휩쓸고, 결국은 허리가 동강나고 그 자리에 장벽을 쌓았다.
‘사건 - 장벽 - 그리고 탈출과 여러 곡절’이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미국과 멕시코는 어떤가 전에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뉴스에 자주 나오던 이야기가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모두 다 쌓아버리겠다는 호언장담....아니 협박
그러나 이 책을 보니, 그게 그리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 장밋빛 전망은 금세 사라지고, 멕시코는 모든 면에서 대미 종속화가 이루어지고, 이는 곧 멕시코에서 미국으로의 이주 행렬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불법이 개입되고,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일이 벌어진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는 사막도 있고 평지도 있고 또 강도 있다. 이런 곳을 어떻게 통과하느냐, 그게 불법 이주자들의 고민거리다. 이런 일도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이 참참한 아이러니라니!
2004년 12월, 동예루살렘 장벽 건설현장에서 저자와 현지인 사이의 대화 한토막이다.
이런 사실도 있었다니!
미국은 왜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던 것일까.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책 251~ 257쪽을 참조하시라.
다시, 이 책은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장벽의 시간』으로 잡은 데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니, 언젠가는 장벽이 무너지고, 지금의 베를린 장벽처럼, 다만 시멘트 조각이 기념품으로 팔리는 것처럼, 그런 시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장벽의 시간이지만, 훗날에 그런 시간은 다만 추억거리로 남고, 우리의 장벽도 서울 어딘가 리어카에서 ‘ 이게 한때 우리나라를 갈라놓았던 장벽의 한 조각입니다’ 라며 팔리는 시간이 오기를 소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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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벽의 시간 】-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_안석호 / CRETA(크레타)
인간이 만든 장벽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안에 있는 사람이 밖으로 못나가게 하는 것과 밖에서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것. 장벽은 절대적 소수가 절대적 다수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오래 전 인류의 조상들이 짐승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장벽을 제외하고, 인간이 만든 장벽들의 대부분은 비인간적이다.
이 책의 저자 안석호 기자는 주요 국제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르포를 작성했다. ‘국제 분쟁 전문 기자’라고 부를 만하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세력과 세력 간의 분쟁과 위기 상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것은 장벽이었다. 한쪽은 장벽을 쌓고 다른 한쪽은 장벽을 넘어가거나 없애려 한다.
장벽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장벽을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다. 장벽을 만든 이들의 의지와 다르게 장벽 주변엔 사람이 모인다. 독특한 문화와 경제가 형성된다. 때로는 특수 산업과 도시가 발달하기도 한다. 장벽은 주민들의 생활과 경제를 바꾸고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0세기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장벽을 이야기한다.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인 무역 또는 경제적 장벽이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이 건설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된 동, 서독은 냉전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자유를 빼앗긴 동독인 수백만 명이 서독으로 넘어가자 국가 존재의 위기감을 느낀 동독 정부가 장벽을 세우게 된다. 오로지 주민의 이탈을 막기 위함이었다. 목숨을 건 탈출은 장벽이 무너지기 불과 며칠 전까지 이어졌다. 베를린 장벽은 억압과 통제, 무능함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동독의 체제를 약화하는 데 일조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리장벽’은 어떤가? 2000년대 초 팔레스타인 과격분자의 테러 공격이 심해지자 이를 막겠다는 명목으로 이스라엘이 쌓아올렸다. ‘보안장벽’ 또는 ‘테러 방지 장벽’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 장벽은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주민의 땅이라고 인정한 지역까지 접수했다. 팔레스타인 전통 농업 경작지와 산업 지대, 공업지대 심지어 식수원 등으로부터 주민을 격리했다. ‘이. 팔 장벽’은 보안장벽이 아닌 분리장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선을 따라 건설한 거대한 장벽도 문제다. 3천 킬로미터가 넘는 국경선을 따라 장벽을 쌓기로 했지만, 여전히 밀입국자들은 끊이지 않는다. 마피아 영화에선 정교하게 지어진 지하 땅굴을 통해 탈것을 이용해 이동하는 장면도 나오던데, 실제 상황으로 이해된다. 두 나라의 경계지대는 죽음의 땅이 되고 있다고 한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만들어진 비무장지대는 민족의 크나큰 아픔이다. 허리가 두 동강이 난 채로 70년이 넘었다. 지금껏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장벽처럼 완벽하게 상호 이동을 통제한 장벽은 없었다고 한다.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겠다면 만들어진 비무장지대는 역설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긴장도가 높은 곳으로 꼽힌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이야기한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든 그 어떤 장벽을 넘는 것보다 더 힘든 장벽이다. 이곳에 갇히고 막힌 자들이 받아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은 물리적 장벽이 주는 것에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인간과 물류의 이동 속도와 편이성은 혁신적으로 개선됐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은 더 많이 생겨난다. 이를 넘어서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 모든 것은 돈과 연관이 된다. 경제와 관련이 있다. 유럽 열강들이 약소국가를 식민지화한 이유가 경제적 논리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나눌 수 없다면 뺐는’ 논리가 적용되었다.
“장벽은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극복하지 못할 때 만들어진다. 미, 중 무역 전쟁과 코로나19 창궐 등으로 국제 질서가 요동친다. 세계 곳곳의 국경에 새로운 장벽이 생겨나고 기존의 장벽들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오래 끄는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오로지 패자만 남을 뿐이다.”
#장벽의시간 #안석호 #크레타 #쎄인트의책이야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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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차이와 차별에는 분노하며 평등가치의 구현, 동등한 입장에서 더 많은 것을 공정하게 누리길 희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국제질서와 세계패권은 이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가마다 다른 이념이나 노선, 국력의 힘에 의해 외교노선을 정하게 되며 강대국 일수록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거나 두더라도, 이에 반대조차 못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우리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며 지금의 남북분단을 보더라도, 단순한 역사적인 관점이나 해석을 초월한 개념으로 장벽이 주는 상징성이나 가슴 아픈 스토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며 역사적인 접근, 혹은 낮은 단위에서 어떻게 하면 이런 장벽을 없애며 극복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기본적인 접근법이 될 것이다. 또한 상대적인 입장에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며 존중하려는 노력과 제도적 정착, 나와 다른 민족이나 인종, 문화 및 종교를 마주할 때 누구나 편견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편견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말해주는 표현이 중요하며 결국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더 큰 단위에서 미래가치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도 이런 관점에서 장벽의 역사를 답습하며 현실로 남은 아쉬움과 문제점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책에서는 냉전이 남긴 유물로 베를린 장벽을 소개하며 보안에서 고립까지라는 의미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사, 굴욕의 국경선으로 평가받는 미국과 멕시코 장벽, 그리고 우리에게 뼈 아픈 DMZ 장벽을 조명하며 지난 과거의 사례를 통해 장벽이 주는 상징성과 부정적인 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없는 것인지, 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현대판 장벽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무역보복이나 경제정책,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패권국들의 행태에 추종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국가들은 어떤 노선과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다소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현실적인 부분이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어서 이 책은 단순한 전쟁사나 세계사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이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함께 하는 국제정세와 관계, 패권질서 및 세계패권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앞으로의 미래에도 결정적인 역할과 다양한 효과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이 주는 느낌은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다름에서 시작된 차이와 차별의 만연, 인종과 종교,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며 우리 인류는 또 다시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지, 인류학적으로 함께 판단해 본다면 책의 저자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읽으면서 깊이있는 지성과 성찰적 메시지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장벽의 시간> 남의 일이 아닌 우리가 겪고 있는 분단의 역사와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책이다. 많은 분들이 읽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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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이라 함은 사전적으로 가리어 막은 벽, 둘 사이의 관계를 순조롭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등을 뜻하는데, 이 책에서는 체제, 민족, 국가, 경제력 등의 다름을 이유로 서로를 나누고 교류를 할 수 없도록 세운 유무형의 장애물을 뜻한다. 상대방과의 연결보다는 단절, 소통보다는 억압, 융합보다는 분리를 위한 목적으로 세운 장벽이기에 그 안에 속하느냐와 밖에 남겨지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인류사에 수없이 많은 장벽들이 있었겠으나 저자는 20세기에 생겨난 장벽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펼쳐가기에 오래 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건이며 대부분의 장벽은 지금도 사람들을 분리하고 단절시키며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유일하게 무너진 사례인 독일의 베를린 장벽을 필두로 중동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미국과 멕시코 국경 문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그리고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무역 장벽까지. 어쩌면 많은 사람에게 지구촌 곳곳의 갈등 사례 중 하나로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장벽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서부터 어떠한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쳤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읽다보면 어느 새 그 장벽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동시에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의 장점은 첫 번째로 장벽이 생겨난 원인과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근본적인 시작점에서부터 풍부하게 서술해 왜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이 생겨나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동독이 왜 베를린장벽을 세우게 되었는지, 이스라엘이 서안 지구 곳곳에 정착촌을 지정하며 그 사이사이로 장벽을 세우게 되었는지, 느슨하던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왜 거대한 높이와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는 장벽이 세워지게 되었는지 다각도로 문제를 접근해 자세하게 갈등이 생겨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어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장벽을 세우는 전개과정과 장벽이 생겨남으로써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중립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잘 서술되어 있으며 최근 발행한 책답게 그 장벽들에 대한 최신 이야기까지 알 수 있어 좋았다.
두 번째로 ‘장벽’ 그 자체에 대해서만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벽 속을 넘나드는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덧붙여 담아내고 있기에 더욱 글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가령 예를 들면, 체제를 이유로 베를린을 동서로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뒤 이를 넘어간 많은 사례를 들자면 장벽을 지키던 동독의 경비병 슈만이 철조망을 넘어 서독으로 간 장면이나 자신이 몰던 기관차를 몰고 바리케이드를 부수며 서독으로 향했던 기관사 해리의 이야기 등은 내가 역사 속에서 생각했던 베를린장벽에 대한 서술보다 훨씬 인상적이었으며 장벽으로 인해 분리된 사람들의 절박한 심경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미국으로 불법으로 이민을 하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로 향하는 화물 열차 속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이고 냉혹한 현실과 함께 이들과 거래하며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브로커 코요태와 국경지대를 향해 걸어가는 캐러반 행렬 등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며 탈출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장벽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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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멕시코와 미국의 경계. 이 국경에 세워진 장벽에서 어린 두 자매가 브로커를 통해 벽을 넘고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려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고 가족을 만났다는 기사가 최근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세워지는 이 장벽들은 이곳을 넘어가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막지 못한다. 아무리 높은 장벽이 세워져 있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 장벽 너머로 가기 위해 더욱더 험난한 협곡, 깊은 강과 험준한 계곡, 뜨거운 사막을 걷는다. 때로는 더 멀리 돌아가 뗏목을 타고 밀입국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소망하던 땅에 도착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다. 장벽이 세워진 곳. 그 안팎의 사람들. 그들은 행복할까?
한국에도 DMZ 비무장지대가 존재한다. 남북을 가르는 38선의 경계가 생기던 날. 경계가 지나던 곳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가족들을 산산조각 낼 장벽인 줄도 모르고 고생한다며 그 경계선 세우는 것을 도와준 일이 있을 정도로 모든 일은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장벽을 세운 결과.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지워진 각국의 장벽들은 자국민을 고립시키고 통제하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도서 장벽의 시간에서는 베를린 장벽을 세우고,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진 독일이 패전국으로 승전국인 소련과 프랑스, 영국, 미국에 점령 당하게 된다. 소련은 자신들의 공산주의를 팽창 시키려 했고, 미국은 이러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1947년 유럽 경제 재건 계획을 발표하며 진행하기에 이른다. 이 계획은 계획을 주도한 미국 국무장관의 이름을 따 마셜 플랜으로도 불리는데, 이 계획은 동독을 다스리고 있는 소련의 제국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서독 그리고 유럽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판단으로 시작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유럽들이 침체되다 못해 후퇴된 경제를 회복하고 스스로 힘을 갖게 되면 소련의 침략에도 방어할 힘을 가질 있을 것이라는 미국의 판단이었다.
이후 회복의 속도는 정말 눈에 띄게 서독과 동독이 갈리게 되었다. 제국주의는 높은 곳으로 모든 에너지가 쏠리게끔 되어 있다. 하여 주도적이라는 것보다는 일방적인 권력적 움직임으로 경제가 돌아간다. 이는 경제적 낙수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소련은 동독을 맡자마자 모든 철로를 뜯어다가 소련으로 가져가고 고급 자재와 가구들을 소련으로 옮겼다. 전쟁을 치러 경제적으로 힘든 동독은 소련의 행보로 더욱 일어날 수 없는 국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동독에서 이뤄지고 있던 산업 대부분도 해체시키고 소련 소속으로 기업을 옮기게 만들어 산업 발전에 있어서도 동독은 서독에 비해 더뎠다. 서독은 미국의 마셜 플랜에 주도 하의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산업 정책에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에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벌어졌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될 때 서독의 GDP가 동독의 40%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삶의 질 차이 또한 컸을 것이 짐작이 간다.
도서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세워진 장벽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이곳은 테러를 막기 위해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장벽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벽이 사람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가둬놓는 역할을 하는 것만 같았다. 테러를 피해 도망갈 수 있어야 하는데 장벽이 세워져 도망가지도 못하고 장벽을 넘기 위해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벽을 세운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다른 나라를 흡수하기에 좋은 경계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벽이 세워진 국가와 맞닿아 있는 국가는 장벽까지를 자신들의 나라의 경계로 생각해 조금씩 문화를 흡수해 나가며 국토를 늘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장벽을 세운다는 것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는데 도서 장벽의 시간을 읽으니 아파트의 입구를 막는 설치물들이 늘어난다는 것. 다른 아파트와 구분 짓는 펜스가 생겨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O 아파트에서 택배 회사에 차량의 높이가 낮은 차량으로 배송을 하라는 요구를 한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배송을 하기 위해선 자신들의 요구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해당 아파트라는 커뮤니티라는 이 장벽이 세워지고 이 장벽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세우는 것이.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체감한 기사였다. 도서 장벽의 시간은 커다란 세계의 장벽들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생기고 있는 현시대를 이야기해 주고 있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장벽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벽. 그것을 발견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갇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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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쌓는 일은 주로 방어 목적이다. 산성이나 만리장성같은 장벽도 외부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자기 땅의 경계로 담장을 두리기도 한다. 이런 저런 장벽을 세우면서 사람과 물자의 교류를 차단시킨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이질화를 악화시키거나 더이상 지키지 못하고 헐어지기도 한다. "이 책은 20세기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장벽을 이야기 한다.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인 무역장벽이다. ... 위기가 올 때 현명한 자는 다리를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담을 쌓는다고 했던가. 20세기에 건설된 다섯 개의 장벽을 통해 누가 현명했고 누가 어리석었는지, 또 그들은 우리 삶의 궤적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힌트를 얻어 본다."(p8) 저자는 국제분쟁 지역 취재를 20년 동안 한 베테랑 기자다. 각 지역별로 오랜 관찰의 결과가 기대되는데, 각각 장벽의 역사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 잘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 장벽으로 인한 애환이 어리석은 지도자와 국가의 몰락을 불러오는 대표적인 것이 베를린 장벽이다. 수많은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쌓았다가 몰락의 길을 좌초한 동독과 소련도 역사의 유물로 남게 되었다. 베를린 장벽의 역사를 보면서 아쉬운 건 가장 폐쇄적인 한반도 비무장지대(DMZ)는 70년 종전 동안 일반 교류가 너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적 이질감이 더 커져가는 상황이라 우려스럽다. 독일의 경우 매년 장벽을 넘나드는 사람도 많았고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꾸준히 있는 상황에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되어도 무려 3천조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앞으로 통일 한국도 비용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정서를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독일의 통일 과정에 대해 공부를 해서 국민 모두가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현재 독일의 정치권을 보면 메르켈 총리와 가우크 대통령이 동독 출신이었음이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독일의 사회 통합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동독인의 자존감은 크게 떨어지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통일의 기쁨이 잠시였지만 당시대의 수많은 장벽을 넘나든 개인은 정체성의 방황에 불행한 인생을 보냈다. 베를린 장벽 설치후 철조망을 뛰어 넘은 동독 병사 슈만이 서독에서 정착을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목매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장벽은 진정 누구를 위한 장벽이었는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전쟁 후유증은 이렇게 긴 세월동안 여파를 미치고 있었다. 한반도의 DMZ도 우려가 된다. 나머지 장벽도 역사적 리뷰와 사건 기록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경이 들지만 상호 배타적인 경계는 어딜 가도 정해지는 만큼, 장벽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과 국가간 이해타산을 잘 이해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를린 장벽은 지나간 역사지만 남아있는 장벽과 진행중인 장벽들에 대한 역사도 잘 되새겨 교훈을 삼을만한 서적으로 추천해본다. 톱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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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그린라인, 휴전선 많은 곳의 단절 : 장벽의 시간 - 안석호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해외에서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나이든 사람들은 유머로든 진짜 궁금해서든 남한인지 북한인지 묻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그냥 여기서 살고있으니 크게 와닿지믄 않지만 남북관계가 긴장되면 밖에서는 곧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보이는지 너네나라 괜찮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분단된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지 않은가. 장벽의 시간에서는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필요에 의해서든, 전쟁 때문이든 각 나라에 둘러지게 된 각각의 장벽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은 유명한 베를린 장벽이다. 동독과 서독의 체체 분리로 인해 급격하게 세워진 베를린 장벽은 지금은 무너졌지만 (그 무너진 시멘트를 기념품으로 팔았다는 것에 무척이나 놀랐다) 지금도 섞였지만 차별받는 동독 시민들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 통일이 된다면 독일과 비슷한 순서를 밟지 않겠는가 하고 예상하고 있다. 지금도 탈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고있는데, 지금 독일도 이등시민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니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예의주시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동독 군인이면서 베를린 장벽을 넘은 사진으로 유명해진 ‘콘래드 슈만’의 사진과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대로 자유를 향한 발걸음으로 많이 선전된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다룬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그린라인이다. 실제로 가자지구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들 사이의 거주와 땅에 대한 지배의 배경이 각각 다름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는 이스라엘의 그린라인을 통한 장벽봉쇄가 팔레스타인을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하고, 노동시장의 비탄력을 그린라인 출입 허가증으로 규제하면서 서서히 목을 조르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스라엘쪽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허용하면서도, 사람들이 그 장벽을 지나는 것에 대해서는 무장세력과 테러에 대한 위협 방지라는 이름 하에 서서히 고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후 분할 지도와 지금 정착촌까지 생기고 그린라인을 설치한 지도를 봤을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구촌의 어떤 곳에서는 다 다른 일이 일어난다. 밖에서 보면 우리가 전쟁날 것 같아도 내전으로 싸우는 곳은 여전히 많다. 그리고 휴전선이자 아주 강력한 장벽으로 둘러쌓인 한국에 대해서도 다룬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관련해서도 노동시장과 마약과 자유무역의 이야기까지 폭넓게 다루며 미국의 영토확장과 멕시코에서 이를 묵인하게 된 이유도 서로의 관점은 다르겠지만 중립적인 시선으로 잘 표현했던 것 같다. 세계사와 무역사 그리고 평화에 관련한 이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장벽의 시간>을 읽으면서 현재 진행중인 이야기들과 없어진 장벽 그리고 앞으로 어디선가 또 어떤 국가의 이익 때문에 들어설지 모르는 분리와 규제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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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를 보면 수많은 분쟁과 전쟁 , 그리고 평화의 시기가 있지만 이와 관계 하여 정치 , 국제 , 문화적으로 크게 국가간 혹은 세계사내에서 역사적 위치를 점유한 주요 사건들에는 어김없이 등장 하는 테두리 , 장벽이 있다.
현존 하는 한반도의 DMZ 과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지구를 해체 하는 분리 장벽이 두번쩨이고 , 최근 미국과 맥시코간의 불법이민자 혹은 교류를 통제 하기 위한 약 3000 Km에 이르는 분리 장벽이 그것이다.
이미 철거 완료된 , 동서독의 베를린 장벽은 과거의 기억속으로 남아있지만 상흔은 아직도 남아 있다..
시공간의 기간을 거쳐 , 이미 고착화 되어 버려 어느 누구도 접근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한국의 DMZ은 철책선 주위로 지뢰 지대 부터 해서 양 나라간 GP등이 설치 되어 있어 대부분 극히 제한적으로 드나 들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머지 다른 장벽들은 의외로 , 양 지역간의 무역이라 소통 , 경제적 목적으로 드나들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아래와 같이 서안 지구에 장벽이 건설 되었다.
[ 서안지구 장벽의 길이는 714㎞에 달한다. 1949년 유엔이 정한 서안지구의 국경선은 373㎞였지만,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점령하고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국경선이 복잡해졌다. 현재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에이(A) 구역,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정착촌이 섞여 있는 비(B) 구역,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시(C)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분리장벽은 이 구역들을 따라 건설되었고, 이스라엘은 군데군데 체크포인트(검문소)를 설치했다. ]
아이러니 하계도 , 1947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부터 계속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 하면서 팔레스타인 지구를 조금식 잠식 해 들어가는 모습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의 모습이다 힘 이 없고 가난한 팔레스타인 들은 , 자신들 지구와 이스라엘 경계를 구분 짓는 장벽 공사에도 일일 노동자로 차출 되어 근근이 생계를 이어 가고 있으며 , 이스라엘 전 인구의 약 1/5 는 팔레스타인 시민이고 이들에게는 정치적 참정권 피 선거권이 주어 지지 않는다. 명백이 눈에 보이는 2등 시민의 차이와 차별이 이어지고 잇다라는 뜻이다.
독일은 어떠할까 . -아레는 한겨레 신문 기사 중 발췌 .
2021 년 기준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거의 31 년이 되는 해 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이듬해 통일 독일과 1991년 옛 소련의 해체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독일 통일은 성공적이었는가? 독일인들의 대답은 갈렸다. 옛 동독 주민은 75%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옛 서독 주민은 48%만 통일이 성공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25년이 지났지만 마음의 장벽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한겨레>는 베를린 장벽 붕괴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통해, 통일 이후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독일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해프닝으로 시작되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치국 대변인으로 막 임명된 귄터 샤보브스키(Gunter Schabowski)가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새로 바뀐 여행법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 법은 언제부터 발효됩니까.” “그는 서류를 뒤적이며 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금 당장입니다.“(this is immediately, without delay)사실 그는 개정된 여행법을 잘 몰랐다. 동독 정부의 여행자유화조치는 몇 달간에 걸친 주민들의 시위에 대한 대응조치로, 과거의 조치와 다른 새로운 내용이 것의 없었으며, 굳이 새로운 것을 들자면 여권 발급기간을 단축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시행 시기도 다음날이었다. 동독 정부가 임기응변으로 만든 조치였는데, 대변인이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TV카메라 앞에서 ”지금 당장 여행자유화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다음 보는것은 미국과 멕시코간의 기나긴 지형적인 장벽과 인위적인 장벽이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 기간 내에 트럼프는 3,145㎞에 달하는 국경 중 임기 내에 724㎞의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현재 이 중 647㎞가 건설됐다. [출처: 중앙일보] 트럼프, 마지막까지 멕시코 국경에 장벽 세운다... 바이든 중단도 어려워
장벽에 대한 건설 역사는 아래와 같다.
건설[위키 백과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 의장인 하원 의원 덩컨 헌터는 2005년 11월 3일에 강화 울타리, 사실상의 벽을 미국-멕시코 국경을 따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12월 5일에는 HR4437에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 계획에는 멕시코 경계의 698 마일 (1,123km)에 따른 울타리의 건설 의무화가 담겨있었다. 2006년 5월 17일 상원에서 삼중 구조의 울타리와 자동차 울타리를 370 마일 만든다는 S.2611이 승인되었다. 멕시코 정부는 이 계획을 비난했다.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도 반대를 표명했다. 울타리의 확대 방안은 또한 텍사스 러레이도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부결되었다.
2006년 《안전 울타리법》(HR6061)은 2006년 9월 13일에 도입된 다음날 283 대 138의 투표로 가결되었다. 9월 29일에는 80 대 19의 투표로 상원에서 승인되어 10월 26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하였다. 2016년 11월 8일에 실시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멕시코와의 국경 지대에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부터 멕시코 장벽을 건설하기로 결정했고 1월 27일 도널드 트럼프가 반이민 행정명령 (행정명령 13769호)에 사인하여 7개국 무슬림 이민자들과 난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시켰다. 트럼프는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장벽을 쌓는 것에 전적으로 멕시코가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멕시코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극구 반대한다. ---------------------------------------------------------------------------------------------------------------------
사싫 미국의 역사를 살펴 뵤면 남부 지방 지금의 텍사스 ( 이전에는 멕시코 영토 였다 ) 부터 시작 해서 뉴 올리언스 및 뉴 멕시코 지역도 원래는 맥시코인들의 땅이었건만 양국 전쟁에서 일방적인 미국의 승리고 경계를 확정 짓게 되었다.
배경[편집]1821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멕시코는 내전으로 번질 수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비교적 단합한 태도로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발발한 텍사스 공화국 독립 문제에 반대했다. 멕시코는 미국이 텍사스를 병합하면 전쟁할 수도 있다고 위협을 했다.[1] 반면, 제임스 포크 대통령의 ‘명백한 운명’에 대한 정신은 서부 확장에 대한 미국의 이익에 집중되어 있었다. 멕시코 군사력과 외교 역량은 독립 이후 쇠퇴했고, 북부 절반을 코만치 족, 아파치 족, 나바호 족 등 원주민 부족에게 취약점을 노출했다. 이들 원주민 가운데 특히 코만치족은 멕시코의 이러한 취약점을 공략하여 대규모로 습격해서 가축을 약탈하였고, 이를 텍사스와 미국에 공급하였다.[2] 원주민 습격은 수천 명 사상자를 낳았고, 북부 멕시코를 황폐화시켰다. 1846년 미합중국 군대는 멕시코 북부에 진입해서 실의에 빠진 사람만 보았고, 미국인에게 저항하는 민병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3] 이들 원주민의 적대적인 활동으로 말미암아 멕시코 내부와 알타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사이 교역과 소통은 어렵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멕시코 미국 전쟁이 발발할 시기에 뉴멕시코는 산타페 가도를 통한 미국과의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4] 텍사스 공화국이 1845년 텍사스 합병을 통해 미국의 28번째 주인 텍사스주가 되자 종주국이라고 생각한 멕시코는 이 합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1846년 발발한 전쟁이 멕시코-미국 전쟁이다. 멕시코와 미국은 각각 텍사스 종주권을 주장하였다. 텍사스는 멕시코와 싸워 독립을 쟁취한 지 오래지 않았으며, 멕시코는 텍사스를 반란 지방으로 인식해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근본 전쟁 이유는 미국의 서진 확장 경향과 최근 멕시코 독립 전쟁을 통해 독립한 멕시코의 정치적 불안정이었다. 미국은 멕시코와 협상을 하는 게 어려운 시점이었으며, 멕시코는 북부 지방을 관리하는 게 어려운 시기였다. 텍사스는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 내부에서 휘그당이 거세게 전쟁에 반대했다. 멕시코에서 전쟁은 방어 전략상 필요 수준으로 여겼다. 전쟁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멕시코가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를 미국에 팔아넘기게 된 것이었다. 미국 정계는 새로 획득한 주에서 노예 제도와 관련하여 격렬한 논쟁을 벌여 ‘1850년의 타협’을 보았다. 멕시코에서는 정치적 혼란기가 계속되어 전쟁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또한 이 전쟁은 유럽의 1848년의 혁명과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어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결과 및 영향[편집]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은 겨우 1,825만 달러를 지급하고 멕시코로부터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주 등을 할양 받아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만 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넓혔다. 미국은 겨우 멕시코인들에게 진 빚 325만 달러를 떠맡도록 하였고 군사비 지출도 9,8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직전 일부 미국 여론들은 전쟁을 반대했는데 지식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전쟁세를 내는 대신 감옥에 가는 것으로 항의했고 랄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의 폭력을 부끄러워하며 멕시코가 미국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남북전쟁의 전쟁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 역시 이를 두고두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
이후 북미 지역의 경제 성장 및 제2차 셰계 대전이 발발 함으로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게 된 미국과 인적 자원이 부족한 그들에게 멕시코인들의 유입은 필수적이엇고 이민법 또한 완화 되었었다. 이후 나프타 등 북미 자유 협정 조약에 따른 무역 교역의 결과 더많은 생산과 공급을 미국납부권과 멕시코 경계도시들을 중심으로 발달 하게 되엇고 한때 미국의 무역 의존도가 80% 를 넘어 가기도 하였다.
확실한 종속 관계에 있어서의 멕시코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중미의 기존 마약 세력에 의한 밀반출 또한 멕시코라는 미국과의 3000 km 넙는 접경지대로의 수출? 이 원활이 이뤄져 , 한떼 이로 인한 역외 수입민으로도 수백럭 달러를 상회하였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가 약간의 완화 정책을 펼친 다고는 하지만 얘전 보다는 규제를 이어 갈 것이라 전망 하지만 이미 미국민 3억 인구중 3천만이 넘는 히스패닉 인구로 이미 제 1 소수 인종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초기 아프리카 -아메리카이주민으로 노예 시장에서 생성된 흑인 인종또한 순위로는 3위 이다.
늘어 나는 인구 만큼 미국의 고민또한 커지 겠지만 광대한 납부 영토를 미국 -멕시코 전쟁으로 빼았겼던 기억을 되살리며 현제를 살아 가는 그들 히스패닉 계열은 이미 멕시코의 국내 총 생산략의 5 배가 넘는 GDP 를 생성 하는 중이어서 멕시코 정부 조차 이미 미국으로 넘어가 생활 터전을 잡은 그들을 불러 들이기엔 역부족 일 듯 싶다. , 이렇게 해서 약 100여년이 더 흐른다면 , 남부 텍사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도로 표지판은 스펜인어로 바뀐지 오래지 않을 까 싶다..
다섯번쩨 장벽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이로서 , 산업 혁명 이후로 강대국들의 주요 무기는 보호 무역 주의 였다가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 되면 , 자유 무역 주의를 외친다. 그해서 현제 어느 나라가 보호 부역 주의를 하자고 하면 분면 , 자국의 취약점이 있는 산업체를 방패 막이 하려는 뜻 이고 반대로 자유 무역 주의 FTA 등을 들이 밀면 , 어느 정도 비교 경쟁 우위에 있는 산업이 많다 라는 것으로 나라간 균형을 이해 하면 정확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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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이고 개인의 삶을 뒤흔든 장벽의 운명사 장벽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막는가
크레타에서 출판한 안석호 국제 분쟁 전문 기자님이 생생하게 경험한 장벽의 실체를 다루고 있는 <장벽의 시간>은 세계에서 주목할 20세기 다섯 개의 장벽을 소개하고 있다.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인 무역장벽이다. (8쪽, 프롤로그 중)
다섯 개의 장벽을 어떤 계기에 의해서 누구 쌓아올렸는지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적용할 부분을 파악하는 것은 불안이 엄습했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은 동독이 건설했다. 베를린 장벽의 생긴 원인이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을 분할 통치하고 특히 베를린은 연합국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분할하는 과정이 계기가 되었다. 패전국을 분할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에서 연합국은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인 일본을 분할하려 했고, 이 분할선이 한반도로 옮겨진 것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뼈아픈 역사다.
양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2차 세계대전후 소련의 공산주의를 막아야 하는 자유세계의 선봉장이 된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미국은 마샬 플랜을 통해 서독과 서베를린을 지원하기로 한다. 일차적인 과정은 화폐 개혁이다.
1948년 6월 18일 어두운 밤하늘을 뚫고 1천1백 톤에 달하는 새로운 도이치마르크화를 싣고 3백 대 이상의 트럭이 서독의 비밀 장소로 향했다. 하루아침에 서독은 새로운 화폐를 사용하게 되었다.
승전국으로 가장 피해를 본 소련은 전후 배상을 톡톡히 받아내고자 했다. 독일에 전쟁 배상금으로 2백억 달러를 요구했고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나치 소유였던 기업 수백여 곳을 해체하고 수십만 대의 기계와 생산 설비를 몰수하고, 1만 킬로미터가 넘는 철도 선로까지 소련으로 가져갔다.
소련은 전승국으로서 얻은 국제사회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려 들었고, 루마니아와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화했다.
서방 연합국은 긴장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재무 장관 조지 마셜 국무장관이 발표한 유럽경제재건계획의 가장 선두에 서독이 자리했다. 서독에 막대한 경제 지원은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의 차이를 가져왔다. 특히 서베를린의 경제 발전을 지켜본 동베를린 사람은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려 했다. 이런 물결이 차츰 심해지자 동독과 소련은 동베를린에 장벽을 설치하게 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소련이 서베를린으로 진입하는 육로를 봉쇄한 경우이다. 미국을 필두로 하는 자유세계 진영은 항공편을 통해 서베를린 국민이 생존할 필수품을 전달했다.
하루 1천3백여 편의 수송기가 열 달 동안 수송기 17만 8,228편의 식량과 물자, 연료 등 232만 6406톤을 실어 날랐다. 서베를린의 육로를 통제하면 서방 연합군이 철수할 거라는 소련의 계산은 빗나갔다.
흐루쇼프와 케네디의 치킨게임은 3차 대전 직전까지 간다. 케네디의 가장 큰 도박 중 하나인 쿠바의 공산정부를 전복하려는 피그만 침공 작전이 실패하고 소련은 이에 대한 분노로 핵미사일을 쿠바의 해군 기지에 설치하려 한다. 핵미사일을 실은 소련 선박은 미국 해군 함대 바로 앞까지 진군했고, 미국 B-52 전략폭격기는 소련을 즉각 공격할 핵폭탄을 싣고 공중 대기 중이었다.
일촉즉발 치킨게임은 소련이 핸들을 돌리며 피했다. 흐루쇼프가 쿠바 미사일 기지를 폐쇄하고 무기를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해상 봉쇄를 풀고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때 당시 13일간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꼽힌다.
미국은 소련을 경제적으로 와해시킬 작전을 진행한다. 소련의 경제가 석유가격에 기반하는 점에 착안해 사우디아라비아와 OPEC를 움직여 지속적인 유가 하락을 이끌어낸다. 이는 우리에게는 3저 호황의 기회가 되지만 1980년대를 끝으로 소련은 해체되기에 이른다. 소련의 해체로 독일을 가로막았던 장벽은 해체되었다.
지금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동독 출신이고 동독 출신의 정치인이 활약하고 있지만, 비율로 따지면 동서독의 격차는 여전하다. 통일된 동독 주민은 바로 서독처럼 잘 살줄 알았지만, 대기업의 위치와 경제 수준은 아직 서독에 미치지 못한다.
동독의 생활 수준은 이탈리아, 스페인과 비교하면 더 잘사는 것이 분명하지만 동독 주민의 비교대상은 오직 서독 주민이기에 상대적 박탈감도 여전하다.
이스라엘 장벽의 시작은 응축된 에너지가 불꽃에 의해 폭발하듯 생뚱맞은 드레퓌스 사건부터 출발한다. 유대인은 지난 2천 년 동안 디아스포라 이후 유대인들은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곳곳을 떠돌며 서러움과 박해를 견뎌야 했다.
유대인인 땅을 소유하기 힘들었고 농업에 종사할 수 없었다. 직업 선택가지 제한돼 중세시대부터 기독교인이 경멸하고 천시해온 고리대금업과 무역, 상업, 세무와 같은 직업이 유대인에게 넘겨졌다.
그런데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 시대가 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유대인들에게 금융과 무역을 지배해 부를 쌓아온 것이 기회가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우리에게 에밀 졸라를 먼저 떠오르게 하지만, 헤르츨이라는 이스라엘 국부가 이때 등장한다. 헤르츨은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유대 민족이 피할 국가가 필요했다. 유대 국가 건설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1896년 그가 출판한 <유대 국가: 유대인 문제의 혀대적 해결 시도>는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넘겨달라는 시오니즘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유대인들이 보여주는 방식은 전형적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땅을 매입하고 절대 그들에게 다시 팔지 않는 방식으로 차츰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한다.
벤구리온의 정치력과 바이즈만의 아세톤 화약 대략 생산법은 2차 세계대전 동안 폭탄이 부족한 연합국에게 화약 생산법을 알려주어 벨푸어 선언의 기초를 마련했고, 유대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백작은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에게 편지로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승인을 받게 된다.
문제는 영국이 1차 세계대전의 오스만제국을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아랍권 지도자에게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지역에 아랍의 독립국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랍권 지도자와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이 밀약한 맥마흔 선언이었다.
이때 당시를 다룬 영화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이다. 벨푸어 선언과 맥마흔 선언에 이어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씨앗은 잉태되었다.
땅을 서서히 사들인 유대인은 빠르게 공동체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1919년에서 1923년 사이에 러시아 출신 유대인을 중심으로 약 3만5천 명이 이주했다. 이들은 집단농장 키부츠를 세우며 경제 공동체의 초석을 놓았다. 이후 폴란드 유대인 6만여 명 독일에서 약 16만 5천 명이 팔레스타인으로 밀려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은 승리했다. 팔레스타인 내 유대와 아랍의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측에게 그들만의 국가를 건설해주겠다고 약속한 영국은 이 문제를 유엔으로 넘겨버린다.
유대인은 반유대감정이 크지않고 실력자로 떠오른 미국에 막대한 자금력으로 로비 활동을 벌여 유대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얻어낸다.
미국과 유엔은 팔레스타인 땅을 아랍과 유대 민족이 나눌 것을 제안했다. 팔레스타인의 44%를 아랍에, 56%를 유대에 나눠주기로 했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 여러 종교에서 성지로 간주하는 예루살렘은 특별 국제 관리구역으로 지정했다. 당시 팔레스타인내 아랍 인구가 130만 명, 유대인이 약 60만 명이었고 비율로 치면 7대 3 정도였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땅의 절반 이상을 분할하게 한 것은 불합리했다. 당시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의 나라를 세우는 걸 돕겠다던 맥마흔 선언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유엔 결의안이 가결된 후 이스라엘은 건국했다. 벤구리온의 자경단 ‘하가나’를 근간으로 군대를 창설하고 입법기관도 조직하기 위해 서둘렀다.
1948년 유대인 극우조직 ‘이르군’이 예루살렘 인근의 작은 마을 데일 야신촌을 습격했다. ‘이르군’ 조직원들은 집마다 들어가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무차별로 총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254명이 숨졌고, 아랍 주민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서운 나라인지 공포감을 체험했다.
야신촌 학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여 뒤인 1948년 5월 14일 시오니즘 지도자 하임 바이즈만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국경선을 확정하는 ‘그린라인’을 놓고 이웃 나라와 갈등을 반복하게 된다. 이른바 중동에서 일어난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과의 중동 4차 전쟁의 서막에 올랐다.
결과는 모든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우위를 나타내며 아랍 민족을 패배시켰고, 전쟁이 끝날 때마다 이스라엘 국경 내 기존의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을 특별 구역으로 몰아넣었다.
하나는 요르단강 서쪽의 서안지구와 하나는 지중해와 맞닿은 가자지구이다. 이스라엘은 장벽을 세우고 서서히 아랍 민족을 고사시키는 전략에 들어간다. 이 전략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국경 장벽에 따라 하루 아침에 아랍 민족은 분할되기도 한다.
유대 민족의 나라 사랑은 대단하다. 2천여 년 동안 나라없는 설움을 겪은 그들은 영토 수호 의지가 남다르고, 남녀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군인에 대한 존경을 보낸다. 전쟁이 날 때마다 전세계에서 이스라엘로 참전하기 위해 입국하는 유대 민족의 행렬은 그들의 영토 수호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예이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극악의 장벽인 DMZ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 내에 기존의 장벽을 만들어온 영토를 전략적으로 침범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이 토지를 매입하고 다시 팔지 않으면 그 땅은 우리 땅이라 할 수 없다. <장벽의 시간>을 읽는 동안, 인간이 만든 장벽을 만들 때보다 교류를 통해 더욱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장벽의 역사에서 장벽이 가지는 의미를 심층 기사를 다루는 듯 하나에서 열까지 기록하고 있어 세계사와 개인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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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안에 포함되었느냐, 밖에 남겨졌느냐에 따라 번영과 결핍, 삶과 죽음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장벽을 넘어 들어가고, 반대로 나가려는 사람이 생겨난다.” - p12
《아메리칸 더트》라는 소설책이 있다. 이 책은 멕시코의 카르텔을 피해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모자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만큼 멕시코 국경 탈출을 생생하게 전한 책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기차를 불법으로 타고, 카르텔과 미국 국경 감시대를 피하고, 사막을 건너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멕시코 국경을 넘으면서 매년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나올 정도다. 미국에서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위험한 곳을 통해서 국경을 넘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장벽 안에 포함되느냐, 밖에 남느냐가 한 사람, 가족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장벽의 시간》은 불편한 진실을 다룬다. 사실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장벽을 자랑하는 나라는 바로 우리나라다. 철조망으로 완벽하게 장벽을 만든 후 24시간 양측의 군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쪽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자유를 억압당하면서 살아야하는 것일까?
책에서 저자는 5개의 장벽을 다룬다. 베를린 장벽,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 미국-멕시코 장벽, DMZ 장벽, 보이지 않는 장벽이 그것이다. 보이지 않는 장벽은 보호 무역이나 무역 전쟁과 같은 국가 간의 장벽을 말한다.
베를린 장벽은 1961년 8월 13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설치되었다. 당시 베를린의 서쪽은 영국, 프랑스, 미국이, 동쪽은 소련(구 러시아)이 점령하고 있었다. 문제는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탈출이 계속 이어지면서, 동독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게 된다. 빠져나가는 인력들은 젊은 층이 많았고, 엔지니어, 의사 등 기술직과 전문직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독 건국 이후 매년 12만 명에서 19만 명 수준이던 이탈자 수는 최대 33만 명까지 늘었다고 한다. 결국 동독 정부는 빗장을 걸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다소 허술하게 만든 바리케이드를 뚫고 주민들이 계속 탈출했다. 그러다가 10년 뒤에는 동독에서 더 견고하게 장벽을 설치했다.
“장벽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동독 정부는 큰 비용을 치러야 했다. 약 150km 길이 베를린 장벽 감시에만 훈련된 경비 병력 5만 명이 필요했다.” - p61
그나마 동독과 서독은 꾸준한 교류를 이어갔다. 동독에서 이주 신청을 하면 합법적으로 서독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또한 서독인은 연간 30일까지 동독을 방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서독은 동독의 정치범을 ‘프라이카우프’라 불리는 정책을 통해서 현물을 지급하고 데려왔다.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를린 장벽이 더 빨리 무너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장벽은 무너졌고, 1990년 8월 23일 독일은 통일되었다.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최연소 수상이 된 앙겔라 메르켈이 동독의 물리학자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녀는 출신신분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골고루 기용하면서, 독일이 재탄생하도록 앞장섰다.
“메르켈은 대연정을 통해 정당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널리 활용했다.” - p83
물론 통일의 후유증은 컸다. 독일 통일 이후 30년간 통일 비용으로 무려 2,700조 원 이상의 거액이 투입되었다. 실업률도 18%까지 올랐다가 6% 대로 떨어졌다. 또한 서독인을 베시, 동독인을 오시라고 해서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차별하기도 한다. 고작 40년간의 분단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미 70년 가까이 분단을 겪고 있는 한반도는 어떠한가? 막대한 통일 비용도 문제지만, 국민 정서도 쉽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조선족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출신, 남한 출신으로 서로 간에 차별이 더 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DMZ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의 어느 장벽보다도 견고하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각각 2km씩 자기 진영 쪽으로 물러나 비무장지대 DMZ를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러게 만들어진 비무장지대는 서쪽은 임진강 하구, 동쪽은 강원도 고성으로 이어지면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렀다.” - p259
물론 북한에서도 남한 뉴스를 듣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남한의 발전상을 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워낙 주민들을 강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통일이 어려워 보인다. 철마는 달리고 싶지만, 그 단절이 너무 길고 깊다.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 미국-멕시코 장벽은 다르다. 베를린 장벽은 서독으로 자유를 찾아서 떠나는 동독 국민들을 막기 위해서 동독이 장벽을 설치했다. 한국의 DMZ는 양측에서 쌍방의 국민들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2km의 비무장지대를 놓고 철책을 만들었다. 각자의 국가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반면, 이스라엘과 미국은 자국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장벽을 만들었다. 즉, 동독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면, 이 두 개의 국가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은 것이다. 국력이 막강한 이 두 나라가 장벽을 없앨 가능성은 아주 낮아 보인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막는다는 대의명분으로 장벽을 설치했지만, 여전히 많은 팔레스타인이 불법으로 장벽을 넘고 있고, 그 중에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장벽은 하나의 팔레스타인을 둘로 쪼개버렸다. 가족끼리 생이별을 하거나, 또는 일자리나 생업이 장벽 너머에 있다면 매번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1947년 1월 유엔의 결정에 따라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을 56% 확보하고, 반면 팔레스타인에게는 남은 44%가 주어졌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30% 정도였고, 실제로 소유한 땅도 10%에 불과했다. 결국 팔레스타인에게 불리한 결정이었고, 이때부터 갈등의 씨앗이 심어졌다. 유엔의 분할 안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서 더 많은 땅을 확보하면서, 지금은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고 장벽까지 설치한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과거 멕시코 영토의 절반을 취한 후 현재의 미국을 만들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아리조나 등 서부의 대부분은 멕시코 땅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무력으로 취하고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물론 이 넓은 영토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멕시코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를 무력과 계략으로 빼앗은 미국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이후 강대국의 자리에 들어선 미국은 이민자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특히 나라의 부패로 새로운 세상을 찾는 멕시코 및 남미 국가 이민자들을 막았다. 이는 미국의 경제와 치안을 관리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굳이 장벽을 치면서 막대한 국세를 낭비하는 것은 잘 이해하기 힘들다.
이 책을 통해서 장벽에 얽힌 슬픈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모쪼록 우리나라의 DMZ도 평화롭게 개방되어서 남북이 왕래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적어도 분단 100년이 되기 전에 말이다.
- 한 줄 요약 : 장벽은 국가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교류를 막는 악영향이 더 많다. - 생각과 실행 : 앞으로 남은 장벽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장벽을 철거할 확률은 낮아 보인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DMZ는 평화롭게 개방되길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마음의 장벽을 먼저 없애야 한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